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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50일째 날입니다. 이제 백일법문을 시작한 지 절반이 지났습니다. 오늘은 경전 강의와 불교사회대학 강의가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경전 강의를 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3층 설법전에는 120여 명이 자리하고, 온라인 생방송으로 560여 명이 접속했습니다. 대중이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하자 스님이 법상에 올랐습니다.
오늘은 금강경 강의 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스님은 지난 여덟 번의 강의를 통해 설명한 금강경 제1분부터 16분까지의 내용을 다시 한번 요약해서 이야기한 후 제17분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제2분 선현기청분(善現起請分)에서 나온 수보리의 첫 질문이 다시 반복되면서 제17분 구경무아분(究境無我分)이 시작됩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한다면 어떻게 머물러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시켜야 합니까?’
제2분 선현기청분(善現起請分)에서 수보리가 했던 질문과 같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제2분에서처럼 ‘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마음을 내라.’ 하고 대답하십니다.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이지만 수보리의 질문에는 다른 의도가 있습니다. 제2분에서 수보리는 ‘어떻게 하면 안온한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수보리의 마음을 아시고 ‘진정으로 안온한 경지에 이르고자 한다면 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마음을 내라.’고 대답하십니다. 말하자면 수보리가 짐을 덜려다가 오히려 덤터기를 쓴 격입니다. 어깨에 맨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하면 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하고 물었더니, ‘남의 짐까지 짊어지겠다는 마음을 내라.’ 하고 부처님께서 대답하신 겁니다. 게다가 내가 남의 짐까지 다 들어줬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한 사람도 짐이 가벼워진 자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만일 보살에게 아상(我相)과 인상(人相)과 중생상(衆生相)과 수자상(壽者相)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시면서요.
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마음을 내어서 많은 중생을 구제했지만, 실제로는 한 중생도 구제받은 자가 없다고 하니 너무나 막막한 소리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 원리를 보시할 때에 비유해서 설명하고, 부처님의 32상을 볼 때에 비유해서 설명하고, 불국토(佛國土)를 장엄하는 것에 비유해서 설명하고, 수없이 많은 비유를 들어서 ‘상을 짓지 마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반복해서 설명하십니다. 즉 제2분에서는 소승 수행자로서 부처님께 물었다면, 문답을 통해 이제 대승 불교의 수행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제17분에서는 대승 수행자로서 부처님께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일체중생을 구제한다고 생각하면 보살이라고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중생은 본래 중생이 아니고 그 이름이 중생일 뿐이다.’
이쯤 되면 어떤 것에도 집착할 것이 없는 도리를 알아야 하는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부처님이 본래 중생이라고 할 게 없다고 하시니 그럼 중생을 구제할 일도 따로 없네?’ 하고 또 샛길로 빠집니다. 또다시 길을 잃고 헤매는 겁니다. 상을 버리라고 하니까 또 다른 집착이 생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수행자가 되면 처음에는 세상에 물들지 않기 위해 세상을 떠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숲 속에 안주하는 것을 즐기며 세상을 외면하게 됩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대승의 마음을 낸 자는 중생을 연민하는 마음인 ‘자비심’을 내라고 강조하신 겁니다. 부처님은 지혜와 자비가 구족한 분이십니다. 소승 불교가 지혜를 강조했다면, 대승 불교는 자비를 강조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승 불교가 지혜를 외면했다는 말은 아니에요. 소승 불교가 자비를 등한시하니까 대승 불교에서는 자비심을 강조한 겁니다. 그래서 대승 불교의 핵심 사상은 ‘베푸는 마음을 내라.’, ‘이해하는 마음을 내라.’, ‘연민하는 마음을 내라.’ 이렇게 적극적인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통칭해서 ‘중생을 구제하는 마음을 내라.’ 이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소승의 마음에서 대승의 마음으로 전환하는 지점이 바로 중생을 구제하는 마음을 내는 순간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낸 대승 보살에게 이번에는 부처님께서 ‘중생을 구제한다고 생각하면 보살이라고 할 수 없다.’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 금강경 제17분의 내용입니다.
