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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북미 서부 순회강연 중 일곱 번째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 어제는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의 북동쪽에 있는 CMC 대학교에서 열렸다면, 오늘은 로스앤젤레스의 북서쪽에 있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노스리지 캠퍼스(California State University, Northridge, CSUN)에서 열립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5시부터 국제지부 활동가의 날 행사에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정토회 2차 만일결사의 목표인 세계 전법을 위해 신설된 국제특별지부의 구성원들이 모두 모여 유대감과 결속력을 높이고 올바른 수행적인 관점을 갖기 위해 마련된 시간입니다.
전 세계에서 국제특별지부 활동가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삼귀의와 수행문 낭독을 하며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참가자 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뉴욕 모둠, 댈러스 모둠, 시애틀 모둠, 워싱턴 모둠, 유럽 모둠, 토론토 모둠, LA 모둠, 도쿄 모둠, 동남아 모둠, 시드니 모둠 등 각 지역별로 활기차게 구호를 외치며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아자, 아자, 도쿄에서! 가자, 가자, 세계로!”
“움빠, 움빠, 움빠빠! 푸른 바다를 건너 홍콩,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까지 일당백으로!”
새벽부터 밤까지 나라마다 시차는 각기 달랐지만, 세계 전법에 대한 열기만큼은 한 마음이었습니다.
열띤 모둠별 소개 시간이 끝나고 모두 스님에게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세계 전법이라는 개척 사업의 특징과 더불어 적은 인원으로 많은 일을 해나가는 활동가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어떤 일이든 개척 분야의 일을 할 때는 품이 많이 듭니다. 옛말에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이 듭니다. 그래서 ‘국제지부는 지금 개척 사업을 하고 있다.’ 하는 관점을 갖고 활동에 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우리가 열심히 활동한 성과가 어떤 수치로, 사람의 수로, 돈으로, 건물로, 책으로 드러날 수 있다면 좋겠죠. 그러나 수행이란 결과에만 연연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가지고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심리적인 측면에서 보면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 준비하는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토회 초기에는 장소가 없어서 남의 건물을 빌려서 쓰고, 비닐하우스를 쳐놓고 살고, 난지도에 가서 버려진 물건을 주워서 그걸로 집을 짓고, 문경에 움막을 치고 촛불을 켜고 깨달음의 장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과정들이 어떻게 보면 더욱 소중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 정토회가 된 것이지 그런 과정 없이 저절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한 그렇게 어려울 때 함께 일하며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도반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신뢰가 생겨납니다. 성과 위주로만 가게 되면 경쟁으로 흐르게 됩니다. 성과는 없어도 좋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어떤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많은 품을 들여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서 ‘내가 개척한다.’ 하는 관점을 갖고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정토회의 초기 개척은 대부분 법륜 스님이 했습니다. 그러나 국제지부처럼 최근에 새로 시작한 일들은 여러분들이 개척하고 있습니다. 개척을 하는 사람이 바로 주인입니다. 여러분들이 세계 전법을 개척하고 있으니, 여러분들이 바로 정토회의 주인입니다. 2차 만일결사를 시작하고 나서 현재 정토회 전체에서 국제지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5퍼센트도 안 될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야말로 길게 보면 세계 전법의 중심이며, 세계 전법의 물꼬가 이제 여러분으로부터 트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지금 여러분들이 써나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보람을 갖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나가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절에 사는 공동체 대중들도 결혼하지 않고, 직장도 안 가고, 수행자로 산다고 하지만, 늘 일을 우선해서 살면 수행이 뒷전이 되기가 쉽습니다. 숫제 직장 다니면서 수행법회에 참가하고, 꾸준히 천일결사에 참여하는 사람보다 더 수행에 투자하는 시간이 적고, 기본적인 관점도 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듣고 아는 것은 많은데, 일을 우선으로 해서 살다 보니 실제로 행하지는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국제지부도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번역 하나라도 더하자’, ‘콘텐츠 개발 하나라도 더 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수행의 관점을 나도 모르게 놓쳐버리게 됩니다. 단기간으로 보면 일의 성과가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지쳐서 일을 그만두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첫째, 너무 단기적으로 보지 말고 길게 봐야 합니다. 수행을 중심에 두고 지내면 지금 당장은 일의 효율이 떨어지는 것 같지만, 길게 보면 일의 효율이 높아집니다. 둘째, 정진을 통해 수행적 관점을 늘 간직하고 있어야 ‘왜 우리가 이 일을 하느냐?’ 하는 원력이 생기게 됩니다. 일에만 치여서 살다가 수행적 관점을 놓치게 되면 나중에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하고 있나?’ 하면서 힘들다는 생각에만 자꾸 빠지게 됩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수행이다.’ 하는 관점을 놓쳐버리게 되는 거죠. 부부가 서로 안 맞으니까 이혼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듯이, 직장 다니는 것이 힘드니까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듯이, 정토회 활동도 하다가 힘이 들면 그만두면 해결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기본으로 해야 하는 수행은 반드시 지켜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현재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수행을 놓치지 않으면 오래 할 수 있는데, 수행을 놓쳐버리면 오래 하는 것이 힘들어집니다.
