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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부터 4일 동안 공동체 연말 수련이 진행됩니다. 스님은 수련을 진행하기 위해 새벽 6시 30분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해 문경으로 향했습니다.
차로 2시간을 달려 9시에 문경새재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차에서 내리자 하늘에서 갑자기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서울공동체, 문경공동체, 두북공동체에서 60여 명의 대중이 모두 도착하고, 스님이 인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원래는 제2관문까지 갔다가 내려오려고 했는데, 날이 춥고 눈이 많이 내리니까 각자 갈 수 있는 만큼 걷다가 내려오겠습니다. 너무 힘들면 바로 뒤돌아서 내려가세요. 자,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스님이 앞장서고 대중들이 그 뒤를 이어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도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눈이 내리는 아름다운 경치를 마음껏 즐겼습니다.
세상이 하얗게 덮이자 이 길을 함께 걷는 도반들이 더욱 가까워진 기분이 듭니다. 하얀 눈이 온 세상을 순백의 가슴으로 품었습니다.
지름틀 바위, 조령원 터, 교귀정, 조곡폭포를 차례대로 지나는 동안 눈은 벌써 땅 위에 소복하게 쌓였습니다.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보드득’ 하고 소리가 났습니다.
제2관문 앞에 도착하여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끼리 사진 한 장 찍읍시다.” (웃음)
날은 추웠지만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자, 이제 내려갑시다.”
다시 눈을 뽀드득뽀드득 밟으며 문경새재 주차장까지 걸어서 내려왔습니다. 왕복 7km의 거리를 걷는 데에 약 2시간이 걸렸습니다.
문경새재 근처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 한 후 선유동 연수원에 도착했습니다. 오후 2시부터는 공동체 연말 수련 입재식을 시작했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봉독 한 후 대중들이 스님에게 법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이번 공동체 수련 기간 동안 어떤 주제로 대화를 나눌 것인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짧게는 3년 천일결사를 마쳤고, 길게는 30년 만일결사를 마쳤습니다. 지난 30년을 돌아보면 그동안 정토회가 이룩한 모든 일은 다 정토회 회원들이 이룩해 낸 결과입니다. 회사라면 자본이 있어서 회사를 이끌어 온 큰 바탕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고, 뛰어난 경영자가 있어서 회사를 잘 운영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토회는 그 어떤 자본이나 뛰어난 기술이나 훌륭한 경영자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기보다는 정토회 회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진 경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길게는 30년, 짧게는 3년 동안 수고하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3년 정도는 누구나 한마음 내면 할 수 있는 기간인데, 30년이라는 긴 세월은 생의 절반을 바쳐야 하는 기간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30년 가까이 또는 30년을 넘어서 활동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20세를 사람이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로 친다면 인생의 절반을 바친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일결사를 회향하면서 오늘부터 3일 동안은 이런 주제로 허심탄회하게 논의해 보려 합니다.
‘지난 30년 가까이 활동해 보니 정말 이 일이 인생을 바쳐서 할 만한 일이었는가?’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일 중에 어떤 일은 좀 조정을 하는 게 좋겠다든지, 또 우리가 사는 생활방식 중에서 어떤 것은 좀 조정하면 좋겠다든지, 이런 주제로 대화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원칙을 잘 지키자고 한다 해서 비난받아서도 안 되고, 현실에 맞게 고치자고 한다고 해서 비난받아서도 안 됩니다. 과연 어떤 것이 우리가 안고 있는 과제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그 방안이 지금만이 아니라 먼 미래까지 내다봤을 때도 도움이 되는지, 이에 대해 함께 의논해봅시다. 일하는 것이나 생활하는 것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어주셨으면 해요.
어차피 우리에게는 부처님이 살던 당시의 삶이 모범입니다. 그러나 시대에 맞게 조금씩 변형이 되어온 것입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시대를 외면하는 결과를 가져와서 고립되거나 소멸한 경우도 있고, 시대에 적응하다 보니 세속적으로 변질이 되어서 오히려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름과 모양만 남아있지 굳이 부처님이 출가해서 상가를 이룬 본래의 의미가 사라진 것입니다. 시대에 맞게 한다는 게 자칫 잘못하면 타락할 위험을 높이게 되는 측면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 당시의 출가 정신과 상가의 전통을 잘 지켜나가자고 하는 의견은 존중되어야 할 일이지 비난받거나 외면받아야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하는 이 일도 결국 살아있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측면도 고려해야 합니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이 너무 힘들고 고달프다면 이것 또한 보편성이나 확장성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힘들고 고단한 길을 과연 미래에 후손들도 함께 가야 할 길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비록 세상을 거슬러가는 것처럼 비칠지라도 언젠가는 우리가 사는 삶의 방식이 세상에 보편화되고 확장이 되어야 환경 문제든, 절대빈곤 문제든, 불평등 문제든, 세상이 가진 문제들이 해결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 측면에서 공동체 안에 살면서 힘들고 고달픈 점에 대해서 능히 문제 제기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함께 검토를 해나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생활하면서 불편했던 것이나 어려웠던 점에 대해서는 두 가지를 같이 토론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나도 하고 너도 하고 우리 모두가 한다면 과연 우리들의 생활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삶이 세상 사람들에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길인가?’
