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9.3.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 인도JTS 라즈길 소풍
“구걸하던 아이가 미소를 지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인도 보드가야에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어젯밤 9시에 인도인 스태프들과의 모임을 마친 후 잠시 눈을 붙였다가 새벽 1시 30분부터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 5시였습니다.

생방송 음원에 맞춰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독송을 차례대로 했습니다. 경전독송을 마치자 새벽 2시 15분이 되었습니다. 사홍서원을 한 후 스님이 생방송 화면 속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실시간 채팅창에는 인도에서 밤을 새워가며 예정된 생방송을 이어나가는 스님에게 감사하다는 댓글이 쉼 없이 올라왔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아침 기도 잘하셨습니까? 저는 지금 인도에 있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한국을 출발해서 밤늦게 인도에 도착했습니다. 인도에 도착한 다음, 곧장 기차를 14시간 타고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보드가야로 왔습니다. 이곳에 도착해서는 JTS가 운영하고 있는 병원도 둘러보고, 수자타아카데미 학교도 둘러보고, 학교 축제도 함께 했습니다.

여기는 인도 보드가야입니다

어제는 보드가야 대탑 참배도 하고, 이번에 새로 준공식을 한 한국 절에도 방문해서 축하드리고, 몇몇 외국 절의 스님들을 찾아뵙고 인사도 나누었습니다. 마침 금요 즉문즉설을 하는 날이었는데, 수자타아카데미에 있는 와이파이로는 생방송이 안정적이지 않아서 인도JTS 이사님이 보드가야에서 운영하는 호텔에서 생방송을 진행했습니다.

즉문즉설을 마치고 기다렸다가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까지 여기서 한 다음 수자타 아카데미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아침 6시가 다 되어 가지만 이곳 현지 시각은 오전 2시 15분입니다. 저도 한국 시간에 맞추어서 1시 30분에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웃음)

이어서 스님이 지난 5일 동안 한국을 출발해 인도에 도착한 후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있었던 일들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이 끝나자 오늘 읽은 경전에 대한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만일결사 마지막 백일기도 기간 동안에는 매일 아침 ‘부처님의 일생’을 읽기로 했습니다. 만일결사를 마무리하면서 부처님이 태어나서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다시 한번 새기기 위함도 있고, 또 이번 겨울에 성지순례 오시는 분들도 부처님의 일생을 다시 한번 새기면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정했습니다.

함께 행복해지는 길은 없을까

오늘 읽은 경전은 기록에 따라 나이가 다르게 표기되어 있는데 부처님이 12살 또는 15살 때의 이야기입니다. 부처님이 아버지인 정반왕을 따라 농경제에 참석했다가 농부의 헐벗을 모습에 충격을 받고, 쟁기질을 하는 소의 모습에도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코뚜레를 한 소가 농부의 채찍에 맞아 코에도 피가 나고 등에도 피가 나는 모습, 이내 농부가 쟁기로 흙을 파니 땅에서 벌레가 나오고, 그 벌레를 다시 새가 쪼아 먹는 모습을 보고도 충격을 받게 됩니다. 부처님은 이런 장면들을 통해 세상의 실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화장한 얼굴만 보다가 화장을 지운 얼굴을 보듯이, 또 가면만 보다가 가면을 벗은 얼굴을 보듯이, 늘 궁중에서 아름답게 꾸며진 모습만 보다가 세상의 진실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때까지 궁중에서의 삶만 접했으니 늘 삶이라는 게 그렇게 편안한 줄로만 알았는데, 농부의 고단한 삶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거죠. 그리고 농부에게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냐고 물었을 때 농부로부터 ‘관리가 매기는 높은 세금 때문’이라는 대답을 듣게 되었고, 낮은 카스트의 삶은 높은 카스트의 삶에 의해 희생되고 있다는 비참한 현실을 접하게 됩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자신의 풍요로운 삶이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고통 위에 주어진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된 거죠. 이때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훗날 프라세나짓왕이 ‘어떻게 해야 훌륭한 왕이 될 수 있습니까?’ 하고 부처님께 질문을 했을 때 ‘타인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지 마십시오’라는 설법을 하게 됩니다.

부처님은 농부와 소 그리고 새가 벌레를 쪼아 먹는 모습을 보고 불쌍한 마음과 함께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나가 살기 위해서는 왜 다른 하나가 죽어야 하는가? 하나가 편안하기 위해서는 왜 다른 하나가 고통스러워야 하는가? 하나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왜 다른 하나가 불행해야 하는가? 함께 사는 길, 함께 행복해지는 길은 없을까?’

