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3박 4일간의 튀르키예-시리아 방문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숙소에서 6시 30분에 아침식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을 견학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스탄불 시내를 관통하는 트램을 타고 궐하네(Gulhane) 역에 하차하여 도보로 5분을 걸어 9시에 고고학 박물관에 도착했습니다.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은 아나톨리아에서 코카서스, 메소포타미아, 아라비아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존재했던 1백만 개 이상의 고대 문명 유물이 있는 곳입니다.
이슬람국가인 오스만제국이 제국의 영토 내에 산재한 고대 그리스나 로마, 비잔틴 문명의 유물을 모두 이 박물관으로 모았다고 합니다. 오스만제국은 1453년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이래 20세기 초까지 유럽의 남동부, 서아시아, 그리고 북아프리카 일부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기에, 소장품들만 봐도 오스만제국의 제국주의적 면모를 알 수 있었습니다.
각 전시관에는 기원전 4세기 헬레니즘 시대의 알렉산더 석관(Alexander Sarcophagus)을 위시하여 수많은 그리스·헬레니즘 및 로마 시대의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석관, 장례식 비석 등 각양각색의 아름다움을 지닌 조각상 외에도 트로이, 아나톨리아, 시리아와 관련이 있는 전시물도 많았습니다.
“고대문명은 다 건조지대에서 발달합니다. 그 이유는 고대문명이 발달할 때가 신석기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또 나중에 청동기가 발명이 되어도 청동기는 제기나 무기로까지는 사용을 해도 농기구로는 쓰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활용품은 다 석기입니다. 석기로 풀은 벨 수 있는데, 큰 나무를 자를 수는 없기 때문에 문명의 중심지가 다 초원지대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도 대륙에서도 초원지대인 인더스강 유역이 인도문명의 초기 발달지역이었습니다. 중국의 황하문명도 황하강 유역의 초원지대가 문명의 중심지였어요. 여기도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초원지대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달하게 된 겁니다.
그 후 지금으로부터 한 3500년 전에 인류는 철기를 만들게 됩니다. 철기가 나오게 되면서 인도에서는 갠지스강 유역을 개발하게 되고 중국에서는 양자강 이남을 개발하게 됩니다. 철기 문명이 아주 발달하기 시작한 때가 중국은 춘추전국시대이고, 인도는 아리안 문명의 후기 시대에 강가강 유역의 힌두스탄 평원에서 발달하게 됩니다.”
고대의 석관을 전시한 곳에는 해골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진짜 백골관을 해도 되겠네요. 진짜 해골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요.”
각 전시관을 한 바퀴 둘러본 후 마지막으로 박물관을 세운 연도가 표시된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11시에 박물관을 나왔습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짐을 싸고 한국으로 떠날 채비를 했습니다.
오후 1시 30분부터는 숙소에 방송 장비를 설치하고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튀르키예와 한국의 시차가 6시간이기 때문에 한국은 저녁 7시 30분이 되었습니다.
37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생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께 이곳 튀르키예-시리아 접경 지역에서 매우 뜻깊은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곳은 작년에 지진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는데요. 부서진 학교를 철거하고 새롭게 재건을 하였습니다. 원래 3,500명의 학생들이 다니던 학교였는데, 이번에 새로 지으면서 4,000명이 다닐 수 있는 규모로 1년 만에 완공하였습니다.
그저께 행사에는 시리아 임시 정부의 수반을 비롯하여 튀르키예 정부의 주지사와 관계자 분들까지 아주 많은 분들이 참석해서 준공식과 개교식을 함께 했습니다. 이 지역은 10년 넘게 이어진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고, 건물이 파괴되고, 난민이 발생하는 등 많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지진까지 겹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건물이 무너졌습니다. 이런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자 JTS에서는 학교를 재건하게 되었습니다.
