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튀르키예 시간으로 어제 오후 5시 40분에 이스탄불 공항을 출발하여 밤새 비행기 안에서 쪽잠을 잤습니다. 9시간 40분을 비행한 후 한국 시간으로 오전 9시 2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수하물을 찾고 출구로 나와 함께 동행했던 JTS 대표단과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어요.”
인천공항을 나와 곧바로 서울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오전 11시 50분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여독을 풀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이번 튀르키예-시리아 방문 일정이 무리가 되었는지 스님의 컨디션이 많이 좋지 않았습니다.
오후에는 충분히 휴식을 한 후 4시부터 보건 의료인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의료인 정토회에 소속된 200여 명의 회원들이 화상회의 방에 입장했습니다.
의료인 정토회는 창립 이후 매년 스님과 함께 하는 즉문즉설 법회를 꾸준히 열고 있습니다. 그동안 의료인 정토회가 걸어온 길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의료 봉사 활동을 하고, 안산, 일산, 부산에 있는 JTS 다문화 센터에서 매주 일요일마다 소외 계층을 위한 무료 진료를 진행하고, 각종 정토회 행사 때마다 의료 지원을 해온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의료인 정토회의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앞으로 의료인들이 어떤 역할을 더 해주면 좋을지 부탁 말씀을 했습니다.
“제가 세계 곳곳을 다녀보면 JTS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이 첫째, 교육입니다.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교육 받을 기회를 지원하는 일입니다. 둘째, 긴급 구호입니다. 지진이나 홍수 같은 재난으로 주거가 파괴된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거나 식량이나 옷을 지원하는 일입니다. 셋째, 아픈 사람을 위해 의료 지원을 하는 일입니다.
세계 구호 활동 속에서 보건 의료인들의 역할
JTS에서는 세계 곳곳에서 교육 지원, 긴급 구호, 의료 지원, 이렇게 세 가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중 교육 지원과 긴급 구호는 나름대로 잘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료 지원은 아직 부족한 실정입니다. 의료 지원을 제대로 하려면 한국에 JTS가 운영하는 병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병원에 소속된 의료인들이 현지에 파견되어 병원을 세우든지 의료 지원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현재는 구호 활동을 하는 사람 중에 의료인이 없다 보니 JTS에서 인도에 병원을 세워도 효율적으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겨우 보건소 수준의 역할만 하고 있어요. 의료 지원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손길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의료인 정토회가 앞으로 JTS의 구호 활동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최근에 부탄에서 추진하고 있는 지속 가능한 개발 사업 일곱 가지 중에도 보건의료 분야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JTS는 주로 열악한 시골에 사는 사람들을 지원합니다. 제가 직접 부탄 시골에 가서 보니 노인들이 눈이 안 보이거나 귀가 안 들리거나 이가 없어도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노인들의 백내장 수술이나 보청기, 틀니 지원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노인들이 겪는 신체적 불편을 해소하는 일도 의료인들이 앞장서서 해결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동안 의료인 정토회에서는 필리핀 민다나오에 가서 어려운 사람들을 치료하는 의료활동을 여러 차례 펼쳤습니다. 올해도 다녀왔는데요. 필리핀 민다나오뿐만 아니라 부탄, 인도, 라오스, 미얀마, 스리랑카 등 어디든 의료 인력이 필요한 곳에 여러분들이 조금 더 마음을 내서 활동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남을 돕기 전에 우선 나부터 건강해야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은 남의 건강을 보살피느라 정신적으로 지친 부분이 있을 겁니다. 오늘은 여러분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 대화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의료인들이 더 자주 봉사를 해줄 것을 당부하면서 참석자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두 시간 동안 여덟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근무 시간 외에 찾아오는 환자들을 치료해 주어야 하는지 갈등이 있다며 어떤 관점을 가지면 좋을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근무 시간 외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다 치료해 주어야 할까요?
“저는 현재 보건 진료소에 거주하면서 혼자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근무 시간이 아닌 평일 새벽이나 주말에는 근무할 의무가 없는데요. 그 시간에 찾아오는 주민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을 모르는 척하자니 찝찝하고 다 받아주자니 사생활에 자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근무 시간 외에는 응급 상황이 아니면 모르는 척하고 문을 안 열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토회 봉사는 시간을 내서 하면서 일상에서 개인주의적으로 행동하는 제가 모순적으로 느껴집니다.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근무 시간에만 일을 해도 됩니다. 저도 즉문즉설을 하기로 약속한 시간 안에는 어떤 질문도 다 받아줍니다. 그런데 즉문즉설이 끝나고 가려는데 누가 저를 붙잡고 ‘스님, 저 물을 거 있어요’ 하면 저는 ‘근무시간 끝났습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데도 옆에 와서 ‘스님, 하나 물어봐도 돼요?’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목욕탕에서 벌거벗고 있는데도 옆에 와서 ‘스님, 하나 물어봐도 돼요?’라고 합니다. 그런 질문에도 제가 다 대답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그것처럼 질문자도 근무를 해야 하는 시간에는 일을 해야 하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안 해도 괜찮아요.
