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2.10 바라나시로 이동, 금요 즉문즉설
“마이너스 통장으로 게임 도박에 빠진 남편,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오늘은 상카시아에서 성지순례를 마무리하고 바라나시로 다시 이동하는 날입니다. 내일 바라나시에서 열리는 불교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입니다.

상카시아에서 바라나시까지 이동 시간을 미리 다 계산하고 여유시간까지 넉넉하게 잡아서 새벽 4시에 상카시아를 출발했습니다.

한참 동안 도로 위를 잘 달리던 차가 경찰이 막아서 멈춰 섰습니다.

영문을 모른 채 길을 빙 둘러서 다음 톨게이트까지 갔는데 또 경찰이 막아서 고속도로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톨게이트에 가도 또 고속도로로 못 올라가게 했습니다. 뉴스를 보니까 유피주 수도인 러크나우(Lucknow)에 인도 수상 모디가 방문한다고 해서 모든 도로를 막아버린 것이었습니다. 결국 한 시간 이상 기다리다가 고속도로를 타지 못하고 국도로 이리저리 돌아오는 바람에 3시간이나 지체가 되었습니다.

늦어지면 늦어지는 대로 버스 안에서 어제 지어온 밥으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부족한 잠도 채웠습니다.

원래 예정된 오후 2시까지는 도저히 도착을 못할 상황이 되자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냥 길을 가다가 버스를 세워놓고 여러분을 청중으로 해서 버스 안에서 생방송을 할까요?"

"네, 저희가 질문을 하겠습니다." (웃음)

아슬아슬하게도 바라나시 도착 예상 시간이 3시 50분이었습니다.

“4시 전에는 도착할 것 같은데 생방송 준비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없네요. 저는 버스에서 내려서 릭샤를 타고 지름길로 가야겠어요. 여러분은 그냥 버스를 타고 오세요.”

출발한 지 12시간 만에 바라나시 사르나트에 가까워졌습니다. 스님은 3시 40분에 버스에서 내려 릭샤를 타고 호텔로 향했습니다. 대형 버스는 지름길로 가지 못하고 큰길을 빙 둘러서 가기 때문입니다. 호텔에 미리 전화해서 인터넷이 잘 되는 방을 예약해 두고 문까지 다 열어놓아 달라고 부탁을 해두었습니다.

생방송 시작 10분 전에 미리 예약해 둔 호텔에 도착했지만, 호텔 주인은 전화를 미리 받은 적이 없다며 모른 체 했습니다.

“아이고, 생방송이 급한데 돈을 더 주고 할 수도 없고, 일단 옆에 있는 태국 절로 달려갑시다.”

스님은 바랑을 메고, 실무자는 방송 장비를 들고, 태국 절로 달렸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생방송 5분 전에 간신히 도착했습니다.

“그냥 아무 방에나 일단 들어가게만 해주세요.”

직원분에게 부탁하여 무작정 빈 방에 들어가서 카메라를 세팅했습니다. 다행히 4시 정각(한국 시간 7시 30분)에 생방송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져서 급하게 생방송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양해를 구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직 인도입니다. 어제 상카시아에서 성지순례를 마무리하고 저는 바라나시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상카시아에서 새벽 4시에 출발했는데 갑자기 고속도로에 못 올라가게 하는 거예요. 모디(Modi) 총리가 온다고 도시 전체를 다 봉쇄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국도를 빙빙 돌아서 오느라 결국 엄청나게 시간이 지체되고 말았습니다. 방금 전에 바라나시에 도착해서 급하게 방송을 준비해서 여러분과 만났습니다. 혹시 전파가 좀 불안정하더라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웃음)

오늘은 47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인도 바라나시에서 시청자들과 만났습니다. 세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여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마이너스 통장으로 게임 도박에 빠진 남편이 걱정이 된다며 어떻게 하면 남편을 존경하고 아이도 잘 키울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게임 도박에 빠진 남편, 어떡하죠?