이런 의문이 들었다는 건 농부가 겪는 고통을 마치 내가 겪는 듯, 마치 내 가족이 겪는 듯, 마치 내 친구가 겪는 듯 느끼고 그들의 삶에 대해 마치 내 일처럼 근심과 걱정을 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경험은 지금까지의 삶이 환상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출가의 길을 나섰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고 모든 의문을 풀게 됩니다.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부처님은 먹는 것은 얻어먹고, 옷은 주워 입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잤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스스로 내려가신 거예요.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사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살면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다가,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와서 본인도 행복하고 만인에게도 행복을 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이 보여주고 있는 기적

이런 부처님의 삶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삶입니다. 얼굴이 희든 검든, 남자든 여자든, 계급이 높든 낮든, 지위가 높든 낮든,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모든 사람은 다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수자타 아카데미 학생들이 현실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학교에 처음 왔을 때는 신분적으로 천민이어서 배우지 못하고 구걸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특히 여자 아이들은 심한 차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유치원에 다니고, 초등학교에 다니고, 무용을 배우고 태권도를 배우고 학습을 할 수 있게 되니까 지금은 도시의 어떤 아이들 못지않게 똑똑합니다. 교복을 입고, 신발도 신고, 급식도 하게 되니까 영양실조가 심했던 아이들도 지금은 아주 건강해졌습니다.

무용 선생님에게 이 아이들 중 예술 감각이 뛰어난 아이들이 몇이나 있는지 물어보니 아주 많다고 답했습니다. 인도에서 무용, 예술에 있어 최고 좋은 학교는 델리에 있는데, 그 학교에 입학할 만큼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서만 15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교육을 받으면 누구나 다 잘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술적 재능은 신분과 관계없이 누구나 계발할 수 있는데, 학습적 재능은 집안의 분위기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은 학력평가에서 대부분 1등급이나 2등급을 받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 어릴 때부터 받는 교육과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여자 아이들도 학년이 올라가면서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든다거나, 양민 아이들에 비해 천민 아이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도 거의 없습니다.

계급에 관계없이, 또 성별에 관계없이, 수자타아카데미의 모든 아이들이 무럭무럭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 아이들을 돕는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부처님의 말씀이 실제로 증명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큽니다. 누구나 다 교육을 받고 기회가 주어지면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니까요.

왕궁에서 왕자로 살면 대부분 세상을 하찮게 보고 자기 마음대로 살게 되는데, 부처님께서는 오히려 그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를 깊이 탐구하셨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계급 차별이나 성차별이 모두 전생의 죄나 신의 뜻이라고 생각했는데, 부처님은 신의 뜻이라고 하기에도 불공평하고, 내가 알지도 못하는 전생으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도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연구한 끝에 이것은 알지 못함, 즉 무지로부터 온다는 걸 깨달으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깨우치면 괴로움으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알려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받아 행복의 길을 걷게 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똥꾼 니다이, 기생 연화색녀, 청소부 주리반특, 살인자 앙굴리말라도 모두 깨달음을 얻고 괴로움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 법은 참으로 희유합니다. 복권에 당첨되고, 시험에 합격하고, 부자가 되는 것이 신비한 게 아니라 이렇게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 진정으로 신비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돈, 명예, 인기 등 세상의 복을 구합니다. 그런 것은 곧 괴로움으로 뒤바뀌는 윤회의 길입니다. 깨달음의 길이야 말로 진정한 법의 가피입니다. 이 길은 잃으려야 잃을 수 없고, 얻으려야 얻을 수 없는 길입니다.

최소한 불평불만은 하지 않는 삶

한국과 인도를 비교하면, 한국에서의 삶은 옛날 왕궁 속의 삶과 같고, 인도에서의 삶은 왕국 밖의 삶과 같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왕궁 밖 모습을 봐야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 위에 누리던 삶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왕궁 밖의 모습을 보고 나면, 적어도 현재의 삶을 버리지는 못하더라도 현재의 삶에 대해 불평불만은 하지 않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왕궁 밖의 모습을 보고 나서 자신이 누리던 모든 기득권을 다 내려놓고 출가의 길을 떠나셨습니다. 우리가 적어도 부처님의 제자라면 우리가 가진 것들을 다 버리지는 못하더라도 내 삶에 대해 더 이상 불평불만은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삶에서 작게라도 일부를 떼어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나누어가지는 작은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법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곧 나도 행복하고 타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보디사트바의 길, 나도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의 길,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길입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길입니다.

오늘은 어린 싯다르타 태자가 세상에 나가서 세상의 모순을 보고, 의문을 갖게 되고, 그것을 자기화하는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앞으로 젊은 시절 부처님의 삶을 함께 읽으면서 계속 공부해 나가겠습니다.”

