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12.25 부탄답사 2일째 납지, 콜푸, 품졸 마을
내가 일을 잘하니까 팀원들의 일이 줄어듭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부탄 답사 2일 째날입니다. 스님은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새벽 6시에 트롱사에서 젬강 콜푸 게옥으로 이동했습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3시간 동안 달려 콜푸게옥의 납지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마을 입구에서 콜푸게옥 겁과 납지치옥, 콜푸치옥의 촉바가 스님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현지 JTS 활동가들이 스님 일행을 맞이했습니다.

“스님 어서 오세요.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환하게 웃는 활동가를 보며 스님도 미소를 지었습니다.

스님 일행은 간단하게 준비된 아침 식사로 맛있게 아침 공양을 먹었습니다. 스님이 오늘 콜푸게옥에 방문한 이유는 납지, 콜푸치옥 주민들과 의논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납지와 콜푸치옥의 논은 부탄에서 보기 드물게 넓고 경사가 완만합니다. 이 넓은 논을 사용하려면 농로가 있어야 농사를 짓는 사람이 훨씬 편리할 것이기에 스님은 이 사안에 대해 납지, 콜푸 주민들과 논의를 할 것입니다.

스님은 아침 공양을 마치고 현재 한창 진행하고 있는 납지치옥의 농수로를 점검하러 가보았습니다. 납지치옥 마을 주민들이 직접 자재를 등에 메고 운반하여 농수로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수원지와 연결된 물길을 따라 제법 길게 농수로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스님은 농수로를 따라 쭉 걸어 내려가며 꼼꼼히 살펴보고 몇 가지 조언을 했습니다. “수고 많아요. 더 힘내세요” 농수로를 만들던 마을 청년들이 환하게 웃었습니다.


납지는 부탄의 불교 성지입니다. 납지에는 오래된 절이 있고, 전통문화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2월에 스님이 첫 방문하였을 때에도 절에서 탈을 쓰고 전통 공연도 하고 성대하게 맞이해 주었던 곳입니다.

절 앞의 크고 넓은 공간을 시멘트로 메워 주차장으로 만들고 싶다는 촉바의 요청을 듣고 스님은 시멘트로 주차장을 만드는 것은 오히려 경관을 훼손할 것 같다며 촉바에게 간단하게 의견을 주고, 마을 주민들과 대화하면서 더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오늘 회의 장소인 콜푸게옥 센터로 이동했습니다.


콜푸게옥 센터에는 약 30여명의 납지,콜푸 치옥주민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잘 지냈습니까?”

“네”

“콜푸치옥은 도로를 군데군데 포장했는데 사용하기에 편리합니까?”

“네”

“이번에 콜푸치옥에서 농경지 울타리 밖으로 도로를 내 달라고 했습니다. 또 수로를 내겠다고 하면서 자재 운반비를 지원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지원의 대상이 안 됩니다. 제가 처음부터 안 된다고 말을 한 내용인데, 왜 요청을 할까 생각이 들어서 제가 직접 답사를 해 보았습니다.

울타리 바깥으로 도로를 내는 것은 제가 직접 가보니 도로를 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울타리 바깥쪽보다 울타리 안쪽이나 개울을 따라 도로를 낸다면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의견을 줬더니 울타리 안쪽은 각자 자기 땅이 들어가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입장은 이해되지만 맞지 않는 말인 것 같습니다. 울타리 안쪽으로 도로를 낸다면 훨씬 작업하기가 쉬운데 자기 땅이 들어간다고 하지 않겠다고 하고 울타리 바깥으로 도로를 내어달라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말이 시멘트를 운반할 수 있도록 운반비를 지원해 달라고 해서 그곳을 답사해 보았습니다. 사람이 들고 운반하기에는 먼 거리가 맞았습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전체를 둘러보았을 때 농경지를 가로지르는 중앙 도로를 내면 해결이 될 것 같았습니다. 중앙 도로를 내는 것은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포크레인이 들어 와야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제이티에스 원칙에 맞지 않지만, 여러분들이 이야기하는 두 가지 문제를 풀려면 땅 가운데에 도로를 내면 해결이 될 것 같았습니다. 수로를 만들 때도 도로를 이용하여 자재를 운반하는 것이니 쉬울 것입니다.

