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4.8. 백일법문 51일째, 정토불교대학 5강, BDG 인터뷰
“갈등을 해결하고 평화로 가는 길”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51일째 날이고, 정토불교대학 5강 수업을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뒤 정토불교대학 강의를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 앞마당에는 부처님 오신 날을 한 달 앞두고 형형색색의 연등이 아름답게 걸렸습니다.

오전 10시 15분이 되어 정토불교대학 오전반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대강당에는 180여 명의 입학생이 자리했고, 온라인 생방송 반에는 170여 명이 접속했습니다. 삼귀의와 수행문을 함께 읽고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하자, 스님이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은 지난 4강 동안 불교의 핵심 사상인 사성제, 연기, 중도, 팔정도에 대해 배웠습니다. 스님은 지난 네 번의 강의를 다시 한 번 요약해서 설명한 후 오늘은 ‘올바른 가치관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의를 이어나갔습니다.

“고대 노예제가 생기기 이전에 인류 최초의 사회 제도가 원시 공산제입니다. 원시 공산제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윤리가 적용되었습니다. 그 후 점차 사회 제도가 발전하면서 시대와 지역에 따라 가치관이 다양하게 분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선 시대 사람이 오늘날 현대 사회로 시간 이동을 해 오거나, 오늘날 현대인들이 조선 시대로 시간 이동을 한다면 그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동시대에 산다고 하더라도 지역이 다르면 윤리의 기준이 달라집니다.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사는 곳이 한국이냐 일본이냐, 혹은 사우디아라비아냐에 따라 윤리의 적용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올바른 가치관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윤리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면 과연 정의롭다는 개념이 어떻게 성립할 수 있을까요?

올바른 가치관이란 무엇인가?

각각의 종교, 시대, 지역, 문화 속에서는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는 것이 분명한데, 전체를 아울러 놓고 보면 옳고 그름이 애매해집니다. 결국 정의라고 할 만한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가치는 상대적입니다. 그런데 종교나 국가와 같은 특정 집단에서는 가치를 절대화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자기의 가치관을 절대화하면 자기 생각과 다른 상대를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지나친 비약 같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일입니다. 북한을 미워하는 남한 사람들은 ‘저런 놈들은 죽여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북한 사람들도 ‘남한 사람들을 죽여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세계에서는 종교, 정치, 민족 등 상호 간의 갈등 속에서 자기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죽이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네 생각이 틀렸으니 고쳐라.’, ‘고치지 않으면 넌 죽어야 해.’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자신의 가치관을 절대화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한국에서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할 때도 ‘싹 다 잡아들이라!’는 말을 했다고 하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감옥에 넣어도 되고, 필요하다면 죽여도 된다고 생각한 겁니다. 불법적인 계엄령 선포로 인해 대통령이 파면되니까 지금은 또 반대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내란 동조 세력에 대해 ‘다 때려잡아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것 또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다 없애야 한다고 보는 측면에서는 똑같은 겁니다.

가치관을 절대화하는 것이 가져오는 폐해

오늘날 한국 사회는 극심한 양극화에 빠져 있습니다. 지금은 양쪽의 정치 세력이 모두 상대를 증오하는 수준까지 갔어요. 말은 안 해도 내면에는 ‘저런 놈들은 잡아 가둬야 해.’, ‘저런 놈들은 죽여 버려야 해.’ 하는 생각이 밑에 깔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테이블에 앉아서 대화를 못 합니다. 지금 헌법 개정을 하려면 여야가 같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데, 민주 세력이라는 사람들은 내란 동조 세력과 한 테이블에 앉게 되면 내란을 방조하는 것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국면이 되니까 이런 심리가 일어나는 거예요. 지난번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하고 나서는 그쪽 세력을 적폐라고 규정했었죠. 적폐 청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결국은 반대급부로 그쪽 세력을 더 키워 주었습니다. 지금 또 이렇게 상대를 몰아가면 그들은 다시 똘똘 뭉칠 것입니다. 지금은 상대편이 계엄과 탄핵에 대한 입장 차이로 사분오열되어 있지만, 그들도 궁지에 몰리면 힘을 모으게 될 거예요. 그렇게 되면 그들을 또 살려 주게 되는 겁니다. 성경에도 나오듯이 내가 살려고 하면 죽게 되고, 내가 죽으려고 하면 살게 되는 겁니다.

