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중랑법당
장자(莊子)로 세상을 보고, 동학으로 숨쉬고, 금강경으로 익어가다

매일매일 아침 기도가 끝나면 동네 골목 이곳저곳을 청소하는 중랑법당의 이선영 님. 십수 년째 하다 보니 중랑구 지역신문에도 그 아름다운 모습이 실려 중랑구민의 귀감이 되고 있는데요. 시원시원한 대답, 항상 긍정적이고 밝은 이선영 님의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삶의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이웃 종교인과의 활동으로 알게 된 법륜스님

저는 모든 언행에서 성실과 정직이 뚝뚝 흘러내리는 부모님 아래서 평범하게 성장했습니다. 아버지는 북한 함남 단천에서 천도교(동학) 청우당 당원이었습니다. 월남 후 어머니를 만나 우리 네 남매를 낳아 기르면서 돌아가실 때까지 천도교 교역자로 활동하였습니다.

모두의 귀감이 되는 이선영 님
▲ 모두의 귀감이 되는 이선영 님

아버지는 저희에게 천도교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초등학교 때는 동네 예배당에서 하는 여름 성경학교에 다녔습니다. 제가 다닌 중학교, 고등학교는 기독교 학교여서 성경도 공부하고 매주 채플도 보았는데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학창시절에 절에 다니던 친한 친구가 내게 금박 제목이 쓰여 있는 두꺼운 ‘불교성전’ 한 권을 주었습니다. 부처님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너무 좋아서 오랫동안 그 책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불교를 접하게 된 것 같습니다.

30년 전, 아이들이 어릴 때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뜨셨습니다. 맏딸인 나를 특별히 아끼고 사랑해주신 아버지에게 효도하는 마음으로, 그때부터 천도교(동학)에 관심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공부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천도교 중앙총부 교회에서 일을 시작했고 교육, 교화, 행정 등의 업무를 하면서 이웃 종교인들과 대화 활동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명함이 여기저기 뿌려져서,지인으로부터《스님의 주례사》중 감명깊은 부분을 발췌하여 보낸 이메일도 받았으리라 생각됩니다.

법륜스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년 전 즈음입니다. 내용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결혼생활에서 부부간의 친밀한 관계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그때 부부사이보다 두 아이에게 온 정성을 들이고 있던 때라 '참 특이한 스님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스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가 곧 잊었습니다.

2009년 여름, 한 모임에서 정토회 회원으로서 동북아 역사기행을 다녀온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과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내용을 담은 《선생님의 마음》이라는 아주 작은 책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수없이 읽었습니다.

수행으로서 불교를 다시 보다

2013년에 퇴직하고 난 후 정토불교대학 학생모집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중랑법당이 처음 문을 연 2014년 봄이었습니다. ‘그래 이제 불교를 체계적으로 공부해 보는 거야.’ 하고 정토불교대학 저녁반에 바로 입학했습니다. 입학법문 때 들었던 수행 보시 봉사, 수업과 나누기, 말로만 듣던 발우공양 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불교대학 입학에 이어 천일결사 8-2차 백일기도에 입재하였습니다. 백일기도 수행문에 ‘내가 옳다는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내가 옳다는 한 생각을 내려놓을 때...’를 읽으면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기복신앙으로 생각했던 불교에서 수행으로서 불교로 나의 관점이 바뀌어 갔습니다. 청법가 중 ‘옛 인연을 이어서 새 인연을 맺도록...’ 구절을 부를 때는 목이 메었습니다. 수업 후에는 ‘저의 영성이 더욱 촘촘해집니다.’라고 나누었습니다. 최고령으로 입학했지만 불교대학 홍보활동이나 JTS 모금활동 등에 시간이 나는 대로 참여하였습니다.

군법당 봉사와 세월호 특별법 제정 서명은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입니다. 군법당에서 스님의 법문을 들려주고, 물 한방울 없는 부대 한 켠에서 떡볶이 80인분을 뚝딱 만들어서 간식으로 나눠줬습니다. 지금까지도 전설로 내려오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꿀봉사’였습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고, 잘 먹어준 장병들에게 고마웠습니다.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일을 여럿이 함께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군법당에서 봉사활동 중인 이선영 님(가운데)
▲ 군법당에서 봉사활동 중인 이선영 님(가운데)

경전반에 와서는 “나는 경전반에 들어오려고 불교대학을 다닌 것 같다.”라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금강경의 무주상보시, 사구게 등은 충격이었습니다. 금강경 원문을 베껴 쓰면서 당시 교재의 글자 크기와 페이지 수 그대로 원문과 해석문을 워드프로세서로 입력 편집했습니다. 예습과 복습이 저절로 되었습니다. 여행을 가면 가까운 절에 들러서 금강경을 구해서 가져왔습니다. <깨달음의 장>에 다녀와서는 마음이 아주 가벼웠습니다. 2년 동안 모든 일을 정토회 일정에 맞추면서 열심히 생활하다보니 불교대학을 정근으로, 경전반을 개근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심장이식 수술과 봉사활동

