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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93일째 날입니다. 오늘은 정토불교대학 강의를 하고, 사회 원로들과 함께 ‘전환포럼’을 준비하는 모임에 참석해 정담을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뒤 정토불교대학 강의를 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오전 10시 15분이 되어 정토불교대학 오전반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지하 대강당에는 150여 명의 학생이 자리했고, 온라인 생방송 반에는 170여 명이 접속했습니다.
오늘은 부처님의 일생을 배우는 세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부처님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사문유관(四門遊觀)과 출가 과정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출가 이후 6년 간의 고행과 구도 과정에 대해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삼귀의와 수행문을 함께 읽고 삼배의 예로 법을 청하자, 스님이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후 성도(成道)에 이르기 전까지 어떻게 수행하였는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부처님은 왕궁을 떠나 출가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숲 속에 앉아 명상에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며칠이나 몇 달 쯤이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셨습니다. 10여 년 동안 간절히 바라던 출가의 길이었으니까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곳까지 와서 명상을 시작했으니, 이제 곧 깨달음이 찾아올 거라 믿었던 거예요.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 사흘이 지나도 깨달음은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배는 고파서 꼬르륵거리고, 독충은 물고, 짐승들이 울부짖는 밤은 사무치게 추웠습니다. 깨닫기는커녕 살아 있는 것조차 버거운 나날이었습니다. 부처님은 배가 고파 결국 마을로 나가 걸식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받았지만, 왕자의 몸으로 그 음식을 입에 넣으려니 도무지 목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억지로 삼키려다 구역질이 나고, 결국 토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보며 마음 깊이 자책했습니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가. 10여 년 동안 그렇게 바라던 출가 수행자가 되지 않았는가. 드디어 그 소원을 이루었는데, 따뜻한 밥 한 끼와 편한 잠자리만 생각하고 있다니, 이러자고 출가 수행자가 되었단 말인가?'
그때 문득 ‘혼자서는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스승을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부처님은 스승을 만나 수행자 무리에 들어간 뒤 용맹 정진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완전한 깨달음이 아니라고 여겨 스승을 떠나 홀로 수행 정진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정진했는지, 몸은 말 그대로 피골이 상접할 정도였습니다. 무려 6년 동안이나 온 힘을 다해 정진하신 겁니다.
당시 출가 수행자들은 기본적으로 고행주의자들이었습니다. 부처님 역시 고행자(苦行者)였기에, 몸에 대한 집착을 끊겠다는 마음으로 목욕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자리를 깔 때도 편하거나 폭신한 것을 쓰지 않았고, 부드러운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어깨에는 때가 끼고 이끼가 자라고 벌레가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그 벌레를 잡아먹으려고 새들이 날아와 어깨에 앉기도 했습니다. 새들이 어깨를 쪼아 대고 그 위에 똥을 싸도 부처님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숲에 놀러 온 천민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고 ‘저 사람 죽었어!’, ‘아니야. 살아 있어!’ 하며 서로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어떤 아이는 흙덩이를 던져 보고, 또 어떤 아이는 나뭇가지로 귀를 찔러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부처님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경전에 따르면, 당시 부처님은 그런 짓을 하는 아이들에게 짜증도, 미움도 일으키지 않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수행에 깊이 몰입해 계셨던 것이죠. 이처럼 부처님은 극한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경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 한순간만 마음을 놓쳐도 그 자리에서 그대로 쓰러져 죽을 만큼 극한에 다다랐을 때, 마왕 마라가 나타나 속삭입니다.
‘여기서 너 혼자 고행하다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차라리 고행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라. 너는 전륜성왕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다. 세상을 다스릴 왕이 될 수 있는데, 이 깊은 숲속에서 수행하다 죽는다면 아무 의미도 없지 않으냐.’
이 장면은 마치, 성경 속 예수가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받던 때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단호히 말합니다.
‘마왕 마라여, 물러가라. 나는 너의 군대를 잘 알고 있다. 너의 군대는 탐욕, 분노, 어리석음, 질투 등이다. 그러나 나는 너의 군대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문자풀을 입에 물 것 같으냐?’