제가 특정 정치 세력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가치관을 절대화하는 것이 가져오는 폐해를 이야기하기 위해 예를 든 겁니다. 이것은 여러분 각자의 일상에서도 다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때려야 된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선생님 중에는 ‘학생이 말을 안 듣는데 어떻게 때리지 않고 교육이 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군대에서도 ‘기합을 안 주고 어떻게 훈련을 시키느냐!’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 또한 자기의 가치관을 절대화하는 것에 해당합니다. 그러니 사실은 우리가 모두 폭군이에요. 어쩌면 그런 이유로 우리가 폭군에게 동조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자신도 같은 폭군이니까요.

갈등을 해결하고 평화로 가는 길

우리가 평화로 나아가려면, 첫째, 가치란 상대적인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서로가 다를 뿐입니다. 기독교 가치관과 불교 가치관이 다르고, 한국의 입장과 일본의 입장이 서로 다릅니다. 지배 세력과 피지배 세력의 입장이 다르고, 사장과 노동자의 입장이 다릅니다. 모두 다른 가치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만약 모든 사람이 같은 기준을 갖고 있다면 지금처럼 악을 쓰고 싸울 일은 없을 거예요. 또한 사람들이 각자 따로따로 살면 괜찮을 겁니다. 그러나 한 공간에서 부부로 살거나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 같이 살게 되면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한집에 사는 가족 사이에도 충돌이 생기는데, 하물며 한 나라의 구성원 간에는 어떻겠습니까?

예전에는 기독교인은 기독교인끼리 살고, 불교인은 불교인끼리 살았어요. 한국 사람은 한국에서 살고, 일본 사람은 일본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에 태국 사람도 와서 살고, 일본 사람도 와서 살고 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이 함께 살고 있어요.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나라에 기독교인도 살고, 불교인도 살고, 무슬림도 와서 살고 있습니다. 노인 세대와 청년 세대의 가치관이 다르고, 남성과 여성의 관점이 다른데, 이들이 모두 한 공간, 한 시대에 함께 살고 있으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에는 전라도와 경상도가 투표 성향이 나눠지는 지역 갈등만 있었는데, 이제는 세대 간의 갈등과 성별 갈등이 지역 갈등 이상으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로 올수록 갈등이 더욱더 심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평화로 나아가려면 ‘서로 다르다.’, ‘가치는 상대적이다.’ 하고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둘째, 가치란 본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형성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가치는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졌다든지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예전부터 전해 내려왔다 하더라도 다 형성된 거예요. 내가 만든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만들어서 전해 내려온 것입니다. 가치가 본래부터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절대적인 거예요. 형성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변경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무조건 다 변경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형성되었다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변화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같이 어울려 살면서 갈등이 일어나면, 먼저 ‘서로 생각이 다르구나.’ 하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부인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아이들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면 화는 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를 뿐이니까요. 예를 들어, 한집에 같이 살아야 하는데, 한 사람은 춥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따뜻하다고 하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해결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체질이 서로 다르니 합의해서 중간 온도를 선택할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한쪽이 양보할 수도 있습니다. 합의는 중간치를 선택하는 방식이고, 양보는 한쪽의 뜻을 지지하는 방식입니다. 현대 사회는 합의와 양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늘 다수결로 몰아가니까 소수가 항상 억울해집니다. 그래서 도저히 안 되면 방을 따로 쓰는 방법이 있어요. 이것도 일종의 합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신 방을 하나 더 구해야 하니까 돈이 좀 들죠.

