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12.14. 공동체 연말 수련 2일째, 수행법회
“귀신이 무서워서 혼자 못 자겠어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공동체 연말수련 2일째 날입니다. 밤새 눈이 펑펑 내렸습니다.

4시에 일어나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곧바로 눈 쓸기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새벽부터 수련을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밤새 눈이 많이 와서 문경 수련원 오르막길이 꽁꽁 얼어 차가 올라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오늘부터 깨달음의장을 시작하기 때문에 수련에 참가하는 분들이 올라올 수 있도록 먼저 눈을 다 같이 쓸기로 했습니다.


한 팀은 연수원에서 눈을 쓸고, 한 팀은 차를 타고 문경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스님은 문경 수련원으로 갔습니다. 문경 수련원까지 가는 도로에도 눈이 쌓여있었습니다. 이미 지나간 차들이 눈을 다져놓아 길이 미끄러웠습니다. 눈길을 살살 달려 문경 수련원 아래에 도착했습니다. 아직 날이 어두워 트럭에 불을 켜고 일 나누기를 했습니다.


아래에서 문경 수련원까지 오르는 거리는 1.1km입니다. 가장 먼저 송풍기로 눈을 불어 길을 뚫었습니다. 포슬포슬한 눈 아래 이미 얼음이 얼어있었습니다. 눈삽으로 얼음을 깨서 도로 한쪽으로 밀었습니다. 뒤이어 비를 든 사람들이 남은 눈을 싹싹 쓸었습니다. 달이 지고 곧 희양산 위로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영하 13도의 날씨는 매서웠습니다. 장갑을 두 개씩 끼고 양말을 두 개씩 신고 열심히 몸을 움직여도 점점 손발이 꽁꽁 얼어갔습니다. 맨 얼굴이 따갑고 콧속으로 들어오는 찬 공기가 시렸습니다. 그래도 문경 수련원이 나올 때까지 멈출 수 없었습니다.



손을 호호 불고 발을 동동 굴러가며 눈을 쓸고 또 쓸었습니다.




두 시간이 지나 눈쓸기를 마치고 연수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언 몸을 녹인 후 10시부터 다시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어제저녁에 2차 만일결사 공동체 사업 방향에 대해 모둠별로 토론을 했는데, 그 결과를 먼저 발표했습니다.

모둠별로 차례대로 나와서 토론한 내용을 요약해서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 남북관계의 악화로 활동의 폭이 줄어들고,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해보는 경험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활동가들의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을까 고민이 됩니다.
  • 온라인 정토회로 전환하고 나서 공동체 성원들은 혼란이 많았습니다. 공동체만의 특성을 살린 온라인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공동체에 새로 입재하는 젊은 활동가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젊은 활동가들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좀 더 활력을 갖고 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해보면 좋겠어요.
  • 영상미디어팀을 행사기획팀, 행사방송팀, 일상방송팀, 세 팀으로 세분화해서 전문성을 높여가는 방법을 마련해보면 좋겠습니다.
  • 50세 이하의 실무자는 의무적으로 해외에서 파견 근무 경험을 갖도록 하면 좋을 것 같아요.
  • 인도에 불법을 전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은데, 성지순례를 통해 만나는 인도 사람들에게 전법을 할 수 있는 방법도 마련해 보면 좋겠습니다.

  • 공동체에 들어오려면 만 배를 해야 하는 게 젊은이들에게는 부담이 큰 것 같은데, 절하는 횟수를 줄이든지, 만 배를 하는 기간을 더 늘려주든지 하면 어떨까요?
  • 백일출가에 신청할 수 있는 조건이 정토불교대학 졸업인데, 문턱을 더 낮추면 어떨까요?
  • 공동체 성원들이 견문을 넓힐 수 있게 만행을 하도록 하거나 다른 공동체를 탐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면 조금 더 활력이 되지 않을까요.
  • 개척 분야에 대해서는 젊은 활동가들이 과감하게 권한을 갖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많이 주면 좋겠습니다.
  •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고 홍보하는 영역에 대한 투자가 부족한 것이 아쉽습니다. 홍보 영역만 보강한다면 인력 부족 문제는 대부분 해결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 외에도 다양한 제안과 의견이 쏟아졌습니다. 스님은 발표 내용을 메모하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발표 내용을 듣고 난 소감과 의견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정토회가 30년 전에 출발할 때 목표로 정한 것이 ‘대중 주체’였습니다. 대중 주체란 전문적인 출가 스님이 운동의 주체가 아니라 평범한 일반 대중들이 운동의 주체가 되는 방식으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나가자는 것입니다. 즉, 출가해서 공동체에 들어온 우리들은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하자는 거예요. 대중이 중심이 되어서 모든 일을 하고, 우리는 그 뒤에서 보이지 않는 밑거름 역할을 하자는 겁니다. 그래서 출가한 우리들은 자기를 버린다는 관점을 가지자는 것이 정토회를 시작할 때부터 가져온 관점입니다.

