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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스님은 어제 비행기를 타고 밤새 인도에서 방콕을 경유하여 한국으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은 경유지에서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원고 교정을 보았습니다.


긴 비행 끝에 스님은 한국 시각으로 오후 3시 30분에 인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찾고 인천 공항을 나와 서초동 정토회관으로 가는 길은 퇴근 시간에 맞물려서 차가 밀렸습니다. 스님은 차 안에서 쉬지 않고 업무를 보았습니다. 오후 5시가 넘어서 회관에 도착하였고, 스님은 짐을 풀고,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바로 저녁 7시에 미팅이 있어서 사무실로 나왔습니다. 저녁 8시에는 실무자 4명과 INEB 스터디 투어와 스리랑카 종교인 방문 프로그램 실무 점검 회의를 간단하게 진행했고, 저녁 9시에도 또 다른 미팅이 있었습니다.

미팅이 끝나고 오후 10시가 되어서야 스님은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 스님은 오전에 봉암사로 이동하여 서암 큰스님 추모제에 참가하고, 문경수련원과 연수원에 들렀다가 저녁에는 대구 경북대학교 대강당에서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으므로, 지난 즉문즉설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제가 불교대학 수업을 듣기 전에는, 불교에는 인간의 인식을 관찰하는 새로운 방법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고 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뭔가 더 많은, 제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즉, 어떤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각자의 색안경을 끼고 보더라도 우리가 보는 그 벽이 거기 존재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제 질문은 진리라는 것, 사실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이 세상에서 생각하는 좋은 것, 즉 선(善)이라는 것에 대해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진리를 넘어서는 것, 괴로움을 겪더라도 뭔가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음공부를 하고 수행하는 목표가 괴로움을 없애고자 하는 것인데 혹시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는 것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우리가 사실이다, 진리다, 이런 말을 사용하긴 하지만 이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진리라고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실은 우리는 사실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아, 내가 잘못 알았구나’라고 자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것을 내가 잘못 알게 되면, 그로 인해서 괴로움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그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자각하고 그걸 놓아 버리면 괴로움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게 다예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러면 그 잘못된 것 말고 사실은 뭔가?’ 자꾸 이런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자꾸 어떤 신비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내가 길을 가다가 넘어졌다고 합시다. 그러면 첫째, 넘어졌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필요하면 바닥에서 일어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넘어진 상태로 ‘넘어지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안 그러면 ‘너 때문에 내가 넘어졌다!’ 이런 식으로 화를 냅니다. 그러니까 넘어졌을 때는 다만 ‘넘어졌구나’ 자각하고 일어나면 됩니다. 그것뿐입니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간다면, 다음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 우리가 약간 주의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넘어진 원인을 찾는 것입니다. 넘어진 상태로 바닥에 주저앉아서 원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일단 일어나서 다음을 위해, 다음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넘어졌던 것으로부터 우리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넘어진 상태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괴로움이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서 다음에 괴로움이 발생할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원인을 규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 대부분은 괴로운 상태에서 계속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기 때문에 괴로움이 유지되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내가 계단을 내려가다가 넘어졌어요. 다리 한쪽을 다쳤습니다. 이것은 좋은 일입니까? 나쁜 일입니까? 대부분 나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넘어져서 두 다리를 모두 다쳤다면 어떨까요? 그것보다는 나은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다리를 다친 상황은 나쁜 상황이 아니고, 넘어지기 이전과 비교해서는 나쁜 상황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두 다리가 다 부러진 상황과 비교하면 한쪽 다리만 부러진 상황은 오히려 좋은 상황이 됩니다.
이럴 때, 다리가 하나 부러진 상황은 좋은 상황도 아니고 나쁜 상황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냥 그 상황입니다. 이것을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철학적으로는 이것을 ‘공(空)’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내가 이것을 받아들일 때, 부러지지 않는 상황과 비교해서 받아들일 때는 나쁜 상황으로 받아들여지는 거죠. 그러니까 나쁜 일이다, 좋은 일이다, 하는 것은 객관적 상황에 있는 게 아니라 주관적 인식에 있습니다.
즉, ‘다리가 부러진 상황이 나쁜 상황이다.’하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냥 부러진 것이 사실이고, 부러진 상황인 겁니다. 그러니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일은 병원에 가서 치료받는 일이고, 육체적 통증이 있을 뿐이지 그것이 정신적인 괴로움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이렇게 주관적으로 비교하거나, 잘못 생각한 것을 중심으로 해서 상황이 나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미 일어난 그 상황을 바꾸는 데에 자꾸 신경을 씁니다.
우리가 깨어있는 사람이라면, 넘어져서 다쳤을 때는 우선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그다음에는 이 계단에서 또 넘어질 위험이 있는지, 내가 부주의했는지, 계단 자체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누군가가 한눈을 팔아서 넘어졌다면 앞으로 계단을 내려갈 때 주의를 해야 하고, 계단에 조명이 없어서 문제가 있다면 계단에 조명등을 설치해야 합니다.
지금 질문자가 ‘사실’이라는 것이 뭐냐고 질문했는데 ‘사실’이란 ‘잘못된 것이 벌어진 상태’가 아니라, ‘잘못 생각한 것이 사라진 상태’가 사실이라는 겁니다. 사실이라는 것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못 인식한 것이 사라진 상태, ‘아, 내가 잘못 인식했구나!’라고 아는 그 상태가 사실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깨어있어서 사실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잘못된 생각으로부터 깨어있어서 항상 사실에 임하고 있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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