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2.9. 인도성지순례 12일째, 회향식, 세계전법 발원
“왜 사서 고생하는 성지순례를 했을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상카시아 담마센터 부지에서 제32차 인도성지순례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5시 40분에 상카시아 탑으로 향했습니다. 어제 밤늦게 상카시아에 도착한 B팀 순례단이 오늘 새벽에 상카시아 탑을 참배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상카시아 탑이 어렴풋이 보였습니다. 촛불을 켜고 예불을 드릴 준비를 마친 다음 스님이 이곳에 상카시아 탑이 생긴 연유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핸드폰 불빛을 모두 끄세요. 그래야 앞에 상카시아 탑이 잘 보이죠.”

오직 달빛만 비치는 가운데 고요한 마음으로 스님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새벽의 운치를 물씬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8대 성지 중에 마지막 성지인 이곳 상카시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설명을 듣는 동안 상카시아 탑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다 함께 탑을 향해 예불을 하고, 법사님의 집전으로 천도재를 지낸 후 담마센터 부지로 향했습니다.

오늘 성지순례 대장정의 마무리는 정토회가 상카시아 석가족을 위해 담마센터를 지으려고 마련한 부지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지평선 위로 붉은 태양이 떠오를 무렵 상카시아 곳곳의 학교와 외국절에서 하룻밤을 잔 A팀과 B팀 순례단이 모두 담마센터 부지로 집결했습니다.

아침 식사는 석가족 봉사자들이 밤새 요리를 해서 준비해 주었습니다. 차량별로 질서 있게 줄을 서서 배식을 한 후 맛있게 식사를 했습니다.






부지 안쪽으로 더 걸어가자 알록달록 예쁜 천으로 무대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무대 앞으로 순례객들이 앉을 수 있도록 자리도 깔려 있었습니다.

상카시아 법회 및 즉문즉설

식사를 마치고 8시 30분에 상카시아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10대 성지를 모두 순례한 1250명의 수행자들이 스님에게 삼배의 예로 법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왜 우리가 온갖 고생을 하며 힘들게 순례를 했는지 그 취지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먼 길을 돌고 돌아 이곳에 왔습니다. 우리는 왜 돈을 들이고, 시간을 들여 이곳까지 왔을까요? 그 이유는 자유와 행복을 찾기 위함입니다.

왜 사서 고생하는 성지순례를 왔을까요?

만약 높은 지위를 가져야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부처님께서는 왕위를 버리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많은 부를 쌓아야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부처님께서는 왕궁을 버리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만약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손자를 키워야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부처님은 가족을 떠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좋은 집을 갖는다고 해서, 좋은 옷을 입는다고 해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부처님께서는 걸식도 하지 않으셨을 것이고, 분소의도 걸치지 않으셨을 것이고, 나무 밑이나 동굴이나 초막에서 살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경전은 부처님께서 진리에 대해 하신 말씀이고, 계율은 부처님의 구체적 실천행입니다. 경전과 계율을 배우면서 ‘부처님께서 왜 이런 삶을 사셨을까?’를 고민해봐야 합니다. 우리가 어렵게 이 먼 길을 온 이유는 현지에 와서 ‘부처님은 어떻게 자유롭고 행복해지셨을까’를 확인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언제 기록되었는지도 모르는 허황된 이야기보다는 부처님의 삶의 체취가 남아 있는 이곳을 하나씩 순례하면서 그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해요.

혹자는 ‘부처님께서 그렇게 사셨다는 게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부처님께서 살아가신 모습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하고 질문할지도 모릅니다. 얼핏 보기에는 부처님의 삶과 우리의 삶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 같죠. 그런데 부처님의 삶과 가르침을 살펴보면 지금 내가 안고 있는 고뇌, 내 이웃의 고뇌, 그리고 환경 문제, 전쟁 문제 등 세상의 고뇌, 사람들이 굶어 죽고 병들어 가는 문제 등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삶과 가르침이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개인적, 사회적 문제를 풀어내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예요. 우리는 이곳에서 부처님께서 원래 가르친 내용은 무엇인지, 왜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모습으로 살아가셨는지를 보고 되새기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인도에 성지순례를 오는 것은 마치 부처님이 왕궁을 나가서 사문유관을 하는 것에 견줄 수 있습니다. 인도에 오더라도 델리에만 왔다가 돌아가면 왕궁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태자궁에 있다가 대신들의 집에 간 정도라고 볼 수 있어요. 한국에서 캘커타 빈곤층이 사는 동네에 가보면 부처님께서 왕궁을 나와서 경험한 사문유관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30여 년 전에 인도에 와서 캘커타에 도착했을 때 사문유관이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사는 동안에는 사문유관은 그저 경전에 있는 이야기였지 실제로 경험을 할 수는 없었어요. 인도에 와서 값싼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면서 길거리로 나와서 본 모습은 솔직히 충격이었습니다. 그 순간 ‘부처님께서 왕궁 밖을 나갔을 때의 느낌이 이렇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어쩌면 부처님은 더 심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나이가 마흔 가까이 다 되어서도 충격을 받았는데, 열너댓 살 소년에게는 그런 모습이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요?

