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2.21. 백일법문 5일째, 금요 즉문즉설, 평화재단 이사회, 사단법인 총회
"부모님의 경제적 어려움, 자식으로서 어디까지 도와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5일째 날입니다. 하루 종일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금요 즉문즉설과 평화재단 이사회, 사단법인 총회가 열렸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오전 8시부터 좋은벗들 정기 이사회에 참석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좋은벗들은 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인권 개선, 재외동포들과의 협력을 통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일을 하기 위해 스님이 1996년에 설립한 단체입니다. 2024년 사업보고와 결산, 2025년 사업계획과 예산안에 대해 심의하고 의결한 후 좋은벗들 이사회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하기 위해 지하 대강당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많은 봉사자들이 즉문즉설을 들으러 온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250여 명의 대중들이 자리한 가운데 오전 10시 15분이 되자 삼귀의와 수행문을 낭독하며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유튜브 생중계에는 3300여 명이 접속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청중들과 시청자들을 향해 인사말을 했습니다.

“오늘은 백일법문 5일째이며, 즉문즉설 시간입니다. 여러분들이 살아가면서 또는 수행을 하면서 느끼는 의문이나 해결하기 어려운 괴로움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입니다.

즉문즉설은 미리 질문을 준비해서 적어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장 힘들고 어려운 점이나 궁금한 점을 가볍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즉답’이 아니라 ‘즉설’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답’이란 특정한 지식에 대한 정답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나일강이다’라고 대답하는 것처럼요. 그러나 ‘즉설’은 대화를 통해 스스로 의문을 풀거나 괴로움을 해소하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대화를 말씀, 설법, 설교라고도 부릅니다. 즉문즉설이란 인생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벼운 대화를 통해 그 문제에서 자유로워지는 과정입니다. 그러니 누구든지 자유롭게 질문하시면 됩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사람부터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즉석에서 자유롭게 손을 들고 질문을 할 수 있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오늘은 청년들이 많이 참석하여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부모님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순금을 팔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자식으로서 부모님을 어디까지 도와주는 것이 효도인지 궁금하다며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부모님의 경제적 어려움, 자식으로서 어디까지 도와야 할까요?

“저는 효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어 질문드립니다. 저는 아주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은 아니지만, 평범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으며 자랐고, 부모님의 지원 덕분에 지금처럼 잘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저는 직장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최근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부모님의 상황이 조금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정년이 가까워지면서 희망퇴직 압박을 받고 계시고, 회사 사정도 나빠지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부동산 일을 하시지만, 시장이 좋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다. 부모님께서 아주 심각하게 힘든 상황은 아니지만, 집안의 부채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 걱정이 됩니다.

저와 여동생은 부모님께서 우리를 위해 베풀어주신 것들을 생각하면, 우리가 직장인으로서 경제적으로 지원할 여력이 된다면 도와드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동생도 얼마 전, 어머니께서 필요하신 돈 2천만 원을 흔쾌히 드렸고, 어머니는 곧바로 갚아주셨습니다. 저 또한 받은 상여금으로 가족 여행을 지원하는 등 부모님을 돕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부모님께서 방에서 조용히 대화를 나누시는 걸 들었습니다. 어머니께서 흐느끼며 우셨어요. 우리에게 고마우면서도, 자식에게 손을 벌리는 것이 미안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모르는 척하며 가족 여행을 즐겁게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어제 어머니께서 진지하게 고민을 털어놓으셨습니다. 경기가 너무 안 좋아져서 큰 금액은 아니지만 조금 돈이 필요하신데, 아버지가 30년 근속으로 받았던 순금을 팔아야 할지 고민하고 계신다고 하셨어요. 저는 그 순금이 아버지께서 오랜 세월 노력하신 결실이기에 가능하면 팔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몇 천만 원 대출을 받아 부모님께 드릴까?’라는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올 뻔했는데, 며칠 전 부모님께서 방에서 흐느끼시던 모습이 떠올랐어요. 저는 얼마든지 부모님께 필요한 돈을 지원해 드려 급한 불을 꺼드릴 수 있는데, 혹시라도 이게 부모님께 부담이 되어 오히려 불효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네요. 고민거리라고 할 것도 없어요. 돈을 대출해서 부모님을 도와드리고 싶은데, 엄마가 기분 나빠하시지 않을까 걱정하는 거잖아요.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돈을 주면 다 좋아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그 부분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웃음)

다만 내가 돈을 드리면 돌려받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물론 어머니도 갚고 싶은 마음은 있겠지만, 아버지는 퇴직을 앞두고 계시고, 어머니가 하시는 부동산 사업도 당분간 회복되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결국 경제적으로 점점 더 쪼들릴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 번 돈을 드리면, 몇 달 후 또 필요해질 것이고, 그때 또 도와주게 되면 계속해서 반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다 보면 부모님도 나도 같이 망하는 거예요.

