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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부탄답사 7일째 날입니다. 오늘은 낭라(Ngangla) 게옥의 소남탕(sonamgthang), 마랑둣(Marangdut), 낭라트롱(NganglaTrong), 깍통(Kaktong) 4개 치옥을 방문하여 주민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고 좁카(Bjoka) 게옥으로 이동합니다.
스님은 새벽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아침공양을 했습니다. 아침공양 후에는 여러 보고서들을 점검하고 원고를 교정했습니다. 오전 8시가 되어 스님은 낭라게옥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늘은 소남탕 고등학교의 화장실 답사로 일정을 시작합니다. 소남탕 고등학교는 재학생 인원 약 700여 명으로 부탄에서도 규모가 큰 학교에 속합니다. 얼마 전에 스님은 소남탕 고등학교의 화장실 시설이 낙후되어 있다며 보수를 하고 싶다는 요청을 받아서, 답사를 해보고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판칼게옥에서 낭라게옥까지 길이 잘 닦여 있어서 가는 데에 40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어제 타시비 마을까지 이동했을 때 2시간 걸렸던 것을 생각하면 잘 포장된 도로가 얼마나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지 다시 실감했습니다.
낭라게옥은 지금까지 답사했던 산속의 오지 마을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도시화가 이루어진 시내처럼 보였습니다.
곧 소남탕 고등학교에 도착했습니다
고등학교가 마치 한국 대학교 캠퍼스만큼이나 건물도 크고 공간도 널찍했습니다.
“고등학교를 크게 지어두었네요. 생각해 보면 부탄은 소득 수준에 비해 교육에 대한 투자가 엄청난 것 같습니다. 저는 처음에 부탄에 와서 학생들이 스마트 TV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 그게 뭔 줄 몰랐어요 (웃음)”
스님은 일찍 도착해서 남는 시간에 학교 구석구석을 산책했습니다.
조금 있으니 젬강주지사님과 기획관 그리고 중앙관리 소속의 이시 님까지 이번 답사 일행이 도착했습니다.
“스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일찍 오셨네요”
“어서 오세요 도로가 잘 되어 있어서 도착 시간이 빨랐어요. 화장실을 둘러보고 있으려고 했는데 문이 잠겨있었습니다.”
학교 담당자들이 열쇠를 가져와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화장실 내부를 살펴보니 시설이 많이 낙후되어 있는 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래도 학생들이 깨끗하게 청소하면서 써서 그러한지 딱히 보수할만한 부분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스님, 기숙사 내부에 있는 화장실도 한 번 봐주셔요”
스님은 기숙사 내부로 들어가 화장실을 가 보았습니다.
화장실과 샤워실이 모두 칸막이는 있는데 문이 없었습니다. 시설은 낙후되어 있지만 역시 더 쓸 수 있어 보였습니다.
스님이 말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시설이 오래되기는 했지만 아주 못쓰겠는 정도는 아니에요. 이대로 더 사용해도 될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예빌랍사학교 화장실도 가 보았는데 그곳은 정말로 열악했어요. 소남탕은 조금 더 쓰다가 수리해도 되겠습니다.”
주지사님이 말했습니다.
“네, 스님 그래도 화장실에 문이라도 달아주면 어떨까요?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너무 개방된 상태에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네, 그렇게 하세요. 그런데 JTS 원칙에 꼭 맞는 건 아닙니다 (웃음)”
강당에 소남탕 주민들이 모여있다고 하여 스님은 소남탕 고등학교 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여러분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중국보다 더 동쪽에 있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이렇게 먼 곳 부탄까지 오게 된 것은 지난 여름 국왕의 초대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우리가 얼마나 잘 사느냐 하는 기준을 국민총생산(GDP)으로 삼았습니다. ‘많이 생산해서 많이 소비하는 게 잘 산다’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과소비가 지금은 기후위기를 초래했습니다. 이렇게 기후위기 시대가 도래하니까 4대 부탄왕이 제시한 GNH개념이 세계적으로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이제까지는 어떤 투자를 하게 되면 ‘그 투자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생산유발효과를 가져오는가’를 기준으로 투자를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뉴질랜드나 핀란드 같은 선진국은 어떤 투자를 했을 때 ‘그 투자로 국민이 얼마나 행복해졌는가’를 기준으로 투자를 평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GNH개념이 실제 생활과 국가 정책에 반영되는 현실적인 개념으로 바뀐 것입니다.