대중의 뒤에서 보이지 않는 밑거름 역할을 하자

만약 출가 대중이 중심이 되면 대중은 그저 우리를 후원하는 사람이 될 뿐이에요. 활동을 해도 후원하는 대중들은 안 보이고 우리의 얼굴이 세상에 보이게 됩니다. 출가 대중이 모든 걸 결정하고 대중은 단지 우리를 따르고 지원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엘리트 중심의 운동 방식이에요. 초기에 논의할 때는 이 방향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대중 주체로 갈 것인가, 전문가 중심 또는 엘리트 중심으로 갈 것인가?’

정토회가 처음 출발할 때 이 문제를 갖고 굉장히 많은 토론을 했어요. 대중의 규모가 지금처럼 큰 규모였다면 이런 주제가 토론할 만하지만, 그때는 대중이 한 명도 없는데 출가한 우리들끼리 모여서 ‘대중 주체로 갈 거냐, 안 갈 거냐’ 이렇게 토론을 했었습니다. 긴 토론 끝에 결국 대중 주체로 간다는 방침을 정했어요.

‘지금은 출가한 우리가 중심이지만, 정토회는 30년을 목표로 하여 대중 중심으로 간다. 그리고 출가한 우리는 대중의 그림자가 된다.’

그래서 실무자 한 명이 대중의 뒤에서 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그동안 사업을 진행해 온 거예요. 대중 10명이 어떤 사업을 하면 거기에는 꼭 전문가 1명은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전문가가 위에 있고 대중 10명이 아래에 있는 게 아니라, 대중 10명이 위에 있고 그 아래에 1명의 전문가가 붙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실무를 보조해 주는 거예요. 이렇게 세상과 역방향으로 가는 것을 목표로 정하고 정토회가 출발한 겁니다.

이런 방식의 활동은 실제로 일반 세상에서는 하기가 어려운 일이에요. 이게 가능하려면 완전히 자기라는 것을 버리는 자세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토행자의 서원에 ‘무아, 무소유, 무아집’이라는 목표를 넣은 겁니다.

‘출가 대중이 아래에서 떠받치고 대중이 중심이 되어 활동을 하도록 해보자’

이런 목표를 갖고 정토회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 대중 주체라는 목표가 어느 정도는 성취가 됐어요. 지금은 정토회 대표도 대중이 하고 있고, 의사 결정도 대중이 하고 있고, 대부분의 사업 추진도 대중이 하고 있습니다. 대중이 직장을 다니면서도 많은 봉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어쨌든 본인의 얼굴과 이름이 나기 때문이에요. 다른 단체에 가면 누구 아래에서 이름도 안 나고 그냥 돈만 내고 시킨 대로만 활동을 해야 하잖아요. 그러나 정토회에서는 스스로 주체가 되어 활동할 수 있습니다. 이점이 대중을 움직이는 큰 동력입니다. 물론 정토회가 갖고 있는 이상과 지향도 큰 동력이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욕구가 충족되기 때문에 대중이 많은 활동들을 주체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처음 정토회를 함께 시작했던 사람들이 당시 조건이 매우 어려웠는 데도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중 하나는 자기들이 주체가 되어서 사업을 추진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정토회는 규모가 커졌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젊은 사람들이 스스로 사업을 결정하고 주체가 되어서 마음껏 진행할 수 있는 여지가 적어진 편이에요. 그리고 초창기에 비해 스님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없고요. 초기에는 스님과 함께 일을 하고 살았는데, 지금은 규모가 커져서 공동체에 들어와도 스님과 같이 일할 기회가 거의 없는 상태이거든요.

