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12.26. 부탄 답사 3일째 트롱 당칼, 골링, 창라종 주펠, 타마 벌티 방문
결혼 적령기인데 좋아하는 사람을 자꾸 밀어내어 고민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부탄 답사 3일째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치고 한국과 소통하면서 내년 특별 정진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출발하기 전에 실무자들을 불러서 품졸 마을에서 숙박하면서 알게 된 개선 사항들을 알려주었습니다.

“하루 자 보니까 추워서 건물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숙박하기가 어렵겠어요. 숙소에서 조금 더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부탄 사업을 할 때 몇 가지 당부 사항을 말하고 나니 새벽 6시가 되었습니다. 답사지로 출발하는 스님께 인사 드리기 위해 인도인 스태프들과 보리수 거사님들이 일찍 나와서 차에 짐을 싣고 있었습니다.

“거사님들 이곳에서 생활하기 불편해서 지내시기 쉽지 않겠지만 있는 동안은 잘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젬강주 트롱 게옥을 답사하고 내일은 판칼(Phangkhar) JTS센터에서 숙박할 예정입니다. 거사님들도 판칼로 오셔서 하루 쉬면서 정비하고 다시 품졸 마을로 복귀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내일 뵙겠습니다”

박태화, 김재원 보리수 거사님 두 분이 만들어 주신 품졸 마을 법당 조명 아래에서 다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은 이동하는 차 안에서 실무자에게 말했습니다.

“품졸 마을에서 지내 보니 지금까지 다녔던 곳 중에서 가장 어려운 동네 같아요. 가구수도 15가구밖에 안 되고요. 품졸 마을은 지원을 더 하는 방향으로 논의해 보면 좋겠습니다.”

젬강 종카 30개 치옥 답사 시작

젬강(Zhemgang) 종카 전 지역 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오늘은 트롱 게옥(Trong Gewog)에 있는 3개의 치옥 트롱 당칼(Trong-Dankhar), 창라종 주펠(Tshang la Jong- Zurphel), 타마 벌티(Tama Berti), 낭콜 게옥(Nangkor Gewog)‬에 있는 1개 치옥 골링(Goling)을 방문하여 마을 주민과 대화할 예정입니다.

깜깜한 새벽에 출발하여 젬강 종카에 도착하니 어느덧 날이 밝았습니다. 젬강 종카의 부주지사, 축산업 담당자, 기획 담당관이 나와서 스님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스님 어서 오십시오. 아침 식사 먼저 하시고 답사 일정을 시작하겠습니다”

부주지사가 스님을 안내했습니다.

다 같이 젬강 종카에서 준비한 아침 공양을 하고 마을 방문을 시작했습니다. 10분 정도 차로 이동하여 첫 번째 방문지인 트롱 당칼(Trong-Dankhar) 치옥에 도착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당칼 법당에 들어가 참배를 하고 주민들과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마을 경치가 좋네요. (웃음) 우리가 옛날같이 살면 별 문제가 없지만 살다 보면 새로운 것들이 많이 나오니까 욕심이 자꾸 생깁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게 되면서 외국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외국으로 안 가면 도시로 나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는 노인들만 남고 젊은 사람들은 적어집니다. 그러나 도시나 외국으로 나가 보면 처음에는 좋습니다. 하루 일하면 이곳보다 돈을 많이 받지만 도시에서 1년 2년 살다 보면 생활비가 많이 드니까 다시 부족해집니다. 도시에 오래 살다 보면 다시 고향이 그리워집니다. 하지만 고향에 다시 돌아오고 싶어도 망설여지는 것은 시골은 여전히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특별히 가난한 건 아니지만 생활이 조금 불편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주민들이 생활할 때 불편해하는 부분들을 개선해 보자’ 하고 부탄의 국왕님과 의논을 했습니다.

