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9.22 북미서부 순회강연(8) 오렌지카운티(Orange County)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북미서부 순회강연 중 마지막 강연이 오렌지카운티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 10시부터 LA 수련원 부지 답사를 하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LA에 머무는 동안 3일째 수련원 부지 답사를 하고 있습니다. 1일째는 북동쪽으로, 2일째는 북서쪽으로, 오늘은 남쪽으로 내려가 보았습니다.

도심을 벗어나 남쪽으로 한 시간가량 차를 타고 달리자 나무가 많고 넓은 호수가 있는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여러 곳을 살펴보고 답사한 후 오후 3시에 다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이 북미서부 순회강연의 마지막 날입니다. 점심식사를 한 후 3일 동안 숙소, 식사, 운전 봉사를 해준 이경택 김경례 부부, 이승화 고본화 부부, 배염 님, 이원심 님 모두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오후 4시 30분에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캘리포니아주 부에나 파크(Buena Park)에 위치한 더블트리 호텔(DoubleTree by Hilton Buena Park)입니다. 매년 스님이 오렌지카운티를 방문할 때마다 이곳에서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먼저 촬영했습니다.

“오렌지카운티! 파이팅!”

강연을 마치자마자 스님은 곧바로 공항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봉사자들과 먼저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다들 수고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저녁 5시부터는 부에나파크(Buena Park)의 부시장님이 스님을 찾아와서 사전 미팅을 했습니다. 조이스 안 부시장 님은 연말에 이변이 없는 한 시장으로 선출이 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스님이 웃으며 인사를 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내년에 왔으면 시장님을 만날 수 있었는데, 올해는 부시장님을 만나고 가네요.”

부시장 님은 스님에게 궁금한 점을 몇 가지 물으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내년에도 다시 방문해 주세요. 이곳 부에나 파크에는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강연을 주로 어떤 주제로 하시나요?”

“주제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어요. 종교와도 아무 관련이 없고요. 어떤 분은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에 신자들을 더 많이 모을 수 있느냐는 질문도 했습니다. 어떤 고민이든 질문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해결해 주니까 온갖 질문들이 나옵니다. (웃음)

주로 부부갈등과 자녀양육에 대한 질문들이 많고, 외국에서는 고향에 두고 온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 정체성 혼란, 이런 질문들도 많이 나오는 편이에요. 각자 인생을 살면서 겪는 고민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사회적인 혼란이 오면, 전쟁 문제, 기후 위기, 정치 갈등에 대한 질문들도 하고요.”

“다음에 오렌지카운티에 오시면 더 많은 시민들을 만날 수 있게 준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30분 동안 환담을 나눈 후 스님의 책을 선물했습니다.

LA에 살고 있는 많은 한국 교민들이 강연장을 찾았습니다. 강연장 곳곳에서 봉사자들이 교민들을 정성껏 맞이했습니다.




스님은 5시 30분부터 책 사인회를 먼저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사인을 받고 스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 인생이 정말 많이 행복해졌습니다.”

책 사인회를 마치고 저녁 6시에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얼마 전 부탄을 방문하고 온 모습을 영상으로 본 후 스님이 무대 위로 걸어 나왔습니다.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40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10개국을 거쳐 오렌지카운티에 도착했는데, 그 여정을 간단하게 소개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한 달 전에 한국을 출발해서 아부다비를 거쳐서 스위스에 갔습니다. 그리고 독일과 튀르키예를 거치고,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접경 지역에 가서 지진 피해 복구 사업을 점검했습니다. 그다음 부탄에 가서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기후 변화가 점점 심해지면 어떤 삶을 살아야 될까요?

