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정토행자의 하루
정토불교대학
인현 법우의 전법 역사

2022년 불교대학 1만 명 전법의 해를 맞이하여 초창기 정토 불교대학 홍보를 이끈 덕생법사님과 전법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지금 정토불교대학의 모습이 갖춰지기까지 그 시작과 변천사는 어떠했는지, '인현 법우'라는 법명으로 초기 불교대학 실무 간사로 활동했던 덕생법사님의 역사를 통해 돌아보았습니다.

두북에서 대전편찬회의 중인 덕생법사님
▲ 두북에서 대전편찬회의 중인 덕생법사님

정토불교대학의 시작

덕생 법사: 1990년대는 불교 교리교육을 새롭게 하려는 ‘불교의 현대화’ 과정이 막 시작했던 시기입니다. 1991년 <정토불교대학>이 개원함으로써 불교 교육의 선구적인 역할을 시작했습니다. 당시를 돌아보면 저는 개척이란 단어가 생각납니다. 불교대학의 커리큘럼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모으는 게 참 절실했습니다. 정토회만큼 포스터와 전단을 전국에 많이 붙인 단체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각 대학, 안국동, 조계사 등 서울 각 지역에 붙였습니다. 정토 포교원에 살고 있던 청년들과 함께 밥 먹자마자 바로 붙이러 나가고, 직장을 끝내고 와서 또 붙이러 나갔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포스터 붙이러 가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주소록을 확보해서 홍보물을 발송하는 일도 참 많이 했습니다.

법륜스님은 처음부터 봉사자들을 기초로 해서 운영을 해야 한다는 지침을 주셨기 때문에 보수법사님과 저 두 사람은 봉사자들과 함께 일 했습니다. 교육생이 들어오면 그 분들 중에서 봉사자를 발굴했습니다. 그 열의로 불교대학을 개척했습니다.

서초법당에서 불교대학 진행 중 (좌 95년, 우 93년)
▲ 서초법당에서 불교대학 진행 중 (좌 95년, 우 93년)

법륜스님, 불교계의 석학들과 대학교수로 편성된 강사진과 법륜스님의 지도하에 보수법사님이 만드신 커리큘럼에 대한 자부심으로 사람들에게 전법 하였습니다. 프로그램이 워낙 좋았고, 강사진도 누가 봐도 좋았기 때문에 작은 인원수로 일했지만, 시작했을 때부터 많은 수가 모집되었습니다. 통신 대학생 수도 100여 명이 넘었습니다. 통신 대학 규모도 매우 크게 시작했습니다. 정토 불교대학은 2~3년 사이에 빠르게 자리 잡았습니다. 초창기의 정토불교대학은 '정말 괜찮은 대학이구나. 강사진도 화려하고 가르침도 분명하고 쉽다.'라는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외부 강사의 수업은 듣기 좋고 재미는 있었지만, 실생활과 수행 생활에는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평가가 나와, 지금의 커리큘럼으로 바꾸었습니다.

대각사에서 불교대학 (1992년)
▲ 대각사에서 불교대학 (1992년)

카세트 테이프 시절

법륜스님이 설하신 실천적 불교사상, 부처님의 일생, 불교의 변천사 등의 핵심 부분 외에 불교와 환경, 불교와 교육, 불교와 과학, 비교종교 등 다양한 영역이 편제되어 젊은 사람들에게 전법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1학기가 시작하고 수업을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를 보내주는 통신대학을 개설하여 전국적으로 사람들의 호응이 컸습니다. 지금의 온라인 방식과 비슷했기에 정토불교대학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거의 동시에 출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93년 불교대학 장소가 대각사에서 서초동으로 옮겨졌습니다. 처음에는 2년 과정으로 시작하여 6개월마다 모집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청주나 대전에서 서초동까지 와서 불교대학을 듣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지도 법사님의 비디오테이프 불교대학으로 전환되기 전까지 유수 스님은 홍제동과 서초동에서, 보수법사님은 전국을 다니며 강의하셨습니다.

비디오 테이프 시대 개막

박종숙 국장: 혹시 비디오 시대로 넘어가면서 논쟁은 없으셨나요?

덕생 법사 : 사실은 제가 제일 반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직접 사람들하고 대면해 강의해야 한다는 집착이 안 놓아졌습니다. 막바지에 가서는 제가 더 선도적으로 “갑시다! 비디오 불교대학으로 넘어갑시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도법사님의 말씀을 모든 사람이 직접 들으면서 가르침을 통일할 수 있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더 많은 곳에서 비디오 불교대학을 열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행동하는 불교

