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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아들이 피아노에 머리를 세게 부딪쳤습니다. 이후 시름시름 앓다가 의식을 잃어 종합병원에 데려가니 뇌수막염이라고 했습니다. 치료를 잘해서 좋아진 줄 알았는데,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간질 발작이 시작됐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이 사실을 도반들이 알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엄마였습니다. 아이가 길에서 발작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으면 정신없이 달려갔습니다. 아들은 몸부림치면서 발작을 했고, 발작이 끝나면 풀린 눈으로 길가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때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끌어안고 벽에 기대어 울기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어느 날은 서울에 있던 아들이 병원에 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가보니 3층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온몸은 피투성이고, 얼굴은 찢어지고 터져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습니다. 뇌를 심하게 다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계속되는 발작에, 제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 누굴 원망하는 대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3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 3시에 일어나 300배를 했습니다. 기도하면서 불안했던 제 마음이 차츰 편안해졌습니다. 이전에는 뇌 수술을 하면 아이가 꼭 죽을 것만 같아, 병원에서 수술을 기다리는 아이를 데리고 나와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 수술하고 싶다는 아들의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잘되면 정말 좋겠지만 지금까지 최선을 다했으니 잘못되더라도 받아들이자는 마음이 되니 담담해졌습니다.
아이가 수술할 때, 문경 대웅전과 서울 정토회관에서 많은 도반이 함께 기도해주었습니다.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그 공덕으로 아이는 점점 건강해졌습니다.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을까 했던 아들은 지금 직장에 잘 다니고 있습니다. 장애인 시설에 가서 봉사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졌고, 잘 쓰이고 있습니다.
아들은 한창 아플 때도 대중이 모인 곳에 가면 본인이 먼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지병이 있는데, 혹시 발작이라도 하면 구석으로 밀어 놔주세요. 놀라서 응급실 데려갈 필요는 없습니다. 금방 깨어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아들은 엄마인 저보다 한 수 위가 분명합니다. 처음부터 지혜로웠으면 바로 길이 보였을 걸, 제가 무지해서 가족에게 고생만 잔뜩 시키고, 돌고 돌아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문경 수련원에서 4차 천일결사 입재식을 했던 때였습니다. 대전정토회 총무였던 저는 아이 문제와 도반과의 갈등이 겹쳐 심난한 상태였습니다. 어떡하면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무뚝뚝한 성격에 소통도 부족하고,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일은 잘 저질렀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봉사자들마저 서서히 한 명씩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 당시에는 입재식이 끝나면 법륜스님께서 문경 큰길까지 내려오셔서 일일이 악수를 해주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전 입재식 까지는 다른 사람들 손 잡아주려면 스님이 힘드실 것이라 생각해서, 살짝 스님을 피해 먼저 차에 탔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왠지 스님 손을 잡아야 이 답답한 문제를 풀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스님, 손 좀 잡아주세요" 그랬더니, 스님이 어떻게 제 마음을 아셨는지, “보살. 내가 손만 잡을 줄 아나. 안아줄 줄도 알아.” 하면서 딱 안아주시는데,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 순간, 내가 사람들의 마음을 품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힘들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문경에서 대전까지 2시간 넘게 걸리는 길을 얼마나 울면서 왔는지 모릅니다. 차에서 내려 도반들의 손을 잡고 "내가 잘못했어." 하면서 싹싹 빌었습니다. '내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구나. 마음에 안 든다고 배척했구나. 내 뜻에 맞지 않는다고 외면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팍 숙이는 길이 자신이 사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도반들의 의지처가 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숙이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5년 전 행자교육 중에 갑상선 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처음 암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올 것이 왔구나. 고집 세고 드센 나를 숙이게 하는구나.'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법륜스님을 뵙고 "제가 이 병에 걸렸으니 정토회에 누가 될까 걱정입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럼 서암 스님도 법정 스님도 암으로 돌아가셨으니 불교계에 누가 되겠구나." 하시면서 단번에 마음을 가볍게 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병은 병일 뿐이고, 아프면 병원 가고, 과로하면 쉬면서 그냥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가볍고 생활은 즐거워졌습니다. 이렇게 일체중생의 은혜 속에 살고 있습니다. 오래전 부모님도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지금 저는 부모님보다 10여 년 더 살고 있으니 이 또한 기적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다음 이 시간에 세 번째 이야기가 계속 됩니다.
낭독_고정석
글,사진_대전충청지부 희망리포터
편집_온라인.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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