최근에 들어와서 폭우가 갑자기 쏟아지는 등 기후 변화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어제는 부산과 전라도 지역에 200년 만에 한 번 올 수 있는 폭우가 내렸습니다. 기상 관측 이래 하루 만에 가장 많은 비가 왔다는 발표가 있었죠. 또 최근에 온 태풍이 일본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보통 태풍이 필리핀을 거쳐서 중국이나 한국, 일본으로 가고, 일 년에 한 번 정도 드물게 베트남으로 가는데 이번에 온 태풍은 베트남과 태국을 거쳐 미얀마까지 가서 엄청난 피해를 주었습니다. 미얀마는 원래 인도양의 뱅골만에서 사이클론이 일어나서 타격을 주는 곳인데 태평양 바람이 인도양까지 건너간 겁니다. 기온 상승으로 인한 해류와 바람의 변화가 지금 막대한 피해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이것은 기후 위기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기후 변화가 조금 더 심해지면 엄청난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측이 현실로 다가온다면 인간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으로 계속 살기는 좀 어려울 거예요. 지금처럼 과소비하고, 음식도 절반만 먹고 버리고, 옷도 적당히 입고 버리고, 집에 신발도 수십 켤레를 두고, 여름에는 에어컨을 틀어 놓은 채 잠바를 입고 지내고, 겨울에는 히터를 틀어놓고 런닝이나 속옷을 입은 채 생활하고, 이런 식의 문명은 이제 더 이상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지구의 80억 인구 가운데 선진국에 살고 있는 12억 인구에 의해서도 기후 위기가 이렇게 초래되는데, 지금 중국과 인도도 이 길을 향해서 달리고 있습니다. 인도의 경제가 빠르게 성장해서 곧 세계 3위 경제권으로 올라간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중국과 인도 각각만 해도 OECD 가입국 인구보다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기후 변화가 3배 가까이 커질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이렇게 됐을 때 인류는 같이 공멸하든지 아니면 소비 수준을 원시적으로 되돌리든지, 둘 중에 하나의 길을 가게 될 거예요. 물론 기후 위기가 안 오면 다행이죠. 그러나 만약에 그런 위기가 온다면 그때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될까요?

그래서 저는 개발이 가장 안 된 지역인 부탄에서, 그중 빈곤율이 가장 높은 젬강에서 지속가능한 개발 모델을 만들고 있습니다. 기본 생활은 개선하되 그 이상은 개발하지 않는 삶의 모델을 한 개의 지역에서 실현해 보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보면 쓸데없는 짓이라고 하겠지만 100년 뒤에도 과연 쓸데없는 짓을 한 것으로 평가될지, 아니면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를 잘했다고 평가될지는 아직 모릅니다. 그런 실험을 부탄에서 지금 하고 있어요.

그리고 태국 방콕을 거쳐서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한국 교민들을 상대로 즉문즉설을 하고, 통역을 통해 현지인들을 상대로 즉문즉설을 했습니다. 그리고 동티모르로 갔습니다. 동티모르는 지금 식수 부족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그래서 식수를 개발하기 위해서 산에 나무를 심거나 산에 물이 모이도록 장치를 하고 있는 운동가를 만나 친환경적인 개발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시애틀로 들어왔습니다. 시애틀과 캐나다 밴쿠버, 샌프란시스코, 라스베이거스, 샌디에이고를 거쳐 이곳 LA에서 영어 통역 강연을 두 번 했습니다. 한 번은 LA의 동쪽에서, 한 번은 LA의 북쪽에서 강연을 한 후 어제까지의 일정을 마쳤습니다. 오늘은 한국 교민을 위해서 즉문즉설을 하는데, 이번 북미 일정에서 한국 교민 강연은 이곳 오렌지카운티밖에 없습니다. 오늘 이 강연을 끝으로 밤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과 먼저 대화를 나눈 후 이어서 현장에서 즉석 질문을 받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두 시간 동안 12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나요?

“죽음은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로 가는 것이기에 이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한번 죽게 되면 현재 세계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두려움을 안고 앞으로 1년, 5년, 10년, 20년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저의 어려움입니다. 그래서 저는 언젠가부터 매일 아침에 죽음의 어려움을 두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두려움을 편안하게 대하기 위해서요. 이러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스님도 갖고 계실 텐데 스님은 생활 속에서 어떻게 지혜롭게 다루고 계신지 진심으로 알고 싶습니다.”

“저는 출가해서 승려가 되고 ‘수행은 살고 죽는 걸 뛰어넘는 세계로 가는 것’이라고 경전을 통해 많이 배웠습니다. 책을 보고 아는 수준에서 저 스스로도 ‘나는 죽음에 대해 큰 두려움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1979년 어느 날 갑자기 끌려가서 엄청난 고문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러다 죽는 게 아닌가?’ 하고 겁이 덜컥 났어요. ‘아무도 모르는 곳에 땅 파서 너를 묻어버리면, 네가 죽었는지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몰라!’ 하며 협박을 당하기도 하고, 전기 고문대에 앉혀놓고 ‘이 스위치만 누르면 넌 죽는 거야!’ 하며 협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물고문을 당하거나 두들겨 맞을 때는 악을 쓰고 버텨야 하니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겨를이 없었어요. 그런데 고문하는 사람도 쉬어야 하니까 휴식 시간이 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고문을 이어가는데, 그때 엄청난 공포심이 일어났습니다. 방금 겪었던 고통이 트라우마가 되어서 ‘다음 고문은 어떻게 견딜 것인가’ 하는 두려움이 생겼어요. 그래도 막상 다시 고문이 시작되면 악을 쓰다가 까무러쳐 버리게 되고, 물을 부어서 깨면 ‘아, 기절했나 보다’ 하고 정신을 차리게 되니까 두려움이 심하게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휴식 시간에 다음 고문에 대해 상상을 할 때 두려움이 일어났어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생사를 뛰어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했구나! 내가 나를 잘 몰랐구나’ 하고 자각을 하게 되었죠.

