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12.21 동지 법회, 정토불교대학 즉문즉설
"아무리 추워도 이제 봄이 오기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오늘은 1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다는 동지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일찍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함께 조찬을 하며 시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지금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탄핵 이슈로 사회가 많이 혼란스러운데 여야가 초당적으로 협력해서 빠른 시일 내에 탄핵 국면을 수습하고, 이런 불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전 총리도 스님의 생각에 깊이 공감을 표했습니다.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김 전 총리님을 배웅한 후 스님은 동지 법회를 하기 위해 3층 설법전으로 향했습니다.

오전 10시 정각에 동지 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 3층 설법전에는 동지 기도를 하기 위해 많은 대중들이 자리했습니다.

먼저 유수스님의 집전으로 동지 기도를 했습니다. 한 배 한 배 절을 하며 지난 일 년을 돌아보고 새해를 다짐했습니다.



기도를 다 하고 나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다시 숨을 가다듬고 다 함께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아도모례원, 천룡사, 죽림정사, 미륵사 등 전국 으뜸절에서도 많은 회원들이 함께 모여서 동지 법회에 참석했습니다.

스님은 ‘동지’의 의미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오늘은 2024년도 동지날입니다. 1년 중에서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밤의 길이가 가장 길다고 하는 동지입니다. 동지는 한 측면에서 보면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날이 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지금부터 낮의 길이가 점점 길어져 가는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일에는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행위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알지 못합니다. 즉 원인을 제공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의 결과를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생의 어리석음입니다. 이걸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본인이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어서야 ‘내가 왜 그때 바보같이 그런 짓을 했을까?’ 하고 후회를 하게 됩니다. 결과가 나타나면 놀라고, 마치 하늘에서 불행의 벼락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반응합니다. 그것이 과거에 내가 지은 인연의 결과라는 걸 알게 되면 지난 과거의 행위를 후회하게 됩니다. 이것이 괴로움입니다.

원인을 보고 결과를 알고, 결과를 보고 원인을 아는 힘

반면에 어떤 원인을 지을 때 그로 인한 결과가 어떠할지 미리 알 수 있다면,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놀라지도 않고 억울해 하지도 않게 됩니다.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나아가 그 결과가 좋지 않으면 다음부터는 그러한 원인을 짓지 않게 됩니다. 지난 경험을 돌이켜서 ‘아, 이렇게 하게 되면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니까 나한테 손해야’ 하고 교훈으로 삼게 됩니다. 예를 들어 ‘빛깔도 좋고 냄새도 좋고 맛있어 보여서 먹었더니 배가 아프더라. 그러니 이건 먹지 말아야 되겠다’ 이렇게 고통을 미연에 방지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자입니다. 이것을 불교의 전통적인 용어로는 천안통(天眼通) 또는 천안명(天眼明)이라고 합니다. 천안명(天眼明)은 지금 짓는 인연으로 인한 결과를 내다보는 지혜를 뜻합니다. 이를 일컬어 신과 하늘의 눈으로 미래를 바라본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또 다른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내가 어떤 일을 당했을 때, 그 일은 과거의 어떤 원인에 의해 나타난 결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일을 겪으면서도 어떤 원인에 의해 그러한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어리석음입니다. 원인을 알지 못하니까 억울하고 분한 감정이 듭니다. ‘왜 나에게만 이러한 불행이 닥치느냐’ 이렇게 분한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 원인을 알게 되면 그 일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더 이상 억울하다거나 분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을 과거를 아는 힘이라고 합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일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현상의 원인을 규명하는 지혜를 뜻합니다. 이것을 불교의 전통적인 용어로는 숙명통(宿命通) 또는 숙명지(宿命智)라고 합니다.

숙명통을 종교적으로는 ‘전생을 안다’ 하고 표현하고, 천안통을 ‘내생을 안다’ 하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는 종교적인 표현으로 바뀐 것입니다. 원래 숙명통은 결과를 보고 원인을 아는 것이고, 천안통은 원인을 보고 결과를 아는 것입니다.