인간의 심리 중에는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도 있지만, 주체성을 추구하는 마음도 있어요. 사람은 정신적인 존재이다 보니 자기가 결정하는 것에 큰 만족을 느낍니다. 이것도 크게는 욕구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무자들의 헌신성에 감동을 받는 대중들

오늘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히려 실무자들이 소외감이나 박탈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정작 지금 열심히 활동하는 대중들의 동력은 실무자들의 그런 헌신성에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 많습니다. 평화재단에 나오는 전문가들이 그래도 봉사하는 마음으로 활동을 계속하는 이유는 법륜 스님의 존재나 사업의 방향성도 있지만 실무자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보면서 감동한 것이 큽니다. 사실은 이런 이유로 많은 전문가들이 10년 이상 우리와 함께 일하고 있는데, 공동체 내부에서는 오히려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초창기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공동체 대중의 새로운 고민이 크게는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첫째, 이제 나이도 들고 병도 있다 보니 생활이 좀 팍팍하고 어렵다는 겁니다. 이런 생활상의 문제가 하나 있고요. 둘째, 개인의 방향성 문제예요. ‘공동체에 살고 있는 우리의 비전이 무엇인가?’ 이런 문제가 지금 대두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토회는 처음부터 대중 주체를 목표로 출발을 했다고 설명을 드린 거예요.

여러분의 발표를 종합해보면, 엄격한 기준을 유지해서 출가 대중이 점점 줄어드는 걸 감수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기준을 완화시켜서 사람들이 조금 더 참여하도록 할 것인가? 이런 고민을 여러분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대중이 중심이 돼서 활동을 한다 해도 일부 영역에서는 전문 활동이 필요하거든요. 또 정토회는 전부 자원봉사자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사업의 지속성을 갖기가 굉장히 어려운데, 그나마 정토회가 사업의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실무자 여러분들, 즉 공동체 대중이 있기 때문입니다.

죽을 때까지 평생 타자만 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어떤 희망이나 꿈을 갖고 들어오면 출가 생활을 못 견딥니다. 그래서 제가 유수 스님에게 ‘다른 일 안 하고 죽을 때까지 평생 타자만 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던 거예요. 유수 스님은 그때 마음을 탁 내려놓았기 때문에 출가를 할 수 있었던 겁니다.

외국에서 석사 과정을 하던 학생이 정토회 공동체에 들어오겠다고 지원한 적이 있었어요. 자기가 앞으로 박사 과정까지 마치면서 실현하고 싶은 어떤 이상이 있었는데, 정토회에 와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해 보니까 자기 눈에는 정토회에 굉장한 미래의 가능성이 보인대요. 그러면서 자기가 공동체에 들어오면 미래에 어떤 비전이 있겠느냐고 묻기에 제가 한마디로 이렇게 말했어요.

‘비전이 없습니다. 여기는 그냥 죽을 때까지 그저 이렇게 사는 곳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돌려보낸 적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되게 하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대중은 얼굴이 나거나 이름이 나거나 이런 이점이 있어야 움직여요. 아무리 스님이 법문에서 무아, 무소유, 무아집을 강조해도 현실에서는 자기 것이 생기고, 자기 이름이 나야 움직입니다. 그런 것 없이 움직이기는 현실적으로는 어려워요. 공동체에 들어온 여러분들도 현실에서는 같은 어려움을 느끼고 있고요.

그래서 가야 할 목표와 현실을 항상 조율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현실을 너무 반영하면 목적성이 없어져요. 그렇다고 목적만 너무 강조해 버리면 현실에서 한 발이라도 떼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나마 양쪽을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온 것이 오늘날 정토회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정토회는 많은 시간이 들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까지 법문을 한 후 점심 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식사 후에 1시부터 다시 토론을 이어나갔습니다.

“지난 30년을 돌아보면서 굳이 없애도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업이 있습니까?”
“미래 30년을 내다봤을 때 이 일은 지금부터 새로 시작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까?”

스님은 공동체 대중들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지며 앞으로 공동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계속 생각할 수 있게 했습니다. 대중들은 각자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했습니다.

온라인 영역, 홍보 영역, 으뜸절 개발, 교육연수 시설 등 앞으로 투자해야 할 사업들에 대해서도 많은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사업에 대한 토론은 이 정도로 마무리를 하고요. 저녁부터는 공동체 생활에 대해 어려운 점, 개선할 점이 있는지 자유롭게 대화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눈치 보지 말고 무슨 이야기든지 가볍게 내어놓고 생활 상의 어려운 점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어요.”