여러분 모두가 출가한 1,250명의 비구같이 되기를 바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부처님 당시 승단 안에는 제사장 브라만 출신들도 있었고, 부자들도 있었고, 왕자 출신도 있었고, 똥군 니다이와 이발사 우팔리와 같이 천민 출신도 있었습니다. 세상의 온갖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모두 출가해서 한 자리에 모인 대중은 똑같이 먹고, 똑같이 입고, 똑같이 생활을 했습니다. 집이 부자라고 해서 더 좋은 것을 먹지도 않았고, 더 좋은 옷을 입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 똑같이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번에 우리는 순례하면서 나름 똑같이 생활하기 위해서 잠은 침낭에서 자고, 도시락을 싸서 먹고, 다들 제대로 씻지도 못했죠. 이렇게 똑같이 생활하는 수행자의 모습을 한번 흉내 내어 본 것입니다. 모든 조건을 평등하게 해서 생활해 본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가운데서도 사람마다 좋고 나쁨이 다 달라요. 순례하는 동안 우리는 매일 허겁지겁 다녀야 했죠. 사람이 많다 보니 뒤쪽 꽁무니에 붙어서 따라오는 사람은 동서남북도 모르고 다니기도 했죠. 또 어디 도착하면 절을 하라고 하는데 그게 어디인지도 모르고 절하는 경우가 많았을 거예요. (웃음)

그나마 보드가야처럼 대탑이라도 있으면 신심이라도 나는데, 매일 똑같아 보이는 벽돌더미 앞에 뭐가 뭔지 구분도 안 되는데 절하라고 하니까 그냥 했던 거예요.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보면 우리 모습이 아주 재밌었어요. (웃음)

어쨌든 오늘 여기까지 다들 잘 오셨는데, 중간에 입이 튀어나온 사람들도 많이 봤어요. 그래도 혼자서 이런 여행을 하면 불평불만을 많이 하게 되는데, 다른 사람들 보면 또 다들 웃으면서 하니까 속으로 끙끙 앓는 사람들도 많았을 거예요. 중간에 아팠던 사람들도 어쩌면 속으로 끙끙 앓다가 결국 병이 난 걸지도 몰라요. (웃음)

불평불만을 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다면

그렇지만 우리가 순례를 시작할 때 말했듯이 지나 놓고 보면 다 똑같아요. 이렇게 자든, 저렇게 자든, 출발하는 것도 똑같고, 집에 오는 것도 똑같고, 집에 와서 돌아보면 어떻게 지내든 다 똑같습니다. 잘 먹었다고 해도 며칠 전에 잘 먹은 건 뭘 먹었는지 제대로 기억이 안 날 때가 많고, 어디 가서 오래 기다려도 다 마치고 나면 똑같으니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차가 밀려도 괜찮고, 어디 조금 늦게 도착해도 괜찮아요. 또, 순례에 참여해서 같이 하면 좋지만 조금 늦게 와서 같이 못하면 어때요, 순례를 안 하고도 지금까지 잘 살았잖아요. 그러니 할 수 있으면 하고, 못 하면 차에서 대신 설명을 듣고, 그렇게 상황에 따라 하는 거예요.

이렇게 마음을 먹어도 막상 현실에서 생각과 다르거나 계획과 달라지면 마음이 그렇게 안 되죠. 막상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못하면 찜찜하고, 양치를 못해도 찜찜하고, 화장실을 제때 못 가면 큰 일이죠. 버스에서 소변은 마려운데 차는 설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 땀은 나고 죽을 지경이죠. (웃음) 저도 수도 없이 경험했어요. 어떤 때는 설사가 나오려고 하는데 그렇다고 차를 세우려고 하면 미안하고, 그러다가 삐죽삐죽 나오면서 가는 거예요.

