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2.22. 백일법문 6일째, 1080배 정진, 정토불교대학 졸업식
“이랬다 저랬다 하는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안녕하세요.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6일째 날입니다. 오늘은 지난 일주일 동안 들은 법문을 마음속에 되새기며 정진을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3층 설법전에서는 9시부터 많은 대중들이 사시예불에 참석하여 정성껏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시예불을 마친 후 잠시 자리정돈을 하고 10시 15분에 1080배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정진을 하기 위해 230여 명의 대중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습니다.

정진을 하기에 앞서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어떤 마음으로 정진에 임해야 하는지에 대해 법문을 했습니다.

“오늘은 지난 일주일 동안 들은 법문을 마음에 새기며 정진하는 날입니다. 정진을 하려면 두 가지 마음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정진을 하는 마음가짐

첫째,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야 합니다. 지나치게 긴장하거나 나태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정진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약간 긴장하거나 절을 빨리 해야 한다는 조급함을 가질 때가 있어요. 마음이 긴장하거나 조급해지면 긴장을 풀고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것은 100m 달리기 경주처럼 빨리해서 끝내야 하거나, 제일 먼저 108배를 했다고 자랑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진은 힘을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 꾸준히 해야 합니다. 하기 싫어도 하고, 하고 싶어도 하고, 잘 되어도 하고, 안 되어도 해야 합니다. 하고 싶을 때만 하고 하기 싫을 때는 안 하며, 잘 되면 기분 좋아하고 안 되면 그만두는 것은 정진이 아닙니다. 정진은 잘 되고 안 되고, 하고 싶고 하기 싫고, 힘들고 안 힘들고, 이런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하기로 했으면 꾸준히 해 나가는 것이 정진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할 때가 많습니다. 남이 두 번 절할 때 자신은 한 번 절하는 흉내만 내거나 어떻게든 힘을 덜 들이고 시간만 때우려는 마음이라면 그것은 정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지나치게 긴장해서도 안 되지만 해이해서도 안 됩니다. 지나치게 조급해서도 안 되지만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나태해서도 안 됩니다. 편안한 가운데 자신이 정한 일정한 속도로 꾸준히 해 나가야 합니다. 다리가 아파도 하고, 힘들어도 해야 합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마음이 갖는 성질은 늘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중간중간 하기 싫은 마음이 났다가,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났다가, ‘에이, 하자’ 하다가도 ‘왜 절을 하지?’ 이런 마음이 듭니다. 마음은 늘 이렇게 왔다 갔다 해요. 사랑하는 마음이 들면 상대에게 모든 걸 다 내줄 것 같다가도, 미운 마음이 들면 상대를 죽여버리고 싶은 감정이 들기도 합니다. 이처럼 마음이라는 것은 일정하지 않고 이랬다 저랬다 합니다. 그래서 마음은 무상(無常)한 것입니다. 믿을 게 못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마음이 한결같지 않은 것을 문제로 삼습니다. 마음이 왔다 갔다 하면 잘못된 걸까요? 아닙니다. 마음이라는 게 본래 그런 성질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염처경에서는 ‘관심무상(觀心無常)’이라고 표현합니다. 마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해 보면 늘 경계에 따라 죽 끓듯이 변화하여 항상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되면 마음이 어떻게 일어나든 크게 개의치 않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안 일어나면 좋다거나, 일어나면 나쁘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은 내 의도대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마음은 의식보다는 무의식, 즉 카르마의 영향을 더 크게 받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잘 알아차리면 내 카르마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은 그냥 일어나는 대로 두어야 해요.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고 해서 ‘내가 지금 굉장히 정진을 잘하고 있다’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하기 싫은 마음이 일어났다고 해서 ‘지금 정진이 안 되고 있다’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마음은 본래 이랬다 저랬다 합니다.

