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서산법당
먼 길을 돌아 이룬 소원

정토회 대부분 행사에서 만날 수 있는 도반이 있습니다. 바로 서산법당 회계담당 박주영 님입니다. 소임이 주어지면 "네" 하고 임하는 박주영 님. 이번 인터뷰도 법당 정리 일인 줄 알고 무조건 “네” 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기사 인터뷰였다며 난감해하는 박주영 님의 수행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불교대학 특강 수련 중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 불교대학 특강 수련 중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내 평생소원 ‘닦을 수(修)’

저는 불안하고 소심한 아이였습니다. 작은 일에도 초조해하고, 무슨 일만 있으면 미리 걱정했습니다. 대체 왜 그런지는 알지도 못한 채, 소심한 자신이 싫어 바꾸고 싶었습니다. 중학생 때 성당을 다니기 시작해 대학생 때까지 다녔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세례를 받을 때 소원을 종이에 써서 소원함에 넣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원하는 게 이뤄진다면 정말 중요한 것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닦을 수(修)’를 썼습니다. 닦는다는 것은 배우는 게 아니라 체득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게 이뤄진다면 불안하고 소심한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마칠 때쯤, 사람의 성격과 변화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심리학과를 전공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공부한 이과로 진학하라고 했습니다. 학교 출석은 이과로 하고 혼자 문과 시험 준비를 따로 하여 심리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끝없이 학문에 매진하다

대학에서 강의를 듣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무의식적 대처방식인 방어기제에 대한 수업을 듣던 중 불현듯 나의 어릴 적 기억이 섬광처럼 떠올랐습니다. 7살 즈음 낮잠을 자며 우연히 듣게 된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의 이야기. 나를 낳아준 생모가 따로 있다는 사실.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잠이 들었고 그 이후로 그 수업시간까지 완전히 잊고 살았습니다. 너무나 큰 충격을 감당하기 힘들어 일부러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수업 중 다시 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 마음속에서 무엇인가 쿵 하고 내려 앉는 느낌이었습니다. 정말로 이런 일이 있구나. 그래서 내가 그토록 불안했구나...

책에서 본 내용이 내 삶과 직접 이어지는 경험을 하고는 심리학이라는 학문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심리학을 공부하면 내 불안의 문제를 많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대학원에 진학하여 인간변화에 대한 발달심리를 공부했으나 최신 영어논문 검색해서 번역하는 세월만 보내면서 공부에 회의가 커졌습니다. 그렇게 석사를 마칠 때 즈음 IMF로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졌고 집안이 쫄딱 망하게 되었습니다. 온 집안에 빨간딱지가 붙어 오갈 곳조차 없어진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공부하느라 나이만 먹은 나는 만만한 게 결혼이라고 결혼이나 해볼까 했지만 그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기본 생계유지를 위한 돈을 벌기 위해 방문 학습지 교사를 시작했고 일주일에 20개 이상 집안에 신발 벗고 들어 가보면서, 그 집의 신발장, 엄마의 표정, 아이의 상태가 연결되는 현장경험을 쌓았던 것 같습니다. 3년 정도 지나도 상담수련 공부에 대한 열망은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비록 돈을 적게 벌더라도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는 생각으로 상담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낮에는 시간제 인턴으로 상담을 하며 돈을 벌고, 부족한 돈은 저녁에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채웠습니다. 상담관련 일자리가 있으면 지역에 상관없이 지원해서 일하면서 여러 상담실습 비용과 시간을 낼 수 있도록 생활하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이후에는 사회복지학 박사까지 취득하고 대기업의 전문상담사 일을 맡기도 했습니다.

통장 잔고가 30만원이던 시절, 그 돈을 탈탈 털어 집단 상담에 다녀올 정도로 상담공부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습니다. 그 덕에 청소년상담사, 청소년지도사, 전문상담사,사회복지사 등 여러 자격을 취득했고, 경력이 쌓이면서 관련기관 센터장을 맡아 총괄하는 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심리, 상담 공부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꾸준히 하여 파고 경력이 쌓였지만 전혀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이 남아있었습니다.

서산법당 2기 환경학교(제일 오른쪽 박주영 님)
▲ 서산법당 2기 환경학교(제일 오른쪽 박주영 님)

다시 움츠러들게 한 뇌전증 발작

40대 후반 즈음 갑자기 뇌전증 발작이 시작되었습니다. 뇌전증 발작뿐만 아니라, 자궁근종을 6년 이상 방치하여 하혈이 심해 빈혈과 자궁 적출까지 해야 되었습니다. 경제적 압박과 하혈이 심했던 2018년과 2019년에는 발작이 여러 번 일어나서 사무실, 출장지, 법당에서도 발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직원들이 나를 전염병 환자처럼 따돌리는 모습에 충격이었고, 고용주에 해당하는 담당자로부터 제 상태가 직원들의 안위에 해가 되는 부적절한 상태이며 히스테리 성격장애 아니냐 등 이유로, 아직 1년 정도 남은 계약기간 이전에 자진 퇴사하라는 압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내 몸 상태가 창피해서 도망가고 싶었지만, 당장 매달 수입이 필요했기에 무턱대고 퇴사할 수도 없었습니다. 직업 환경의학과 전문의의 업무적합성평가서가 있으면 노동법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알게 되어 준비하러 다니면서도, 성실한 모습으로 남에게 피해 안 주고 능력 있는 자립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으려고 했던 20년간의 모든 노력이 날아갔다는 허망함에 참담했습니다.