이런 건 그 순간에는 고통이지만 지나 놓고 보면 별 일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즐거움과 쾌락도 그 순간에는 즐겁고 좋지만 지나고 보면 그것 또한 별 거 아니에요. 그러니 여러분도 이제 한국에 가셔서 우선 먹고 입고 자는 문제로는 조금 덜 껄떡거리고, 덜 불평하면서 살면 어떨까 싶어요. 여기서 먹고 입고 자면서 사는 게 좋은 사람은 한국 가지 말고 여기서 계속 활동하면서 지내셔도 됩니다.

그래도 한국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돌아가는 건 좋은데 ‘앞으로 먹고, 입고, 자는 것으로 불평은 하지 않는다’ 이것 하나만 지켜도 이번 순례를 통한 소득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이건 돈 주고도 살 수가 없는 배움입니다. 또, 저와 이렇게 많은 대중하고 같이 하니까 불만 없이 이렇게 고생을 시켜주지, 다른 사람이 이렇게 고생을 시키면 무슨 사단이 나도 날 거예요. (웃음)

이번에 순례를 하면서 ‘처음 하루 이틀은 힘들었지만 지나면서는 별 거 아니구나’ 이렇게 알게 된 사람도 있고, ‘하루 이틀은 참겠는데 보름이 되니까 너무 힘들다’ 이렇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렇게 자기 마음의 변화를 잘 살펴보면서, 어쨌든 한국에 돌아가면 이제는 우리가 자기 생활에 있어서 불평불만을 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나도 부족하지만 내 생활을 조금이라도 아껴서 보시를 하는 게 좋아요. 많이는 못 나눠주더라도 한 지구 속에, 한 중생으로 같이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조금은 나누면서 사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먹고살만한 사람들은 먹고사는 문제로는 죽을 때까지 노력해도 자유와 행복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은 마음공부를 해서 우선 자기 자신부터 행복해지고, 자기가 가진 것 중에서 조금이라도 주변과 나눠 가지면 지구상에 있는 절대빈곤층 사람들의 생활이 조금은 개선될 수 있습니다.

또, 보시한다고 억지로 힘들여서 하라는 게 아니라 이번에 여러분이 순례한 것처럼 지내면 그게 크게 보시하는 거예요. 먹는 것 조금 아껴서 보시하고, 입는 것 조금 아껴서 보시하고, 자는 것 조금 아껴서 보시하고, 차 타는 것 조금 아껴서 보시하면 따로 돈을 안 내도 보시를 많이 한 게 됩니다. 누가 속된 말로 개고생 한다고 하던데, 여러분 모두 이번에 개고생 하면서 보시를 많이 한 거예요. (웃음)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먹고, 입고, 자는 것으로는 불평불만하지 않고, 먹고, 입고, 자는 걸 조금 아껴서 보시를 해보세요. 이것만 분명히 하면 돈 들여서 인도성지순례를 한 가치가 있고, 보름이라는 시간을 낼만한 가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거 하나만 분명히 해도 여러분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 충분한 가치가 있을 거예요.

정토회는 우리 하나하나가 꼭 부처님처럼 살지는 못하더라도 최대한 부처님의 삶에 근접하게 살아보자는 원(願)이 있습니다. 그렇게 나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할 수 있는 이 길을 가보자는 뜻으로 지난 30년 동안 만일결사를 진행해 왔습니다. 이번에 회향하면서 우리가 지난 30년 동안 살아온 모습도 살펴보고, 우리의 활동도 다시 점검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성지순례를 하면서 지금처럼 여러분들이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자면서 고생한 흔적이 바로 수자타아카데미로 남아 있는 겁니다. 수자타아카데미는 어디서 따로 돈을 받아서 지은 게 아니라, 전부 성지순례객들이 고생해 가며 조금씩 아낀 돈으로 지은 거예요. 그리고 이제는 수자타아카데미도 어느 정도 모양을 갖추었습니다.