아무리 바빠도 좀 미련하다시피 정진을 놓치지 않고 하는 사람은 결국 변화가 옵니다. 그렇지 못한 경우는 자꾸 지치게 됩니다. 그러면 불만을 자꾸 느끼게 되어 그만둔다든지, 부서를 옮긴다든지, 자기의 요구를 해결해서 문제를 풀려고 하는 쪽으로 자꾸 나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왜 우리가 수행하는지, 왜 우리가 이 세상의 많은 어려움을 해결하는 활동에 나서려고 하는지를 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인류 문명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문명을 만들자!’ 이런 구호가 공허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사실은 이에 대한 자기 확신이 있어야 활동을 하면서 힘이 나는데, 그런 것이 점점 없어져 버리고 세상 사람들이 불평불만을 하며 사는 것과 똑같아져 버리는 겁니다.
뚜렷한 목표를 갖고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활동을 해나가야 세상 사람들이 감동하게 되는데, 그런 게 없어지는 거죠. 한 가지를 꾸준히 해나갈 때 약간 흔들려도 중심을 잡고 오래갈 수 있습니다. 수행을 놓치게 되면 수행자로서의 정체성 없이 그냥 기능인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활동을 그만두고 수행만 열심히 해야겠다고 하는 것도 일과 수행의 일치라고 하는 정토회 정신에 어긋납니다. 이런 일을 하는 가운데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이런 바쁜 가운데 정진을 꾸준히 해나가야 합니다. 이런 자세를 가져야 여러분들이 오랫동안 활동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이어서 활동을 하면서 궁금한 점에 관해 묻고 답하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전에 7명이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눈 후 현장에서도 질문을 받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정토 담마 스쿨의 목표, 실무 능력 있는 소수에게 일이 몰리는 문제, 현지인에게 맞는 소통방식, 국제지부와 해외지부의 협력, 사회 실천을 하는 참여 불교 이미지 브랜딩 등 다양한 주제로 스님과 대화를 나눈 후 오전 7시에 국제지부 활동가의 날 행사를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은 아침 식사를 한 후 잠시 휴식을 했습니다.
오전 10시부터는 국제지부 현지어권 회원 대상 온라인 간담회를 했습니다. 한국어가 아닌 현지어를 사용하는 정토회 회원 9명과 정토담마스쿨 수료생 5명이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가운데, 삼귀의와 수행문을 낭독하고, 참가자 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Welcome everyone, Today is our first member’s day together with Venerable Pomnyun Sunim.”
(모두 환영합니다. 오늘은 법륜 스님과 함께하는 첫 번째 멤버스 데이입니다.)
영어로 진행되는 불교대학 과정인 정토 담마 스쿨 1기 졸업생이 올해 2월에 처음으로 배출되었고, 이 중 정토회 회원이 된 사람들이 월 1회 회원의 날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북미 동부, 북미 서부, 유럽 순으로 자기소개를 한 후 스님이 회원들을 위한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오늘은 처음으로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 정토회 회원들이 함께 모여 어떻게 하면 세계인들을 위해서 전법을 할 수 있을지 논의하는 자리입니다. 정토회는 수행공동체입니다. 수행을 기초로 해서 빈곤퇴치, 평화운동, 환경 실천, 지속가능한 개발 등 많은 사회 실천 활동들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수행, 보시, 봉사를 더욱 적극적으로 해나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스님은 수행자의 삶, 봉사로 운영되는 정토회, 다양한 사회 실천 활동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Can Sunim advise how to study various Sutra?