이 말은 마치 소승 불교 수행자가 세상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 중생을 외면하고 자신의 안온함을 추구하자, 대승 불교에서 ‘중생을 구제하라.’ 하고 지적하는 것과 동일 선상에 있는 말입니다. 대승 불교 수행자도 한쪽으로 치우치면 세속화되기가 쉽습니다. 실제로 대승 불교에서는 출가한 승려가 결혼을 하거나 재물을 가지는 일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지적해서 하는 말이 ‘중생을 구제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보살이라고 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달마 대사가 중국으로 건너왔을 때, 인도에서 유명한 고승이 왔다고 수많은 사람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자 전부 발길을 돌리게 됐죠. 그렇게 9년쯤 지나 사람들 발길이 끊긴 가운데 단 한 사람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스승이 참선하면 같이 참선하고, 산책하면 같이 산책하면서 아무 말 없이 그냥 옆에 있었어요. 그래서 어느 날 달마 대사가 그를 불러 ‘여기에 왜 왔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안심입명(安心立命)의 도를 얻고자 왔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네 마음이 어떤데?" 하고 다시 물었어요. 질문에 대답하려면 자기 마음을 들여다봐야 하잖아요. 그래서 마음을 살펴보고 "제 마음이 불안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달마 대사가 "그 불안한 마음을 내놔라. 내가 편안하게 해 줄게." 이렇게 말합니다. 불안한 마음을 내놓기만 하면 해결해 준다고 하니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겁니다.
그런데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도에 갔다 와야 할까요? 경전을 뒤져야 할까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스승은 문답을 통해 진리를 찾아 밖을 향하던 눈을 안으로 돌리게끔 해주었던 것입니다. 불안한 마음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속적으로 생각하니까 시간이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은 곧바로 대답한 것처럼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침내 대답하기를 "내놓으려야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니 ‘불안하다.’고 할 것이 없는 줄을 알았다는 것은 이미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스승이 말하기를 "내 이미 네 마음을 편안하게 했도다."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준 바도 없고, 얻은 바도 없는 도리입니다.
그가 바로 달마 대사의 법을 이은 선불교의 2조(二祖) 혜가(慧可)입니다. 선(禪)이 출발할 때의 정신을 잘 보여 주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대승 불교 초기의 관점이 가장 잘 담긴 경전이 금강경이라면, 선(禪)의 출발은 이렇듯 직지인심(直旨人心)입니다. 마음을 직관함으로써 깨달음에 도달한다는 의미로,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旨人心 見性成佛)’이라고 했습니다. 금강경에서는 '제상(諸相)이 비상(非相)인 줄 알면 즉견여래(卽見如來)'라고 표현하고 있죠. 이런 선(禪)의 관점에서 보면 수많은 경전 가운데 금강경이 선의 입장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불교는 따로 의지하는 경전이 없지만 바로 이런 이유로 금강경을 매우 중요시했습니다. 마치 금강경이 선종의 소의경전(所依經典)처럼 되어 있습니다.
한국 불교는 대승 불교와 선불교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 사상이 좀 풍부하다고 볼 수도 있고, 어찌 보면 좀 복잡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일맥상통하는 내용입니다. 다만 표현을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고 했는지, 공(空)이라고 했는지,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했는지, 이런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금강경의 내용을 여러분이 조금 더 깊이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금강경은 꿈속의 소식이 아니고 꿈을 깨는 소식입니다.”
이어서 금강경 제17분을 목탁 소리에 맞춰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독송하며 그 의미를 새긴 후 강의를 마쳤습니다.
참가자들은 조별로 모여 마음 나누기를 하고, 스님은 지하 1층 식당으로 이동하여 대중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오후에는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며 시국 현안에 대해 사회 원로들과 통화를 하였습니다.