국민총행복지수(GNH)라는 개념은 20년 전에 부탄에서 제기되었지만 당시에는 큰 관심을 못 받았습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은 전 세계에서 GNH개념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부탄에 와서 직접 현실을 보니 부탄은 GNH개념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발전할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부탄이 이렇게 변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소비를 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과 숲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양이 같을 때 CO2제로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이 점점 많아지면 숲은 이산화탄소를 다 흡수하지 못합니다. 숲에 흡수되지 못한 이산화탄소는 대기 위에서 대기층을 덮고 있게 되고, 마치 비닐을 덮어 놓은 것과 같은 이 현상 때문에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게 됩니다. 이것을 온실효과라고 합니다.
부탄에서는 기후 위기를 아직 직접적으로 크게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이미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갑자기 많은 비가 쏟아지거나, 가뭄이 지속되거나, 태풍의 세기가 강해져 엄청난 피해를 일으키거나, 건조한 날씨로 인해 큰 산불이 발생하는 등 기후 변화의 영향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북극, 남극, 히말라야의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하고, 이는 저지대 지역에 큰 위협이 될 것입니다.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소비 멈춤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지금 소비 중독현상에 빠져 있습니다. 술을 마시면 계속 마셔야 하는 알코올 중독이 있지 않습니까? 소비도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소비를 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생활을 살펴보세요. 옛날에 배고플 때는 먹기만 하면 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맛있는 거 먹어야죠. 예쁜 옷 입어야 하죠. 집도 크게 지어야 하죠. 냉장고, 세탁기, 차 있어야죠. 끝이 없습니다. 전 세계가 현재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소비를 줄이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지가 큰 과제가 되었습니다. 소비를 적게 하고도 행복해지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모든 욕망을 버릴 때 행복해진다는 것은 이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가르침입니다.
부탄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고 GNH개념을 국가정책으로 하는 나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갈 인간의 삶의 모습,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미래 문명’을 부탄에서 만들어보자는 것입니다.
욕망을 따라 너무 개발하면 기후위기 때문에 다 죽게 되고 그렇다고 너무 개발하지 않으면 삶이 불편해서 마음이 행복하지 못합니다. 이 문제의 중간지점이 바로 새로운 미래 문명이고, 지속가능한 개발이 될 것입니다.
부탄의 국왕도 개발에 대한 수요도 일부 수용하면서 환경과 전통문화를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겔로푸 신도시 개발 이야기도 나오고, 산림을 보호하고 전통문화를 보호하자는 이야기도 나온 것입니다.
사실 이 두 가지의 조화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해야 우리 후손들이 지구에서 지속가능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조금은 선구적인 자세로 미래문명을 만들어가자는 생각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생활이 너무 불편하면 안 되니까 생활을 편리하게 개선하자.
집 없는 사람은 집이 있어야 하고, 집이 있지만 내부시설이 열악한 사람은 개선을 해야 합니다. 특히 앞으로 젊은 여성들을 위해서 부엌 시설을 개선해야 합니다. 화장실도 조금 개선이 되어야 합니다. 집에 물도 잘 나와야 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개발을 하게 되면 기후위기에 다시 봉착하게 됩니다.
시골에 갈수록 고쳐야 하는 집이 많고 도시로 나오면 그런 집이 별로 없습니다. 판방은 작은 도시라서 모두 잘 살고 계시죠? 개선할 것이 없죠? 옷도 다들 잘 입고 왔네요.(웃음)
아까 촉바가 집 없는 사람이 세명 있다고 했습니다. 그 집은 다 여러분들이 힘을 모아서 지어야 합니다. 물이 부족한 것도 개선해야 합니다. 촉바는 남자라서 여자들 살림을 잘 모르는데, 부엌도 개선을 해야 합니다. (웃음)
편리하게 집안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이런 것을 개선해서 편리하게, 깨끗하게, 행복하게 살자 하는 것이 이 사업의 취지입니다.