불교대학 졸업식에서
▲ 불교대학 졸업식에서

내가 찾던 바로 그것, 불법과 도반

건강에 적신호가 보이기 시작한 2018년. 불안하고 움츠러있던 여름,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가을 불교대학을 시작하니 다녀 보겠냐는 서산법당 총무의 전화였습니다. 1년 전 불교대학에 입학해 몇 주 다니다 그만두었는데, 새 학기에 다시 시작해보라고 연락한 것입니다. 당시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다닌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인연이 닿은 정토회에서 불법을 공부하면서, 상담 공부로 채워지지 않던 것들이 채워졌습니다. 특히, 스님의 즉문즉설은 정확하게 제 삶의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상담 수련에서 5년 걸릴 내용을 5분 만에 풀어내는 것은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공부했나?’ 좀 허무했습니다.

운동을 10분 이상 해본 적 없던 제가, 불교대학 끝 무렵 실천과제로 7일간 새벽 5시에 일어나 108배를 했습니다. 끝마친 다음 날 입재식하던 법당에서 발작하여 도반들에게 폐를 끼쳤습니다. 환자가 아니라 죄인이 된 느낌에 힘들었고, 이제 더는 떳떳한 곳이 없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정토회 도반들의 태도는 달랐습니다. 누구나 아플 수 있다, 전문 진료는 받고 있나 확인하는 정도로 담담히 대했습니다. 덕분에 극단으로 사로잡힌 상태에서 벗어나 차분히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9-7차 백일기도에 입재하고는 매일 수행정진 하면서 몸으로 체득하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몸으로 하는 것에는 끈기가 없고, 단번에 확 이해되지 않으면 지루해하고 쉽게 포기했습니다.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 몸과 억울한 상황 덕분에 그 턱을 넘어서며 매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평생 이루고 싶었던 ‘닦을 수’의 의미와 가장 비슷하구나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혼자 갈 수밖에 없지만, 나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주변에 도움을 주지도 받지도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불교대학 입학 축하공연(첫째 줄 제일 왼쪽 박주영 님)
▲ 불교대학 입학 축하공연(첫째 줄 제일 왼쪽 박주영 님)

100일 감사 기도의 공덕

뇌전증 발작으로 인한 직장 동료들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법사님과 상담했습니다. 대놓고 저를 따돌리는 부하 직원에게, 매일 기도 전에 각각 감사의 3배를 하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을 원망하는 마음이 가득하고, 억울해서 하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법사님과 약속했으니 날짜라도 채운다고 감사 정진을 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조금씩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 전문가랍시고 상사로 있으면서 곁을 주지도 않으니, 참 밥맛없이 느껴졌겠구나. 100일 정진이 끝날 때는 그들이 그럴만했다고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껏 내가 그들을 무시했다는 걸 깨달으니 정말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똑같은 그들의 눈짓과 손짓을 더는 의식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가끔은 순간적으로 감정에 휘말릴 때도 있지만, 얼른 알아차리고 평정심으로 돌아옵니다.

마음이 편하니 건강도 좋습니다. 얼른 끊기를 바라며 억지로 먹던 약도 고마운 마음으로 꼬박꼬박 챙겨 먹습니다. 시원치 않은 몸을 인정하니 작년에는 발작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발작이 언제 또 일어날지 불안해서 법륜스님께 질문했습니다. “해탈하려면 몸에서도 벗어나야 하는데, 아프면 아픈 데로 인정하되 그것을 핑계 삼아서는 안 된다, 미리 어떡할지 걱정하며 너무 조심하는 것도 몸에 매여 있는 것이다.”라고 짚어주었습니다.

지금은 뇌전증 발작을 일으키는 몸을 인정합니다. 건강 문제로 직장을 그만두라면 그만둔다고 가볍게 생각합니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불법 만나 편해졌습니다. 그래서 법당 계단 청소, 회계 담당, 온라인 경전반 스텝, 행복학교 진행 등을 합니다. 토요일에는 5시 새벽기도, 7시 행복학교 진행, 8시 운영자 회의 등 쉴 틈 없이 바쁘지만, 사는 맛이 느껴져서 좋습니다. 발작할까 걱정스러워 운전도 못 하고, 집단생활도 힘듭니다. 그런데 온라인으로 바뀌어 봉사나 수련을 집에서 하니 무척 좋습니다.

온라인 가을경전반 스텝으로(아래줄 제일 왼쪽 박주영 님)
▲ 온라인 가을경전반 스텝으로(아래줄 제일 왼쪽 박주영 님)


밤늦은 시각 세 시간이 넘게 인터뷰를 했습니다. 피곤한 기색 없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주인공. 불법 만나 진정 행복한 삶을 사는 듯이 느껴졌습니다. 앞으로 온라인 정토회에서 어떻게 잘 쓰일지 기대가 무척 큽니다.

글_허지혜 희망리포터(천안정토회 서산법당)
편집_도경화(달서정토회 구미법당)

전체댓글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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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숙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지회 선배도반님이셔서 온ㆍ오프로 몇 번 뵐 수 있었습니다. 오래도 아니고 자주도 아니였습니다만 박주영님 생각하면 해맑은 표정의 웃는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그러면서도 차분함과 단단함이 느껴집니다.
정토회에서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

2023-05-28 18:21:34

김미숙

감사합니다
저도 함께 정진수행하고 싶습니다
서산 정토회 위치와 연락처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2022-12-28 08:41:10

김정성

글을 통해 수행을 배워갑니다. 사소한 것에 걱정하는 내가 챙피하게 느껴지고. 사연의 주인공이신 박주영님께 감사한마음입니다.

2021-06-24 10:4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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