스님의하루

2019.3.22 농사일, 공동체 대중과 대화
“소비주의와 편리함을 어느 정도까지 취해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농사일을 한 후 저녁에는 공동체에 상주하고 있는 행자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젯밤 평화재단에서 회의를 마치고 늦게 출발해서 새벽 2시경에 두북에 도착했습니다. 하늘에는 휘영청 둥근 달이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습니다. 두세 시간 정도 부족한 잠을 채우고, 5시에 새벽 기도를 하며 새로운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아침식사를 한 후 곧바로 오늘 일 할 논과 밭을 둘러보았습니다. 인도에서 온 보광법사님, 깨달음의 장 수련을 마치고 온 자광법사님도 함께 했습니다.

밭으로 올라가는 길가에는 어느새 손바닥만큼이나 커버린 쑥이며 냉이, 달래, 씀바귀와 이름 모르는 풀들이 차가운 아침 공기와 상관없이 봄내음을 한껏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지난 울력 때 비닐 멀칭 해놓은 곳에 오늘은 감자를 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고라니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둘러쳐놓은 울타리가 허물어져서 보완 작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문경에서 내려온 행자대학원 행자님들은 이제 조금씩 농부 품새가 느껴집니다. 두 사람씩 짝을 지어 감자를 심었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포크레인으로 땅 뒤집는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스님은 남자 행자님 한 분과 함께 울타리 문을 보완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나무 막대기를 땅에 튼튼하게 박고 문을 만들기 위한 기초 작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울타리 중간중간을 보완할 대나무를 잘랐습니다. 봄기운을 머금은 파란 대나무 이파리가 햇살에 빛나고, 스님은 열심히 톱질을 했습니다.

그런 후 법사님들과 창고 정리를 했습니다. 오랫동안 정리되지 않고 던져놓은 물품들을 모두 바깥으로 꺼내서 필요한 물품과 필요하지 않은 물품을 다시 정리했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 스님은 법사님들과 함께 내일부터 있을 공동체 봄나들이 답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내일이면 인도로 다시 돌아갈 보광법사님에게 진달래를 보여주기 위해 남산 이 곳 저 곳을 직접 안내해 주었습니다.

햇살 아래 빛나는 분홍 진달래와 노란 개나리가 무리를 이뤄 활짝 피어 있었고, 하얀 목련꽃도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습니다. 아직 벚꽃은 한두 송이 꽃망울을 톡톡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스님과 법사님들은 답사를 다녀온 후 다시 창고 정리를 했습니다. 먼지를 온통 뒤집어쓰면서 정리를 하고 나니 시작 전과 시작 후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싶어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다시 사용할 물건과 버릴 물건들이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저녁에는 두북 정토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7시 30분부터 서울과 문경공동체에서 온 대중 70여 명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긴 강당에 빙 둘러앉아 서로 마주 보았습니다.

“다들 잘 오셨습니다. 환영합니다.”

스님은 환하게 웃으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원래 4월 셋째 주에 공동체 나들이를 가기로 했지만 중요한 회의가 생겼습니다. 상반기에는 유일하게 이번 주말에 스님의 일정이 없어서 날짜를 옮겼습니다.

마침 꽃 피는 시기도 예년보다 빨라져 꽃구경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님은 대중들에게 일정이 바꾼 것에 양해를 구했습니다.

“일정을 바꾸어서 죄송합니다. 제가 지난주에 경주 남산에 답사를 가봤어요. 원래 진달래가 4월 초에 피는데 진짜 일찍 피나 확인해봤어요. 지난주에도 꽃이 피어서 이번 주는 충분히 꽃을 볼 수 있겠다 싶었어요. 오늘 아침에 또 가봤더니 다 폈더라고요.”

그리고 스님은 자기소개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우리가 문경, 서울에 흩어져 살고 또 새로 온 사람들도 있어서 서로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르잖아요. 짧게 자기소개를 해보겠습니다. 이름과 어느 부서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간단하게 말해주세요.”