부탄 정부에서도 여러분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집을 짓고 내 집을 수리하는 것은 개인이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수리가 재정적으로 가능한 사람은 자체적으로 하면 됩니다. 그러나 집을 수리하고 싶은데 재료가 없는 사람은 재료를 지원해 드립니다.
상수도 프로젝트는 정부 프로젝트입니다. 그러나 정부 예산에 한계가 있고 여러분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두 개선할 수는 없습니다. 또 정부 예산을 받아서 하려면 여러분들은 정부 예산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먹는 물이니까 우리 마을에서 식수 시설을 공사하겠다고 하면 필요한 재료를 제공할 테니 여러분들이 하시면 됩니다. JTS는 지원해 주는 게 아니고 여러분들이 뭔가를 하겠다고 할 때 재료를 제공하여 함께하는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는 GNH , 행복감을 높이는 데에 있습니다.
행복감을 높이려면 첫째는 불편한 시설이 개선되어서 편리해져야 하고, 우리가 함께 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공동으로 하면 힘들어도 지나면 만족감이 생깁니다.
여러분들 레바티 치옥 아시죠? 레바티는 식수가 부족했습니다. 새로운 수원지에서 물을 가져오려니 7km라고 했습니다. 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7km를 어떻게 하겠느냐. 정부 프로젝트를 기다리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레바티 치옥 사람들은 ‘아니다. 우리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멘트와 파이프 재료를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두 달 만에 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1인당 며칠씩 일했는지 물으니 한 달 했다고 했습니다. 여자들은 파이프 묻을 땅을 파고, 남자들은 파이프를 지고 옮겼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힘이 들었죠. 그런데 식수대를 개시하던 날 너무너무 기뻐했습니다.
같이 일 할 때 우리는 기쁨이 생기고,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설령 가난해 보이더라도 생활이 편리하고 깨끗하고 살만하다면 그것이 ‘소비를 적게 하고도 행복해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이야기가 조금 어려웠죠? 여러분들 살기도 힘든데 지구 전체 기후위기 개선을 이야기했네요. (웃음) 그러니까 짧게 말하면 우리 생활을 개선하자는 것이고 조금 넓히면 우리 부탄을 발전시키자는 말이고 더 크게 말하면 기후위기 시대의 대안을 제시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 한국에서 제가 이곳에 온 것입니다. 또 이러한 면에서 부탄의 정부정책, 국왕의 뜻과 일치합니다. 이해가 되었나요? 너무 어려웠죠. 질문 있으신 분은 질문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을 아래를 보면 큰 강이 흘러갑니다. 우리 마을은 강 위에 있기 때문에 식수가 부족합니다. 이 강을 어떻게 하면 쓸 수 있을까요? 수원지는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큰 지 잘 모르겠습니다.
소남탕은 식수문제가 가장 큽니다. 커다란 물탱크를 설치하면 해결되지 않을까요?
집이 없는 가구가 4 가구 정도 됩니다. 이 사람들은 집이 필요합니다.
식수파이프 지원이 필요합니다
스님은 마을의 문제를 듣고 어떻게 해결할지 하나하나 안내를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내가 할 수 있는 것, 꼭 필요한 것만 JTS가 지원합니다. 자재를 지원하면 주민들이 강물을 끌어올 수 있다는 것입니까?”