(다양한 경전을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I would like to reintroduce Buddhism to the Punjabi region of India where I was born. How can I do this?
(제가 태어난 인도 펀자비 지역에 불교를 다시 소개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마지막 질문자는 스님이 돌아가신 후 정토회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걱정스러운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I understand that worrying about the future in advance is not a good thing. Nevertheless, I keep feeling concerned about what will happen to Jungto Society in the future without Venerable Pomnyun Sunim. Considering my age and Sunim's age, I will likely be involved with Jungto Society for a long time, even in a time when Sunim is no longer with us. I'm curious about what direction Jungto Society will pursue and how it will operate in such a situation."
(미래를 미리 생각하면서 걱정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염려하게 되는 것은 법륜 스님이 계시지 않은 정토회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제 나이와 스님의 연세를 고려하면 스님이 계시지 않은 상황에서도 저는 정토회에서 장기간 활동을 하게 될 것인데, 그때의 정토회가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운영될 것인지 궁금합니다.)
“한국의 정토회는 법륜 스님의 부재를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만큼 대부분의 활동이 이미 적임자들에게 모두 넘어갔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법륜 스님이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어서 외부적으로는 조금 손실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정토회 내부적으로는 특별한 손실이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정토회에 법륜 스님이 있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여기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법륜 스님이 있으므로 인해서 정토회 회원들이 법륜 스님의 울타리를 벗어나기가 매우 어려운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없어지면 오히려 제가 쳐놓은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활력이 생겨서 정토회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저의 부재를 장점으로 여겨서 새로운 활력을 가질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저의 부재를 단점으로 여겨 정토회의 활동이 위축될 것인가, 이것은 전적으로 정토회의 미래를 이끌어 갈 여러분들에게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세계 전법의 측면에서는 법륜 스님의 부재가 조금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계 전법은 아직 자리가 잡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조금 서둘러 수행해야 합니다. 남은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남은 시간은 길어야 10년 정도일 것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나중에 제가 없을 때 여러분들은 제 울타리를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어서 오히려 활력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그 활동들이 자칫 잘못하면 불교의 근본정신에서 벗어날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붓다의 근본 가르침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활동은 정토회의 외연적 확산에는 분명 좋은 활력이 될 것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여러분들이 붓다의 근본 가르침을 깊이 있게 공부한 후 이를 각자의 직업적 영역과 결부시켜서 확산을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면 질문자가 정신과 의사라면 정신분석학과 심리 상담의 영역에 붓다의 가르침을 적용하여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Thank you. I will do that.”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화를 마친 후 스님은 현지어권 정토회 회원들에게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오늘 총 14명이 참여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적은 숫자이지만 결코 적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붓다의 가르침을 처음 전수받은 사람은 다섯 명이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첫 번째 제자인 흔히 오비구로 불리는 그 다섯 명에 의해서 불교가 시작됐습니다. 여러분들은 8명이니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입니다.
정토회는 한국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한국의 문화적 전통이 일부 정토회 안에 들어 있습니다. 한국의 문화적 전통을 뛰어넘어서 어떻게 세계 각 나라와 민족들에게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앞으로 만들어 가야 할 일입니다. 저는 되도록 한국의 문화적인 전통을 배제하려고 했지만, 제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 한국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토회 곳곳에 한국의 문화적인 특성이 배어 있을 것입니다. 정토회에 배어 있는 한국의 문화적 특성이 세계인들이 붓다의 가르침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장애가 된다고 여긴다면 많은 토론을 통해서 그것을 개선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다만 초기 멤버인 여러분들은 먼저 조금은 수용을 해주시고, 이후 새로운 멤버들에게 확산시켜 나갈 때는 개선을 하는 쪽으로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온라인 형식으로 간소하게 진행이 되기는 했지만, 오늘 이 자리는 아주 중요합니다. 긴 시간이 흐른 후에 역사적으로 오늘을 되돌아본다면 어쩌면 오늘이 세계인을 위한 정토회가 출발한 날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의 건강과 활기찬 활동을 기대합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8명 모두 세계 전법의 원을 가슴속에 새겼습니다. 사홍서원으로 온라인 간담회를 마친 후 11시 30분에 점심을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12시부터 수련원 부지 답사를 떠났습니다. 어제는 LA 도심의 북동쪽 외곽을 답사하였다면, 오늘은 북서쪽 외곽을 답사하기로 했습니다.