상카시아 담마센터를 짓고자 하는 이유

앞으로 모은 보시금은 석가족이 살고 있는 이곳에 불사를 하기 위함입니다. 이곳에는 석가족이 약 200만 명 정도가 사는데, 그중 약 10%에 해당하는 20만 명이 불자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석가족 중에 봉사를 하러 온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밥을 먹이고 학교에서 공부를 시켜주니까 고마운 마음에 와서 봉사를 하지만, 여기 석가족 사람들은 힌두 문화 속에서 자기들이 불교를 지킨다는 생각으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힌두 문화 속에서 불자로 살아간다는 건 외로운 섬에서 살아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여기 사는 사람들은 불교를 카스트 개념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불자를 보면 자기와 같은 카스트 사람이라고 받아들이고, 형제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여러분이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는 삶의 흔적은 이곳 석가족의 불사로 남게 될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이 만약 10년, 20년 후에 다시 인도성지순례를 오면 오늘날의 수자타아카데미와는 또 다른 감동을 느끼게 될 겁니다.

석가족을 위한 불사를 너무 종교적인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저희는 불교라는 종교에 집착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이 법을 공부해서 사람들의 마음이 행복했으면 하고, 또 현재 석가족 사람들은 담마로서의 법보다는 힌두 문화 속에서 불교라는 자기 정체성을 지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에게 불자로서 좋은 모델을 제시하는 게 중요해요. 이 사람들이 보고 ‘저렇게 살아가는 불자도 있구나’ 이렇게 감동을 주면 이 석가족 사람들도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아직 이곳에는 외국절만 있지 인도절은 없고, 그나마 인도절이 있다고 해도 아주 작은 규모에 불과해서 석가족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하려고 전체적인 불사사업 설계를 했습니다. 그러니 한 10년 후에 오시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번 INEB(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 대회에서는 스님의 희망편지를 영어로 천 권 번역해서 나눠주었습니다. 이번에는 힌디어로 2천 권 인쇄를 해서 석가족들과 인도인들에게 나눠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 불교 교리나 담마는 이 사람들한테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선 즉문즉설처럼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내용으로 먼저 호의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다음 조금씩 담마를 공부해 가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이 인도에 온 김에 같이 기공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재정 문제가 불투명해서 늘 갈등이 되는데, 이번에 마침 한국에서 두 명의 봉사자가 파견되어서 앞으로 회계를 안정적으로 맡아주면 상카시아 불사가 원만하게 진행되리라 생각합니다.

또 우리는 여기에서 2차 만일결사를 향한 세계 전법을 발원하고자 합니다. 현재는 한국말을 영어로 옮기는 걸 1차로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일단 영어로 옮기는 작업이 끝나면 그다음 각국 언어로 옮기는 건 비교적 수월합니다. 왜냐하면 베트남 사람 중에도 영어하는 사람, 인도 사람 중에 영어하는 사람은 부지기수기 때문에 우선 영어로 번역한 다음 각 나라로 번역하는 건 비교적 수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구글에서 약 40여개국 언어로 번역기를 만든다고 하니까, 우리는 그동안 한국에서도 더 많은 확산을 하고, 세계적으로도 확산을 하기 위한 작업을 꾸준히 준비해야 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500년이 다섯 번 지나는 시점, 즉 2500년이 지나면 세계로 나간 불교가 인도에 다시 부흥하게 된다고 전해집니다. 그런 전설을 이곳 사람들이 믿고 있으니까 거기에 작은 보탬이라도 되면 좋겠다는 관점에서 오늘 이곳에서 담마센터 기공식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회향식을 하면서 인도성지순례의 의미를 다시 하면 새겨보면 좋겠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한 후 그동안 성지순례를 하면서 궁금했던 점에 대해 대화하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섯 명이 손을 들고 앞으로 나와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즉문즉설이 끝나고 석가족이 운영하는 인터칼리지 스쿨 학생들이 순례를 마친 1250명에게 축하의 마음을 담아 꽃잎을 나눠주었습니다.




“단야바드!”
(감사합니다.)

잠시 휴식을 하며 간식을 먹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석가족들은 아주 기쁜 얼굴로 순례단을 위해 김이 모락나는 짜이와 삶은 감자를 나눠주었습니다.