“결혼한 지 3년 되었습니다. 첫 2년은 정말 지옥과 같아서 이혼을 결심했지만, 법륜 스님을 알게 되어 제가 경솔하고 시비한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돌이켜 괴로움 없이 잘 지냈습니다. 지금은 임신 4개월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매일 퇴근하고 새벽까지 게임을 합니다. 최근에 남편이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하여 빚이 있으며 그 돈은 게임 도박에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액수가 상당히 크고, 여윳돈도 아닌 마이너스로 도박을 해온 것이 걱정스럽습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스님 말씀에 따라 앞으로 3년은 아이를 최우선으로 돌보고 일은 거의 쉬려고 마음먹었기에, 경제적인 것을 남편에게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 걱정됩니다. 남편은 ADHD, 도박 중독,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관련 약과 수면제를 1년 이상 복용 중에 있습니다. 남편을 부처님처럼 따라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쉽게 끊지 못하는 도박을 안 할 거라고 믿는 제가 어리석은 것인지, 제가 어찌해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그냥 마음 편히 있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남편을 존중하고 과보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요?”

“질문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한 것 같아요. 부처님은 ‘남편을 미워하지 마라’, ‘남편을 경멸하지 마라’, ‘남편을 학대하지 마라’라고는 하지만 ‘남편을 부처님처럼 받들어라’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불법(佛法) 혹은 불교를 잘못 이해하면 안 돼요. 그런 남편이 훌륭한 건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그런 남편이 나쁜 사람인 것도 아니에요. 그냥 그 사람은 그 사람일 뿐이라는 게 불법입니다. 남편이 잘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슨 큰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에요. 다만 내가 원하는 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은 거죠. 내가 원하는 수준의 남편은 아니라는 건 맞아요. 그러나 내가 원하는 수준의 남편이 아니라고 해서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거나 모자라는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미워하거나 원망해서는 안 돼요. 그 사람하고 살든 안 살든 그건 내가 결정하면 돼요. 불교는 ‘이혼하면 안 된다’ 이렇게 가르치는 게 아니에요. 그 사람하고 결혼을 하든 이혼을 하든 그건 질문자 본인의 자유예요. 본인이 결정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는 말라는 거예요. 그 사람의 만남을 후회하거나 괴로워하지 말라는 겁니다. 내가 선택해서 내가 만났고, 헤어진다면 그 또한 내가 선택해서 그 선택에 따르는 것뿐입니다. 이게 법(法)의 이치입니다. 불법은 윤리 도덕이 아니에요.

남편의 그런 질환과 그런 습관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특징이에요. 그런 특징을 인정하고 같이 살 건지, 나는 그런 특징을 인정하지 못하니까 같이 안 살 건지는 내가 결정하면 돼요. 나는 그런 걸 원하지 않는다면 같이 안 살면 되지, 상대가 내가 원하지 않는 짓을 한다고 해서 상대를 미워하거나 나쁘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게 부처님의 가르침이에요.

질문자는 불교에 대해서 조금 오해를 하는 것 같아요. 저도 ‘무조건 남편한테 숙이고 살아라’ 이렇게 법문하는 게 아니에요. 남편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에게 저는 ‘그럼 같이 안 살면 되잖아요’ 이렇게 얘기하면 하소연했던 사람이 오히려 이렇게 대답해요.

‘그런데 아이도 있고 경제적인 이유도 있고 무엇 무엇 때문에 같이 안 살 수가 없습니다.’

같이 안 살 수 없는 상황인데 계속 상대방을 미워하면 내가 괴롭잖아요. 이왕 같이 살려면 상대를 좋게 보고 살라는 뜻에서 ‘상대를 부처님처럼 보고 사세요’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 사람과 헤어지면 안 된다’, ‘모든 남편은 다 부처다’ 이런 얘기가 아니에요. 부처님은 결혼해서 살든 혼자 살든 그런 건 간섭하지 않으셨어요. 그건 개인의 자유에 속합니다. 그러나 상대방을 미워하는 것은 돌멩이가 작다고 미워하고 나무가 크다고 미워하는 것처럼 바보 같은 행동이에요.