그런데 겁과 촉바의 의견이 마을 사람들이 땅을 내어놓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직접 주민들과 이야기 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과 논의하고자 모이자고 한 것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설명을 하고, 누구의 땅이 어느 정도 도로에 들어가는지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번에는 다수결로 할 수 없습니다. 땅 주인 중에 한 사람이라도 반대한다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잘 듣고 무엇이 좋은 길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지금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10년만 지나도 여러분들의 힘으로만 농사 짓기 어렵습니다. 경운기라도 논에 들어가서 땅을 갈아야지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중앙에 도로를 내면 도로를 이용하여 농기계가 다닐 수 있고, 자재를 운반할 수 있습니다. 중앙 도로를 따라 농수로를 만든다면, 훨씬 수월할 것입니다.”

“두 번째 안건은, 납지 사람에게만 해당이 됩니다. 절 앞에 마당을 주차장으로 만들고 도로를 포장하는 데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촉바에게 제 생각을 이야기하니까, 주민들의 일부에게 반대 의견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체 주민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저의 의견을 다시 내 보겠습니다. 그래도 ‘아닙니다, 스님. 저희의 의견대로 하겠습니다’ 한다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하고 싶다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이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좋겠다 싶어서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뿐입니다. 자, 그러면 화면을 보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스님은 화면의 지도를 보면서 약 20분 동안 중앙 도로를 내는 것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센터에 모여있는 마을 주민들 모두가 스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경청했습니다.

스님의 이야기가 끝나고 선뜻 의견을 내는 마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때 콜푸게옥의 멍미(게옥의 부리더)가 일어나 말했습니다.

“농경지의 중앙에 도로를 내자는 스님의 의견에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동의합니다. 그러나 제가 알기로는 납지치옥에서 세 사람 콜푸치옥에서 두 사람 정도는 반대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납지 치옥 콜푸치옥 반대하는 사람이 이 자리에 왔습니까?”

“안 왔습니다. 모두 팀푸나 외지에 있습니다”

“땅 주인들이 납지 사람입니까, 전부 외지인입니까?”

“납지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우리가 도로를 내려고 하는데 땅을 조금 내어 달라고 하면 안 되겠습니까?”

“스님, 도로와 수로에 가까이 있는 사람은 이익을 보지만, 도로나 수로와 멀리 땅이 있는 사람은 아무런 혜택이 없을 것 같습니다”

“도로가 만들어지면 도로 옆에 큰 수로를 만드는 것은 훨씬 쉽습니다. 수로 가까이에 없는 땅이더라도 결국에는 큰 수로 중간을 연결하여 작은 수로를 만들 것이지 않습니까? 도로와 큰 수로가 있으면 작은 수로들은 더 쉽게 만들 수 있을 텐데 지금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요.”

스님의 제안은 지금 당장 눈앞의 이익은 아니지만, 우리 마을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삽시간에 마을 사람들의 열띤 토론이 펼쳐졌습니다. 함께하는 사람들은 스님의 제안에 대다수 동의했지만, 회의에 참가하지 않은 몇몇 사람들의 동의를 얻지 못한 채로 도로를 낼 수는 없었습니다.

스님의 의견에 동의하여 중앙도로를 내고 싶은데, 반대하는 사람 때문에 못 만들게 되었다며 안타까워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이 중앙 도로는 지금 만들어지지 않더라도 정부의 지원으로 언젠가는 만들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도로가 놓아지면 많은 것들이 효율적으로 바뀌고 마을이 발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뜻을 모아 그 시기를 10년 앞당길 것인지, 아니면 10년 후에 정부 지원으로 할 것인지는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꼭 올해 하지 않아도 됩니다. 서둘러 생각하지 마세요.”

“자, 이제 납지 분들 보세요. 두 번째 안건입니다. 스님의 생각입니다,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은 절 앞의 주차 공간을 포장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답사해 보았을 때, 만약에 논 가운데를 가로질러 중앙 도로를 낸다고 가정하면 지금 여러분이 만들고자 하는 도로는 차가 다니기에 좁습니다.

