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정토행자의 하루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문제 없습니다

월요일자, '16년 9개월, 7년의 세월' 기사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그냥 가봅시다!

깔보는 업식

“형수, 내가 형수 정말 싫어했던 거 아요?” 뜬금없이 술 걸친 시동생의 전화입니다.

‘이건 또 뭐야? 왜 형제가 쌍으로 난리야. 둘이 짰냐? 나도 싫거든.’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저는 자그마치 16년 9개월을 수행한 사람입니다.

“솔직히 형수가 상대하기 편한 사람은 아니잖아요. 자기 할 말 다 하고, 자기주장 강하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형수, 아니 형수님! 죄송했습니다. 제가 이때까지 형수님을 지켜보니까 형수님이 착해. 진실 되요. 제가 앞으로 잘할게요. 지난 일은 용서하세요. 정말 잘할게요.”

‘왜 이러지? 시동생이 어디 아픈가? 아니 이집 식구들은 어디 아파야 사과를 하나? 딱 보면 내가 괜찮은 사람인지 알아야지, 그걸 30년 만에 깨달아?’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저는 자그마치 16년 9개월을 수행한 사람입니다.

양파 같은 내 업식
▲ 양파 같은 내 업식

시댁 형님(남편 누나들)들은 제 말 한마디면 토달지 않습니다. 그렇게 저를 신뢰하고 좋아했는데 유독 시동생은 저를 싫어했습니다. 전 이유를 알죠. 원인 제공을 제가 했으니까요. 저는 저보다 5살이나 더 많은 시동생을 깔봤습니다. 제가 양파 같은 사람입니다. 업식을 까면 깔수록 새롭게 나오는데 그중 또 하나가 '깔보는 업식'이 있습니다. 돈 많다고 자랑하면 (배 아파서) 깔봅니다. 자식들 공부 잘한다고 자랑질하면 (부러워서) 또 깔봅니다. 일단 깔보고 시작합니다.

시동생을 깔보는 밑 마음에는 ‘내가 너보다 낫다. 돈 많다고 유세 떨지 마라’는 무시가 있었습니다. 시동생은 제게서 그걸 본 것입니다. 그런데 시동생 마음이 돌아선 이유는 제가 정말 시어머니를 존경했고, 어머니 아플 때 최선을 다했다는 걸, 어느 날 느꼈기 때문이랍니다.

우월감은 곧 열등감

시동생이 사과했지만 실은 제가 정말 미안했습니다. 시댁 식구들은 저를 착하다고, 정토회다니더니 사람이 바뀌었다고 했지만, 저는 알지 않습니까. 제가 어떤 사람인지. 제가 얼마나 사람을 깔보는지 남은 속여도 저 자신까지 속일 수는 없으니까요. 저와 같이 일 한 도반들이 오죽했으면 '아상'이라는 별명을 지어줬겠습니까. 저도 모르게 '잘났다'는 분별이 불같이 일어납니다. 최근 법사님 인터뷰를 하면서 '잘났다'는 우월감은 자기 안에 '열등감'과 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제안에 열등감을 타인에게서 발견하면 더 깔보는 마음이 올라오는 걸 알았습니다. 그 발견, 새롭고 기뻤습니다.

먼저 벗는 자, 행복하다
▲ 먼저 벗는 자, 행복하다

지금은 깔보는 마음이 올라오면 말합니다. "나 지금 너 깔본다"라고. 신기한 건 말함과 동시에, 알아차림과 동시에, 깔보는 마음이 많이 쪼그라듭니다. 그리고 또 저에게도 말합니다. "아이고, 아무개 씨(접니다). 잘난 척하고 싶으셨어요?" 그렇게 말하고 웃어버립니다.

어쨌든 삐딱했던 남편과 시동생까지, 양파 같은 업식을 봐가며 잘 넘겼습니다. 그렇게 가정이 안정되기까지 저는 정토회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8년간 저녁마다 법당에 갔습니다. 때론 주말도 없었습니다. 남편이 사이비 종교에 빠진 거 아니냐고 할 만큼 다녔습니다.

옥탑방 열린법회

그 당시, 집에서 열린법회를 시작할 때였는데 저도 열린법회를 열었습니다. 우리 집, 옥탑방이었습니다. 비가 오면 법문을 듣다가도 신발을 집안으로 들여야 하는 옥탑방. 그런 옥탑방이었지만 열린법회를 하기 위해 집안 도배를 새로 했습니다. 도배한 그 날, 친정 언니가 말했습니다.

“너, 진짜 창피하지 않니? 이 집에 사람들을 부른다는 게? 사람들이 욕해”
“왜 창피해? 부처님 법을 전하는데? 그래서 도배도 했잖아.”

제가 15년 전쯤, 전세 5,600만 원의 옥탑방에 살 때, 우리 집 법회에 오던 사람들은 열 배도 넘는 집에 살았습니다. 언니는 세상의 눈에서 객관적으로 말해주었던 것입니다.