이렇게 서로 다름을 인정한 바탕 위에 어떤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 ‘정치’입니다. 이익이 서로 다를 때 이익의 균형점을 잡아 나가고, 뜻이 서로 다를 때 의견을 모아내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반면에 어떤 한 사람이 절대자가 되어 자기가 정한 대로 밀어붙이고, 다른 의견은 폭력으로 묵살하는 것이 전체주의입니다. 민주주의란 모두의 의견을 조율해서 일정한 합의점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때 ‘그 의견은 말도 안 된다.’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합리성이 떨어지는 의견도 하나의 의견입니다. 토론하다 보면 그런 의견은 소수가 되겠죠. 이런 과정을 통해 의견이 모아져서 결정에 이르는 것입니다.

불교의 가치관이 갖고 있는 특징

그렇다면 불교의 가치관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물론 불교의 가치관 또한 다른 것과 비교해서 상대적입니다. 모든 가치관이 상대적인데 불교만 절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불교의 가치도 상대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하지만 불교의 가치관은, 첫째, ‘보편성’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지배 계급에만 적용하고 피지배 계급에는 달리 적용한다든지, 남성에게만 적용하고 여성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식이 아닙니다. 보편성이란 모든 사람을 하나의 공동체로 보고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계급이나 성별로 분절(分節)해서 따로 적용하지 않고 똑같이 적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교는 다양한 인종과 민족의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 공통점을 중심으로 가치관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불교의 가치관은 타 종교인들도 수긍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가치관을 절대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둘째, 불교의 가치관은 인간뿐 아니라 자연 생태계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류 문화에서 모든 윤리와 도덕은 인간만을 고려하였습니다. 자연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 생태계 파괴가 심각해지면서 생태 윤리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인간 윤리만 가지고는 안 되고, 생태 윤리를 바탕에 둔 인간 윤리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불교의 가치관은 오래된 과거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현재의 기후 위기 시대에 가장 적합한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새로운 윤리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헌법도 기후 위기 시대를 반영하여 새로 개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점을 고려해 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런 기초 위에서 불교의 가치관인 ‘오계(五戒)’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오계 중에서 불살생(不殺生) 계율과 불투도(不偸盜) 계율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로부터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한 후 강의를 마쳤습니다.

스님이 무대에서 내려오자, 사회자가 학생들에게 수행 연습 과제를 안내했습니다. 학생들은 다음 주까지 수행 연습을 부지런히 해보기로 하고, 조별로 마음 나누기를 이어갔습니다.

스님은 지하 1층 공양간에서 대중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1시부터는 홍콩불교신문(BDG)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홍콩불교신문(BDG)은 세계 각지의 불자들과 수행자들에게 영어로 다양한 불교 콘텐츠를 제공하는 온라인 불교 저널입니다. 스님은 인터뷰를 하러 온 크레이그(Craig) 기자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크레이그 기자가 지금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백일법문의 취지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백일법문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스님은 항상 전 세계를 돌아다니시면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느라 바쁘신데, 왜 100일이라는 시간을 내어서 법문을 하게 된 것입니까?”

“첫째, 정토회가 온라인으로 전환한 지 5년이 되었습니다. 온라인 전환은 좋은 점도 많지만, 부족한 점도 있습니다. 부족한 점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사람이 서로 만나서 인격적으로 감화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믿음도 약해지고, 행동하는 힘도 약해졌습니다. 아무래도 집에서 법문을 듣다 보니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법문을 듣기가 쉬워서 집중력도 떨어집니다. 그래서 신앙심도 키우고 실천력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백일법문’이라는 오프라인 행사를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이곳 정토사회문화회관은 오프라인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지은 건물인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건물을 활성화하려면 제가 직접 법문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즉, 오프라인 활동을 활성화해 보자는 것이 가장 큰 취지입니다.