이처럼 결과를 보고 나서 원인을 알고, 원인을 보고 나서 결과를 알게 되면, 일어나는 일은 담담히 받아들이고, 또 어떤 새로운 행위를 할 때는 유의해서 행동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행할 때 항상 삼가야 할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음에 빠지게 되면 이것을 알지 못하고, 원인을 지어놓고는 결과를 안 받으려고 하고, 그걸 또 되풀이해서 다시 그러한 원인을 짓고, 그 결과를 예측하지 못해서 다시 그 결과를 겪는 일을 반복합니다. 이것을 되풀이하는 사람이 윤회하는 업보 중생입니다. 이러한 이치를 알게 되면 윤회의 고리를 끊을 수 있습니다. 몇 번 경험해 가면서 삼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서, 아무리 하고 싶어도 손해가 생길 일은 하지 않게 되고, 아무리 하기 싫어도 이익이 될 만한 일은 기꺼이 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지 말아야 할 일과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바로 계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계율을 지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계율을 지키는 이유와 목적, 그리고 그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괴로움을 끝낼 수 있는 방법

우리는 자기가 지은 원인의 인연 과보도 받지 않으려고 하고, 또 어리석게 동일한 인연을 계속해서 지어갑니다. 그래서 인생의 괴로움이 끝나지 않습니다. 마치 숙명과도 같은 이런 윤회의 고리를 끊고자 하면 인연 과보의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이 원리를 세세하게 분석해 놓은 것이 십이연기(十二緣起)입니다. 그리고 이 고리를 끊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바로 알아차림입니다. 여기서 알아차림은 다양한 의미를 가집니다. 지금 내가 어떤 마음인지를 알아차리고, 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아차리고, 이렇게 알아차림으로 해서 원망하기보다는 결과를 수용하고, 알아차림으로 해서 함부로 행하기보다는 삼가해서 행하게 됩니다. 그 과정을 통해 나도 모르게 되풀이되는 삶의 방식에서 내가 알고 사는 삶의 방식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것이 수행자가 가야 할 길입니다.

‘이제는 세상에 굴림을 당하지 않고, 내가 지금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 내 상태를 스스로 알아차린다. 이미 지어버린 인연의 과보는 기꺼이 받아들이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는 인연을 짓지 않는 삶의 방식으로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는 출발점이 바로 발심(發心)입니다. 동지는 이러한 출발점과 같습니다.

자기 변화를 위한 첫발, 발심

지금까지는 날이 계속 짧아지다가 동지가 지나고부터 날이 길어집니다. 이치적으로는 오늘부터 날이 길어지는 것이 맞지만, 실제 현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부터 추위가 심해지고, 앞으로 한 달 동안이 1년 중 가장 추운 기간입니다. 동지가 되고 보름이 지나면 작은 추위인 소한(小寒)이 되고, 또다시 보름이 지나면 큰 추위인 대한(大寒)이 옵니다. 대한(大寒)으로부터 보름 뒤가 입춘(立春)입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해가 가장 짧을 때 가장 춥고, 해가 점점 길어지면 날도 점점 따뜻해져야 할 것 같지만, 왜 실제 현상은 다르게 나타날까요? 이는 바로 원인이 있고 그로 인한 결과가 나타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방에 보일러 불을 넣는다고 해서 방이 바로 따뜻해지는 게 아니라 데워지는 데 시간이 걸리고, 보일러 불을 끈다고 해서 방이 바로 차가워지는 게 아니라 식는 데 시간이 걸리듯이, 지구도 데워지거나 식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즉, 불을 넣고 몇 시간이 지나야 방이 따뜻해지고, 불을 끄고 몇 시간이 지나야 방이 차가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위치에서는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뒤가 가장 추운 시기입니다. 동지가 지나고 한 달 후가 가장 춥고, 하지가 지나고 한 달 후가 가장 덥습니다.

오늘부터 해가 길어지는 것은 내적인 원리이고, 기온의 상승이나 하락은 외적인 현상입니다. 이처럼 내적인 원리와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내적인 원리를 중심으로 보면 동지부터 이미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즉, 앞으로 봄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동지를 한 해가 시작되는 기준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 반면,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중심으로 보면, 앞으로도 추운 날은 있겠지만 이보다 더한 추위는 없다는 대한(大寒)이 지난 뒤를 봄의 시작이라고 정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입춘(立春)입니다. 태양력으로는 입춘이고, 음력으로는 정초가 됩니다.