답사를 하기 전에 박명귀 님의 댁을 잠시 방문했습니다.
“잘 지내셨어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박명귀 님은 LA 정토회를 처음 만들었을 때 초대 총무를 역임하고, 정토회가 LA 한인 사회에 알려질 수 있게 기반을 마련해 준 분입니다. 그리고 박명귀 님의 남편인 고 이강준 법사님은 1992년에 LA로 스님을 처음 초청하였고 1993년에는 LA에서 처음으로 깨달음의 장과 법회가 열렸습니다.
박명귀 님이 천천히 삼배를 올렸습니다. 스님도 맞절을 했습니다.
“무릎이 아파서 올해가 절을 올리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스님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를 나누었습니다. 평소 스님을 존경해 인사를 드리러 왔다는 박명귀 님의 지인 세 분과 따님도 함께 했습니다.
“저는 내일 오렌지카운티에서 마지막으로 강연하고 곧바로 밤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한 달 만입니다.”
“아이고, 피곤하셔서 어떡해요. 스님은 비즈니스석을 타시지도 않으시잖아요.”
“밤에 비행기를 타면 잠을 잘 수 있으니까 좋죠.”
30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박명귀 님에게 “초창기에 정말 고생이 많으셨다” 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LA 도심의 외곽으로 부지런히 달렸습니다. 현재 LA 정토수련원은 시내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시내에서 가까운 위치에 수련원으로 사용할 만한 부지가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오후 내내 총 네 군데를 답사했습니다. 어제 인터넷으로 수련원으로 쓸만한 곳을 미리 검색해 놓았습니다. 직접 가서 보니 진입로가 구불구불하고 험해서 겨울에 눈이 오면 생활하기 어려운 곳도 있었고, 진입로가 마을과 너무 가까운 곳도 있고, 비포장도로가 놓인 곳도 있었습니다. 각각 장단점이 있었습니다.
다음에 스님이 LA를 방문했을 때 다시 검토해 보기로 하고 오후 5시에 답사를 마쳤습니다.
LA 도심을 향해 차로 한 시간을 이동하여 저녁 6시에 강연장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캘리포니아주 노스리지(Northridge)에 있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노스리지 캠퍼스(California State University, Northridge, CSUN)에 있는 오차드 콘퍼런스 센터(Orchard Conference Center)입니다.
강연장 옆 대기실에서 간단히 식사하고,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미리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강연 후 빨리 이동하여 정토경전대학 입학식 생방송 법문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로스앤젤레스! 파이팅!”
이어서 봉사자들은 각자 맡은 구역으로 흩어져서 참석자들을 정성껏 맞이했습니다.