둘째, 한국 사회가 지금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한국 사회를 좀 안정시키려면 제가 해외를 돌아다니기보다는 최소 100일은 한국에 있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남한과 북한 간의 갈등도 있지만, 남한 안에서도 정치 세력 간의 갈등이 아주 심합니다. 갈등을 완화하려면 정성을 기울여서 기도도 해야 하지만, 사회 지도자들을 직접 만나서 상대편을 이해하도록 대화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해외 활동을 6월 이후로 모두 연기하고 2월부터 백일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어쨌든 이런 노력들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가 오도록 작은 역할이라도 하려고 합니다.”

계속해서 국제 정세, 한국의 정치 갈등, 미얀마 지진 피해, 부탄의 지속 가능한 개발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세계적으로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고, 그로 인해 상대편에 대한 적대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은 어떻게 보고 계시나요?

  • 아직 한국 정치는 상호 견제할 수 있는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정치 갈등은 어떻게 될 것으로 보시나요?

  • 그동안 미얀마는 군부 독재로 인해 국제 사회에서 미얀마 국민들을 도울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 전 미얀마의 지진 피해가 JTS의 활동에 어떤 영향을 줄 것 같나요?

  • 부탄에서 지속 가능한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성과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한 시간 동안 인터뷰를 한 후 크레이그 기자가 마지막 질문을 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지금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가요?

“제가 질문한 내용 외에 지금 스님께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문제가 있나요?”

“지금은 시리아를 재건하는 일이 큰일입니다. 아사드 독재 정부가 물러났지만, 12년 간의 내전으로 인해 도시마다 대부분의 건물이 무너져 있고, 최근에는 지진 피해까지 입어서 국토 전체를 재건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국내에 특별한 소득원이 없고, 국제 사회의 지원도 없습니다. 국민의 절반이 난민이 되어 나라를 떠났는데, 다시 돌아오려고 해도 집이 다 무너져 있고, 학교도 없고, 전기도 안 들어오고, 병원도 없어서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처럼 시리아 국민들도 교육열이 굉장히 높아서 지금 제일 먼저 복구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학교입니다. 그래서 무너진 학교를 복구하는 일과 병원을 재건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시리아 정부와 협의 중에 있습니다.

첫째, 무엇보다 제가 가장 걱정하고 있는 나라는 북한입니다. 왜냐하면 북한 주민들의 식량난이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미얀마가 식량난에 처한 상황에서 지진 피해까지 입어서 JTS에서는 긴급 구조단을 파견한 상황입니다. 셋째, 시리아가 국가 재건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의논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 미얀마, 시리아, 세 나라가 지금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오후 3시가 넘어서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오후 내내 스님은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파면 이후 헌법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나라를 걱정하는 사회 원로들께서 스님에게 연락을 해왔습니다. 전화를 주고받으며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계속해서 의논을 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정토불교대학 저녁반 5강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지하 대강당에는 직장을 마치고 달려온 200여 명의 입학생이 자리하고, 온라인 생방송 반에는 340여 명이 접속했습니다. 삼귀의와 수행문을 함께 읽고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오전 강의처럼 불교의 가치관인 오계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습니다. 오늘은 오계 중에서 불살생(不殺生) 계율과 불투도(不偸盜) 계율, 두 가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계율을 지켜야 한다고 할 때 그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복종도 아니고, 부처님에 대한 믿음도 아닙니다. 바로 나 자신의 해탈을 위해서입니다. 즉, 내가 괴로움 없는 경지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굳이 말한다면 해탈과 열반이라는 목표로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들어가고, 도움이 안 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들어갑니다. 계율을 지키는 목표는 해탈과 열반입니다.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말라

오계의 첫 번째 계율은 살아 있는 생명을 함부로 때리거나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 존중의 가치관을 말합니다. 생명이니까 존중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괴로움이 없는 경지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첫 번째 지켜야 할 것이 생명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하면 ‘비폭력’입니다. 비폭력은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남을 때리거나 죽여서는 안 됩니다. 시위를 하든, 연애를 하든, 돈을 벌든, 무엇을 해도 좋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폭력을 쓰면 안 됩니다. 아이를 바르게 키우기 위해 가르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아이를 때려서 가르치는 것은 안 됩니다. 비폭력의 범위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에게도 해당합니다.