입춘이라고 해서 완전히 봄이 온 것은 아닙니다. 입춘이 지나야 봄이 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이제는 봄이구나’하고 느낄 정도가 되려면 삼월말은 되어야 합니다. 이때가 바로 낮의 길이가 밤의 길이보다 길어지기 시작하는 춘분(春分)입니다. 춘분은 지나야 개나리꽃도 피고, 오랑캐꽃과 버들강아지도 피어나서 눈으로도 봄이 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봄이 온 것을 눈으로 알 수 있는 시기는 춘분이 지나야 하고, 피부로 덜 춥다고 느끼는 시기는 입춘이고, 원리적으로 봄이 오기 시작하는 시기는 동지부터입니다.

아무리 추워도 이제 봄이 오기 시작합니다

수행의 과정도 이와 비슷합니다. 수행을 할 때, 오늘 발심을 하면 오늘 동지를 지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백일 정도 기도를 하면 나 자신을 조금 알게 됩니다. ‘내가 고집이 조금 세네’, ‘내가 욕심이 조금 많네’ 이렇게 자기를 알게 됩니다. 그러면 입춘을 지나는 것과 같습니다. 천일이 지나면 주변 사람도 나의 변화를 조금씩 알게 됩니다. 즉, 기도한 지 3년 정도가 지나면 옆 사람도 ‘너 좀 변했다’ 이렇게 알기 시작합니다. 그때가 춘분을 지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계절의 원리에 빗대어서 우리가 입재를 하고, 백일기도를 하고, 천일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 계신 분들도 다 발심을 하셔서 입재를 하고 정진을 해서 계절에 맞춰서 변화를 느끼도록 한번 해보세요. 굳이 백일기도, 천일기도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입춘 때는 자기를 좀 알고, 춘분 때는 옆 사람도 변화를 알 수 있도록 해보는 거예요. 그런데 실제로 해보면 사람의 변화는 계절의 변화보다 늦습니다. 그만큼 업보 중생에서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백일 정도는 지나야 스스로를 조금 알게 되고, 천일 정도는 지나야 옆 사람도 변화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우리가 수행을 할 때 천일결사를 중심에 두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아가 세상이 바뀌려면 30년 정도는 지나야 됩니다. 30년이면 만일 정도의 기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토 세상을 만들기 위해 원(願)을 세우고 만일결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출발은 발심이기 때문에 그 시작의 의미를 되새기며 오늘 동지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국운이 열리는 2025년을 기원하며

특히 요즘 나라가 다소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국면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여러분들이 더욱 흔들림 없이 정진을 해주십사 부탁을 드립니다. 저는 모레부터 시작되는 해외 일정을 시작으로 50여 일 후에 한국에 돌아옵니다. 제가 한국에 돌아올 때는 많은 문제가 해결되고 안정적인 모습이 되어있길 희망합니다. 그만큼 여러분이 스님을 대신해서 국정의 흐름도 지켜보고, 필요할 때는 목소리도 내고, 주장할 건 주장해서 대한민국이 한 발 더 나아가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매번 스님한테만 뭘 해달라고 하지 말고, 여러분들이 중심이 되어서 이 시기를 국가 발전의 새로운 계기로 삼길 바랍니다.

용성진종조사님께서는 이미 100년 전에 2025년부터 새로운 대한민국이 열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작년만 해도 ‘시국이 정말 어려운데 과연 새로운 대한민국이 열릴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세상이 참 모를 일입니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해서 2025년은 정말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은 동지를 맞이해 새로운 마음으로 수행 정진을 시작해 볼 것을 다짐했습니다.

이어서 조상 영가들을 위한 천도재를 함께 지낸 후 모둠별로 소감 나누기를 하고 동지 법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에는 점심 식사로 팥죽이 나왔습니다.


법회에 참석한 대중들은 팥죽을 맛있게 먹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어서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오래 근무하다가 지금은 리엔경제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곽수종 박사님이 스님을 찾아와 함께 점심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곽 박사님은 시국이 혼란스러워지면서 대한민국의 경제 상황이 매우 어려운 위기에 놓여 있다며 여러 가지 경제 지표들을 들어 이야기했습니다. 스님은 곽 박사님과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후 2시부터는 서울 정토회관 방송실에서 정토불교대학 학생들과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 9월에 입학한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은 현재 ‘실천적 불교 사상’ 교과 공부를 마치고 ‘인간 붓다’ 과목을 3회 차까지 공부한 상태입니다. 오늘은 인간 붓다 과목을 공부하면서 들었던 의문들을 스님에게 질문하고 해소하는 시간입니다.

