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4.15. 수행법회, 신라문화원 개원 33주년 기념 특별법회
“사업을 하다가 망했습니다. 두려운데 어떻게 극복할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오전에 수행법회가 있고 저녁에는 신라문화원 강연이 있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하고 원고를 교정했습니다. 오전 10시 수행법회 방송을 하기 위해 두북수련원 방송실로 이동했습니다.

“주위 곳곳에서 봄소식이 들려옵니다. 지난주에 만개했던 벚꽃이 이번 주에는 꽃잎을 떨구며 꽃비를 내리고 있습니다. 봄은, 이 꽃 저 꽃이 연이어 피고 지는 것을 보면서, 꽃들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좋은 계절입니다. 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게도 봄은 파종하고 모종을 심는 등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어제는 정토회 창립 고문이시자 저희의 스승님이신, 전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서암 큰스님의 추모재일이어서 문경 봉암사를 찾아 참배를 드리고 왔습니다. 이어 저녁에는 대구 행복운동본부와 행복시민의 자원봉사로 대구 경북대학교에서 ‘행복한 대화’ 강연을 진행했습니다. 1,800여 명의 청중이 함께해서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경북대학교는 개교 80주년을 맞아 강당과 주차장을 무상으로 제공해 주었습니다.

저는 지금 두북수련원에서 여러분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곳 역시 농사 준비로 한창입니다.

전쟁의 힘겨루기 속에서도 양심의 목소리가

요즘 뉴스를 보면, 중동에서는 휴전이 선언되었음에도 여전히 긴장과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이어, 미국이 이란을 침공해서 세계 군사 대국 1, 2위가 작은 주변국을 침공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강대국의 일방적인 침략으로 전쟁이 발발한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주변 지역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은 학살에 가까운 참상을 낳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며, 세계의 양심은 한동안 침묵 속에 머물러 있는 듯 보였습니다.

힘 앞에서 무력해진 양심을 보며 민주주의와 민주 세력의 의미를 되묻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주를 기점으로,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민주주의와 자유를 존중하는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로마 교황청의 교황이 ‘신은 어떤 전쟁도 축복하지 않는다.’라며 전쟁을 강하게 규탄한 이후, 세계 곳곳에서 양심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도 나토 동맹국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침략 전쟁에 대한 참여와 협력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비인도적 행위가 문제로 제기되며, 보편적 인권을 강조하는 발언을 둘러싸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전쟁 없는 평화를 지키기 위한 시민대회를 열자는 여론도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힘으로 이루어진 일은 처음에는 성공할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는 결국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히틀러의 사례를 보더라도, 당시에는 많은 이들이 침묵 속에서 그의 행위를 묵인했지만, 결국 역사는 그를 전범으로 규정했습니다.

우리나라가 35년간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를 겪었던 일제강점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총칼 앞에서 숨죽이고 있던 상황에서도 일부 용기 있는 사람들의 결단으로 3·1 독립운동이 일어나고 독립운동이 이어졌습니다. 많은 희생을 치렀지만, 결국 우리는 독립을 이루어냈습니다. 이후 민주화 투쟁을 통해 오늘의 민주주의를 쟁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자유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용기와 희생이 있었기에 그 결과로 우리가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수십 년이 흐르면서 우리 사회에는 자유가 아무런 희생 없이 저절로 주어진 것처럼 여기는 인식이 퍼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오히려 자유의 소중함을 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그 가치를 체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와 평화가 위협받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한반도는 여전히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긴장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유럽과 중동에서 전쟁이 이어지는 지금, 갈등의 중심이 동아시아로 이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경각심을 가지고 한반도의 평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유가 상승 속에서 에너지 절약의 필요성

한편, 중동 전쟁의 영향으로 국제 유가가 상승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급격한 유가 상승으로 인한 국민의 생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유류세를 한시적으로 인하하는 조치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 속에서 우리는 에너지의 소중함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기존의 소비 습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JTS에서는 필리핀, 캄보디아, 스리랑카, 인도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 다양한 지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 유가 상승과 자재비 인상으로 인해 현재 책정된 예산이 크게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렇듯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정부의 물가 안정 정책 덕분에 이러한 어려움이 피부로 크게 와 닿지 않다 보니 이란 전쟁 이전과 비교해 에너지 사용이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온 국민이 함께 에너지 절약에 동참해야 할 때입니다. 가까운 거리는 가급적 걸어 다니고, 개인 승용차 사용을 줄이며, 전기 사용도 조금 줄이면 좋겠습니다. 유럽 등 일부 국가처럼 국제 유가 상승분을 그대로 반영하면 자연스럽게 절약으로 이어지겠지만, 그렇게 되면 국민 생활에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정부가 이를 억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가 아무리 에너지 절약을 강조해도 국민 스스로 경각심을 갖지 않으면 실천으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정토회 회원인 여러분께서는 나라 살림이 곧 내 살림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에너지 절약에 적극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행법회 법문을 마치고 스님은 오전 11시 30분경 치료를 위해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약물치료도 필요하지만, 휴식이 필요하다고 권하였기에 스님은 병원에 다녀와서 오후에는 휴식을 취했습니다.