하기 싫어도 하고, 하고 싶어도 그냥 해 봅니다

절을 하면 몸은 당연히 피곤하고 힘듭니다. 그건 이미 시작할 때 전제가 되어 있어요. 108배를 하는 것도 아니고 1080배나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설악산을 등산한다고 합시다. 처음에는 기분 좋게 출발하지만 중간쯤 올라가면 힘이 들어 후회가 됩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을 할까? 지금이라도 내려갈까?’ 이런 생각이 수없이 올라옵니다. 그래서 혼자 가면 대부분 중간에 내려오게 돼요. 하지만 친구들과 같이 가면 처음에는 자기가 앞장서서 가다가도 나중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친구들의 눈치를 보며 어쩔 수 없이 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정진할 때는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이미 전제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친구가 가자고 했거나 엄마가 강제로 보냈다면 반발이 더 심하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정진할 때는 타의에 의해 시작하면 안 됩니다. 자꾸 남을 원망할 핑곗거리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이미 선택할 때부터 예정된 일입니다. 절을 하면 땀이 많이 납니다, 다리도 아프고, 하기 싫은 마음이 수도 없이 올라오고, 후회도 됩니다. 이건 이미 예정이 되어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시작해야 합니다.

그럼 정진을 왜 할까요? 이렇게 하기 싫은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에 정진을 하는 거예요. 하기 싫은 마음이 일어나도 크게 구애받지 않고 꾸준히 해 나아가는 게 정진입니다. 만약 2시간 내내 절하는 게 재미있고 기분이 좋다면, 그건 노는 것이지 정진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기 싫은 마음이 많이 일어나고 힘도 들지만, 거기에 구애받지 않고 꾸준히 해 나가는 것이 정진입니다.

1080배를 한다면 300배 정도에서 힘들고, 700배에서 다시 힘들어지는데, 그 고비를 넘으면 괜찮아집니다. 주어진 시간에 1080배를 다 마치면 자신에게 만족감을 느끼게 되지만, 다 마치지 못하면 자기한테 실망을 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1080배를 다 했는지, 한 배가 빠졌는지,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절을 빨리하려고 절을 대충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엉덩이를 들고 머리를 바닥에 대지도 않은 채 절하는 시늉만 하고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럴 거면 왜 절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웃음)

설령 절을 다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엉덩이를 다리에 딱 붙이고 정성스럽게 절을 한 뒤에 일어나야 합니다. 엎드린 채 한참 있다 일어나는 건 정성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기 싫고 힘드니까 괜히 정성을 기울이는 척하면서 엎드려 있다가 일어나는 거예요. 저는 여러분의 마음을 속속들이 다 압니다. 왜 그럴까요? 저도 옛날에 만 배를 할 때 그렇게 해봤기 때문입니다. 힘드니까 정성을 기울이는 척하면서 엎드려 있는데, 이런 식으로 절을 하면 끝나고 나서 마음이 상쾌하지 않아요. 정성을 기울여서 꾸준히 절을 할 때 과정은 힘들지만 끝나고 나면 내가 나를 이겼다는 성취감이 생깁니다. 첫째, 절을 하면 몸이 힘들기 마련인데 그 힘든 몸을 이겨낸 거예요. 둘째, 몸이 힘들면 마음이 영향을 받아 자꾸 거부하는 마음이 일어나는데 그것을 이겨낸 것입니다.

힘드니까 이런 마음이 일어나는구나

이렇게 하기 싫은 마음을 이겨낸 경험이 쌓이면, 친구를 사귀거나 연애를 하거나 결혼해서 살 때 감정을 바로 입 밖에 내서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화가 날 때마다 한 번씩 멈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사표를 탁 내고 한마디라도 하고 나와야 속이 시원할 것 같잖아요? 그러면 다음 날 아침에 ‘그때 잠깐 참을걸’ 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그러나 정진을 꾸준히 하면 싫은 마음과 힘든 감정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억지로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고 자발적으로 힘듦을 받아들이고 극복하기 때문에 마음속에 상처가 남지 않습니다. 내가 선택해서 등산을 갔다 온 경우에는 죽을 것 같이 힘들었어도 다녀오고 나면 상처로 남지 않아요. 그런데 강제로 하게 되면 그 경험이 마음의 상처가 되어 오래 남습니다.