포스터를 보고 많은 미국인들이 강연장을 찾았습니다.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저녁 7시가 되어 스님의 소개 영상이 끝나고 큰 박수를 받으며 스님이 무대 위로 걸어 나왔습니다. 오늘도 제이슨 님이 통역을 해주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인사말을 하며 즉문즉설의 취지를 소개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은 대략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정신적인 측면과 사회적인 측면입니다. 정신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똑같은 조건 속에서도 사람에 따라 화를 내고, 슬퍼하거나 괴로워하는 등의 반응 정도가 각기 다릅니다. 마음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는 것이죠. 사회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똑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사회적 조건에 처하느냐에 따라 삶의 행복도가 달라집니다. 즉, 사회적 조건이 개인의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와 같이 두 가지 측면이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관점에 따라 주장도 달라집니다. 사회학자들은 주로 사회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해 연구하다 보니, 주로 사회적 개선만을 주장하게 됩니다. 반면, 종교인들의 경우에는 사회가 어떤 모습이든 개인의 역량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음을 강조하여 ‘개인만 잘하면 된다.’ 하는 관점에 더 치우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즉문즉설에서 다룰 대화의 주제는 개인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상관없습니다. 우리를 힘들고 어렵게 만드는 문제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대화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불교에서는 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든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관점을 가집니다. 남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자신의 관점을 분명히 하면서 문제에 대처합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든 자신이 주인이 되는 것이 불교 수행입니다. 자, 그럼 대화를 시작해 볼까요?”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이 먼저 질문을 하고, 이후에는 손을 들고 즉석에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 7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난 뒤 상실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I'm asking about your methods, or how you cope with loss and grief after losing loved ones, when it feels like they took a part of you with them.”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들이 내 일부를 함께 가져간 것처럼 느껴질 때, 어떻게 하면 상실과 슬픔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아끼는 물건을 잃었을 때 어떻습니까? 사랑하는 애완동물을 잃었을 때는 어떻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나의 ‘집착’이 문제입니다. 내가 어떤 물건에 집착하지 않으면 그것이 있든 없든 크게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 물건에 집착하게 되면, 이 물건을 두고 멀리 갔다가도 다시 찾으러 옵니다. 찾을 수 없다면 며칠간 계속 마음에 남게 됩니다. 한낱 물건도 집착하게 되면, 잃어버렸을 때 아쉬운 마음이 커집니다. 물건보다는 자신이 길렀던 애완동물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하고, 애완동물보다는 사람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질문자가 그 사람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했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돌아가 봅시다. 내가 슬퍼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살아 돌아옵니까? 그 사람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슬퍼해도 되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슬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나를 괴롭히는 행위일 뿐입니다.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나만 괴로워질 뿐입니다. 남을 괴롭히는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 바보라고 합니다. 질문자는 지금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습니다. 질문자는 집착을 사랑이라 부르며 자신을 스스로 괴롭히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바보 같은 짓을 하든, 바보 같은 짓을 지금 당장 멈추든, 그것은 질문자의 선택입니다. 만약 혼자 있는 게 외롭고 사람이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을 찾으면 됩니다. 지금은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곧 다른 사람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애완동물을 잃었을 때 며칠 동안은 힘들지만, 꼭 필요하다면 결국 다른 강아지나 고양이로 대체하지 않습니까? 컵이 꼭 필요하다면 그것을 잃었을 때 다른 컵으로 대체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집착을 놓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어떤 부인이 남편을 잃고 통곡합니다. 제가 위로해도 계속 슬퍼합니다. 부인은 ‘남편 없이 저는 어떻게 살아요?’ 하면서 걱정합니다. 그러면 제가 ‘당신은 지금 죽은 남편을 걱정하는 겁니까? 아니면 당신 자신을 걱정하는 겁니까?’ 하고 물어봅니다. ‘남편이 죽고 나 혼자 어떻게 사느냐?’ 이 말은 죽은 남편을 걱정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본인이 앞으로 살아갈 걱정을 하는 것입니까? 사실은 자신이 살 걱정을 하고 있는 겁니다. 죽은 남편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혼자 살아갈 자신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거예요.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이 인간의 본질입니다. 자신이 가진 집착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면서 슬퍼하는 것입니다.
질문자도 사람이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을 찾으면 됩니다. 많이 울고 슬퍼하는 사람일수록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을 빨리 찾게 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남편이라는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남편이 죽어서 슬퍼하지만, 남편이라는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대체물을 찾게 됩니다. 그것을 나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삶입니다. 이런 문제를 자꾸 윤리나 도덕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의 등을 두드리면서 ‘괜찮아. 곧 다른 사람이 나타날 거야’하고 위로해 주면, 대부분 ‘내가 그렇게 가벼운 사람이란 말이에요?’ 하고 항변합니다.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물이 낮아지면 다른 물이 들어와 수평을 이루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것처럼 질문자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만약 시간이 흘러도 슬픔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간절해서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일 수 있습니다. 집착과 사로잡힘이 지나치게 강한 상태일 수 있습니다. 그 정도라면 병원에 가서 상담이나 치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조금만 도움을 받으면 금방 좋아집니다.
