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4.9. 백일법문 52일째, 수행법회, 신규 법사 수련
“대선을 앞둔 지금, 원포인트 헌법 개정을 해야 하는 이유”

안녕하세요.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52일째 날입니다. 전체 백일법문 기간이 105일인데, 오늘이 딱 절반이 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수행법회를 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완연한 봄입니다. 서울 도심 곳곳에 진달래, 라일락, 목련이 활짝 피었습니다.

3층 설법전에 180여 명의 대중이 자리한 가운데 오전 10시 15분이 되자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낭독하며 수행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은 화상 회의 방에 입장하여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대중은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지난주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습니다. 스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 선고 직후 열린 즉문즉설에서, '이런 불행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으려면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하며,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위한 헌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우원식 국회의장이 4개월 간의 탄핵 찬반 혼란을 수습하고 미래 지향적 대안으로써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토회 회원 중 일부는 현 시국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비상계엄의 불법성, 탄핵 찬반으로 양분된 국론, 헌법 개정의 필요성 등, 정토회 회원들이 질문한 내용들에 대해 하나씩 답변을 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그중 헌법 개정에 대해서는 왜 지금 헌법 개정을 이야기하는지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제가 지난 법회 때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했더니, 어떤 분이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대통령이 잘못해서 생긴 문제는 대통령을 바꾸면 될 일이지, 왜 헌법 개정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문제를 제기를 했습니다. 왜 하필 지금, 이 시점에 갑자기 헌법 개정을 이야기하느냐는 것이죠.

지난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 물음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저는 어제오늘 갑자기 개헌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10년 전부터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이기 위한 개헌의 필요성을 꾸준히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러니 개헌 문제는 갑자기 제기한 일이 아닙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 반복되는 불행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대통령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국정 과제의 대부분을 대통령과 최측근 참모진이 결정합니다. 이로 인해 나라가 계속해서 분열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이 탄핵되거나, 감옥에 가거나, 측근이 구속되는 일이 반복돼 왔습니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살펴보면 지금까지 무려 8명의 대통령이 불행한 결말을 맞았습니다. 그렇다면 다음번에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 사람도 감옥에 갈 확률이 높다고 할 수 있죠. 우리나라는 긴 독재 정권 시기를 거친 후 민주화 시대에 들어오면서 노태우와 김영삼 대통령,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 이명박과 박근혜 대통령, 이렇게 진보와 보수가 각각 두 번씩 번갈아가며 집권 여당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다가 근래엔 문재인과 윤석열 대통령, 이렇게 각 한 차례씩 집권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제 임기를 다 마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니 다음 대통령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그래서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든 이런 불행을 좀 막자는 것입니다. 전 대통령 여덟 명이 겪은 불행의 역사가 대통령 개인에게도 문제가 있었지만 꼭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만약 이 여덟 번이 모두 대통령 개인의 문제였다면 그들을 뽑은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는 셈입니다. 물론 대통령 개인의 자질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반복되는 불행이 제도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막강한 권한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몰려 있는 이런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어떤 대통령이 나오든 동일한 비극을 겪게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으로 이런 불행을 막으려면 제도를 개선해야 합니다. 즉 대통령 한 사람에게 권한이 너무 집중되어 있어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지요.

개헌 논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헌법 개정에 관한 제안은 이미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집권 후반기에 나라가 이렇게 분열되어서는 안 되니 헌법을 개정함으로써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된 권한을 나누고, 협치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자는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노 전 대통령의 임기 막바지이다 보니,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했던 야당 후보가 반대해서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그 후로 대통령 선거 때마다 후보들이 '당선 후 임기 중에 개헌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막상 당선되면 국가 개혁이 우선이라며 흐지부지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집권 중반을 넘어서서 헌법 개정을 하겠다고 하면 다시 다음 정권을 이을 사람이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총 다섯 번의 정권이 바뀌도록 개헌의 책임을 떠넘겨 왔습니다. 이런 역사를 보면 누가 개헌을 하겠다고 주장하고, 누가 개헌을 미루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바로 선거에 유리한 사람은 개헌을 안 하겠다고 하고, 선거에 불리한 사람은 개헌을 하자고 합니다. 어느 당인지와 상관없이 이렇게 계속 도돌이표를 찍으며 지금에 이른 것입니다.

1987년 개헌은 한국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민주화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때는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자는 국민의 의지로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직접 선거라는 선출 방식만 바뀌었을 뿐, '대통령에게 부여된 제왕적 권한' 측면에서는 독재 시절의 대통령제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의 잘못된 권한 행사로 현직 대통령이 탄핵되는 국가적 불행이 반복되고 있는 거예요.