4시간 동안의 토론을 마치고 스님의 마무리 말씀을 들은 후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수행법회 생방송을 하기 위해 문경 수련원으로 이동하였고, 공동체 대중들은 모둠별로 모여서 ‘공동체 생활’을 주제로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오늘 날씨가 많이 춥죠? 저는 지금 문경 수련원에서 여러분과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어제부터 2박 3일간 문경연수원에서 공동체에 살고 있는 실무자들과 함께 만일결사를 평가하고, 앞으로 어떻게 자기 진로를 정하고 어떤 부서에 일할 것인지 등을 주제로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젯밤부터 새벽까지 눈이 많이 쏟아지고, 오늘 아침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졌어요. 오늘 문경 수련원에 ‘깨달음의 장’을 하러 오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차가 다닐 수 있도록 새벽부터 길을 쓸어놓았습니다. 두 시간 이상 길을 쓸고 낮에 해가 떴는데도 불구하고 길이 얼어서 저도 올라오기가 힘들었습니다. 어제는 경전대학 강의를 해야 하는데 차가 아예 못 올라올 정도였어요. 날씨가 아주 춥습니다. 내일 조금 풀리기는 한다지만 다음 주까지 한파가 계속되는 것 같으니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으뜸절, 실천장소 활동 영상과 스님의 농사 영상을 본 후 질문을 받았습니다. 네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했고, 한 명은 현장에서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귀신이 무섭다며 두려움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귀신이 무서워서 혼자서 못 자겠어요

“저는 평소에 즉문즉설을 보며 감동을 많이 받습니다. 남편이 죽거나 자식이 죽은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한다고 위로와 치료가 되겠어요? 하지만 들어올 때는 울던 사람이 스님의 말씀을 듣고 끝날 때는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놀랍습니다. 저도 늦게나마 스님을 만나고 불법을 만난 덕분에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살아있는 사람이나 맹수가 겁나는 게 아니라 죽은 시체나 귀신이 겁납니다. 어릴 적 어른들에게 귀신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귀신이 있다고 믿었고, 이 나이에도 죽은 시체 옆에는 무서워서 혼자 못 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면 혼자 가끔 시골에 며칠 자면서 들깨 농사라도 지으려고 하는데 혼자는 무서워서 못 잡니다. 다른 사람들은 뭐가 무섭냐고 하지만, 제 마음이 무서운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따지면 산 사람이 무섭지, 죽은 시신은 무서울 게 없죠. 그냥 돌덩어리나 나무토막이나 고깃덩어리 같은 물체 덩어리에 불과하니까요. 우리가 어릴 때부터 늘 무서운 귀신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그런 두려움이 생기는데, 이걸 트라우마라고 해요. 어릴 때 놀랐던 가슴이 지금도 놀라는 거예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뱀 보고 놀란 가슴 새끼줄 보고 놀란다’ 이런 말도 있잖아요. 이런 걸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어릴 때 자꾸 무서운 귀신 얘기를 듣다 보니까 나이를 먹은 지금도 밤이 되면 귀신이 나올까 봐 겁이 나는 거예요.

그런데 왜 귀신은 낮에 안 나오고 항상 밤에 나올까요? 희한하죠? (웃음) 어둡다는 것은 안 보인다, 즉 모른다는 뜻입니다. 이런 두려움은 다 무지에서 생깁니다. 꼭 귀신이 아니라도 우리가 낯선 사람을 만나면 조금 두려움이 생기잖아요. 낯선 곳에 가도 그렇고, 낯선 일을 해도 그렇습니다. 왜 그럴까요? 낯선 곳도 모르고, 낯선 사람도 모르고, 낯선 일도 모르기 때문이에요. 어두운 것도 모르는 거예요. 그러니 두려움은 무지로부터 생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서움의 실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일어나는 거예요. 어떤 주어진 조건에서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머리로는 그렇게 알지만 다들 어릴 때 귀신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어두운 데 가면 두려움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고 현실이에요.

질문자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싶다면, 방에 딱 앉아서 불을 켰다가 껐다가 하면서 이렇게 연습해 보세요.

껐다. 무섭다. 무서움이 어디서 왔을까?
켰다. 안 무섭다. 그럼 무서움이 어디로 갔을까?
껐다. 무섭다. 무서움이 어디서 왔을까?
켰다. 안 무섭다. 무서움이 어디로 갔을까?

이렇게 자꾸 해보는 수밖에 없어요. 다시 말해 적응해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 시골에 가서 자보기도 하면서 자꾸 연습하는 수밖에 없어요. 이게 도저히 두려워서 안 된다면 안 가는 수밖에 없어요. 그 트라우마가 일어나지 않도록 어두운 데 안 가고, 혼자 안 있고, 시체 옆에 안 가는 수밖에 없어요. 이런 선택지는 좀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런 데 안 가고도 살 수 있잖아요.”