어떤 사업이 잘 안 될 때는 과감히 정리하고 멈추어야 합니다. 노름을 하러 갔으면 본전을 잃었을 때 손을 딱 털며 ‘오늘은 끝이다’ 하고 나와야 집을 팔지 않고 지킬 수 있어요. 그런데 잃어버린 본전을 되찾겠다는 생각에 계속 머물다 보면 결국 집까지 잃게 되는 일이 생깁니다.

그러니 지금 부모님도 지출을 멈추어야 해요. 있는 돈을 아껴 쓰고 연금으로 생활하면서 더 큰 지출은 멈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경기가 살아날 때 다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돈을 빌려서 버티려 하면 결국 더 많은 돈을 잃게 됩니다.

부모님이 가진 것을 잃도록 그냥 두고, 질문자는 모른 척하고 있는 게 오히려 더 나은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정말로 부모님이 오갈 데 없을 정도로 힘들어졌을 때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도움이 됩니다. 지금 당장 도와주면 질문자가 드린 돈은 먼저 소진되어 없어질 것이고, 부모님도 남은 재산을 계속 투입할 것이거든요. 그러다 보면 결국 질문자도 더 이상 도울 여력이 없어지고 부모님 역시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집니다.

금반지를 팔든 뭘 팔든 그것은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요즘 금값이 오르니 지금 파는 게 좋잖아요? 앞으로 더 오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부모님이 현재 가진 것 안에서 팔아서 해결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부모님이 자식에게 빚졌다는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할 수 있고, 나도 돈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돈 달라고 애원하면 못 줬을 때 가책이 들겠지만, 달라는 소리를 안 하면 그냥 모른 척하는 게 좋아요. ‘금반지를 팔아야 하겠냐?’ 하고 물으시면 ‘안 파는 게 좋지만, 다른 방법이 있나요?’ 하고 대답하고 그냥 문을 열고 나가는 게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약 한 시간 반 동안 여섯 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저녁에도 즉문즉설이 열리기 때문에 오전에 못다 한 질문은 저녁에 계속 이어나가기로 하고 12시가 다 되어 강연을 마쳤습니다.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 1시부터는 평화재단 회의실에서 정기 이사회를 시작했습니다. 평화재단 이사님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이사장인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작년에는 평화재단 창립 20주년이었는데, 연구위원들과 상임 이사님이 중심이 되어서 실무자들과 함께 기념행사를 잘 준비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작년은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매우 높은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고, 한국에서 비상계엄이 실패하면서 한반도의 긴장이 많이 완화가 되었습니다. 아직 완전히 해결이 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종결되고 북한과 미국 간의 대화가 시작되면 한반도는 다시 평화로운 상태로 돌아오지 않겠나 기대해 봅니다. 올해 상반기는 국내 정치 상황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많이 혼란스럽겠지만 어떻게든 새로운 지도자가 결정이 되면 국내 정치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평화재단의 가장 큰 목적은 한반도의 평화인데, 우려스러운 상황을 일단 넘겨서 다행입니다. 국내외 분위기가 일신이 되면 우리가 꿈꾸었던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향해서 한발 한발 힘차게 걸어 나가 보았으면 합니다. 올해도 모두 수고해 주십사 부탁 말씀을 드립니다.”

이어서 2024년 사업 실적과 결산 보고를 한 후 2025년 사업 계획과 예산 보고가 있었습니다. 이사진 모두 만장일치로 사업 계획과 예결산을 승인했습니다.

곧바로 오후 3시부터는 JTS, 에코붓다, 좋은벗들, 3개 사단법인 단체의 총회에 참석했습니다. 대부분의 총회 구성원들이 온라인으로 참석한 가운데 스님과 몇몇 임원들은 오프라인으로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JTS 총회를 먼저 하고, 다음은 에코붓다 총회를 한 후, 마지막으로 좋은벗들 총회를 했습니다. 총회 회원들 모두가 2024년 사업보고와 결산을 승인하고, 2025년 사업계획과 예산을 승인했습니다.

“사업계획과 예산을 승인하시겠습니까? 승인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세 개 사단법인의 총회를 마치고 나자 해가 저물었습니다.

저녁 7시 30분에는 지하 대강당에서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이어나갔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즉문즉설을 듣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찾았습니다. 시민들은 현장 접수를 하거나 질문 신청을 한 후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하 대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유튜브에 5,400여 명이 접속하고 현장에서 300여 명이 자리한 가운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사전 공연이 있은 후 삼귀의와 수행문을 낭독하고 나서 스님이 무대 위에 자리했습니다. 즉문즉설의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곧바로 청중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한 시간 반 동안 여섯 명이 손을 들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질문자 중에는 중학생도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잔소리를 멈추게 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저는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입니다. 최근 진학 고민이 많아지면서 아버지가 이것저것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아버지의 잔소리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궁금합니다.”