예를 들어 근무 시간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라고 합시다. 그 시간에는 아무리 사람이 많이 와도 받아주고, 어떤 어려운 얘기를 해도 가능하면 다 들어줘야 합니다. 질문자의 집이 다른 곳에 있으면 그런 고민을 안 해도 될 거예요. 진료소에서 살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찾아가는 겁니다. 그런데 동네 할머니들이 갑자기 몸이 아프다고 찾아왔을 때 질문자가 별로 할 일이 없으면 치료를 해줄 수도 있잖아요. 저도 즉문즉설 시간이 아니지만 손님이 찾아와서 얘기하다가 고민을 얘기하면 ‘즉문즉설 시간이 아닙니다’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직업이라는 게 그래요. 사람들은 저만 보면 비행기에서든, 휴게소에서든, 심지어 목욕탕에서도 물어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즉문즉설로 소문이 나있다 보니까 그런 거예요. 그것처럼 질문자도 치료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조금만 아파도 찾아가려고 하는 겁니다. 사람들을 나무랄 수는 없는 거예요. 내가 입장을 정리하고 살아야죠. 할머니들에게 이렇게 공지를 하세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근무시간입니다. 죽을 정도로 긴급한 사태라면 밤 12시에도 저를 깨워도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가능한 근무시간에 찾아와 주세요’
여러 번 공지를 하다 보면 근무시간 외에 찾아오는 횟수가 줄어들 거예요. 24시간 일을 해야 하는지, 근무시간을 지켜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공지를 해도 긴급사태가 생기면 문을 열어서 도와줄 수밖에 없습니다. 몇 번 해보면 정리가 될 거예요. 밤늦게 할머니가 문을 두드렸는데 알고 보니 내일 치료해도 될 일을 할머니가 마음이 급해서 온 거였어요. 그럼 일단 치료를 해드리고 다음에는 ‘근무시간에 와주세요’ 하고 부탁하면 됩니다. 그리고 마을에 이렇게 방송을 하세요.
‘동네 주민 여러분, 보건 진료소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시간입니다. 저도 개인 생활이 있으니까 근무시간 외에는 가능하면 찾아오지 마세요. 아주 긴급한 사태 아니면 근무시간을 지켜주세요’
본인이 직접 하거나 마을 이장님에게 부탁하면 됩니다. 또 보건소 앞에 ‘근무시간은 언제부터 언제까지고 근무시간 외에는 일하지 않습니다’ 하고 붙여놓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렇게 자꾸 알려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할머니들이 모르잖아요. 모르니까 오는 건데 말도 안 해주고 왜 오느냐고 하며 안 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알리면서 근무시간 외에 찾아오는 횟수를 줄이면 됩니다.
그렇다고 찾아오는 사람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동네 할머니들에게 얘기를 한다고 해도 잘 안 들을 거예요. 그게 힘들다면 질문자가 돈이 좀 들더라도 방을 얻어서 나가야죠. 질문자가 퇴근하고 집으로 가버리면 할머니들도 못 올 겁니다. 그런데 진료소에 살면서 방세를 절약하려면 그 정도 서비스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인간 세상이 그렇습니다. 저도 즉문즉설이 끝나고 누가 물으면 짜증을 내는 게 아니라 웃으면서 ‘근무시간 끝났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러면 다 알아듣고 ‘죄송합니다’ 하고 갑니다.”
“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얼마 전 사직한 전공의입니다. 12시간 정규, 12시간 당직, 다시 12시간 정규 이렇게 연속 36시간 근무를 합니다. 잠을 못 자면 쉽게 간호사들에게 화를 냅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산부인과에서 일을 했는데 낙태를 할 때 딸만 네 명이였던 산모가 다섯 번째 아기를 낙태하는 과정에서 아들임을 알게 되었는데 산모가 딸이냐고 물었을 때 맞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한 것도 죄가 되는지 궁금합니다.
약국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근처 병원 의사의 부당한 요구에 고통을 받으며 3년째 버티고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갈등을 풀어야 할까요?