제32차 인도성지순례 회향식

이어서 12시부터 제32차 인도성지순례 회향식을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스님은 순례를 무사히 마친 1250명의 수행자들과 모든 여정이 순탄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한 스태프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고관절을 다친 한 분은 어쩔 수가 없어서 먼저 귀국했지만 그 외는 한 분도 낙오 없이 여기까지 다 왔습니다. 모두 여러분들이 협조해 주신 공덕이고, 불보살이 증명하시고, 천룡팔부 신중님들이 옹호해 주신 덕분입니다.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모두 박수)

첫날, 둘째 날에는 못 하겠다 싶은 마음이 있었죠? 이렇게 어떻게 2주를 지내나 싶었지만, 또 어찌하다 보니 2주가 지났습니다. 시집가서 애 낳고 살 때는 이걸 평생 어떻게 하나 싶지만 금방 늙어서 죽을 때가 다 되어가듯이 말입니다. 인생이라는 게 원래 그래요.

살다 보니 저도 나이가 일흔이 넘었어요. 시간이 더 지나서 돌아보면 오늘 같은 일도 다 꿈같이 느껴질 거예요.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요, 안 좋았어요?”

“좋았어요.”

“죽을 때 생각하면 그래도 내 발로 걸어 다니고, 내 손으로 밥 먹고, 내 힘으로 숨도 쉬고, 내가 가서 똥도 눌 때가 좋은 시절이에요. 특히 내 힘으로 똥 누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웃음) 다른 건 다른 사람한테 의지해도 되는데, 똥 누는 걸 남한테 의지해야 하면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나중에 지나 놓고 보면 그래도 그때는 젊었고, 그때는 돌아다닐 힘이 있었고, 야외에서 잘 힘도 있었고, 그런 좋은 시절로 기억될 거예요. 이게 나쁜 게 아닙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리석어서 꼭 지나간 뒤에 옛날 일을 생각하며 좋았다고 합니다. 지금 좋은 줄을 알아야 해요. 여러분은 지금 좋아요?”

“네.”

“지금 좋은 줄 알아야 해요. 여러분은 아침에 안개가 끼면 안개가 싫다고 하고, 해가 나면 해가 너무 강해서 싫다고 하죠. 사실은 이렇게 해가 나면 좋아요 안 좋아요?”

“좋아요.”

“해가 나면 따뜻하니 얼마나 좋아요. 또 해가 나야 시원한 바람도 느낄 수 있어요. 이처럼 전체 과정을 돌아보면 일이 늦어진 게 잘된 경우도 있고, 또 잘 가다가 못된 경우도 있어요. 마치 바람이 크게 불면 파도가 크게 일어나고 바람이 작게 불면 파도가 작게 일어나듯이 순간순간을 보면 늘 잘하고 못하는 게 있어 보이지만, 출발한 다음부터 지금까지 온 걸 쭉 돌아보면 결과적으로는 다 잘 된 겁니다. 중간에 조금 빨리 가든 조금 늦게 가든 지금은 이 자리에 모두가 같이 앉아 있는 것처럼, 조금 늦어도 그만이고 조금 빨라도 그만이에요.”

법문을 마치고 스님은 스태프들을 모두 무대 앞으로 불러내었습니다.

“이번에 순례를 도와준 스태프들 다 왔어요? 왔으면 이 앞에 다 같이 서 보세요.”

1250명이 순례를 하다 보니 스태프만 40여 명이 되었습니다. 한 명씩 맡은 소임을 소개하자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다음은 대중을 인솔하고, 성지에서 안내를 담당했던 법사단을 소개했습니다. 법사님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대중 속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습니다.

똑같이 순례를 했지만 조금 더 봉사를 많이 해야 했던 차장과 조장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습니다. 아픈 사람들을 잘 보살피고 치료를 해주었던 의료인정토회 멤버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소개하고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32대의 버스가 원활하게 이동을 할 수 있게 수고를 해준 보광 법사님과 인도인 스태프들도 소개하고 그동안의 노고에 대해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이제 소개를 다 했습니까? 정말 많은 분들의 수고 덕분에 순례를 잘 마쳤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사람이 남았네요. 그리고 법륜스님!” (웃음)

법륜스님을 소개하는 것을 끝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시간을 마쳤습니다. 성지순례를 회향하며 기쁜 마음을 담아 함께 노래를 부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아침이슬, 만남, 민요까지 몇몇 노래들을 열창하며 그동안의 고생을 뒤로하고 모두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지순례를 회향하며 가사와 발우를 반납하는 의식을 가졌습니다. 모두 무릎을 꿇고 가사와 발우를 머리 위로 올려 들었습니다.