“그런 방법은 없어요.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방법은 있지만 남을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방법은 없어요.

만약 방법을 찾고 싶다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질문자가 빨리 성장해서 힘이 세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말을 많이 할 때 입을 봉해버릴 수가 있죠. 그런데 지금은 질문자가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둘째, 말을 많이 하는 것이 타인에게 해가 된다는 사실을 아버지께 이해시키는 거예요. 질문자가 아버지를 설득시켜 내는 겁니다. 즉, 아버지를 설득할 능력이 있든지, 강압적으로 제어할 힘이 있든지 해야 합니다. 그 두 가지가 아니면 남을 바꿀 수는 없어요.

그래서 부처님은 ‘남을 바꾸려 하지 말고 내가 어떻게 할지에만 관심을 가져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바깥으로 향한 시선을 안으로 돌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100만의 대군을 이기는 것보다 내가 나를 이기는 것이 더 큰 영웅이다’ 하고 말씀하셨어요. 질문자가 아버지를 변화시킬 방법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학생이 스님의 말을 금방 알아듣고 자리에 앉자 모두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한 질문자는 원래 다니던 학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 중퇴한 후 다시 입학을 했는데, 또 적성이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진로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전공이 맞지 않는 것 같은데, 이제 와서 바꿔도 될까요?

“저는 지금 대학생입니다. 원래 다니던 학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 중퇴한 후 음악대학에 다시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입학하고 나니 제 적성과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길을 찾아보려 해도 이제는 나이가 많아졌고, 이대로 대학을 졸업하면 음악 계통에서만 일할 수 있을 것 같은 한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더구나 앞으로 이 분야의 전망도 좋지 않다고 해요.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전공에 대한 동기가 약해지고, 이 길을 계속 가더라도 생활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이 큽니다. 전과하여 다른 학과로 가서 졸업한 뒤 평범한 회사원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족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A라는 학과를 선택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B로 바꿨고, 그런데 B마저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잘못된 선택을 반복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처음 A를 선택했을 때, 그것이 내 적성과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대단히 큰 성과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기 위해 1년을 소모했더라도, 투자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그리고 B를 선택했지만, 그것조차 맞지 않는다고 알게 된 것 역시 중요한 발견입니다. ‘A가 안 맞았으니, B는 맞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네?’라는 깨달음은 매우 소중해요. 그렇기 때문에 A와 B를 선택한 과정은 절대 인생의 낭비가 아닙니다.

일반 회사에 취직해서 평범하게 사는 것도 고민 중이라고 했는데, 일반 회사에서는 전공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일반 회사는 전공과 무관하게 채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작정 대학에 다니는 것이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큰 낭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전공이 꼭 필요한 사람만 대학에 갑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학을 졸업해야 직장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대학에 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4년간 일해도 대졸자의 초임보다 못한 급여를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반면,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대졸자라도 첫 직장에서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한 사람보다 급여가 낮을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경력이 쌓이면 비슷한 수준이 될 수 있지만, 그 과정이 오래 걸려요. 이런 임금 체계는 개인과 직장 모두에게 훨씬 효율적으로 작용합니다. 일반인이 굳이 대학에 갈 필요가 없죠.

기술이 필요한 분야는 청소년기에 가장 예민하고 빠르게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무작정 대학에 가서 졸업한 후에 특별한 기술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면 이십 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기 어려워지고, 흥미를 잃게 됩니다. 이 때문에 인력 자원의 낭비가 굉장히 심합니다.

그렇다면 대학에 진학해서 꼭 전공해야 하는 일은 어떤 것일까요? 예를 들어, 의사나 간호사가 되려면 관련 전공을 공부해야 합니다. 또 현재 의료 시스템은 전문 자격을 요구하기 때문에 반드시 대학에서 배워야 하지만, 옛날에는 꼭 자격증이 있어야만 일할 수 있는 건 아니었어요. 한의학의 역사만 봐도 반드시 자격증이 있는 사람만 한의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출중한 선생 밑에서 몇 년간 배운 뒤 사람을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운전도 마찬가지예요. 운전 면허증 제도가 없던 시절에는 숙련된 운전사 밑에서 조수로 일하며 몇 년간 배우면 운전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방식이 도제식 훈련 체계입니다. 이런 도제식 방식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대학원의 박사 과정입니다. 지도교수 밑에서 심부름하고, 글을 쓰고 공부해서 지도교수가 승인을 해줘야 박사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교수도 모르는 획기적인 발견을 했다고 해서 박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 사법고시 제도에서는 법대를 나오지 않아도 시험을 보고 합격하면 변호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법학전문대학원의 과정을 거쳐야 변호사 시험 응시 자격이 주어집니다. 현재와 같은 전문 자격시험이 있는 시대에서는 그 시험에 통과한 사람들에게 직장이 보장됩니다. 하지만 앞으로 본격적인 인공지능 시대가 다가오고, 인공지능이 일반화되면 그 인기가 점점 떨어질 거예요. 전문 자격이 필요한 분야는 일정한 원리와 규칙이 있는 직업군인데, 인공지능은 이를 빠르게 학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3년 동안 배운 내용을 인공지능은 5분 만에 습득할 수도 있어요.