내년이면 간호사가 되는데 태움이 너무 무섭습니다. 어떻게 하면 태움을 이기고 오랫동안 간호사를 할 수 있을까요?
간호대학 학생입니다. 무엇이든 잘해야 할 것 같아서 시작을 잘 못하고, 간호 일이 적성에 맞지만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저는 의사입니다. 양약에는 화학 성분이 많은데, 한약과 양약을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할까요? 정신과 약을 좋은 쪽으로만 봐야 할까요?
마지막 질문자도 의사였는데요. 환자가 사망할 때마다 느끼는 슬픔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환자가 사망할 때 느끼는 슬픔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저는 20여 년 간 종합병원에서 근무를 하다가 지금은 요양 병원을 운영한 지 6년이 된 내과 의사입니다. 지금까지 병원에서 일하면서 사망 진단서를 몇 만 장을 썼습니다. 첫 환자가 사망했을 때 보호자 앞에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벌써 30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환자가 사망을 하면 마음이 상당히 힘듭니다. 제가 내과 의사이다 보니까 앞으로도 환자가 계속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보게 될 텐데, 그럴 때마다 느끼는 슬픔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제가 보기에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엉엉 울면서도 벌써 사망 진단서를 몇 만 장 썼잖아요. 그러니 앞으로도 그냥 울면서 쓰면 돼요."
"네." (웃음)
"만약 질문자가 처음 의사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제가 조언할 수 있겠지만, 이미 30년 가까이 해왔잖아요. 또 슬프다고 해서 의사를 그만둔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울면서도 계속 사망 진단서를 써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울면서 쓰면 됩니다. 결혼은 했어요?"
"네, 결혼도 했고, 아이도 둘 있습니다."
"그래요. 울면서 결혼도 했고 울면서 아이도 낳았고 다 해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울면서 그냥 해나가면 됩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만큼 별일 아니라는 뜻입니다. 진찰하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마음이 아프죠. 질문자가 기계도 아니고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겠어요. 마음 아픈 정도가 심해서 의사를 그만 두었다거나 하면 모르겠지만, 울면서도 사망 진단서를 몇 만 장을 써온 사람에게 제가 더 해줄 말이 뭐가 있겠어요? 지금까지 잘해왔고, 지금도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거예요.
울면서도 그만두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는 건 저한테는 ‘지금까지 잘해왔으니 너 잘했다고 한마디 해주세요’ 이런 질문으로 들려요. 그래서 제가 잘했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지금까지 잘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면 별 문제가 없어요."
"사실 2주 전 즈음 한 환자가 사망을 했는데, 몇 년 동안 봐온 환자라서 마음이 많이 힘들었어요."
"아니,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마음이 안 힘들겠어요? 그럴 때도 아무렇지 않고 싶다는 건 욕심이에요. 같이 지내던 반려 동물이 죽어도 그렇게들 슬퍼하는데, 돌보던 환자가 죽었는데 어떻게 마음이 아무렇지 않겠어요.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의사 자격이 없는지도 몰라요. 환자가 돌아가실 때 마음이 안 좋은 건 당연한 겁니다. 그런 감정도 느끼기 싫다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인공지능을 탑재한 인조인간이면 모르겠지만, 같이 있던 사람이 죽었을 때 마음이 아픈 건 당연한 겁니다.
그리고 질문자의 직업상 죽는 사람을 많이 접하는 환경에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스님들도 죽은 사람을 위해서 천도재를 지내다 보니까 세상을 떠난 사람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그런데 죽은 사람을 위해서 천도재를 지내면서 상주들이 운다고 해서 스님도 덩달아 매일 울면 그 일을 어떻게 하겠어요? 가족에게는 그런 일이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니까 슬픔에 빠지곤 하지만, 스님들한테는 매일 같이 있는 일이기 때문에 슬픈 감정에 너무 빠지면 그 일을 하기가 힘듭니다.