“가사와 발우를 반납하겠습니다.”

“잘 받겠습니다.”

비록 성지순례는 끝이 났지만 수행자로의 삶은 새롭게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상카시아 탑을 바라보며 부처님께 ‘앞으로도 수행 잘하겠습니다’ 하고 다짐을 하며 삼배를 했습니다.

이어서 오후 1시부터 석가족들이 순례단을 환영하는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석가족 청년회(YBS) 대표인 수바스지가 환영사를 해주었습니다.

“1차 만일결사를 함께 마무리해서 기쁘고, 2차 만일결사도 여러분과 함께 시작해서 기쁩니다. 저희 석가족들은 이 행사를 준비할 때부터 봉사를 할 사람만 참석하기로 약속하고 모였습니다. 그리고 석가족들은 간절한 소망이 하나 있습니다. 그동안 법륜 스님이 한국에서 오래 사셨는데, 앞으로는 인도에서 오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법륜 스님에게 앞으로는 인도에서 오래 머무시라고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모두 큰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모두 동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석가족 중에 봉사 모임을 총괄한 부부가 있었는데요. 두 부부는 행사 전 일주일 동안 가게 문을 닫고 이곳 담마센터 부지에 머무르면서 오직 행사 준비에만 전념을 했다고 합니다. 남편인 아밋 지가 간단히 인사말을 했습니다.

“처음에 1250명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과연 우리가 이 행사를 준비할 수 있을까 많이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일주일 동안 어린아이를 집에 두고 저희 부부는 이곳 담마센터에 머물면서 봉사를 했습니다. 많이 부족했지만 이 성스러운 땅에 여러분이 와주신 것만 해도 너무 감사드립니다.”

수바스지와 1250명의 식사를 준비하느라 고생했을 석가족들에게 순례단은 큰 박수와 환호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참석한 석가족들이 한 줄로 서서 한 명씩 스님에게 꽃 공양을 올렸습니다. 50여 명이 꽃목걸이를 하나씩 스님에게 걸어주다 보니 스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목을 감쌌습니다. 각자가 자기 식대로 환영을 모두 해야 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중간에 한 번씩 꽃목걸이를 벗는 방식으로 겨우 환영 행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아이들이 준비한 공연을 함께 보았습니다. 노래의 가사는 스님에게 배운 불법은 어떠한 법보다 높고, 이 좋은 법을 배워서 너무 기쁘고, 매일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상카시아 담마센터 기공식

석가족들의 환영식을 마치고 상카시아 담마센터 기공식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인도JTS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보광법사님이 그동안의 경과와 공사 개요를 발표했습니다.

“상카시아 담마센터는 법륜스님이 30년 전에 석가족을 처음 만났을 때 당시 200만 석가족이 붓다 담마를 배우고 명상과 수련을 할 공간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들의 신앙생활을 지원하기 위해서 상카시아 담마센터 건립을 발원했습니다.

2010년에 3700평의 부지를 구입하여, 붓다 담마에 대한 공부와 명상을 할 수 있는 건물, 행사와 집회를 위한 오픈 강당, 신앙생활을 위한 상카시아 스투파를 건립할 것을 계획하였습니다.

그 후 2022년까지 석가족과 담마센터 건립을 위한 회의를 수차례 진행한 결과 건립 불사금의 50퍼센트는 석가족이 모연을 하고, 정토회가 나머지 50퍼센트를 내기로 합의를 했습니다. 10명의 운영위원을 구성하되, 합의가 이행되었을 때 운영위원장을 석가족이 하고, 합의에 미달했을 경우에는 석가족이 부담한 기여도에 따라서 운영위원을 배정하기로 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상카시아 담마센터 기공식을 축하하며 석가족을 위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제가 30년 전에 석가족 청년들을 만나 법문을 했습니다. 석가족의 혈통을 계승했더라도 불교를 모른다면 진정한 석가족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석가족의 혈통을 계승한 건 아니지만 붓다담마를 알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가 더 진정한 석가족 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붓다담마를 공부해서 불자가 될 때 진정한 석가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이 인도 불교의 부흥을 위해서 헌신을 해야 합니다. 이번 생은 안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한 생을 바쳐서 인도 불교 부흥을 위해서 몸을 바칠 사람은 손을 들어보세요.’