제 생각에는 지금 현재 있는 수로 바로 옆에 붙여서 도로를 내고, 공간을 더 확보하여 주차장을 크게 내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현재 논으로 되어 있는 땅의 일부를 절로 귀속시켜서 정원을 가꾸거나, 향후 절이 더 커져서 건물이 필요하면 건물을 증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납지 절을 더 키우겠다면 이번에 주차장을 포장할 때부터 고려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납지 절이 400년 된 오래된 전통적인 절인데, 이 절 앞을 전부 시멘트로 바르면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도로는 시멘트로 하더라도 절 앞에 있는 주차장이나 마당은 자갈이나 흙으로 만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시멘트를 원한다고 들었습니다.(웃음) 제 이야기를 듣고도 시멘트로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세요.(웃음)”

“납지 절은 납지 주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부탄 전역의 성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두르지 말고 많은 관광객이 올 것을 대비해서 구상을 해 보면 좋겠습니다. 일단은 우리 먹고 사는 문제부터 개선해야 합니다.(웃음)”

콜푸게옥의 멍미가 뭔가 아쉬운 듯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스님께서 보시기에도 우리가 이렇게 농사짓기에 어려운 것 같다고 생각하시고 두 번이나 방문하여 제안해 주셨는데, 오늘 보니 마을 사람들도 촉바도 스님의 제안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니 저는 그 제안은 올해에 안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멍미의 이야기가 끝나자 다시 사람들의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들,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지금까지 이렇게 살았잖아요. 조금 더 나아져 보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웃음) 조금 좋아지려고 하지만 사람들 생각이 다 다른 걸 어떻게 해요. 동의 안 했다고 그 사람을 나쁘게 생각하면 안돼요. 그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우리가 그 사람을 욕하잖아요.(웃음) 우리가 의논한 것은 이렇게 하면 좋겠다 생각해서 아이디어를 냈지만, 이것은 개인이 갖고 있는 땅의 문제니까 모두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안 되었으니 조금 기다려야 해요. 그래서 땅 주인들이 모두 동의해서 우리가 빨리 하거나, 아니면 정부 프로젝트로 진행되면 돼요. 그러니까 인상 쓰면 안 돼요.(웃음)”

“몇몇 사람이 반대한다고 좋은 일이 무산되니 이것은 겁이 잘못하는 건지 촉바가 잘못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겁이나 촉바는 처음부터 어려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반대하는 사람들을 직접 설득해 보려 자리를 만들었는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안 와버려서 어쩔 수가 없네요

한국 속담에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팀푸나 도시에 있는 사람들은 납지나 콜푸에 도로가 있든지 없든지 답답하지 않아요. 그 사람을 시비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농사짓는 사람은 우리잖아요. 그 사람은 땅만 내어줘도 고마운 거예요.

수로는 농사짓는 우리가 내면 돼요. 그러면 수로 만들어놓으면 일도 안 하고 땅 주인들이 이익을 보지 않느냐. 그것은 어쩔 수가 없어요. 내가 목말라서 우물을 파는 거예요. 그러니까 꼭 지금 도로를 내야 하는 것이 아니니 실망하지 마세요. 조금 더 의논해서 모두의 마음이 합해져야 합니다.
미래를 생각하면 도로를 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땅도 내야하고 일도 해야 하니 힘들고 손해 보는 것은 맞아요. 그래서 한 해 더 기다려봅시다.

그리고 콜푸치옥에서 수로 문제를 JTS에서 해 달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납지 촉바는 뭐가 되겠어요.(웃음) 지금 들고 메고 가서 수로 내고 있잖아요. 이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니까 조금 기다려봅시다. 이번 건은 취소가 아니라 연기입니다. 인상 쓰지 마시고 모두 웃고 가세요.(웃음) 여러분들 합의가 되면 언제든지 또 의논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것을 계획하고 논의해 주세요. ”