남편이 도박을 하면 당연히 질문자가 ‘여보, 도박 안 했으면 좋겠어’ 이렇게 얘기했을 거예요. 그런데도 도박을 계속한다면 그건 질문자가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폭력적으로 대응하면 폭행죄가 되니까 폭력으로 해결할 수도 없어요. 그리고 부모 말도 안 듣는 사람이 아내 말을 듣겠어요? 그러나 내 말을 안 듣는다고 해서 그 사람을 미워하지는 말라는 거예요. 사람은 다른 사람 말을 들을 수도 있고 안 들을 수도 있으니까요. 미워하지는 말되, 그 사람의 상태를 인정하고 그런 사람과 같이 살 건지 안 살 건지는 질문자가 결정하면 돼요.

제 이야기는 그 사람과 같이 살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살지 말라는 이야기도 아니에요. 아기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내가 그 사람과 같이 살 수밖에 없다면, 아이 아빠니까 존중해 주고 좋게 생각하고 살라는 거예요. ‘나는 그런 거 싫다. 나는 혼자서 아기 키우며 사는 게 그런 꼬락서니를 보고 사는 것보다 낫다’ 이러면 본인이 결정해서 이혼하면 돼요.

‘법륜 스님한테 물어보니 이혼하라고 했다.’
‘법륜 스님한테 물어보니까 그냥 살라고 하더라.’

이런 건 본인이 이혼하고 싶거나 그냥 살고 싶으니까 법륜 스님 핑계를 대는 거예요. 저는 같이 살든 헤어지든 여러분의 개인 인생사에 관여를 하지 않습니다. 일절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아요. 결혼을 하거나 이혼을 하는 건 개인의 자유에 속해요. 자기 선택에 속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슬퍼하는 것은 괴로움에 속합니다.

‘헤어지지 않고 같이 살더라도 괴로움 없이 사는 길이 뭐냐?’
‘헤어져도 괴로움 없이 사는 길이 뭐냐?’

같이 살고 안 살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괴로움 없이 사느냐를 두고 대화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요?”

“네. 그런데 스님, 제가 남편 성질을 좀 받아주니까 점점 더 쉽게 화를 내고 험한 말을 합니다.”

“그건 내가 반응을 봐가면서 조절하면 돼요. 내가 성질을 냈을 때 상대가 성질을 안 낸다면 내가 성질을 내면 됩니다. 상대가 화를 내면 화를 좀 받아주면 되고, 받아주기 싫으면 성질을 내면 돼요. 그런 것도 다 자기 선택이라는 거예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좋은 쪽으로 본인이 선택해서 살아가면 됩니다.

그 사람이 화를 내든, 그 사람이 도박을 하든, 그 사람이 게임을 하든, 그건 그 사람의 일이에요. 내가 그걸 고칠 수 있으면 고치면 됩니다. 그런데 고칠 수 없는 것을 고치려 들면 괴로워지잖아요. 그러니 고칠 수 없는 거는 그냥 두라는 거예요. 날씨가 더워지고 추워지는 걸 두고 날씨를 고칠 생각을 하지는 않잖아요. 내가 날씨에 맞춰서 살죠. 집을 짓고 난방을 해서 적당하게 조절해 가며 삽니다. 그런데 모든 걸 나한테 100% 맞출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이게 인생이에요. 다시 말하자면, 바깥 날씨 자체를 다 고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내가 움막을 치고 그 안에서 적당하게 나한테 맞게 조절하는 건 가능해요. 내가 옷을 더 입든 덜 입든, 집을 지어서 난방을 잘 하든,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이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라는 거예요. 그러나 날씨 전체를 따뜻하거나 춥게 만드는 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에요. 할 수 없는 걸 하겠다고 하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괴로워지는 게 당연합니다.