여러분은 불살생 계율을 참회할 때 ‘나는 안 때렸다.’, ‘내가 죽인 것은 아니다.’ 이렇게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폭력은 내가 직접 하거나, 남을 시켜서 하거나, 수단을 이용해서 하거나, 그것을 즐기거나, 방관해도 모두 계율에 어긋납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오계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불살생 계율입니다. 살아 있는 생명을 함부로 때리거나 죽여서는 안 됩니다.

‘불살생’ 계율은 단지 때리거나 죽이지 않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적극적인 뜻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방생’입니다. 아무리 적이라고 할지라도 다치면 살려야 합니다. 최소한 전쟁에 직접 관련이 없는 민간인을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전쟁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전쟁은 하더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차별적인 공격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학살에 가깝습니다.

남에게 손해 끼치지 마라

오계의 두 번째 계율은 ‘재산 보호의 가치관’입니다. 좁은 의미로는 주지 않는 물건을 가지지 말라는 내용이고, 넓은 의미로는 남에게 손해 끼치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물을 마시고,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물, 음식과 같은 생필품이 없으면 우리 인간은 살 수가 없습니다.

굶어 죽는 것만큼 비참한 일도 없습니다. 제가 어릴 적 시골에 살 때는 춘궁기(春窮期)가 되면 풀뿌리를 캐 먹고 얼굴이 누렇게 뜬 사람이 많았습니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식량 부족 문제가 정말 심각했습니다. 그 후 경제가 성장하면서 굶어 죽는 걱정은 크게 안 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의 기아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가 1990년대 중반 북한 국경 변에서 북한 사람들을 도울 때 굶어 죽은 사람들을 숱하게 목격했습니다.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경을 넘어온 사람도 많았는데 그들을 만나 인터뷰도 많이 했습니다. 마치 과거 역사 속에서 대기근으로 엄청난 사람이 굶어 죽었을 때의 모습을, 시간을 초월해 다시 경험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북한의 상황을 미국에 가서 설명하고,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러나 공감대가 쉽게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미국처럼 문명이 발달하고 풍요로운 곳에서 ‘지금 사람이 굶어 죽고 있다.’ 이런 말들이 제대로 전달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동양에서 스님이 한 명 찾아와서 북한 사정을 얘기하며 우는 모습이 이상해 보였을 겁니다. 한국 사람들은 ‘북한에 식량 지원을 하면 총알이 되어 돌아온다.’는 말로 반론을 제기하는 정도였다면, 미국 사람들은 더 냉정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그 말이 사실이라는 증거가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북한에 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증거를 만들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저는 중국으로 건너가 국경 지역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 270여 명을 인터뷰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는지 통계를 내고 정리해서 석 달 만에 다시 미국에 갔어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그 정도의 숫자는 통계상 유의미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두 달을 더 투자해서 이번에는 470여 명을 인터뷰해서 자료를 만들어서 갔습니다. 그제야 조금 수긍을 하더라고요. 그래도 숫자가 적다길래 1년이 더 걸려 인터뷰한 사람의 수를 1,800명까지 늘렸습니다. 이렇게 굶주림의 문제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에게 기아 문제를 이해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지금 제가 한 이야기가 여러분 귀에도 스치듯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실감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굶주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아픔을 표현할 때 아주 함축적으로 얘기합니다. 제가 만난 북한 주민은 ‘두부 열 모하고 집을 바꿨다.’고 말했습니다. 두부 열 모에 자기 집을 줬다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얘기잖아요. 그런데 굶는 상황이 되면 그렇게 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죽기 전에 달걀 10개만 먹고 죽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도 말했습니다. 사람이 너무 굶주리면 그게 마지막 소원이 될 수가 있는 겁니다.