지역을 선정할 때에는 주민들의 생활이 많이 불편할 만한 곳을 선정했습니다. 부탄의 20여 개의 종카 중에 젬강 종카가 수도에서 가장 교통이 멀고, 적은 인원이 살고 있으며, 빈곤율이 가장 높다고 해서 젬강 종카를 먼저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올 한 해는 젬강 종카의 10개 치옥에서 시범적으로 일을 했습니다. 집도 고치고, 농수로도 만들고, 도로 포장도 하고, 상수원도 놓고, 학교에 화장실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 시범 사업들을 진행하고 나니, 마을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이 시범 사업들을 젬강 종카 전역에 확대하려고 젬강 전체를 방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생활에 특별히 불편한 게 없다면 JTS는 할 일이 없어지고, 여러분이 필요한 게 있다면 JTS가 개선할 수 있도록 함께 하겠습니다.

저는 여러 개의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마을마다 ‘이 문제가 개선되면 생활이 편리해지겠다’ 하는 점이 거의 비슷했습니다.

첫째는 주거 문제였습니다. 마을마다 한두 가구 정도는 집이 없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그 집을 도와주고 싶지만 물질적으로 도와주기에는 여력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JTS에서 건축 자재를 지원해주면 마을 사람들이 집 짓기를 도울 수 있다고 하여 건축 자재를 지원하였습니다.

또 한 경우는 집은 있지만 집안의 구조가 불편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여러 세대가 한 집에 사는데 집 안에 칸막이가 없었고 두 번째는 실내에 부엌이 있는데, 바닥에 불을 피워서 연기가 집안에 가득 찼습니다. 세 번째는, 집안에 선반이 없어서 물건을 둘 곳이 없어 집 안이 어지러웠고, 네 번째는 부엌이 너무 낮아서 여성들이 불편한 자세로 장시간 일해야 하는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부모, 자식 다세대가 사는 집은 집 안에 칸막이를 설치하여 생활 공간을 분리했습니다. 부엌은 아궁이를 만들어 연통을 달고 선반을 제작해서 여성들이 서서 부엌일을 할 수 있도록 편리한 시설로 개조했습니다.

둘째는 농사를 지을 때에, 논농사를 편리하게 지으려면 논 가까이에 농로가 있어야 합니다. 또 망가진 농수로는 보수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논으로 물이 들어오기 전에 다 빠져나갑니다. 그러면 농사 짓기도 어렵고 수확량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농로를 놓고, 농수로를 시멘트로 만들거나 보수하는 일을 했습니다.

셋째는 노인들의 건강 문제입니다. 시골에는 노인들이 많습니다. 노인들에게는 백내장이 많습니다. 백내장은 수술을 하면 금방 좋아지는 병입니다. 귀가 잘 안 들리는 노인들은 보청기를 이용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가 좋지 않아 먹을 것을 원활하게 못 먹는 노인들도 있습니다. 틀니를 사용하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개선한다면 훨씬 편리하게 살 수 있습니다.

넷째는 마을 공공 시설과 관련한 내용들입니다. 동네마다 물이 부족하다는 곳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식수를 먼 곳에서 가져와야 했습니다. 정부에 예산이 있다면 지원해 줄 테지만, 정부 예산으로 해결하려면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저희가 파이프를 지원해 드리면 마을 주민들이 공사를 진행하여 해결할 수 있습니다.

또 대부분의 마을은 오솔길이 흙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흙으로 된 오솔길은 비가 오면 질척거리고 미끄러지기 쉽습니다. 이런 사항은 저희가 시멘트를 지원하면 마을 주민들이 공사를 진행하여 해결할 수 있습니다.

큰 시설 공사는 정부에서 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잘하게 고치면서 살아야 하는 것들까지 모두 정부에서 해 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집, 우리 논밭, 우리 마을은 우리가 살기 좋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 일은 JTS가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하겠다고 하면 JTS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자재를 지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생활이 조금 편리해지지 않을까’하는 것들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이야기하세요. 여러분이 직접 해결하고자 할 때, 또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일을 해서 해결하고자 할 때, JTS는 자재를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업을 하는 방침입니다.

여러분이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촉바에게 내용을 이야기하고, 그 내용을 종카에 제출해야 합니다. 그러면 젬강 종카 기획 담당관인 놀부 님과 JTS 실무 담당자인 제시카 님이 현장을 확인하고, 승인이 되면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은 정부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주민들의 동의와 참여가 있어야지 진행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님송, 랑덜비 아시죠?”