이렇게 사는 모습이 불평등을 해소하고 보편적인 삶을 추구하는 길이 되겠는지, 환경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적 생활이 되겠는지, 여기까지 확장해서 검토해야 합니다. 이와 반대로 남이 볼 때는 좋게 보이는 원칙적인 삶이라 할지라도 내 삶이 고달프다면 다른 사람이 받아들여서 확장할 수가 없습니다. ‘이론은 맞는데 실현 가능성이 있겠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기 때문입니다.
이 사이에서 우리는 중도를 찾아야 합니다. 때로는 약간 이쪽에 치우치고, 때로는 약간 저쪽에 치우치지만, 작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보편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누군가가 원칙을 제시하고 거기에 따를 거냐 안 따를 거냐가 기준이 아니에요. 지난 만일 동안은 출발할 때 세운 기준을 갖고 거기에 적응된 사람은 공동체에 남고, 적응이 안 되는 사람은 활동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만일결사가 끝났기 때문에 다시 만일을 출발하면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지켜온 원칙 중에 개선될 부분이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
첫째, 집단적으로 한번 논의해 볼 필요가 있고, 둘째, 부처님의 전통적 법과의 관계에서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도 같이 검토할 필요가 있고, 셋째, 우리가 하는 일이 정말로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규모로 말하면 정토회보다 규모가 훨씬 큰 단체들도 많고, 엄격하기로 말하면 더욱더 엄격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가지각색의 개인이 있고 여러 집단이 있는데, 지금 우리가 하는 일들이 인류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얼마만큼 도움이 되는지 다시 한번 검토해보자는 겁니다. 비록 지금은 도움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미래에는 대안적 모델이 될 수 있는지도 한 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록 지금까지 해 온 일이라 하더라도 그런 비전이 없다면 굳이 지속할 필요가 있겠느냐 하는 거예요. 또 아직 하고 있지 않은 일 중에서 새롭게 준비해야 할 일들은 어떤 일들이 있는지도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잘 안다고 하지만 각각의 일들이 어떤 미래 비전을 갖고 있는지를 잘 모르고 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정토회 전체의 비전은 대중과 함께 만들어 갈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모인 이 자리에서는 조금 더 범위를 좁혀서 공동체에 들어와서 사는 사람들의 역할과 비전은 어떤 것이 될까 하는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눠보면 좋겠어요. 의문도 해소하고 또 방향도 잡았으면 합니다.”
이어서 스님은 정토회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 속에서 공동체 대중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깨달음의 장 진행, ▶방송영상 제작, ▶교육연수, ▶해외 개척 사업, ▶농사와 재활용 유통, ▶행자원 인력 양성 등 크게 여섯 가지의 사업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공동체 대중이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이 있는지 큰 그림만 말씀을 드렸고, 나머지 문제는 질의응답을 하면서 대화를 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에 대해 먼저 얘기한 이유는 우리가 원을 세우고 모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지 방향을 먼저 잡아놓고, 그다음에 그에 맞는 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의논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아요. 그래서 먼저 일에 대해서 의논을 하겠습니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후 오후 4시부터는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이야기한 활동의 방향 중에서 구체적으로 그림이 안 그려지는 내용이 있는지, 혹시 빠진 내용은 없는지, 누구든지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하고 제안을 했습니다.
약 두 시간 동안 토론을 하고 스님의 의견을 경청한 후 첫 번째 수련을 마쳤습니다.
저녁 식사를 한 후 예불을 하고 분과별 토론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별로 모여서 오늘 토론한 주제에 대해 심화 토론을 이어나갔습니다. 밤새 눈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스님은 저녁 8시부터 정토경전대학 생방송 수업을 하기 위해 문경 수련원으로 이동했습니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차가 산길을 올라가지 못해 걸어서 명상원까지 올라갔습니다.
경전대학 학생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내일모레는 강추위가 온다고 하니 여러분들도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있는 곳은 산의 약간 높은 곳에 있는데, 눈이 내려서 걸어 올라왔습니다. 살다 보면 이렇게 예기치 못한 일들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구애받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자유로운 삶입니다.”
