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쉬라바스티를 출발하여 상카시아로 이동하는 날입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짐을 챙겨 버스에 오른 후 4시 40분에 쉬라바스티를 출발했습니다. 쉬라바스티에서 상카시아로 가는 여정은 원래 10시간에 이르는 대장정입니다. 그런데 도로가 많이 좋아져서 이동 시간이 많이 단축될 것 같았습니다.
예상대로 6차선 고속도로가 새로 생겨 있었습니다. 매일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높이 튀어 오르기 일쑤였는데 고속도로 위를 달리니 조용했습니다. 새 도로를 보고 스님도 감탄을 했습니다.
“와! 인도가 천지개벽을 했네요. 도로가 파여 있어서 늘 덜컹 거리며 갔던 길인데, 6차선이 생긴 걸 보세요.”
쉼 없이 달려서 낮 12시에 상카시아에 도착했습니다. 예상보다 3시간이 빠른 7시간이 걸렸습니다.
상카시아에는 정토회가 석가족을 위해 담마센터를 지어주려고 마련한 부지가 있습니다. 담마센터 부지에 마련된 숙소 앞에 버스를 주차하자 석가족 청년회(YBS) 대표인 수바스지와 석가족들이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3개월 전에 공사 중이었던 오피스 건물도 완공이 되어 있었습니다.
넓은 부지의 한편에서는 석가족들이 1250명의 순례단이 먹을 저녁 식사를 준비하느라 바빴습니다.
스님은 짐을 풀고 곧바로 상카시아 탑으로 이동해 순례단이 도착하기를 기다렸습니다. 버스가 모두 도착하고 자리를 까는 사이에 탑돌이를 먼저 시작했습니다.
순례단은 모두 가사를 수한 후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상카시아 탑을 돌았습니다.
탑을 한 바퀴 돈 후 스님은 이곳에 탑을 세운 배경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어느 해에 부처님께서 안 보이셨어요. 어디 가셨는지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신통 제일인 목련존자(목갈라나, Mogglallana)에게 ‘부처님께서 어디 계신지 한번 알아봐 주세요’ 하고 부탁했더니 지금 도리천(忉利天)에 계신다고 대답했습니다. 무엇을 하시는지 물어보니까 어머니를 위해서 설법을 하신다는 거예요. 부처님이 깨닫기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까 어머니를 위해서 설법하고 계신다는 얘기였습니다. 아마 이런 이야기는 3개월 안거 동안에 부처님을 못 봐서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어쨌든 3개월 동안 부처님을 못 뵈니까 부처님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목련존자에게 부처님이 언제 오시는지 알아봐 달라고 또 부탁을 했어요. 목련존자가 다시 가서 여쭤봤더니 안거가 끝나는 날 상카시아 성 밖의 어느 장소로 하강하겠다고 부처님께서 답하셨대요. 그 이야기를 듣고 안거가 끝나는 날에 맞춰서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였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하강하실 때의 모습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어요.
제석천(帝釋天)이 양산을 들어 햇살을 가려드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범천(梵天), 즉 브라만(Brahman)이 불자(拂子)를 들고 시립(侍立)했다고 해요. 이렇게 부처님이 가운데 계시고 양쪽으로 두 분이 부처님을 모신 모습으로, 하늘에서 사다리를 내려서 이곳으로 하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영축산(靈鷲山)에 있던 수보리 존자(수부티, Subhuti)가 부처님을 친견하러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제법(諸法)이 공(空)한 도리를 깨쳤어요. 상카시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모인 가운데 어떤 비구니 스님이 맨 먼저 부처님을 친견했다고 합니다. 비구니 스님은 부처님을 환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부처님,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제가 제일 먼저 마중 나왔어요.’
그러자 부처님이 대답합니다.
‘아니다.’
‘그럼 누가 제일 먼저 나왔습니까?’
‘수보리다.’
‘그분은 여기 없는데요.’