여기까지 법문을 한 후 생방송을 종료하자 새벽 3시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한국에서 보내온 이메일과 보고 문서를 점검한 후 새벽 5시에 보드가야를 출발해 수자타 아카데미로 향했습니다. 넓은 공터에 아침 운동을 하러 나오거나, 군인 시험에 도전하기 위해 달리기 연습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일 뿐, 새벽녘 보드가야의 도심은 조용했습니다.

평소보다 빨리 30분 만에 수자타 아카데미에 도착했습니다. 인도JTS 활동가들도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학교 운동장에서 다음 주 법회에 내보낼 영상을 촬영했습니다. 스님이 직접 수자타아카데미의 구석구석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다음 주 법회에는 수자타아카데미 소개와 학교 축제 모습이 국내외 시청자들에게 방영될 예정입니다.

라즈기르 소풍

오늘은 인도JTS 스태프들과 함께 라즈길로 소풍을 가는 날입니다. 버스에 짐을 싣고 6시에 수자타아카데미를 출발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2년 반 만에 함께 가는 소풍입니다. 다들 설레는 얼굴이었습니다.

버스는 평화로운 시골길을 달렸습니다. 잘 달리던 버스는 가끔 길 한가운데 소나 염소가 자리를 비켜주지 않을 때 속도를 늦춰야 했습니다.

2시간을 달려 빔비사라 왕이 부처님을 마중했다고 알려진 제띠안 인근 마을 공터에 도착했습니다.

차에서 내리자 스태프들은 곧바로 자리를 펴고 아침 먹을 준비를 했습니다.

아침 메뉴는 한국 라면입니다. 면과 스프를 나누어 담아놓고 양파를 채 썰어 끓는 물에 넣었습니다.



“자, 한꺼번에 면을 넣어요!” 

너도나도 하나씩 라면을 들고 반으로 부숴서 넣었습니다. 


간은 한국인 활동가가 맞췄습니다. 뚜껑을 닫고 잠시 면이 익기를 기다렸습니다.

“자, 하나, 둘, 셋!”

스태프들은 그릇을 들고 줄을 서서 흥미진진한 얼굴로 냄비를 응시했습니다.


“자, 다 됐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그릇 한가득 라면을 받았습니다. 

바브랄지가 직접 담근 무김치를 꺼냈습니다. 김치가 알맞게 익어서 라면과 먹기 딱 좋았습니다.  

돗자리에 둘러앉아 뜨거운 라면을 후후 불어가며 먹었습니다. 안 그래도 더운 날씨에 뜨거운 라면을 먹으니 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맛있어요?”

“아차해!”(좋아요)

라면을 끓인 시간보다 먹는 시간이 빨랐습니다. 금세 밥을 다 먹고 정리를 했습니다.

“저는 천천히 먼저 걸어갈게요.” 

“저희는 축구 한 판하고 가겠습니다.”(웃음)

스님은 먼저 제띠안으로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축구를 한다던 스텝들도 곧 따라왔습니다.

“아니 축구할 동안에 천천히 걸어가려고 했는데 벌써 오면 어떡해요?”(모두 웃음)

스님은 스태프들은 반갑게 맞았습니다.

그리고 제띠안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부처님은 카필라바스투에서 출가하여 라즈길로 와서 ‘알라라까르마’와 ‘웃타카라마푸트라’라는 이름을 가진 두 분의 스승을 만나 수행을 하셨습니다. 스승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곧 한계를 깨닫고 친구 다섯 명과 함께 가야로 갔습니다. 그래서 가야에서 마침내 깨달음을 얻고 바라나시로 가서 친구 다섯 명에게 법을 전한 후 다시 가야로 돌아와 우루벨라 가섭, 나디 가섭, 가야 가섭 등 천 명에게 법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천 명의 제자와 함께 이 길을 따라서 라즈길로 왔습니다.

제띠안에 기념탑이 생긴 이유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은 신하들을 데리고 여기까지 마중을 나왔습니다. 빔비사라왕은 바로 이곳 제띠안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고 곧바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자신의 왕궁으로 초대했지만, 부처님은 거절하셨어요. 결국 빔비사라왕은 왕궁 밖에 있는 대나무 숲을 부처님이 머물 수 있게 기증했습니다. 그곳이 바로 불교 최초의 절인 죽림정사입니다. 부처님은 죽림정사에 머물면서 많은 사람을 교화했습니다.

이곳 제띠안이 유명해진 이유는 빔비사라왕이 부처님을 만난 곳이고, 부처님께 귀의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기념하여 탑을 쌓은 곳이 여기입니다. 자, 그럼 탑을 향해 삼배를 하겠습니다."

잠깐 설명을 듣는데 땀이 맺힐 새도 없이 줄줄 흘렀습니다. 삼배를 한 후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고, 따뜻하다!” 