문자풀(muñjamāyā)을 입에 문다는 것은 고대 인도에서 항복의 표시였습니다. 그러니 부처님께서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는다는 굳은 의지를 밝히신 거죠. 그리하여 마왕의 군대 열세 가지를 하나하나 나열하며 그 본성을 꿰뚫어 보고, 어떤 유혹과 협박에도 항복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섯 도반은 깊이 감동하여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저분은 우리가 감히 흉내 낼 수도 없는 고행을 행하시는 위대한 수행자이시다. 저렇게 정진하면 반드시 곧 깨달음을 얻으실 것이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출가한 지 어느덧 6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깨달음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마왕 마라가 다시 속삭입니다.
‘깨달음이라는 건 말뿐이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아. 열반이란 것도 말만 있을 뿐, 그런 경지는 애초에 없어. 이렇게 고행하다 죽으면 모든 것이 허망할 뿐이다. 그러니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 전륜성왕이 되는 길을 택해라.’
여기서 핵심은 마왕이 ‘깨달음은 없다.’라고 속삭인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국가고시나 의사 시험을 준비할 때는 분명한 답이 있고, 정해진 목표가 있습니다. 그러나 깨달음을 향한 수행은 다릅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니면 헛된 말일뿐인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마치 아무런 단서도 없이 보물을 찾는 일과 같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나타나지 않으면 정말 없는 것인지, 아니면 있는데도 못 찾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누구도 답을 알려줄 수 없는 길이기에 의심이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부처님은 ‘이러다가 죽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차라리 고향으로 돌아가 전륜성왕이 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경전을 기록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부처님이 수행 중에 깨달음에 대해 의심하였다고는 감히 적을 수 없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부처님은 애초에 깨달음을 이룰 것으로 예정된 분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내면의 갈등을 마왕의 유혹에 빗대어 표현한 것입니다.”
이어서 스님은 부처님이 그동안의 수행을 돌아보고 중도를 발견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 후 강의를 마쳤습니다. 학생들은 다음 주까지 수행 연습을 꾸준히 해 본 후 다시 만나기로 하고, 조별로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차를 타고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위치한 대화문화아카데미로 향했습니다.
얼마 전 대화문화아카데미 강대인 명예 원장이 스님을 찾아와 서로 다른 생각과 입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열린 대화의 광장 역할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쳐 오늘은 사회 원로 20여 분을 모시고 ‘전환포럼’을 준비하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오후 1시에 대화문화아카데미에 도착하여 강대인 원장과 담소를 나누고, 참석자들과 함께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오후 2시부터 참가자 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한국 사회의 각 분야를 이끌어오신 사회 원로들이 한 분씩 소개되자 큰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이어서 대화의 문을 여는 의미에서 이 모임의 디딤돌 역할을 해 주기로 하신 세 분이 기조 발언을 했습니다. 먼저 강대인 원장께서 오늘 모임의 취지를 소개했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의 분열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12.3 비상계엄 이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지 않았습니까. 이런 시국에 사회 원로들이 역할을 좀 해야 하지 않느냐는 제안이 있어서 도법 스님, 이남곡 선생님, 법륜스님, 정성헌 선생님, 그리고 제가 한자리에 모여서 국민 통합을 위해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자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참석자를 확대해서 정담을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고, 향후 3년간은 집중적으로 대화의 장을 열어 볼까 합니다.
지금과 같은 기후 위기 시대에는 생명과 환경의 가치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지만, 우선 첫 단계로는 정치의 전환을 주제로 대화를 해 보려고 합니다. 선진 사회로 가는 가장 큰 걸림돌이 정치인 것 같습니다. 담론 위주의 논의는 지양하고, 실천 가능한 방법을 제시한 워크숍 형태의 모임을 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DMZ생명평화동산 이사장 정성헌 님이 꿀벌을 주제로 화두를 던졌습니다.