스님은 저녁 7시 경주 서라벌문화회관에서 신라문화원 개원 33주년을 기념해서 마련한 특별법회에 초청 연사로 참석했습니다. 약 500석 규모의 강연장이었는데 오늘은 700여 명의 지역 주민들이 강연장을 찾아 자리가 부족했습니다.

강연장에는 먼저 도착한 고등학교 동창 친구 10여 명이 귀빈실에서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친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스님, 잘 지내셨습니까?”

“스님! 내 기억 나나?”

친구들이 저마다 스님께 악수를 청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도 55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과 환한 웃음으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어떤 친구는 이따금 만나기도 했지만, 어떤 친구는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얼굴이 가물가물하기도 했습니다.

5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몸도 나이가 들고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하지만, 고등학교 다닐 적의 친구들을 마주하니 그때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다시 일어났습니다.

“나는 사람들 만나면 내 친구가 법륜스님이라고 자랑한데이! (웃음)”

친구들이 저마다 스님이 고등학교 친구임을 자랑스러워하며, 자기 사는 근황들을 나누었습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스님을 만나기 위해 사람들이 계속 찾아왔습니다.

“지금 제가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55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이라 잠시 뒤에 인사 나눕시다”

스님이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설명하자, 친구들이 서서히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같이 사진 한 장 찍고 이제 자리 비켜주자. 만나실 분이 많다(웃음).”

스님도 친구들을 위해 준비한 책을 꺼내서 선물했습니다.

친구들이 나가고 여러 모임에서 스님에게 인사를 드리러 찾아왔습니다. 천룡사 복원 불사를 도와주고 계시는 경주 시장님을 비롯해, 스님이 출가한 절인 분황사에서도 신도님들이 찾아와 스님께 인사를 드렸고, 경주 지역의 여러 유지도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강연장 밖에서도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차와 떡을 대접했습니다. 오늘 강연장은 마치 동네잔치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저녁 7시가 되어 특별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삼귀의와 국기에 대한 경례로 법회를 열었습니다. 오늘 법회를 준비한 신라문화원 원장 진병길 님이 개원 33주년을 기념하는 소회를 꺼냈습니다.

“1993년 3월 신라문화원을 열었을 때, 많은 사람이 ‘저게 몇 년 정도 갈까?’ ‘신라문화원이 뭐 하는 곳인가?’ 하는 우려를 보냈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러한 우려들도 모두 관심이었네요. (웃음)

어느덧 신라문화원이 33주년을 기념하게 되었습니다. 33년이라는 시간 동안 경주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함께하고 지원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저도 신라문화원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작년 10월에 경주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담이 전환점이 되어 경주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음을 새삼 느낍니다. 앞으로도 신라문화원은 그동안 보내주신 성원과 지역에 내린 뿌리로 경주 시민들과 지역 주민들에게 베풀며 나아가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병길 원장님의 인사말이 끝나고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어느 도시에 가든지 자기 지역을 사랑하는 향토 단체가 있습니다. 지역에서는 잘 알려졌지만, 전국으로 알려진 단체는 몇 안 됩니다. 그런데 신라문화원은 제가 서울에서도 문화부 관계자들을 만나면 신라문화원을 모르는 분이 없을 정도로, 전국적으로도 잘 알려진, 건실한 지역 단체입니다. 경주 지역 문화를 경주 시민들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들 더 나아가 해외까지 착실히 알려 나가는 단체이고, 경주를 아름답게 가꿔 가는 단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경주가 고향이다 보니까 오늘은 55년 만에 11명의 동기생을 만났습니다. 그래도 잊지 않고 찾아와서 인사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또 경주 불교 학생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후배 동문, 또 흥륜사 스님들도 많이 오셨습니다.”

스님은 경주 출신인 원효대사와 최치원 선생, 불교계의 김지장 대사를 언급하며 경주가 낳은 훌륭한 인물들이 갖는 영향력, 문화의 힘에 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경주가 가진 문화의 힘

“탑이나 불상 등 유적지나 유물만이 아니라 지금은 정신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힘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들 한류 아시지요? 한류 바람이 부니까 어느 나라에 가도 한국말 하는 것이 유행입니다. 한국 음식을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고, 한국 한번 가보는 게 소원입니다.