내방 부처님
▲ 내방 부처님

제가 어디서 그런 당당함이 나왔는지 잘 모르겠는데 당당하게 오전 오후로 열린법회를 열었습니다. 오전에는 제가 출근하면서 간식을 차려놓고, 동네 엄마에게 집 열쇠를 주었습니다. 동네 어린이집 엄마들과 들으라고요. 그렇게 열린법회 듣고, 〈깨달음의 장1〉에 간 집이 네 집이나 있었고, 그 중 두 집이 늦둥이를 낳았습니다. 깨달으면 늦둥이가 생기나요? 참 신기한 일입니다. 지금이라면 옥탑방 열린법회를 하겠냐고요? 왜 그러세요? 선수끼리. 저는 이미 이브의 선악과를 따먹은 지 오래입니다.

저는 ‘희망세상 만들기 300강 강연’할 때, 몇 군데 강연도 맡았습니다. 지금처럼 온라인 홍보가 활성화된 것이 아니어서 퇴근하고 홍보 플래카드를 새벽까지 걸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에너지를 너무 쏟았는지 8년간 했던 봉사가 어느 날 너무 하기 싫어졌습니다. 2017년, 마침 딸이 고3이니 1년만 쉬고 오겠다고 봉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엄마가 봉사를 쉬는데 고3 딸은 왜 같이 공부를 쉬는 걸까요? 이것이 바로 스님이 말한 '따라 배우기'인가요? 암튼 신기한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1년만 쉬기로 한 것이 2년 되고, 3년 되고, 그렇게 4년을 내리 쉬었습니다.

같이 놀던 도반이 법사가 되어

4년을 내리 쉬고 돌아오니 정토회는 많이 바뀌어있었습니다. 저랑 같이 활동했던 도반들이 대부분 법사님이 되었습니다. ‘아무개야’라고 놀리던 도반이 상담 법사님으로 들어왔습니다. 학교 다닐 때 놀려먹던 친구가 직장 상사로 나타난 느낌? 딱 이해되시죠? 그런데 그보다 더 놀랍고 신기한 건, 4년 전에는 저랑 비슷한 수준이라 여긴 그 도반이 법사님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짱나게 말이죠.

문경부처님
▲ 문경부처님

제 안에 마음을 봤습니다. 또 비교하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이 법사가 될 동안, 나는 뭐 했나? 분명 그들과 나의 첫 출발선은 같았는데 왜 지금 도달한 지점이 다를까?’ 그 비교하는 마음은 봉사를 다시 시작한 저를 한동안 괴롭혔습니다. 저는 법사를 하나의 봉사 직책으로 보지 않고, 상하 계급으로 나누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경쟁심 많은 제가 뒤처졌다는 생각이 들밖에요. 참 재밌지 않습니까. 사회에서의 경쟁, 성과, 이런 것에서 자유로워지려고 정토회 봉사를 한 것인데 똑같이 움켜쥐고 있는 저를 보니 말입니다.

어쨌든, 법사가 된 도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제가 봉사를 4년간 안 쉬었어도 법사가 되긴 힘들었겠다는 것을요. 무엇보다 근기가 달랐습니다. 저는 제 업식을 바꾸려는 간절함이 일단 없었습니다. 남편 덕분에 억지로 떠밀려 수행했을 뿐, 대결정심은 없었습니다. 어차피 더 나이 들면 새벽잠이 없어질 텐데 그때 가서 새벽 5시 기도를 하겠다는 저와, 핑계 없이 "예"하는 법사님과 다를 수밖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정토회 봉사는 상하계급이 아니라 그냥 그 역할에 맞는 봉사를 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것을 인정하니, 아쉬운 면이 있는 이런 저도 괜찮습니다. 누구나 다 같은 길을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제가 선택한 길은 대결정심은 부족해도 꾸준히 가는 '오래된 새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이 그려준 부처님
▲ 딸이 그려준 부처님

‘정토행자의 하루’에서 3년간 봉사하면서 인내심도 많이 생겼습니다. 사회에서는 저와 다르면 안 보고 맙니다. 그런데 정토회 도반과는 봉사를 같이해야 하고, 팀이 굴러가야 했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도반의 말을 자르고 제 말을 먼저 하고 싶은 욕구, 엄청났습니다. 또, 뭐든 명령을 좋아하는 제가 일단 들어야 하는 것은, 3년간의 수행 과제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회의하다가 도반을 울리기도 했습니다. 제가 울렸던 그 도반들과 다시 2차 만일을 함께 엽니다. 그런데 참 행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지금 제 눈에 세상은 부조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지는 않으니 고맙습니다. 어쩔 땐, 아니 자주, 제 자식에게 뜨거운 불덩이가 올라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자식의 인생이고, 저는 제 인생을 살아갑니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늘도 새벽 5시를 넘기고, 6시도 넘겨, 아침 기도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빼먹고 합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오늘 기도 놓친 당신, 아무 문제 없습니다. 잠들기 전이라도 '그냥' 하면 됩니다.


글_편집_정토행자의 하루 편집팀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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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글이 넘 재밌네요 ㅎㅎ 생동감 있어요

2023-08-23 10:35:03

강인경

저도 대결정심이 부족함을 알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빼먹고 합니다

2023-08-14 21:13:36

진영희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ㆍ예ㆍ하고 그냥합니다.

2023-08-13 13: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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