2천여 명의 정토불교대학 학생들 모두가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여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이 복지 실천 활동을 한 모습을 영상으로 본 후 그동안 수업에 참여하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소감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어서 다 함께 스님에게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왜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하는지 간단히 설명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복을 빌고 도움을 받기 위해 부처님을 믿는다는 종교적 관점에서 불교를 접하면 사회적인 실천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이 살아갔던 사회와 역사의 구체적인 현실에 대해서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편, 불교 사상을 학문처럼 연구한다면, 예를 들어 ‘색이 공이다’, ‘공이 색이다’, ‘무상’, ‘무아’ 이런 연구만 하게 되면, 현실의 삶에서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하면 조금 다릅니다. 부처님은 구체적인 사회 현실 속에서 살다 가신 분입니다.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보통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깨달음을 얻고 난 뒤에는 부처님이 되어 45년을 사셨어요. 부처님이 된 후 살았던 세상 역시 우리가 사는 세상하고 똑같았습니다. 많은 문제가 있었지요.

예를 들어, 어떤 여인의 아이가 갑자기 죽었어요. 여인이 얼마나 슬펐겠어요? 이 여인은 부처님에게 아이를 살려달라고 아우성 쳤습니다. 이게 구체적인 현실입니다. 이럴 때 부처님은 뭐라고 하셨을까요? ‘법은 공하다’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일체는 무상하다’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또 당시에는 노예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노예들에게는 주인이 있었습니다. 노예들은 주인의 허락 없이 자기 마음대로 출가하지 못했습니다. 옛날에는 노비가 도망가면 잡아서 매질하고 죽이기도 했잖아요. 이와 마찬가지로 노예가 출가를 하면 주인의 입장에서는 손해가 컸기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럴 때 부처님은 어떻게 대응을 하셨을까요?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

이렇듯 부처님은 수많은 현실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그러니 부처님의 일생을 잘 공부하면 불교의 사회 사상이나 당대의 역사적인 문제들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오늘날 우리 사회에 부처님이 출현하신다면 어떤 말씀과 행동을 하실지 짐작해 볼 수도 있습니다. 약간의 신비주의적 묘사만 걷어내면 부처님의 일생에서 불교의 사회성과 역사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불교의 우주관이 좋아서 불교에 입문했습니다. 그러나 한 십 년 정도가 지나자, 불교에 대해 매우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만두더라도 내가 믿고 있는 이게 진짜 불교인지 아닌지 알고 그만둬야 할 거 아니에요. 그때 제가 관심을 가졌던 게 바로 부처님의 일생이었어요. 부처님의 일생을 다시 공부하면서 ‘아, 내가 알고 있던 불교가 원래 불교가 아니었구나’ 하고 깨닫고 다시 발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부처님의 일생을 제대로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어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다섯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아내의 욕설과 험담에 맞장구를 쳐주지 않으니까 아내가 서운해 한다며 어떡하면 좋을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수행을 해서 집착을 놓으니까 가정과 직장에 소홀하게 됩니다

“참회와 선정을 할수록 집착을 놓는 것이 핵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집착을 점점 내려놓으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재가 수행자인 입장에서는 제가 하는 일과 충돌이 생기기도 하고, 가정과 직장을 소홀하게 되는 경향이 생겨서 고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출가하지 않은 재가 수행자는 어떤 마음을 갖고 수행을 해야 할까요? 스님께 답을 구하고 싶습니다.”

“제가 거꾸로 다시 물어볼게요. 질문자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직장에 다니든, 부부 생활을 하든, 자녀의 문제든, 부모를 모시는 문제든, 여러 가지 고뇌가 생기는데, 그럼 이 고뇌는 왜 생길까요? 고뇌의 원인을 찾아서 그 원인을 제거하면 고뇌 없이 살 수 있다는 게 불교에서 배운 가르침 아니에요? 그런데 출가를 했냐 출가를 안 했냐가 무슨 관계가 있어요?