그 자리에 없는 수보리가 가장 먼저 마중 나왔다는 말은 ‘법을 보는 자가 나를 본다’ 이런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것도 만들어진 얘기 같아요. 법을 깨닫는 게 중요하지 사람을 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 나온 얘기 아니겠어요? 어떤 경전에서는 사리불(사리푸트라, Sariputra)가 제일 먼저 마중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해요.
이런 이야기가 생겨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백중절도 원래는 불교와 관계가 없거든요. 백중절은 인도에서 힌두교인들이 부모에게 공양을 올리는 날이에요. 음식을 마련해서 강에 뿌립니다. 가야에 있는 네이란자라강에도 백중날이 되면 음식을 물에 떠내려 보내느라 사람들이 많이 모입니다. 이런 것처럼 조상을 섬기는 명절이 불교 안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출가란 어쨌든 부모에게 뭔가 불효하는 것 같잖아요. 그런 것을 좀 무마하기 위해서 ‘출가하면 오히려 부모의 영가를 천도해 줄 수 있다. 그래서 출가를 하면 삼대가 복을 받는다’ 이렇게도 말하기도 하는 겁니다. 이런 것은 출가에 대한 반발을 좀 줄이기 위해서 나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든 상카시아는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는 곳이에요. 그래서 성지순례에서 이곳에 올 때마다 ‘어버이 은혜’ 노래도 부르고, 부모님과 조상의 은혜를 생각하는 의식도 하는 겁니다. 천도재도 그런 이유로 이곳에서 하는 거예요.”
이어서 스님은 이곳에서 집성촌을 이루어 거주하고 있는 석가족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부처님의 후예인 석가족(釋迦族) 또는 사키야족(Sakya)은 코살라국의 침공을 받고 대부분 죽고 일부가 살아남아 전국으로 도망가서 숨어 살았습니다. 석가족에서 모리아족 등으로 이름도 바꿔서 숨었는데 그 바꾼 이름이 5개 정도 됩니다. 인도의 카스트 중에 5개 정도는 모두 석가족 계열이라고 해요. 우리나라에도 왕씨를 죽이니까 왕씨들이 류씨로 성을 바꾼 일이 있잖아요. 그래서 왕씨와 류씨는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도 조상이 같다고 해서 결혼을 하지 않았아요. 이런 것처럼 석가족은 5개의 카스트를 한 가족처럼 생각합니다. 사키야라는 카스트가 있고, 범(汎) 사키야 카스트라고 해서 나머지 5개도 사키야 카스트의 범주에 들어가는 거예요. 꼴리족(Koliya)도 사키야 안에 들어갑니다. 이 사람들이 상카시아 지역 인근 5개 군에 200만 명 이상이 살고 있어요. 그러나 모두 자기 종족의 역사를 잘 모르니까 그냥 ‘사키야’라는 성만 가지고 있지, 그게 석가모니와 관계가 있는지도 모르고 힌두교를 믿으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겁니다.
그러다가 학교에서 근대 교육을 받으면서 사키야가 부처님의 후예라는 걸 알게 되었고, 불교 청년운동이 일어나면서 개종운동이 일어났어요. 그래서 20만 명 정도가 불자가 됐는데, 불법을 알고 불자가 된 게 아니에요.
저쪽을 보시면 스님들이 앉아 있죠? 여기 스님들은 진짜 거지와 다름없어요. 인도에서 스님들은 크게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인도에서 사회개혁운동과 불교중흥운동을 함께 일으켰던 암베드카르(Ambedkar) 계열 출신 스님이고, 하나는 석가족 출신 스님입니다. 어릴 때 출가해서 수행하는 스님이 아니고, 결혼해서 살다가 머리 깎고 저기 앉아 있는 거예요. 먹을 게 없으면 집에 가서 좀 지내다가 다시 나오기도 하고요. 어떻게 보면 더 출가자의 원형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불교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여기 스님들은 대우를 잘 못 받고 거지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해 보면 저분들이 출가자의 원형에 더 가깝지 않나 싶어요. 아무도 존중해 주지 않고, 본인이 존중받으려는 생각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곳에는 석가족들이 많이 삽니다. 정토회가 이곳 상카시아에 담마센터를 지으려는 이유는 석가족들을 위해서입니다. 이곳에 각국에서 지은 절이 많이 있지만 모두 자국민을 위한 절이지, 인도인을 위한 절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인도 사람, 특히 석가족 불자를 위한 담마센터를 지어서 교육과 훈련을 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해요.