그 이후에도 여러 과정을 겪어 오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물론 두려움이 하나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죠. 한 번은 제가 위험하다고 가지 말라고 하는 인도의 어느 오지 마을에 답사를 갔는데 갑자기 강도가 나타나서 총을 겨누며 ‘돈 내놔!’ 하고 협박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심지어 입에서 웃음이 났어요. 일단 갖고 있는 걸 다 주자고 생각하고 주머니를 털었는데 짐을 숙소에 두고 나와서 가진 돈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있는 걸 다 주었는데도 강도가 만족을 안 했습니다. 강도 입장에서는 총까지 가져왔는데 별로 소득이 없었던 겁니다. 그때 제 일행 분이 몇백만 원짜리 고급 카메라를 갖고 있어서 강도가 그걸 뺏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저도 카메라는 뺏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보니까 강도가 가지고 있는 총이 수제 총이었어요. 그 나라는 수제 총이 많습니다. 총기 사고가 빈번하니까 총을 소지한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 총은 한 발 쏘면 재장전해서 쏘아야 하는 단발 총입니다. 그래서 한 발만 맞을 각오를 하면 되겠더라고요. 연발이면 죽을 수가 있는데, 한 발 정도면 심장이나 머리만 안 맞으면 사는 데에 별 지장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총을 가진 사람이 근접해 있으면 별로 위협이 안 됩니다. 멀리 떨어져서 총을 겨누어야 엄청난 위협이 되거든요. 그런데 그 강도는 총을 제 머리에 겨누고 근접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계단 위에 서 있었고, 그 강도는 계단 아래에 있었어요. 그러니 총을 쏘는 게 더 빠르겠어요? 제가 발길질을 하는 게 빠르겠어요? 그래서 위기를 모면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제가 스스로를 살펴보니까 ‘죽음에 대해 크게 두렵지 않구나’ 하고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문을 당할 때보다 훨씬 더 개선이 된 것 같았어요.

이성적으로 잘 생각해 보면, 우리가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 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이 일어나긴 합니다. 그러나 자연의 원리를 한번 보세요. 모든 풀이 났다가 죽지 않습니까? 모든 나뭇잎이 돋아났다가 떨어지고, 모든 동물이 태어나서 살다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잖아요. 이것은 순환이지 죽음이 아닙니다. 순환의 한 고리를 보고 태어났다 죽었다고 표현하는 것일 뿐 자연 생태계에는 삶도 없고 죽음도 없습니다. 그냥 순환을 할 뿐이에요. 만약 꽃을 땅에 심어서 자연 그대로 두면, 씨앗이 싹을 틔워 자라고 꽃이 핍니다. 그러면 또다시 씨앗이 떨어지고, 땅속에서 싹이 올라오고 꽃이 핍니다. 이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서 빠른 속도로 돌리면 어떻게 될까요? 다만 순환을 할 뿐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뻐할 일도 아니고, 슬퍼할 일도 아니고,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무언가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첫째, 사물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합니다. 둘째, 오래도록 집착해 온 습관을 못 버리기 때문에 제가 고문을 당했을 때의 얘기처럼 실제로 부딪히면 무의식 세계에서 두려움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더 깊이 자각해 들어가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훨씬 옅어집니다. 더 깊이 자각하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붓다는 깨달음을 얻고 난 뒤에 많은 죽음의 위협이 있었을 때마다 ‘여래는 두려움이 없다’ 이런 말을 했어요. 저도 처음에 불교 공부를 할 때는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점점 나이가 들고 여러 경험을 하면서 조금씩 그 말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죽어서 천국에 간다’,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 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때 그 두려움을 완화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직시해서 두려워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되면, 죽은 뒤의 얘기는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죽은 뒤의 얘기를 한마디도 하신 적이 없어요. 그런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면, 나의 죽음도 두렵고, 죽는 사람을 봐도 두려워집니다.

