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10.19 환경담마토크, 청년 경주통일역사기행 1일째
"소개팅을 여러 번 해봐도 실패하니까 자존감이 낮아집니다"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6시 30분에 연변 조선족 어르신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조선족 어르신들은 지난 이틀 동안 두북 수련원에 머물며 스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부족한 이야기를 더 나누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서울로 출발하는 조선족 어르신들을 배웅한 후 다음 만남을 기약했습니다.

“조심히 가십시오. 내년에 연변을 가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오전 10시부터는 두북 수련원 방송실에서 정토회 환경담마토크에 온라인으로 참여했습니다. 오늘 행사를 맞이하여 정토회 전국 으뜸절마다 환경 실천에 관심이 많은 대중이 모였습니다.

두북 수련원 방송실과 전국 으뜸절을 온라인 생중계로 연결하여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기후 위기에 대해 우리가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지 여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오늘은 정토회가 창립 때부터 시작한 환경 운동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새겨보는 시간입니다. 정토회는 창립이 되고 1차 만일결사를 시작할 때 크게 네 가지를 과제로 삼았습니다. 첫째, 지구 차원에서는 기후 위기를 대비하여 환경 오염을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인류 차원에서는 빈곤을 퇴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한반도에서는 전쟁 위기를 막고 평화와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 개인은 수행을 통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환경 문제는 정토회의 창립 정신에 담겨있습니다.

환경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첫째, 나부터 환경을 살리는 실천을 하는 것입니다. 둘째, 나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할 수 있도록 영역을 넓혀야 됩니다. 셋째, 같이하는 영역을 넓힐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기업, 국가가 제도적으로 환경을 살릴 수 있도록 견인해야 됩니다. 넷째, 우리나라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국제 관계를 통해서 전 세계 인류가 환경 실천을 함께 해나가도록 해야 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피해가 일어나는 곳에서는 피해 복구 활동을 함께 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환경 실천의 순서를 밟아 나가야 합니다.”

이어서 전국 으뜸절에서 참가자들이 질문하고, 두북수련원 방송실에서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환경 실천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면 쓰레기가 많이 나와서 고민입니다

“코로나 이후 배달 문화가 발달해서 집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면 플라스틱이 많이 나옵니다. 특히 아파트에서는 플라스틱을 버릴 때 폐기물 값을 내지 않아서 배달 음식을 더 많이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나 하나라도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동시에 ‘나만 이런다고 되겠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어떤 관점을 갖고 환경 실천을 해야 할까요?”

“환경 문제 해결이 질문자 혼자 노력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건 맞아요. 그런데 이 지구 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안 하더라도 나 혼자라도 한번 해보자’ 이런 마음을 갖고 하나라도 행동하면 만 분의 일, 억 만 분의 일이라도 도움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한 명 한 명 자꾸 참여하다 보면 인구의 1퍼센트가 참여하게 되고, 그 결과가 계속 축적이 되면 인구의 10퍼센트가 참여하게 되면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물론 나 혼자 어떤 실천을 한다고 변화가 당장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이라도 소비를 줄일 때 환경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 위기를 그냥 받아들이고 공멸하는 길도 있습니다. ‘흥청망청 소비하고 기후 변화로 홍수가 일어나 집이 떠내려 가면 같이 죽으면 되지’ 이런 생각으로 인생을 사는 거죠. 그게 싫다면 둑이라도 미리 쌓아서 막아보고, 그래도 안 되면 산으로 도망가서 살겠다는 행동이라도 해보든지 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길 외에 다른 길이 없지 않느냐는 겁니다.