대통령 권력의 분산과 내각 중심의 책임 정치 구현

정권을 잡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권한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개헌을 주장하던 사람도 당선에 가까워지면 말을 바꾸게 됩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권력을 남용하다가 파면으로 끝을 맺었어요. 그래서 대통령 권한의 일부를 조정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이 국정의 모든 결정권을 갖고 있어요. 지금 대한민국은 총리나 장관이 거의 허수아비에 불과합니다. 총리가 일부 행정의 실질적인 책임을 갖게 하고, 장관들에게도 권한이 주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큰 문제가 생기면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총리와 장관들이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났을 때 국민들이 장관이나 총리에게 책임지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허수아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대통령에게만 모든 책임을 지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임기 5년을 제대로 채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권한의 일부를 내각 쪽으로 좀 옮겨야 합니다. 국방, 외교, 안보, 통일 등 외치(外治)는 대통령이 직접 관장하고, 교육, 경제, 보건, 노동 등 내치(內治)는 총리 중심으로 관장하도록 하자는 겁니다. 잘못되면 우선 장관이 책임지고, 크게 잘못되면 총리가 책임을 지는 겁니다. 지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대통령제를 채택한 나라는 한국과 미국, 멕시코, 칠레, 콜롬비아, 튀르키예 6개국뿐입니다.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32개국은 권력 분산형 체제인 의원 내각제, 이원 집정부제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긴 독재 정권을 지나오는 과정에서 대통령을 내 손으로 직접 뽑고자 하는 염원이 국민들 마음에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각제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대통령 직선제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도의 국가 규모라면 내각 책임제가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다당제에 기반한 협치로 풀어야 국정 운영이 안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국민 의식을 고려하면 대통령제에서 내각 책임제로 바꾸자고 했을 때 국민의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대통령 권한의 일부를 내각으로 옮기자!’는 정도로 제안을 하는 겁니다. 이건 내각 책임제를 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물론 지금도 국무 위원을 총리가 제청하도록 되어 있어요. 그런데 총리에게는 실질적인 권한이 없고, 대통령이 권한 행사를 하면 법적 절차만 밟는 정도입니다. 이번 비상계엄 선포에서 보셨듯이 국무 회의를 거쳐야 하는데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내각이 좀 더 책임지도록 하자는 제안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은 내각이라는 말 때문에 제가 내각 책임제를 제안한다고 오해하는 것 같아요. 제가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국무 위원인 장관이 좀 더 책임지고 일하도록 권한을 부여하자는 겁니다.

대통령은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 원수입니다. 국가 원수가 탄핵이 되면 국가 간 정상 회담을 못 하는 등 국익에 손해가 막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원수를 보호할 필요가 있고, 그 방법으로 장관에게 권한을 주고 문제가 발생하면 장관이 책임지게 하자는 것입니다. 즉 대통령이 가진 권한의 일부를 내각으로 이전하고, 또 중앙 권력의 일부를 지방 자치로 이전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방 자치 단체장 역시 지방의 왕처럼 군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광역 단체장이 가진 권한의 일부를 다시 기초 자치 단체장에게 분산해야 하고, 기초 자치 단체장은 다시 주민들에게 권한을 이관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동네에 쓰레기장을 만든다면 군수가 바로 결정하지 않고 주민 투표를 거쳐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민주주의를 좀 더 국민들의 생활 속으로 밀착시켜 나가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보수, 진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국회 의장을 지낸 모든 사람이 동의하고, 국무총리를 지낸 모든 사람이 동의하고, 정치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동의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권력에 가까운 사람들뿐입니다. 이것은 특정한 사람에게 이익이나 손해를 주기 위한 제안이 아닙니다. 승자독식의 정치 구조를 종식하기 위한 최소한의 밑바탕을 만들기 위해 그에 필요한 시스템을 조금 바꾸자는 제안입니다.