대중은 돌아가며 이름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오며 가며 얼굴은 봤지만, 서로 하는 일은 모르는 사람들도 있어 궁금증도 풀고, 서로에게 관심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도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법륜입니다. 정토회에서 지도법사 역할을 맡고 있고 법문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모두 웃음) 평화재단에서는 한반도 평화문제와 관련한 사회 인사들과의 대외 연대를 맡고 있습니다. 올해 새로 책임을 맡은 일은 농사입니다.”(모두 웃음)

그리고 각자의 소개를 듣고, 다른 부서에 더 궁금한 점을 서로 물어보았습니다. 기획위원회 미래분과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지, JTS의 북한 사업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인도 사업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전체 농사계획이 무엇인지, 2차 만일결사의 핵심과제인 세계 전법을 위해 국내에서는 어떤 준비를 하는지, 다음 달 개원하는 연수원에서는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할 것인지, 청년 정토회와 평화재단 청년팀이 합쳐진 후 어떻게 운영하는지, 깨장 돕는이의 수요가 많아진 배경과 돕는이의 자격에 대한 질문 등 활발하게 질문이 오갔습니다.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하는 과정에서 각자가 얼마나 주인된 자세로 일하고 있는지 느껴졌습니다.

이어서 자기 부서 업무를 하면서 자신이 잘 모르겠는 점에 대해서 조언을 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스님이 답해주었습니다. 먼저 불사팀에서 일하는 행자가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불사팀에서 건축과 실내 인테리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문경 정토수련원 요사채 준공식 때 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니까 '우리가 소비주의와 편리함을 확실하게 버려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중이 많이 늘어나니까 모임을 할 공간, 교육을 할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소비주의와 편리함을 어느 수준까지만 취할 수 있는지 기준을 정하기가 참 어려워요. 왜냐하면 세상의 기준과 정토회가 추구하는 기준이 현저하게 다르기 때문이에요. 정토회는 무조건 싸게 구입하면서 잘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거든요. 중도를 찾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질문을 들으니 반갑네요. 이런 고민을 하면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정토회원으로서, 정토행자로서 좋은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토회는 수행자의 모임입니다. 수행자라고 하더라도 비 오는데 밖에서 잘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외부 자연환경으로부터 수행자를 보호하는 실내 공간이 필요합니다. 법회도 외부에서 하면 대중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에게도 실내 공간이 필요해요.

물론 부처님 당시에는 실내 공간을 사용하지 않으셨어요. 인도는 한국처럼 이렇게 춥지가 않고, 부처님께서는 비가 오는 우기에는 안거를 하고 법회는 안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야외에서 사람을 만나고 설법을 하셨지, 실내 공간은 거의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경전을 읽어보면 부처님은 거의 숲이나 나무 밑에 머무셨습니다. 보리수나무, 망고나무, 대나무숲, 사라수숲 등 부처님의 법문이 설해진 장소는 대부분 나무 밑이었어요. 열반경에 보면 ‘부처님이 망고나무 밑에 앉아 있으니까 망고나무 주인이 와서 인사를 하고 부처님 말씀을 듣고는 집에 식사를 초대했다.’고 나오거든요. 또 ‘망고나무 밑에 앉아서 설법을 하셨다’라는 기록이 많습니다.

경전에 자주 나오는 죽림정사도 우리가 생각할 때는 건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냥 대나무숲이에요. 인도어로 죽림정사는 ‘베누반바나’에요. 베누반은 대나무, 바나는 숲을 뜻합니다. 기원정사도 원래 이름은 ‘제따바나’에요. 제따는 제따 태자의, 바나는 숲이란 뜻이에요. 바나를 숲으로 번역하지 않고, 청정한 수행자가 모여 있으니까 깨끗한 곳이라고 해서 ‘정사’라는 말을 붙인 거예요.

그러다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200년 후에 기념 건물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 건물은 부처님을 기념하는 탑과 같은 건물이었습니다. 수행자를 위한 처소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500년 후에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행자가 많아지니 그 건물의 규모가 점점 커졌어요. 그리고 불교가 세속화되면서 건물이 화려해졌습니다. 지금 한국, 중국, 일본, 태국의 절 모양은 규모나 아름다움, 건축 양식이 왕궁과 비견될 정도입니다.

세상에 세속의 왕이 있다면, 불교에서는 수행자가 법의 왕이 되어갔습니다. 밀교는 법의 왕이 곧 세속의 왕이 됐죠. 티베트의 달라이라마가 그렇습니다. 달라이라마가 머무르는 처소도 포탈라궁이라고 부르잖아요. 이렇게 불교는 세속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흘러왔습니다.