그럴 때 나부터라도 소비 멈춤, 소비 줄이기를 해보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그것을 하면 되는데. 현재는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물론 대통령과 국회가 법을 만들어서 정부가 제도적으로 마련하면 훨씬 효과적이고 좋지요. 하지만 정부를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현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라도 소비를 줄이는 것 이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정토회는 남이 하든지 말든지 너무 따지지 말고 나부터 우리부터 해보자는 운동을 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서 멈추지 말고 주변에 알려서 확대하고, 광범위하게 확대된 사람들에 의해서 선거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면 제도적 변화까지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환경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이런 순서로 활동을 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 중에 가장 심각한 위험 요인은 미세 플라스틱입니다. 플라스틱이 부서지면 눈에 안 보이는 미세 플라스틱으로 바뀌는데, 그걸 물고기가 먹어서 다시 우리의 몸으로 돌아와 축적이 되면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게 됩니다. 안 부서진 것은 바다로 떠내려가는데, 그렇게 떠내려간 것이 북태평양 바다에 한반도 크기의 열 배 정도 되는 쓰레기 섬을 구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있는 해안가에도 쓰레기가 많이 쌓이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치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없는 바다 한가운데에는 안 보이니까 존재 자체를 모릅니다. 그러나 쓰레기는 지구의 어디에 가서라도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안 부서지는 것은 어디에 가서라도 쌓이고, 부서진 것은 땅속에 그리고 물속에 다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 점점 축적이 되어서 그 부작용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사홍서원으로 환경 담마토크를 마친 후 각 으뜸절별로 자체 마련한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대중들은 각자 싸 온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한 후 다양한 환경 실천 부스를 체험하고, 환경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손수건 만들기, 채식 요리 먹기, 흙 퇴비화 체험, 용기에 담아서 떡 먹기 등 재미난 부스들이 많았습니다. 하나씩 재미있게 체험을 하다 보니 환경 실천에 대한 인식이 쑥쑥 올라갔습니다.

스님은 두북수련원 살리고 센터와 JTS 창고에 마련한 환경 부스를 한 바퀴 돌아보았습니다.




“다들 수고가 많아요!”

각 체험 부스를 정성껏 준비해 준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스님은 곧바로 청년들과 통일역사기행을 하기 위해 태종무열왕릉으로 향했습니다.

태종무열왕릉에는 전국에서 청년 300여 명이 1박 2일간 스님과 통일역사기행을 하기 위해 모여 있었습니다. 오늘과 내일 스님은 경주에 있는 역사 유적지를 둘러보면서 현재 남북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통일의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그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역사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안내할 예정입니다.

오후 1시가 되어 스님이 태종 무열왕릉에 도착하자 청년들은 열렬한 환영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참가자 소개 시간을 통해 반갑게 서로를 환영한 후 스님은 이번 역사기행의 취지를 설명하면서 작은 나라인 신라가 어떻게 민족사의 주류로 등장할 수 있었는지 그 원인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강하게 부는 가운데도 청년들은 스님의 이야기에 오롯이 집중했습니다.

“오늘부터 1박 2일 동안 경주 지역을 답사하면서, 동쪽에 치우친 작은 나라 신라가 어떻게 삼국의 일원이 되고, 나아가서는 마침내 삼국통일의 주역이 됐는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즉, 우리 민족사에서 주류가 아닌 작은 세력에 불과했던 신라가 어떻게 역사의 주류로 등장했는가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아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교훈을 바탕으로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와 미래를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통찰력을 얻기 위함입니다.

작은 나라인 신라가 어떻게 민족사의 주류가 될 수 있었는가

신라는 AD 400년경 내물왕 때까지도 가야보다 세력이 약했습니다. 그런데 신라가 점점 세력이 강해지니까 가야와 왜가 힘을 합해서 신라를 침공했습니다. 신라는 이 전쟁에 져서 나라가 거의 망할 뻔했습니다. 그때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5만 군대를 지원해서 가야와 왜의 연합군을 격파했습니다. 그래서 신라는 고구려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 되었습니다. 그 후 가야의 국력은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반면에 신라는 전쟁의 승리를 기반으로 점점 국력이 커져 나갔습니다. 100년 후에 법흥왕에 이르자 가야와 신라는 충돌이 더 많아졌습니다. 신라에서는 ‘가야를 침공해서 없애버리자’ 하는 기류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가야에서는 ‘우리가 원래 더 강한 나라였는데 끝까지 저항하자’ 하고 맞섰습니다.

