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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연변 조선족 어르신들이 두북 수련원을 방문한 지 이틀째 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연변 조선족 어르신들과 아침 식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어제저녁에 스님의 다양한 사회 활동 영상을 봐서 그런지 어르신들이 스님의 사회 활동에 대해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농장을 둘러보고 10시가 넘어 경주로 나들이를 갔습니다.
먼저 월정교로 갔습니다. 월정교 앞에서 이곳에 서린 원효대사의 설화를 설명하고 함께 다리를 건너 교동 최부자댁으로 걸어 갔습니다.
거리는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로 북적였습니다. 최부자댁 곳곳을 보고 조선 시대 국립교육기관이었던 향교도 둘러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첨성대와 반월성 사이에 있는 숲, 계림으로 들어갔습니다.
스님이 따끈한 황남빵을 건넸습니다.
“경주에서 유명한 황남빵입니다. 제가 어릴 때는 두 개 먹는 것이 소원이었어요. 맛보세요.”
“고맙습니다.”
빵의 온기가 그대로 손으로 전해졌습니다. 황남빵을 나눠 먹으며 스님은 신라의 건국 설화와 신라와 가야의 합병 과정에 대해 들려주었습니다.
재미난 이야기를 듣다 보니 11시가 다 되었습니다. 아쉽지만 스님은 먼저 두북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더 둘러보고 오십시오. 저는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가겠습니다. 오후에도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웃음)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오전 11시 30분에는 사단법인 미소원에서 JTS에 성금을 전달하기 위해 두북 수련원을 방문했습니다.
사단법인 미소원(이사장 장유정)에서는 매년 인도 JTS에 결핵 환자 의료 지원 및 우물 파기 후원금을 22년째 기부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피해 복구 소식을 듣고 성금을 모아 왔습니다.
장유정 이사장님이 지난 1년 동안 어떻게 모금을 했는지 경과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작년에 튀르키예에 지진 났을 때 저희가 십시일반으로 후원금을 모았습니다. 그걸 어떻게 할지 회원들에게 물으니 한결같이 JTS에 보내자고 했습니다. 법륜스님께서 후원금이 제일 필요한 곳에 아껴서 쓰실 거라면서요. 그렇게 의견을 모아서 기부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JTS에서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이후 지난 1년 7개월 동안 어떻게 지원 활동을 해왔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새로 지은 학교는 보셨어요?”
“네, 스님의 하루에서 보았습니다. 후원금이 너무 잘 쓰여서 정말 감격적이었습니다.”
“재난이 일어났을 때 바로 가서 돕는 것도 좋지만, 조금 기다렸다가 돕는 게 좋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곳에서 서로 재난 지역을 도우려고 하다 보니 남을 돕는 일도 서로 경쟁하게 됩니다. 그러면 물가도 오르고 숙박비나 항공료도 오릅니다. 그래서 저희는 다른 단체가 먼저 지원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한 달쯤 뒤에 튀르키예로 갔습니다. 그때 식량을 지원했어요. 그런데 지진이란 게 국경 안으로만 일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튀르키예와 시리아 국경 변에 지진이 났기 때문에 시리아도 피해를 봤어요. 그런데 시리아는 아무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내전 중이기 때문에 정부도 제 역할을 못 하고 있었고요. 반면 튀르키예는 정부도 있고, 나라가 큰 편이고, 또 다른 나라에서 많이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튀르키예 주지사에게 시리아 지원이 가능한지 물어보고 시리아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시리아에도 식량을 몇 차례 지원했고요, 피해 복구를 논의하면서 학교를 짓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JTS는 지금까지 그렇게 큰 학교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사람들에게 어떤 희망을 줄 수 있는 상징물이 하나 필요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번에 4천 명이 다닐 수 있는 학교를 지었습니다. 그 학교는 JTS가 해외에 지은 건물 중에 제일 큰 편에 들어간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미소원 관계자들은 성금을 모으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저희가 다들 여유가 있어서 기부한 건 아니에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저는 남편 월급에서 매월 조금씩 떼서 모으기도 했고, 식구들 생일 때도 조금씩 모았습니다. 새해에는 한 해를 감사히 지내게 해 달라는 마음으로, 또 연말에는 한 해 잘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하는 마음으로요. 그런 돈을 이렇게 너무 잘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어렵게 모아주신 돈인 걸 알기 때문에 저희가 가능한 한 알뜰히 쓰려고 유의하고 있습니다. 현지에 가면 활동가들이 먹는 것도 아끼고 가능하면 좋은 호텔에도 가지 않습니다. 또 무조건 지원하는 게 아니라 현지 지역 주민도 참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설명을 듣고 스님이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JTS 활동 원칙과 향후 시리아 지원 계획에 대해 소개해 주었습니다. 장유정 이사장님도 앞으로 JTS 활동에 대해 궁금한 점을 질문했습니다.