대선을 앞둔 지금, 원포인트 헌법 개정을 해야 하는 이유

그렇다면 대선을 앞둔 지금이 왜 헌법 개정을 할 적기일까요? 과거의 경험으로 봤을 때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헌법 개정을 안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거 전에 '대통령 권한 분산과 연성 헌법(軟性憲法)'으로 개편하는 것만이라도 먼저 하자는 겁니다. 연성 헌법이란, 헌법 개정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장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두 단계에 걸쳐서 헌법 개정을 해야 합니다. 선거 전에는 대통령의 권한 분산과 연성 헌법만 가지고 원포인트 개정을 하는 겁니다. 나머지 산적한 과제는 선거 후에 하면 됩니다.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제도적 개선이나 빈부 격차에 따른 국민의 기본권 보장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개헌은 선거 후에 차차 해 나가면 됩니다. 이렇게 최소한이라도 개정하고 넘어가야 반복되는 불행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저는 권력을 쥔 자들의 잘못과 과도한 권한 집중으로 인해 전 국민이 대가를 치러야 하는 불행이 더 이상은 반복되지 않았으면 해서 이런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개헌하면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사람에게 불리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당이기 때문에 국회에서 총리를 선출하면 당연히 더불어민주당 출신이 총리가 됩니다. 그렇다면 대통령 권한을 100으로 봤을 때, 권한의 20 정도를 내각으로 옮긴다고 해서 다른 당으로 권한이 넘어가는 게 아닙니다. 결국 자신들의 권한 안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렇게 권력을 조금 내놓으면 그동안 야당 대표가 독선적이라고 욕하던 사람들도 생각이 좀 긍정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손해 날 게 없습니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소수당인 국민의힘은 손해가 날까요? 현재로서는 국민의힘이 이번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는 게 국민의힘에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있을 국회 의원 선거에서 이기면, 권력의 일부를 잡을 수도 있으니 헌법 개정에 찬성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까지는 야당이 찬성하면 여당이 반대하고, 여당이 찬성하면 야당이 반대했는데, 지금은 개헌을 했을 때 불리한 쪽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이야말로 개헌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겁니다.

정파의 이해를 떠나 오직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위한 길

부처님은 ‘하나가 살기 위해 왜 다른 하나가 죽어야 하는가?’, ‘다 같이 사는 길은 없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출가해서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모두가 함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가 이익을 얻고, 다른 하나가 손해 보는 행동을 자꾸 하려고 하죠. 헌법 개정은 둘 다 이익을 볼 수 있는 방법입니다. 여당도 이익을 얻고 야당도 이익을 얻습니다. 국민도 이익을 얻고, 국가도 안정을 되찾는 길입니다. 선거 후에 승복할 가능성도 더 높습니다. 절대 권력일수록 승복하지 않고 저항이 거세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개헌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첫째, 개헌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국회 의원들과 헌법학자들을 만나서 많은 대화를 나눠본 결과 대통령 권력을 분산하자는 내용만 바꾸는 헌법 개정은 하루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둘째, 지금은 내란 동조 세력을 뿌리 뽑는 게 먼저라고 주장합니다. 내란 동조 세력을 뿌리 뽑는 것과 헌법 개정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국회에서 헌법 개정 특위를 구성해서 국민 투표에 부치고, 통과되면 시행하고, 부결되면 안 하면 됩니다. 만약 국회에서 여야 합의가 안 되어도 안 하면 됩니다. 그러니 대통령 후보가 안 하겠다고 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란 동조 세력을 척결하는 일은 그것대로 계속해 나가면 돼요. 그런데 내란 동조 세력 척결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닙니다.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하고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해도 곧바로 대통령직을 그만두도록 못하는 것처럼, 내란 동조 세력도 마찬가지예요. 형사 재판에서 3심까지 거쳐야 판결이 나오고 척결이 되는 겁니다. 정말로 내란 동조 세력을 척결하는 길은 중도층의 표심을 잡아서 당선 가능성을 높이는 겁니다. 당선이 되고 나서도 법적 절차를 따라야지, 마음대로 척결할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란 동조 세력 척결과 헌법 개정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지금 헌법 개정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앞으로의 불행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내란 동조 세력을 척결하려면 경찰이 조사하든, 검찰이 조사하든, 법원이 판결을 내리든,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아직은 대통령 권한 대행부터 모든 국무 위원들이 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이 포진해 있는데, 과연 지금 척결이 될까요? 내란 동조 세력의 척결이란, 선거에서 이긴 후에나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척결이라고 표현하지만, 상대편 입장에서는 보복으로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상대편을 포용하고 통합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명백하게 징계해야 할 사람은 앞으로 사법의 테두리 안에서 처리를 해나가면 되는 일입니다.