그러나 신라의 젊은이들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나라의 세력이 커진 지금, 가야와 싸우며 국력을 낭비하기보다는 고구려나 백제와 경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가야의 일부 젊은이들 또한 ‘나라가 기울어진 지금, 신라와 싸워봤자 지는데 굳이 끝까지 싸워서 전멸할 필요가 있느냐. 적절하게 협상해 신라가 우리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이면 신라와 합병하는 것이 낫다’ 하고 주장했습니다. 신라와 가야, 양쪽 다 강경 세력과 온건 세력이 있었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온건 세력의 주장이 더 나은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항상 강경 세력이 더 큰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날 남북 간 갈등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까짓것, 확 밀어버리자!’ 하는 목소리가 클까요? ‘잘 달래서 포용하자’ 하는 목소리가 클까요? 확 밀어버리자는 목소리가 항상 큽니다. 이렇듯 현실에서는 갈등 상황이 있을 때 대부분 강경 세력이 주도권을 잡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야가 내건 협상 조건 중 하나는 불교의 공인이었습니다. 가야는 나라가 생길 때부터 불교 국가였지만, 신라는 당시 3국 중에 불교를 금지한 유일한 나라였습니다. 신라는 당시 동쪽으로 치우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중국이나 외부의 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오늘날 남북이 북한의 공산주의와 남한의 반공정책으로 대립하는 것처럼, 신라와 가야의 상황도 비슷했습니다. 불교를 국가적으로 공인해 달라는 가야의 요구에 신라의 젊은 세력은 찬성했으나, 신라의 보수 세력은 100년 이상 불교를 금지해 왔으므로 절대로 공인할 수 없다며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가야의 또 다른 요구사항은 가야 왕족과 귀족의 신분보장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북한이 남한과 통일이 되더라도 북한의 도지사, 군 장성, 의사, 교사 등의 신분과 자격을 그대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와 같습니다. 즉, 가야 귀족을 신라 귀족과 동등하게 대우해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이것이 받아들이기 쉬운 요구였을까요? 만약 오늘날 북한이 평화통일의 조건으로 남한의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을 모두 폐지하고, 북한의 모든 신분을 그대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한다면, 남한에서 이를 받아들이기가 쉬울까요? 현재 상황에서 북한이 그러한 요구조건으로 통일을 할 가능성도 낮지만, 남한에서도 그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는 남한과 북한 모두 평화통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신라와 가야의 통합이 가져온 시너지 효과

가야가 내건 협상 조건을 두고 논란이 분분한 상황 속에서 신라의 젊은이들은 법을 어기면서까지 흥륜사라는 절을 지었습니다. 결국 주모자를 잡아들였고 그중에는 법흥왕의 비서였던 이차돈도 있었습니다. 법흥왕은 이차돈에게 앞으로 불교를 믿지 않겠다면 살려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이차돈은 제안을 거절했고, 결국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차돈과 관련된 설화 중에는 순교 직후에 이차돈의 목에서 흰 피가 나오고, 목이 날아가 소금강산에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하늘에 먹구름이 일고 흙비가 내리는 기상이변이 일어나자 사람들이 놀라서 불교를 공인했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어떤 사회 현상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늘이 새카맣게 먹구름이 끼어서 대낮인데 밤처럼 됐다는 것은 민심이 뒤집혔다는 비유로 해석할 수가 있겠죠. 결국 527년 이차돈의 순교로 인해 민심이 크게 뒤집혔고, 진보 세력이 정권을 잡게 되었습니다. 이듬해인 528년에 신라는 불교를 공인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4년 후인 532년에 신라와 가야가 통합을 합니다. 그러면서 가야의 귀족을 모두 신라의 귀족으로 받아들입니다. 신라가 가야에 대해 가지고 있던 100년 전의 원한만 놓고 보면, 신라는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고 포용한 셈입니다. 그렇게 해서 신라는 가야의 뛰어난 철기 문명과 군사적 역량을 흡수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증손자인 김유신을 비롯하여,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룰 때 혁혁한 공로를 세운 장군들이 대부분 가야 출신이었습니다. 이처럼 신라와 가야의 평화적인 통합은 1+1이 2가 아닌 3이 되고, 5가 되고, 10이 되는 비약적인 상승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역사가 주는 이런 교훈을 통해 오늘날 우리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남북 관계에 대처할지 1박 2일 동안 함께 배우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태종무열왕릉을 향해 삼배를 한 후 왕릉 뒤로 펼쳐진 서악동 고분군을 한 바퀴 돌아보았습니다.


다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김유신 장군묘로 향했습니다.

“청년, 파이팅! 통일로 가자!”