“오늘이 꿀벌의 날입니다. 꿀벌이 너무 많이 죽으니까, 유엔에서 꿀벌을 보호하자고 지정한 날입니다. 벌이 멸종하면 인간도 죽습니다. 벌이 인간에게 이로운 열매를 맺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기후 위기 이전에 식량 위기가 오게 되는데, 그 첫 번째 징표가 꿀벌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두 번째 징표가 토양에 미생물이 격감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저는 꿀벌 민주주의를 우리가 지향했으면 좋겠어요. 반생명적이고 반평화적인 그것과는 절연하고 근본적인 것을 지향해야 대중의 심금을 울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모임이 이론적인 얘기보다는 성공했든 실패했든 사례를 발표하고 듣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임부터 자급자족이 되고 순환이 가능해지면, 우리가 바꾸고자 하는 세상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우선 점심 식사부터 얻어먹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각자가 내고, 강의를 할 때도 강사료를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좋은 사례를 나누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저도 며느리한테 돈을 받아와서라도 제 밥값은 낼게요.” (웃음)
마지막으로 법륜스님이 우리 사회의 현재를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지난 100년간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점진적으로 좋은 쪽으로 발전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부분적으로 보면 동학 농민 혁명, 3·1 운동, 해방 이후의 남북 분단, 6·25 전쟁, 4·19 혁명과 광주 민주화 운동 등 모두 그때는 실패로 끝난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결국은 그 하나하나의 실패를 딛고 발전하여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저는 지난 100년의 우리 역사를 보면서 현재 우리가 겪는 부분적인 실패를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자전거를 배울 때 넘어지면서 자전거를 탈 줄 알게 되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한 번 넘어졌다고 해서 실패는 아니에요.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갈등을 보면, 이것이 과연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되는 과정인지, 아니면 내리막으로 접어드는 전조인지, 약간 의구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고 실패를 겪고 그 경험을 통해 다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생산적인 모습이라기보다는, 갈수록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그저 서로를 갉아먹기만 하는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지금의 갈등은 싸우고 난 다음에 화해하는 게 아니라, 점점 더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역사적으로 포물선의 꼭짓점을 지나 내리막길을 향하고 있기에 일어나는 현상으로도 보입니다. 그래서 제가 첫 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 흐름을 극복할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교훈으로 삼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갈등이 지나치게 ‘과거를 먹고 사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박정희와 김대중으로 회귀하고, 이승만과 김구를 이야기하며, 일제 강점기를 오늘날의 문제로 끌어옵니다. 물론 과거를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지금의 사회적 이슈들은 늘 과거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 우려됩니다.
과거에는 민족 분단의 현실 속에서 ‘통일’이 가장 중요한 시대적 과제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과연 통일이 최우선 과제일까요? 아니면 평화가 더 시급한 과제일까요? 지금은 무엇보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미·중 간 패권 경쟁이 치열한 지금,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한일 협력과 일본과의 과거사 청산 중 무엇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할지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국내적으로도 지금 시점에서 ‘청산’이 중요할까요? 아니면 ‘국민 통합을 위한 협치’가 더욱 절실할까요? 이제는 우리의 시선을 과거가 아닌 미래에 두고,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산업화가 중요하냐, 민주화가 중요하냐?’ 이런 논쟁보다는, 둘 다 우리 국민이 일궈낸 성과라는 점을 보았으면 합니다. 대한민국이 앞으로 어떻게 이것을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시키느냐 하는 관점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논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동안 제가 사회 참여를 해 오면서 느낀 점이 하나 있습니다. 중도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은 개인의 인격에서는 매우 소중한 부분입니다. 이런 분들은 대체로 극단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격이 고상한 사람들은 실제 행동에는 잘 나서지 않는 것 같아요. 조언은 해주지만, 막상 실천이 필요한 순간에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사회의 주도 세력이 되곤 합니다. 이들이 극단적인 목소리를 내면 처음에는 ‘저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하는 반응이 나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늘 그 사람들이 정치적 주도권을 쥐고 갑니다. 극단주의자들이 사회의 주도권을 잡는 힘의 논리는 제가 보기에는 당연해 보입니다. 그 사람들은 시간도 바치고, 돈도 내고, 행동도 하기 때문이에요. 반면 대부분의 합리적인 사람들은 비난받기 싫어하고, 자기 몸에 오물이 튀는 걸 꺼려해서 실제로 행동하는 데에는 주저합니다. 비판 의식을 가지고 좋은 말은 하는데, 정작 사회를 이끌 수 있는 영향력은 발휘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중도가 중심이 되는 정치 세력을 만들기 어렵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에 공감이 됩니다.