“시리아에서 국민운동으로 아이들의 기초교육을 하자고 제안하신 것이 참 좋네요. 사람이 글도 읽고 쓸 줄 알아야 하고, 법도 알아야 하니까요.”
“네, 제가 그분들에게 제안은 드렸지만, 수용할지는 알 수 없죠.”
“그래도 그분들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스님께서 제안해 주셔서 좋은 것 같습니다. 할지 말지는 그분들 몫이지만요.”
“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해도 현장에 가 보면 다 할 수가 없어요. 사람이 우선 살아야 하니까요. 그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내전이 일어나서 피난 왔는데 지진까지 나서 건물이 다 부서진 겁니다. 우선 하루하루 사는 게 바쁘니까 아이들을 교육할 만한 여유가 없는 거예요. 학교를 짓자고 제안하면 다 동의합니다. 세월은 금방 가버리니 빨리 조처를 취하자고요. 천막을 치든 나무 밑이든 일단 아이들이 배워야 해요. 시리아가 내전이 일어난 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그 10년 동안 아이들을 교육하지 못했으면, 당시 열 살이었던 아이가 스무 살이 된 거예요. 주민들도 다 동의하지만, 막상 하려고 하면 쉽지 않아요.
제가 보기에 그곳에서 정상 국가처럼 학교를 짓고 교사를 파견하려면 30년도 더 걸릴 거예요. 그러나 급할 때는 급한 상황에 맞게 해야 합니다. 글을 읽고 쓰고, 간단한 계산 정도는 할 줄 알아야 장사라도 할 수 있잖아요. 그 정도 가르치는 데는 한 6개월만 해도 되거든요. 그래서 우선 기초 교육부터 국민운동으로 해보자고 제안한 겁니다. 필요하다면 JTS에서 교재, 노트, 연필, 책상 등을 제공하고 필요하면 텐트도 제공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너무 많은 걸 누리고 사는 것 같아요.”
“그렇죠. 가난한 곳에 가면 제일 어려운 것이 첫째, 먹을 물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먹을 물이 없으니 씻을 물은 말할 것도 없겠죠. 둘째, 음식이 부족합니다. 셋째, 병원도 없고 약이 부족합니다. 보통 이런 순서예요. 생존에 관련된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교육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제가 2002년에 아프가니스탄에 지원하러 갔을 때 사람들에게 필요한 걸 물어보니 식량이나 약만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학교는 필요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필요하다고 했어요. ‘왜 학교가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우리가 지금 그 말을 어떻게 하느냐’는 거예요. 자식들이 자기처럼 살기를 원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냐면서요. 그러나 학교는 말할 상황이 안 되기 때문에 말을 못 한다고 했어요. 제가 텐트라도 쳐서 아이들이 글이라도 좀 익히도록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모두 찬성했습니다. 그렇게 아프가니스탄 난민촌에 텐트 학교를 마련했었습니다. 난민 중에 글을 좀 아는 사람이 교사를 맡았었고요. 그나마 글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시리아는 조금 달랐어요. 시리아는 가난했던 나라가 아니라 잘 살던 나라가 내전으로 분열한 상황이니까요. 그곳에 스무 살이 넘은 사람들은 다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기초 교육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대화의 끝 무렵 기후 위기의 심각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장유정 이사장님은 스님의 가르침과 정토회의 환경 실천 활동에 큰 감화를 받아서 10월부터는 미소원에서 환경 참회 기도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올해 저희는 환경 참회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함부로 살았고, 그 부작용을 모르고 살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종이를 많이 써서 나무를 너무 많이 베었고, 플라스틱이나 비닐을 너무 많이 써서 그게 우리에게 다시 큰 재앙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함부로 살아온 것을 참회하고 있어요. 기도비를 한 사람당 5만 원씩 모아서 환경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참여하고 있습니다.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특히 이번 여름에 에어컨 쓰지 않고 지낸 사람은 없을 거예요. 계속 악순환이 되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소비해서 기온이 올라갔는데, 더우니까 에어컨을 더 틀게 됩니다. 올해 여름이 제일 더웠다고 얘기하니 어느 기후학자는 앞으로 올해 여름이 가장 시원한 여름이었다는 얘기를 하게 될 거라고 하기도 했죠.”