한 시간 약 3km를 걸었을 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게이트가 있었습니다. 문에는 ‘No Entry’(입장 불가)라고 써져있었습니다. 

문을 지키는 경찰은 개통식을 하지 않아서 입장을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한국에서 오신 스님과 도보순례를 왔어요.”

스태프들이 사정을 해서 결국 경찰이 상부에 허가를 받아주었습니다. 스님은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내년 1월에 천여 명 정도가 성지순례를 오는데 그때 순례를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네, 미리 사무소에 허가를 받으시면 가능합니다.”

스님과 스태프들은 다시 길을 따라 왕사성을 향해 걸었습니다. 일행이 늘었습니다. 경찰도 함께 동행했습니다.

다음 게이트에 도착하자 다른 경찰이 동행했습니다.

걷는 사이 옷이 온통 땀으로 젖었습니다. 1km마다 세워져 있는 탑이 점점 더 반가워졌습니다.


그래도 정부에서 땅을 완만하게 다듬어서 오르막길이 예전처럼 그렇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스님이 힘들면 업고 가겠다던 프라모드지에게 말했습니다.

“프라모드지 운이 좋네요. 스님을 업지 않아도 되겠어요.”(웃음)

“지금이라도 업어드릴 수 있어요.”

가방을 벗어놓고 달려온 프라모드지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스님은 웃으며 괜찮다고 하고 계속 길을 걸었습니다. 7.5km를 가니 고갯마루가 나타났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계속 걸었습니다.

13km, 4시간의 도보 끝에 라즈기르에 도착하자 ‘단야바드’(감사합니다)라는 팻말이 보였습니다.

이번에는 죽림정사로 갔습니다. 3년 전에 왔을 때는 곳곳이 공사 중이었는데 공사가 끝나고 많이 정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1250명이 앉을 수 있을까요?”

스님과 스태프들은 내년 성지순례 때 1250명이 함께 앉을 장소를 답사했습니다.


죽림정사를 나와 인근 식당에 가서 점심 겸 저녁을 먹었습니다. 탈리, 한국으로 치면 백반을 한 그릇씩 먹었습니다.


밥을 먹고 다시 버스에 올랐습니다. 마지막 일정은 라즈기르에 새롭게 단장한 동물원입니다. 3시 30분에 동물원에 도착했는데 입장은 3시가 마감이었습니다. 스태프들은 무척 아쉬워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왕사성 북문 밖 나란다 대학으로 가는 중간에 있는 ‘실라오(Silao)’라는 마을의 시장으로 가서 스태프들에게 줄 선물로 카자를 샀습니다. 카자는 설탕 시럽에 찍어 바삭바삭하고 층층이 쌓인 과자로 주로 축제나 특별한 날에 먹습니다. 실라오 카자는 기후 조건과 물 때문에 더욱 유명합니다.


카자를 사고 있는데 한 자매가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언니로 보이는 아이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관광객들은 무심히 자매를 지나쳤습니다. 차 안에서 그 모습을 본 스님이 카자를 사러 간 활동가를 불러 말했습니다.

“먹는 걸 사면서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 건 그렇잖아요. 카자를 다 사고 나서 한국인 활동가들 몫에서 한 봉지를 빼서 주세요.”

스태프들을 위한 카자를 다 사서 버스에 싣고 떠나기 전에 그 아이에게 과자 한 봉지를 주었습니다.

차창밖으로 내다보니 지금껏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아이가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버스는 이제 수자타아카데미로 출발했습니다. 스님도 스테프들도 고단했던지 금세 잠이 들었습니다.  돌아가는 동안 해가 지고 날이 어둑해졌습니다.




저녁 7시가 넘어 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했습니다. 가장 나이가 많은 까미스왈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까미스왈지 괜찮아요?”

“괜찮습니다.”(웃음)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 카자를 단맛 한 봉지, 짠맛 한 봉지씩을 주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넉넉하게 샀습니다.

“고맙습니다. 스님!”

스태프들은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먼 마을에 사는 스태프들에게는 상자에 담아서 실어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잘 가요. 내일 봐요!”

스태프들을 모두 배웅하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다음 주 법회로 사용할 수자타아카데미 축제 영상을 점검하고 씻은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수자타아카데미에서 마지막 날입니다. 오전에는 인도인 스태프들과 수련을 하고 오후에는 한국인 활동가들과 인도JTS 사업 논의를 한 후 생방송으로 일요명상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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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각

인도활동가들과 스님의 정이 느껴지네요.

2022-09-12 12:49:33

윤경희

멋지십니다~~^^

2022-09-11 06:37:08

일향화

감동입니다 더운날씨에 저렇게 오래 걷는것도 ,구걸하던 소녀에게 과자를 챙겨주신것도 참 여운이 많이 남습니다

2022-09-08 14: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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