원래는 도보로 이동하려고 했는데 비가 많이 내려서 버스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김유신 장군묘에 청년들이 모두 도착하자 우산을 쓰고 선 채로 스님이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이곳은 김유신 장군묘입니다. 김유신 장군은 가야의 왕손입니다. 가야와 신라가 통합을 할 때 신라는 가야에 대한 예우로 가야에서 왕이 될 예정이었던 사람을 신라의 공주와 결혼을 시켜서 사위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을 제1수도로 하고 가야의 수도인 김해를 제2수도로 했습니다. 만약 남북이 통일이 되다면 서울을 제1수도로 하고 평양을 제2수도로 한 것과 같습니다. 신라는 이렇게 가야와 통합 정책을 펼쳤습니다. 김유신 장군은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증손자입니다. 즉, 김유신의 어머니는 신라의 공주였습니다.

어머니는 대부분 자식을 출세시키려고 하잖아요. 그러나 김유신이 가야 출신이다 보니까 신라에서 조금만 잘못하면 흠이 잡히기가 쉬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가 자식이 혹시 잘못될까 싶어서 굉장히 엄격하게 자식을 키운 것 같아요. 그 결과 김유신은 가야 출신이고 신하의 신분이었지만 후대에 왕의 칭호를 받을 만큼 신라에서 존경을 받았습니다.

김유신의 젊은 시절의 얘기를 읽어보면 어머니가 보기에는 훌륭한 아들이었지만 연인이 볼 때는 썩 훌륭한 남자라고 볼 수는 없었던 것 같아요...”

스님은 김유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 주었습니다.

태종 무열왕과 그의 아들인 문무대왕, 그리고 김유신 장군 이렇게 세 사람을 신라 삼국통일의 영웅이라고 합니다. 스님은 세 사람의 이야기를 축으로 해서 어떻게 신라가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펼쳐나갔습니다.

설명을 듣고 김유신 장군묘를 내려와 계단에 서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넓은 계단이 청년들로 꽉 찼습니다.

김유신 장군묘를 나와 신라인들이 신성하게 여겼다고 하는 낭산에 도착했습니다. 사천왕사지, 선덕여왕릉, 문무왕의 화장터에 세운 능지탑을 차례로 둘러보았습니다.


사천왕사가 있던 터는 지금은 공터이지만 절과 탑을 세웠던 흔적들은 복원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을 따라 12명의 유가승이 문두루 비법을 행했던 터를 둘러본 후 산길을 걸어 선덕여왕릉으로 향했습니다.

청년들이 선덕여왕릉 옆으로 모여 앉자 스님이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우리가 도착한 이곳은 선덕여왕릉입니다. 선덕여왕은 신라 제27대 왕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여자로서 처음으로 왕이 된 분입니다. 선덕여왕은 본인 당대에 통일을 해서 역사에 빛나는 영웅이 되지는 못했지만, 당나라와의 외교를 이용해 통일의 기반을 구축하고 인재를 양성한 분입니다.

선덕여왕 당시는 나라의 상황이 안팎으로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백제가 계속 침공해 왔고, 국내에도 반란이 자주 일어났어요. 여자가 왕이니까 ‘네가 무슨 왕이냐 내가 하겠다’ 하는 식으로 반란이 여러 번 일어났습니다. 그런 혼란 속에서도 선덕여왕이 미래를 대비하여 어떤 준비를 했는지를 살펴보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많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도 여성이 남성보다 많죠? 앞으로는 여성 리더십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겠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선덕여왕은 지혜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에 대해 세 가지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중 하나는...”

한반도에서는 이미 1400년 전에 여성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에 청년들 모두가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스님은 선덕여왕의 총명한 지혜를 보여주는 세 가지 일화, 무덤이 이곳에 위치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설명을 마치고 청년들이 준비해 온 노래를 불렀습니다. 한 명이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노래를 부르고, 다른 한 명이 바이올린 연주를 했습니다.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

어느덧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다시 산길을 내려와 문무대왕의 화장터에 세운 능지탑으로 향했습니다. 비가 더 세차게 내리자 스님은 설명을 짧게 끝냈습니다.


“오늘 비가 계속 오네요. 여기가 마지막 코스입니다. 이곳은 능지탑이라는 곳입니다. 문무대왕은 ‘내가 죽으면 나를 화장해서 동해에 묻어달라’ 하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여기가 바로 문무대왕을 화장한 곳입니다.

그러면 능지탑이라는 게 무엇일까요? 왕이 죽으면 시신을 묻고 능을 쓰잖아요. 하지만 문무대왕은 화장을 했기 때문에 능을 안 쓰고 탑을 세운 겁니다. 그러면 여기에 유골을 묻었을까요? 그건 아니에요. 유골은 동해에 가면 대왕암이 있는데 거기에 묻었습니다. 이 자리는 능 대신 탑을 세운 겁니다. 그래서 능지탑이라고 합니다.