제 얘기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것도 아니에요. 질문자가 남편하고 대화를 해서 개선할 수 있는 건 하고, 몇 번 얘기해 봐도 안 되면 그냥 두세요. 안 되는 걸 억지로 바꾸려 들수록 상대를 미워하게 됩니다. 내 마음대로 안 되니까요. 그럴 때는 저 사람은 저렇다고 인정을 하고 사는 게 좋아요. 또 그걸 인정하고 살기엔 내가 너무 힘이 든다 하면 이혼을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러면 또 아기가 마음에 걸리겠죠. 이처럼 이해관계를 종합해 보고 정리를 하면 됩니다.”

“남편이 이렇게 도박이나 게임하는 걸 시댁에 이르고 싶은 마음도 약간 있어요. 그러면 안 되는 거겠죠?”

“되고 안 되고가 없다니까요. (웃음) 시댁에 일러서 남편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면 이르는 게 낫고, 시댁에 일러봤자 개선도 안 되고 부부간의 갈등만 심해진다면 이르는 게 손해예요. ‘이르는 게 좋냐, 이르지 않는 게 좋냐’가 핵심이 아닙니다. ‘이르는 게 결과적으로 이익이냐, 이르지 않는 게 결과적으로 낫느냐’를 평가해서 결정을 하는 거예요. 그래도 이르는 게 개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해서 한번 일러봤더니 개선이 되었다면 이르는 게 낫죠. 일러봤는데 오히려 개선도 안 되고 남편하고 관계만 나빠졌다면 ‘아, 이 문제는 남편이 내 말도 안 듣지만 시댁 말도 안 듣는구나’ 이걸 알고 개선하려는 생각을 안 해야죠. 후자의 경우라면, 이런 남편을 그대로 인정한 상태에서 내가 아이와 나의 삶을 위해서 남편과 함께 살 건지 안 살 건지를 스스로 결정하면 됩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잘 알겠다고 하지만 얼굴이 썩 밝지는 않네요. (웃음) 질문자가 바라는 제일 좋은 결과는 남편이 도박을 안 하든지, 남편이 직장 생활을 착실히 하든지, 남편이 질문자에게 잘하는 거잖아요. 그건 날씨가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기를 바라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러니 남편이 어떻게 바뀌기를 바라지 말고, 그런 남편을 둔 상태에서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좋겠는지를 본인이 지혜롭게 결정하면 돼요. 몇 가지만 개선되면 괜찮겠다고 한다면 그 몇 가지 개선을 위해서 노력을 해보면 되고요. 노력해 봐도 개선이 안 된다면 남편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거라고 봐야 해요. 그러면 현재 있는 그대로의 남편을 객관적으로 살펴보세요. 내가 원하는 게 100점인데 100점은 아니지만 80점은 된다면 계속 같이 사는 게 나아요.

만약에 헤어진다고 하면 그것도 결과를 미리 따져보면 됩니다. 이혼하고 아이도 하나 있는 여자가 새로운 남자를 만나 살려고 할 때 현재 아기 아빠보다 더 나은 남자를 만날 가능성이 있겠는지도 미리 점검해 봐야 합니다. 그게 더 낫겠다면 그렇게 결정해도 돼요. 이 사람하고 사느니 아예 혼자 사는 게 낫겠다고 하면 그렇게 결정해도 되고요. 현재 내 조건에서 아이 하나를 데리고 결정을 할 때는 이 아이 아빠와 사는 게 낫겠는지, 혼자 사는 게 낫겠는지, 다른 남자하고 사귀어서 함께 살면서 아이에게는 아빠가 따로 있는 관계로 사는 게 낫겠는지, 모든 경우를 잘 따져보고 결정해야 어느 쪽으로 결정하든 후회가 없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이혼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요즘 시대에 누구하고 사느냐는 내 자유에 속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의 자유가 있는 반면에 거기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요. 그걸 본인이 고려해서 지혜롭게 결정을 하는 거예요. 그건 누가 도와주는 게 아니에요. (웃음)

본인이 잘 살펴서 결정하되, 다만 감정적으로 결정하면 안 됩니다. 내 인생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남편을 미워하면 결국 아이도 자기 엄마가 미워하는 사람을 미워하게 돼요. 그러면 부녀간에 원한이 맺히게 됩니다.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면 아이에게 좋지는 않겠죠.