출가하고 싶으면 출가를 하면 되고, 결혼하고 싶으면 결혼하면 됩니다. 출가든 결혼이든 그것은 개인의 선택 사항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결혼해라’, ‘결혼하지 마라’, ‘직장 다녀라’, ‘직장 다니지 마라’ 이런 얘기가 아닙니다. 부처님은 결혼을 해도 괴롭지 않게 살고, 혼자 살아도 괴롭지 않게 살고, 교회를 다녀도 괴롭지 않게 사는 길을 말씀하셨습니다. 괴롭지 않은 것이 열반입니다. 부처님은 열반을 증득하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왜 재가 수행자의 삶을 사는 데에 어려움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얘기를 해야지 출가 여부하고는 아무 관계없습니다. ‘저는 이런 문제로 괴롭습니다’ 이렇게 얘기해야 제가 도움을 줄 수 있어요.

불교대학에서 배운 게 무엇입니까? ‘이것이 괴로움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이다. 그 괴로움의 원인을 제거하면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다만, 재발 가능성이 있으니, 다시는 괴로움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덟 가지 바른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말할 때 깨어 있고, 행동할 때 깨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불교대학에서 배웠지 않았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내가 혼자 사느냐 둘이 사느냐 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고뇌는 혼자 살아도 생기고, 둘이 살아도 생기고, 머리를 깎아도 생기고, 머리를 길어도 생기고, 절에 살아도 생기고, 집에 살아도 생깁니다. 절에 살면 수행자이고, 집에 살면 수행자가 아니고, 이런 게 아닙니다. 고뇌 없이 사는 사람이 수행자라는 관점을 갖고 우리가 공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질문자의 고뇌가 무엇인지를 얘기해야지, 출가와 재가의 문제는 전혀 아니에요. 우리의 관점은 기독교냐 불교냐의 관점도 아니고, 재가냐 출가냐의 관점도 아니고, 부자냐 가난하냐의 관점도 아닙니다. 나에게 고뇌가 있다면 고뇌의 원인이 무엇일까를 찾아서 고뇌 없이 사는 길을 추구하는 게 불교입니다.

결혼해서 사는 선택을 해도 되고, 결혼 안 하고 사는 선택을 해도 되고, 스님이 되는 길을 선택해도 되고, 종교를 믿지 않는 길을 선택해도 됩니다. 모두 개인의 선택 사항이에요. 목이 마르면 물을 먹어야 되는데 어떤 물을 먹을 거냐? 그것은 개인의 선택 사항인 것과 같습니다. 건강의 상태에 따라 더운물을 먹을 사람, 찬물을 먹을 사람, 단물을 먹을 사람이 있을 수가 있는데, 그건 개인의 선택이에요. 목이 마르면 물을 먹는 게 중요하지 무슨 물을 먹을 건지는 개인의 상태에 따라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다시 한번 질문해 보세요.”

질문자는 다시 구체적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아내의 욕설과 험담에 맞장구를 쳐주지 않으니까 서운해합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예전에는 아내가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고 오면 제가 같이 욕설이나 험담을 해주면서 맞장구를 쳐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같이 실없는 얘기나 수다를 떨면서 아내가 위로를 많이 받았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제가 그런 걸 하지 않고 듣기만 합니다. 물론 저는 마음을 공감해 주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아내는 적극적으로 공감해 주지 않는다고 느끼고 서운해하더라고요. 아내가 서운한 마음을 느낄 때 어떻게 풀어줘야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첫째, 질문자가 같이 욕을 안 하더라도 들어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 않습니까? 그러니 옛날보다 더 귀 기울여 들어주고 공감해 줘야 합니다. ‘당신 화가 많이 났겠다’, ‘당신 기분이 많이 나빴겠다’, ‘당신이 참 괴로웠겠다’, ‘당신이 참 슬펐겠다’ 이렇게요. ‘나는 수행자니까 그건 괴로울 일이 아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공감해 주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대신에 충분히 공감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약 내가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같이 화를 내고 욕설을 한다면, 그것은 내가 평정심을 잃어버린 것이 됩니다. 그러나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공감을 하면 내가 괴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같이 욕도 해주고 같이 노닥거려 주기를 원하는 것은 내가 수행자이기 때문에 해줄 수 없는 영역에 속합니다. 예를 들어,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수행은 아니지만 앞으로 고기를 좀 삼가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아내가 고기 먹는 걸 보고 ‘먹지 마라’ 하고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시빗거리가 됩니다. 아내가 고기 먹는 건 내 일이 아니고 아내의 일이니까 거기에 대해 왈가왈부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 내가 밥을 먹을 때는 가능한 고기를 적게 먹거나 안 먹는 쪽으로 하는 거예요. 내가 고기를 안 먹는다고 아내한테 손해가 생기는 것은 아니잖아요. 내가 고기를 안 먹는다고 해서 아내도 고기를 먹지 말라고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정도의 관점은 최소한 가져야 됩니다.