이 두려움을 완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죽음은 피할 수 없는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있으니 ‘죽어서 좋은 데 간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죽어서 좋은 곳에 간다고 하면 두려움을 조금 완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있는 것보다 죽으면 상황이 더 좋아진다고 하니까 안심이 되잖아요. 헤어질 때는 아쉽지만, 승진해서 다른 곳으로 간다거나, 좋은 나라로 이사를 간다거나, 결혼해서 집을 나간다고 할 때는 모두 좋은 곳에 가는 것이니까 덜 슬프잖아요. 그래서 ‘죽으면 좋은 데 간다’ 하고 위로를 하게 된 겁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이 낸 가장 좋은 아이디어가 ‘죽으면 좋은 데 간다’ 하는 거예요.

그것이 사실인지 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면 면죄부를 파는 것처럼 많은 부작용이 생기고,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의 수단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아무 도움이 안 돼요.

그런데 인도 사람들은 이것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습니다. 죽고 난 뒤에 좋은 데 간다고 하면 아무리 좋은 곳에 가도 다시 만나지는 못하잖아요. 그런데 다시 태어난다고 하면 다시 만날 수가 있으니 엄청나게 좋잖아요. 그래서 나온 것이 ‘윤회’ 또는 ‘환생’입니다. 그래서 인도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많이 슬퍼하지 않습니다. 장례를 오래 치르는 것도 없습니다. 다시 태어난다고 믿었기 때문에 죽음을 헌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헌 옷에 대한 집착을 끊으려면 흔적을 없애버려야 해서 시신을 바로 태워버렸습니다. 그래서 인도에는 관에 시신을 넣는 문화가 없습니다. 숨이 끊어져 죽으면 바로 대나무 몇 개 걸치고 천으로 시신을 덮어서 그걸 몇 사람이 메고 강가에 가서 강물에 한 번 담급니다. 강물에 담그면 죄가 다 녹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후 바로 화장을 해버려요.

물론 부처님처럼 아주 유명한 사람은 유골을 갖고 탑을 쌓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태워서 아무 흔적 없이 강물에 흘려보냅니다. 흔적을 남길수록 집착이 생겨서 다시 태어나는 데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장례 문화는 모두 믿음과 관계가 있습니다. 티베트 사람들은 하늘 위에 태어난다고 믿으니까 시체를 잘라서 산속 바위 위에 올려놓습니다. 그러면 독수리가 먹고 하늘 위로 높이 날아가는데, 그렇게 하면 영혼이 하늘에 빨리 올라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영혼이 머리 정수리로부터 빠져나온다고 믿는 나라에서는 화장을 하든 땅에 묻든 시신을 앉혀 둡니다. 그래야 영혼이 위로 나와서 싹 빠져나갈 수가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바다 아래 용궁이라고 하는 이상세계가 있다고 믿어서 시신에 돌을 달아서 수장을 합니다. 과거 아마존의 와리족은 부모가 죽으면 자식들이 둘러앉아서 그 시신을 먹었습니다. 그들은 ‘나를 낳고 키워준 부모를 어떻게 불로 태울 수 있으며, 어떻게 땅속에 묻어 썩힐 수 있는가? 부모를 내 몸속에 모시겠다’ 이렇게 믿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내가 부모와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제일 효자라고 볼 수 있죠. 이런 것은 전부 믿음에 관계되는 하나의 장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이 장례 방식에 대해 묻자 ‘세상 사람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라’ 하고 말씀하셨어요. 즉, 세상 사람들의 풍속대로 할 것이니 신경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돌아가시자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은 그들의 풍습대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것이 바로 화장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화장을 불교식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불교식 장례 방식이란 것이 없습니다. 부처님이 만약 한국에 태어났으면 어쩌면 매장을 했을 것이고, 티베트에 태어났으면 조장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사람에게는, 만약 그가 기독교인이면 찬송 예배를 하면서 천국에 가도록 축원을 해주면 됩니다. 불교 신자라면 49재를 지내서 극락에 가도록 기도해 주면 됩니다. 두려움이 없다면 아무것도 안 해도 돼요. 집착이 없으니 시신을 태우든지, 땅에 묻든지, 갖다 버리든지, 아무렇게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세상 사람들이 시신을 훼손했다고 비난하니까 가능하면 땅에 묻거나 불에 태우거나 해서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네,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출산을 앞둔 예비 엄마입니다. 아이를 어떤 마음으로 키워야 할까요?