제가 볼 때 지금 동남아 서남아시아 지역은 우리가 예전에 미국을 동경하며, 영어 공부하고 팝송 부르고 기타 치는 것보다 한국을 그리워하는 게 더 강합니다. 햄버거 팔리듯이 한국 음식이 엄청나게 팔립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한국 음식이 떡볶이, 김밥, 비빔밥, 김치 이거밖에 몰라요.

제가 지난 3월 말에 미국 분들을 초대해서 세계 명상 포럼을 열었습니다. 외국 참가자들이 한국 사찰 음식을 맛보고, 한국 음식이 이렇게 다양하고 맛있는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혹시 한국 음식이 적응 안 될까 봐 빵이나 치즈를 준비할까 했는데, 외국인 참가자들은 필요 없다는 거예요. 한국 온 김에 한국 음식 실컷 먹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이만큼 문화적인 것은 단순한 돈벌이를 넘어 정신적으로 귀의가 됩니다.

신라 왕족이었다가 중국으로 가서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추앙받는 김지장 대사는 중국에서 지장보살이 되어 추앙받으므로 중국의 14억 사람들의 정신적 귀의처입니다. 백제에서 어떤 유적을 만들면 일본 사람이 와서 고개 숙이는 곳이 되는 것처럼요. 동학사상의 탄생지를 잘 가꾸면 이곳이 대한민국의 자생적 민주주의의 성지가 될 수가 있습니다. 경주 시민들이 이런 부분에서 자부심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요즘 경주가 포항하고 울산 사이에서 주거지가 조금 괜찮다, 교통이 괜찮다고 하는 평가보다도 문화를 어떻게 우리가 전파할 것인가 하는 것, 문화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문화는 항상 정신적으로 우위에 있거든요. 전 세계 어디서나 태권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하나! 둘!’ 기합 소리 모두 한국말로 합니다. ‘돌려 차기’ 이 말을 처음에는 못 알아듣지만, 태권도 배우는 사람들은 전부 한국식으로 인사를 하고 한국말을 씁니다. 문화가 이렇게 무섭다는 거예요.

문화의 보고를 가진 경주 시민으로 여러분이 자부심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제가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도 자랑스럽지만 경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도 자랑스럽고 제가 분황사에서 출가했다는 것도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신라문화원을 항상 후원해 주시고 아껴주셔서 신라문화원이 지역 NGO이지만 전국적으로 명성이 있는 NGO로 성장하도록 도와준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려서 다시 한번 감사 말씀드립니다.”

스님의 인사말에 이어서 질문자들의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러 질문 중에서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고향으로 내려온 청년과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두려움이 있습니다. 어떻게 극복할까요?

“안녕하십니까? 제가 5년 정도 서울에서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지금은 고향에 내려와 있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좀 괜찮아졌습니다. 이제는 다시 일어서야 하는데, 막막하고 힘듭니다. 가장 크게 걱정되는 것은 저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가 안 올까 봐 염려되고 두렵기도 합니다. 앞으로 이것을 극복하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궁금해서 질문드립니다.”

“등산이 뭐예요?”

“등산은 산에 올라가는 거죠.”

“산을 왜 올라가요?”

“정상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정상을 보려고 산에 올라가나요? 아니면 건강해지려고 산에 올라가나요?”

“저는 지금 정상을 보려고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다 정상을 보려고 등산해요? 건강해지려고 등산해요?”

“(청중들 대답) 건강해지려고요.”

“그것 봐요. 질문자가 문제요.”

“네, 그렇네요.”

“건강하기 위해 등산하는 거예요. 등산할 때 어떤 사람은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정상을 볼 수 있기도 하죠. 또 어떤 사람은 중간쯤 가다가 내려오기도 합니다. 그것도 운동이 됩니다. 또 다른 사람은 산 밑에만 쭉 둘러서 산책해도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이것이 만약 아니라고 한다면 경주에 있는 둘레길을 다 없애야 합니다. (웃음) 등산은 건강하기 위해 하는 겁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등산을 산꼭대기에 올라가려고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꼭대기에 올라가면 성공, 중간에 올라가다 내려오면 실패, 둘레길을 걸으면 ‘너는 기회도 못 가졌다’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요.”

“스님, 그런데 저는 정상을 보고 싶은데 그래도 마음가짐을 그렇게 해야 하나요?”

“정상을 보고 싶으면 정상을 보면 되죠. 정상을 보고 싶어 정상을 보는 것은 자유인데 정상을 안 봤다고 실패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대중 박수)

“오늘 아침 먹었어요?”

“네, 먹었습니다.”

“어제 저녁에 잠잤어요?”

“잤습니다.”

