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이틀 동안은 북부 베트남의 중심지인 하노이에서 여러 사찰을 방문하여 법담을 나누고 한국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6시 40분에 숙소를 출발해 반푹 사원으로 향했습니다.
베트남 불교승가위원회의 초대를 받아 지난번 호찌민에 이어 이번에는 하노이를 방문하는 일정입니다. 호찌민에는 베트남 불교승가위원회의 제2사무국이 있다면, 하노이에는 제1사무국이 있습니다. 이틀 동안 제1사무국을 중심으로 여러 사찰을 방문해 보기로 했습니다.
차가 막힌다고 해서 일찍 출발했는데 예상보다 40분 일찍 도착했습니다. 사원에 도착하자 재가 신자들이 양쪽으로 서서 고운 목소리로 염불을 해주었습니다.
주지 스님의 안내를 받아 먼저 응접실에서 차를 마시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주지 스님은 법륜 스님의 방문에 대해 깊은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베트남에 다시 오시자마자 저희 사원을 찾아와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스님도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방문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호찌민은 여러 번 방문해서 제2사무국 관계자들과 만나는 기회가 자주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노이에 있는 제1사무국은 이번에 처음 방문했습니다.”
"팃낫뚜 스님이 영상을 많이 보내주셔서 저도 스님의 활동을 많이 봤습니다. 세계적으로 좋은 일들을 참 많이 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중생들을 위해 사회실천도 많이 하시고, 많은 법문을 해주시는 것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도 서울에 가보았는데 인상이 매우 좋았습니다. 한국에서 보고 들은 경험이 베트남 불교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방문해도 괜찮은지 염려가 됩니다. 스님들께서 다 일정이 있으실 텐데요.”
“괜찮습니다. 지금 안거 기간이어서 스님들이 이미 다 모여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대화를 나누기가 참 좋습니다.”
차담을 마치고 베트남 불교 전통 의례에 따라 종과 향을 든 스님의 인도로 법담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가는 길에 법당에서 참배를 하고, 사원을 한 바퀴 둘러서 강당으로 향했습니다. 강당에 도착하자 100여 명의 스님과 신자들이 염불을 시작했습니다.
불교 의식을 마치고 주지 스님이 법륜 스님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반푹 사원이 하고 있는 일을 설명한 후 스님에게 법문을 요청했습니다.
“하노이에는 크고 작은 사찰이 3000여 개가 있습니다. 그중에 스님들이 모여서 안거를 하는 사찰은 20개가 있는데 반푹 사원은 그중에 하나입니다. 스님은 일 년 중에 3개월 간 이곳에 모여서 경전을 읽고 학습하고 수련을 합니다. 오늘 법륜스님께서 정토회가 하는 활동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 주셔서 그 경험과 노하우를 저희들이 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법담을 시작했습니다.
한국 불교와 베트남 불교의 활발한 교류와 협력을 기원하며
“지금 한국과 베트남은 많은 교류와 협력을 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에는 한국 사람이 약 20만 명이나 살고 있고, 한국에는 베트남 사람이 약 30만 명이나 살고 있습니다. 한국에 결혼해서 오신 분이 10만 명, 일하러 오신 분이 10만 명, 유학 오신 분이 10만 명 정도 됩니다. 한국에 와서 살고 있는 외국인 중에 중국계통을 제외하고 두 번째로 많은 수입니다. 그만큼 한국과 베트남은 지금 많은 교류와 협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제나 관광의 협력에 비하면 불교에 대한 교류는 아직 많지 않습니다. 앞으로 한국 불교와 베트남 불교의 교류와 협력이 더 많아졌으면 해서 이렇게 방문했습니다.