박종숙 국장: 보수법사님이 하셨던 진행자라는 부분도 간과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법문은 기본으로 중요하고, 그걸 같이 펼치고 사람들을 관리하고 이끌어주는 중요한 부분으로 정토 불교대학의 역사가 이어져 내려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덕생 법사: 맞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의 정신을 살릴 수 있었던 것은, 말로만 바른 불교, 쉬운 불교, 생활불교라는 구호를 내건 것이 아니라, 실제로 진행하는 사람이 그런 입장과 관점을 갖지고, 그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불교대학에 들어오시는 분들이 그런 것들을 함께 지속해서 해나가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직접 담당하면서 진행했던 분들이 워낙 헌신적으로, 자기를 내려놓고 이타적인 관점을 가진 봉사 정신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진행자는 모범과 모델 역할에 앞장섰던 분입니다. 아이, 남편, 부모와의 괴로움으로 정토회를 오신 분들이, 불교대학을 통해서 관점을 바꾸고, 정진을 통해 법의 기쁨을 체험합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자기를 돌아보고 집착을 내려놓는 정토회 시스템을 거치면서 지역에서 열심히 뒷바라지하고 진행자 역할도 하며 지금의 대중 법사가 되었습니다. 봉사 교육 같은 경우, 봉사자들이 직접 가서 강의 하기도 했습니다. 비디오 강의와 오프라인 강의가 결합된 방식이 상당 기간 이어졌습니다. 자원봉사 활동은 초창기부터 내부에 있는 분들을 섭외해서 전국적으로 탐방을 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에 봉사 활동을 정착하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영상 법문을 듣고 있는 불교대학생
▲ 영상 법문을 듣고 있는 불교대학생

신자가 아닌 수행자를 키우는 불교대학

덕생법사: 법륜스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정토회의 인연들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괴롭고 힘든 사람이 와서 먼저 자기 문제를 해결한 뒤, 남은 생을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의 대표적인 분이 자재 법사님입니다. 가족 문제로 힘들어서 오셔서 그 문제를 해결한 후 타인을 돕는 방향으로 관점을 바꿔 살면서 대중 법사 1호가 되신 분입니다. 75세가 넘을 때까지도 꾸준히 헌신하면서 신나게 살고 계십니다. 정토회에 오면, 가족들과 밥해 먹고 수다 떨거나 사람들과 시기하고 싸우는 것을 넘어서서 이웃을 생각하고 법의 이치를 이야기하고 도반들과 재미나게 살게 됩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통일문제, 북한 난민들 도와주는 문제, 인도 불가촉 천민들 돕는 문제 등 어린 시절에 막연하게 꿈꾼 염원들이 법륜스님을 만나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실현되는 기쁨을 알게 됩니다.

선배 도반들은 지금 90세도 있고, 80세, 70세도 있습니다. 그다음인 저희가 60대입니다. 혼자라면 정말 생각하지 못했던 이러한 삶들을 정토회에서 좋은 스승 만나 참 멋지고 신나게 잘 살아왔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자잘한 번민이나 고민은 별로 생각할 틈이 없어집니다. 우리 정토회 여성 파워는 엄청나지 않습니까? 여성들이 이렇게 자기를 성장시키는 데 있어서 정토회가 기여를 많이 했다고 생각합니다.

장은미: 불교대학 하시면서 혹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덕생 법사님: 어려운 것은 아니었는데요. 이런 얘기를 여기서 해도 될지 모르겠으나 보수법사님한테 제가 시샘을 좀 했습니다. 보수법사님은 커리큘럼과 강의를 주로 하고 저는 실무를 맡았습니다. 처음에 보이지 않게 ‘그래, 너 잘났다’ 하는 시기하는 마음이 조금 있었습니다. (웃음) 일을 하면서 어려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법륜스님이 갖고 계신 혜안과 지침이나 방향이 그 시대를 약간 앞서가면서 그 당시 대중들을 설득할 수밖에 없었고, 늘 사람들이 호응할 수밖에 없는 내용을 갖고 나오셨습니다. 불교대학 내용들도 그 당시에 뭔가 불교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다 해보고 싶어 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일이 됐습니다. 마음먹고 하면 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핵심적인 부분의 지침이나 방향은 늘 지도법사님께서 채워주셨기 때문에 불교대학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초파일 부처님의 오신날 행사에 참여한 덕생법사님 (1993년)
▲ 초파일 부처님의 오신날 행사에 참여한 덕생법사님 (1993년)

광주전라에서 정회원의 날 (2021년)
▲ 광주전라에서 정회원의 날 (2021년)


패기 넘쳤던 젊은 법사님들의 통통 튀는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겹칩니다. 차분하게 설명해 주시는 현재의 법사님 모습 뒷면에 현수막 붙이고 전단지 만들고 각종 홍보물을 들고 거리에서 뛰어다니시던 모습들이 떠오릅니다. 불교대학 강의가 전면으로 나섰지만, 그 뒷 면에는 수많은 현수막과 포스터와 이름을 붙이는 또 다른 조각이 있었습니다. 법사님의 젊은 시절을 원 없이 전법에 바치신 것에 뭉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발로 뛰는 분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이 길을 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글_최미영 희망리포터(서울제주지부 서대문지회)
편집_서지영(행자의하루 편집팀)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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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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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진

정토행자의 하루에서 제가 있는 '광주전라' 검색어로 보게된 법사님. 깨달음의 장 2199차 안내자님 이셨죠. 고맙고 감사한 인연 입니다.

2023-09-03 09:11:09

유정

법사님,

법사님 생각이 문득 난 것이 이렇게 법사님 인터뷰까지 볼 수 있게 되었네요.
깨달음의 장에서 안내해주시던 법사님의 목소리를 한 번씩 가만히 떠올려 봅니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깨달은 바 대로 살아야지 하고 다시 다짐하게 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셔요..!

2023-06-23 00:07:14

명일

마음먹고 하면 일이 되었다는 말씀 새겨봅니다. 젊은 시절의 모습이 낮서네요. 부처님의가르침과 정토회를 일구어 오신 법사님들의 모습에 뭉클합니다.

2022-09-23 12: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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