당시 신라 사람들은 이 앞을 지날 때마다 절을 했다고 해요. 불교 신자는 탑이니까 절을 하고, 불교 신자가 아닌 사람은 삼국을 통일한 왕의 능이니까 절을 한 겁니다. 누구나 이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은 다 이곳을 향해 절을 했다고 해서 이 동네의 이름이 ‘배반(拜盤)’입니다. 한자로 엎드릴 ‘배(拜)’ 자와 반석 ‘반(盤)’ 자를 씁니다. 누구든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은 절을 했다는 뜻입니다.”

능지탑을 돌아 나와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갔습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7시부터 강당에 모여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청년들이 준비한 여는 공연을 함께 보았습니다. 얼마 전 인도 수자타아카데미에 선재수련을 다녀온 청년들이 댄스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강당 안은 순식간에 청년들의 열기로 가득 찼습니다.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끝나자 큰 박수와 함께 스님이 무대에 자리했습니다.

“비가 오는데도 여러 곳을 다녔는데 괜찮았어요?”

“네.”

“힘들지는 않았어요?”

“비 맞고 다니는 것도 좋았어요.”

이어서 청년 한 명이 무대로 나와 활기차게 노래 한 곡을 한 후, 스님이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연애, 가족, 사회생활, 마음, 역사 등 다양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그중 한 명은 소개팅을 여러 번 나갔지만 인연이 이어지지 않으니까 이제 마음을 표현하는 게 두렵다며 스님의 조언을 구 했습니다.

소개팅을 여러 번 해봐도 실패하니까 자존감이 낮아집니다

“스님의 주례사 책에서 연애와 결혼이란 두 사람이 각각 반달과 반달이 만나 온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온달과 온달이 만나 더 큰 빛을 내는 온달이 되는 것이라는 내용이 깊이 다가왔습니다. 제가 아직 온달까지는 아니어도 온달에 가까워지는 상현달 정도는 된다고 생각해서 이제 연애를 하고 싶습니다.

소개팅도 몇 번 했습니다. 그런데 매번 소개팅을 할 때마다 인연이 이어지지 않습니다. 저는 호감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편인데, 상대방이 저만큼 표현하지 않으면 혼자 불안해서 조급해집니다. 소개팅을 할 때마다 잘 안 되니 자존감이 낮아지고 이제는 제 마음을 표현하는 게 두렵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은 상대방의 것이라는 게 마음에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앞으로 상대방을 만날 때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만나면 좋을까요?”

“지금처럼 상대방을 갈구한다면 아직 반달도 안 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모두 웃음)

“온달이 되려면 내가 갈구하는 게 없어야 합니다. 갈구하는 게 없이 그냥 만나면 만나서 좋고, 헤어지면 헤어져서 좋고, 그러다가 상대도 좋다고 하고 나도 호감이 가면 서로 사귀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같이 있어도 크게 갈등이 없고, 헤어져도 크게 상처가 없는 관계가 됩니다. 반달과 반달이 만나면 겉으로는 온달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가운데 여전히 금이 그어져 있기 때문에 결합이 잘 안 돼요. 그런데 온전한 원과 원이 겹쳐지면 가운데 금이 없는 온전한 원이 생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둘 중 하나가 떨어져 나가도 다른 원이 그대로 있습니다. 막상 실천하기에 쉬운 건 아니지만 수행적 관점에서 연애를 바라보면 그렇다는 뜻입니다.

수행적 관점을 갖는다는 건 혼자 살아도 괜찮고, 누가 같이 살자고 해서 같이 살아도 특별한 문제가 없고, 또 헤어져도 처음에는 약간 섭섭할지 모르지만 별 문제가 없이 살아가고, 그러다가 다시 다른 사람이랑 같이 살게 되면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지만 며칠 지나면 또 문제가 없이 살아가는 걸 말합니다. 이렇게 해야 자기 완결성이 갖추어진 것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과는 같이 못 산다거나, 나는 꼭 다른 사람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건 모두 자기 완결성이 없다는 뜻입니다. 자기 완결성이 있는 사람은 같이 살아도 괜찮고, 혼자 살아도 괜찮습니다. 질문자가 소개팅을 하러 다닌다는 것 자체가 아직 온전한 원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여기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뭘 따로 가서 소개팅까지 해요?”