폐허 속에서 학교가 다시 세워졌듯이 어려움에 처한 시리아 국민들과 어린이들에게도 ‘우리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하는 희망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학교의 재건을 기뻐했고, 아이들도 좋아했습니다. 여러분들의 후원 덕분에 이런 일이 가능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후원자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세 명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에 한 명은 자식 두 명을 가진 이혼남과 결혼한 여성분이었는데 본인이 낳은 두 명의 자식과 남편이 키우던 자식 두 명 사이에 갈등 관계를 어떻게 풀면 좋을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전처의 아이들과 내 아이들 사이에서 가정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전처와의 자녀가 둘이 있는 이혼남과 결혼해 살고 있습니다. 남편과 저는 아이 둘을 낳아 모두 여섯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는 전업주부이며, 현모양처가 되어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우며 알콩달콩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어릴 적부터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형식의 결혼에 대해 경험이 없다 보니, 결혼 초부터 불협화음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늘 가슴에 불덩이를 쥐고 있는 것처럼 하루하루가 힘듭니다. 제 기준으로 가족들을 보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남편이 전처와 낳은 아이들에게 저는 새엄마가 됩니다. 그래서 아이들 눈치를 보며 저희 부부는 살뜰하게 지내지 못합니다. 부부간에 눈빛이라도 다정하게 보낼 때 아이들이 보면 마치 바람피우다 걸린 사람처럼 화들짝 놀랍니다. 이렇게 부부간에 자연스러운 대화나 가벼운 스킨쉽 조차 아이들의 눈치를 보며 참습니다. 제가 낳은 아이들에게도 전처의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살갑게 대해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어린아이들과 14년간 밥 한번 같은 식탁에서 먹지 않을 정도로 다정하게 대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디에 같이 가자고 해도 거절했습니다. 막내가 이제 11살인데, 이런 제게 ‘우리 집 엄마 아빠는 왜 이래? 다른 집이랑 너무 다른 것 같다’라며 불평합니다. 자기 눈에 엄마와 아빠 사이가 좋아 보이지 않아 자기도 행복하지 않다고 합니다. 아이는 저희가 사이좋게 지내길 원합니다. 저는 그 말에 너무 가슴이 아프고, 그런 환경을 만들었다는 것에도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그런데 남편은 이런 부분을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늘 눈치 보기 바쁩니다. 우리 부부가 아이들에게 별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않은 걸 생각하면 이혼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힘들다고 이혼해 버리면 아이들에게는 아빠의 자리를 뺏는 일이 되는 것 같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제가 어떤 마음으로 기도해야 제 마음도 편해지고, 어린 셋째와 넷째에게도 상처가 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요?”
“자녀가 있는 남자와 결혼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과 결혼하는 것보다 관계가 더 복잡하다는 것을 미리 알고 선택하지 않으셨겠어요? 그걸 모르고 하셨다면 질문자가 어리석었다고 생각합니다. 남편이 전처와 이혼했더라도 아이들에게는 아직도 엄마이고 아빠입니다. 또, 그들이 이혼했어도 친구처럼 지내며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함께 협력해야 합니다. 물론 남편이 재혼하고도 전처와 사이좋게 지낸다면, 새 부인은 그들을 의심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걸 그렇게 의심하는 시선으로 보면 안 됩니다. 성인과 성인이 맺은 부부관계는 이혼해서 정리되었지만, 그들은 아직 아이들의 엄마이고 아빠이기 때문입니다. 각자 아이들의 부모로서 아이들의 문제를 서로 의논하고, 또 어떤 행사가 있을 때 함께 참석해서 격려해 주어야 아이들이 구김살 없이 자랍니다. 그런데 내 남편이라는 이유로 그걸 못하게 하면 질문자는 남편을 잘못 선택한 겁니다. 아이가 없는 남자를 선택했어야 해요.
자기가 낳은 아이만 소중하고 다른 아이는 별로 소중하지 않다는 생각은 굉장히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질문자가 그렇게 약간 질투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으로 남편을 대하면 남편은 늘 질문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요. ‘내가 아이들을 이렇게 대하면 아내가 또 싫어하지는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어쨌든 남편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 아이들이 나쁜 영향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려고 전처와 상의하는 겁니다. 셋째와 넷째에게는 친엄마가 있지만, 첫째와 둘째는 친엄마가 없어서 남편은 본인이 그 역할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래서 당연히 첫째와 둘째에게 관심을 더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질문자가 전처의 아이들과 자기 아이들을 남편이 똑같이 대해주길 바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구입니다. 질문자가 바라는 대로 남편은 모든 아이를 똑같이 대하는데 질문자는 자기 아이들에게 친모라고 더 가까이하면 전처의 아이들은 상처를 입을 겁니다. 그렇게 하고 싶으시면 남편과 우선 의논하셔야 합니다.