제가 작년 3월에 베트남 불교승가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호찌민을 방문했습니다. 몇 개의 사찰을 방문해서 스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불교승가위원회 위원장 스님께 인사도 드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국에 그분들을 모두 초청해서 작년 10월에는 불교승가위원회 위원장님과 부위원장님께서 한국을 방문해 주셨고, 그때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불교 교류를 더 증진하고 양국에 있는 베트남과 한국 국민을 서로 돕기로 약속했습니다. 한국에는 현재 베트남 사찰이 4개 있습니다. 그리고 독립적으로 사찰을 마련하지 못했지만, 한국의 사찰에서 이루어지는 베트남 불자들 모임은 더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 안에 있는 베트남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기로 약속했고, 베트남 불교승가위원회에서는 베트남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올해 3월과 6월 두 번에 걸쳐 다시 호찌민을 방문해서 스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교류를 했습니다. 불교승가위원회에서는 호찌민뿐만 아니라 하노이에도 제1사무국이 있으니, 하노이도 방문에서 함께 대화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하노이에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강연을 하기 위해 여러 번 방문한 적이 있지만, 베트남 사찰을 방문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노이 절 방문은 오늘 이곳이 처음입니다. 앞으로 자주 방문하겠습니다. 또 여러 스님들도 한국으로 초청해서 서로 교류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크게 박수를 치며 서로 간의 교류를 기대했습니다.
불교를 전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과 새로운 시도들
“저는 한국에서 불교 전법을 조금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불교 신자들이 절에 가서 복을 빈다는 생각만 하고, 수행은 스님들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재가 신자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수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정토회 회원이 되면 매일 아침 한 시간씩 수행하고 나서 일상생활을 하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선교 활동을 굉장히 열심히 하는데, 불교는 자기 수행만 열심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부처님의 좋은 법을 많은 사람에게 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법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불교가 절 안에서만 있어서는 안 되고 사회로 나가서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많은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등 아시아의 모든 나라에 가서 지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한국은 분단되어 있습니다. 늘 전쟁의 위험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한과 북한이 평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평화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이념을 초월해서 북한의 어려운 사람들을 지원하는 인도적 지원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큰 문제는 기후 위기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자’ 하는 모토를 내걸고 검소하게 살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무조건 많이 쓰는 것을 잘 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후손들이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 위기가 도래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자원은 우리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 후손들도 대대로 사용해야 하는 자원입니다. 우리가 아껴서 써 줘야 우리 후손들도 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삶을 지향하며 다양한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음식도 많이 만들어서 남기는 것이 아니라 적게 만들어서 조금 부족하게 먹습니다. 그래서 적게 먹는 게 건강에도 좋습니다. 또 지난 봉건시대에는 여성들이 남성들과 비교하면 많은 차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성차별을 해서는 안 되며, 장애인 차별을 해서도 안 된다는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적인 여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이 되어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소수에게만 한정되어서는 안 되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서 많은 사람이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데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은 젊은이들이 종교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청년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의 고뇌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모임에 오는 것을 어렵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온라인으로 연결해서 자기가 있는 곳에서 불법을 공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불교대학 프로그램을 전부 온라인으로 개설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기 집의 방 한 칸을 개인 법당으로 만들어서 일상생활에서 수행 정진을 하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큰 공간을 만들지 않아도 됩니다. 한국에는 요즘 혼자 사는 사람이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집에서 온라인으로 연결해서 명상을 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 집을 수행 처소로 만들자’ 이런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의 여러 가지 기술을 도입해서 부처님의 법을 좀 더 쉽고 널리 전하는 데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교리 중심을 벗어나서 사람들이 살면서 겪는 어려움, 고뇌, 스트레스 이런 것들에 대해 질문을 받고 서로 대화를 하면서 그 어려움을 해결해 주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보다 나이도 많고 활동도 오래 했기 때문에 저의 이런 경험이 여러분들이 전법을 하는 데 필요하다면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하고 전법을 할 때 어려운 점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꺼내놓고 대화를 나누어 봅시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누구든지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다섯 명이 다양한 주제로 질문을 하였고, 스님은 한국 불교와 정토회가 그동안 경험한 것들을 나누어 주면서 어떻게 하면 베트남 불교가 지속적으로 발전해 갈 수 있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앞으로 베트남도 불교 신자가 점점 줄어들 수 있는데,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지금은 문제가 없지만 앞으로 베트남 불교도 한국처럼 승려 수가 줄어들고 불교신자도 줄어들 것입니다. 이를 막으려면 지금부터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제가 얼마 전에 캄보디아 왕립불교대학에서 여학생 기숙사 준공식을 하고 왔는데요. 통역을 한 분이 신부님이었습니다. 신부님이 하는 말이, 현재 세계에서 신부가 되는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가 베트남이라고 합니다. 베트남은 스님이 되는 사람만 많은 게 아니라 신부가 되는 사람도 많다는 겁니다. 이것은 베트남이 발전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한국도 20년 전에는 스님이 되는 사람도 많고, 신부가 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20년 만에 그 수가 엄청나게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베트남에서 지금 스님이 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불교가 잘해서 그런 게 아니라 전체 사회 변화의 한 현상입니다. 왜냐하면 신부가 되는 사람도 제일 많기 때문입니다. 불교가 잘해서 그렇다고 착각하시면 안 됩니다.