그러니 헤어지더라도 상대를 미워하면 안 돼요. 안 맞으니까 그냥 헤어질 뿐이지, ‘네가 뭘 잘못했기 때문이다’, ‘네가 도박을 하지 않았느냐’, ‘네가 게임을 하지 않았느냐’ 이런 말을 하면 안 돼요. 그런 조건을 인정하고, 그런 가운데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할 건지만 결정하면 돼요.

이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다양한 사람이 있습니다. 질문자는 남편이 도박을 하다가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고 했지만, 멀쩡하게 있던 집을 도박으로 날려버리는 사람도 있고, 도박 빚을 못 갚아서 자살해 버리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면 남편이 죽어버리거나 엄청난 빚을 지는 것보다는 그래도 마이너스 통장을 만드는 게 나은지, 헤어지는 게 나은지를 질문자가 선택해야 해요. 세상에는 그렇게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같이 사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러니 그 마이너스 통장에 너무 집착하면 안 돼요. 까먹어도 자기 돈을 까먹었지 내 돈을 까먹은 게 아니라면 큰일은 아니에요. 밤에 나가서 다른 여자를 만나거나 밖에 나가서 폭행을 하고 다니는 거에 비한다면, 혼자 방 안에서 게임하는 건 어떻게 보면 큰일이 아니에요. 내가 원하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큰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닌 것과 나쁜 짓은 성격이 달라요. 그걸 자꾸 혼동하시면 안 돼요.

질문자는 본인이 원하는 대로 안 되니까 저한테 질문을 했을 거예요. 질문자의 상황과 그 어려움은 저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내가 원하는 만큼 안 되는 상황을 인정하고, 그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할 건지를 본인이 결정해야 해요.”

“남편을 미워하지 않고 제가 괴로워하지 않으면 아이에게는 과보가 없는 건가요?”

“그렇죠. 괴로워하지 않는데 어떻게 과보가 생기겠어요? 미워하고 원망한 데서 과보가 생기잖아요.”

“네, 잘 알겠습니다.”

“네. 지금 생각하면 이게 큰일이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그리 큰일이 아니에요. 이대로 살아도 나중에 돌아보면 별로 큰일이 아니고, 헤어지고 혼자 살아도 나중에 돌아보면 별로 큰일이 아닙니다. 물론 지금은 어렵게만 느껴지죠. 여기 인도 성지순례하면서 샤워도 못하고, 날씨는 덥고, 세수며 양치질도 제대로 못하고, 잠도 학교 교실에서 자면 그 순간순간은 진짜 힘들어요. 한국에서 살던 습관과 너무 다르니까요. 그런데 이걸 한국에 도착한 뒤에 돌아보면 어떨까요? 순례단이 오늘 출발했으니까 내일이면 다 한국에 도착합니다. 한국에 가서 열흘쯤 지난 뒤에 돌아보면 뭘 먹었는지, 어디서 잤는지, 세수를 했는지 안 했는지, 이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그러니 질문자도 지금에 너무 전전긍긍하지 말고, 조금 크게 보고 결정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즉문즉설을 1년 넘게 매일매일 잘 듣고 있습니다. 저와 비슷한 사례의 질문자에게 스님께서 남편을 부처님처럼 여기라고 말씀하셔서 저도 거기에 해당되는지 정말 궁금했는데, 이렇게 답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괴로움 없이 살겠습니다.”

