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구로지회
나의 삶에 스며든 300배

양윤정 님은 “내어 놓을 게 별로 없어서 실망을 주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내내 잔잔하고 덤덤하게 자신의 삶을 풀어내었습니다. 일상에서 겪었던 삶에 대한 불안함과 두려움을 수행으로 정화하며 편안한 일상을 만들어 나가는 구로지회 양윤정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2023. 5 서원행자 수계식 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양윤정 님)
▲ 2023. 5 서원행자 수계식 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양윤정 님)

친구를 통해 찾아온 정토회와의 인연

저는 아이 셋의 엄마입니다. 결혼 후 10년 정도는 아이들이 어리고,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서 대부분 아이를 업고 직장에 다녔습니다. 돈을 더 벌겠다는 욕심도 있었고, 가정주부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육아와 직장생활은 육체적으로 힘들었습니다. 힘든 만큼 남편이 알아서 도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점점 커져 스트레스도 많았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개인사업을 하니 여유가 생겼습니다. 세상과는 담을 쌓고 바쁘게 지냈던 힘든 시절이 지나가고 저를 위한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취미로 배울 것을 탐색하던 중 친한 친구가 정토회 불교대학을 추천하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남편에게 불만이 많았고 잠에서 깨면 항상 마음 한편에 기분 안 좋은 불안감도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길이 있음을 알지 못했던 저에 반해, 친구는〈깨달음의 장1>과, 여러 번의 〈명상수련〉에 참여한 후 불교대학에 입학하여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2020년 경전대학 도반들과 실천 활동_뒷물수건 만들기 (맨 왼쪽 양윤정 님)
▲ 2020년 경전대학 도반들과 실천 활동_뒷물수건 만들기 (맨 왼쪽 양윤정 님)

2013년 서초법당 불교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수업 초기에는 사람들 앞에서 제 마음을 내어 놓는 것이 너무 힘들어 나누기는 안 하고 집에 가기도 했습니다. 전체 교육과정에 마음을 쏟아서 하기보다는 간신히 70%를 채워 졸업했습니다. 하지만 수업하며 제 마음에 불안도 많고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제가 옳다는 생각을 쌓아 두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나는 착하고 희생적인 사람이다'라는 상이 깨지면서 남편을 이해하는 마음이 생겼고, 갈등이 해소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지금까지 정토회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보살핌을 갈구했던 어린 시절

저는 제주도 시골 중산간 마을에서 4남 1녀의 외동딸로 태어났습니다. 유일한 딸이지만 귀하게 자라지는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저를 예뻐하고 아껴주신 것은 틀림없습니다. 어린 시절에 그린 어설픈 저의 그림이 액자에 넣어 아직도 벽에 걸려 있습니다. 제 학창 시절의 온갖 것들을 그대로 보관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섬이나 시골 분교 등 외지 근무를 많이 하셨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 함께한 기억이 많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셨고, 이후 교육장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도 안 나오셨습니다. 외삼촌도 대학교를 나왔지만, 어머니는 여자라서 학교를 못 다녔습니다. 한글도 아주 나중에 독학으로 익혔습니다. 여자라 차별 받고 남편의 배려없이 시어머니를 부양하고 자식 5명을 홀로 키우면서도 어머니는 마음의 결핍과 인생의 고됨을 누구에게도 티 안 내고 꿋꿋했습니다. 당신의 인생이 힘들었기 때문인지, 자식들을 살뜰히 챙기는 성향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챙겨주지도 않고 가르쳐주지도 않는 어머니에게 서운했습니다. 어머니가 항상 바쁘신 것을 보면서도 어머니의 보살핌을 갈구했습니다.

1971년 오빠들과 함께 (왼쪽 빨강옷 양윤정 님)
▲ 1971년 오빠들과 함께 (왼쪽 빨강옷 양윤정 님)

저는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어머니와 떨어져 도시에서 오빠들과 살았습니다. 어머니 대신 밥, 빨래 등 집안일 모두 제가 했습니다. 오빠들까지 챙기며 생활했습니다. ‘날 식모로 보낸 건가?’ ‘왜 어린 나에게 이런 것들을 하게 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를 도시로 보내 공부도 하면서 오빠들을 챙기면 좋겠다는 것이 어머니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 당시 그런 생활이 무섭고 싫었습니다.