그래서 정진은 자발성에 기반해야 합니다. 내가 선택해서 시작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을 것임을 이미 알고 시작해야 해요. 그래야 힘든 과정이 나타나더라도 거기에 끌려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하게 되면 자꾸 마음이 외부 상황에 영향을 받게 돼요. 마음의 성질 자체가 끊임없이 핑곗거리를 만들고, 그만둘 이유를 찾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만 하고 다음에 그만둘까?’, ‘이걸 왜 하고 있나?’, ‘배 아프다고 하고 나가 버릴까?’ 이렇게 계속 핑곗거리를 찾습니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그런 마음이 드는 자신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일어나면 ‘이러면 안 돼’ 하고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힘드니까 이런 마음이 일어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거예요.

정진을 다 마치고 나서 돌아보면 힘든 순간은 마치 한여름 밤의 꿈과 같습니다. 힘든 마음이 일어날 때는 엄청나게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지나고 보면 기억도 잘 안 나요. 꿈속에서는 모든 것이 굉장하게 느껴지지만 깨고 나면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것처럼, 이런 것을 번뇌라고 합니다. 결국 그냥 지나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 순간순간에 빠지지 않고 ‘힘드니까 이런 마음이 드는구나’ 하며 구경하면서 가면 됩니다.

자기를 합리화하지 않기

자기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자기가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힘들어지면 어떻게든 핑계를 대고 그 상황에서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마음은 항상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합니다. 자기가 나쁜 짓을 해놓고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댑니다. ‘네가 그렇게 하니까 나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지’ 이렇게 늘 핑곗거리를 찾습니다. 지금 시국도 한번 보세요. 헌법에 위배되는 행위를 해놓고도 ‘비상계엄 한 걸 문제 삼지 마라. 그때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이 있었다’라고 계속 주장하잖아요. 법을 어겼음에도 그 행위 자체보다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원인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태도가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모든 인간이 다 그런 속성을 갖고 있어요. 인간이 나빠서가 아니라 항상 자기를 변명하는 것이 마음이 갖고 있는 속성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잘못한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자기 입장에서는 자기가 잘했어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내가 잘못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도 결국 자기를 위해서예요. 자기가 잘했다고 우기면 갈등이 커질 테니 차라리 잘못했다고 말하고 상황을 피하는 게 유리하다고 머릿속에서 계산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과하는 것이지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해서 사과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이렇게 인간은 늘 자기를 합리화합니다. 사람이 본래 그렇기 때문에 남이 자기 행동을 합리화한다고 해서 굳이 얄밉다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도 나를 합리화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극복하려고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자기를 합리화하면 안 되는 이유는 그걸 극복해야만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타인에 대해서는 ‘그럴 수 있다’ 하고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하고, 나에 대해서는 ‘이것이 내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하고 바라봐야 합니다. 첫째, 어떤 마음이든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문제 삼지 말고 알아차려야 하고, 둘째, 그 마음에 끌려가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정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몸을 자꾸 숙이면 마음도 따라 숙여집니다

절을 하는 것은 자기를 숙이는 연습입니다.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들리고, 죄송하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래서 이마를 바닥에 대는 것은 ‘제가 부족합니다’ 하는 마음을 내는 거예요. 마음을 숙이면 몸은 저절로 숙여지고, 몸을 자꾸 숙이다 보면 마음도 따라 숙여지게 됩니다. 그러니 마음을 숙이면서 몸도 함께 숙여 보시기 바랍니다. 설령 마음이 따라오지 않아도 일단 몸부터 숙여보자는 자세로 한번 해봅니다. 힘들면 마음이 저항을 하게 됩니다. 그럴 때 그 저항을 한번 이겨내 봅니다. 조급해하지도 말고 꾸준히 정진해 봅니다.”

이어서 1080배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넓고 깊은 원력 세워 보살도를 닦고 닦아 고통중생 구하시는 관세음보살님께 지성귀의 하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목탁 소리에 맞춰 모두가 우렁차게 염불을 하며 절을 했습니다. 염주가 한 알씩 돌아갈 때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쉼 없이 목탁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1080배를 다 하는 데에 3시간이 걸렸습니다. 온몸이 땀에 젖은 채 사홍서원을 하며 정진을 마쳤습니다.