그랬더니 당시 법문을 듣던 100여 명 중 10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법회가 끝나고 지금까지 저를 따라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웃음)

그리고 세월이 흘러 3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다들 결혼도 했고, 자녀들이 20대가 넘었습니다. 이제는 결혼도 하고 자녀도 다 키웠으니 지금이라도 나서서 옛날의 약속을 지켜야 하지 않겠어요? 옛날 약속을 지킬 생각이 있어요, 별로 지킬 생각이 없어요?”

“지금이라도 지키겠습니다.”

석가족들은 손을 번쩍 들며 다시 한번 스님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건물을 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부처님의 법은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걸 배우기 위해서는 이치를 깨우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건물을 짓는 과정 속에서도 우리는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하고 원(願)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합해지지 않으면 건물을 지어놓은 다음에는 또 누가 가질 것인가를 두고 싸우게 될 거예요. 예전에 이곳 상카시아에 조그마한 땅을 사놓고도 싸운 일이 있었잖아요. 이런 것은 불법(佛法)이 아닙니다.

그러니 건물을 짓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건물 짓는 과정에서 우리가 마음을 모으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정토회에서 여러분에게 건물을 지어줬다는 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 스스로가 ‘우리가 지었다’라고 생각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게 더 좋은 일입니다.”

이어서 스님은 상카시아에 파견된 김윤태, 안상희, 두 명의 활동가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대중은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스님과 내빈들만 자리를 이동해 기공식 커팅과 개토식을 했습니다.

“에그, 도, 띤!”
(하나, 둘, 셋!)



다 함께 외치며 커팅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괭이를 한 자루씩 들고 땅을 파는 시늉과 함께 개토식을 했습니다. 1250명의 순례단과 석가족이 큰 박수를 치며 기뻐했습니다. 스님은 기공식에 참가한 모든 석가족들에게 힌디어로 출판한 희망편지 책을 선물했습니다.


이번 성지순례는 1차 만일결사를 회향하고 2차 만일결사를 발원하기 위해 1250명이 참가했습니다. 그래서 세계전법을 다 함께 발원하는 퍼포먼스로 대장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지난 1차 만일결사의 서원이 불교중흥과 민족중흥이었다면, 그 뜻과 경험을 계승하여 앞으로 2차 만일결사는 '세계전법과 문명전환'을 목표로 정했습니다. 앞으로 전 세계의 정토행자들에게 수행, 전법, 실천활동의 전법 무대가 될 지구촌 세계지도를 1250명의 수행자들과 석가족 들이 '모자이크 붓다'의 마음을 담아 표현해 보았습니다.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큰 함성과 함께 차량별로 지정된 대륙으로 이동했습니다.

“16~20호차, 함성! 아프리카 대륙으로 질서 있게 이동해 주세요.”

“28~32호차 함성! 남미대륙으로 질서 있게 이동해 주세요.”

“합창단 여러분, 호주대륙으로 이동해 주세요.”

“21~27호차, 함성! 북미대륙으로 질서 있게 이동해 주세요.”

“1~16호차, 함성! 유라시아 대륙으로 질서 있게 이동해 주세요.”

“해외와 국제지부, 함성! 기다리고 계시는 석가족 분들과 사이사이 손을 잡고 이어서 최대한 가지런하게 지구의 원을 만들어 주세요.”

모든 준비가 끝나자 사회자가 “세계전법의 길을 향해서, 출발!” 하고 외쳤고, 피켓을 든 행진단이 법륜 스님과 함께 세계 지도 안으로 입장했습니다.

“행복을 세계로! 문명을 미래로!”

스님은 한반도 지도 위에 서서 세계 전법을 간절히 발원했습니다.

“오늘 정토행자 천이백오십 대중 일동은 상카시아 담마센터에 모여 크게 발원합니다.

저희들이 부처님 법을 만나 자유롭고 행복해진 것처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 법을 만나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거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기를 발원합니다. 가진 것이 있더라도 검소하게 살아서 남는 것을 남과 나누어 가지고, 지위가 높다 하더라도 거드름 피우지 않고 겸손함으로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정토행자가 되겠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과 생명들이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세상이 유지되기를 발원합니다.