“그럼 제가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어필을 한 번 해도 되겠습니까?”

질문자는 뒤로 돌아서서 청중들에게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모두가 크게 한바탕 웃자 다시 스님이 말을 이었습니다.

“사람을 사귀려면 첫째, 나이를 구분하지 말아야 합니다. 서른도 괜찮고, 마흔도 괜찮고, 쉰도 괜찮고, 예순도 괜찮고, 그저 미성년자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사회에서 미성년자는 보호의 대상이기 때문에 미성년자를 상대로 하는 건 범죄에 들어갑니다. 상대의 나이가 많은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됩니다. 둘째, 성별도 불문하고, 직업도 불문이어야 합니다. 즉, 남자 여자인지도 따지지 않고,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도 따지지 않고, 그저 사람이면 됐다고 생각하고 서로 교류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관계를 맺는 데 있어 가장 기본입니다.

이러한 인간관계 속에서 두 사람이 연애를 하려면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있어야 해요. ‘애(愛)’라는 말이 사랑이라는 뜻이니까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아주 친한 사이는 친구라고 합니다. 연애를 한다는 건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업상 서로 만나는 사람은 사업 관계이고, 이익 관계없이 그냥 좋아서 만나는 사람은 친구 관계이고, 서로 성애(性愛)를 가지고 만나는 것이 연애 관계입니다. 우선 인간관계가 성립된 상태에서 서로에 대한 감정이 생길 때 연애를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연애 관계는 내가 상대에게 감정이 생겨도 상대가 나에 대한 감정이 없으면 성립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상대가 나에게 감정이 있더라도 내가 상대에 대한 감정이 없어도 성립되지 않아요. 한쪽이 좋다고 해서 성립되는 게 아니라 서로가 좋아해야 성립되는 관계입니다. 내가 상대를 좋아해도 연애 관계가 성립할 확률은 50% 미만이고, 상대가 나를 좋아해도 성립할 확률은 50% 미만입니다. 서로가 좋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확률 0.5와 0.5를 곱하면 0.25가 되는 것처럼,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할 때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할 확률은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25% 밖에 안 됩니다. 네 번을 시도하면 그중 한 번만 성립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상대를 좋아한다고 해서 무조건 성립되는 게 아닙니다.

인간관계에서 나이와 성별이 불문이듯이 연애 관계에서도 나이와 성별이 불문이 될 수 있습니다. 연애는 아직 특별한 가족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애는 국경을 초월할 수도 있고, 연령을 초월할 수도 있고, 신분을 초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혼은 조금 달라요. 결혼은 성별을 초월하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동성끼리의 연애까지는 가능하지만 동성끼리 결혼을 하려면 사회적으로 저항을 받게 됩니다. 또, 연애는 나이를 불문하고 가능하지만 결혼할 때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날 경우 여러 가지 저항이 따르게 됩니다. 연애는 국적을 불문하고 가능하지만 국적을 뛰어넘는 결혼은 가족 간에 여러 가지 저항이 따르게 됩니다. 연애는 신분을 초월해서도 가능하지만 신분을 초월한 결혼은 많은 저항이 따르게 됩니다. 인도의 경우에는 신분을 초월한 연애로 인해 목숨을 잃을 때도 있습니다. 특히 신분 계급이 높은 여자가 신분이 낮은 남자와 대학을 다니면서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면 여자의 오빠들이 남자를 죽일 때도 있습니다. 이것을 ‘명예 살인’이라고 하는데 아직도 인도에서는 이러한 명예 살인이 매년 수천 건 이상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만큼 신분을 초월한 결혼이 어렵습니다. 종교가 달라도 연애는 가능한데,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것은 주변의 저항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연애는 상대방과 나만 좋으면 되는데, 결혼을 하게 되면 남자의 어머니가 곧 여자의 어머니가 되고, 여자의 어머니가 곧 남자의 어머니가 되기 때문에, 나이, 성별, 종교 등의 차이가 있을 때는 가족 내에서 반대가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가족 안에서의 동의나 합의가 필요합니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갈등이 생길 때는 당사자가 가족 안에서 합의가 되는 결혼을 할 것인지, 두 사람의 결혼을 위해서 가족 관계가 단절되는 경우도 감내할 것인지를 두고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결혼도 하고 싶고, 가족 관계도 유지하고 싶어 합니다. 여기서 번뇌가 많이 생기게 되죠.