수행자를 위한 건물은 수행자의 기준에 부합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잣대로 봐야 합니다. 대부분의 절은 수행자의 기준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세속의 기준으로 크고 아름답게 지었어요. 불교에서는 궁궐을 보고 절을 크게 짓고, 또 세상에서는 절을 보고 궁궐을 크게 지었습니다. 그래서 건축 양식이 다 비슷해요. 이건 동양만 그런 게 아니라 유럽도 그래요. 서양의 궁전과 성당은 모양만 조금 다르지 규모는 거의 비슷하거든요.

이런 문제는 지금 우리의 고민이기도 해요. 첫째, 대중이 많이 모일 공간이 필요합니다. 인도 사람은 천막을 치고 법회를 해도 되는데, 한국 사람에게 그렇게 하면 법회를 들으러 올 사람이 거의 없을 거예요. 둘째, 그 나라 사람의 기준에 어느 정도 만족하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너무 화려하지 않아야 하지만 사람들이 도저히 여기서 법회는 못 듣겠다고 하는 수준은 아니어야 하잖아요. 이 두 가지를 만족하면서도 수행자의 원칙에 맞는 건물을 지어야 해요.

제가 여러분에게 ‘검소하게 살고, 계율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건, 공동체에 사는 사람들은 대중의 보시로 살고 있기 때문이에요. 개인이 가진 돈은 조금 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공적인 지출을 할 때는 이 돈이 가난한 사람들이 아껴서 낸 돈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해요. 그래서 제가 해외에 갈 때 함께 동행하는 분은 자기 돈이라고 해도 함부로 쓸 수 없습니다. 함께 가는 분 중에는 경제력이 있는 사람도 있어요. 저하고 있어도 자기 습관대로 물건을 막 사면 제가 얘기하죠.

‘저하고 같이 다닐 때는 당신 돈이라도 그렇게 쓰면 안 됩니다. 대신 저하고 같이 안 갈 때는 당신 마음대로 쓰세요. 저하고 같이 갈 때 그렇게 쓰면 정토회의 이념, 법문과 실제 행동이 안 맞는 일이 벌어지잖아요?’

세상의 기준에 맞추기도 해야 하지만, 우리는 원칙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중에 건축이 제일 어려워요. 현재 원칙은 더 이상은 새 건물을 안 짓는 거예요. 저에게 권한이 있다면, 어떤 건물을 새로 짓는 것도 쉽게 허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가능하면 우리가 가진 것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수리해서 써야 합니다.

그런데 대중이 쓰는 공간은 달라요. 본부 건물은 대중이 쓰는 공간이잖아요. 그런데 본부에 공동체 실무자들이 살아야 하는 게 문제예요. 우리가 본부에 안 살고 다른 곳에서 출퇴근을 하면 괜찮은데, 우리가 본부 건물에 살아야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고, 일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잖아요. 본부가 있는 곳은 우리 나라에서 제일 고급 주택이 모여 있는 지역입니다. 이런 곳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거냐?’가 우리의 과제예요. 건물은 번쩍번쩍해도 안에 들어가 보면 낡은 책상을 사용하고, 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이 살면 괜찮아요. 그런데 새로운 건물에 맞게 전부 새로운 가구가 들어올 가능성이 높잖아요. 제가 지금 그걸 막으려고 하는데 이게 참 어려워요. 공동체 실무자의 숙소에는 낡은 이불을 가져가서 덮어도 되지만 하나하나 따져보면 만만치 않아요. 부엌은 많은 대중의 식사를 담당해야 하니 최신 설비를 해야 된다고 하죠. 강당에는 즉문즉설 강연을 해야 하니 음향과 조명은 제대로 갖춰야 된다고 하고요. 또 법당은 아무렇게나 할 수 없다고 하죠.

우리는 애를 썼지만 결과적으로 세상 사람에게 ‘너희도 소비주의, 자본주의 흐름을 비판하더니 결국에는 우리랑 같네.’ 이렇게 평가될 확률이 높아요.

제 뜻만 강조하면 현실 물정을 모른다고 하고, 대중의 요구를 다 받아들이면 결과적으로 세상의 흐름에 우리가 편승하는 게 됩니다. 저도 지금 그게 딜레마예요. 제가 처음부터 이런 문제를 알았으면 건물을 안 지었을 거예요.