낭라게옥의 겁이 말했습니다
“주민들이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모자라는 부분은 게옥에서 예산으로 지원하려고 합니다”
“JTS에서 자재를 지원하고, 게옥에서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이 프로젝트 방법으로는 옳지 않습니다. 주민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잖아요
예를 들어, 우리가 파이프 연결은 해보겠는데, 주민들 기술로는 도저히 강물을 건너는 것을 못하겠다고 하면 그때 게옥에서 전문가를 지원해 주는 형태는 가능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야기하는 방식이라면 이것은 JTS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지금처럼 강물을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이 되면, 그것은 정부에서 상하수도 시설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정부에서 지원받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정부에 지속적으로 신청은 하되, 그전까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공사해서 쓰면 됩니다. 그것은 JTS에서 재료를 지원할 수 있습니다.”
주민들과 대화시간이 어느덧 1시간 30분을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소남탕 치옥 주민들과의 대화를 마무리하고 마랑둣으로 이동했습니다.
마랑둣 법당에 들어서서 참배를 하니, 이어 주민들이 들어와 스님께 삼배로 인사하고 곧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법당에 자리한 사람 중에는 지역주민뿐 아니라 재가수행자도 몇몇 보였습니다.
스님은 JTS프로젝트에 대해 안내를 한 후 질문을 받았습니다.
마랑둣치옥 인구는 늘고 물 사용도 늘어가고 있는데, 수원지가 점점 말라가고 있습니다. 지금 수원지는 부족하고 새로운 수원지 공사를 하고 싶습니다.
집을 잘 못 지어서 지은 집을 부수었습니다. 집주인이 몸이 아파서 다시 집을 짓기 어려운 상황인데 집을 지어주고 싶습니다.
스님은 주민들이 동참할 수 있는 상황인지를 확인하고, 사업을 검토하여 안내했습니다
마랑둣 주민들과도 한 시간가량 대화를 마치면서 스님이 한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나이 많으신 할머니께서 약 한 시간가량의 대화에 집중해서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눈은 보이세요?”
“잘 안 보이죠”
“이는 어떠세요”
“이 없어요”
“JTS 프로젝트는 여러분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생활을 편리하게 개선하고 행복도가 높아지는 것이 최종목표입니다. 할머니처럼 눈이 안 보이고 이가 없으신 분들은 나중에 의료개선사업 할 때 치료할 수 있어요. 눈은 수술하면 금방 잘 보이고 이는 틀니를 하면 금방 괜찮아집니다”
“다 늙었는데 무슨 수술을 해요. 이제 죽을 날이 며칠 안 남았는데 눈 보이고 이 있어서 뭐해요”
“(웃음) 할머니, 하루 이틀을 살다가 가더라도 눈도 보이게 하고, 음식도 맛있게 씹어먹고 하면서 살다가 가야지요”
“내가 안 죽으면 스님 또 뵐게요. 그런데 곧 죽을 것 같아요. 죽는 게 무서워요”
“죽는 게 왜 무서워요. 죽음이 편안하고 아무 두려움이 없어야죠. 수행자가 뭐 죽는 게 무서워요”
“언제 죽을지 몰라서 걱정돼요”
스님은 마랑둣 치옥 주민들과의 대화를 마치고 할머니께 갔습니다.
마침 할머니도 스님을 기다리셨다는 듯이 두 손을 모아 스님께 축원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빙긋이 웃고 할머니 머리에 손을 얹어 축원을 드렸습니다.
스님은 마랑둣을 나와 낭라트롱으로 이동했습니다. 어느덧 점심시간을 지나 오후 1시가 되어 점심공양을 먼저 한 후 주민들과 대화를 하기로 했습니다.
낭라트롱의 주민의 집에서 점심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집주인과 식사를 준비해 주신 분들께 합장 반배로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점심공양을 하고 낭라트롱의 마을 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낭라트롱 주민들도 식수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특별하게 어려운 점이 없는지 요청사항은 없었습니다.
주지사님의 정리말씀을 끝으로 낭라트롱에서 칵통으로 이동했습니다.
칵통초등학교에 주민 약 35명 정도가 모여 있었습니다.
스님은 JTS사업 원칙을 이야기하고 주민들과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식수가 부족합니다 물탱크를 큰 것으로 교체하고 싶습니다
부엌과 화장실이 필요합니다
수원지와 파이프는 있는데, 물탱크가 없습니다.