“모두 성불하십시오.”

스님은 무릎이 아파 절은 함께 하지 못하고, 정토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2시부터는 정토불교대학 온라인 졸업식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5개월 동안의 공부를 마치고 새로운 시작을 향해 나아가는 뜻깊은 날입니다. 대부분의 졸업생들은 교실별로 생방송을 함께 시청하고, 화상회의 방에는 개근상과 정근상 수상자들이 자리했습니다.

정토회 대표님의 축사를 들은 후 축하 공연과 지난 5개월 동안의 불교대학 수업 모습과 실천 활동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이어서 정토불교대학 학장인 스님이 국내외의 1500여 명의 졸업생들에게 졸업장을 수여했습니다.

“졸업장을 드립니다.”

“잘 받았습니다.”

화상회의 방에서 축하의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모두 축하드립니다.”

이어서 166명이 개근상을 수상하고, 189명이 정근상을 수상했습니다.

박수 소리를 뒤로 하고 졸업생 두 분의 소감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박사 과정에 진학하고서부터 괴로움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급함, 초조함, 미래에 대한 불안함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에 사로잡혀 지냈습니다. 하지만 법륜스님의 정토불교대학 강의를 들으며 조금씩 가벼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청년 경주 통일 역사 기행, 천일결사 기도, 깨달음의 장을 통해 많은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통해 제가 무엇에 집착했는지, 무엇에 사로잡혀 그 너머를 보지 못했는지를 깨닫고 나니, 그동안의 모든 원망과 미움, 화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과 지인, 도반들이 ‘표정이 더 밝아진 것 같다.’고 해주시면 아직도 놀라는 마음입니다. 상황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생각의 전환으로 관점 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괴로울 일이 이렇게나 적어지는구나 싶어 놀랄 때가 많습니다. 살면서 지금처럼 가벼웠던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이 기쁜 깨달음과 가벼운 마음을 이어갈 수 있도록 경전대학에도 진학하고 꾸준히 수행하여 잘 쓰이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때마침 직장을 그만두고 쉴 때라, 가볍게 생각하고 시작한 불교대학 수업은 반 년동안 제게 수많은 느낌표와 물음표 그리고 쉼표를 주었습니다. 불교대학 수업을 듣고 처음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게 해 달라는 기복적인 기도가 아닌 108배 참회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이래야 해!’라는 상을 만들어 놓고 아이가 거기서 벗어나면 제가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나의 잣대로 보니 잘못이지 있는 그대로 보면 아이가 고쳐야 할 그 무엇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죽비 모양의 느낌표가 저를 내려치는 것 같이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부처님의 생애를 배우며 물음표도 생겼습니다. 어릴 때부터 의지했던 자비로운 부처님과 불교대학에서 배운 인간붓다 사이의 간극에 대한 질문이 생겼고, 뜻도 모르고 무조건 따라 읽었던 경전들의 의미를 알고 싶은 마음도 생겼습니다. 중도를 배우고 나서는 일상생활 속에서 적용하고 실천할 때, 무엇이 중도인지를 끊임없이 묻게 되었습니다. 화도 여전히 나고, 내가 옳다는 아집과 편견도 불쑥 튀어나옵니다. 하지만 폭주하지 않고 잠깐 쉼표는 찍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틈틈이 명상을 하며 호흡과 몸 상태를 알아차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상대를 탓하기 전에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이런 가르침을 설법해 주신 법륜스님께 진심으로 존경과 깊은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정토불교대학을 다니면서 삶의 변화를 경험한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불법을 만난 인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졸업생 일동은 바른 법으로 인도해 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스승의 은혜’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이어서 졸업생들이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졸업 후 정토회와의 인연을 지속할 수 있도록 수행, 보시, 봉사하는 삶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하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오늘은 불교대학을 졸업하면서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함께 얘기해 보겠습니다.