부지를 마련하는 등 물질적인 준비는 벌써 30년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건물 지어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당사자가 마음을 내는 게 중요한데, 이 사람들이 아직 의식이 부족하다 보니 외국인에게 얹혀가려고 하는 생각이 많이 있습니다. 인도의 일반 사람들보다는 좀 낫지만, 그래도 스스로 하겠다고 할 정도는 아직 못 됩니다. 그래서 제가 담마센터를 지으려면 석가족이 최소한 절반은 참여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고 30년을 기다린 거예요. 그러나 이제는 도저히 안 되겠어요. 일단 시작은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여러분이 온 김에 내일 기공식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순례단에게 숙소의 불편함에 대해 양해를 구했습니다.
“오늘은 숙소에 대해서 양해 말씀을 드려야겠어요. 여기야말로 도저히 숙소를 마련할 방법이 없어서 천막을 치기로 했다가, 제가 학교를 물색해 보라고 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우리를 받아주겠다는 학교가 있었습니다. 제가 지난여름에 인도에 왔을 때 직접 가봤더니, 학교 바닥이 흙바닥이었어요. 벽돌로 벽만 쌓아둔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보수하는 비용이 호텔 경비보다 더 많이 들었어요. 정토회에서 교실 바닥을 다 시멘트로 포장해 줬습니다. (모두 박수)
화장실도 몇 개 없었어요. 자기들은 화장실이 많이 필요 없대요. 그래서 화장실을 수리해 주고, 건물 옆에 간이 화장실도 지었습니다. 그런데 화장실을 너무 많이 지으면 돈이 너무 드니까 넉넉하게 짓지는 못했습니다. 이것까지만 해도 학교 한 채를 지어주는 값이 들었어요. 그러니 숙소가 조금 부실하더라도 양해하세요. 알았죠?”
“네!”
“순례단이 이틀을 묵는 데 돈을 너무 투자할 수도 없고 해서 이 정도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숙소 두 군데는 어제 취소가 됐어요. 경찰이 와서 돈을 달라는 걸 안 줬더니 ‘여기는 숙소가 아닌데 왜 사용하냐!’ 이러면서 취소를 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오늘밤은 여기저기에 끼어서 좁게 자게 생겼어요. 천막 치고 짚을 깔고 자는 것 보다야 낫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지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마지막 여정에서 특히 불편을 더 감수하셔야겠습니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에는 그래도 좀 씻고 가야 할 텐데, 죄송합니다. 양해해 주세요.”
“네!” (모두 웃음)
여기까지 이야기를 한 후 스님은 곧바로 수행법회 생방송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순례단은 이곳에서 일어난 옛일을 떠올리며 경전독송과 명상을 한 후 법사님의 집전으로 천도재를 지냈습니다. 성지순례 막바지에 이르러 부모님의 은혜를 깊이 느껴 보았습니다.
생방송을 하기 위해 실무자가 인근 지역에 인터넷이 가장 잘 되는 곳을 찾다가 감자를 보관하는 창고를 발견했습니다. 스님은 감자 창고로 향했습니다.