“네”

“님송 사람들은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 집을 한 채 지었고, 랑덜비 사람들은 집을 수리하고, 납지 마을 사람들은 수로를 만들고, 콜푸 마을 사람들은 도로 일부 구간을 포장했고, 레바티와 리마퐁은 상수도를 놓았습니다. 레바티는 7km나 되었는데 마을 주민들이 한 달 동안이나 공사를 해서 만들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우리 마을에 무엇이 필요한지 촉바와 상의해서 필요한 것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질문이나 건의사항 있는 분은 말씀해 보세요.”

촉바로 보이는 마을 주민이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스님이 부탄에 오셔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마을은 인도가 모두 흙으로 되어 있어서 우기가 되면 정말 다니기 어렵습니다. 시멘트 길을 깔면 훨씬 편리할 것 같습니다.

밤에 야생 동물 특히 곰이 나타납니다. 밤에는 마을 사람이 위험합니다. 그래서 밖에 가로등을 설치해서 불을 밝혀서 곰을 쫓아내면 좋겠습니다.

우리 마을에도 식수 문제가 있습니다. 식수 보관하는 통이 오래되고 관리도 안 되어 망가져 있습니다. 이 시설을 보수해야 합니다.

아이가 셋이 있는데 집이 없는 가정이 있습니다. 이 가족은 현재 다른 사람 집에 얹혀 지내고 있는데 땅도 없는 상황입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습니다”

“첫째, 도로를 길게 포장해야 한다면 그것은 정부의 일입니다. 그러나 도로의 일부 구간이 무너져 있거나 커브 길이 좁아서 넓히는 일, 즉 도로의 일부를 고치겠다면 그것은 자재 지원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공사는 동네 사람들이 해야 합니다. 촉바가 말하는 인도라면 가능하겠습니다

둘째, 가로등은 제가 여러 마을을 다녔지만 오늘 처음 듣는 문제입니다. 이 부분은 살펴보겠습니다.

세 번째, 식수 탱크와 파이프 지원은 가능합니다.

네 번째, 주거 문제는 동네 사람들이 그 집을 지어줄 것입니까?”

“이미 협의가 되어 있습니다”

“땅이 없다면 누군가 땅을 기증해야 할 것입니다”

“저희가 가진 땅이 많지 않습니다. 국가의 땅을 받아야 합니다”

“누군가 땅을 주면 금방 해결할 수 있는 일인데 국가 땅을 허가 받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 땅을 빌려 줘도 좋습니다”

스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마을 주민들이 웅성대며 논의를 했습니다. 잠시 후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저희가 기증할 땅도 없고 집을 새로 짓는 것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현재 그 가족이 살고 있는 집에 칸막이를 설치하고 공간을 분리해 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실무 담당자가 현장을 방문해서 그렇게 고쳐서 쓸 수 있다면 고쳐서 쓰고, 그렇지 않으면 새로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정부의 땅은 허가 받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친척이나 가족이 땅을 빌려주면 좋겠습니다”

“집을 수리하고 싶은 사람은 신청을 하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불을 집 안에서 지피고 바닥에 앉아서 일을 하는 가정이 있다면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여기 세 집이 있습니다”

“네, 신청하셔서 부엌을 수리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 일은 정부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겠다고 할 때에만 지원해 드립니다.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기술이 많이 필요한 일이라면 종카에서 기술자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힘을 합쳐서 우리 마을을 살기 좋게 만들어 봅시다”

스님은 약 한 시간가량 당칼 마을 주민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1년 동안 젬강 주의 10개 치옥, 트롱사 주의 4개 치옥 수십 여명의 마을 주민들과 마을 리더인 촉바가 직접 공사에 나섰습니다. 그 덕분에 ‘모든 일은 마을 주민이 직접 해야 한다’는 사실이 지속 가능한 개발 사업의 원칙으로 아주 단단하게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 또한 여러 주민들의 요청 사항이 JTS 사업 대상인지,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 일인지 구분하는 기준도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스님은 다음 답사지인 낭콜 게옥(Nangkor Gewog)‬에 있는 골링(Goling) 치옥으로 이동했습니다. 거리상은 가까워 보였지만 마을 길이 좋지 않아 이동하는 데에 1시간 이상 걸렸습니다.