졸업식을 일주일 앞두고 확장성 심근증으로 기약 없는 병원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입원해 있으니 도반들이 졸업장과 개근상장을 병실로 갖다주었습니다. 그해 4월에는 아산병원으로 옮겨 심장이식 대기자가 되었습니다. 대기기간이 평균 일 년 정도라는데 저는 21일만에 이식수술을 받았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이식수혜자가 되어 남의 덕분으로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수술 후 퇴원하고 몸이 회복되자, 가을부터 수요법회에 나가 영상봉사를 꾸준히 하면서 도반들과 즐겁고 감사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즉문즉설 중에 ‘아 법륜스님이 《스님의 주례사》를 쓰신 그때 그 스님이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법문을 들으면서 ‘아! 내가 이제까지 그리 잘못 살아오지는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끼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백용성 대종사 출가 성지에서, 이선영 님
▲ 백용성 대종사 출가 성지에서, 이선영 님

법당에서 다른 소임을 맡아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였지만 건강과 나이를 핑계로 여러 번 사양했습니다. “그냥 법회 나오고 기도나 하게 해줘요.”라며 버티었습니다. 젊은 도반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기 좋았고 앞으로 많은 일을 하려면 젊고 건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도 후배들의 입학 때나 졸업 갈무리 때 율동은 빠지지 않고 함께 했습니다.

2017년에는 가을 경전반에 일 년 동안 영상봉사 하면서 경전반 수업을 복습할 수 있었습니다. 30대에는 ‘장자(莊子)’로 세상을 보았고 40~50대에는 수운 최제우 님의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용담유사(龍潭諭詞)’로 숨 쉬고 살았습니다. 앞으로는 금강경(金剛經)과 친해지고 싶습니다.

나는 종교를 초월한 사람

제 마음이 그래서 그런지 이번 가을 온라인 경전반의 진행자를 맡게 되었습니다. 계획이 없었는데 불교대학 담당을 준비하고 담당실습 중에 느닷없이 경전반을 맡으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금강경과 반야심경과 육조단경과 법성게 그리고 신심명까지 복습할 수 있으니 너무 좋았습니다. 저에게 또 금강경과 친해질 기회가 온 것입니다. 온라인 수업 준비하느라 도반들에게 이것저것 물어서 배워가며 따라갔습니다. 학생들의 열정이 대단합니다. 온라인의 장점을 살리면서 먼저 공부한 입장에서 그리고 한편으로는 같이 배우는 마음으로 가볍게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사태가 오래 갈 것 같아서 면 마스크를 만들었습니다. 일회용마스크 구입에 애를 쓰는 것이 안타까웠고 환경을 생각해서라도 빨아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면 마스크 200장을 만들어서 형제들, 법당 도반들, 그리고 이웃에게 나눠 드렸습니다. 이 상황이 오래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경전반 특강수련에서 (왼쪽 두 번째)
▲ 경전반 특강수련에서 (왼쪽 두 번째)

매주 일요일에는 남편과 천도교 교당에 나갑니다. 90세 친정어머니가 독실하시고 동생들도 참석합니다. 거기서는 제가 젊은 편이라 이런저런 할 일이 많습니다. 남편은 내가 정토회 ‘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개종하는 거 아니야?” 라고 가끔 웃으며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대답합니다. “나는 종교를 초월한 사람이야” 라고.
결혼생활 40년째. 늑대 같은 남편이 ‘한울’이고 ‘부처’입니다. 두 아이도 자신의 길을 잘 가고 있습니다.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이선영 님 열정은 참 대단하십니다. 이선영 님은 중학교 때 읽은 한 구절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인생에 어려운 일 세 가지는 모욕을 참는 일, 질투를 삼가는 일, 남의 비밀을 지키는 일이다.' 그 말이 그냥 좋았다고 합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이 말이 좌우명처럼 되었다 합니다. 주위에 선한 영향을 주시는 이선영 님. 고맙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이선영 님의 미담이 담긴 중랑구 소식지
▲ 이선영 님의 미담이 담긴 중랑구 소식지

글_김복희 희망리포터(노원정토회 중랑법당)
편집_허란희(용인정토회 용인법당)

전체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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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거화박순천

너무 아름답게 살아가시는 중랑법당 이선영님~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함께 공부할 수 있어서 행복하네요. 언제 어디서나 수처작주하시는 모습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2020-11-04 14:47:10

김태효

감사합니다.. 감동입니다~ ^^*

2020-10-30 08:51:00

정세은

종교를초월한수행자시네요.미소가아름다울수밖에없겠네요~
나눠주셔서고맙습니다.

2020-10-29 09: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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