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2.14 한국 도착, 정토경전대학 특강
“사회 부정의를 보면 화가 납니다,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죠?”

안녕하세요. 오늘은 인도 일정을 모두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스님은 비행기 안에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어젯밤 10시 40분에 델리를 출발한 비행기는 오늘 아침 9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밤새 비행기 안에서 앉은 채로 하룻밤을 잤습니다.

스님은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서울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스님과 함께 인도성지순례 스태프를 맡았던 실무자 40여 명도 함께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드디어 인도성지순례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8시부터는 정토경전대학 특강을 시작했습니다. 2주 후에 졸업을 하게 되는 학생들을 위해 오늘은 ‘정토회와 만일결사’를 주제로 스님이 직접 생방송 특강을 했습니다. 학생들이 화상회의 방에 모두 입장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예불문 강의는 잘 들으셨습니까?”

“네.”

인도 성지순례가 진행되는 동안 정토경전대학 학생들은 예불문에 대해 공부를 했습니다. 스님은 왜 예불문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한 후, 이번에 인도성지순례를 다녀온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 영상 보기

이어서 정토회가 매년 가는 인도성지순례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소개해 주었습니다.

“크고 유명한 국내 사찰을 방문하는 것도 성지순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저는 그것을 사찰 순례 또는 하나의 문화 순례라고 봅니다. 인도에는 아잔타(Ajanta)나 날란다(Nalanda) 같은 수많은 불교 유적이 있습니다. 중국에도 수많은 불교 유적이 있죠. 그런 유적을 제가 안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여행사가 해도 됩니다. 우리가 하는 순례는 그런 문화 탐방이 아니라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태어나시고, 출가하시고, 수행하시고, 성도 하시고, 교화하신 발자취를 따라가며 ‘이곳에서 그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왜 그런 말씀을 하시고 그런 실천을 하셨을까?’ 이런 것을 새겨보고자 순례를 하는 거예요. 그 발자취 하나하나를 따라가는 여정이기에 호텔에서 자고 좋은 밥을 먹는 게 아니라 순례자 숙소에서 자고 밥을 직접 해먹고 걸어 다닙니다. 일반적인 여행에 비해서는 좀 고생스럽다고 말할 수 있죠. 단체 관광여행이라기보다는 개인 배낭여행에 더 가깝습니다. 이처럼 몸만 여럿이 같이 갈 뿐이지 개인 배낭여행 같은 순례를 우리가 다녀왔습니다.

부처님은 이곳에서 왜 그런 실천을 하셨을까?

경전에 보면 500 아라한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우리가 예불을 할 때도 500 아라한 얘기가 나오잖아요. 그래서 우리도 500명이 순례를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칠엽굴(七葉窟, Saptaparni Cave)에도 500명의 아라한처럼 앉아보는 식으로 진행해 보았습니다. 500명도 많은 수예요. 그런데 이번에는 정토회 30년 만일결사를 마치면서 금강경에 나오는 묘사처럼 1250명이 순례를 한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금강경에 보면 사위성(舍衛城, Sravasti)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부처님이 1250인 대중과 더불어 계시다가, 식사 때가 되어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사위성에 들어가서 걸식을 마치고, 본래 자리로 돌아오셔서 공양을 하시고, 발우를 씻어 놓고 옷을 벗어 놓고 자리에 앉으시자 수보리(須菩提, Subhuti)가 일어나서 질문을 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바로 그런 모습을 우리가 한번 재현해 보기도 했습니다.

또 죽림정사(竹林精舎, Venuvana-vihara)는 우루벨라가섭, 나디가섭, 가야가섭과 이들이 거느렸던 1000명의 제자, 그리고 사리푸트라(Sariputra)와 목갈라나(Moggallana)와 이들의 제자 250명이 귀의한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 1250명도 이들처럼 죽림정사에 앉아서 예불도 하고 법회도 해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는 왜 그렇게 많이 가서 순례가 차분하게 진행되지 않고 번잡해지도록 했냐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처럼 부처님 당시 제자들의 모습을 이번에 한번 재연해 보았습니다.”

이어서 정토회의 지향과 활동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경전대학 학생들이 졸업 이후 어떤 진로를 가지면 좋을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정토회에서 배우고 실천하고 있는 붓다 담마는 단순히 2600년 전 과거에 이런 성자가 인생의 길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했다는 내용을 다루는 게 아닙니다.