지금 베트남처럼 경제가 막 성장하면 절도 크게 짓게 되고, 절에 살고 있는 승려들의 생활도 편안해집니다. 그러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외면하고, 절을 짓는 데에만 자꾸 투자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절이 점점 화려해집니다. 스님들도 사치해지고 부유해집니다. 이것은 일시적으로는 좋은 일인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매우 큰 재앙을 초래하게 됩니다. 스님들이 좋은 차를 타고 부유하게 살면, 대중들이 겉으로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속으로는 저항감을 가지게 됩니다. 특히 젊은이들의 저항감이 큽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스님들에게 뭐든지 제일 좋은 것을 드려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절을 짓는 것보다는 공단이나 학교 앞에 포교를 할 수 있는 포교당을 만들어서 지금부터 전법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경험을 토대로 제가 드리는 제안입니다. 제가 젊은 시절에 이런 내용을 한국 불교계에 여러 번 호소했지만 종단에서는 외면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 한국 불교는 한국 사회 안에서 주도권을 놓쳐 버렸습니다. 종교를 믿는 인구 수만 비교해도 기독교가 훨씬 더 많아졌고, 특히 사회지도층 중에는 기독교가 절대적으로 많습니다. 정치인, 행정관료, 이런 지도층은 대부분이 가톨릭을 믿거나 개신교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한국에 가보니 사찰이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에 있지 않고 대부분 산속에 있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베트남을 여러 번 방문하셔서 베트남 사람들과 스님들을 자주 만나셨는데, 어떤 느낌이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외국에 나간 베트남 사람들이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질문에 답변을 하다 보니 1시간 30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더 질문을 하고 싶어 하는 스님들이 있었지만 통역을 하다 보니 많은 질문을 받지 못했습니다. 법담을 마치고 주지 스님이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한국 불교와 정토회 활동의 경험을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희들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번만 하노이를 방문하시면 안 되고, 앞으로 더 자주 하노이를 방문해 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큰 박수와 함께 법담을 마쳤습니다. 주지 스님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을 증정해 주었습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강당을 나왔습니다.
주지 스님은 스님의 손을 이끌고 조사를 모셔놓은 법당으로 가서 주지 스님의 스승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자리를 옮겨 대화를 더 나누었습니다. 사원에서 직접 키운 과일과 차를 내어주었습니다. 대화를 더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반푹 사원을 나와 하노이 한인회 관계자들과 오찬을 하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식당에 도착하자 장은숙 한인회 회장님을 비롯하여 이산 한인회 잡지 편집장님, 임동섭 민주평통 지회장님, 남한익 하노이 부동산협회 회장님이 함께 자리하여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임동섭 민주평통 지회장님은 의류 사업을 하고 있는데 운동복 2천 벌을 보시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스님은 부탄에 의류를 기부할 수 있겠는지 알아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의류뿐만 아니라 의류 만드는 기술을 JTS에서 지원하고 있는 동남아 국가들에게 전해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특히 베트남 내부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오늘 저녁에 예정된 한국 교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취소가 되고, 온라인으로 진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어려운 가운데 강연을 진행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애써준 한인회 회장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한인회 회장님이 강연을 할 수 있게 애를 많이 써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강연을 못하게 되어서 너무 아쉽습니다.”
“원래 인생이 뜻대로 다 안 되잖아요.”
“가볍게 받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의 몸 상태가 계속 좋지 않아서 인근에 정토회 회원의 집으로 이동하여 저녁 강연을 하기 전까지 잠시 휴식을 했습니다.
오후 5시가 되어 하노이 한인회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인터넷 연결이 잘 되는 곳에서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해야 하는데, 한인회에서 사무실 공간을 빌려 주었습니다.
방송 장비를 세팅한 후 현지 시각으로 5시 30분, 한국 시각으로 7시 30분에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34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한 달간의 동남아 방문 여정 중에 마지막 일정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부탄을 답사하고, 인도 아삼 주에서 홍수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생필품을 나눠주는 활동을 했는데요. 그 영상을 잠깐 보고 대화를 이어나가겠습니다.”
