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양천법당
울보 보살, 이렇게 살아도 괜찮겠구나!

화장기 없는 맑은 피부와 온화한 미소, 차분한 목소리로 함께하는 주변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조현정 님. 2013년 8월 정토회와 인연을 맺고, 현재는 양천 정토회 대의원 역할을 하며 하루하루 수행자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그 행복한 삶을 나누어 볼까요?

화목해 보이는 큰 집 vs 불행한 우리 집

제가 어려서부터 부모님은 장로, 권사라는 직위를 받을 정도로 교회를 열심히 다닌 독실한 기독교 집안입니다. 특히 어머니는 열악한 개척교회를 여러 번 거치며 신앙 활동을 할 정도로 열정적이었습니다. 생활력도 강하고, 어떤 일을 하면 굉장히 몰입하는 성격입니다. 반면 아버지는 술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제 기억에는 술로 인해 흐트러진 아버지의 모습이 많이 남았습니다. 어머니는 저녁이 되면 ‘오늘은 어떤 모습으로 집에 들어올지?’ 늘 걱정하며 불안해했습니다. 어린 저에게도 어머니의 그런 불안이 전해져 저녁이 되면 긴장한 채 아버지를 기다렸습니다.

2013년. 큰집에 제사가 있어 일가친척이 모두 모였습니다. 제사를 준비하고 손님을 치르려면 일도 많고 힘들 텐데 큰집은 오히려 화목해 보였습니다. 그런 큰집 식구를 보며 개종을 하게 되면 불교가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큰집 사촌 언니에게 “언니 집은 불교를 믿어서 행복한 건가?”라고 물었더니 “너희는 부모님 두 분 다 교회를 다니니 불교로 개종하기는 어려울 것 같네. 그러면 종교와 관계없는 ‘정토회’에 다녀봐. 그리고 <깨달음의 장>이라는 데 한 번 다녀와 봐, 사람이 달라져”라고 권유했습니다.

9-10차 입재식 부스 운영(왼쪽이 조현정 님)
▲ 9-10차 입재식 부스 운영(왼쪽이 조현정 님)

맞벌이하며 여러 가지로 지친 나는 그 말을 듣고 바로 ‘정토회’를 검색했습니다. 집 근처에 있는 가장 가까운 법당으로 연락을 했는데 그게 “양천법당”이었습니다. 제 발로 찾아갔지만 그래도 기독교 집안인데 불교대학을 다녀보라고 권하는 도반의 말이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매주 한 번 수행법회를 다니기로 했습니다. 이후 수행법회에서 인연을 맺은 분과 매일 새벽 수행을 같이했습니다. 법문을 듣고 나누기를 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그때 얻은 별명이 ‘울보 보살“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흘린 눈물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귀한 씨앗이었습니다.

모르면 묻고, 틀리면 다시 하는 2020 양천 정토회 대의원

정회원이 되니 법사님들과 만남이 잦아졌습니다. 직접 법문을 듣고 나누기를 하니 제가 얼마나 무지한지 명확해지고 매사가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2014년에는 전법 소임을, 2015~2016년에는 저녁책임자, 2016~2018년에는 저녁책임 팀장, 2018년에는 서울, 제주지부 사회활동 팀장 소임을 맡았습니다.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드니 소임을 맡는 것에 저항하기보다는, 제가 소임을 하면서 느낀 뿌듯함, 고마움을 사람들한테 되돌려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사회활동을 기획하고 추진해야 한다는 현실에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법사님께 “행사를 해야 하는데 사람이 안모여요. 어떡해요?”라고 하소연했습니다. 되돌아온 것은 위로나 격려가 아닌 따끔한 질책이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문서만 보내 놓고 기다리기만 하면 사람이 모이나요? 전화를 하든, 찾아가든, 다른 방법을 써야 할 것 아니에요!” 순간 주눅이 들었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 처음 주관하는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행사를 무사히 치르고 나니 그때 법사님 말이 다시 생각나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내 방식대로 고집하는 나를 깨우쳐 주셨구나!‘ 지금은 그 법사님과 다른 누구보다도 더 믿고 의논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여러 소임을 하며 저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가장 눈에 띄게 바뀐 것은 바로 직장에서 인간관계입니다.