“맞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환경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을까?’ 하는 뜻으로 환경 참회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스님께 배운 것이 있어서, 미소원은 처음 단체를 시작할 때부터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종이컵이나 일회용 젓가락을 쓰지 않기로 했어요. 스텐컵과 소독 기계를 마련해서 소독해서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한 달에 한 번씩 절에 문화 답사도 다니는데, 답사를 다닐 때도 일회용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쓰레기도 개인이 봉투를 가져와서 처리하고 있고요. 현수막을 수거해서 장바구니를 만들어서 보급하는 분도 있습니다. 요즘 저희는 이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주 잘하셨어요.”
대화를 마치고 미소원 장유정 이사장님과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도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직접 농사지은 쌀을 선물했습니다.
“저희가 지난주에 수확한 햅쌀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다 함께 법당으로 이동하여 스님이 지난주에 튀르키예-시리아 접경 지역에서 4천 명이 다니는 학교 준공식을 하고 온 모습과 필리핀 민다나오, 캄보디아, 부탄에서 진행되고 있는 JTS 활동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성금이 이렇게 잘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상을 보고 나서 내년에도 성금을 모아 오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스님과 JTS가 하는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네요. 저희들도 더 부지런히 모아서 성금을 보내드려야겠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너무 무리하면 안 돼요. 형편 되는 대로 해야죠. 내가 노력한 걸 누가 알아주는지 이런 걸 너무 따지면 오래 못해요.”
“형편 되는 대로 하겠습니다.”
미소원 식구들이 돌아가고, 스님은 연변 조선족 어르신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내내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후부터 갑자기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연변 조선족 어르신들도 휴식 시간을 보냈습니다. 일주일 동안 여러 곳을 돌아다니느라 피곤했는데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해가 저물고 함께 저녁 식사를 한 후 스님은 어르신들에게 두북 수련원의 방송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에서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법문을 합니다. 온라인 법회로 전환하고 나서부터는 큰 강당이 없어도 수백 명에게 법문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방송실을 둘러본 후 어르신들은 법당으로 이동하여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청했습니다.
스님은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하고 저녁 7시 30분부터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4,7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지금 밖에는 가을비가 촉촉하게 내리고 있습니다. 이 비가 그치면 기온이 좀 떨어진다고 하네요. 그러면 쌀쌀한 가을 날씨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면 감기에 걸리기가 쉬우니 모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시리아는 지난 십여 년간 내전을 계속 치러왔습니다. 특히 북부 지역에는 난민 3백만 명이 몰려 있는데 작년에 지진까지 일어났습니다. 이분들께 우리가 어떤 작은 희망이라도 만들어 드리려고 우선 무너진 학교를 다시 지었습니다. 학교 준공식 영상을 먼저 보고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잘 보셨습니까? 전쟁과 지진 피해가 심한 곳에서도 아이들은 그 고통을 뒤로한 채 구김살 없이 밝게 자라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계속 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다 문맹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씩 정성을 모으면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이 기부해 주신 덕분에 이런 학교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학교 건물을 지어준 것뿐만 아니라 실의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과 즉문즉설을 했습니다. 오늘은 질문 신청자 중 두 명이 갑자기 취소하여 두 명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툼 끝에 어머니가 자살을 하게 되었다며 아버지에 대한 미운 감정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10년 전, 저에게 너무 소중했던 엄마를 자살로 잃었습니다. 부모님이 다투시다가 엄마가 투신하시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처음에는 아빠가 죄책감에 나쁜 선택을 하실까 봐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아빠는 종교 활동도 하시고 여자 친구도 만나며 잘 극복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 살지 못하고 가신 엄마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 자주 듭니다. 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아빠를 생각할 때 엄마의 죽음에 기여도가 있는 사람이라는 증오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증오하는 마음 때문에 괴롭고, 아빠에게 그 마음만으로도 죄송스럽습니다. 부모님의 비극으로 시작된 이 두 가지 감정 속에서 어떻게 하면 평안하게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을지 여쭙고 싶습니다.”