골링 마을에 도착하니 주민들이 이미 법당에 모여 있었습니다. 스님은 법당에 참배를 하고 바로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골링 촉바가 먼저 10여분간 환영 인사와 함께 마을 현황을 설명했습니다.

촉바의 이야기를 듣고, 스님도 마을 주민들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 만나서 반갑습니다. 강 건너 잠깐만 들어오면 된다더니 한참을 들어왔습니다. (웃음) 경치도 좋고 공기도 맑고 좋네요. 모두 여기서 태어나고 여기에서 자랐습니까?”

“네”

“도로가 없고 전화 TV가 없었다면 우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우린 그냥 여기에서 자라고 다들 이렇게 사는가 보다 했을 거예요. 그런데 이 TV와 전화가 문제예요. 자꾸 다른 걸 보니까 저렇게 살고 싶다고 욕심이 나는 거예요. (웃음) 마치 우리가 못 사는 것처럼 느껴지고요. 그런 것을 안 보면 우리는 가난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TV를 꺼버리고 전화기를 버려 버리세요 (웃음)”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가난한 게 아니고 가난한 것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런데 부탄은 좋은 점이 많은 나라입니다. 핸드폰으로 다른 나라 전쟁 나는 것 봤어요? 피난민 봤나요? 그런데 부탄은 전쟁 없잖아요. 자연 경관도 좋잖아요. 그런데 핸드폰과 TV로 바깥 세상을 보다 보니 불편한 점들이 생겨 버렸어요 (웃음)

옛날에는 다 국도까지 걸어다녔잖아요. 그런데 마을까지 도로가 생기니 이제 차를 타고 싶은 거예요. 차를 타고 다니고 싶으니 차를 갖고 싶어지죠. 그렇게 세탁기도 갖고 싶고 냉장고도 갖고 싶은데 돈은 없어요. (모두 웃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괴로움은 욕심으로부터 생긴다고 했어요. 도시 사람들은 우리보다 물질적으로는 잘 살지만 괴로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괴로움 없이 행복하게 살려면 욕심을 버리라고 하신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부처님 수준은 안 되잖아요. 맛있게는 못 먹어도 먹긴 먹어야 하고 예쁜 옷은 아니어도 옷은 입어야 하고 좋은 집은 아니어도 집은 있어야 합니다.

부탄의 국왕께서는 여러분들의 삶이 한층 나아질 수 있도록 많은 애를 쓰고 계십니다. 이런 시골까지도 도로와 전기가 다 들어와 있잖아요.

그러나 우리 삶에 관한 모든 일을 정부가 해 줄 수 없습니다. 물론 앞으로 5년이든 10년이든 기다리면 지금보다는 개선이 될 거예요. 하지만 우리 마을을 조금 더 빨리 아름답게 가꾸려면 우리가 조금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젬강 지역 주민들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민들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서 함께 일해 보면 좋겠다고 국왕님과 이야기를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

스님은 지속 가능한 개발 사업의 목적과 의미에 대해서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습니다. 지난 1년간 시범 사업 내용들이 어떻게 진행 되었는지도 들려 주었습니다. 골링 주민들은 모두 스님의 이야기를 경청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스님은 마을 사람들에게 불편한 점을 물었습니다.

  • 인도로 사용하는 도로를 시멘트로 덮으면 편리하겠습니다

  • 농작물 야생 동물 피해가 있어서 울타리가 필요합니다

  • 마을에 화장터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 농수로가 부족합니다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스님이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요청한 것들은 모두 필요한 일이지만 큰 일은 JTS에서 지원할 수 없습니다. 큰 프로젝트는 정부에 요청을 하거나 다른 민간 단체에 요청해야 합니다. JTS는 첫째 여러분들의 생활에 필요한 것을 개선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에 화장터를 만들겠다는 내용은 지원이 어렵습니다. 둘째는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일을 계획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야생 동물 퇴치 철조망을 만들더라도 나무 기둥을 박아서 만들겠다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지원이 가능하지만, 철조망으로 만들겠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아닌 기술자가 해야 하는 일이므로 지원이 어렵다는 뜻입니다.”