▲ 영상 보기
영상을 함께 본 후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 네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스님이 질문자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있는 존재는 그 어떤 존재든 다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모든 존재는 평등합니다. 나 자신을 자꾸 남과 비교하기 때문에 열등의식이 생기고 우월의식이 생기는 것입니다. 키가 큰 것으로 비교하면 가장 우월한 것이 기린이겠죠. 싸움을 가장 잘하는 것으로 비교한다면 호랑이가 가장 우월할 것이고, 빠른 것으로 비교한다면 타조가 가장 우월하겠죠. 비교하면 이 세상에 모든 존재는 다 우월하기도 하고 열등하기도 합니다. 비교하지 않으면 모든 존재는 우월한 것도 없고, 열등한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내가 가진 조건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나의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나는 지금 돈이 하나도 없는데 100억을 가진 사람이 하는 사업을 보며 ‘나도 100억만 있다면 저런 대규모 사업에 투자할 수 있을 텐데’ 이런 얘기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눈이 안 보이는데 ‘눈만 떠서 볼 수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겠다’ 하는 얘기도 하나 마나 한 얘기입니다. 내가 걷지 못하는데 ‘걸을 수만 있으면 등산을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것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걷지 못하더라도 휠체어를 타고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내가 눈이 안 보이더라도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내 키가 작아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내가 학교를 못 다녔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나이가 많이 들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요.
지금 나이가 칠십이 넘은 사람이 젊은이들처럼 일을 하고 싶어 하면 나이 든 것이 열등감으로 느껴지고 자신을 열등한 존재로 생각하게 됩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경험이 풍부합니다. 그래서 경험이 장점이 되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그럴 때 자기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게 되고 자존감을 느끼게 됩니다.
자꾸 남을 쳐다보고 살지 마세요. 개구리는 개구리에 맞게, 뱀은 뱀에 맞게, 메뚜기는 메뚜기에 맞게, 이렇게 다 자기 존재에 맞게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존재에 대한 귀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다 부처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자신이 소중한 존재인 줄을 알아서 자신을 함부로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남편이 죽었으니 나도 따라 죽겠다든지, 나는 필요 없는 존재라든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정신 질환입니다. 자기를 소중히 여겨서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바로 옆에 하노이 한인회 회의실 공간으로 이동하여 한국 교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원래는 하노이 한인 국제학교에서 많은 교민들이 참석하는 대규모 강연을 준비했는데, 베트남 내부 사정에 의해 강연을 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강연을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소규모 모임은 가능하다고 해서 질문을 신청한 사람만 한인회 회의실에 초대하여 대화를 나누고, 그 모습을 유튜브 생중계로 내보내기로 했습니다.
사전에 참가 신청을 한 770여 명이 유튜브에 접속하고, 60여 명이 한인회 회의실에 자리한 가운데 저녁 7시 30분에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웃으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베트남 하노이 교민 여러분, 여러분 모두 현장에 참가해서 얼굴도 보고 눈도 맞추고 대화를 하려고 했는데, 조금 사정이 있어서 이렇게 영상으로 여러분들을 보게 됐습니다. 현장에는 질문자들을 중심으로 일부 사람들만 참가하고 있습니다.
우선 계획대로 진행이 못 되어서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인생이라는 것은 언제나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죽기도 하고, 재산을 갑자기 잃기도 하는데, 그런 거에 비하면 오늘 강의하려고 하다가 못한 정도는 큰 문제는 아닙니다. 오히려 집에서 유튜브로 강연을 들으니까 더 편하죠? 다리도 뻗고 간식도 먹어가면서 강연을 들어도 되니까요. (웃음)
한국에만 있으면 한국에 대해 불만을 많이 갖게 되는데, 이 세상에 많은 나라들을 돌아다녀 보면 대한민국은 괜찮은 나라예요? 안 괜찮은 나라예요?”
“괜찮은 나라입니다.”