“네. 가슴 아픈 사연이네요. 10년 전이면 몇 살 때예요?”
“27살입니다.”
“27살이면 미성년자가 아니고 성인입니다. 성인이 되면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합니다. 미성년자일 때는 세상에서 일어난 일을 아이가 온전히 책임지기 어렵기 때문에 부모가 그 책임을 대신 져줘야 합니다. 부모가 없으면 다른 보호자가 그 역할을 합니다. 대부분 부모가 보호자 역할을 하고, 부모가 없으면 친척이 보호자가 되며, 친척도 없으면 사회에서 보호자를 지정합니다. 하지만 한국 나이로 20살, 만 나이로 19살이 지나면 성인이 되고, 생물학적으로 성체가 됩니다. 그때부터는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직접 감당해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남을 탓할 수 없는 나이라는 겁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살아가다 보면 다툴 수 있습니다. 질문자도 나이가 들어 부모님의 나이가 되어 보면 알 거예요. 만약 결혼을 했다면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더라도 의견 차이나 감정 차이로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 겁니다. 하지만 갈등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자살하거나, 상대를 죽이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아요. 갈등 없이 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갈등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다만, 극히 드문 경우에만, 즉 100명 중 하나도 안 되는 적은 수의 사람들이 화를 참지 못해 상대를 죽이거나,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자살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발생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싸우다가 분을 참지 못해 누군가를 죽였다면 우선 이 사람은 범죄자죠. 그러나 이 사람의 심리 상태를 조사해 보면 정상적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감정이 북받쳐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리 화가 나도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죠. 그런데 감정이 확 올라올 때 자기가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속된 말로 눈이 뒤집힌 상태가 되면 자기도 모르게 칼로 찌르거나 총으로 쏘거나 망치로 때리다가 살인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경우 세상에서는 보통 나쁜 놈,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고 하지만 제가 살인으로 감옥에 있는 사람과 상담을 해보면 꼭 나쁜 사람이라고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순간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통제를 못해서 자기도 후회하는 일을 저지른 겁니다. 물론 범죄 조직에서 저지르는 건 별개의 문제고요.