절대 선이나 절대 악이라고 할 만한 가치는 없습니다. 모든 가치는 상대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가능한 보편성을 추구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도 가능한 보편성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웃을 때 누군가 우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의 법을 배우는 수행자들이 악을 쓰면서 상대를 척결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가 아닙니다. 물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자기주장을 할 수 있지만 가능한 균형 잡힌 관점과 생각을 가져야 덜 괴롭습니다. 아무리 법을 어긴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한다면 그를 포용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은 사람을 100명이나 죽인 앙굴리 말라도 교화를 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부처님 수준은 아니지만, 어리석음 탓에 살인을 저지른 사람에게도 살 길을 열어주는 게 부처님의 법이에요.

우리는 항상 바른 길을 가야 하지만, 또한 뒤처진 사람을 포용하면서 함께 갈 줄도 알아야 합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보호하는 게 목동입니다. 죄를 범한 사람들을 두둔하는 게 아니라, 균형 잡힌 생각을 좀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자기 생각과 안 맞으면 종북 빨갱이라고 하거나 토착 왜구라고 단정하는 것은, 수행자라면 지양해야 하는 일입니다. 수행자는 보편타당한 입장에서 균형 잡힌 관점으로 세상을 봐야 합니다. 그래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시국에 대한 대중의 의문에 답하다 보니 벌써 법회를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음 주 수행법회 시간에 또 대화를 나누기로 하고 12시가 다 되어 수행법회를 마쳤습니다.

3층 설법전을 나온 스님은 지하 공양간으로 이동하여 대중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오후 2시부터는 최근 법사 수계를 받고 소임을 하고 있는 신규 법사단과 수련을 했습니다. 7차에 법사 수계를 받은 10명과 8차에 법사 수계를 받은 19명을 포함하여 총 29명의 법사님이 정토사회문화회관 3층 설법전에 자리했습니다.

신규 법사단은 어제와 오늘 1박 2일 동안 ‘온라인 시대의 활동가 양성’과 ‘개인의 수행 과제’를 주제로 그룹 토론과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시간은 수련 과정에서 해소하지 못한 의문을 가지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법사님들은 지부나 지회에서 경험한 사례를 가지고 다양한 질문들을 했습니다. 스님은 각각의 질문에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가며 정성껏 대답했습니다.

  • 법사 소임을 하면서 원칙과 융통성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 정토회가 세운 목표에 비해 지회장과 모둠장이 덜 움직이는 것 같을 때, 법사는 어디까지 개입하고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지요?

  • 다문화 센터를 개설할 때 개설 경비와 운영 경비를 어떻게 충당해야 하나요?

  • 기도 후 회원들이 마음 나누기를 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대부분 자신의 발원만 적고 마음이 어떻다는 내용은 아예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지침이 필요할까요?

  • 으뜸절 관리를 하다 보니 체력적으로 많이 힘듭니다. 으뜸절 운영에 필요한 인력을 어떻게 조달해야 할까요?

  • 지회마다 법사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입니다. 향후 법사 양성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 장례 의식을 한글화하자는 대중의 요구가 있습니다. 막상 시도해 보려면 너무 방대하고, 세심한 작업이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안 납니다.

법사님 대부분이 리더십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잔소리’가 되는 시점과 ‘법문’이 되는 지점의 미묘한 차이를 생생하게 이야기하면서 중도가 무엇인지 강조했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법사가 되고 나니 인사말과 마무리 말을 해야 할 때가 많아서 고민이라며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대중이 인사말을 해 달라고 할 때마다 매번 고민이 됩니다

“법사가 되고 나서 대중들을 만날 때마다 인사말과 마무리 말을 해 달라는 요청을 지속적으로 받습니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요청을 받다 보니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매번 고민입니다.”

“인사말을 해 달라고 하면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렇게 한두 마디만 해도 됩니다. 마칠 때 마무리 말을 해 달라고 하면 ‘여러분도 좋았습니까? 저도 좋았습니다. 잘 가세요.’ 하고 말하면 됩니다. 할 말이 없는데 말을 만들어서 하려고 하니까 어렵게 느껴지는 거예요. 할 말이 없으면, 만났을 때는 ‘어서 오세요.’ 하면 되고, 헤어질 때는 ‘안녕히 가세요.’ 하면 됩니다. 이렇게 짧게 인사하면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말을 짧게 한다고 해서 법사가 왜 저리 말주변이 없냐고 문제 제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도리어 끝날 때는 말을 짧게 할수록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말을 자꾸 만들어서 길게 하지 말고 간단하게 인사하는 편이 좋아요. 혹시 마음에 감동이 있어서 나누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그냥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다음에 봅시다!’ 이런 말만 하면 됩니다.