오후 3시에는 멀리 인도에서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인도 보드가야에 있는 한국절 분황사의 주지인 붓다팔라 스님의 소개로 인도 국제문화연구소 소장 아쉬쉬 바베 박사 일행이 평화재단을 찾아와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안부를 주고받았습니다. 아쉬쉬 바베 박사께서는 한국에 온 지 일주일이 되었는데 한국에 전래된 인도 문화와 불교 문화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여러 전문가들을 만났다고 합니다. 스님은 박사님의 연구 활동에 존경을 표하면서 인도와 한국 사이의 교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작년에 첸나이에서 열린 국제참여불교 컨퍼런스에 참석했습니다. 첸나이에 있는 불교인들은 타밀어를 사용하는데, 타밀어와 한국어가 유사성이 많습니다. 그들은 가야에 불교를 전래한 아유다 공주가 인도에서 출발할 때의 장소가 인도 중부 지방에 위치한 아유디아가 아니고 타밀나두라고 주장했습니다.
옛날에는 해류를 타고 배가 이동했기 때문에 1세기 이전부터 인도와 가야 사이에 해상 무역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겁니다. 아유디아에서 갠지스강을 따라 배를 타고 해안까지 온다는 것은 현실성이 낮다는 거예요. 내륙국인 아유디아에서 갑자기 먼 나라 가야에 불교를 전한 것이 아니라 이미 무역 상인들 간에 해상 교역로가 있었는데, 인도 스님들이 그 해상 교역로를 따라 가야까지 왔다는 거죠. 즉, 가야에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에도, 인도 대륙과 한반도 사이에서 해상 교역로를 따라 오래전부터 교류가 있어 왔다는 겁니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토기, 철기 등의 문물이 한반도의 북쪽이나 서쪽에서 전래되어 왔다는 학설이 지배적이었는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남부 지역에 세워진 나라인 가야에는 해로를 통해서 남쪽에서 철기 문명이 들어왔다는 사실도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의 DNA를 조사하면 상당수가 남방계의 유전인자가 섞여 있다는 사실도 밝혀지고 있습니다.”
아쉬쉬 박사도 스님의 말에 공감했습니다.
“맞습니다. 무역 상인들 간에 오래전부터 교류가 있었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해상 교류가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얼마 전에는 태국에서 마가다국의 도장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이미 2600년 전 부처님이 하신 말씀 속에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주의, 평등, 여성 해방의 정신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제가 요즘 이곳에서 불교의 사회사상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 중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인도의 전통 속에 서양보다 앞선 민주적 가치가 들어 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하신 말씀 중에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일곱 가지 법이 있습니다. 그 내용 중 하나가 '자유롭게 토론하되 의기투합하라.'는 것인데, 이 내용이 중국에서 한문으로 번역이 될 때는 임금과 신하는 직분을 잘 지키고 임금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남의 집 여성을 강제로 잡아오지 마라, 즉 약자를 보호하라는 내용 역시 한문으로 번역될 때는 여자가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내용으로 바뀌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중국에 전래된 불교를 배우게 되잖아요. 그 결과 유교적 봉건주의가 마치 부처님의 가르침인 줄 착각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부처님이 하신 말씀 중에는 여섯 가지 화합에 이르는 길을 말씀하신 것도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같은 계율을 같이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두 번째가 서로 의견을 맞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뜻합니다. 세 번째가 보시받은 물건을 똑같이 나누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경제적인 평등을 뜻합니다. 즉,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평등, 인권 존중의 정신이 전통 사상 속에 다 들어 있는 겁니다.