다음부터 건축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본부 건물은 그래도 대중이 쓰는 공간이니까 괜찮은데, 제가 가장 뼈저리게 반성하는 건 문경수련원에 대중숙소를 지은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면 ‘필요한 건물을 잘 지었는데 왜 문제제기하느냐?’ 이렇게 볼 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볼 때는 달라요.

행자들이 그렇게 편리한 공간에서 무슨 교육을 받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교육이 지식을 가르치는 것인가요? 교육이란 밥 먹고 일하는 삶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거예요. 서울공동체도, 문경공동체도 그런 것들을 앞으로 유의해야 해요.

질문자가 연구를 많이 해서 스님의 고민을 좀 덜어주세요.(모두 웃음) 원칙은 가능하면 재활용해서 쓰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런 원칙을 가지고 같이 노력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한 두 사람의 의지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잖아요. ‘무조건 주워서 쓰자.’는 건 아니에요.

물론 정토회를 시작할 때는 정말 다 주워서 썼습니다. 정토회에는 초기 ‘용두리 시대’라는 시기가 있습니다. 비닐하우스 쳐놓고 공동체 실무자들이 전부 리어카 끌고 난지도에 가서 폐품을 주워서 그 재료로 방도 만들고 법당도 짓고 살았어요. 깨달음의장도 거기서 시작했어요.

문경수련원의 시작도 처음에 썩어 문드러진 헌 집을 옮겨와서 백화암을 지었습니다. 당시에 저랑 남처사, 남처사 부인 이렇게 셋이서 지었어요. 짓고 보니, 집이 무너질 거 같아서 가운데 낙엽송을 하나 베어서 기둥을 박았죠. 그 나무가 첫 해는 안 죽고 살아서 잎이 피기도 했어요. (모두 웃음)

우리가 그렇게 시작해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계속 그렇게만 살자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기본 정신을 지키고 살아야 하는 거예요. 대중을 위해 필요한 공간을 짓는데 망설이면 안 돼요. 그 공간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대중을 위해서니까요 그러나 그 공간이 화려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위한 공간은 대중이 사용하는 공간보다 좋아서는 안 됩니다. 이 부분은 여러분이 늘 명심하고 살아야 해요. 어쩌다가 한 번 ‘우리 고생했으니까 내일 하루는 맛있는 것 먹자.’ 이런 정도는 괜찮아요. 그러나 ‘우리가 일상을 어떻게 지낼 거냐?’ 하는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예요. 젊은 청년들이 공동체에 새로 들어오는데 요즘 청년들은 태어나서 자란 환경이 제가 살던 때와 많이 다르잖아요. 그 수준에서 보면 정토회가 굉장히 살기 불편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어요. 청년들은 ‘선배들이 맨날 옛날 얘기만 하고, 꼰대 같은 소리만 하고 있다.’ 이렇게 볼 수도 있어요. 이런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우리는 원칙을 지켜야 하는 거예요.

제가 왜 정토회는 수행자의 모임이라는 것을 계속 강조할까요? 우리는 복을 비는 신자가 아니라 수행자의 모임이에요. 우리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수행자로서 해야 합니다. 수행자의 본분을 놓쳐버리면 그게 어떤 일이라도 정토회에서는 의미 없는 일이에요. 큰 건물을 지어놓고 잘 사용하더라도, 거기에서 정말 수행자적인 관점으로 일을 하고 있지 않다면 의미가 없는 거예요.”

스님은 한 시간 동안 불사의 어려움과 그럼에도 우리가 가져야 할 원칙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봉화수련원에 도로를 놓는 문제, 대중 주체로 나아가는 정토회에서 공동체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질문은 더 있었지만, 밤 10시가 되어 스님은 내일 또 시간을 갖자며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함께 농사 울력을 하고, 남산 순례를 한 뒤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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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데오

"제가 여러분에게 ‘검소하게 살고, 계율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건, 공동체에 사는 사람들은 대중의 보시로 살고 있기 때문이에요. 개인이 가진 돈은 조금 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공적인 지출을 할 때는 이 돈이 가난한 사람들이 아껴서 낸 돈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해요. " 감사합니다.~~^^

2020-04-10 16:20:43

임규태

감사합니다!!!^_^

2019-04-04 22:29:41

이지은

편리함을 쫏아 소비주의로 물듬을 경계함니다.

2019-03-29 00:3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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