반대로 갈등이 생겼을 때 분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도 그 사람의 이전 병력을 조사해 보면 대부분 심리적 불안 요인이나 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성향, 또는 우울증 같은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병력이 전혀 없이 단순히 순간적인 감정을 못 이겨 자살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만약 아버지가 지혜로워서 어머니에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을 파악했으면 어머니가 감정적으로 격해질 때 '여보, 그만하자' 하면서 중단시킬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아무리 서로 친밀하거나 부부, 형제 사이더라도 상대의 감정적 위험성을 인지하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그래서 그냥 자기 감정에 따라 갈등을 일으키다가 어머니는 결국 그 선을 넘었고 투신이라는 극단적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는 마치 자기가 아내를 죽인 것처럼 느꼈을 거예요. 자기 때문에 아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니까 매우 큰 죄책감이 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살한 사람을 따라서 자살하기도 하고, 평생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반면에 질문자의 아버지처럼 처음에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다가 세월이 흐르면 그 감정을 잊고 다시 다른 사람을 사귀면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아버지가 평생 죄책감 때문에 혼자 괴로워하며 사는 것이 좋겠어요, 아니면 처음에는 힘들어했지만 결국 그 감정을 잊고 일상적인 생활로 복귀하는 게 좋겠어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일상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복귀가 잘 안 되는 사람들은 사랑이 깊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약한 부분이 있어서 그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와 갈등이 없었더라면 어머니가 그날 돌아가시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일어난 일을 아버지의 책임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어머니가 이미 그런 심리 상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꼭 그날이 아니더라도, 또 남편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와 갈등이 격해져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이런 사고가 일어날 위험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위험 관리를 해야 했지만 그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죠. 이것을 아버지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정신분석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봤을 때 아버지에게는 억울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과연 이 상황을 상대편 책임으로 돌릴 수 있을까요? 갈등이 없었다면 죽지 않았을 것 아니냐고 얘기하면 어느 정도 책임이 있겠지만 어머니가 정상적인 심리 상태였다면 이런 정도의 갈등으로 자살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화를 내고 난리를 피우고 집을 나가더라도 다시 돌아오는 것이 보통이니까요. 만약 어머니의 정신적인 어려움을 조기에 알아차리고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약을 먹었다면 이런 극단적 선택은 피할 수 있었을 겁니다. 완전히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은 우울증도 조기 발견해서 상담 치료나 약물 치료를 하면 자살을 예방할 수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 약을 먹지 않고 혼자 방에 있다가 어느 순간 감정이 격해져서 확 사로잡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감정이 바깥으로 드러나면 살인 행위가 일어나고 안으로 드러나면 자기를 죽이는 행위가 일어납니다.
자살은 남은 가족에게 정말 큰 상처가 되죠. 특히 자녀인 질문자에게는 매우 큰 상처로 남았을 겁니다. 그런데 아까 지진 난 거 보셨죠?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갑자기 가족을 잃는 경우처럼 질문자도 이 일을 하나의 사고로 봐야 합니다. 아버지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일어난 하나의 사고로 봐야 하는 것이죠. 물론 이런 사고가 안 일어났으면 좋겠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런 일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질문자는 이 사건을 너무 가슴에 담고 있기보다는 하나의 사고로 받아들이고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아버지가 정말 지혜로웠다면 좋았겠지만, 아버지나 어머니가 부처님이나 예수님 같은 성인이 아니잖아요. 아버지, 어머니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중생의 한 사람, 시민의 한 사람일 뿐이에요. 시민의 한 사람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남을 배려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게 일반 시민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사람들에게 너무 높은 기대를 걸고, '그 정도는 배려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게 안 됩니다.
우리의 뇌는 어떤 일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도록 되어 있습니다. 잊는 것은 엄마에 대한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뇌의 기본적인 성질이 그런 거예요. 그 당시에는 가슴 아프고 죽을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잊히기 마련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몸져누웠을 때 아무리 주변에서 위로해도 소용없잖아요. 그래서 어른들이 '세월이 약이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다'하고 말하곤 합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잊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근데 남편이 죽었을 때 아내가 따라 죽는 경우, 이는 사랑이라기보다 일종의 정신 질환에 가깝습니다. 심리학적으로만 분석하면 이것을 '사로잡힘'이라 불러요. 생각이 한쪽에 확 사로잡혀서 다른 것이 보이지 않게 되는 심리적 상태입니다.
