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특집] 대중법사님 이야기
제향법사님 두 번째 이야기
지렁이 엄마의 원조

제로 웨이스트의 원조, 지렁이 먹는 양에 맞춰 식사량을 계산하는 철저함, 아무리 값이 싸도 비닐을 사용하면 사지 않는 단호함. 환경 문제가 심각한 요즘 앞서서 새로운 삶의 모델을 만들고 직접 실천해온 제향 법사님. 법사님의 환경 실천을 통해 구도자의 자세를 볼 수 있었습니다. 흥미진진한 지렁이 엄마, 제향 법사님의 두 번째 이야기 함께 나누겠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난 충격

2004년 에코붓다 소식지에 나온 제향 법사님(왼쪽)
▲ 2004년 에코붓다 소식지에 나온 제향 법사님(왼쪽)

지금까지 제가 봐온 세상은 많이 먹고, 많이 입고, 많이 충족해야 행복한 삶인데 어떻게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고도 행복한 삶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삶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제가 사는 형편이나 모든 조건이 바깥세상 사람이 봤을 때 하나도 부러운 게 없었습니다. 인물이 잘난 것도 아니고, 학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수준이 있는 것도 아니고,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환경 법문을 들으니까 정말로 와서 닿았고, 제 삶에 적용이 되니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지렁이 엄마의 탄생

1999년 구 서초 법당 지을 때, 현장 식사 제공 활동을 시작으로 공양간 소임을 쭉 해왔습니다. 그러다 2002년 월드컵 즈음, 환경부 소임을 맡으면서 지렁이를 분양받았습니다. 처음 지렁이를 분양 받았을 때는 집에 들일 용기가 없어 밖에 두었습니다. 그러다 날이 추워져 할 수 없이 거실로 들였습니다. 남편은 이제 하다 하다 지렁이까지 들고 들어온다고 엄청나게 야단이었습니다. 밥상에서 지렁이 이야기를 하면, 남편은 듣기 싫어 죽겠다고 핀잔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던 남편이 지렁이 밥줄 걱정을 하는 저에게 그랬습니다. “지렁이가 그렇게 걱정되고 먹을 것이 없으면, 지렁이 엄마인 자기가 굶고라도 지렁이 밥을 줘야지.” 그때 남편에게 ‘지렁이 엄마’라는 소리를 처음 들었습니다.

2007년 내 마음의 푸른마당에서 주부 앵커로 데뷔한 제향 법사님(출처_에코붓다)
▲ 2007년 내 마음의 푸른마당에서 주부 앵커로 데뷔한 제향 법사님(출처_에코붓다)

여름이 되면 수박껍질을 잘라서 지렁이 화분에 넣어주고, 시간이 지나서 수박껍질이 모두 사라진 걸 남편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수박껍질은 한 3일이면 막 같은 것만 남고 싹 없어집니다. 남편도 신기했는지 그때부터 지렁이를 키우는 데에 정말로 협조적이었습니다. 여름에는 기온이 30도 이상 올라가 너무 더워져서 지렁이들 걱정을 하면 선풍기를 틀어 주기도 했습니다.

아파트값이 올랐다, 주식이 떨어졌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심리적으로 불안했을 텐데, 남편과는 늘 환경 이야기를 하다 보니 삶이 편안해졌습니다. 남편이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보고 말하지 않아도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다 자기 책임인 줄 아는데, 우리 가족끼리는 관심사가 경제적인 문제보다는 환경으로 쏠리니 심리적으로 편안하고 안정이 되어 참 좋았습니다.

앞서간 제로 웨이스트의 삶

대안 상품으로 방수 주머니를 만들었습니다. 요즘 시중에 나오는 예쁜 방수주머니에 비하면 많이 어설펐습니다. 어디서 원단 얻어서 머리에 이고, 매일같이 법당에서 재단을 하고, 또 미싱 있는 집을 찾아가서 종일 미싱을 돌리며 하루에 600개씩 만들었습니다. 집에 돌아올 때도 도저히 들 수 있는 무게가 아니라서 머리에 이고 왔습니다.

그렇게 만든 방수 주머니를 가지고 시장 앞에서 캠페인을 했습니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엿기름 짜면 좋겠네’ 라고 말하는 걸 듣고, 엿기름 짜는 걸로 사용할 것 같아 주머니에 당근, 오이 같은 걸 담아두고 “이렇게 쓰는 겁니다”라고 안내했습니다. 방수 주머니로 안 되는 것들은 용기를 들고 다니면서 쓰레기 없이 구매하자고 안내했습니다.

환경부 소임을 하면서 100여 가지의 실천과제를 뽑았는데, 하루에도 1~2개씩 계속 아이디어가 생각나는 것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환경 분야는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기에, 저는 매일 같이 활동을 하면서 연구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하면 될까? 저것은 어떻게 하면 될까?’

집에서 요리를 하다 보면 음식 쓰레기로 나오는 채소 꼭지도 다 잘라서 된장찌개 할 때 넣어보았습니다. 넣어보니 먹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습니다. 또 남은 음식은 부침개로 만들고, 새로운 메뉴로 만들어 보면서 이런 저런 연구를 계속 했습니다.