지난 시간까지 법화경 공부를 마쳤습니다. 오늘은 화엄경 공부를 시작할 차례입니다. 스님은 화엄경이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해 소개하고, 화엄경의 방대한 내용을 요약한 법성게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공부할 경전은 화엄경입니다. 화엄경은 법화경보다 더 방대합니다. 불멸 후 시간이 흐르면서 소승불교는 20여 개의 작은 부파(部派)로 나뉘었습니다. 소승불교에 반대하면서 일어난 대승불교에도 수많은 경전이 출현하면서 서로 다른 주장을 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경전을 다 포함한 경전이 화엄경입니다. 세상에 있는 불교라는 이름의 서로 다른 많은 것들을 화엄경에서는 거의 다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로 ‘총경(總經)’이라고 불리고, 또 모든 것을 두루 융합하고 원융한다고 해서 ‘원경’이라고 불립니다. 같은 불교인데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여러 경전들을 하나로 통합해서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인연 따라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이라고 설명한 것이 바로 화엄경입니다.
80권에 이르는 방대한 화엄경을 210자로 요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굉장하죠? 그분이 바로 신라의 의상대사입니다. 중국 사람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반야부 사상을 260자로 요약한 반야심경처럼 화엄경을 210자로 요약한 경전이 법성게입니다. 오늘은 법성게에 대해 공부해보겠습니다.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법성(法性)은 법의 성품, 진리의 성품, 존재의 본질이라는 뜻입니다. 원융(圓融)은 둥글고 두루 하다는 뜻입니다. 무이상(無二相)은 두 가지 모양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문장은 모든 존재하는 것의 본질은 두 가지 모양이 없다는 의미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두 가지 모양이란 무엇일까요? 옳다 할 것도 없고 그르다 할 것도 없고, 선이라 할 것도 없고 악이라 할 것도 없고, 길다 할 것도 없고 짧다 할 것도 없고, 넓다 할 것도 없고 좁다할 것도 없고, 크다 할 것도 없고 작다 할 것도 없고, 많다 할 것도 없고 적다 할 것도 없고, 생겼다 할 것도 없고 멸했다 할 것도 없고, 깨끗하다 할 것도 없고 더럽다 할 것도 없고, 성스럽다 할 것도 없고 부정하다 할 것도 없고, 늘었다 할 것도 없고 줄었다 할 것도 없고, 부처라 할 것도 없고 중생이라고 할 것도 없고, 이렇게 두 가지 모양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다, 정토와 예토가 둘이 아니다, 길고 짧음이 둘이 아니다, 넓고 좁음이 둘이 아니다, 선과 악이 둘이 아니다,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 둘이 아니다, 시작과 끝이 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법의 성품, 즉 존재 자체가 그렇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번뇌와 망상이 모든 것을 이분법으로 나눕니다. 해는 뜨는 것도 아니고 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 자리에 있을 뿐인데, 인식상의 착각으로 인해 ‘해는 뜬다’, ‘해는 진다’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사상을 과학이 발달한 현재에 설파한 것이 아니라 2600년 전의 사람이 이야기했고, 1300년 전에는 의상 대사가 그 내용을 요약했다는 것입니다. 굉장한 이야기죠.
이 문장은 반야심경의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구절과 일맥상통합니다.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이 문장은 모든 존재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해는 뜨고 지는 게 아니라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존재의 본질은 본래부터 움직이지 않고 고요하게 그냥 있다는 의미입니다. 생겨나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거죠.
무명무상절일체(無名無相絶一切)
무명무상(無名無相)은 ‘길다’, ‘짧다’, ‘옳다’, ‘그르다’ 하고 이름 붙일 것도 없고, ‘잘났다’ ‘못났다’ 하고 모양 지을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모양을 짓는다는 것은 상을 짓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절일체(絶一切)는 일체가 다 끊어졌다는 뜻인데, 이것은 이름과 모양이 다 끊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들어서 아는 지혜인 문혜(聞慧), 사유해서 아는 지혜인 사혜(思慧), 닦아서 아는 지혜인 수혜(修慧)도 도움이 되지만, 그 정도의 지혜로는 알 수 없고 증득해서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리저리 생각한 사량분별(思量分別)이나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경지가 아닙니다.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
증지소지(證智所知)는 깨달음의 지혜로 체험한 지혜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비여경(非餘境)은 사량분별이나 사유로는 이런 경지를 알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두 구절을 더 설명한 후 다음 시간에 나머지 구절에 대해 설명하기로 하고 이번 주 수행 연습 과제를 이야기하고 생방송 수업을 마쳤습니다. 학생들은 교실별로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여 마음 나누기를 하고, 스님은 다시 차를 타고 선유동 연수원으로 돌아와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눈이 많이 내려서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아침 일찍 눈 쓸기 울력을 한 후 오전 10시부터 공동체 연말 수련 2일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저녁에는 문경 수련원으로 이동하며 수행법회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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