정말로 사회에 영향을 끼치려면, 참가하는 사람들의 열의가 있어야 합니다. 작은 일이라도 스스로 돈을 내고, 직접 발표하고, 주체적으로 참여해야만 세상에 진정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런 자세가 있을 때 비로소 남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그냥 이렇게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식의 발표와 대화만으로 사람을 감동시키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 사람은 감동하지 않으면 행동으로 옮겨가지 않거든요.
요즘 저는 해외 활동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해외에 한류 열풍이 불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하고 있죠. 그러나 제가 해외에 나가 한류를 보면서 느낀 점은, 그 나라 사람들에게 한류란 또 다른 소비주의라는 점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의 소비를 조장하고 있었습니다. 한류를 수출하는 입장에서는 좋을지 몰라도, 다른 나라 사람들 입장에서는 우려도 많습니다. 저는 이런 소비문화에 치우친 한류는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진정한 한류는 우리가 그들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평화 활동, 빈곤 퇴치, 여성 교육, 민주주의 지원 등 그 나라의 발전에 기여하는 한류가 함께 그들 사회에 전달되어야 지금의 소비주의적 한류도 오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 점에 집중하여 최근 10년간은 거의 해외 활동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강대인 원장께서 ‘전환포럼을 준비하는 모임’을 함께 해 보자고 하셨습니다. 그 뜻에 100퍼센트 동의하기 때문에 원장님이 앞에서 가라고 하시면 앞에서 가고, 뒤에서 가라고 하시면 뒤에서 가겠다는 마음으로 참가했습니다. 제가 도움 되는 일이 있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공간이 필요하면 언제든 이 운동을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을 기꺼이 열어 드리고, 어떤 역할이든 할 생각입니다. 지금 저의 관심사는 국내 문제에만 집중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서 이런 점을 이해해 주신다면,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이든 하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어서 참석자들이 자유롭게 호담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화여대 교수 박은정 님의 사회로 20여 명의 시민 사회, 학계, 종교계 인사들이 둘러앉아 지금 우리 사회에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각계 인사들은 한국 사회가 직면한 위기를 ‘전환의 시대’로 규정하고, 기후 위기, 불평등, 민주주의의 위기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습니다.
참석자들은 기존 정치의 한계를 지적하며, 시민 사회, 종교, 교육, 청년 운동 등 비제도권 영역이 전환의 핵심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돌봄, 생태, 공존, 연대 등 일상의 가치에서 출발한 실천이 중요하며, 이를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로 전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마지막으로 강대인 원장이 정리 말씀을 해 주었습니다.
“법륜스님 일정을 보니까 엄청 바쁘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긴 시간 동안 앉아서 저희들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신 것 자체가 큰 격려가 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 3년 동안은 월례 모임을 이어 갔으면 좋겠고요. 특히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스튜디오를 제공해 주기로 하셨으니 ‘전환포럼’의 메시지를 전하는 방송도 함께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이 작고 조용한 모임이 앞으로 어떤 물줄기를 만들어낼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첫발을 내디딘 것에 대해 함께 축하하며 모임을 마무리했습니다.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눈 후 스님은 다시 차를 타고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
지하 공양간에서 대중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한 후 백일법문 강연을 하기 위해 지하 대강당으로 향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정토불교대학 저녁반 '인간 붓다' 3강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지하 대강당에는 직장을 마치고 달려온 150여 명의 입학생이 자리했고, 온라인 생방송 반에는 340여 명이 접속했습니다.