즉문즉설을 해보면 병문안 갔을 때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할 말이 없으면 손만 꼭 잡고 있다가 와도 돼요. 지난번에 저도 병원에 입원해 계신 지인을 만나 뵈었는데 별 얘기를 안 했어요. 여러분은 자꾸 무언가 말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는 것 같아요. 그냥 손이나 꼭 잡고 있거나, 지난 일 중에 기억나는 일이 있으면 ‘우리 예전에 거기 갔었지?’ 하고 얘기하거나, 옛날에 고생했던 얘기를 하면 좋아합니다. 말을 많이 하려고 자꾸 애쓰지 마세요. 생각이 나는 말만 하면 되고, 생각이 안 나면 간단한 인사말만 하면 됩니다. 꼭 할 말이 있으면 조금 덧붙이면 되고요.”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법사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중심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신규 법사단 수련을 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는 저녁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3층 설법전에는 100여 명의 대중이 자리하고, 정토회 회원들은 온라인 화상 회의 방에 접속한 가운데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먼저 질문을 받았습니다. 두 명이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어린이 통학 차량을 운전하고 있는데, 무례하게 운전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난다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어린이집 차량을 운전하고 있는데, 무례한 운전자들에게 화가 납니다

“저는 일상에서 어느 정도 마음 알아차림이 되어서인지 화나 짜증이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린이집 통학 차량인 노란색 차를 운행할 때는 알아차릴 새도 없이 이미 화를 내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자괴감이 드는데,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노란색 차를 운행하는데 왜 짜증이 날까요?”

“차에 타고 있는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해서 다른 차나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저를 배려해야 한다는 기대 심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맞긴 한 데 어쨌든 다른 운전자들이 볼 때는 그냥 차로 보이는 거예요.”

“노란색 차는 어린이들이 승하차할 때 다른 차들이 주의를 기울이도록 깜빡이를 켜 놓습니다. 그런데 깜빡이가 켜진 것을 뻔히 보고도 뒤에서 빨리 비키라고 빵빵대거나, 심지어 아이들이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오토바이가 그 앞을 휙 하고 지나갑니다. 그럴 때마다 너무 짜증이 납니다.”

“그 운전자들은 자기 나름대로 바쁜 일이 있어서 그런 거예요. 아이들이 내리고 있는 차 앞을 휙 하고 지나가는 오토바이 운전자는 그만한 아이를 자식으로 둔 부모가 아닐 겁니다. 아마도 총각이거나 자식이 있더라도 다 커서 성인이 되었을 거예요. 자기 문제로 다가오지 않으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것을 어떡하겠어요? 질문자는 노란색 차에 어린이들이 안 타고 있을 때도 도로 위에서 노란색 차라고 과시하고 다닐 때는 없어요?”

“제가 승용차를 운전할 때는 노란색 차들을 잘 배려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노란색 차를 운전할 때 승용차 운전자들에게 바라는 마음이 큰 것 같습니다.”

“질문자는 노란색 차를 운행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노란색 차를 한 번도 운행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런 생각 자체를 못 합니다. 그래서 ‘저 사람은 몰라서 그렇구나!’ 하고 이해하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그 승용차나 오토바이 운전자가 잘했다는 뜻이 아니에요. 몰라서 그런 걸 어떻게 하겠어요?”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요즘 아이 안 낳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겁니다. 아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까 노란색 통학 차량에 신경을 안 쓰면서 운전하는 게 사회적 분위기가 되어가고 있는 거예요. 미국은 구급차나 통학 차량이 지나가면서 ‘빵빵’하고 경적을 울리면 모든 차가 한쪽으로 비켜섭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아직도 대부분이 제 갈 길 바쁜 분위기입니다. 바로 옆에서 경적을 울려 대면 할 수 없이 약간 비켜 주는 시늉이나 하는 정도지 한쪽으로 비켜서는 경우는 잘 없어요. 문화적인 문제라고 봐야 합니다. 혹시 질문자는 미국에서 살다 왔나요? 미국에서 살다 온 사람들은 미국에 비해 한국에서는 통학 차량을 배려하는 문화가 없다고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지금 우리나라는 구급차나 통학 차량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나 교육이 아직 안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마치 인도 사람들이 오랫동안 교통 법규 없이 운전하고 있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요즘 인도에서도 신호등과 차선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호등이 있어도 신호를 지키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실정이에요. 지금까지 없던 차선이 갑자기 생기니까 차선을 지키는 사람도 별로 없어요. 인도에서는 차를 타고 가다가 하차하겠다고 하면 양방향에 상관없이 내려야 하는 쪽으로 휙 가서 내려 주니까 엄청 편리하기는 해요. 그런데 델리 같은 대도시는 양방향 가운데를 막아 놓아서 차선을 좀 더 잘 지키는 편입니다.

