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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울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시던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알코올 의존증이 있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나던 술 냄새가 끔찍이도 싫었습니다. 제가 예닐곱 살 때 어머니도 아버지의 알코올 의존증 때문에 집을 나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른이 되어도 절대 술을 마시지 않을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10대 때부터 자연스럽게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술은 그저 음식일 뿐이다’ 하고 합리화하며 술을 늘 가까이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30대 후반에 이르러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함께 살던 남자가 있었고 저도 임신을 했기 때문입니다. 임신 전에는 이미 30대 후반이니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병원에 가서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듣고 나니 마음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임신 10주를 넘기지 못하고 아이가 유산됐습니다. 그때 마음이 무척 힘들었고, 아이에 대한 집착도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같이 살던 남자와 함께 불임 병원에 다니며 아이를 가져야 하니 술 먹지 말아라, 몸을 만들어야 하니 운동해라, 하면서 들볶았습니다. 그런 저 때문에 그 사람은 거의 미쳐버릴 지경이 됐는데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 남자와 헤어지고 혼자 사는 어머니 집에 들어가 살며 다른 미용실에 취직했습니다. 그때부터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해 2년 동안은 매일 술로 살았습니다. 당시에는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끊어야지, 끊어야지’ 하면서도 술을 끊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다른 날처럼 술을 마신 다음 날 미용실에 출근하여 손님에게 커트보를 입혔는데 손님이 ‘저 다른 사람한테 자르면 안 돼요?’라고 했습니다. 전날 마신 술 냄새가 아침까지도 덜 빠져서, 제 입에서 술 냄새가 풍기고 있었던 겁니다. 그때 처음으로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진짜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괴로움이 극에 달했을 때쯤, 법륜스님의 정토불교대학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사실 불임 병원에 다니던 때부터 인터넷을 통해 법륜스님의 말씀 한 구절을 읽고 위로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로 법륜스님의 강연을 들으러 다니고 유튜브로 즉문즉설을 보면서 위로와 재미를 느끼기도 했던 터라 바로 정토불교대학을 인터넷으로 검색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장 괴로웠던 2015년에 저는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불교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미용실 일을 그만뒀지만 불안함은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다 정토회 활동가들의 얼굴을 보니 ‘저분들 얼굴은 어떻게 저렇게 밝지?’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전까지 저는 받는 것이 좋은 것이지 줘서 좋은 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봉사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봉사한다’고들 말했지만 저는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불교대학 수업 중 ‘수행 맛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새벽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오프라인 법당이 있던 때라 법당에 가서 절만 하면 눈물이 났는데, 울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술 냄새를 풍기며 법당에 갈 수는 없었기 때문에 술을 딱 끊게 된 것입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평생 끊지 못하던 술을 제가 단칼에 끊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입니다. 항상 술로 괴로움을 달래왔는데, 기도하고 법문을 듣고 도반들과 봉사활동을 하면서 제 마음속에 있던 불만족이 어느덧 채워졌습니다.
불교대학에 다니며 평생 연락을 끊고 살던 큰아버지와도 다시 만나 화해했습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이 없는 큰아버지와의 안 좋은 기억을 나누기 중에 풀어 놓았고, 저의 나누기를 들은 도반들이 ‘이제 화해하면 어떻겠냐’고 권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도반들의 말에 저도 모르게 용기가 생겨서 큰아버지를 찾아 얼굴을 뵙고 아버지의 소식도 전해 들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아버지가 묻힌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날 큰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제 마음속에 있던 아버지와의 관계도 편해졌습니다. 그렇게 큰아버지와 화해한 후 제 인생에 대해서도 용기가 생겼고, 내 인생은 내가 개척해서 사는 것이지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양주지회장 소임을 받았던 당시에는 ‘내가 한다’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법사님은 소임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도반들과 함께하는 거라고 조언해 주었지만, 그때는 그 말뜻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소통방에 지회 일거리가 내려오면, 저는 그것을 지회 전체의 일이 아니라 저 개인에게 떨어진 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일을 어떻게 할지 도반들과 함께 의논하지 않고 제가 얼른 해치우려고 했습니다. 