“괜찮은 나라 정도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꿈에 그리는 나라입니다. 부탄의 어린아이들까지도 한국을 알아요. 방글라데시 다카에 있는 빈민촌에서 학교를 운영하는 사람이 이번에 막사이사이상 수상을 했어요. 엊그제 제가 그 학교를 방문했는데, 초등학교 1학년만 되어도 한국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한국 드라마를 봤다는 아이도 있고, BTS와 블랙핑크를 좋아한다는 아이도 있고, 저도 잘 모르는 것을 방글라데시 빈민촌 아이들도 다 알고 있었어요. 동남아에서는 지금 대한민국의 명망이 굉장합니다. 호찌민에 갔더니 노스님도 사진을 찍으면서 '김치'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세계 곳곳을 도우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남한과 북한 간의 갈등을 아직 해소하지 못하고 있고, 대립이 더 강화되어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 속에 살고 있습니다. 또 북녘 동포들이 여러 가지 경제난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남북 간의 갈등이 있더라도 북한 주민들을 돕는 일, 난민들을 돕는 일, 난민들을 한국에 정착시키는 일, 이런 일들을 계속해나갈 수가 있었는데, 현재는 모든 활동이 중단이 된 상태입니다. 중국에서도 국경변 감시가 아주 엄격하고, 또 북한 안에서는 절대 외부 물품 반입을 못 하도록 하기 때문에 현재는 아무런 지원도 못 하고, 또 난민들 지원도 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 가서 도울 때마다 늘 안타깝습니다. 먼 데까지 와서 남의 나라 사람들을 도우면서 정작 가까이 있는 우리 동포를 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일이 늘 우리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어서 현장에 참석한 분들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두 시간 동안 일곱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보람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남을 돕는 일에 매진할수록 부모님이 더욱 가슴 아파하게 된다며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남을 도우며 살수록 부모님의 가슴에 못을 박게 됩니다
“베트남에 온 지 3년 차가 됐는데 아무래도 친구도 없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어떻게 살아야 될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 제 스스로를 돌이켜 보니까 굉장히 배부른 돼지처럼 살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베트남에서 많은 봉사활동을 다니다 보니까 이타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점점 강해지면서, 봉사활동을 취미생활로 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제 인생 전체를 타인을 위해 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회사에 사표도 내었고 다음 주까지 근무합니다. 조그마한 자선 단체를 하나 만들면 엔도르핀 솟으면서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8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다가, 직장을 벗어나서 첫발을 떼려고 하니까 굉장히 무서운 것도 있어서 스스로 배수진을 쳤습니다. 남을 돕기 위해 필요한 최소 금액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주었습니다.
다만 저희 부모님께서는 굉장히 힘들어하시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이제 이해를 좀 하세요. 그런데 아버지는 굉장히 힘드신 것 같습니다. 제가 장남으로서 아직도 싱글인데, 장가도 못 가고 애도 없고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하나 걱정이 되나 봅니다. 눈물도 처음으로 제 앞에서 보이시고 지금은 3개월 정도 연락을 끊으셨습니다. 남을 도우면 도울수록 제가 저희 아버지 가슴에 못을 박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이 너무 괴롭습니다. 제가 어떤 선택을 하면 좋을까요?”
질문자는 아버지가 가슴 아파한다고 하면서 울먹거리며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그냥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세상의 일반적인 삶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그 정도의 마음을 갖고서는 남을 돕는 활동을 오래 지속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17살에 절에 들어왔습니다. 아들이 절에 들어간 것이 부모로서는 더 가슴이 아플까요? 밖에서 혼자 살면서 봉사를 하겠다는 게 더 가슴이 아플까요?
보통 아들이 절에 들어가면 어머니가 절에 찾아와서 ‘너, 나 죽는 꼴 보고 싶냐? 지금 절에서 안 나오면 약을 먹고 죽어버리겠다’ 이렇게 얘기하거나 '부모의 고통도 구제하지 못하는 네가 무슨 일체중생을 구제하느냐?'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이것은 이미 부처님도 겪었던 일이에요. 부처님도 출가를 하겠다고 하니까 부모님이 결사반대를 했습니다. 결국 결혼까지 하고 아기를 낳은 상태에서 출가를 했습니다. 세속적으로 생각하자면 다음 왕을 계승할 사람인데 나라를 버리고 나온 셈이 되었어요. 차라리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아내가 재혼이라도 할 수 있는데 살아서 수행자가 되었기 때문에 아내는 재혼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부처님의 아들 입장에서는 본인을 안 낳았으면 몰라도 낳아놓고 아버지가 집을 나가버린 겁니다. 인간 윤리로 보면 부처님은 불효막심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왜 우리는 부처님을 위대하다고 말할까요?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건 성인인 어머니의 인생이잖아요. 내가 나의 길을 가는 것은 나의 인생입니다. 항상 자식은 부모의 말을 들어야 한다면 자식은 부모의 노예이지 어떻게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까? 임금의 노예든 주인의 노예든 부모의 노예든, 노예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인생을 자기가 결정을 못하면 모두 노예입니다. 질문자는 스스로 무슨 대단한 결심을 한 것 같지만 제가 보기에는 인생의 주인된 자세가 불분명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그 정도 수준이면 그냥 돌아가라고 얘기한 거예요.