그 당시 큰오빠는 사춘기였던지 늘 예민하고 화를 잘 냈습니다. 한번은 아침밥을 하다가 졸아서 냄비의 밥이 탔습니다. 졸던 저를 깨우는 큰오빠를 보자 깜짝 놀라 실신하듯 뜨거운 냄비 위로 쓰러져 화상을 입었습니다. 이후 오빠들과 잠시 떨어져 살다 제가 대학생이 되며 서울에서 다시 큰오빠와 같이 자취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무서웠던 오빠가 그때는 무섭지 않았습니다. 오빠들과 살며 살림했던 초등학생 어린 여자아이였던 저를 돌아보면 지금도 안쓰러운 마음입니다.

눈 녹듯 사라진 불안

불안할 원인이 없는데도 제 마음 기본 바탕에 무언가 불편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불안한 마음이 항상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아침 108배 정진을 하면서 언제부터인지 제 마음에 불편한 감정이 사라졌습니다. 무우 자르듯 단숨에 없어진 것이 아니라, 어느 날 살펴보니 불안함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외적 환경으로 부족함이 전혀 없이 자랐지만, 마음 밑바탕에 불안감이 항상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떨어져 자취 생활을 했던 성장 환경이 영향을 끼쳤겠지만, 태생적으로 수줍음이 많고 긴장하는 성향입니다.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강박도 있었습니다. 대학교 수업 중 발표를 할 때도 긴장한 것이 티가 나, “너 그렇게 새가슴이어서 어쩌냐?”고 친구가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는 스님께 편안하고 당당하게 말하고 질문하는 도반들이 부러웠습니다. 불교 공부를 하며 긴장하는 습이 형성된 인연을 이해했지만, 제 마음과 행동이 변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2023. 4 서초법당 봉축법요식_짜이부스운영 (아래 왼쪽 양윤정 님)
▲ 2023. 4 서초법당 봉축법요식_짜이부스운영 (아래 왼쪽 양윤정 님)

정토회에서 저의 첫 소임은 사무실 한편에 혼자 앉아 월간정토지 우편물 봉투지를 출력하는 일이었습니다. 혼자서 하는 일이라 도반과의 갈등이 생길 여지도 없는 다소 무미건조한 소임이었습니다.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구로지회로 옮겨 수행법회 진행 소임을 맡았습니다. 너무 떨렸지만 '연습 삼아 그냥 한다'는 수행 정신으로 했습니다. 진행 대본이 있으니 수월했습니다. 반복하여 연습하니 지금은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 긴장하던 것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40대, 50대가 넘어가는 나이에 훈련을 통한 이런 변화를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얻을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남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게 되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큰 고민은 남편과의 갈등이었습니다. 결혼 후에도 남편은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살았습니다. 저는 육아와 직장으로 늘 바빴기에 제가 요청하지 않아도 남편이 알아서 도와주기를 바랐습니다. 바라는 마음이 켜켜이 쌓여 남편에게 불만이 많았습니다. 어느날 사소한 일로 남편과 다투다 서로 물건을 집어 던졌습니다. 제가 친구집에 잠시 따로 나와 살 정도로 남편에게 실망을 많이 했습니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간 수치가 높아져서 의사가 입원을 권유할 만큼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알아서 잘 크고, 가정은 큰 우환 없이 평탄해 보였으나 남편과의 갈등은 저에게 매우 큰 스트레스였습니다.

2021. 8 나 홀로 줍깅 (남편이 찍어줌)
▲ 2021. 8 나 홀로 줍깅 (남편이 찍어줌)

남편은 칠 남매 중 셋째아들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시부모님은 남편에게 농사일이나 집안일을 전혀 안 시키고 키웠습니다. 귀한 아들이지만, 제 눈에는 가사일을 하나도 돕지 않는 남편이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내가 조선시대의 종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불만이 쌓였습니다. 표현도 못 했습니다. 남편의 말을 꼬아서 듣고 타박했습니다. 부부의 대화가 줄어들면서 집안 분위기가 항상 조용하고 많이 어두웠습니다.

저는 순하고 착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불같이 화를 내거나 짜증 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무표정으로 있으면 큰아들이 “엄마 화났어?”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미안합니다. 불교 공부를 하면서 마음을 표현하지 않고 요구를 직접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상대가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는 제가 훨씬 더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사람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남편을 많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는 순간 나가서 혼자 살겠다고 노래를 부르던 딸이 지금은 집이 편하고 좋다며 나가서 살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엄마가 많이 변했다며 정토회 활동을 꾸준히 하는 저를 지지하고 응원해 줍니다.