‘앞으로 우리 인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

이런 미래지향적인 지침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한 곳이 정토회입니다. 지구 환경 위기와 기후 위기가 도래하는 지금 우리 인류는 어떤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지금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 밖의 세계 여러 곳에서도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평화에 대해 어떤 관점과 실천 의지를 가져야 할까요? 물질적인 생활은 상당히 풍요로워졌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기본적인 생존조차 어려운 기아와 질병의 문제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 인종을 초월해서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되는 절대 빈곤 퇴치에 우리가 함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 여자라고 차별받거나, 피부가 검다고 차별받거나, 종교가 다르다고 차별받거나, 성애가 다르다고 차별받거나, 장애인이라고 차별받거나, 계급이 다르다고 차별받는 등 인간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경전대학 졸업 이후에 나아가야 할 길

정토회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가 어떻게 생겼든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이런 내용은 모두 사회 정의에 관계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개인은 행복하고, 사회는 평화롭고, 자연은 아름답게 보존될 수 있는 길을 가고자 합니다. 이런 일에 동의하고 후원이라도 하고 싶다면 누구나 정토회 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조금 적극적으로 나도 한번 어떤 역할을 맡아서 해보고 싶다고 하면 책임 봉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 이 좋은 법을 널리 전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해보겠다고 하면 전법 활동가의 길도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선택지가 있으니 여러분이 자발적으로 선택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경전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매일 정진하는 천일결사에 꼭 참여해서 개인 수행을 계속 이어 나가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마음공부뿐만 아니라 사회 실천이 중요한 이유

정토회는 환경 실천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토행자가 되면 집에서부터 전기도 아끼고, 물도 아끼고, 생활도 좀 검소하게 하고, 쓰레기가 가급적 덜 나오도록 생활해야 하는 환경 지침이 주어집니다. 환경에 대해서 걱정하고 뭔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자기부터 실천하는 사람은 부족하기 때문에 지금 환경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거예요.

또 정토회는 세계 곳곳에서 절대 빈곤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일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불가촉천민, 소수민족, 동남아 여성들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으며, 재난이 일어났을 때 긴급 구호활동도 많이 합니다. 그리고 평화와 인권을 지키고 증진하기 위한 활동도 합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과 현재 미얀마의 인권 침해를 개선하기 위한 활동 등 눈에 보이는 곳은 물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토회는 사회적 실천 활동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마음공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사회적 정의를 위한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마음공부를 한다고 하다가 자칫 잘못하면 세상의 부정의를 외면하거나 방관하는 잘못된 길을 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수행을 배우다 보면 ‘모든 게 내 탓이다’ 하는 말을 자주 접합니다. 이렇게 수행 차원에서 자신을 돌아보도록 가리키는 말이 마치 세상의 부정의를 용인하는 것처럼 오해받을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토회는 사회 정의를 위한 실천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그렇다고 화를 내거나 거리에 뛰쳐나가 돌멩이를 던지고 시위를 하지는 않습니다. 정토회는 수행자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서로 생각이 다르고 믿음이 다르고 입장이 다른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차이를 이해하면서도 최소한도로 개선해야 할 것은 적극적으로 개선을 해나간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졸업 후 진로에 대해 소개를 한 후 자유롭게 즉석에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예불문에 대한 질문부터 정토회 활동에 대한 것까지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그중 한 명은 수행을 해서 마음이 편안해졌지만 사회 부정의를 보면 아직도 화가 난다며 마음 다스리는 법을 질문했습니다.

사회 부정의를 보면 화가 납니다,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죠?