질문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훔친다든지, 집안 물건을 없앤다든지, 아버지를 욕먹게 한다든지, 이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부모를 때리는 것도 아니고, 남의 물건을 뺏는 것도 아니고, 성추행하는 것도 아니고, 사기 치는 것도 아니고, 욕설하는 것도 아니고, 술 먹고 행패를 피우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내 인생을 가는 것인데 무슨 문제가 됩니까. 그 길을 누군가 반대하고 내가 그걸 못 따라준다고 해서 '죄를 지었다' 이렇게 생각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만약 어떤 여성이 법륜 스님을 좋아해서 결혼하자고 매달리며 '너는 한 여인도 구제 못 하는 주제에 무슨 일체중생을 구제하느냐?' 이렇게 말하면 제가 결혼을 해줘야 돼요? 질문자는 지금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남을 핑계 대고 있어요.
남을 위해서 봉사하겠다는 생각도 썩 좋은 생각은 아니에요. 남을 위해서 봉사하겠다는 건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한다는 얘기인데, 사람은 희생을 하게 되면 반드시 남이 그 희생을 알아주기를 원하게 됩니다. 내가 한 일을 아무도 안 알아주면 나중에 인생이 허무해지고 ‘내가 미친 짓을 했나’ 이렇게 후회하기가 쉬워요.
내가 돈이 100만 원 있는데 이 100만 원을 갖고 음식집에 가서 맛있는 거 먹고, 술집에 가서 좋은 술 마시고, 친구들하고 어울려서 놀았을 때 얻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렇게 내가 원하는 것을 충족시킬 때 얻는 만족감을 ‘즐거움’이라고 표현합니다. 그것보다는 배고픈 사람 100명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것이 나한테 더욱 보람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내가 비싼 옷 한 벌 사 입는 것보다는 옷 없는 사람 100명에게 옷을 사주는 게 나한테 더욱 보람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내가 뭔가 도움이 돼서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것을 ‘보람’이라고 표현합니다. 인간의 행복에는 이렇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욕망 충족에 따른 즐거움은 그때뿐입니다.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고, 허전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람이라는 감정은 시간이 흘러도 오래 유지됩니다. 욕망을 채워서 만족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보람 있는 일을 하며 살 것인가? 이것은 내 선택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후자의 길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또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들에게 구애받지 않아야 그 길을 오래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남을 위해서 그 길을 가면 나중에 반드시 배신감이나 후회가 따릅니다. 그래서 위험하다는 거예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첫째, 내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그것이 바로 나를 위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셔야 나중에 괴로움이 생기지 않습니다. 금강경에서는 이걸 ‘무주상보시’라고 표현했습니다. 옆에 누가 목이 마른다면 물 한 그릇 떠주면서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하면 내가 나중에 괴롭지 않게 됩니다. 사람들은 보통 남을 도울 때 반드시 뭔가를 기대합니다. 돈까지 바라지는 않지만, 칭찬이나 뭔가 알아주길 바랍니다. 그런 대가가 따라오지 않으면 반드시 배신감을 느끼거나 후회를 하게 됩니다. 그러니 남을 돕는 길을 가려면 남을 위해서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이런 삶이 더 보람 있다’ 이런 관점을 갖고 가셔야 합니다.
저는 주로 저가 항공으로 이동하고 간소한 숙소를 잡다 보니 사람들은 저를 보고 훌륭하다거나 아니면 좀 인색하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가난한 곳에 가서 구호 활동을 하다 보면 그런 평가에 별로 구애받지 않게 됩니다. 그곳에서는 10달러만으로도 아이들을 지원할 수 있고, 100달러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요. 비행기를 한 번 더 경유해서 가는 저가 항공권을 구매하면 직항보다 30만 원을 더 절약할 수 있습니다. 일찍 도착해서 쉬나 중간에 공항에서 쉬나 마찬가지 아니에요? 그렇게 절약하면 가난한 아이들 몇 명을 더 도와줄 수 있는데 그걸 왜 안 합니까.