“발가벗고 왔어요? 옷 입고 왔어요?”

“입고 왔습니다.”

“올 때 걸어왔어요? 차 타고 왔어요?”

“차 타고 왔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예요? 아까 이야기한 성경에 나오는 ‘작은 자’의 기준인 6가지에 안 들어가잖아요. 예수님이 뭐라고 그랬어요? 첫 번째, 주린 자에서 질문자는 주린 자에 안 들어가죠?”

“네.”

“목마른 자도 아니죠?”

“네.”

“헐벗은 자도 아니죠?”

“네.”

“아픈 자도 아니죠?”

“네.”

“나그네 된 자, 즉 이민자도 아니죠?”

“네.”

“감옥에 갇힌 자 아니죠?”

“네.”

“질문자는 그러면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인가요? 아니면 도움을 줘야 할 사람인가요?”

“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내일부터 교회에 좀 나가세요. (청중 웃음) 교회에 나가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면 ‘천국에 가는 길이 이것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작은 자의 처지에 있다면 도움받을 권리가 있어요. 그러나 이런 처지가 아니라면 나는 도움받을 권리가 없어요. 대신 내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욕심을 내서 ‘꼭대기에 가는 것이 성공이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질문자는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꼭대기에 못 가면 다 실패니까요. 저는 꼭대기에 가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등산은 건강을 위해서 합니다. 젊을 때는 꼭대기에 올라가 볼 수 있으면 올라가면 됩니다. 그런데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은 높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기 쉬워요? 낮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이 쉬워요?”

“낮은 산이 올라가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낮은 산에 올라가면 되잖아요. 하지만 질문자는 슬리퍼를 질질 끌고, 반바지 차림으로 설악산을 오르겠다고 하는데 어림도 없는 소리예요. 그러니 슬리퍼를 신고 슬슬 올라가려면 뒷동산이나 올라가고, 설악산이나 높은 산에 올라가려면 준비를 좀 단단히 하고 가야 합니다.

정상에 올라가는 것을 목표로 두지 마세요. 지금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밥도 먹고, 옷도 입고 사니까요. 그러나 조금 더 해보는 것은 괜찮잖아요. 둘레길도 좋은데 ‘어디 남산까지 가볼까?’ 이것이 되면 ‘이제 고위산도 올라가 볼까?’ 이것도 되면 ‘단석산도 가볼까?’라고 해보는 겁니다. 이렇게 목표를 낮추어야 작은 성공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성공을 만들어야 자기가 자기를 믿을 수 있어요. 그런데 목표를 너무 높게 잡으면 할 때마다 실패해요. 그러면 내가 나를 못 믿어요. ‘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야.’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 서울에서 실패해서 경주에 와야겠어요? 서울에서 아무리 성공한다 해도 ‘싫다. 나는 내 고향 경주에 와서 살겠다.’ 이렇게 와야 해요. 부처님처럼 왕위를 버리고 출가를 해야죠. 왕이 못되었다고 출가를 하면 세속에서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서울을 버리고 경주에 왔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알았죠?”

“네, 감사합니다.”

오늘은 모두 현장 질문으로만 강연을 가득 채웠습니다. 어색해하거나 부끄러워하는 사람 없이 저마다 자기 사는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꺼내다 보니 어느덧 밤 9시가 되었습니다. 스님과 대화하고 싶어 질문을 신청한 사람들이 더 있었지만 다 받지 못하고 즉문즉설을 마쳤습니다.

강연을 시작할 때는 스님의 목 상태가 좋지 않아서 우려했는데, 다행히 큰 탈 없이 강연을 잘 마쳤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스님은 진병길 원장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개원 33주년을 축하합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스님, 오늘 특별 법회 오셔서 법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들도 정말 좋아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다시 좋은 자리를 만들어서 스님을 초청하겠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스님은 두북수련원으로 이동했습니다.

“대구 강연도 그렇고 오늘도 사람들이 제법 많이 찾아오네요. 이제 나이가 들어서 몸이 점점 늙고 움직임이 예전 같지 않은데, 사람들은 여기저기에서 점점 더 많이 찾아오네요. 내가 젊을 때 찾아왔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에요. (웃음)”

스님의 웃음소리에 동행하던 행자들도 조용히 따라 웃었습니다. 밤 10시경에 두북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늦은 저녁을 먹고 휴식을 했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집안 일을 하고, 오전 8시부터는 두북 어르신 잔치를 함께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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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환

감사합니다..건강하세요..^^

2026-04-18 11:43:55

정명

목표를 낮춰 작은성공을 꾸준히 만들라는 가르침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2026-04-18 11:37:21

보람

스님이 우리의 귀의처입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행복합니다 스님.

2026-04-18 11: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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