남편이 질문자에게 너무 잘해줬나 봐요. 하지만 잘해주는 게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너무 잘해주다가 갑자기 떠나면, 그 슬픔이 더욱 커집니다. 또한 쉽게 다른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워집니다. 왜냐하면 그만한 사람을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마치 죽은 남편이 살아있는 다른 남자보다 훨씬 더 힘이 세서 나에게 접근하는 다른 남자를 다 쫓아내는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를 너무 아껴주는 남자나 여자를 지나치게 좋아할 필요는 없습니다. 언젠가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할 때가 반드시 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길게 살다 보면, 특별히 좋을 것도 없고, 특별히 나쁠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Thank you. I understand.”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고통에 대한 자비심을 크게 느끼면서 동시에 내면의 기쁨도 느끼게 할 수 있는 명상법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소원이 북한에 가서 어머니의 무덤에 인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정치적 위험성을 이유로 반대하시는데, 제가 이 꿈을 계속 간직해도 괜찮을까요?
스님의 사회 실천에서는 민족주의와 인도주의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의 뇌를 온라인 서버에 업로드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이것의 도덕적 문제에 대해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9살 된 아들이 저의 성격을 닮아 점점 더 감정을 조절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아들이 분노를 다룰 수 있게 제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의대 정신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정신 건강도 유지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정신 건강도 도와줄 수 있으려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나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저녁 8시 30분이 되었습니다.
곧바로 무대 뒤에서 책 사인회를 했습니다. 많은 참석자들이 스님에게 사인을 받고 눈을 마주치며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The lecture was really good. I learned a lot about how to be happy.”
(강연이 아주 좋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10분 만에 책 사인회를 마쳤습니다. 스님이 강연장을 나서자, 봉사자들이 입구에 일렬로 서서 스님을 배웅했습니다. 스님은 악수하며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올해는 LA에서 두 번 강연이 열려 이틀 연속 봉사를 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모두 수고했어요. 감사합니다.”
방송 시간이 다가와 빠르게 차에 올라탔습니다. 1시간을 달려 가까스로 방송 직전에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카메라 앞에 자리한 후 밤 10시부터 정토경전대학 입학식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한국 시각으로는 오후 2시입니다.
이번 9월 경전대학에 입학한 1,39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먼저 입학 축하 영상을 함께 보고, 입학생들의 소감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어서 정토회 대표님의 환영사를 듣고, 졸업생들이 전하는 말을 영상으로 본 후 다 함께 스님에게 입학 기념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환한 웃음과 함께 입학을 축하하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여러분의 정토경전대학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환영합니다.
경전대학에서는 불교를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내용도 있고, 경전을 공부하면서 마음공부를 좀 더 깊이 하는 내용도 있고, 또 반야심경을 공부하면서 불교가 논리적으로 얼마나 정교한지에 대해서도 공부하게 됩니다. 그래서 불교대학에 비해 공부하기가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냥 즉문즉설을 들을 때처럼 내 마음이 괴로운 것에서 벗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불교 역사, 교리, 사상도 함께 배우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여러분들은 수행자로서의 자기 정체성과 세계관을 갖게 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불교대학도 힘들었는데, 경전대학은 더 힘들겠구나’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집중해서 공부해야 사람이 크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자꾸 힘들다고 불평불만을 하면 공부에 진척이 없습니다. 마음을 크게 내서 ‘그래, 이번 6개월은 주어지는 대로 흔쾌히 해보자’ 이런 자세를 가져야 일취월장할 수가 있습니다.”
이어서 경전 대학의 교과과정 구성과 특징을 자세히 소개하고, 어떤 관점을 갖고 6개월 동안 공부해야 하는지 마음 자세를 이야기한 후 밤 11시에 법문을 마쳤습니다. 오늘도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북미 서부 순회강연의 마지막 강연이면서 여덟 번째 강연이 오렌지카운티에서 한국 교민들을 위해 열립니다. 스님은 강연을 마친 후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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