숙소를 잡는 것도 그렇습니다. 100달러짜리 숙소나 10달러짜리 숙소나 그날 저녁에는 좀 차이가 느껴지겠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일 년쯤 지나서 돌아보면 그때 얼마나 좋은 숙소에 묵었는지가 중요할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식사도 오늘 저녁에 불고기를 먹을지 라면을 먹을지가 지금은 차이가 있지만 1년 뒤에 돌아보면 오늘 무얼 먹었는지 기억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런 경험을 몇 번 해보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잖아요. 제가 생활을 검소하게 해서 조금만 절약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고 그들의 삶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서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을 돕는 것이 저 스스로 더 좋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이 없으면 자꾸 자기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어떤 종교인들은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고 말하기도 하고, 나무 밑에서 주무신 부처님을 예로 들며 사람들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이 좋은 집에 살거나 재물을 많이 가진 것이 알려지면 사람들은 그들을 비난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분들을 불쌍하게 봅니다. 자기모순에 빠져있으니 스스로 얼마나 괴롭겠어요? 또 다른 사람들에게 숨길 것이 있으니 늘 눈치 보며 살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비싸고 좋은 옷 사 입는 걸 좋아하시죠? 그런데 그런 옷을 입고 있으면 다리가 아플 때 거리에서 아무 곳에 앉을 수 있나요? 옷이 상할까 봐 그렇게 못합니다. 그래서 옷은 적당한 걸 입는 게 좋습니다. 대중교통을 타거나 적당한 차를 타고 다니면 배고플 때 어디든 들려서 뭔가 사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고급 차를 타고 다니면 배고플 때 아무 곳에 주차하고 길거리 음식을 사 먹기가 어렵습니다. 품위를 지켜야 하니 그렇게 못합니다. 이처럼 비싼 옷을 입고, 비싼 차를 타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그게 오히려 자기 삶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속박받고 살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고,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이 점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야 봉사하면서도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할 가능성이 큽니다. 질문자는 아버지가 가슴 아파한다고 하면서 울먹거렸는데, 그런 정도로는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평생 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냥 돌아가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린 겁니다. 남을 돕고 사시겠다면 적어도 ‘그런 삶이 내게 좋으므로 그렇게 산다’ 하는 관점을 분명히 가지셔야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 ‘바라나시’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바라나시에서 제일 큰 부잣집에 야사라는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재벌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집의 외아들인 야사는 부처님을 뵙고 출가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없어진 아들을 찾다가 결국 자기 아들이 출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걱정이 된 야사의 아버지는 아들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 많은 젊은이가 출가해도 너는 안 된다. 너처럼 부잣집에서 호화롭게 자란 이가 어떻게 독충과 야수들이 들끓는 들판에서 살 수 있겠니? 너의 어머니도 눈물로 호소하고 있단다. 집으로 빨리 돌아가자’
그러자 야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버지 제 얼굴을 보십시오. 제가 집에서 쾌락을 즐길 때보다 지금이 더 편안해 보이지 않습니까?’
그제야 야사의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을 보며 전보다 훨씬 맑고 밝아졌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야사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어요.
‘제가 왜 이 좋은 곳을 두고 다시 그 괴로운 곳으로 돌아가야 합니까?’
야사의 아버지는 아들의 옷이나 잠자리, 음식 등을 걱정했고, 야사는 행복을 얘기한 거죠. 야사의 아버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야사의 아버지는 결국 야사의 권유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출가하지는 않았지만 평생 재가 수행자로 살았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석가족이 살던 카필라바스투는 하나의 작은 왕국이었습니다. 석가족이 지배하던 왕국입니다. 부처님의 아버지는 그곳의 왕이었고 부처님은 다음 왕이 될 태자였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출가하자 아버지 정반왕은 늘 근심 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깨달음을 얻고 위대한 스승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또, 고향에 돌아와서 법을 설하고 많은 사람이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왕궁의 하인도 깨달음을 얻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깨달았지만, 부처님의 아버지인 정반왕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의아해했습니다. 카필라바스투에서 제일 존경받는 이는 정반왕이었고, 그런 왕이라면 부처님의 말씀 한마디에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깨달음을 얻었음에도 정반왕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제자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정반왕은 왜 법문을 듣고도 깨닫지 못합니까?’