모두가 24시간 정토회만 신경 쓰고 있는 건 아니므로 도반의 상황이 어떤지를 먼저 살펴야 하는데, 저는 무조건 일 이야기부터 했습니다. 그래서 경험이 많지 않은 도반들은 처음에 무척 힘들어했고, 저 역시 힘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도반과의 관계를 경쟁 관계로 생각한 것 같기도 합니다. 지회장의 역할은 도반들을 품어주는 것이라고 하는데, 저는 도반들을 살필 생각보다는 일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다 보니 일 잘하고 똑똑해 보이는 다른 도반이 경쟁자로 보일 때가 있었습니다. 가끔은 도반이 저에게 불편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지만, 그 마음을 받아주지 못했습니다. 제가 늘 일을 빨리, 잘하는 것에만 사로잡혀 있으니 도반들도 저에게 친밀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제가 상대를 대하는 마음이 오로지 일로만 가득하니, 상대방도 저를 그런 식으로밖에 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전문가가 아니니까 회의를 할 때도 좀 더 부드럽게, 조금 못하면 못하는 대로 유연하게 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행히도 ‘정일사’ 수련에 몇 번 참여할 기회가 있었고, 그때 법사님과 도반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 내용을 들으며 저와 도반들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저 자신이 개입된 일에는 ‘저 사람은 왜 저래?’ 하고 말기가 쉬운데, 간담회에 참관해 한 발 떨어져 바라보니 ‘저 도반은 저런 것이 힘들었겠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여유를 가지고 차분한 가운데 있어야 상황을 볼 수 있지, 그 상황에 몰두하고 있을 때는 오히려 잘 보지 못한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습니다. 저 자신을 바로 비춰보기는 어려웠지만, 그렇게 도반을 통해서 저를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문제를 모두 극복한 것은 아니지만 ‘일이 전부가 아니구나. 사람과 먼저 교류할 수 있어야 일도 되는구나.’ 하는 것을 조금씩 알아갔습니다.
제가 지회장 소임을 하고 있을 때, 어느 회의에서 모두가 동의한 안건에 한 도반만이 반대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삼의제는 지금도 연습 중이지만 그때는 삼의제를 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창기였기 때문에 모두 익숙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다수결이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혼자서 반대하는 도반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도반에게 법사님도 그렇게 말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다른 구성원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니 당신의 의견이 다르다 해도 다수의 의견을 받아들이면 좋겠다며 다수의 의견을 강요했습니다. 그 도반의 의견을 먼저 존중해주면서, 우리 모두 잘해보자는 것이니 좋은 쪽으로 한번 받아주기를 청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모두가 좋다는 데 왜 반대를 하나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러다 한번은 집 인테리어 공사 중에 싱크대를 설치해주는 사장님과 갈등을 겪게 됐습니다. 공사를 하기로 한 날에 비가 내려 공사가 지연되고 비에 젖은 자재를 사용할 수 없어 다시 사야 했는데 사장님은 그 돈을 제가 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한 분도 제가 내는 게 어떠냐고 했습니다. 이미 자재 비용을 냈던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강렬하게 남았던 도반과의 상황이 생각나서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한번 오케이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돈을 내서 자재를 다시 사기로 마음먹고 사장님께는 “네, 알겠습니다”하고 기다렸는데 그분이 자기 돈으로 자재를 새로 사 오셨습니다. 그때 저는 ‘아! 이렇게 사는 방법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일을 겪은 후로는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하는 순간이 있어도 한번 해봅니다. 그랬더니 제 생각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는 일이 꽤 많았습니다. 정토회에도 다양한 도반들이 있습니다. ‘저 도반은 왜 저러지? 저 행동이 말이 돼?’ 하던 저도 그때부터 사람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조금씩 생겼습니다. 한번 받아들여 보면 결코 말이 안 되는 일은 없음을 알게 된 것이야말로 소임을 하며 얻은 가장 큰 소득입니다.
소임을 하는 동안 제가 의무감에 눌려 있었고, 남을 많이 의식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소임을 내려놓고 회향 기간을 맞이하면서 그동안 수행자로서 다잡아온 생활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소임 중에는 새벽에 일어나야 할 일도 많았고 항상 저 자신과 우리 집의 상황을 살펴야 했는데, 소임을 내려놓고 나니 생활이 급속도로 느슨해졌습니다. 정토회와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8~9년이 되어 가고 새벽 정진도 꾸준히 해왔으니 기본적인 힘은 생겼으리라 생각했는데, 회향 기간에 그 믿음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소임이 저를 잡아주는 중심이고 소임이야말로 복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을 무거운 의무감으로 했으니, 내려놓은 다음에는 ‘이제 해방이다’ 하면서 풀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수행도 자연히 더 익어갈 거라 생각한 것은 저의 오산이었습니다.