“네, 그런데 자꾸 귀신 꿈이며 시체 꿈을 꿉니다. 그러다가 꿈에서 딱 깨서 ‘아, 여기는 서울이었지’ 하면 겁이 안 나지만, 만약에 시골에서 혼자 자다가 귀신 꿈을 꾸면 무서워서 어쩌나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먼저 죽으면 다행이지만 만약에 아내가 먼저 돌아가시면 저 혼자 무서워서 어떻게 살까, 그런 걱정까지 다 하고 있습니다.” (웃음)

“걱정이 많네요. 그런데 질문자가 먼저 죽을 확률이 높지, 부인이 먼저 죽을 확률은 별로 높지 않습니다. (웃음) 열에 아홉은 질문자가 먼저 죽을 확률이 높아요. 그것도 죽어봐야 아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만약에 부인이 먼저 죽고 질문자가 혼자가 돼서 무섭다면 다른 할머니 한 분을 또 모시고 와서 같이 자면 되잖아요. 꼭 부부가 돼야 한다는 게 아니에요. 어차피 있는 집에 옆방에 와서 자라고 하거나 한 방에서 자자고 얘기하면 되죠. 뭘 그런 걸 걱정하고 있어요? (웃음)

뭐든지 너무 걱정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이래 되면 이래 되고, 저래 되면 저래 되겠지’ 이렇게 생각하세요. 세상 사람이 다 어릴 때는 부모 없으면 못 살 것 같지만 부모 없어도 다 살고, 아내나 남편이 죽으면 못 살 것 같지만 막상 사별하고 나면 다 삽니다. 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게 돼 있어요. 그래서 옛날부터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다’, ‘궁하면 뚫린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다 살게 돼 있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첫째, 질문자가 걱정하는 일은 안 일어날 확률이 높습니다. 둘째, 일어나더라도 다 살게 돼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돼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옛날에 공부할 때 스님께서 ‘과거도 미래도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지금, 여기, 살아라’라고 하셨는데, 제가 오지도 않는 미래를 걱정했네요. 헛공부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부인보다 먼저 죽기를 원했는데 제가 먼저 죽는다고 하신 말씀이 참 좋았습니다.”

“제 말은 평균 수명이 그렇다는 거예요. 평균 수명이 여성이 남성보다 6세 정도 더 높기 때문에 평균으로 따지면 질문자가 먼저 죽을 확률이 훨씬 높다는 거예요. 저희 동네에 80세가 넘는 어르신이 17명인데 그중 남성은 두 분밖에 없습니다. 다 여성입니다. 최고로 나이 많은 98세 어르신도 여성이에요. 통계도 그렇지만, 제가 직접 시골에 와서 살아보니 여성이 더 오래 사는 경우가 다수입니다.(웃음) 그러니 너무 걱정 안 해도 돼요. 자연스럽게 질문자가 먼저 죽을 가능성이 높아요. 반드시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너무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한 가지 질문이 더 있습니다. 아내가 가끔 저보고 ‘법륜스님이나 당신이나 신체 구조는 비슷한데 어째서 스님의 마음은 태평양보다 넓고 당신 마음은 밴댕이 속만큼도 못 하냐’고 꾸지람을 해요. 그럴 때 자존심이 많이 상합니다.”

본래 속이 좁은 사람도, 마음이 넓은 사람도 없다

“질문자가 자기는 속이 좁고 스님은 넓다고 표현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마음에 안 들면 성질을 내고 그래요. 이처럼 속 또는 마음이라는 건 특별히 더 넓고 특별히 더 좁은 게 없습니다.

그러나 방심하면 자기 성질이 그대로 나오고, 알아차림을 유지하면 그런 성질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질문자도 수행을 해나가면서 이 사로잡힘에서 조금씩 조금씩 자유로워지면 마음도 넓어지게 돼 있습니다. 바늘 끝만 하다가, 바늘귀만 하다가, 손가락만 하다가, 주먹만 하다가 이렇게 넓어져요. 본래 넓은 사람, 좁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육조 혜능 대사가 이렇게까지 말씀하셨던 거예요.

‘내 마음 깨달으면 부처요, 내 마음 어리석으면 중생이다.’

중생과 부처가 본래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마음이 깨달았느냐, 마음이 어리석으냐 그 차이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사람 마음은 모두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마음을 조금 넓게 쓰는 사람이 있고 조금 좁게 쓰는 사람이 있을 뿐이에요. 마음이 조금 밝은 사람이 있고 조금 어두운 사람이 있을 뿐이지, 본질에는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조금씩 공부를 해 나가면 저절로 좋아질 거예요.”

대화를 마치니 9시가 다 되었습니다. 방송을 마치고 스님은 다시 차를 타고 선유동 연수원으로 돌아와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공동체 연말수련 마지막 날입니다. 하루종일 수련을 한 후 저녁에는 경전대학 강의를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8

0/200

김희란

감사합니다

2022-12-26 11:11:58

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2-12-24 11:12:20

민선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22-12-23 10: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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