그랬더니 부처님은 이렇게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정반왕에게는 아들만 있지 부처는 없다’
경전에 기록된 정반왕의 모습을 보면 늘 아들을 걱정하는 이야기뿐입니다. 정반왕은 부처님이 무얼 먹었는지, 무슨 옷을 입었는지, 어디에서 주무시는지, 이런 걱정뿐이었습니다. 이처럼 정반왕에게 부처님은 아들로만 보였을 뿐입니다. 부처님의 법문에는 한 번도 귀를 기울인 적이 없습니다. 이런 정반왕이 깨달음을 어떻게 얻을 수 있었겠어요?
부모는 아이들이 어릴 때 좋은 보호처가 됩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부모는 대부분 그들의 미래를 막는 큰 걸림돌이 됩니다. 추운 겨울에는 장작 10개를 넣고 불을 때는 게 사랑이라면, 더운 여름에는 불을 때지 않는 게 사랑입니다. 더운 여름에 장작 10개를 땐다면 너무 더워 견디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과잉보호를 해서 자녀들을 괴롭힙니다. 자식이 어릴 때는 따뜻하게 보살펴 주어야 하고, 자식이 좀 자라서 사춘기가 되면 가만히 지켜봐 주어야 합니다.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경험이 쌓이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연애도 해보고 후회도 하면서 직접 넘어져 봐야 합니다. 그래야 성인이 될 때 자립심이 생깁니다. 이런 기회를 부모가 막으면 아이들은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게 됩니다. 요즘 어떤 부모는 자식을 위해 결혼도 시켜주고, 집도 구해주고, 직장도 구해줍니다. 손주를 낳으면 그 아이까지 돌봐주죠. 평생 죽을 때까지 그렇게 키운 과보를 받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질문자의 부모님은 질문자를 어린아이처럼 보는 것 같습니다. 자식이 걱정스러우신 거죠. 평소 질문자가 집에서 하는 행동이나 직장생활 등 모든 면에서 자식을 아주 떳떳하고 어른스럽다고 느꼈다면 그렇게 반응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미덥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부모님 댁에 갔을 때 청소하고, 위로도 해드리고, 여러 가지 보살펴드리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이제 자기가 알아서 살겠구나’ 하면서 좀 안심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가 지금까지 보여드린 모습은 아직 미덥지 않기 때문에 자꾸 그런 말씀을 하시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를 탓할 필요도 없고, 그런 말에 속박될 필요도 없습니다. ‘부모님은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이렇게 받아들이고 자기 삶을 살면 됩니다. 부모님이 그렇게 말하신다고 자꾸 ‘내가 불효를 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든다면 그건 질문자가 아직 성인이 안 되었다는 걸 반증한다고 봐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베트남에 10년을 거주했지만 지금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지 소정의 성과가 없어서 허무한 마음이 듭니다.
어머니가 요양원에 가서 마음이 아픕니다. 요양원에 혼자 계시는 어머니를 어떻게 위로하면 좋을까요?
요즘 사람 사이의 소통이 줄어들고 점점 삭막해지는 것 같은데, 이 속에서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까요?
때때로 찾아오는 인생의 허무함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까요?
자녀가 아직 저학년인데도 불구하고 왜 태어나는지, 왜 죽는지, 삶의 목적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어떻게 대답해줘야 할까요?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낸 지 20개월이 되었습니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극복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10시가 되었습니다. 강연을 마무리하며 스님은 방금 전에 베트남 공산당 총서기장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오늘 즉문즉설 시작하기 전에 이곳 베트남의 최고 지도자인 총서기장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여러분 모두 이곳 베트남에 살고 있으니까 잠시 고인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하겠습니다. 묵념.”
조용히 묵념을 한 후 강연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강연을 준비해 준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후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스님은 교민들과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하고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오늘도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베트남 불교승가위원회의 제1사무국이 있는 꽌스 사원을 방문하여 스님들과 법담을 나누고, 오후에는 떠이띠엔 사원을 방문하여 안거 하는 스님들과 법담을 나눈 후, 저녁에는 하노이 공항으로 이동하여 밤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향해 출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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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CTUS
남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일이 본인에게 즐거움이 되어 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