결혼을 하려고 하는데 상대방과 나이가 스무 살 차이가 난다면 아무래도 가족들의 반대가 많을 것이고, 동성끼리 결혼을 한다고 해도 가족들의 반대가 많을 것이고, 신분제 문화가 남아 있는 곳에서 신분이 다른 사람들이 결혼하려고 해도 가족들의 반대가 많을 것이고, 국적, 민족, 종교, 빈부 차이가 나도 가족의 반대가 생기게 됩니다. 가족의 반대가 심하면 당사자도 가족의 영향을 받아서 망설이게 돼요. 그래서 연애와 결혼을 동일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결혼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범하는 실수가 연애와 결혼을 동일하게 생각하는 점입니다. 연애와 결혼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연애는 좋아하는 감정이 가장 핵심이지만, 결혼은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족의 동의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동의보다 내가 좋아하는 감정이 우선이라면 그때는 가족 관계가 단절되는 것도 각오해야 합니다.

가족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살다 보면 때로는 단절되기도 하는 것이 가족 관계인데, 오랜 시간을 가족 관계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단절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이런 관계의 단절은 비단 결혼뿐만 아니라 여러 경우에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개종을 한다고 해도 기존의 종교 친구들과는 어느 정도 관계가 단절된다고 봐야 합니다. 국적을 바꿀 때도 민족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게 됩니다. 그런 것처럼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하는 경우에도 관계의 단절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선택해야 합니다.

그걸 알고 선택하는 경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저 당사자 둘이서 좋아하는 감정만 생각한 채로 결혼을 결심했는데 막상 부모가 반대하니까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겁니다. 그럴 때 부모가 반대해서 결혼을 못 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하나마나한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그건 부모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결혼의 성격이 그런 줄 미리 알고 내가 선택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가족이 반대를 해도 나는 결혼을 하겠다거나, 가족이 반대할 것이기 때문에 나는 결혼을 안 하겠다거나, 이 사이에서 내가 결정해야 할 문제입니다. 자기가 결정을 못해서 생기는 일을 두고 누가 반대해서 못한다고 하는 건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스무 살이 안 된 사람이 결혼을 하고자 할 때는 아직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부모의 승낙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스무 살이 넘은 성인은 부모의 승낙이 없어도 됩니다. 결혼하고 싶으면 그냥 하면 돼요. 그런데 본인이 결혼도 하고 싶고, 부모의 승낙도 얻고 싶으면, 번뇌가 생깁니다. 이미 성인이 된 사람은 무슨 선택을 하든 부모의 승낙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모한테 돈을 좀 얻거나, 아파트라도 하나 얻으려고 하면, 부모한테 잘 보여야 하니까 그때는 승낙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해관계의 문제이지 결혼 자체만 두고 보면 굳이 부모의 승낙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반대해서 결혼을 못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독립되지 못한 사람하고는 결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하고 결혼하면 오히려 나중에 골치가 더 아픕니다. 왜냐하면 어떤 결정도 본인이 하지 못하고 가족들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하려면 가족 관계를 딱 정리하고 결혼을 하겠다고 결단을 내리든지, 아니면 서로 좋아하는 감정은 있지만 결혼은 그만두자고 결론을 내리든지, 이렇게 입장 정리를 분명히 해야 나중에 후회 없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사귈 때 처음부터 결혼할 상대를 구한다고 접근하면 100명을 만나도 다 안 될 수 있습니다. 낯선 사람이 접근을 해도 처음에는 경계를 하는데, 보자마자 결혼하겠다고 접근을 하면 얼마나 부담이 되겠습니까? 상대방이 내 결혼 상대가 되려고 태어난 것도 아니고, 나도 상대의 결혼 상대가 되려고 태어난 게 아니잖아요. 결혼은 고사하고 처음부터 연애를 하겠다고 덤벼도 그건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연애를 하려고 미팅을 하고, 결혼하려고 소개팅을 하는데, 사실 그렇게 목적을 정해두고 사람에게 접근하는 건 상대방의 인격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냥 아무런 목적 없이 사람을 만나야 서로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서로 좋아하면 연애 관계가 될 수도 있고, 서로 동의하면 결혼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 처음부터 연애를 하겠다거나 결혼을 하겠다고 접근하는 건 벌써 의도가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질문자도 누가 ‘나랑 연애하자’ 하면서 접근하거나 처음부터 ‘나랑 결혼하자’ 이렇게 접근하면 기분 나쁘지 않겠어요? 그러니 ‘내가 회사만 다니다 보니 사람 만날 일이 없으니까 이런 자리에 나가서 사람 한번 만나보자’ 이렇게 생각하는 게 좋아요. 만나다 보면 친구가 될 수도 있고, 하루 만나는 걸로 끝날 수도 있죠.