자기가 좋아서 선택해 놓고 왜 후회하고 괴로워할까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는 각자 자기 좋을 대로 살아갑니다. 겉으로는 남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하지만, 결국 모두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좋아서 선택해 놓고도 나중에는 후회하고 괴로워합니다. 누가 연애하라고 했나요? 자기가 연애한다고 너무너무 좋아해 놓고 나중에는 연애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결혼한다고 온갖 축하를 받아놓고도 결혼생활이 힘들어지면 그로 인해 괴로워합니다. 아이를 낳았다고 축하를 받았지만, 이제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 힘들다고 괴로워합니다. 가게를 열었다고, 시험에 붙었다고, 회사에 취직했다고 축하를 받고는 막상 그 일이 힘들어지면 다시 괴로워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결혼한다고 해도 제가 축하를 안 하는 거예요. 그냥 ‘그렇습니까?’라고 대답할 뿐입니다. ‘축하합니다’라고 할 수가 없어요. 조금 지나면 또 괴롭다고 난리일 테니까요.

심지어는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까지 그렇습니다. 당선될 때는 다들 좋아하지만 결국 임기가 끝나면 본인이 감옥에 가거나, 아니면 자식이나 심복이 감옥에 가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대통령 선거가 다음에 감옥에 갈 사람을 뽑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자기가 선택해서 남들로부터 축하까지 받았는데 결국 괴로워집니다. 이런 모습을 두고 부처님께서는 ‘락(樂)이 곧 고(苦)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고와 락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과정입니다. 이 말은 즐거움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뜻이에요. 즐거운 만큼 나중에 반드시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다시는 괴로움이 없는 지속 가능한 행복을 가르쳐줍니다. 괴로움이 없는 지속 가능한 행복, 이것을 ‘열반(涅槃)’이라고 합니다. 수행의 목표는 열반을 증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괴로울까요?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나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면 괴로움이 없는 상태로 나아갈 수 있어요. 이 어리석음을 세분화하면 탐(貪), 진(瞋), 치(癡),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욕심이 지나치거나 자기 성질대로 행동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괴로움이 닥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욕심에 눈이 멀었다’ 또는 ‘화가 나면 눈에 뵈는 게 없다’ 하고 말했습니다. 욕심을 내거나 화를 내는 것은 결국 알지 못함(無知)으로 인해 빚어지는 일입니다. 즉 어리석음이 원인입니다.

함께 행복한 세상을 위한 세 가지 실천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세 가지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첫째, 수행입니다. 수행이란 ‘'알아차림’을 유지해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스스로 그 길을 찾아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르렀고, 또 괴로워하는 우리들에게 그 길을 안내해서 우리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스스로 깨달은 붓다가 괴로워하는 중생에게 괴로움이 없는 경지로 인도하는 가르침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괴로워하는 중생은 부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 정진하여 마침내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세 가지 보배라고 해서 삼보(三寶)라고 합니다. 수행자는 불(佛)·법(法)·승(僧) 삼보에 귀의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인 계(戒)·정(定)·혜(慧) 삼학을 닦아야 합니다.

둘째, 봉사입니다. 자신의 시간을 일부 내어서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자신의 재능을 항상 돈을 받고 팔지만 말고, 베풀고 나누어야 합니다.

셋째, 보시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번 재산이라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내게 더 많이 분배된 것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이거 당신 겁니다’ 하고 돌려주는 마음으로 베푸는 보시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수행하고 봉사하고 보시하는 삶의 자세를 가질 때 나도 행복하고 세상도 편안해지는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을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이라고 합니다. 위로는 나의 행복과 자유를 추구하고, 아래로는 타인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한다는 뜻이에요.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을 수행자, 즉 ‘보디사트바’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지난 5개월 동안 이런 내용을 열심히 배우셨으니까, 앞으로는 이런 방향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도 수행자, 즉 ‘보디사트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손을 맞잡고 가는 길

