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하루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어제부터 시작한 평화재단 기획위원회 회의를 계속 이어서 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평화재단이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지 회의를 하고 오후에는 남산 둘레길을 산책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11일 행복학교 특강에서 있었던 내용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아이가 어릴 때 시어머니께서 5년간 저희 집에 계시면서 육아를 맡아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시어머님이 다른 집 며느리나 동서와 저를 비교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고, 그 감정이 쌓여서 10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이 안 되고 있어요. 시어머니께서는 지금 병상에 계신데, 서로 서먹서먹하고 친근감이 없습니다. 그때 시어머니와 말다툼했던 게 후회스럽지만, 선뜻 시어머니에게 다가서는 것도 내키지 않습니다. 저는 왜 그럴까요? 이 모든 게 저의 잘못일까요? 이 감정을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요?”
“시어머니와 왜 같이 살았어요?”
“제가 맞벌이를 하다 보니까, 아기를 봐달라고 오시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갈 데 없는 시어머니를 모셔온 게 아니라, 질문자의 필요에 의해서 시어머니와 같이 산 거잖아요. 매달 아기 돌보는 비용으로 한 300만 원 지급해 드렸어요?”
“100만 원 가까이 드렸어요.”
“아기 돌보는 것은 24시간 근무인데 100만 원이 가당키나 해요. 300만 원을 드렸어야지요. 그러니 100만 원만 받고 아기 돌봐준 시어머니께 불만이 있으면 더더욱 안 되죠. 오히려 고맙게 생각해야지요. 경비 지급을 제대로 안 했으니 잔소리 듣는 건 당연하게 생각해야 하고요.
‘제가 어려울 때 아기를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 비용을 많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내야 하지 않을까요? 요즘 시어머님이 편찮으시다고 하니 질문자의 도움이 필요할 테니까, 그때 갚지 못한 빚을 팍팍 갚아야죠.”
“마음이 잘 안 가지만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시어머니께 잘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옛날에 마땅히 시어머니께 드려야 하는 비용을 질문자가 안 드렸으니까 이제 그 빚을 갚으라는 거예요.”
“그때 종종 시어머니께서 남들과 비교하던 게 지금도 앙금으로 남아있는데 제 성격 탓인가요?”
“질문자도 시어머니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듯이 시어머니도 다른 집 며느리와 질문자를 비교해서 말한 거예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비교하면서 살아갑니다.”
“저는 말로 꺼내지는 않았거든요. 속으로만 비교했는데 시어머니는 말로 비교를 하시더라고요. 누구 며느리는 아침에 청소하고 출근한다더라, 너는 왜 동서랑 다르냐, 이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저도 반발심이 일어났던 것 같아요.”
“그건 질문자가 자신이 한 행동을 몰라서 그래요. 질문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아기 봐달라고 모셔온 시어머니가 청소까지 했다는 거잖아요. 집안일은 질문자가 하고 가야 하는데, 아기 봐달라고 오시라고 해놓고는 청소와 밥까지 하라고 하니 짜증이 안 나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질문자는 시어머니께 경제적 지원을 더 많이 해드려야 해요. 요즘은 하라고 한 일 외에 다른 일을 더 시키면 추가로 임금을 더 지급해야 합니다. 8시간 외에 일을 더 하면 시간 외 수당을 1.5배로 더 줘야 해요. 질문자는 날마다 오후 5시에 딱 들어와서 아기 돌보는 일을 시어머니로부터 인계를 받았어요? 아니면 직장에서 늦게 올 때가 있어서 시어머니가 늦게까지 아기를 돌봐야 할 때도 있었어요?”
“가끔 한 달에 한두 번 늦을 때가 있긴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추가 수당을 1.5배씩 더 드렸어요?”
“아니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요. 제 말은 시어머니께 잘하라는 게 아니라 그때 지급 안 한 임금을 돌려드리라는 거예요. 남도 아니고 시어머니께 드려야 할 돈을 떼먹으면 어떡해요. 아기를 안 돌봐줘도 자식으로서 지원을 해 드려야 하는데 아기까지 돌봐주셨잖아요. 그걸 직시 못 했다면 질문자가 자기 생각만 한 거예요. 시어머니는 다른 집에서 하는 얘기를 들어보고 이렇게 생각하셨을 거예요.