감자 창고 안에 직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이 있었는데, 사무실 한쪽 구석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오후 4시에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생방송에 접속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지금 저는 부처님께서 도리천에 가셔서 어머니를 위해서 설법하고 다시 이 세상에 하강했다고 전해지는 상카시아에 조금 전 도착했습니다. 내일 회향식을 하면 성지순례단은 모레 한국에 도착하게 됩니다. 15일이라고 하니 긴 여정 같았는데 끝날 때가 되려니 또 너무 빨리 끝난다는 느낌이 드네요.” (웃음)
이어서 바라나시부터 쉬라바스티까지 순례의 여정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스님은 순례단이 어떤 경로를 거쳐 상카시아에 이르렀는지 간단히 소개한 후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사전에 두 명이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집안이 지저분하지만 치우기는 싫고 분별심이 자꾸 난다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생생한 인도 소식을 매일 올려주셔서 저도 함께 성지를 순례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모든 사물은 더럽고 깨끗함이 따로 없다고 하셨는데, 저는 더럽다는 것에 집착해서 분별심을 냅니다. 그렇다고 깨끗이 치우지도 않습니다. 한 집에서 30년이 넘게 살다 보니 집안 하나하나가 다 지저분한데, 치우기는 싫고, 더러운 것을 보면 분별심만 납니다. 이 마음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어떻게 하긴요? 괴로워하면서 살면 되죠. 방법이 없잖아요. 더럽고 깨끗한 걸 따지면서 치우지 않아서 지저분하다면 그걸 보면서 괴로울 수밖에 없죠. 더럽고 깨끗한 것이 본래 없다는 관점에서 더럽다는 생각을 안 하면 안 치워도 괴롭지 않을 수 있어요. 더럽고 깨끗하다는 분별을 냈으면 더러운 걸 치우고 깨끗하게 살면 괴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분별심은 내면서 행동은 안 한다면 괴로울 수밖에 없죠. 여기 뜨거운 물이 있는데 먹고는 싶고 혀는 안 데고 싶다면 그건 불가능해요. 먹으면 혀를 데든지, 혀를 데기 싫으면 먹지 말든지, 둘 중에 하나는 해야 하잖아요. 질문자도 치우기 싫으면 분별을 내지 말든지, 분별을 냈으면 정리를 하든지 해야죠. 그런데 이것도 안 하고 저것도 안 하잖아요. 그러면 괴롭게 살 수밖에 없죠. 달리 방법이 없어요.
자연을 한번 보세요. 자연은 따로 치우는 사람이 없습니다. 낙엽이 떨어졌다고 비질을 하지도 않고, 썩은 가지가 떨어졌다고 치우지도 않아요. 강이 범람해서 돌이 튀어나왔다고 그걸 치우는 경우도 없습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그것입니다.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있는 그대로예요. 그러니 낙엽이 떨어지면 썩어서 거름이 되고, 가지가 떨어져 엉켜 있어도 아무 상관이 없죠.
이처럼 우리가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본래 아름다운 것도 없고 추한 것도 없고 본래 깨끗한 것도 없고 더러운 것도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어요. 그러나 사람이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 생각의 내용은 사람마다 다르겠죠. 내가 원하는 모양은 ‘아름답다’라고 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모양은 ‘아름답지 못하다’라고 해요. 내가 원하는 건 ‘좋다’고 하고, 내가 싫어하는 건 ‘나쁘다’라고 합니다. 다 마음이 짓는 거예요. 모든 사람의 생각이나 마음이 똑같으면 평가도 다 똑같겠지만, 사람마다 생각이나 마음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우주를 보세요. 사람이 목적에 따라 만들어서 사용하고 버린 인공물을 제외하면 우주에는 쓰레기가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의 상태일 뿐이에요. 자연에도 쓰레기라는 게 없어요. 낙엽이 많이 썩어 있는 물을 두고 우리는 ‘더럽다’라고 하지만, 낙엽이 많이 썩어 있는 물일수록 식물은 그 물을 영양분으로 삼아 더 잘 자랍니다. 식수로 부적당하다는 것과 더럽다는 것은 개념이 달라요. ‘이 물은 먹는 물로서는 부적당하다. 그러나 식물을 키우기에는 오히려 더 낫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죠.