서울 제주지부 사무국 송년회(뒷줄 오른쪽 끝 조현정 님)
▲ 서울 제주지부 사무국 송년회(뒷줄 오른쪽 끝 조현정 님)

남편! 가장 나중이지만 가장 진실하게...

개인수행, 법당봉사, 지부팀장 등 여러 가지를 하면서 제 업식을 하나둘 보았습니다. 수행을 통해 가장 먼저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고마움으로 변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가장 먼저 변했고, 그다음이 아버지였습니다. 사이가 좋든 싫든 지금까지 함께 지내는 것만으로도 고마웠습니다. 그러나 남편에게는 좀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불쑥불쑥 원망, 억울함, 미안함이 올라옵니다. 남편은 제주도 출신으로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가정형편이 너무나 어려웠지만, 어려서부터 워낙 총명하고 재주도 많아, 주변인의 도움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그 후로 남편을 따라서 동생들도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남편이 시댁의 희망이었습니다. 사회생활 초기에 남편은 승승장구했습니다. 회사에서 일도 잘하고 인간관계도 잘 맺어, 더 좋은 조건으로 여러 번 이직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남편의 인간관계 맺는 방식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습니다. 바로 술을 매개로 했기 때문입니다. 어려서 아버지의 술 마시고 휘청거리던 모습이 남편에게 다시 보였습니다. 남편이 술을 마시고 올 때마다 경멸과 멸시, 무시의 눈빛으로 대했습니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저의 불안은 커지고 다툼도 잦아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그 마음이 전달되어 힘든 성장 과정을 겪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아이들 교육은 잘 해보겠다고 좋은 학군으로 이사까지 했습니다. 불안한 가정환경, 낯선 곳으로 이사! 점점 더 아이들은 제 계획과 다르게 크고 있었습니다. 급기야 딸은 고등학생 때 심리 상담을 받았고, 아들은 컴퓨터 게임에 빠져 오랫동안 힘든 생활을 했습니다. 그야말로 하루하루를 사는 게 아니라 버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수행하면서, 현실을 직시하고 모든 문제의 원인을 안으로 살피니, 서서히 빛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토록 밉고 원망스러웠던 남편의 무거운 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로 아이들도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필요성을 못 느껴 거의 학업을 포기하다시피 했던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는 스스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에코붓다 적정기술부스(오른쪽에서 네 번째 조현정 님)
▲ 에코붓다 적정기술부스(오른쪽에서 네 번째 조현정 님)

두 아이 모두 올해 대학 진학을 목표로 나름의 계획과 목표를 세워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모든 게 못마땅하고 부정적이었겠지만, 지금은 이런 아이들이 기특하고 진심으로 응원할 정도로 제 자신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인정할 수 없었던 남편이, 요리도 잘하고, 손재주도 좋고, 정리도 잘하는 고마운 사람이라는 것이 이제야 서서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참 먼 길을 돌아서 왔지만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온 길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더 많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길에 들어섰으니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이대로 쭉 가겠습니다.

나는 행복을 전하는 수행자입니다.
▲ 나는 행복을 전하는 수행자입니다.


제대로 된 길에 들어섰으니 느리더라도 다만 꾸준히 가겠다는 말에 제 마음도 편안해집니다. 꾸준하게 함께 수행하는 도반이 있어 행복하고 든든합니다.

글_이경혜(양천정토회 양천법당)
편집_도경화(구미법당)

전체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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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랭이

반갑습니다~^^

2020-07-05 17:58:26

하헌미

큰 물결이 잔물결 호수가 되는 과정이 감동적입니다. 늘 요청하면 조용히 다가와서 도와주시는 도반님 덕분에 편안히 갈 수 있습니다. 울보보살님이 제게는 배우고 싶은 보살님입니다.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엮어주신 이경혜도반님 감사합니다.

2020-06-22 08:03:58

김소희

오늘 보살님의 사례로 저도 다시한번 제 가족에게 감사함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

2020-06-21 21:5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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