상대가 원한다고 내가 다 해줄 수는 없습니다. 상대가 도둑질하자고 한다고 해서 같이 도둑질을 해서는 안 되잖아요. 남을 때리자고 한다고 해서 같이 때릴 수 없는 겁니다. 그런 것처럼 아내가 ‘너 옛날엔 같이 욕하더니 이제 욕을 왜 안 하느냐?’ 하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면 됩니다.

‘욕한다고 문제가 해결이 안 되더라. 화를 내봐야 나만 손해라는 걸 요즘 자각하고 있어. 그래서 네가 화를 내는 건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덩달아 나까지 화를 낸다고 무슨 도움이 될까?’

이렇게 내가 수행하고 있는 것에 대해 조금씩 소개를 하되, 그러니 ‘너도 해라’ 하고 강요만 안 하면 돼요. 아내에게 강요하면 기분 나빠할 수 있습니다. 아내가 얘기하는 걸 오히려 적극적으로 들어주되 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안 하면 됩니다. 내가 안 하는 게 아내한테 손해 나는 건 아니에요. 단지 아내가 원하는 것을 다 못 들어주는 것일 뿐입니다. 마치 아이가 뭘 사달라고 할 때 다른 건 다 사주더라도 아이의 건강에 나쁜 건 안 사줘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막 울고불고할 수는 있겠죠. ‘장난감 총을 사 달라’ 하고 요구하면 ‘그건 안 된다’ 하고 말하는 겁니다. 아이는 그걸 갖고 싶으니까 울고불고할 수는 있지만, 장난감 총을 사주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이런 관점이 분명하지 않으면 수행을 해나가기가 어렵습니다. 세상이 원하는 대로 나쁜 짓도 같이 하는 게 수행자라고 얘기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는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생활해 나가지만 그걸 아내에게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관점만 가진다면 큰 문제가 없습니다. 출가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문제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들었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경쟁 과정에서 타회사의 불행이 없다면 저희 직원들은 거리로 나앉게 됩니다. 회사를 위한 욕망 때문에 매일 고락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과법에 따른 당연한 대가인지요?

  • 명상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요? 명상이 끝난 후 제 삶 속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 십이연기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생과 노사가 어떤 과정으로 형성되고, 그렇다면 맨 처음 무명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 부처님은 부모님 뜻에 따라 10년간 살았습니다. 부처님은 억지로 부모님 뜻에 따라 살면서 반항심 같은 건 없었을까요?

오후 4시가 다 되어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학생들은 교실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마음 나누기를 이어갔습니다.

스님은 다시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황보국 한국협회장님과 한국종교협의회 이현영 회장님 등 관계자들이 스님을 찾아와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가정연합에서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스님은 트럼프 재선과 남한 대통령의 탄핵 국면으로 인해 한반도의 전쟁 위기가 한층 낮아진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하면 북미 관계를 정상화하고, 남북 관계를 화해와 협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가정연합에서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북미 관계를 개선하는데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 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저녁으로 함께 동지 팥죽을 먹었습니다.

미팅을 마치고 나니 해가 저물었습니다. 긴 하루였습니다.

저녁에는 50일간의 해외 일정을 위한 짐을 꾸리고 원고 교정을 본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외국인을 위한 영어 즉문즉설 생방송을 한 후 내년 시무식 법문과 불교대학 수행 맛보기 입재 법문을 녹화하고, 오후에는 결사 행자 자자수련에 참석하여 즉문즉설과 회향 법문을 하고, 저녁에는 백일특별정진위원회와 실무 준비 상황에 대해 온라인 간담회를 할 예정입니다.


2025 3월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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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

스님의 하루팀분들! 영상팀분들! 스님! 선조님들 나라 정토행자님들 후원회원님들 정토불교대학생분들 일체중생 자연의 한량없는 은혜속에 스님의 하루를 읽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2024-12-31 11:47:18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4-12-30 06:39:58

무구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2024-12-28 20: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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