모든 것이 서양에서 전래되어 왔다고 생각하면 우리 마음속에 서양 문화에 대해 열등의식도 생깁니다. 서양 사상을 배격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의 전통 속에서 소중한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더 발전시켜서 그동안 서양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우리가 해결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과학 기술 분야는 많이 비슷해졌지만, 아직도 문화적인 부분은 학교 교육의 영향으로 인해 서양이 앞서 있다는 관념이 지배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문화적인 열등의식을 극복해야 자주성을 되찾을 수 있고, 거기서 창조성이 나올 수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서양의 과학 문명과 동양의 정신문명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어서 아쉬쉬 박사께서는 남북 관계와 한반도 전쟁 위기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다음에 다시 만나면 더 깊은 대화를 나누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스님이 아쉬쉬 박사께 선물로 인삼을 전달했습니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아쉬시 박사와 붓다팔라 스님 일행을 배웅해 드렸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대강당에서 불교사회대학 9강 강의를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불교적 관점에서 본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배웠는데요. 수업을 마치고 질문이 몇 가지 올라와서 그에 대해 답변부터 하고 나서 오늘 강의 주제인 ‘불교와 민주주의’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의 강의 주제는 ‘불교와 민주주의’입니다. 불교 안에 오늘날 민주주의적 요소가 얼마나 있는지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민주주의 관점에서 불교를 해석하려는 게 아니라, 2600년 전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현대의 민주주의와 비교해 보자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열반하시기 1년 전, 마가다국의 영축산에 머물러 계실 때 일입니다. 당시 마가다국의 왕인 아자타삿투왕은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사람입니다. 아버지인 빔비사라왕이 부처님을 비호했기 때문에 아자타삿투왕은 처음에는 부처님과 갈등을 일으켰지만, 곧 반성하고 부처님께 귀의했습니다. 당시 아자타삿투왕은 바이샬리에 있는 밧지족을 침공하려고 전쟁을 준비하던 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신하를 시켜서 부처님께 어떻게 하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지를 여쭙게 됩니다. 좋게 말하면 조언을 구하는 것이지만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부처님께 묻는 것 자체가 맞지 않는 일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질문에 직접 대답을 하지 않고, 아난다를 불러 밧지족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이때 부처님께서 밧지족에 대해 일곱 가지를 물으셨습니다. 첫째, 자주 모임을 개최하고, 모임에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지를 물으셨습니다. 나라가 안정되고 부강하려면 많은 사람이 자주 모여서 회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현재 민주주의의 의사 결정 방식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절대 왕정은 왕이 결정해서 명령하면 따르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밧지족은 어떻게 나라를 운영하는지 물어보신 겁니다. 그러자 아난다가 밧지족은 자주 모임을 열고, 그 모임에 많은 사람이 참여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렇다면 밧지족에게는 번영만 있고 쇠락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의기투합해서 모이고, 헤어질 때도 의기투합을 하는지, 그리고 뜻을 모아 행사를 치르는지 물으십니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토론을 통해 함께 결정하는 장점이 있지만, 토론 과정에서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자기 의견과 다를 때 분열하기도 합니다. 이 부분은 오히려 현재 민주주의가 갖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토론은 자유롭게 하되 결론이 나면 의기투합해서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전체주의에 비해 비효율적일 수 있다는 거예요. 전 세계가 치열한 경쟁 구도를 이루면서 효율성이 점점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1인 또는 일당 독재 체제로 변질되어 가는 나라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북한, 러시아, 중국, 인도, 튀르키예 같은 나라들입니다. 이번에 한국도 독재 체제로 가려다가 국민에 의해 제지가 되었죠. 이 나라들은 강성 지지자와 강성 지도자가 만나서 현재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도 극우 지도자가 집권하거나 극우 정당이 제1정당이 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민주주의적인 의사 결정은 효율적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토론한 후에 결정된 내용에 대해 모두가 의기투합해서 따른다면 사실은 그것이 제일 효율적입니다.