“저는 불법을 공부하며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부드러워져서 웬만한 일에는 화도 내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간혹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최근에 검사 출신 정치인의 아들이 퇴직금 명목으로 50억 원을 받은 게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예전에는 800원짜리 음료수를 훔쳐 마신 버스 기사가 유죄 판결을 받아 해고되는 일이 있었는데, 그 판결을 내린 판사가 지금 대법관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일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수행한 게 도루묵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일도 좀 멀리서 보듯 자연스럽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법이라는 것은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가운데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 각자 자기 책임을 다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어겼을 때는 자기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게 법이에요. 그런데 이 법을 만들 때 개인의 사적인 영향을 완전히 배제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옛날에 왕이 법을 만들 때를 생각해 보세요. 처음에는 따로 법이랄 게 없이 왕이 그냥 본인 기분대로 다스렸어요. 그러다가 ‘왕이라도 법을 만들면 따라야 한다고 해서 중국에서 법가(法家)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법을 만들 때도 그 법을 만드는 사람에게 유리하도록 만들게 마련이에요. 그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어떤 규칙을 만들 때는 항상 그 규칙을 만드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만들게 되니까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법을 만든 사람들한테 유리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국회의원들인데, 국회의원들이 주로 어떤 사람들이에요? 우리 사회에서 아주 가난하고 못 사는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잘 사는 사람들이다 보니 자신들의 살아온 습관을 기준으로 해서 법을 만드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서민들이 볼 때는 너무 기득권의 입장에서 법을 만드는 거 아니냐는 비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하나 생각해 봐야 할 점은 법이 로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가 뒷돈을 대주거나 표를 몰아주면서 이러저러한 걸 해달라고 하면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거절하기가 매우 어려워요. 정치인이 제일 필요로 하는 건 두 가지거든요. 하나가 돈이고, 하나가 표입니다. 이건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세계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미국 의회를 방문해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을 이야기해 보면 대부분이 건성으로 듣고 넘어갑니다. 왜 그럴까요?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는 문제를 해결한다고 표가 되는 것도 아니고 돈이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인정에 기대어 호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간혹 도움을 주는 정치인이 있다 해도 그 개인이 감동을 받아 참여하는 것이지, 보편적으로는 이런 방식으로 정치인들이 설득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실질적인 움직임을 끌어내려면 반드시 우리 교민 출신이든 누구든 미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이 설득에 나서서 편지를 쓰든지 뭔가 행동을 보여야 해요. 그래서 이게 표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아니면 교민들을 통해 후원금을 모아서 전달해야 합니다. 돈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정치인들이 조금 움직이지, 그 외에는 거의 안 움직입니다. 우리가 찾아가서 호소해도 뭔가 될 것 같다는 우리의 기분에 그칠 때가 많아요. 지난 30년 동안 제가 미국을 방문해서 했던 활동을 돌아보면, 결과적으로 그 말에 크게 감동해서 동조해 준 사람은 극히 드물고 대다수는 별로 도움이 안 됐어요. 우리가 표와 돈을 지원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제가 시민권 가진 교민들에게 ‘제가 한국에서 100만 명을 모아서 집회를 하는 것보다도 교민 여러분이 1000명 모여 편지를 쓰고 후원금을 보내는 게 더 도움이 됩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미국을 움직이려면 이런 방법이 필요합니다.

또 법이나 규칙을 집행할 때도 누군가의 부탁에 따라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고 저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든 미국이든 마찬가지예요. 판사의 해석이 다를 수 있습니다. 명백하게 법을 어긴 사례를 두고 안 어겼다고 하면 물론 문제이지만, 어느 쪽인지 약간 애매한 경우에는 판사의 주관에 따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럴 때는 아무래도 판사나 검사와 잘 아는 사람이 유리할 수밖에 없어요. 경찰 조서도 그렇고, 검사의 기소문도 그렇고, 처음에 어떻게 기록을 해버리느냐가 재판 결과를 크게 좌우하게 됩니다. 그 기록이 모두 판사의 해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서민이 검사를 어떻게 알고 판사를 어떻게 알겠어요? 다들 학교 동기나 돈 있는 사람 같은 인맥을 통해서 부탁하는 거예요. 꼭 나쁜 걸 덮어 가리는 사례만이 아니라, 본인이나 본인이 아는 사람이 관계된 일이 있으면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든지 해서 좀 봐달라고 부탁하는 게 인간 세상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법의 해석과 판단도 항상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100% 정의롭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해요. 그러나 정의로움이 구현되는 정도를 비교하면 조선시대보다는 확실히 낫습니다. 한국전쟁 전후보다는 낫습니다. 군사정권 시대보다는 그래도 낫습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런 때보다는 그래도 낫다는 거예요. 이 말은 지금 이대로 그냥 내버려 두자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노력을 해야 이걸 조금 더 개선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러나 100% 개선은 불가능합니다. 조선시대에 정의가 실현된 정도가 10%밖에 안 됐다면 한국전쟁 전후로는 20%, 군사정권 때는 30%, 민주화된 이후는 50%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지금도 60% 정도밖에 안 될 겁니다.

이처럼 100% 개선은 불가능한데 질문자는 자꾸 100%를 보려 하니까 마음이 괴로워지는 거예요. 지금도 한번 보세요. 미국 같은 나라에도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이런 말이 있을 정도예요. 엄청나게 돈이 많은 사람들은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거나 온갖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을 섭외하잖아요. 그러면 판결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검사며 판사가 죄다 그 사람 후배라면 판결이 어떻게 영향을 안 받겠어요?