사람이 집을 짓고 생활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서 ‘습기가 많은 땅은 나쁘고 건조한 땅이 좋다’라고 말하지만 기준에 따라 다른 거예요. 농사의 관점에서 볼 경우 습기가 많으면 벼가 자라기에 좋은 땅이고, 건조한 땅은 초원으로서 좋은 땅이에요. 예를 들어 감자를 심을 때는 건조한 땅이 생육에 좋아요. 원래 좋고 나쁜 게 아니라 무엇을 심을 것인지에 따라 그에 맞는 땅과 맞지 않는 땅이 있을 뿐이에요. 그 용도에 맞는 땅을 ‘좋은 땅’, 맞지 않는 땅을 ‘나쁜 땅’이라고 표현할 뿐입니다. 곡식을 심을 때는 자갈이 많거나 바위가 많은 땅이 나쁜 땅이에요. 그런데 건축 자재를 구할 때는 기준이 달라집니다. 축대를 쌓으려는 사람에게는 돌이 많은 땅이 좋은 땅이죠. 목재를 필요로 할 때는 나무가 많은 산이 좋은 산이고요. 그런데 거기에 곡식을 심으려면 나무가 많은 산은 좋은 산이 아니고, 풀이 많은 산이 좋은 산입니다. 나무가 적고 풀이 많으면 개간하기가 쉬우니까요. 이처럼 우리의 필요와 관계에 의해서, 또는 자기가 선호하는 기호와 관계에서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맞다 틀렸다 이런 것이 생겨날 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은 또 이렇게 물을 거예요.
‘그러면 분별을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가 아니에요. 분별은 내가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라는 거예요. 본래부터 좋고 나쁜 건 없는데 나한테는 있어요. 내 기호, 내 취향, 내 관점, 내 가치관 등 내 기준에서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습니다. 다만 그걸 절대화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건 내 기준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떤 음식을 ‘맛있다’라고 말할 때는 그 음식의 절대적인 맛을 논하는 게 아닙니다. 내 입맛에 맞을 때 나는 ‘맛있다’ 이렇게 표현하는 거예요.
동물들의 먹이 습성을 보세요. 어떤 동물은 꼭 살아있는 것만 먹지 죽은 건 안 먹습니다. 반면에 꼭 썩은 고기만 좋아하는 동물도 있어요. 이처럼 생물이 자라거나 동물이 살아가는 방식이 다릅니다. 어떤 동물은 고기만 먹어야 하고, 어떤 동물은 식물만 먹어야 해요. 이런 특성은 전생에 죄를 짓거나 하늘의 벌을 받는 것과는 관계가 없어요. 그 동물의 식성이 그렇게 되어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자연에서는 어떤 것도 옳고 그르고, 맞고 틀리고, 좋고 나쁘고, 깨끗하고 더럽고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각자 자기의 관점에서 그런 것을 다 가지고 있죠. 그것을 두고 괴로움이 생길 때, 이것이 환경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 내 관점 때문에 생긴 것임을 알면 괴롭지 않게 살 수가 있습니다.
방 안에 있는 물건을 그냥 놔둔 채 정리 정돈의 개념을 내려놓고 살아도 괜찮아요. 외양간에 사는 소는 정리 정돈의 개념이 없지만 괴로워하지 않잖아요. 그런 것처럼, 질문자도 정리 정돈이라든지 깨끗하고 더럽다는 개념이 없이 그냥 살면 돼요. 그러면 괴롭지가 않습니다. 또 본인이 자기 관점에서 깔끔하게 해 놓고 살고 싶다면 정리를 하면 돼요.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깨끗하고 더럽고를 분별하면서 정리 정돈이나 청소는 안 한다는 거잖아요. 그러면 그건 모순이기 때문에 괴로운 게 당연해요. 그래서 제가 ‘괴로울 수밖에 없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질문이 있으면 더 해보세요.”
“몸이 늘어져서 그런 것 같아요. ‘치워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이런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그러면 안 치우면 되죠. 치워야 한다는 생각을 놓든지, 일어나서 치우든지, 둘 중 하나를 하면 됩니다. ‘나는 몸이 아프니까 당분간 이렇게 살겠다’ 하든지, ‘치워야 한다’라고 정했으면 몸이 아프더라도 일어나서 치우든지 해야죠. 달리 방법이 없잖아요.