셋째, 이미 정해진 법을 함부로 바꾸지 않고, 새로 법을 정할 때 함부로 정하지 않는지 물으십니다. 사람도 이 말 했다가 저 말 했다가를 반복하고, 말을 자주 바꾸면 믿을 수가 없잖아요. 법을 이렇게 바꿨다가 저렇게 바꿨다가 하면 그 법을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안 생깁니다. 그래서 이미 정해진 법은 함부로 바꾸지 말고, 아직 정해지지 않은 법을 정할 때도 함부로 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일반적으로 의사 결정을 할 때는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기준으로 합니다. 그러나 법을 새로 정하거나 폐지할 때는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도록 해서 함부로 못 바꾸게 하는 것입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을 조변석개(朝變夕改)라고 하듯이 법은 자주 바뀌면 안 되고 신뢰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헌법처럼 40년간 아무것도 안 바뀌는 것 역시 부작용이 있습니다. 무조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지켜야 한다고 하면 경직이 되고, 수시로 바뀌면 무질서를 초래합니다. 근본적인 것은 유지하면서 사회적인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법치주의적 관점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법치가 되려면 법이 신뢰할 만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번 정해진 것은 쉽게 깨트리지 않고, 정해지지 않은 것은 쉽게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넷째, 나이 든 이를 공경하고 존중하며 경청하는지를 물으셨습니다. 젊은이들이 노인을 무시하지 말고, 경험 있는 노인들의 의견을 잘 듣고 존중해야 한다는 겁니다. 반대로 나이가 팔구십이 넘어서 권력을 쥐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어쨌든 이 말은 사회 전체가 경험 있는 원로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다섯째, 양가의 부인이나 처녀를 납치하거나 구속하고 있지 않은지 물으셨습니다. 당시에 여성은 노예나 다름없이 독립적인 인격으로 취급받지 못했습니다. 평생 주인이 세 번 바뀐다 하여 삼종지도(三從之道)라고 했어요. 어려서는 아버지가 주인이고, 결혼하면 남편이 주인이고, 남편이 죽으면 아들이 주인이 됐습니다. 집안에 남자가 없으면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주인 없는 가축을 아무나 데려가듯이 아무나 잡아가도 됐어요. 그래서 당시 여자를 납치하거나 구금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여성은 사회적 약자로 볼 수 있겠죠. 부처님께서는 이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 안전망이 얼마나 잘 구축되어 있는지를 물으셨던 겁니다. 현대 사회로 보자면 기본권이 얼마나 보장되어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섯째, 역사적으로 소중한 영지를 경애하고 봉납하는 제식(祭式)을 폐지하지 않고 잘 보존하고 있는지를 물으셨습니다. 우리나라 신라 시대에도 영지가 일곱 군데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전통과 역사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전통문화를 지키는 힘이 약하고, 역사의식이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그것이 일본 문화든, 중국 문화든, 미국 문화든 상관없이 그저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주의예요. 자기 정체성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 밧지족이 자기 정체성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물으신 거예요.
일곱째, 존경받을 만한 이를 대우하고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자기 나라에 찾아와 머무르도록 노력하는지 물으셨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세계적인 석학을 초청해서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말하는 미래 사회의 비전을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미래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아난다는 이 일곱 가지에 대해서 ‘밧지족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라고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아자타삿투 왕은 밧지족이 마가다국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나라라고 생각해서 단번에 정복할 것을 자신하면서 부처님께 물어본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대해 부처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난다에게 질문만 하십니다. 이게 부처님이 하는 대화의 특색이에요. 부처님과 아난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자타삿투 왕이 보낸 신하는 스스로 깨닫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일곱 가지 중에 한 가지만 지켜져도 전쟁에서 이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다 지킨다고 하니 힘으로 이기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신하는 ‘돌아가서 왕과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다.’ 하고 대답하고 왕사성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로써 부처님께서는 큰 전쟁이 일어날 뻔한 일을 미연에 막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평화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실마리를 제공해 주신 것입니다. 부처님이 설하신 ‘나라가 망하지 않는 7가지 방법’은 오늘날 우리 사회를 운영하는 데에도 충분히 지침으로 삼을 만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일화로 ‘코삼비 비구의 다툼’이 있습니다. 코삼비는 당시 16개국 가운데 하나로 그 나라에도 스님들이 몇 백 명이 모여서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화장실을 사용하는 규칙을 어긴 사건으로 서로 갈등이 생겼습니다. 두 사람의 갈등이 그들을 따르는 두 그룹 간의 분쟁으로 확대가 되었습니다. 부처님이 ‘왜 그러느냐? 내 말을 들어 봐라.’ 하시며 이쪽에서 말씀하시고, 또 저쪽에 가서도 말씀하셨어요.