삼귀의와 수행문을 함께 읽고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오전 강의처럼 부처님의 출가 이후 수행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특히 6년 고행 끝에 다시 자신의 수행을 돌아본 후 중도를 발견하는 과정이 어떠했는지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부처님의 고행은 겉으로 보기에는 실로 존경스러웠을지 모르나, 그 내면의 심리 상태는 큰 긴장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참는다는 것은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이며 그 자체로 큰 고통이고 스트레스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자신의 수행을 다시 돌아보았습니다. 부처님은 어린 시절 농경제에 참석했다가, ‘왜 하나가 살기 위해 다른 하나가 죽어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에 사로잡혀 깊은 명상에 잠긴 적이 있습니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니, 바로 그 순간이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집중됐던 때였다는 것을 알게 되셨습니다. 그 사실을 자각한 뒤, 부처님은 고행으로는 해탈에 이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젊은 시절에는 왕자로서 쾌락을 마음껏 누렸습니다. 출가한 뒤에는 고행의 극한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길에서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살펴보며 부처님이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욕망을 지니고 있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즐거움을 느끼고, 그렇지 못하면 괴로움에 빠진다. 사람들은 즐거움을 다시 얻기 위해 애쓰지만, 그 즐거움은 지속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욕망은 충족되는 순간 더 큰 욕망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끝없이 늘어나는 욕망은 언제나 충족될 수 없으므로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 이처럼 즐거움 안에 괴로움이 들어있기 때문에, 즐거움을 추구해서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고 즐거움을 버리고 고행을 택한다면, 고행은 곧 욕망을 억압하기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결과 몸과 마음은 지속적인 긴장 상태에 놓이게 된다. 늘 긴장된 상태를 과연 해탈이라 할 수 있겠는가.’
쾌락주의와 고행주의는 겉으로 보면 정반대로 보입니다. 하나는 욕망을 따라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둘 다 욕망에 반응한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쾌락도 고행도 아닌, 욕망에 반응하지 않는 제3의 길인 중도(中道)를 발견하셨습니다. 욕망을 따라가지도 억누르지 않고, 다만 알아차리는 길이었습니다. 그저 알아차리기만 하면 욕망에 끌려갈 일도 없고, 억지로 참을 일도 없습니다. 욕망을 따르면 과보를 받고, 욕망을 억누르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지만, 욕망에 반응하지 않으면 과보도 스트레스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중도는 쾌락과 고행 사이의 절충이 아닙니다. 이 둘을 초월한 완전히 새로운 길입니다. 중도는 그저 알아차릴 뿐입니다. 어떤 의도도, 욕망도 없이 다만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욕망이 일어나면 욕망을 알아차리고, 감각이 일어나면 감각을 알아차릴 뿐입니다. 중도란 ‘어떻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항상 ‘알아차린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하고 질문합니다. 그 말에는 무언가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수행은 모든 의도를 내려놓는 일입니다. 모든 의도를 내려놓고 편안한 가운데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부처님이 발견하신 중도의 길입니다.
이렇게 해서 부처님은 마침내 심신의 편안함에 이르렀습니다. 길을 찾았으니 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 정진뿐이었습니다. 부처님은 숲 속에서 나와 네이란자라강(Nairañjanā)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몸을 씻고,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유미죽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강가에 있는 피팔라(Pippala)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마지막 정진을 위해 선정에 들었습니다. 훗날, 이 나무는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나무로 ‘보리수’라 불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지켜본 다섯 수행자는 실망하게 됩니다. 붓다가 목욕을 하고, 부드러운 음식을 먹고, 나무 아래에 풀을 깔고 편히 앉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왕자 출신은 어쩔 수 없구나. 그는 타락했다.’ 이렇게 말하며 다섯 수행자는 부처님 곁을 떠났습니다. 부처님은 결국 홀로 남아 마지막 선정에 들게 됩니다.”
오늘은 부처님의 출가 이후 구도 과정에 대해 배우고 중도란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주에는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 대해 배우기로 하고 3강 수업을 마쳤습니다.
이어서 사회자가 학생들에게 수행 연습 과제를 알려준 후 조별로 모여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94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주간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하고, 오후에는 평화 연구 세미나에 참석한 후 평화재단 기획위원회 회의를 하고, 저녁에는 저녁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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