‘다른 집은 아기 안 봐줘도 용돈을 준다는데, 우리 집 애들은 아기도 봐주는데도 조금밖에 안 주네. 다른 집 자식들은 청소는 꼭 해놓고 가서 아기만 보면 된다는데, 우리 집 애들은 바쁘다고 청소도 안 하고 가네.’
그렇기 때문에 시어머니가 불만을 이야기할 때마다 질문자가 ‘아이고, 어머니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 바빠서 청소를 못 하고 갑니다’ 이렇게 대답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지 않았을까요?”
“네, 한 번도 죄송하단 말을 한 적이 없네요.”
“왜 죄송하다는 말이 안 나오는 줄 아세요?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보통 사람은 다 죄송하다고 그럽니다. 질문자처럼 잘난 사람만 죄송하다는 말을 못 하죠. 옛날에 귀족들이 하인들한테 죄송하다는 말을 말 안 했잖아요. 하인이 해주는 밥을 먹고, 하인이 빨래해주는 옷을 입고 다니면서도 ‘고맙다’, ‘죄송하다’ 이러기는커녕 자기가 잘났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어머니가 해준 걸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시어머니께는 아기를 키워준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데, 청소와 밥하는 일까지 해주셨으면 정말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질문자는 고마운 건 생각 안 하고 어머니께서 불평 몇 마디 하신 것 가지고 계속 시비하고 있는 겁니다. 특별히 시어머니께 효도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질문자가 불효한 걸 딱 깨달으면 아무 문제도 없다는 겁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얼굴 표정이 알아들은 표정이 아닌데요. 약간 아직도 억울한 표정이에요,”
“제가 잘못한 것은 아는데 마음이 안 풀려요.”
“잘못한 걸 확실히 알면 마음이 저절로 풀려버립니다.
‘내가 그때 제대로 일당을 안 드렸구나! 시어머니라는 이유로 그냥 공짜로 먹으려고 했구나! 오히려 내가 생색을 냈구나!’
이렇게 확실히 알아야 해요. 시어머니가 당연히 아기를 봐야 된다고 생각했고, 내가 정말 아쉬워서 이웃집에 부탁했을 때처럼 고맙게 생각을 안 했던 겁니다. 이걸 우선 인정해야 해요. 그렇게 시어머니께 죄송한 마음을 내면 가슴속에 있는 앙금이 저절로 없어져 버립니다.”
“네, 이제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겠습니다.”
“이제 조금 안 것 같네요. 조금이라도 알았으니 이제 시어머니께 가서 이렇게 얘기해 보세요.
‘어머니, 고마워요. 10년 전에 아기 본다고 참 힘드셨죠? 제 자식은 제가 돌봤어야 하는데, 그때 직장 다닌다고 어머니한테 아기 돌보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때 제가 바쁘다고 청소도 제대로 못 하고 가서 청소까지 해주셨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미안해요. 어머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대화를 시작해 봐요. 시어머니가 대화가 안 되는 분이면 몰라도 대화가 되면 시어머니도 가슴에 있는 얘기를 표현하실 거예요.
‘그래, 그때 네가 청소라도 해주고 갔으면 했는데 안 해주고 가서 섭섭했다. 네가 아니 다행이다’ 이러든지 ‘아이고, 네가 바빠서 그런 건데 조금 힘들긴 했지만 괜찮다’ 이럴 겁니다. 고부가 이렇게 조곤조곤 대화를 하면 가슴에 있는 한이 눈 녹듯이 싹 녹아 없어집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시어머니께 자주 찾아가서 얘기해 보세요. 5년간 아기 봐준 것에 대해 정말 고맙다는 마음을 갖고 얘기를 나누면 다 해결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뭐든지 다 공짜로 해주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 보니까 돈을 받으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가족이라고 뭐든지 다 공짜로 주고받다 보면 고마운 줄을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정토회 안에 들어와서 사는 대중들에게 늘 이렇게 강조합니다.
‘보시에 대해서 고마운 줄을 알고, 항상 보시해 준 분이 누구인지 공지를 해야 한다. 그리고 보시해 준 분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 한다.’