여기 있는 음식이 상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이 음식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에요. 그러면 먹고 싶어도 상했으니까 버리든지, 아니면 먹고 배탈을 앓든지 하는 거예요. 달리 길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먹고는 싶은데 음식은 상했고, 이걸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하면 괴롭다는 말입니다. ‘먹을까, 말까? 먹을까, 말까’ 이렇게 망설임이 생기면 괴로운 게 당연해요. 아무리 좋아도 상했으면 버리든지, 먹고 싶으면 먹고 설사를 하든지, 이 두 가지 길밖에 없어요.”
“스님 말씀을 들으니 제가 관점을 제대로 잡으려고 질문을 잘 드린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웃음)
“수행은 윤리와 달라요. 깨끗이 치워야 한다는 것은 윤리예요. 깨끗이 치워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은 세상이 만들어 낸 인위적인 기준이에요. 담마(Dhamma), 즉 법(法)이라는 것은 원래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취향, 취미, 가치 기준이 다르다 보니 옳고 그름이 생겨나는 거예요. 자기에게 어떤 옳고 그름의 기준이 있다면 그 기준대로 살면 돼요. 그것을 실현해 나가면 됩니다. 그런데 그 기준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이치에 안 맞는 거예요. 자기가 가진 기준만큼 안 된다고 해서 괴로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원래는 안 해도 되는 일인데 내가 하는 것이니까요. 내가 하고 싶으면 그냥 하면 됩니다. 안 되면 다시 하고, 또 안 되면 또다시 하고, 연구해서 또 하면 돼요. 본래는 꼭 해야 하는 일이란 없지만, 내가 하고 싶으면 해도 돼요. 마찬가지로, ‘그러면 안 되는데요!’ 이렇게 생각한다면 안 해도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뭘 하라 마라가 아닙니다. ‘괴로울 일이 없다’ 이게 핵심이에요.
하고 안 하는 것은 네가 알아서 해라.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고, 그건 너의 자유다. 그러나 어떤 선택을 하든 괴로울 일은 없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에요.”
“네, 원래 좋고 나쁜 게 없는데 제가 분별을 내서 괴롭다는 것을 명심하겠습니다. 스님 말씀에 힘입어서 좀 깨끗하게 치우면서 괴로워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청소도 너무 깨끗하게 하려고 하면 에너지가 많이 들어요. 그러니 너무 지저분하지 않으면 적절하게 사는 게 좋아요.”
이 외에도 질문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더 있었지만, 인터넷 상황이 조금씩 불안정해지고 있어서 더 질문을 받지 않고 오후 5시가 되어서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상카시아 탑을 지나 다시 담마 센터 부지로 돌아왔습니다.
해가 저물고 석가족이 준비해 준 밥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은 후 스태프들과 내일 성지순례 회향식 프로그램과 뒷정리 계획에 대해 회의를 했습니다.
석가족들은 밤늦게까지 내일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1250명의 순례단을 맞이하기 위해 100여 명의 석가족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행사를 총괄하는 분은 5일 동안 가게의 문을 닫고 이곳 담마센터에서 숙박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밤늦게 석가족 봉사자들이 모두 모여 닫는 모임을 했습니다. 내일 행사 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일정 공유를 한 후 석가족 봉사자 모임을 마쳤습니다. 상카시아의 밤하늘에는 둥근달이 휘영청 밝았습니다.
저녁 8시가 다 되어서 B팀도 상카시아에 도착했습니다. 석가족들이 준비한 밥을 밥솥에 담아 차량별로 숙소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이곳 담마센터 부지에서 제32차 인도성지순례 회향식을 하고, 담마센터 기공식을 한 후, 순례단 모두가 2차 만일결사의 힘찬 출발을 다짐하며 세계 전법을 발원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9
전체 댓글 보기스님의하루 최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