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기장법당
뗏목을 버리고 당당하게 서다

겉으로는 몸도 마음도 여리게 보이지만 수행과 봉사는 강단 있게 하는 기장법당 브레인 김지현 님. 새로 바뀌는 정토회 지원팀장이자 온라인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도반들의 어려움을 챙기는 모둠장으로서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맹활약하고, 현재는 법당 마무리에 함께 애쓰는 그녀의 삶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문경수련원에서 (왼쪽 첫 번째)
▲ 문경수련원에서 (왼쪽 첫 번째)

상처받은 어린 시절

노름에 빠진 아버지가 월급날에도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어머니는 어린 저를 앞세우고 노름방에 아버지를 데리러 갔습니다. 스트레스가 많았던 엄마는 사소한 일로도 맏이인 저를 때렸습니다. 어느 날, 무슨 일이었는지 아랫도리까지 벗기고 저를 때리는 엄마를 삼촌이 와서 말렸는데 어린 마음에도 그 수치스러운 기억은 한동안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그런 엄마는 제가 6학년이던 어느 일요일, 뒷골이 당긴다고 하시더니 쓰러져 돌아가셨습니다. 날마다 엄마의 폭력에 시달린 터라 엄마의 죽음이 내심 슬프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1년이 채 안 돼서 새엄마와 재혼을 했습니다. 새엄마는 우리 남매를 잘 보살펴주었지만, 아버지와 자주 싸웠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저는 일찍 독립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취직하고 돈을 벌었습니다.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그 당시 내 차를 몰고 다닐 만큼 돈도 벌어 경제적으로도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남편과의 불행한 결혼 생활

IMF 즈음 결혼 준비를 하면서 배우자 선택 기준을 정했습니다. 몸 건강할 것, 시댁은 될 수 있으면 멀리 있을 것, 그리고 급격한 변화가 와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데 어려움이 없을 기술직을 가질 것,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춘 남편을 만났습니다. ‘이 사람이다’ 싶어서 3개월도 안 돼서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하고 보니 조건은 그야말로 조건일 뿐이었고, 같이 살아가는 사람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거리모금 봉사(왼쪽 두 번째)
▲ 거리모금 봉사(왼쪽 두 번째)

가정에는 소홀했지만, 엄마가 아프면 집안일 하던 아버지를 보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임신해서 힘들 때도, 아파서 누워있어도 집안일은 손도 까딱 않고 밥 차려주기를 바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남편을 보며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아빠 없는 자식을 키우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상담을 받으면서 남편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자란 환경과 문화가 달랐고 서로를 알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서로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출근하는 남편에게 뽀뽀도 하고 손을 잡고 자기도 하면서 뒤늦게 남편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남편에 대한 원망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런 허전함은 똑똑하고 공부 잘하던 아들에게 집중되었습니다.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하고 적극적인 관리를 하게 되면서 사춘기인 큰아들은 점점 말이 없어지고 화를 내는 것으로 반항을 시작했습니다. 더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욕심을 낸 것이 역효과를 낸 것입니다. 다행히 고등학교 올라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잔소리하지 않고 바라보니 둘 다 편안합니다.

세상 속에서 길을 잃고

그러던 중 집을 사면서 경제적으로 쪼들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투자한 사업이 손해를 보기도 하고, 아버지 건강도 나빠지는 상황이 한꺼번에 닥쳤습니다. 힘든 제게 남편은 무관심했고 경제적인 문제로 관계가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칼로 남편을 찌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속 분노가 쌓여갔습니다.

그즈음 남편 권유로 유아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고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하던 것과는 많이 다른 현실에 실망했습니다. 학부모한테는 친절하면서 정작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나 교사에게는 그렇지 못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원장에게 문제를 제기하니 그만두라고 해서 ‘아이들의 보모 역할을 하러 왔는데 이런 일로 1년도 안 되어 바뀌는 것은 안 된다’고 하며 1년을 버텼습니다. 그 1년 동안 온갖 잡일을 다 하고 스트레스를 견디다 보니 후유증으로 자궁 내막 수술을 했습니다. 그 후로 저의 자유와 가치관을 돈과 바꾸는 게 싫어서 돈 받고 하는 일은 안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특강수련을 마치고(왼쪽 첫 번째)
▲ 특강수련을 마치고(왼쪽 첫 번째)

그 후로도 남편과의 갈등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파킨슨병을 앓는 아버지 간호, 갱년기 증상으로 인한 신체 변화 등이 겹치면서 하루하루가 지옥 같이 느껴졌습니다. 심장도 쿵쿵 시도 때도 없이 뛰고 대상포진과 두통이 심하게 와서 밤에 자려고 누울 때마다 내일 살아서 일어날 수 있을까 걱정을 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운전하다가 진땀을 흘리기도 하고, 땅에 처박힐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기까지 했습니다. 공황장애였습니다. 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요가원을 갔습니다. 거기서 요가 선생님에게 정토회 이야기를 들었지만 인연이 아니었는지 다른 절 불교대학에 다녔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듣고 ‘나도 부처가 될 수 있겠구나’ 생각한 그 무렵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정토회와 인연