회향하고 나서 인도 성지순례를 떠나기 전부터 아침 정진을 빼먹는 일이 많아졌고, 성지순례에서 코로나에 걸려 돌아온 다음에는 또 2주 정도 아침 정진을 못 했습니다. 지금 있는 행복본부는 일이 많지 않아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인데, 그러면 그 한가한 시간에 술 생각이 납니다. 또,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고, 정말 하고 싶지 않았던 행동이 습관처럼 그냥 일어납니다. 빈틈이 조금만 생겨도 예전에 가지고 있던 문제가 바로 치고 들어오는 것에 저도 놀랄 지경입니다. 과거의 습관은 그 힘이 정말 강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말로는 ‘초심으로 돌아갔네’ 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이 순간을 잘 견디지 못하면 다른 길로 빠질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생깁니다. 살아온 업식은 결코 금방 고쳐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는 요즘이 제 수행의 슬럼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3년 전쯤 공황장애와 불안장애 증상을 겪었습니다. 신체적인 증세가 있었지만, 이비인후과와 호흡기내과, 한의원 같은 엉뚱한 병원만 찾아다니다가 최근 우연히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저의 신체적 증상이 정신의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되어 1년이 조금 안 되게 약을 먹고, 비상약을 가지고 있다가 아침에 불안 증세가 일어나면 약을 먹습니다. 저는 수행이 모든 문제를 치유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병원에 가야 할 일은 병원에 가야 나을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예전에 나눔의 장에 가서 받은 저의 명심문은 ‘그 어떤 것도 기대하거나 바라지 않습니다. 지금 이대로 감사합니다’입니다. 이 명심문으로 매일 기도 나누기도 하고, 어떤 상황이 일어나든 그 상황은 다 저 자신이 만든 것임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정진이 잘 안 되고 기도를 빼먹기라도 하면 괴로움이 생겼습니다. 지금도 괴롭기는 하지만 이 괴로움을 계기로 저 자신을 알아갑니다. 과거에 술을 많이 마시고 방황했던 것도, 그 괴로움이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 법을 만난 것으로 생각하면 참 감사합니다. 요즘도 아침에 일어나면 이유 없이 불안하거나 공황장애 증세를 느낄 때가 있지만 모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사로잡히지 않는 연습을 하는 중입니다.
저는 누구에게든 ‘정토회에 오시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저 자신에게 좋다는 것을 정말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예전과 똑같이 살면서 돈을 많이 벌고 좋은 물건을 사고 여행이나 다니며 살았으면 어땠을지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저는 정토회를 만나 봉사하며 산 시간이 제 인생 최고의 시간이었습니다. 8, 9년을 수행해도 저 자신이 변한 것은 없지만, 그런 저를 받아들일 힘이 생겼습니다. 저는 항상 스스로가 못마땅해서 술로 불만족을 해소하려 하고 현실에서 도피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남과 나를 비교하고 있는 나조차 나라는 것을 압니다. 아침에 기도할 때마다 ‘괜찮아’ 하고 받아들이니 저 자신과 점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세상에 저를 받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제가 받아줍니다. 이제는 정말 법륜스님도 법사님도 그 누구도 아닌, 오로지 부처님 법에 의지하고 나 자신에게 의지하며 나아가려 합니다.
인터뷰하는 내내 ‘조희영 님을 인터뷰하게 된 것은 운명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느 희망 리포터들과 마찬가지로 정토행자들의 생생한 수행담을 듣고 싶어 리포터 소임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인터뷰 기사에서 삶이 180도 달라진 선배 도반들의 사례를 읽을 때면 존경하는 마음이 드는 것과 함께 왠지 모를 답답함도 느꼈습니다. 작은 일에도 늘 마음이 흔들리고 고민하는 저에게는 너무나 먼 남의 일이었기 때문일까요? 마침내, 조희영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답답함이 어느 정도 풀렸습니다. ‘수행으로 나를 바꾸지 못하더라도, 그런 나를 받아줄 힘이 생기는구나.’ 하고 알았기 때문입니다. 매일 엎어지고 자빠지며 가는 저에게 ‘그래도 괜찮다’고 격려해주는 인터뷰였습니다. 저처럼 감동할 도반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글_윤자형(인천경기서부지부 인천지회)
편집_홍윤미(인천경기서부지부 부천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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