“네. 남편 때문에 힘들다고 찾아오는 분들에게 ‘그렇게 힘들면 헤어지면 되잖아요’라고 하면 대부분은 ‘헤어질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해요. 그 이유를 물어보면 이렇게들 이야기합니다.

‘애들이 있어서요.’
‘부모님이 계셔서요.’
‘남편이 이런 문제는 있지만 저런 건 좋아요.’

얼마 전에도 어떤 할머니 한 분과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남편이 다른 여자를 두고 있어요. 남편이 미워 죽겠습니다.’
‘그럼 헤어지면 되잖아요. 황혼이혼을 하세요.’
‘아이고, 이혼은 꿈에도 생각 안 해봤어요.’

그럼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어차피 헤어지지 않고 같이 사는 건데 그러면서 상대를 미워하면 본인만 괴롭잖아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나이도 드셨고 하니 남편을 놔주세요. 다른 사람도 좀 만나보도록 그냥 두세요. 그래도 병들어 침대에 누운 남편의 똥오줌을 받아내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요? 남편은 그래도 자기 밥 자기 손으로 먹고, 자기 똥 자기가 누잖아요. 자기 몸 가지고 다른 사람도 만나고 돌아다니는 걸 어쩌겠어요. 그게 문제이긴 하지만, 그 정도면 놔두는 게 집에서 질문자가 남편을 간호하는 처지가 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이런 말은 바람을 피워도 된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주어진 조건을 바꿀 수 없다면 그런 조건 가운데에서도 내가 괴로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뭐냐는 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헤어질 수 없다고 하는 분에게는 오히려 남편을 시비하지 말고 남편 말에 ‘예, 알겠습니다’라고 하라고 말하는 거예요. 주로 남편이 화를 낼 때 그렇게 하면 됩니다. 남편이 다른 건 다 좋은데 화를 벌컥벌컥 낸다면 화를 낼 때 ‘아이고, 화날 일이 있었구나. 알겠어’ 이렇게 받아주고요. ‘그래, 당신 말이 맞아. 알았어’ 이렇게 하면 상대가 화를 안 내거나 내더라도 덜 내잖아요. 그러면 나한테 유리하다 이 말이에요. 그런 뜻으로 한 말이지, 남편이 무조건 부처님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문맥을 같이 살펴보세요.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 끝을 보지 말라는 말도 있잖아요. 어떤 상황에서 스님이 저런 말을 했는지도 살펴봐야죠. 상대를 받아주는 마음을 내면 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걸 가르치는 거지, 남편이 부처라거나 남편이 악인이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웃음)

그런데 질문자가 제 얘기를 그렇게 들었다는 건 아직 이 남자하고 살고 싶다는 심리가 있다는 뜻이에요. 같이 살 때 좋은 게 더 많으니까 그 말이 질문자의 귀에 그렇게 들리는 거예요. 그러니 질문자가 조금 더 살펴서 신중하게 결정하세요. 중요한 것은 마음에 괴로움이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지금 남편이 도박하는 것, 게임하는 것은 고칠 수가 없습니다. 또 정신적인 질환도 쉽게 고쳐지지는 않아요. 그걸 감안하되, 내 돈까지 도박해서 넘기는 게 아니라면 ‘그래, 아기 아빠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질문자는 아직 직장도 다니면서 자기 돈 벌어 자기가 쓰잖아요. 어차피 이혼하면 내가 벌어서 아이를 키워야 해요. 이혼했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이 도박을 하든 뭘 하든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잖아요. 그러니 제가 보기에 지금은 같이 살아도 별로 질문자한테 손해 날 일이 없어요. 질문자에게 이득이 안 될 뿐이지, 손해 날 일은 없습니다. 안 그래요? 이득이 안 될 바에는 같이 안 살겠다는 건 물론 본인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살아보고 선택해도 늦지는 않을 거예요. 질문자에게 손해까지 나는 상황이었다면 애초에 저한테 묻지도 않고 그냥 이혼을 해버렸을 겁니다. 지금은 큰 손해까지는 아니지만 기분이 좀 나쁘겠죠. 내 마음대로 안 되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어봤던 거예요. 어떤 선택을 하든, 아기를 키우는 엄마는 아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고 생활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혼을 하든 안 하든 거기에 관계없이 마음이 편안해야 해요.”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마음이 힘들어서 기르던 반려 동물을 밖에다 버렸습니다. 후회를 하여 반려 동물을 찾아다녔고 한 달 만에 찾았으나 그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 세일즈로 사람을 많이 상대를 하는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거짓말, 사기 등을 옆에서 보면서 사람이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환멸을 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더 이상 질문자가 없자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제 목소리가 들려요?”