환경부 사람들이랑 쓰레기 없는 요리대회에 나가서 호박 탕수육을 만들었습니다. 재료를 손질하고 나오는 사과 껍질 같은 것을 갈아서 반죽을 해서 튀겼습니다. 그 튀김을 탕수육으로 같이 내놓았습니다. 쓰레기 딱 하나 나온 것이 호박의 단단한 꼭지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상금 50만원을 탔습니다. 그 돈을 법당에 보시했습니다.

2008년 빈그릇 토론회 참석한 제향 법사님 (출처_ 에코붓다)
▲ 2008년 빈그릇 토론회 참석한 제향 법사님 (출처_ 에코붓다)

잘 쓰이며 살아난 나

2004년쯤 쓰레기 직매립이 시작되고 사회적으로도 환경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생겼습니다. 환경부 활동을 하며 경험이 쌓인 저에게 가끔 강의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강의료가 한 시간에 10만원 정도였습니다. 전라남도 같이 먼 곳으로 강의를 나가면 비행기표와 숙박비까지 합해서 50만원씩 강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큰돈이었습니다. 강의해서 받은 돈을 보시하니 자존감과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사실 그전에는 자존감도 없고 스스로 쓸모 없다고 느끼곤 했는데, ‘아! 내가 쓸모있는 사람이네!’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넘어서는 기쁨

저는 기도하면서 몸도 뛰어넘고, 마음도 뛰어넘어 보았습니다. 그 힘이 저의 내공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 환경 활동을 하며 삶을 더 변화 시켜 나갔습니다. 한번은 빈 통을 들고 큰 농수산물 센터에 갔습니다. 마침 싸게 파는 생태가 있어 통에 넣어 달라고 했더니 번거로워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싼 생태를 자주 접할 수 없어 한 번 사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날 사지 않고 빈 통을 그대로 들고 돌아왔습니다.

2014년 전국정회원 대회에서 도반들과 함께(왼쪽에서 두 번째)
▲ 2014년 전국정회원 대회에서 도반들과 함께(왼쪽에서 두 번째)

토분에 키우는 지렁이는 1주일에 약 250g 정도를 먹습니다. 집에서 요리하고 나오는 쓰레기양을 그 250g에 맞추어서 살아보는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먹고 남기는 것과 지렁이가 먹을 수 있는 양을 맞추어 나가며 한 톨도 남지 않게 해보았습니다. 음식뿐 아니라 일반 쓰레기도 안 나오도록 방수주머니를 만들고, 빈 통을 들고 다니고, 또 화장실 쓰레기가 나오지 않게 뒷물도 하는 등 다양한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이런 삶의 태도가 제 삶에 매우 큰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먹고 사는 것이 어려워진다 해도 걱정할 것이 없는 삶이 되었습니다. 간소한 삶으로 전환하고 나니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먹고, 입고, 자는 것에 걸리지 않으니 사는 것이 훨씬 가벼웠습니다. 너무 헐떡거리며 살지 말라는 법문을 들어도, 실제로 경험해 보지 않으면 헐떡거리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한 번 실천해보고 제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어서 108배를 해 보는데 100일을 다 채우고 나면 자부심이 생기고 뿌듯하듯이 환경 활동을 하든, 수행을 하든, 모두 같습니다.

업식을 거스르는 단호함

한번은 허리가 많이 아파서 한의원에 갔습니다. 한의원에서 저보다 연세가 훨씬 많은 노보살님들을 한 십 년 만에 만났습니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제 앞에 와서 하는 말이 “아우, 보살님 미안해요” 했습니다. 제가 “왜 미안한데요?” 했더니, “내가 일회용 컵을 썼어.” 이러는 겁니다.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커피를 마시다가 저를 보더니, 미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게 왜 나한테 미안한 일이에요.” 하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때 속으로 '내가 다른 사람에게는 별난 인간이었나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마음을 먹었다면 별난 인간으로 보이는 것에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 눈치 보면서 전적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습관을 바꾸는 것이 너무너무 어렵습니다. 꾸준히 하면 누군가 따라오는 사람이 생깁니다. 나보고 무슨 소리를 하면 당연히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실천하다 보면 지독하다든지, 별나든지 한데, 그래도 감수하고 가는 게 업식을 바꾸는데 최고로 좋은 길입니다.


대중법사님 특집기사 발행일정표
▲ 대중법사님 특집기사 발행일정표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인터뷰 진행_서지영
인터뷰 지원(영상, 녹화)_김혜경
글, 편집_서지영, 이삼월, 김난희
도움주신이_이정선, 백금록, 박우경, 김승희, 박정임, 권영숙, 전은정

전체댓글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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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지

일주일에 지렁이가 먹는 250gㅠㅠ
아득히 먼 이야기 같지만 순간 깨달아지는 한가지
나도 오늘부터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겠구나 .
감사합니다

2022-04-17 16:50:50

하심

지렁이에 반응하신 남편 분 이야기에 빵~터지고
업식들 바꾸는 지름길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22-04-17 14:52:11

박윤정

감동적입니다.감사합니다 🙏

2022-04-12 08: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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