‘누가 더 옳은가 하고 논쟁하는 것이 승단을 분열시킨다. 너희들은 작은 것에 대해 시비를 가리다가 큰 죄를 짓게 된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부처님, 우리끼리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하며 부처님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이 그곳을 떠나셨어요. 나중에 이 사실을 안 대중이 화가 났습니다. ‘아니, 수행자들이 부처님 말도 안 듣고!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어!’ 이러면서 걸식하러 온 스님들에게 공양을 주지 않았습니다. 스님들이 그제야 반성하고 부처님이 계신 곳을 수소문해서 기원정사로 찾아갑니다.
이렇게 해서 부처님이 대중을 모아 놓고 이야기를 합니다. 첫째, 승가 공동체는 청정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청정하다는 것은 검소하게 살고, 계율을 잘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승가 공동체는 화합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마치 꿀과 우유가 하나가 되듯이 화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화합이 깨지는 이유를 살펴보면 화합을 이루는 여섯 가지 중에 뭔가가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갈등이 생기면 ‘조용해! 화합해! 싸우지 마!’ 이렇게 강압적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그 안에 불평등과 부당함이라는 문제가 있는데도 조용히 하라고만 윽박지른다면 구조적 모순은 사라지지 않게 됩니다. 전쟁을 안 한다고 해서 꼭 평화로운 것이 아니에요.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지 않으면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여도 실제로 누군가는 고통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화합을 위한 여섯 가지를 살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육화합’이라고 부릅니다.
첫째, 같은 계율을 같이 지켜야 합니다. 함께 살면서 누군가는 계율을 지키고, 누군가는 안 지키면 불공평합니다. 누군가는 채식을 하는데 누군가는 고기를 먹는다든가, 상대에게는 옷을 검소하게 입으라고 하고 자기는 비단옷을 입는다면 안 되겠죠. 이렇게 계율이 다르게 적용이 되면 불만이 생기게 됩니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라는 말처럼 계율의 적용이 평등해야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법이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만원을 훔치면 도둑이 되지만 천억 원을 훔치면 경제 활동이 됩니다. 한 명을 죽이면 살인이 되지만 만 명을 죽이면 영웅이 되기도 합니다.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면 법 적용이 평등하지 못해서입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이런 식이면 자연적으로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자주 의견을 맞춰야 합니다. 서로 의견이 다를 때 민주적으로 합의해서 결정하라는 말입니다. 무언가를 할 때 대중공사를 하든, 공청회를 하든, 의논해서 결정하면 나중에 불만이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결정을 누군가 한 사람이 하거나, 그가 이래라저래라 명령만 한다면, 사람들이 겉으로는 따르겠지만 속으로는 다 불만이 생깁니다. 자연히 안 보이는 데서는 안 따르게 되고요. 그래서 자주 의견을 맞춰야 합니다. 바른 견해로 통일하는 것이 올바른 민주주의 방식입니다.
셋째, 보시받은 물건은 똑같이 나누어야 합니다. 즉 경제적으로 평등을 이뤄야 합니다. 한 사람은 좋은 옷만 입으면서 다른 사람들은 허름한 옷을 주거나, 한 사람은 큰 방을 가지면서 다른 사람들은 마루청에서 자라고 한다면 불만이 생깁니다. 그래서 경제적 평등이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빈부 격차가 커지면서 사회적 불안 요소가 매우 커졌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보시가 누구 앞으로 들어오든 다 모아서 공평하게 분배해야 합니다.