이렇게 도움을 받고 살면, 처음에는 고마운 줄 알다가 시간이 지나면 고마운 줄 모르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것처럼 질문자의 고민도 다 고마운 줄을 몰라서 생긴 고민이에요. 내 자식은 내가 키워야 하는데 시어머니가 무슨 상관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자라는 이유로 돌봐주잖아요. 그러니 시어머니가 아기를 돌봐주는 건 돌봐주는 것이고, 질문자는 거기에 대해 합당한 재정 지원을 하든지, 그게 안 되면 마음으로라도 고맙게 하든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오히려 불만을 가지잖아요. 여러분들이 부모의 은혜를 알아야 내 자식도 나에 대한 은혜를 알게 되는 거예요. 꼭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시어머니의 도움을 알아주긴 해야 한다는 거예요. 고생하고 도와준 것을 알아줘서 감사인사라도 해야 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제가 잘난 것도 없는데 잘났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제가 잘났다는 생각에 시어머니를 대할 때 불만을 갖고 대했던 것 같아요. 시어머니가 아기를 돌봐주신 것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하는 마음이 더 컸어야 했는데, 오히려 섭섭한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많이 깨달았고, 앞으로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어머니와 같이 앉아서 옛날 얘기를 좀 하세요. 용돈도 조금 드리면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시어머니도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다 합니다.
‘그때 내가 섭섭했다. 그때 네가 청소도 안 하고 갔다. 그때 뭐 어쨌다.’
시어머니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좋게 들어야 해요.
‘어머니 마음속에 저런 게 쌓였구나! 그런데 내가 그때 나 살기 바빠서 어머니의 저런 마음을 헤아려 드리지 못했구나.’
이렇게 시어머니를 이해할 때 내 가슴에 있는 상처가 치유됩니다. 시어머니의 상처를 치유해 주라는 뜻이 아니에요. 그런 대화를 하면서 시어머니를 이해하면 나도 치유되고 동시에 시어머니도 치유가 되는 겁니다. 별도로 기도를 하기보다는 시어머니와 대화하면서 서로 치유를 해나가는 게 매우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시어머니한테 가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돼요.”
“그렇다면 죽을 때까지 괴로워하면서 살면 됩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는데도 본인이 그 길을 안 가겠다는 걸 어떻게 하겠어요? 이 길이 내가 살 길이고 좋은 길이면 망설일 게 아니라 무조건 가야죠. 아직도 내가 잘났다는 생각을 딱 움켜쥐고 있으니까 그런 거예요. ‘이게 나한테 좋은 길이다’ 하면 시어머니께 가서 얘기를 하면 됩니다. 내가 먼저 사과를 했을 때 시어머니가 같이 고마워해 주면 좋겠지만, 시어머니가 오히려 원망하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어요. 시어머니가 원망할 때 이렇게 생각을 해야 해요.
‘아, 어머니 속에 저런 게 쌓였구나. 그때 저렇게 상처를 입으셨구나. 내가 미리 풀어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구나. 어머니도 상처를 입고, 나도 어머니 때문에 상처를 입고 서로가 해치는 관계였구나.’
이렇게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면 시어머니가 원망하는 얘기를 할수록 더욱더 내 상처가 치유됩니다. 시어머니를 이해해서 내 상처도 치유하고, 시어머니 상처도 치유하는 이 길이 서로를 살리는 길입니다.
시어머니가 살아있을 때 갈등을 푸는 게 좋아요. 죽고 난 뒤에는 갈등을 풀고 싶어도 풀 수가 없습니다. 내 성격이 이러쿵저러쿵 핑계를 대는 건 아직도 갈등을 안 풀고도 살만하다는 말이에요. 사람이 엄청 답답하면 무슨 약이라도 먹거든요. 죽을 지경이 되면 똥이라도 약이라고 하면 먹게 됩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선택을 해야 돼요. 첫째, 정말 갈등을 풀려면 내가 잘났다는 생각을 버리고 갈등을 풀어야 합니다. 둘째, 이 정도 고통은 안고 살 만하다고 생각한다면 갈등을 안 풀어도 됩니다. 그 대신 더 이상 이 일을 문제 삼지 말라는 거예요. 이 정도 고통은 안고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네, 실천하겠습니다.”
“이해가 되어도 실제로는 잘 안 될 거예요. 안 될 줄 알고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스님이 이렇게 자꾸 얘기해 보는 거예요. 안 되어도 본전이니까요. 안 된다고 손해날 일은 없잖아요. 지금까지도 그렇게 살았는데 안 되면 뭐 어떻겠어요. 꼭 돼야 되는 법은 없어요. 되면 좋을 뿐이죠.”
“감사합니다.”
내일은 오전에 내년 봄에 개강하는 정토불교대학 교과개편 회의를 한 후, 오후에는 공동체 법사단회의를 하고, 저녁에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4
전체 댓글 보기스님의하루 최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