  • 과잉보호로 키운 50세 아들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딸이 있습니다. 자식들과 모두 연락을 끊으니 마음은 편안한데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 이혼을 한 후 8세 딸을 혼자 키우기 힘들어 한국으로 혼자 들어가려고 합니다. 아이를 미국에 두고 떠나려니 마음에 걸립니다.

  • 혼내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엄마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 나이가 들었다고 무시를 당할 때 서글픈 마음이 올라옵니다.

  •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악령을 없애고 싶습니다.

  • 한국으로 돌아가서 부모님께 효도를 하고 싶은데, 남편과 아이를 미국에 두고 가자니 마음에 걸립니다.

  • 남들의 시선과 평가에 예민합니다.

  • 미국에서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하다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다시 사업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두려운 마음이 있는데, 스님은 어떻게 정토회를 시작할 수 있었나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저녁 8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에 대해 답변하면서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며칠 전에 즉문즉설을 하는데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어떤 할머니가 결혼을 두 번 하고, 그 사이에 남자친구도 있었는데, 모두 돌아가시고 지금은 혼자 남았다며 어떻게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결혼하자마자 남편이 죽었고, 남자친구를 사귀었는데 또 죽었고, 재혼을 했는데 또 남편이 먼저 죽은 겁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 대부분 ‘남자 복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바라보지 않습니다. 저는 질문자에게 ‘남자 복이 많네’ 하고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한 사람 하고도 못 살아봤는데, 그분은 세 남자와 살아봤잖아요. 얼마나 남자 복이 많습니까. (웃음)

어떤 삶을 사는 게 내가 더 자유롭고 행복한가

어떤 일은 복이 많은 일이고, 어떤 일은 복이 없는 일이라고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평생 한 사람과 살아야 한다’ 하는 기준을 붙잡고 있으면 복이 없는 사람이 되고, 그 기준을 없애버리면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내가 남편을 죽였거나 버렸으면 내 책임이 있지만, 자기가 알아서 죽었는데 그게 왜 내 책임이에요?

우리의 모든 괴로움은 늘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의해 발생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학교에서 배운 교육이나 윤리, 도덕을 기준으로 여러분들에게 일어나는 일상사를 행복과 불행으로 규정합니다.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고,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고, 사업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고, 시험에 붙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여러분은 ‘행복하다’, ‘불행하다’ 하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그냥 일상일 뿐입니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됐나?’하고 복잡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어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상입니다. 내가 가진 기준을 좀 놓아버리면 별일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스트레스가 없으면 늘 가볍고 편안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기준을 만든 건 다 잘 살려고 만들었어요? 못 살려고 만들었어요?”

“잘 살려고 만들었습니다.”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이유는 더 잘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나를 더 억압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윤리나 도덕을 지키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윤리와 도덕이 만들어진 본래 목적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인데, 오히려 불행을 가져오는 원인이 되고 있다면 우리가 윤리와 도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겁니다. 이혼을 하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혼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으면 이혼을 하면 되고, 같이 사는 게 좋을 것 같으면 같이 살면 됩니다. ‘혼자 살 것인가, 결혼을 할 것인가’ 하는 게 아니라 ‘어떤 삶이 내가 더 자유롭고 행복한가’ 하는 것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을 갖고 여러분 모두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더 질문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공항으로 출발해야 할 시간이 되어 강연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강연을 총괄한 분을 비롯해 봉사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서둘러 강연장을 출발하여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차로 40분을 이동하여 밤 9시에 LA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수하물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한 후 탑승구로 향했습니다.


원고 교정과 업무를 보다가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밤 11시에 LA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13시간 20분을 비행하여 한국 시간으로 새벽 4시 20분에 인천 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미국과 한국의 16시간 시차로 인해 한국에 도착하면 하루를 건너뛰고 24일이 됩니다.

오늘로써 지난 33일 동안의 해외 일정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스위스, 독일, 튀르키예, 시리아, 부탄, 호주, 뉴질랜드, 동티모르, 캐나다, 미국 서부 지역까지 10개국을 이동하며 즉문즉설 강연과 인도주의 지원 활동을 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스님의 하루에 다 소개할 수 없었지만, 세계 곳곳에서 해외 일정이 무사히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정토회 회원과 봉사자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내일부터는 다시 한국에서 스님의 하루가 계속됩니다.

전체댓글 52

0/200

양계홍

스님 감사합니다.

2024-10-10 01:52:12

상록수

스님, 지혜롭고 자비로운 말씀 나누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2024-10-04 14:07:07

정명옥

스님. 늘 수고가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

2024-09-29 06: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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