그런데 빵을 하나 훔쳐 먹는 행위는 그 행위 자체가 죄라고 법에 정해져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아무도 변호마저 안 해준다면 판사가 법에 따라 그 죄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죄가 된다고 법에 명시되어 있는데 판사가 자기 마음대로 ‘에이, 이 정도는 봐줍시다’라고 한다면 그 판사가 오히려 문제죠. 판사는 가능한 법대로 집행을 해야 하니까요.

법이 문제라면 그건 국회에서 고쳐야 할 일이지, 판사가 법을 고치는 건 아니에요. 판사가 판결을 할 때 개인의 이익에 좀 영향을 받았다면 그건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백히 법에 저촉이 된 행위이고 법에 처벌이 정해져 있으면 판결도 거기에 따라야 해요. 질문자는 행위에 비해 처벌이 과도하게 느껴지는 경우를 예로 들었지만, 반대 경우도 있습니다. 어린아이를 학대하고 성폭행했다 하더라도 법에 처벌이 징역 5년으로 정해져 있으면 판사가 5년 이상을 선고할 수 없어요. 아무리 국민들이 ‘저놈 죽여라!’ 이렇게 아우성쳐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런 경우가 빈발한다면 우리는 법을 바꿔야 해요. 그래서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라는 게 있는 거예요. 죄형법정주의는 어떤 행위를 범죄로 처벌하려면 그 기준과 한계를 미리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법을 어기면 죄를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800원짜리 물건을 훔쳐도 훔쳤다는 게 명백하면 벌을 받아야 해요. 반면에 수십억 원이 아니라 수백억 원을 훔쳐도 훔쳤다는 증거가 불분명하면 죄를 줄 수가 없습니다.

미국 수사드라마 같은 걸 보면 피의자를 체포할 때 ‘당신에게 불리한 증언은 안 해도 됩니다’ 이런 말을 하죠? 이처럼 사람에게는 자기변명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거기에다 또 좋은 변호사를 사고 온갖 논리와 인맥을 동원해서 어떻게든 재판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몰아가니까 우리가 볼 때는 ‘와, 저건 말도 안 된다’라고 할 만한 일이 자꾸 생기는 거예요.

물론 개선을 해야 해요. ‘세상이 원래 이러니 그냥 살아야 한다’ 하는 뜻이 아닙니다. 개선을 해야 하는데, 딱 눈에 띄도록 한꺼번에 개선이 이루어지기는 어렵다는 점도 알아야 해요. 불합리함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우리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법부가 가능하면 독립돼 있으면 좋지만, 우리나라 사법부는 어쨌든 정치권력의 영향을 받습니다. 어느 당이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서 지금 판결이 바뀌고 있잖아요. 세월호 사건을 비롯해서 지난 정권에서 1심 유죄 판결이 났거나 고발되었던 사건들이 지금 정권이 바뀌고 나서 다 무죄 판결을 받고 있죠. 반대로, 군사정권 때 사형을 언도받았던 사람들에 대해 민주화 이후 재조사를 통해 무죄 판결이 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법이라는 건 시대에 따라 또 평가가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지금의 사례와 과거의 사례가 모두 같다거나 객관적인 옳고 그름이 아예 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런 가운데에서 조금씩 개선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길게 보고 꾸준히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그러니 어쩔 수 없다. 포기하고 받아들여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100% 정의가 실현될 것이다’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정의를 100% 실현하기는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100%를 향해서 꾸준히 나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문제의식을 갖고 비판하면서 나아가야 해요. 이건 정말 불합리하다고 느낀다면 화내고 있기만 할 게 아니라 인터넷에 글을 올리든 1인 시위를 하든 무엇이라도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렇게 해서 계속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다 마치고 나서 스님은 경전대학 졸업생들이 모두 2차 만일결사에도 입재하여 꾸준히 수행을 해나갈 것을 당부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사회활동 기구들의 정기 이사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오전에는 평화재단 정기이사회를 하고, 오후에는 JTS, 에코붓다, 좋은벗들 정기 이사회를 연달아한 후, 저녁에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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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3-02-28 10:25:35

해인월신승희

고맙습니다

2023-02-23 07:33:45

도수

스님의 좋은 법문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2023-02-20 13: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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