마음으로는 ‘부처가 될 수 있겠다’고 했지만 어떻게 복을 지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요가원에서 정토 불교대학을 권하던 도반이 수행자로서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도 그 도반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삶을 후회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후회 없이 살고 싶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행사(오른쪽 첫 번째)
▲ 부처님 오신 날 행사(오른쪽 첫 번째)

처음 정토회에 와서는 순순히 마음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간, 저녁 가리지 않고 정토회 활동에 다 참석하면서 나름대로 점검했습니다. 그런데 활동가들의 표정이 항상 밝았습니다. 봉사에 자부심이 가지고 모든 일에 주인으로 참여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기장법당의 역사와 그분들의 생각을 들을수록 저도 같이 이 소중한 것을 지켜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경전반을 다니면서 집전을 시작으로 사시예불, 새벽예불도 하면서 소수의 봉사자가 많은 일을 하는 것을 덜어주고 싶어 주어진 봉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정회원이 되면서 한꺼번에 몰아닥친 봉사와 교육이 과부하가 되어서 경전 공부에 집중하지도 못하고 수행도 잘 안 되었습니다. 선배 도반이 열심히 한다고 칭찬하는 말조차 듣기 싫었습니다. 어느 날 식사 준비를 하면서 애써 만든 반찬이 맛이 없어서 뒤집어 엎어버린 순간, 결혼 전 지인이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지현이는 다혈질이라 소박맞기 좋다, 조심해라.”
그때 듣기 싫었던 그 말이 지금의 저에게 딱 맞는 말인 것을 알게 되면서 처음으로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다시는 예전의 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를 버리고 내 것을 버리고

공부하던 것을 놓지 않고 미뤄둔 <월간정토>를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스님의 ‘뗏목 이야기’를 읽는 순간 ‘나는 아직도 다 쓴 뗏목을 버리지 않고 옛날 업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구나. 내 업식을 버리려면 수행, 명상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경전 공부부터 다시 시작하면서 수행도 열심히 했습니다. 또 선배 도반님들을 만나면 누구든 붙잡고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럴 때 도반님들은 귀찮다 하지 않고 제 얘기에 귀 기울여 들어주고 다독여 주었습니다.

불교대학 수업을 마치고 도반들과 함께(오른쪽 첫 번째)
▲ 불교대학 수업을 마치고 도반들과 함께(오른쪽 첫 번째)

제 결혼식 무렵 돈 문제로 멀어졌던 새엄마와의 관계를 선배 도반과 얘기하면서 지금의 나보다 더 어렸던 그때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 아버지와 다른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고 바라기만 하고 붙잡고 있던 것을 내려놓으니 가볍고 자유로워졌습니다.

‘나를 버리자’를 기도문으로 삼고 수행하며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으니 그냥 하게 됩니다. 온라인으로 바뀐 환경에 노트북으로 수행법회, 교육 진행 등 어려워하는 도반들이 있으면 기꺼이 달려가 도와주면서도 제가 더 행복합니다. 앞으로 바쁘고 어려워서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경전 공부를 더 하고 싶습니다. 경전을 생활에 접목해 수행자로서 즐겁게 수행, 봉사하고 싶습니다. 불교는 저를 키워주었고 불교대학, 경전반 도반들은 힘들 때 다독이며 함께 이 길 걷고 있고, 선배 도반들이 손 내밀어 이끌어 주어 진짜 저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모자이크 붓다의 한 조각이 되어 함께 하는 위대한 일에 동참하는 게 곧 나의 행복이라는 김지현 님. 호탕한 웃음으로 만나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힘이 이런 어려움을 뛰어넘고, 수행으로 자신을 단단히 다진 덕분이란 것을 인터뷰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마스크 너머로 전해오는 눈썹달 웃음이 편안해 보입니다.

온라인 불교대학 모집중
▲ 온라인 불교대학 모집중

글_조영희 희망리포터(해운대정토회 기장법당)
편집_허란희(용인정토회 용인법당)

전체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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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정

지현님의 이야기를 오늘에서야 찾아보고
읽는 내내 마음이 많이 아프고
한편으로는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하며 살아오셨구나 느껴져서 뭉클했습니다.
보름달처럼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기까지 얼마나 수행을 많이 하셨을까 존경스런 마음이 듭니다.
고집불통인 저를 불교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해주신 은혜 잊지않고 돌고 돌아서라도 갚을 수 있도록 잘 살아보겠습니다.^^

2023-08-18 16:04:40

이의수

수행담 감명받았습니다^^

2021-02-21 22:32:41

자재왕

수행담 잘 읽었습니다. 아버지로써 엄마로써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이면서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됩니다. 나 하나 바르게 사는 게 천지간에 진리라고 하신 스님의 가르침이 되새겨지는 아침입니다. 지현님, 응원합니다.

2021-02-20 07: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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