“네, 이제 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생방송을 마무리할 무렵에 통신이 점점 불안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빨리 방송을 끝내라는 메시지인가 봐요. 최대한 방송을 안정되게 하려고 했는데 예기치 않게 이렇게 되네요. 지난번에 인터넷이 조금 불안정해서 이번에는 인터넷이 안정된 인근 호텔에 예약을 해달라고 하고 뛰어갔는데, 인도라는 나라가 이렇게 계획대로 잘 안 됩니다. (웃음)

얘기가 길어지면 또 방송이 끊길 수 있으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인생이 이렇습니다. 이런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거예요. 그래도 인도에서 아예 방송을 안 하는 것보다 낫지 않나요? 이럴 바에는 안 하는 게 나을까요? (웃음)

인터넷 사정이 안 좋지만 방송을 하는 게 좋겠죠. 오늘 즉문즉설만 아니었으면 녹화 방송을 내보냈을 거예요. 하지만 금요 즉문즉설은 여러분과 직접 대화를 하는 프로그램이니까 이렇게 무리해서라도 생방송을 진행했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버스를 세워놓고 도로변에서 방송을 할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도 방 안에서 방송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법회 끝나고 나가면 태국 절에 제가 사과를 해야 해요. 남의 방에 무단으로 들어와서 점유를 했거든요. (웃음)

다음 주에는 제가 한국에 들어갑니다. 한국에 가면 여러분과 안정적으로 대화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인도 현지에서 방송을 하니까 생방송하는 느낌이 나네요. (웃음) 통신 상태가 좋지 않는데도 이렇게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나니 해가 저물었습니다.

잠시 후에 수자타아카데미로 밥솥을 싣고 갈 트럭이 도착했습니다. 성지순례에서 사용한 밥솥 118개를 버스에 싣고 바라나시까지 가져왔는데, 다시 밥솥을 트럭으로 옮겨 실어야 합니다.

“전부 나와서 밥솥 옮기는 울력을 같이 합시다.”

버스 안에서 밥솥을 내리고, 다시 트럭에 밥솥을 싣는 작업을 릴레이로 했습니다. 트럭에 밥솥을 차곡차곡 쌓는 일은 스님이 맡았습니다.

스님은 트럭의 가로와 세로, 높이를 측정한 후 밥솥이 든 박스의 크기와 개수를 계산하여 박스를 쌓았습니다.

큰 트럭은 렌트비가 비싸서 작은 트럭을 빌렸기 때문에 처음에는 과연 밥솥이 다 실릴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박스 크기별로 빈틈이 없도록 계산하여 118개의 밥솥을 모두 트럭에 실었습니다. 덕분에 경비를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수고했어요!”

짐 싣기 울력을 마치고 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한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바라나시 사르나트에서 조계종이 주최하는 상월결사 인도순례 입재식에 참석한 후 다시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상카시아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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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3-02-24 13:26:58

호롱불

연일 강행군이시네요. 질문자의 답변에 큰 공감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02-16 16:12:12

장효선

수고하셨어요
오늘하루도 평안 하셨어 고맙습니다^^

2023-02-16 1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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