넷째, 같은 장소에 모여 살아야 합니다. 앞에 말한 세 가지는 우리 사회에도 바로 적용이 가능한데, 넷째 조항은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다르게 표현하면 투명하게 살라는 말입니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 종일 뭘 먹고, 뭘 하는지가 투명해야 서로 신뢰가 생깁니다. 유언비어(流言蜚語)가 자꾸 나오는 이유는 서로 뭘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칸막이 없이 한 방에 같이 산다면 투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스님들은 숲 속에 칸막이가 없는 공간에서 같이 살았습니다. 일거수일투족이 훤하게 보였기 때문에 삶이 투명했습니다. 그래서 갈등이 없었던 거예요. 투명하게 살면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이걸 제일 어려워합니다. 정토회 공동체에 들어와 사는 수행자들도 ‘월급은 안 줘도 괜찮은데, 방만 하나로 주세요.’, ‘작아도 괜찮으니 내 방만 하나 따로 주세요.’ 이런 요청을 합니다. 그만큼 투명하게 열어 놓고 살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막상 칸막이를 치우고 보면 아무것도 숨길 게 없는데, 어쨌든 심리적으로는 좀 막아 놓고 살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이 조항은 모든 것을 공개하고 투명한 삶을 살라는 의미입니다.
다섯째, 자비롭게 말해야 합니다.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말이 험악하면 갈등이 생깁니다. 요즘 우리 사회도 말이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시위 현장에 나가 보거나 인터넷 댓글을 읽어 보면 험한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혀가 칼이 되어 말로 사람을 죽이는 형국입니다. 국회 의원의 입에서 ‘헌법재판소를 때려 부수자!’ 하는 말이 나올 정도니까요. 자기 뜻대로 안 돼서 화가 치미는 감정은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공인으로서 해야 할 말이 있고, 갖춰야 할 태도가 있습니다. 이런 게 지금 다 무너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자비롭게 말해야 합니다. 옛말에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말이 있는 반면, ‘말 한마디에 지은 복도 다 까먹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이라는 것은 복이 되기도 하고, 비수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화합을 이루려면 말을 자비롭게 해야 합니다.
여섯째, 남의 뜻을 존중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뜻을 존중한다.’는 말은 나와 다른 상대의 의견을 인정하고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각기 생각이 다릅니다. 그래서 대화하거나 의논할 때 나와 다른 생각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질이 나면 ‘그걸 말이라고 하냐?’, ‘그걸 생각이라고 내놨냐?’ 이렇게 상대방을 깔아뭉개는 말을 할 때가 많습니다. 꼭 그 사람의 말이 맞다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상대의 뜻을 존중하는 자세입니다.
이 여섯 가지를 지킬 때 공동체에 갈등이 없습니다. 갈등이 있을 때 무조건 조용히 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불만인지를 살펴보면 이 여섯 가지 중에 몇 가지가 어긋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이 여섯 가지 모두 다 지켜지지 않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관점을 잡고 살펴나가면 우리는 화합을 이뤄 나갈 수가 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승가 공동체가 숙의를 통해 의견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인 갈마(羯磨) 제도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전원 찬성을 원칙으로 하는 승가의 의사 결정 과정과 단백갈마(單白羯磨), 백이갈마(白二羯磨), 백사갈마(白四羯磨)가 의미하는 바를 설명한 후 강의를 마쳤습니다. 오늘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현대의 민주주의를 서로 비교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법문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조별로 모여 마음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정토회관으로 다시 돌아와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51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주간반 정토불교대학 9강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홍콩 불교신문(Buddhistdoor Global) 기자와 인터뷰를 한 후, 저녁에는 저녁반 정토불교대학 9강 수업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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