스님은 약 두 시간 동안 주민들과 함께 농경지 도로 건설과 납지절 가꾸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마을 주민의 눈빛, 표정 그리고 목소리에는 생기가 있었습니다. 약 10개월 전 콜푸게옥에서 주민들과 첫 만남을 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오늘 이 자리에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대화를 마치고 콜푸게옥 사무실에서 각 리더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트롱사로 이동하여 품졸 마을에 갔습니다. 품졸 마을은 트롱사 주지사님이 지정해 준 가장 가난한 마을입니다. 스님도 품졸 마을 방문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JTS 활동가들은 이 곳에 임시 거주지를 만들고 지속 가능한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품졸 마을에는 15가구가 살고 있으며, JTS활동가들은 이곳에서 주거 개선 샘플을 만들고, 절에 화장실 짓는 일을 진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품졸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도로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울퉁불퉁했습니다. 콜푸게옥을 나와 품졸 마을까지 3시간 30분 정도 이동하니, 저 멀리 마을 사람들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주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스님은 품졸 마을 절 안으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은 법당에 참배를 하고 자리에 앉아 부탄식 전통 예를 올린 후 주민들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주민들과 대화하면서 품졸 마을이 가난하지만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 것을 당부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을 사람들이 협동하여 생활을 개선해 나가야 함을 전했습니다. 스님은 마을 사람들과의 시간을 마치면서 마을 주민들에게 비누를 선물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JTS활동가와 함께 진행되는 사업을 둘러보았습니다. 품졸 마을 절에 새로 만든 화장실을 가 보았습니다.

“품졸 마을 사람들은 다른 마을 사람들에 비해 매우 무기력하고 술에 많이 의지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화장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협동했고, 마을 분위기도 조금 바뀌었습니다.”

품졸마을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활동가가 말했습니다.
“스님 인도에서 온 바브랄지가 오늘 스님 오신다고 어젯밤 늦게까지 화장실 한 칸을 미장했습니다. 스님께서 개시를 해 주세요.(웃음)”

“그러면 제가 먼저 사용해 보고 어떤지 알려줄게요.(웃음)”

스님이 웃으며 화장실 안에 들어갔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주거 개선 리모델링을 하고 있는 가정을 둘러보았습니다.

“꼭 필요한 시설들만 추가하고, 추가하더라도 최대한 있는 것들을 활용해서 하면 좋겠어요. 새롭게 모든 것을 바꾸는 식으로는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진행되고 있는 사업을 모두 둘러보고, 스님은 동행하고 있던 부탄 공무원들에게 말했습니다

“JTS활동가들이 여기 임시숙소에서 숙박하고 있어요. 저도 오늘은 이 사람들이 자는 곳에서 잠을 자 보고 어떤지 조금 봐야겠어요. 여러분들은 마을을 나가서 게옥에서 숙박하도록 하고 내일 다시 봅시다.”

스님, JTS 봉사자, 활동가 모두 함께 짜장밥과 한국에서 가져온 김치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저녁 공양이 끝나고 JTS 한국스탭과 인도인 스탭은 모여서 스님께 삼배를 드렸습니다.

“바브랄지 자나단지는 괜히 왔다 싶지요?”

“네, 조금요.(웃음)”

작은 방안에서 큰 웃음이 터졌습니다,

“생활이 많이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활동하는 동안은 있어야 할 곳이니 잘 정비해서 지내보세요.(웃음)”

스님은 스탭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짐을 정리하고 이부자리를 펴고 원고를 교정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10월 7일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열린 길벗 초청 즉문즉설 내용을 소개해 드립니다.

제가 일을 잘해서 팀원들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 같아 고민입니다

“저는 올해 20년 차 광고 프로덕션 PD입니다. 20년 동안 PD로서 많은 역할을 수행해 왔는데, 일반적인 PD는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스태프들과 소통하며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주로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외에도 기획부터 실행까지 여러 가지를 직접 진행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일수록 더 빠르게 일하게 되고, 상황 판단도 더 선명해졌습니다. 그래서 일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될 때 빨리 정리하고 결단을 내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의 이런 방식 때문에 함께 일하는 팀원들이 점점 역할이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는 이제 제 연차쯤 되면 일을 조금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조언을 하여 그렇게 해봤지만 일이 잘 안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주변에서는 계속 일을 내려놓으라고 하는데, 정작 내려놓아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과연 일을 내려놓아야만 하는지 고민이 됩니다.”

“일을 안 내려놓아도 돼요. 내려놓아야 한다고 정해진 것은 없어요. 내려놓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윈윈이란 말처럼 일을 같이 해야 하지 않을까요?”

“혼자 하는 게 더 효과적이면 혼자 하는 것이고, 같이 하는 게 더 효과적이면 같이 하는 거죠. 같이 하는 게 혼자 하는 것보다 능률이 안 좋다면 같이 할 이유가 있나요?”

“팀으로서 같이 하는 일이긴 하거든요.”