이것은 문화라고 봐야 합니다. 아주 엄격하게 규제해서 벌금을 많이 부과하든지, 운전자 교육을 하든지, 이런 노력들을 통해 문화로 정착이 되면 질문자가 말한 대로 배려하는 문화가 생길 거예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구급차나 통학 차량을 배려하는 문화가 자리 잡지 않아서 생긴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질문자가 화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심리적인 원인을 분석하자면 ‘내가 노란색 차니까 너는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집착되어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내가 화를 낸다고 해서 다른 운전자들이 그 사실을 알까요? 화내는 나만 손해이고, 내 성질만 안 좋아지는 일입니다.

노란색 차를 배려하지 않는 운전자들을 계몽하고 싶거든 계몽하세요. 어린이들이 승하차할 때 배려 없이 휙 지나가는 운전자가 있으면 호루라기를 획 불든가, 마이크로 ‘그러면 안 됩니다.’, ‘여기 어린이가 타고 있어요!’ 이런 식으로 말을 해야 상대가 알아듣죠. 아무것도 안 하고 마음속으로 화만 내는데 무슨 수로 알아듣겠어요? 그래서 질문자가 노란색 차를 운전하는 것에 집착되어 있다고 말하는 거예요. 질문자의 말이 맞기는 한데 내가 화나는 이유는 집착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오늘도 운전하면서 ‘저 사람이 나를 들이받은 것도 아니고 그냥 빵빵 댈 뿐이다!’ 하고 생각하는데도 화를 내려놓기가 쉽지 않습니다.”

“질문자가 노란 차를 운전한다는 생각에 너무 집착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배려받고 보호받아야 하잖아요.”

“내가 짜증을 낸다고 아이들이 배려받고 보호받는 것이 아니에요. 국회에 전화도 해 보고, 편지도 보내 보고, 인터넷에 올려도 보고, 이런 식으로 국민을 계몽하기 위한 활동을 많이 해야 아이들이 보호받을 수가 있는 겁니다. 차 안에서 나 혼자 화낸다고 아무도 계몽되지 않습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노란색 차를 배려하지 않는 운전자를 만날 때마다 현장에서 ‘노란 차 안 보여요?’ 이렇게 고함이라도 쳐야 고쳐집니다. 둘째, 이런 상황을 인터넷 게시판에 계속 올려야 운전자들의 의식 개선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만 혼자 화내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질문자가 화나는 이유는 노란색 차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기 문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화를 마치고 스님은 오전 법회처럼 대통령 탄핵과 국론 분열, 헌법 개정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나갔습니다. 수행자는 현재의 시국을 어떤 관점을 가지고 바라봐야 하는지 중심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53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 3층 설법전에서 경전 강의 10강을 하고, 오후에는 '지역리더대학원' 입학식에 참석하여 강의를 한 후, 저녁에는 지하 대강당에서 불교사회대학 10강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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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정치를

개헌은 당연히 이뤄져야만하지만 법이 지켜지지 않고
민주주의가 지켜지지 않은 폭력을 지지 하는 세력과 개헌하자고 한다면 그 사람도 범죄자이지 합의에 대상이 아닙니다
법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폭력을 지지한다는 사람이 문제지요
그것이 민주주의는 아닙니다 법륜스님 10년전부터 항상 지켜봐왔지만정치적 목소리는 자중하셨으면 좋겠습니다즉문즉설이평화를지양하게됩니다

2025-04-13 11:17:17

불교가정치를

통일신라부터 고려가 망한것도 불교가 정치에 개입해서지요
민주주의는 다양한 사람이 참여해야지요
허나 민주주의는 법위에 있을까요?
법밑에 있을까요?
법치주의는 민주주의가 바탕이 되어야만 합니다
사법부가 제대로 칼을 휘두르지 않을때 뭐하셨습니까?
국민들이 몸으로 탱크를 막을때도.. 일부 극우 폭도들이 법원에서 폭동을 일으켜도 사법부가 제대로된 역할을 했습니까?

2025-04-13 11:12:23

모두가사는 길

스님의 원포인트 개헌논의에 대해 동의합니다. 남은 죽고, 내가 살면 나중에 어떻게든 돌려 받아 결국 서로 불행해 지는 이치에 공감합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남도 살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실제 어떤 것인지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5-04-13 10: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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