지금 질문자가 하는 고민은 성립될 확률이 매우 낮은 목표를 설정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벌도 아니고, 전생의 업보도 아니고, 소개팅을 주선해 주는 업체가 좋지 않아서 생기는 일도 아닙니다. 처음부터 매우 낮은 확률을 가지고 접근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에요.

주변에 보면 가끔 단 한 번의 소개팅으로 결혼에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런데 그럴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계산해 보세요. 매우 낮습니다. 소개팅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가끔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이지 성사가 될 확률은 매우 낮아요. 그러니 소개팅이 성공하지 않는다고 해서 특별히 나쁜 것도 아니고,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지금 질문자는 당첨될 확률이 매우 낮은 복권을 사놓고는 ‘스님, 저는 열 번이나 복권을 샀는데 왜 한 번도 당첨이 안 되나요?’ 이렇게 묻는 것과 같아요. 처음부터 확률이 매우 낮은 일에 도전을 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에요.”

“네, 감사합니다.”

“갈수록 이런 고민을 하는 청년들이 많아지는 것 같네요. 요즘 같이 좋은 시절에 왜 사람을 의도를 갖고 만나려고 해요? 어떤 사람이 나한테 어떤 의도를 갖고 접근한다면 기분 나쁘지 않겠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을 보고 접근을 한다거나, 성적인 관계를 위해 접근을 한다거나, 연애하자고 접근을 한다거나, 결혼하자고 접근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관계 설정이 되는 것이지, 모르는 사람끼리 어떤 목표를 설정해서 접근하는 건 가게에 있는 물건을 사는 것과 똑같습니다. 저는 인간관계를 맺을 때 이렇게 접근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앞으로 소개팅에 나가더라도 너무 목표를 내세우지 말고 ‘그냥 사람 만날 기회도 없고 심심하니까 한번 만나본다’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는 게 좋습니다. 또 사람을 만나기에는 오늘과 같은 자리가 좋잖아요.”

즉문즉설을 시작한 지 어느덧 두 시간이 지났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청년들이 통일을 이루어낸 세대가 되길 당부했습니다.

“통일은 여러분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시대에는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그 시대 청년들은 동시에 독립운동을 했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다음 세대는 전쟁을 겪고 고생했지만 조국을 건설했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다음 세대는 민주화에 대한 자긍심이 있습니다. 비록 감옥에 가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죽은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민주화 세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는 국가의 발전을 위해 어떤 기여를 했다는 자긍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헬조선을 외치고 있을 만큼 국가에 대한 자긍심이 결여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세대가 통일을 이루어내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앞 세대보다 훨씬 더 큰 시대적 자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비로소 우리 시대에 이르러서야 100년의 한을 풀었다’ 하는 전혀 다른 차원의 자긍심을 갖게 될 거예요. 그런 측면에서 여러분 모두 통일에 대해 긍정적인 관점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질문하고 싶은 청년들이 많았지만 내일 더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밤 9시가 넘어 즉문즉설을 마쳤습니다.

늦은 밤이지만 청년들은 그룹별로 마음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역사기행의 분위기가 점점 깊어가는 가운데 세차게 내리던 비도 그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동해로 가서 문무대왕의 수중릉과 감은사지, 불국사를 둘러보고, 오후에는 황룡사지에서 회향식을 한 후 청년 경주역사기행을 마무리하고, 저녁에는 정토회 발전을 위한 모둠장 공청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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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진

의도를 갖고 사람을 대하지 않습니다. 그냥 가볍게 대합니다. 인연이란 그런 것이겠지요. 온전한 원이 되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같이 있으면 즐거운 삶을 삽니다.

2024-10-25 11:06:13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4-10-24 16:48:08

미란다

암요~~암요~~

통일은 무조건 되야 합니다!!

2024-10-23 13:3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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