300배 정진의 시작

수행은 절에 있는 스님들이나 도 닦는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제가 수행을 하리라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평생 수행 정진하며 살 것이라 다짐합니다. 정일사2 정진을 계기로 300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108배에서 300배로 늘려서인지 고관절에 통증이 많았습니다. 몸에 문제가 생길까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도 한때였습니다. 300배가 힘들 때는 200배로 줄여서 했지만, 수행을 놓지는 않았습니다. 절을 더 많이 한다고 수행이 더 잘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정일사 400배 정진 기간이 끝나고 나서 “이 좋은 걸 왜 그만 해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들어 하루 300배 정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침에 공동정진 108배를 하고 퇴근 후 200배를 합니다. 저녁 회의가 있는 날에 늦은 밤 11시에 절을 합니다. 힘들지만 정진 후 잠자리에 누우면 몸이 노곤하면서 마음이 편안합니다. 아침 4시 30에 일어나니 수면 시간이 부족하지만 꿈 한 번 안 꾸고 굉장히 깊은 수면을 합니다.

2023. 4  정토사회문화회관 도량청소 봉사 후 (오른쪽 양윤정 님)
▲ 2023. 4 정토사회문화회관 도량청소 봉사 후 (오른쪽 양윤정 님)

안 할 이유가 없는 서원행자

정토회에서 10년간 활동을 하면서 소임을 마냥 즐겁고 행복하게 받지는 않았습니다. '한번 생각해 볼게요'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습니다. 소임의 책임 범위가 명확하면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지만, 일의 범위가 모호하면 관망하고 나서서 일을 먼저 도모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제 습이 상대 도반을 힘들고 불편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갈등이 생기면 바로 대화로 풀지 못해 상대 도반에게 미안했습니다. 불편하고 복잡한 마음으로 소임에 임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수행을 기본으로 하는 활동들이라 일을 마무리하면서는 감사하다고,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소임은 관계와 소통 방법에 대해 더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서원행자3가 되는 데 결정적인 계기는 없었습니다. 10년 가까이 여러 소임과 봉사를 하며 수행을 꾸준히 하고 있고 앞으로도 평생 할 것이기에 '서원행자로 이 길을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굳이 안 할 이유가 있냐는 생각이 저를 이 길로 이끌었습니다. 자기 수행만 잘하면 되는 발심행자4와는 달리 타인에게 좀 더 큰마음을 내는 것이 서원행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소임을 맡으면 좀 더 큰마음이 나는 경험을 해봤기에 서원행자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1.2.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함께 공부한 도반들이 만들어 준 선물
▲ 2021.2.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함께 공부한 도반들이 만들어 준 선물

현재진행형 수행

'정토행자의 하루' 인터뷰 요청을 승낙한 후 굉장히 많이 후회했습니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불쑥불쑥 예전의 업식이 올라오고 아직 어딘가에 도달하지 못했는데 내가 왜 인터뷰를 한다고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수행은 도달이 아닌 나아가는 과정이고 인터뷰도 수행의 한 과정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며 어머니에 대한 과거의 저의 마음도 돌아보고, 어린 시절의 저를 돌아보며 오히려 어머니께 굉장히 찡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준비를 마치며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인터뷰하는 내내 편안하게 얘기해주시는 양윤정 님을 보며 사람들 앞에서 얘기할 때 긴장했었다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수행을 꾸준히 해오던 어느 날 아침, 알아차려 보니 항상 마음속에 내재하여 있던 불안감이 줄어 있었다는 부분에서는 제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글_이예영 희망리포터 (청년특별지부)
편집_최미영 (국제지부 아태지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2. 정일사정토회를 일구는 사람들의 준말로 정토회 활동가들을 위한 수행 프로그램. 

  3. 서원행자 정토회 정회원은 발심행자, 서원행자, 결사행자로 구분됨. 수행, 봉사, 보시 활동을 기준으로 하며, 발심행자 3년 후 추천과 심사를 통해 서원행자 자격이 주어짐. 서원행자는 임원이 될 수 있는 피선거권을 가짐. 

  4. 발심행자 정토회 정회원은 발심행자, 서원행자, 결사행자로 구분됨. 수행, 봉사, 보시 활동을 기준으로 하며, 회원가입 신청서를 제출해야 함. 발심행자 3년 후 서원행자 자격이 갖추어짐.  

전체댓글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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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자

준 카드 보니 다시 생각이 떠오르고 감사합니다
당시 덕분에 노력과 열정으로 인해 편안하고 즐겁게 부처님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매우 훌륭한 모델입니다

2023-08-30 08:59:15

시냇물

아름다운 수행자 입니다

2023-08-25 07:22:28

고원향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저도 갈 수록 수행의 중요성을 알아갑니다

2023-08-24 09: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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