세계 곳곳으로 행복을 전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희 정토행자들은 2차 만일 동안 한국을 넘어서서 세계로, 영어권뿐만 아니라 각 나라 언어로, 그들에게 맞게 이 좋은 부처님의 법을 전하겠습니다. 2차 만일이 끝날 때는 2백만 수행자가 이 세상에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처럼 세계 곳곳에 저희들이 발을 딛고 서서, 세계 곳곳에 사는 모든 인류에게 이 좋은 법을 꼭 전하겠습니다.

또한 그들이 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이 무슨 종교와 믿음과 사상을 갖고 살아가든, 모든 사람과 생명이 고통 없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자연이 보존되고, 전쟁이 없고, 굶주리는 사람이 없고, 병들었지만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고,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이 없는, 그런 고통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저희의 이 간절한 발원을 제불보살님들께서는 증명하여 주옵시고, 천룡팔부 신중님들께는 이 발원이 성취될 수 있도록 옹호하여 주옵소서.”


1250명의 순례자들은 부처님처럼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것을, 이웃과 세상을 위해 잘 쓰이는 삶을 살아갈 것을 다시 한번 다짐했습니다.

이어서 풍물패가 울리는 풍악 소리에 맞춰 대동놀이를 시작했습니다. 꽹과리, 북, 장구, 징이 울리는 소리에 모두 어깨가 들썩였습니다. 풍물패의 뒤를 따라 꼬리에 꼬리를 달며 큰 원을 만들었습니다. 북소리와 장구 소리 사이에 사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얼씨구, 좋다!”


석가족들도 원 안으로 들어와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습니다. 2차 만일결사도 오늘처럼 신명나게 전법을 해나갈 것을 다짐하며 대동놀이를 마쳤습니다.

석가족이 정성껏 마련한 저녁식사를 하며 순례단은 서로를 격려해주고 감사의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몇몇 차량은 내일 새벽에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저녁을 일찍 먹고 오후 5시에 델리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석가족과 스태프들은 뒷정리를 시작했습니다. 행사장에 깔아 둔 매트를 정리하고, 순례객들이 보시하고 간 각종 물품들을 종류별로 분류하여 포대에 담았습니다.

스님은 JTS 박지나 대표님에게 전화해서 일찍 출발해 방콕에서 14시간 기다려야 하는 순례객을 위해 방콕 시내 고찰을 관광시켜 주도록 당부했습니다. 또 터키, 시리아 지진 구호를 위해 긴급 파견을 의논해 왔는데, 박지나 대표님이 지금까지 알아본 상황을 보고했습니다.

“현재는 인명구호가 우선이고 외국인의 접근을 막고 있는 상태라 현장에 갈 수가 없었어요. 아직은 직접 도울 수 있는 일이 없는 상황입니다. 시리아에 가려면 비자가 필요해요. 터키 현지 분들도 조금 기다렸다가 현장에 가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주셨습니다.”

보고를 듣고 스님이 말했습니다.

“그럼 일단 기다려 보되, 현지 상황을 계속 파악해 주세요. 터키 긴급 구호를 위해 기부하고 싶다는 분들이 많은데, 실제로 도울 수 없는 상황에서 모금을 할 수는 없잖아요. 그건 JTS 정신에 맞지 않습니다. 그동안 우선 파키스탄에서 진행되는 구호활동을 위해 파키스탄에 다녀오시면 좋겠습니다.”

의논을 마치고 스님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순례단이 사용한 전기밥솥 118개를 버스에 싣는 울력을 함께 했습니다. 버스 안과 트렁크에 밥솥이 담긴 박스가 가득 찼습니다. 일단 바라나시까지는 버스로 이동을 하고, 그다음은 트럭을 대절하여 수자타 아카데미까지 운반하기로 한 후 뒷정리를 마무리했습니다.


제32차 인도성지순례는 오늘로써 마무리가 되었지만, 오늘을 시작으로 정토회 2차 만일결사의 원대한 서원이 새롭게 시작되기를 발원해 봅니다.

내일은 새벽 4시에 상카시아를 출발하여 바라나시로 이동한 후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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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앞으로 여러분이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는 삶의 흔적은 이곳 석가족의 불사로 남게 될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이 만약 10년, 20년 후에 다시 인도성지순례를 오면 오늘날의 수자타아카데미와는 또 다른 감동을 느끼게 될 겁니다."

2024-01-17 03:39:38

박경자

감사합니다

2023-03-01 18:11:57

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3-02-23 11:4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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