스님은 낭콜 마을에서 역시 주민들과의 대화를 1시간 가량 진행했습니다. 대화가 끝날 즈음에는 대화에 참여한 주민 대부분이 JTS의 지원 방향에 대해 이해하고 동의하는 듯 했습니다.

어느덧 오후 두 시가 다 되었습니다. 스님은 늦은 점심을 먹고 창라종 주펠(Tshang la Jong- Zurphel)과 타마 벌티(Tama Berti) 마을 답사까지 계획했던 모든 답사를 마쳤습니다.

두 마을에서도 농수로 문제 해결, 마을 절에 시설 지원, 국도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도로 구간 건설, 집 짓는 자재 지원, 화장실 건축 자재 지원 등 다양한 요청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각 마을의 요청 사항이 JTS 사업 방향에 맞는지 점검하여 하나하나 마을 사람들에게 안내했습니다. 스님과 마을 주민들과의 대화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이미 JTS사업 원칙을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답사 일정을 마치니 저녁 6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잠시 휴식을 하고 저녁 공양을 한 뒤 원고 교정을 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11월 15일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열린 즉문즉설 내용을 소개해 드립니다.

결혼 적령기인데 좋아하는 사람을 밀어내는 경향 때문에 고민입니다

“저는 내년에 29살이 되는 미혼 여성입니다. 저에게는 오랜 고민거리가 하나 있는데요. 좋아하는 사람을 밀어내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먼저 상대를 좋아해도, 막상 상대가 다가오면 차갑게 대해서 떠나보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원인으로 짐작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남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저희 집안 분위기가 감정 표현을 어색하게 여긴다는 점입니다. 어릴 때부터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오글거리고 부끄럽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학교를 다닐 때는 다른 여자 아이들이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것을 두고 ‘꼬리를 친다’ 하는 말을 하는 게 무서워서 몸을 사렸습니다. 또 유치원 때 생일 파티에서 좋아하는 친구를 골라 뽀뽀하라는 놀이를 할 때, 반에서 욕을 먹지 않을 친구, 그러니까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친구를 고르기도 했습니다. 결국, 제가 원하는 감정보다도 남들이 저를 어떻게 볼지, 혹은 불편해하지 않을지에 더 신경 쓰다 보니, 시선에 민감해지고 스스로를 억누르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지금은 독립한 지 1년이 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나이가 들어가는 속도에 비해 제 자신이 변하는 속도가 너무 더딘 것 같아 조급해집니다. 결혼 적령기라는 생각도 들고, 노산에 대한 걱정도 커지고 있는데요. 이런 제 모습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요?”

“옛날에는 결혼 적령기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보통 16세에서 19세 정도를 결혼 적령기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방년 16세’, ‘방년 19세’ 같은 표현도 있었죠. 스무 살을 넘기면 혼기를 놓쳤다고 여겨지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결혼 적령기라는 개념 자체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오십이든 육십이든, 결혼은 본인이 하고 싶을 때 하면 되는 시대가 됐습니다. 예전에는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사람에게 결혼 여부를 묻는 것이 당연했고, 결혼하지 않았다면 이상하거나 모자란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질문 자체가 무례하다고 여겨질 만큼 시대가 변했습니다. 혼자 사는 것이 자연스러워졌고, 그 형태도 다양합니다. 예전에는 혼자 산다고 하면 비구니, 수녀처럼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여겼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가구 중 약 36%가 1인 가구이고, 2030년쯤에는 그 비율이 40%를 넘어설 것이라고 합니다.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경우, 이혼 후 혼자 사는 경우, 배우자를 잃고 혼자 사는 경우 등 다양한 이유가 있고, 혼자 사는 것은 이제 일상적인 삶의 한 형태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결혼에 대해 너무 사회적 틀에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결혼을 하고 싶으면 해보고, 그것이 짧게 끝나든 길게 이어지든 본인의 선택에 따라 하면 됩니다.”