정토회는 이런 길을 함께 가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혼자 가면 중단할 수도 있기 때문에 도반들이 손을 맞잡고 함께 갑니다. 백일을 정진하면 내 상태를 알 수 있고, 천일을 정진하면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관점에서 천일 동안 함께 정진하는 것을 ‘천일결사’라고 부릅니다. 가능하면 여러분도 천일결사에 참여해서 함께 정진을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이제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정토회의 회원이 되면 다음과 같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됩니다. 첫째, 매주 수요일마다 수행법회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매주 법문을 듣고 수행, 봉사, 보시를 실천하는 정토행자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천일결사에 참여하면 매일 아침 5시에 함께 정진할 수 있고, 백일마다 한 번씩 모여서 자신의 수행을 점검할 수 있습니다. 셋째, 상반기와 하반기에 진행되는 명상수련에 참여해서 4박 5일 또는 6박 7일간 집중적인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넷째, ‘깨달음의 장’에 참가하여 지금까지 배운 것을 몸과 마음으로 직접 경험하고 증득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깨달음의 장’이 끝나면 ‘나눔의 장’ 수련을 통해 미세한 자기 마음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인도성지순례에 참여해서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다시 한번 나를 점검할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기 위해 독립운동 유적지와 고구려·발해 역사 유적지를 탐방하는 동북아 역사 기행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 있는 활동들을 함께할 수 있으니 정토회 회원으로 가입하셔서 꾸준히 정진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법문을 마치고, 졸업생들의 소감을 계속해서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기 시작하니 많은 졸업생들이 줄줄이 손을 들고 소감을 말했습니다.

“저는 택시 운전을 하고 있는데, 굉장히 화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을 다니면서 화가 많이 누그러졌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졸업을 하고 나니 예전보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하는 말을 정말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실천 활동을 할 때는 ‘오케이, 다시 한번 해볼게요.’ 하는 말을 자주 해봤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화가 올라올 때마다 매번 생각하는 습관이 생긴 것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앞으로도 스님 옷자락을 붙들고 계속 쫓아가겠습니다.”

“공황 장애와 우울증이 갑자기 찾아와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가슴속에 새기면서 지금은 아주 편안하게 살고 있습니다.”

“저는 불안감이 너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스님 법문을 듣고 나서 불안감이 많이 없어졌어요. 앞으로 경전대학에 진학하여 꾸준히 정진하겠습니다.”

“알코올 중독으로 투병하던 어머니를 하늘나라에 보내고 너무나 힘들었던 시기에 스님의 법문을 만났습니다. 지금은 어머니가 이해가 되고, 저 자신도 이해하게 되면서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괴로움이 없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 정토불교대학의 목표라는 스님의 말씀이 한 명 한 명의 소감 속에서 그대로 현실로 드러나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닫는 인사를 했습니다.

“소감 잘 들었습니다. 다음에 경전대학에 입학해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사홍서원을 끝으로 졸업식을 마쳤습니다. 학생들은 수업사이트로 입장하여 교실별로 마음 나누기를 이어나가고, 스님은 방송실을 나왔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에는 원고 교정과 여러 가지 업무들을 처리한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7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 3층 설법전에서 명상 수련을 진행하고, 오후에는 정토경전대학 졸업식을 하고, 저녁에는 온라인으로 독일정토회, 뉴욕정토회, 뉴저지정토회의 정기 이사회에 연달아 참석할 예정입니다.


2025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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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화

고맙습니다

2025-03-01 12:25:16

길상화

감사합니다

2025-02-26 12:44:05

굴뚝연기

[ᆢ오히려 하기 싫은 마음이 많이 일어나고 힘도 들지만, 거기에 구애받지 않고 꾸준히 해 나가는 것이 정진입니다.] 마음의 속성이 원래 그렇게 늘 변하는것이군요ᆢ스님 목을 너무많이 쓰시니,생강차라도 자주 드셔주세요ᆢ강의,말씀 많이하는게 정말 힘든일이거든요ᆢ저번 스님말씀에서처럼,편도 목도붓고,그걸로인해 열도오르고ㅜ목도가고 쉬고요ㅜ

2025-02-26 08: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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