아버지가 일상을 회복하고, 여자 친구도 만나고, 앞으로 재혼도 한다면 아버지가 정상적으로 돌아온 거라고 봐야 합니다. 질문자가 찬성하고 좋아할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질문자에게 하나도 나쁜 일은 아닙니다. 아빠가 늘 우울해하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로 아버지마저 자살할 위험이 있다면 질문자는 마음이 조마조마했을 거예요. 아버지가 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받아들이는 게 좋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엄마는 죽었는데 아빠는 다른 여자를 만나서 편안하게 살다니 엄마만 불쌍하다. 아빠는 나쁜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가족이 지진이나 전쟁으로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겠어요?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왔습니다. 우리나라도 동학혁명 때 몇 십만 명이 죽었고, 한국전쟁 때도 100만 명 이상 죽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음과 이별의 과정을 겪고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마음에 상처는 있죠. 그것이 트라우마입니다. 북한에서 식량난으로 가족을 잃고 한국에 온 사람들은 좋은 환경에서 살면서도 트라우마 때문에 늘 괴로워합니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음식이 없어서 죽은 형제나 부모 생각이 자꾸 나는 거예요. 이 흔해 빠진 음식이 없어서 죽은 가족을 생각할수록 분하고 화가 납니다. 이러면 정상 생활이 잘 안 돼요. 트라우마를 치료해야 합니다. 질문자도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약간의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무언가를 보고 생각할 때마다 어머니가 떠오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죠. ‘아버지가 그때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거나 아버지가 행복해 보일 때 '엄마는 죽었는데 아빠 혼자 뭐가 그리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자기를 괴롭히는 행위입니다. 어머니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사셨고, 비록 자살이라 하더라도 자기의 명을 다해서 삶을 마쳤다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런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양쪽의 상황을 모두 놓고, 질문자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해야 합니다. 물론 이런 환경이 없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어떤 환경 속에서도 우리는 살아가야 합니다. 앞서 말한 지진이나 전쟁 상황과 비교했을 때, 그래도 내가 겪은 것이 낫다고 생각해야 해요. 이렇게 자기를 긍정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미 일어난 일은 바꿀 수가 없잖아요. 더 나쁜 상황에 비교해 본다면 이만하기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중요합니다. 만약 어머니가 죽었을 때 아버지마저 죄책감에 자살해 버렸다면 질문자에게는 더 큰 충격이었을 거예요. ‘아버지라도 살아 계셔서 다행이다’ 하고 좋게 받아들이고 이제 질문자 인생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만약 이렇게 관점이 잘 전환되지 않고 계속해서 이 문제가 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면 트라우마 치료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치료를 통해 그런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좋습니다.”
“스님께서 너무 명쾌하고 객관적으로 봐주셔서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트라우마라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스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 트라우마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빠를 원망하면서 저를 갉아먹기보다는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쪽으로 해보겠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해 주신 대로 실천해 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고맙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질문자들과 대화를 나눈 후 스님이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인생을 살아보면 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내가 예기치 못한 일, 원하지 않은 일도 일어납니다. 그것이 세상사입니다. 그건 어떤 하느님의 징벌도 아니고 전생의 죄도 아닙니다. 세상사가 원래 그렇습니다. 여러 가지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수해 피해가 없도록 집을 안전하게 지었지만, 갑자기 홍수가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모래주머니로 둑을 쌓아 최선을 다해 막을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로 막을 수 없다면 집을 포기하고 우선 몸을 피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괴로워할 필요가 없어요. 집을 잃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내가 살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집을 잃을 만큼 위험한 상황에서도 죽지 않고 목숨을 건진 거니까요.
갑자기 강도가 나타나 총이나 칼을 겨누며 돈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돈이 아까워서 그 순간 돈을 움켜쥐고 칼을 맞아야 할까요, 아니면 돈을 내어주고 내 생명을 지켜야 할까요? 내 생명을 지켜야겠죠. 이때 돈을 뺏긴 게 아니라 대신 내 생명을 구한 거예요. ‘어리석은 사람이라면 돈을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겠지만, 나는 지혜롭게 돈을 포기하고 내 생명을 구했다’ 이런 관점을 가지셔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 상황에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주인 된 자세로 내가 결정하는 것을 ‘수처작주’라고 합니다. 이런 주인 된 자세로 자기 삶을 살아야 내 인생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강물에 떠내려가는 나무토막처럼 이 세상에 휩쓸려 살게 됩니다. 여러분들 모두 휩쓸려 다니는 이런 인생에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생방송을 마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한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떠나는 연변 중국 조선족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눈 후 환경 담마 토크 생방송을 하고, 오후에는 청년들을 위해 경주 역사 기행 안내를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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