옛말에 기근 때를 비유해서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소리가 무엇일까요?’ 하는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바로 ‘쌀독 바닥 긁는 소리’입니다. 쌀독에 있는 쌀을 바가지로 풀 때 '드르륵'하고 쌀독 바닥 긁히는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만큼 무서운 게 없다는 말이에요. 쌀독 바닥 긁는 소리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게 뭐가 무섭냐?’ 하고 웃을 수도 있을 겁니다. 불교에서 기아의 고통을 상징하는 존재가 ‘아귀’입니다. 나쁜 짓을 하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가 삼악도(三惡道)입니다. 첫 번째가 지옥이고, 두 번째가 아귀입니다. 굶어 죽는 고통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예요.

나라, 성별, 종교, 이념을 떠나서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하는 이유

결국 이 두 번째 계율은 생존에 관한 문제입니다. 생존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물과 음식입니다. 지금 미얀마 지진 피해 지역에서도 가장 우선해서 필요한 게 식수와 음식입니다. 만약에 비가 온다면 당장 텐트가 필요할 것이고, 아프거나 다치면 약이 필요합니다. 물, 음식, 옷, 집, 약, 이렇게 다섯 가지가 생존에 꼭 필요한 기본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존권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너는 공산주의 자니까.’, ‘너는 이슬람교도니까.’, ‘너는 죄인이니까.’ 이런 이유로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생존에 필요한 물품은 조건 없이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 인도적 지원의 원칙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렇게 생존에 필요한 생필품을 훔치고, 빼앗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것은 곧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과 다를 게 없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계율이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재화를 강제로 뺏거나 훔치거나, 가져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그냥 자본주의적으로 해석하면 ‘사유재산 보호’라고 할 수 있겠지만, 기본 정신은 생존에 관계되는 것을 뺏거나 훔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재화를 침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의 물건’이라는 표현은 보편적으로 쓰이지만, 그 근본정신은 생존권 보호에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절대로 ‘북한 놈들은 굶어 죽어야 해!’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게 북한이든, 이슬람교도든, 감옥에 갇힌 사람이라 하더라도 마실 물이 없거나 먹을 음식이 없다면 주어야 하고, 아프거나 다쳤다면 약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쁜 놈은 죽여야 해!’ 이런 말을 너무 쉽게 합니다. 이러한 말들은 불교의 가치관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

오늘은 오계 중에서 두 가지 계율을 이야기했습니다. 첫째,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기본적인 생존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나라, 성별, 종교, 이념을 떠나서 누구라도 동의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가치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불사음(不邪淫) 계율과 불망어(不妄語) 계율에 대해 더욱 자세하게 배우기로 하고 5강 수업을 마쳤습니다.

이어서 사회자가 학생들에게 수행 연습 과제를 알려준 후 조별로 모여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스님은 서울 정토회관으로 다시 돌아와 일과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52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주간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하고, 오후에는 신규 법사단 수련에 참석하여 법문을 한 후, 저녁에는 저녁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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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연기

[ᆢ어쨌든 이런 노력들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가 오도록 작은 역할이라도 하려고 합니다.”]
[ᆢ그래서 무너진 학교를 복구하는 일과 병원을 재건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시리아 정부와 협의 중에 있습니다.]홍콩불교신문(BDG)에서 부탄 지속가능한 개발 사업까지 아시는군요^^이렇게도 많은일들을 하시며 애쓰시는데 용성스님 행적처럼 정작 우리나라에 잘알려지지않네요ㅠ

2025-04-13 01:49:44

어이상실

현 시국에 대해 논평하는 거는 전광훈 목사님이나 법륜스님이나 똑같네요~ 스님의 양비론이면 이렇게 동등하게 비교해도 되겠지요?

2025-04-12 05:02:26

몽이

스님께서 1년6개월이나 걸려 1800명이나 인터뷰 하셨다는걸 첨 알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정말 참 부처님이십니다
눈물이 나네요

2025-04-12 02: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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