질문자처럼 의사인 경우에도 특히 종합병원에 있으면 거의 매일 같이 사람이 죽는 걸 접하게 될 거예요. 종합병원처럼 큰 병원에 있으면 누가 죽어도 죽게 되잖아요. 하루 진찰한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3년 진찰한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그렇게 누군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그럴 때마다 목놓아서 운다면 의사를 하기가 힘듭니다. 사람이 죽는 건 늘 힘든 일이지만 질문자의 직업상 매일 죽는 사람을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이 아파야 병원을 찾아오는데, 아픈 사람이 모두가 다 나을 수는 없잖아요. 그중 낫는 사람도 있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있는 게 당연한 거예요. 특히 질문자처럼 요양 병원에 있으면 나이가 많이 드신 분들이 주로 오니까 죽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요양 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1년 후에 죽을지 3년 후에 죽을지의 문제만 남았지, 대부분 70대와 80대 노인들이기 때문에 질문자보다 대부분 먼저 죽게 될 사람들이에요.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마음이 안 좋은 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감정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죽음을 접해야 하는 환경에서 일을 하면서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매일 같이 울면 그 직업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환자가 돌아가셨을 때 마음이 너무 아픈 건 질문자가 ‘환자가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데!’ 하고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마음이 아무렇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자기가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할 수 있는 일은 환자를 살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살리는 거예요. 그러나 죽지 않게 할 순 없잖아요. 오늘 죽을 수도 있는 걸 내일까지 살리거나, 한 달 안에 죽을 수 있는 걸 석 달을 살게 하는 게 질문자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안 죽게 하는 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을 어떻게 안 죽게 할 수가 있어요? 그저 ‘환자들의 삶을 조금 연장하는 것이 내 일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사실 질문자는 울며 불며 한다고 하지만 잘 살아갈 사람이라서 이런 이야기를 안 해도 되는데, 이왕 물었으니까 제가 더 설명을 하는 거예요. ‘의사는 사람을 안 죽도록 하는 게 아니라 생명을 연장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죽을 사람을 내일까지 살리고, 한 달 후에 죽을 사람을 석 달 후에 죽도록 하고, 1년 안에 죽을 사람을 2년 안에 죽도록 연장하는 게 의사의 일입니다. 질문자는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해도 괜찮아요."
"네, 감사합니다."
보건 의료인으로서 어떤 관점을 갖고 봉사를 해나가면 좋을지 올바른 관점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저녁 6시가 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의료인이라는 직업은 사람들을 치료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좋은 일이지만, 여러분처럼 의료인들이 같이 모이면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양의사도 필요하고, 한의사도 필요하고, 간호사도 필요하고, 간호 조무사도 필요하고, 정신과 의사도 필요하고, 심리 상담사도 필요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의료인들이 힘을 합해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하고 건강을 유지하도록 도와준다면, 인류사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활동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강연 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생방송을 마친 후 곧바로 차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향했습니다. 연이어 정토회 법사님 두 분의 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먼저 보수 법사님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조문을 했습니다. 빈소를 지키는 가족들을 위로한 후 영가를 위해 잠시 천도 기도와 법문을 했습니다.
“살아생전에 미워하고 원망하고 애착하고 집착하던 모든 마음 내려놓고, 관세음보살의 인도에 따라 저 아미타 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세계에 가시어 아미타 부처님을 친견하고, 모든 무명 업식을 떨쳐내고 해탈하옵소서.
오늘 법사는 영가의 무명 업식을 단박에 깨우치기 위하여 몇 가지 질문을 영가에게 하옵나니 영가는 영식을 오롯이 하여 이 법사의 질문에 대답할지어다.
영가시여! 살아 생전에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손으로 만지고, 머리로 생각하며 ‘나다’, ‘내 것이다’, ‘내가 옳다’ 하고 고집했는데,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냄새 맡지도 못하고, 맛보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하고, 생각할 수도 없는 지금에 이르러 영가시여! 영가의 본래면목은 무엇인고?
이 법사의 질문에 막힘이 있고 망설임이 있고 머뭇거림이 있다면, 영가께서는 비록 지난 생으로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보시한 공덕이 태산 같다 하더라도, 그 모든 공덕 또한 꿈속의 일이라 지금 영가가 왕생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저희 대중들이 영가를 위하여 해탈주 세 편을 봉독할지니 영가께서는 이 염불의 공덕으로 부디 왕생 극락하시어 저 극락 세계에서 병들지 않고 근심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사시다가 아미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깨우쳐서 해탈 열반을 증득하소서.”
천도 기도를 정성껏 한 후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조문을 마친 후 가볍게 식사를 하며 상을 당한 법사님을 위로하고 장례식장을 나왔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희광 법사님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조문을 하러 갔습니다. 2시간을 이동하여 양평에 있는 장례식장에 도착했습니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잠깐 기도를 해드리겠습니다.”
향을 꽂고 조문을 한 후 잠시 천도 기도와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천도 기도를 마친 후 가족들을 위로해 주고 다시 장례식장을 나왔습니다.
밤 9시에 양평을 출발하여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3시간 동안 달린 후 밤 12시가 넘어서 두북 수련원에 도착하여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정토담마스쿨 수업을 듣고 있는 외국인 학생들을 위해 온라인 즉문즉설을 하고, 하루 종일 행복시민들과 함께하는 경주 역사 기행을 안내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