“저는 결혼보다도 사람을 밀어내는 것이 주로 고민이 됩니다”

“부모님 간의 관계가 별로 안 좋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릴 때 엄마 아빠가 자주 싸우면 아이들의 마음에는 결혼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 반응이 생깁니다. 나중에 성장해서 좋아하는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고, 또 막상 결혼을 하려고 하면 오히려 그 사람을 밀쳐 내게 됩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엄마가 평소에 케어는 잘해 주시는데, 갑자기 화를 많이 내시거나 저를 무시하는 말투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불안 회피 애착을 갖게 되어서 좋아하는 사람을 오히려 밀어내는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어릴 때 결혼을 하는 것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까?”

“그런 적은 없습니다.”

“내가 자꾸 사람을 밀어내는 성향이 있다면, 이번에는 한번 밀어내지 않고 그냥 살아보면 되죠. 일반적으로 내가 누군가에게 다가가도 상대가 가까이 오면 약간 겁이 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결혼이나 친밀감에 대한 두려움을 형성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어릴 때 엄마, 선생님, 혹은 좋아하던 누군가에게 다가갔다가 거절당하거나 밀쳐진 경험이 있다면, 무의식적으로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두려움이 있으면, 오히려 상대가 다가오기도 전에 내가 먼저 밀어내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행동은 그냥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살펴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굳이 원인을 분석하지 않더라도, 나에게 상대를 밀쳐내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것을 극복하고 싶다면 대처를 해보는 것입니다. 밀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밀치는 대신 그냥 상대를 확 끌어안아 보는 겁니다. 그렇다고 무슨 큰일이 나겠어요? 어쨌든 일단은 상대방과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니 밀쳐내서 아쉽게 못 만나게 되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이런 식으로 관계를 이어가다 보면 질문자가 고민하는 부분이 명확해지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연습을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옛날에는 연습하는 게 참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이성 간에 손을 한번 잡는 것만으로도 결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해야 했고, 쉽게 헤어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니까요. 잘못 손을 잡았다가 평생 고생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척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사주를 보기도 하고, 여러 조건을 따지며 결정을 내리곤 했죠. 그런데 요즘은 다릅니다. 손을 잡았다가 헤어져도 괜찮은 시대입니다. 그러니 너무 조심스럽게 굴지 말고, 괜찮다면 한번 손을 잡아보세요. 그리고 헤어지면 그만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스님이 젊은이들에게 함부로 문란하게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보라고 권유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윤리적, 도덕적 관점이 아닙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에서 스스로 괴로워한다는 겁니다. 이 고뇌를 극복하는 방법은 일단 한 번 해보는 겁니다. 손을 잡아보고 경험을 해보면서 자기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잡아봤더니 ‘역시 나는 밀치는 게 낫다’ 하는 결론이 나오면, 앞으로는 밀치는 것에 대해 아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대로 손을 잡아봤는데 ‘생각보다 별일 아니더라’ 하는 결론이 나오면, 이제부터는 굳이 밀치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어떤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 의심만 하지 말고, 딱 한 번 찍어 먹어보는 겁니다. 만약 독이 있었다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아, 이건 절대로 먹으면 안 되겠다’ 하는 결론을 내리면 되는 것이고, 독이 없었다면 ‘괜히 겁먹고 고민했네’ 하며 앞으로는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는 겁니다. 계속해서 조마조마하며 시도도 못 하고 고민만 반복하는 건 시간 낭비입니다. 결국은 실험을 통해 확실한 답을 얻어야 합니다. 이렇게 결론을 내려야 불필요한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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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현재 우리나라 가구 중 약 36%가 1인 가구이고, 2030년쯤에는 그 비율이 40%를 넘어설 것이라고 합니다.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경우, 이혼 후 혼자 사는 경우, 배우자를 잃고 혼자 사는 경우 등 다양한 이유가 있고, 혼자 사는 것은 이제 일상적인 삶의 한 형태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결혼에 대해 너무 사회적 틀에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

2025-02-14 03:33:31

오늘도행복

감사합니다.

2024-12-31 11:52:36

정 명

오지 마을까지 하나하나 답사하시는 세심함
현지 사람들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시는 친절함
스님에겐 배워야할 점이 너무 많습니다 🙏

2024-12-30 07: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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