‘여보, 저는 네 아이 모두 똑같이 대할 테니 당신도 가능하면 똑같이 대해 주시는 게 어떻겠어요? 저는 절대로 전처의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서로 합의해서 개선하거나, 아니면 남편이 전처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더 두는 것에 대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질문자의 의견대로 하고 싶으시면 이렇게 남편과 의논해서 개선점을 찾아보셔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아니면 이혼을 선택하는 방법도 있어요. 이혼을 하려면 먼저 아이들의 의견을 들어보아야 합니다.
‘엄마는 아빠가 너희들에게 관심을 덜 두는 것 같아서 불만이다. 이 문제로 엄마와 아빠가 다투게 되는데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니? 너희는 그런 아빠를 이해하고 이대로 사는 게 낫겠니? 아니면 이혼하는 게 낫겠니? 너희들만 괜찮다면 엄마는 아빠를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을게. 그러면 엄마는 아빠와 잘 지낼 수 있어. 그렇지 않으면 이혼을 해서 엄마가 너희들에게 더 집중하며 살 수도 있어. 어떻게 하는 게 좋겠니?’
이렇게 의논하시면 돼요. 이혼하려면 경제적으로 자립할 준비도 하셔야 합니다. 아이들의 의견을 듣는다는 게 그들의 의견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건 아니에요. 남편과도 대화하셔야 합니다. 남편이 개선하겠다면 같이 살 수가 있을 것이고, 이혼하자고 하면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이런 순서로 노력을 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결혼이라는 약속을 했지만, 약속은 해지할 수도 있는 겁니다. 질문자의 입장에서는 질문자의 아이들에게 신경을 덜 쓰는 남편에게 불만을 가질 수 있지만, 다른 입장에서 보면 남편은 전처의 아이들을 끔찍이 아끼며 잘 보호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전처의 아이들은 아빠가 재혼하고도 자기들에게 큰 어려움 없도록 잘 보호해 준다고 느낄 겁니다. 전처도 남편과 서로 뜻이 맞지 않아 헤어지긴 했지만 자기 아이들을 잘 돌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할 겁니다. 제가 보기에 남편은 자기 자식을 잘 챙기는 칭찬받을 만한 사람이지 비난받을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질문자 입장에서 그런 남편이 별로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면 남편과 상의해서 개선해야 합니다. 아니면 질문자가 남편에게 어떤 약속을 해서 남편이 질문자의 눈치를 보는 것을 멈추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합의가 안 되면 이혼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첫째, 이혼해서 질문자 혼자 아이들과 살 수 있는지, 아니면 다른 남자를 만나서 지금보다 더 잘 살 수 있을지 살펴봐야 합니다. 둘째, 좀 부족할 수 있지만 그래도 그런 아빠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나은지 아이들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그런 아빠라도 있는 게 낫다고 하면, 질문자는 더 이상 남편을 문제 삼으면 안 됩니다. 아이들이 괜찮다는데, 질문자가 그걸 문제 삼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질문자는 삶에 대한 자세가 좀 분명하지 않고, 너무 감정에 치우치거나 끌려다니며 사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야기한 관점을 분명하게 갖고 있으면 별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아파트 입주민 대표가 부정하게 수당을 받고 있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의를 제기하자니 마찰이 생길 것 같고, 모른 척 넘어가자니 마음이 불편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직 생활 중에 아동학대로 신고를 당해서 힘든 상황입니다. 정말 억울하고 분하지만 결백하고 무고하기에 잘 견뎌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미래를 헤쳐 나가야 할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오후 2시 30분이 되었습니다. 공항으로 출발해야 할 시간이 되어서 서둘러 방송 장비를 철수하고 바로 숙소를 나왔습니다.
차를 타고 1시간을 이동하여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수하물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한 후 탑승구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 5시 40분에 이스탄불 공항을 이륙했습니다.
비행기가 정상 괘도에 오르자 스님은 곧바로 잠이 들었습니다. 밤새 9시간 40분 동안 비행기 의자에 앉아 쪽잠을 잤습니다.
비행기는 내일 오전 9시 2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합니다. 한국에 도착하면 잠시 여독을 푼 후 오후에는 의료인정토회 회원들을 위해 온라인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