“정토회는 일이 많아 자원봉사자가 많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해서 함께 일하는 것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자원봉사자를 받지 않겠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원봉사자가 와도 처음에는 일을 할 줄 몰라 업무에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원봉사자들을 훈련시키다 보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실무자들이 고유 업무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게 되니까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훈련된 자원봉사자가 잔소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일을 잘 모를 때는 잔소리를 하지 않다가, 일이 조금 익숙해지면 ‘이건 이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저건 저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 하며 잔소리를 늘어놓아 실무자들이 곤란해진다는 것입니다. 반면, 자원봉사자를 받는 것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지금 당장은 업무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자원봉사자들이 훈련을 거쳐 힘을 합치면 장기적으로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꾸준히 자원봉사자를 모집하여 일을 해 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것이 더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크게 보면 많은 사람을 훈련시켜 함께 일하는 것이 좋지만, 일의 특성과 개인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접근해야 합니다. 이미 개척된 일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종류의 일은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는 것이 좋습니다. ‘중지(衆智)를 모은다’ 하는 말처럼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아 일을 하면 뛰어난 한 사람의 능력보다 더 나을 때가 있습니다. 반면, 어떤 분야를 새롭게 개척할 때는 뛰어난 개인이 혼자 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또 혼자서 일을 해야 성과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정한 분야에서는 혼자 일하도록 내버려두어야 그 사람의 재능이 살아납니다. 자꾸 ‘윈윈해야 한다’라고 생각해서 억지로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창의성이 필요한 일이나 아이디어를 내어서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일은 재능 있는 사람이 혼자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두는 것이 더 좋습니다. 넓게 보면 일을 할 때는 서로 협력하며 윈윈하는 것이 좋지만, 일의 특성과 개인의 성격에 따라 같이 일하는 것이 반드시 좋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나이가 어렸을 때는 눈치를 보지 않았는데 나이가 드니까 독단적으로 일하는 것이 눈치가 보입니다.”

“나이가 들면 눈치를 봐야 합니다. 사회 초년생과 비교해 연차가 쌓일수록 주변에 사람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어릴 때는 혼자이기 때문에 독불장군처럼 행동하고, 상사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높은 지위에서 독선적으로 행동하면 전체가 어려워집니다. 또한 사람들은 보편적인 이야기를 주로 하기 쉽지 특수한 상황에 딱 맞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사람은 부드러워야 한다’, ‘일은 서로 협력해서 해야 한다’ 같은 일반론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환경과 개인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적용해야 합니다. 질문자가 하는 일의 특성과 성격을 스스로 잘 살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결정해야 합니다.

몇 가지 선택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 은퇴해 버리는 것입니다. 질문자처럼 독불장군같이 행동하면 친구도 없어지고 후배도 없어져서 나중에 외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 일을 20년 정도 했으니 그냥 ‘이 정도면 됐다. 너희들끼리 알아서 해라!’하며 내려놓고 깔끔하게 은퇴하는 길이 있습니다.

둘째, 후배를 키운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일의 성과, 작품의 질, 매출 등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놓아버리세요. 누군가가 무엇을 잘하려면 연습 과정이 필요합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작품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매출이 떨어지든 상사에게 욕을 먹든 상관하지 말고,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고 격려하면서 키워보는 것입니다.

셋째, 그냥 내 성질대로 일하는 것입니다. 회사에 이야기해서 질문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겠다고 담판을 짓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이런저런 문제 제기가 들어오고 말이 많아진다면, 그때는 그만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은퇴해도 됩니다.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체댓글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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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중지(衆智)를 모은다’ 하는 말처럼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아 일을 하면 뛰어난 한 사람의 능력보다 더 나을 때가 있습니다. 반면, 어떤 분야를 새롭게 개척할 때는 뛰어난 개인이 혼자 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또 혼자서 일을 해야 성과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정한 분야에서는 혼자 일하도록 내버려두어야 그 사람의 재능이 살아납니다."

2025-02-14 03:11:59

정 명

당장은 힘들지만 미래엔 큰 이익이 되는 길
부탄 사람들이 잘 선택하시길 🙏

2024-12-29 20:20:56

정명옥

길 위에서 멈칫 할때가 있는데 항상 바른길을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 건강하세요.🙏

2024-12-29 15:3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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