마을의 대나무공예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건물이 필요합니다
집은 지었는데 창문 유리가 없습니다
나무는 마련했는데 집 지을 재료가 없습니다
집 내부 선반과, 농작물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울타리가 필요합니다
가족이 6명인데 집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집을 짓고 싶습니다
스님은 주민들이 요청한 사업을 함께 점검하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를 안내했습니다. 특히 대나무공예 지원을 요청하는 주민에게는 타라야나재단에 지원해 볼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스님과 대화시간이 끝나자 마을 주민들이 정성스레 스님께 선물을 차렸습니다.
밖에서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운전자분들께도 음식을 다 전해드리면서 정성스럽게 음식을 권했습니다.
스님은 차려진 음식을 감사히 받고, 전체가 나눌 수 있도록 했습니다. 미팅이 끝나고 마을주민들과 스태프분들 모두가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고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낭라게옥의 모든 방문일정을 마치고 좁카로 이동하기 전에 학교 뒤편이 산사태가 날 위험이 있다고 해서 둘러보았습니다.
오후 5시 30분이 되어 좁카에 도착했습니다. 날이 어둑어둑해졌습니다.
주민들과 대화를 시작하기에는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게옥센터에 있는 주민들과 인사만 간단하게 했습니다. 오늘은 좁카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할 예정입니다. 스님은 좁카게옥에서 준비해 준 저녁을 먹고 하루하루 답사 일정을 잘 짜준 젬강 기획담당관 놀부 님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4일 영주시 초청 강연에서 스님이 질문자와 나눈 즉문즉설 대화 내용을 소개해 드립니다.
“전생이 정말 있나요? 저는 그것이 제일 궁금합니다.”
“질문자는 어떻게 생각해요?”
“저는 남한테 해를 끼치지 않았는데도 힘들게 살고 있어요. 제가 전생에 무슨 잘못을 해서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걸까요?”
“나뭇잎에 작은 벌레가 붙어 있습니다. 질문자가 사는 게 힘들까요? 아니면 벌레가 사는 게 힘들까요?”
“제가 사는 게 더 힘듭니다.”
“그러면 질문자는 벌레보다도 못하단 거네요. 본인의 인생이 벌레보다도 못하다면, 전생을 따졌을 때 벌레가 질문자보다 전생이 좋았단 거네요?”
“그럴 수도 있겠죠.”
“정말 본인이 전생에 벌레보다도 못했을까요? 그렇다면 전생에 못된 짓을 해야 다음 생에 벌레가 아니라 사람이 된다는 거네요?”
“저는 못된 짓은 하고 싶지 않아요.”
“본인이 벌레보다도 못하다고 하니까 하는 말이에요. 벌레가 나보다 나으면 벌레로 태어나는 것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게 더 나쁘다는 얘기 아닙니까. 만약 전생이 있어서 그 과보를 받는 것이라면, 질문자의 논리대로 하면 ‘전생에 좋은 일을 하면 벌레로 태어나고, 전생에 나쁜 짓을 하면 사람이 된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럼 다시 물어볼게요. 산에 가면 가끔 다람쥐를 봐요?”
“예.”
“다람쥐가 사는 게 힘들까요? 사람이 사는 게 힘들까요?”
“다람쥐가 사는 게 더 힘들어요.”
“그런 다람쥐도 사는데 사람인 질문자가 왜 못 살겠어요?”
“살기야 살겠지만 나쁜 짓도 하지 않고 열심히 사는데도 이렇게 힘이 들어서야...”
“어떤 게 힘들어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봐요. 갑자기 전생 얘기를 하지 말고요. 얼마나 사는 게 힘들면 전생 얘기를 할까요?”
“그런데 정말로 전생이 있는지 그게 궁금합니다. 전생이 정말 있나요?”