물론 스님의 즉문즉설 같은 것은 인공지능이 익히기가 어렵겠죠. 즉문즉설을 얼핏 보면 정해진 원리가 있는 것 같아도, 인생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만 개의 사례만으로는 대략적인 답 말고 정확한 길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수많은 삶의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 만 개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요.

전문 자격을 요구하는 시스템에서는 대학 전공이 필수이지만, 일반 직장에서 일하는 경우라면 음대를 나왔든 독문과를 나왔든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독문과를 나왔다고 해서 독일 관련 기관에 근무하거나, 불교학과를 나왔다고 모두 절에서 근무하는 것도 아니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공과 무관한 직장에서 일하고 있어요.

질문자가 특정 전공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대학 졸업장이 필요하다고 하면 빨리 졸업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 후 전문 자격이 필요하지 않은 곳에 그냥 취직하면 됩니다. 취직해서 자신의 전공을 살릴 수도 있어요. 예를 들면,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경찰이 된다면 일반 경찰 업무를 해도 되지만, 범죄심리학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또,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이 일반 직장에 취직했다고 하면 사내 교육 분야를 담당할 수도 있습니다. 심리학과나 교육학과를 나왔다고 해서 꼭 심리 자격증을 따거나,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법대를 나왔다고 해서 변호사나 판사, 검사가 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은 아니에요.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법률적인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반 회사에 가서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 전공한 것이 직장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고 해서 전공이 쓸모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질문자가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했다면, 나중에 회사에 취직해서 브랜드 홍보를 위한 로고송을 작곡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배운 것을 활용할 기회는 의외로 많습니다. 버려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전공에 너무 얽매일 필요가 없어요. 만약 예체능 분야에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도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질문자가 지금까지 두 번이나 전공을 바꿨다는 것은 아직 뚜렷한 목표가 없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대학을 졸업한 후, 아르바이트나 직장 생활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다 보면 ‘이게 괜찮네’라고 느껴지는 분야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때 더 깊이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겠다고 판단되면, 다시 대학에 가도 늦지 않습니다. 40대가 되어서 대학에 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어요. 그리고 앞으로 모든 것이 인공지능과 자동화 시스템으로 대체되는 시대에서는 대학 졸업장이 점점 관습적인 것이 되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대학 졸업장이 없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시대가 올 거예요.”

“네.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몇 가지 있는데, 가장 걱정되는 점은 저와 같은 스물다섯 살 또래 여성들은 이미 취직을 해서 어느 정도 재산을 모으고 있다는 것이에요.”

“그렇게 따지면 스님 또래의 남자들은 벌써 손자까지 다 봤어요. 그건 쓸데없는 생각이에요. 우리는 늘 자신의 또래 중에서 잘된 사람과 나를 비교합니다. 내 또래 중에 10억을 번 사람이 있다든지, 나는 아직 결혼도 못 했는데 내 또래가 벌써 결혼해서 애를 낳았다든지, 이런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나 그런 사람이 있기 마련이에요. 그렇게 비교하다 보면 자신에게 열등감만 심어주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열등감을 느끼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못나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을 그 분야에서 가장 잘난 사람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노래 실력은 노래를 가장 잘하는 사람과 비교하고, 운동 실력은 운동을 가장 잘하는 사람과 비교하고, 경제력은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사람과 나를 비교해요. 그러면서 ‘나는 저 사람보다 노래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고, 돈도 못 번다’라고 생각하죠. 이렇게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늘 열등의식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스물다섯 살은 나이 축에도 안 들어가요. 질문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봉사자들의 안내에 따라 대강당에 모인 청중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스님은 수고한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정토회관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6일째 날로 오전에는 1080배 정진을 하고, 오후에는 정토불교대학 졸업식을 할 예정입니다.


2025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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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여러분들이 못나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을 그 분야에서 가장 잘난 사람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_()_
감사합니다

2025-03-03 20:57:36

지명화

고맙습니다

2025-03-01 12:13:37

임영현

즉문즉설을 읽으면서 제가 선택에 대한 책임을 많이 두려워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선택의 결과가는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미지의 세계입니다. 선택의 결과를 여여히 받을 수 있도록 꾸준히 정진해야겠다는 마음입니다🙏

2025-02-25 12: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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