“어떤 사람이 스님에게 와서 ‘스님, 우리 부부는 전생에 어땠을까요?’ 이렇게 묻는 사람은 현재 부부관계가 좋은 사람일까요, 나쁜 사람일까요?”
“나쁜 사람이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웃음)
“부부관계가 안 좋으니까 물으러 온 거겠죠.”
“제가 그 사람에게 ‘전생에 둘이 나빴지!’ 이렇게 얘기하면 그 사람은 ‘맞아요! 그랬을 겁니다’ 이렇게 얘기해요. 왜냐하면 이미 스님에게 와서 묻는 이유가 둘의 관계가 좋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직관적으로 알 수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질문자가 스님에게 전생을 묻는다는 것은 질문자가 지금 사는 게 좀 힘들다는 얘기예요.”
“똑같은 일을 해도 다른 사람이 하면 ‘너 힘들었지? 참 잘했어’ 이렇게 얘기를 해주는데, 제가 일을 하면 ‘그 정도는 누구나 다 하잖아’ 이렇게 말하거든요.”
“누가 그렇게 얘기해요? 남편이 그렇게 얘기해요?”
“행사에 다닐 때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요.”
“그 경우를 한번 봅시다. 질문자가 얘기한 대로 A라는 사람이 10이라는 일을 하면 ‘오, 너 대단하다. 잘했다’ 이렇게 말하고, 내가 일을 하면 똑같이 10이라는 일을 했는데도 ‘뭐, 그것밖에 못하나’ 이렇게 말해서 본인이 기분 나쁘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만약 질문자가 평가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봐요. 똑같이 10을 일했는데 A에게는 ‘너 잘했다’ 이렇게 말한다면 A에 대해서 기대가 컸다는 거예요, 작았다는 거예요?”
“......”
“당황해서 말귀를 잘 못 알아듣네요. 여기 어떤 한 분이 스님에게 텀블러를 갖다 주었다고 합시다. 그럼 제가 ‘이걸 갖다 주다니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어떤 다른 사람이 이 텀블러를 갖다 주면 제가 ‘이걸 왜 이제 가져오나, 아까 좀 가져오지!’ 이렇게 야단을 칩니다. 그러면 첫 번째 사람은 스님과 친한 사람이에요, 친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친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뒤에 사람은요?”
“친한 사람이에요.”
“그럼 친한 사람이 좋아요, 안 친한 사람이 좋아요?”
“친한 사람이 좋아요.”
“친한 사람이 좋지요. 그럼 질문자에게 ‘이것밖에 못 했나’ 하고 말하는 사람은 질문자와 친해서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친하지 않아서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친하니까 하는 말이네요.”
“친한 게 좋다면서요? 이제 말귀를 알아들었어요?”
“알아들었어요.”
“그래요. 만날 때마다 자꾸 나를 야단치는 사람은 나에 대해서 기대를 많이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기대가 크기 때문에 자꾸 나무라게 되는 겁니다. 내가 일은 잘하지만 그 사람 이 가지는 나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다 보니까 그 사람의 기대에 내가 못 미치는 거예요.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니까 자꾸 나를 나무라는 겁니다. 그런데 똑같은 사람인데 다른 사람에게는 자꾸 칭찬을 해요. 그러면 내가 볼 땐 기분이 나쁘지만 그 사람에 대해서는 기대가 작은 겁니다. ‘저 사람이 뭘 하겠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하면 칭찬을 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는 칭찬을 하고, 나한테는 비판을 많이 한다면, 그건 남편이 그 여자는 좋아해서 칭찬하고 나는 싫어해서 비난하는 것이 아니에요. 인간의 심리로 보면 그 여자에게는 별 기대가 없기 때문에 조금만 일을 해줘도 ‘감사합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나에게는 기대가 크기 때문에 나름대로 잘해준다고 했는데도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니까 비판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질문자는 지금 전생에 복을 많이 지었다는 거예요? 적게 지었다는 거예요?”
“복을 많이 지었다는 거네요.”
“그래요. 이미 복을 많이 지었는데 왜 스님한테 물어서 복을 적게 지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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