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8.31 수자타아카데미 교실 방문
“우리들에게는 작은 돈이지만 이곳 아이들에게는 큰 기쁨이 됩니다”

안녕하세요. 수자타 아카데미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아직 전정각산에 해가 뜨기 전 새벽 4시 30분, 스님은 인도JTS 활동가들과 함께 새벽 예불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불생가비라 성도마갈다 설법바라나 입멸구시라”

공양을 마친 후 대중이 스님에게 한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마을 잔치가 취소가 된 사건을 예로 들며 인도JTS 활동가들이 어떤 관점을 갖고 마을 개발을 해나가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마을 잔치를 열려고 했는데, 풍물패 콘테스트에서 떨어진 자그디스푸르와 두르가푸르에서 마을 사람들이 항의를 하는 바람에 마을 잔치를 취소하기로 했습니다. 인도는 주민들이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떼를 지어 항의해서 문제를 푸는 사회 분위기가 있어요. 항의를 안 하면 자신들의 뜻이 제대로 관철되지 않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항의를 하더라도 거기에 너무 굴하거나 흔들리면 안 됩니다. 반대로 너무 관리 위주로 생각해서 마을 사람의 민심을 못 읽고 항의를 무시해서도 안 돼요.

마을 사람들의 항의에 대응하는 방법

물론 마을 개발을 할 때는 스태프들의 이야기를 제일 중요시해야 돼요. 마을 사람이 항의한다는 이유로 스태프들의 의견을 자꾸 잘라버리면 나중에 스태프들의 충성심이 없어져 버려요. 반대로 스태프들의 얘기만 듣고 마을 주민들의 항의를 무시해 버리면 민심과 유리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스태프들의 얘기를 우선적으로 듣되, 스태프들의 얘기만 듣지 말고 항상 다른 통로를 통해 마을 사람들의 얘기도 들어야 해요. 그걸 놓치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의 의견을 스태프들을 통해서 듣는 것 외에도 따로 듣는 통로를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마을 사람들이 시위한다고 해서 무조건 수용하면 안 되고, 항상 스태프들과의 의논을 거쳐서 스태프들이 수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수용을 해야 합니다. 또 항의 내용이 정당한지를 살펴서 정당하다면 파격적으로 수용을 하고, 그 내용이 지나치게 이기적이라든지 막무가내 식이라면 마을 사람들이 아무리 항의해도 거기에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서는 늘 이렇게 사건 사고와 분란이 생기기 때문에, 거기에 흥분해서 대응하다 보면 늘 경계에 끄달리게 돼요. 그러니 차분하게 시간을 좀 두고 적절히 대응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수행자이기 때문에 수행자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어떤 욕망을 갖고 뭘 하려고 자꾸 따라가면 안 돼요. 그러려면 우리가 이런 일을 하고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 우리 스스로 욕망을 버리고 살자고 해놓고 정작 세상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기는 일을 우리가 한다면 그건 잘못된 거예요. 아무리 그것이 세상의 요구라 해도 그런 욕망을 이해하는 것과 그런 욕망을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런저런 사건 사고에 들뜨거나 흥분하지 않는 거예요. 강도를 당했다고 학교 문을 닫아버리고, 무슨 사고가 생겼다고 학교 운영을 안 하면 안 돼요.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서 학교를 만들었고, 아이들 공부를 시키기 위해 여기에 왔지, 다른 일을 하려고 온 게 아니잖아요. 사건이 생겨도 아이들이 공부하는 데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인도 사람들과 언어도 잘 안 통하고 이곳에 갇혀 살다시피 하는 데다 워낙 일이 많다 보니 스태프들의 보고 내용만 갖고 모든 걸 결정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정부 관료들도 보고하는 내용만 듣고 서류만 보고 결정을 내리니까 민심하고 유리되는 거예요.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합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스님은 곧바로 학교 전체를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정원이 어떻게 가꾸어져 있는지, 가지치기를 해야 할 나무는 없는지, 신축 건물은 공사가 잘 되었는지, 내년에 1250명이 성지순례를 올 경우 문제가 없을지 등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등교 시간 한참 전부터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놀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전체 학생 조회에 참석한 후 오전 9시부터 학년별 교실 방문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1학년 교실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지금 무엇을 공부하는 시간이에요?”

“힌디어를 배우는 시간입니다.”

“칠판에 쓴 힌디어를 한번 읽어 보세요.” (웃음)

“하늘에 구름이 끼었습니다.”

“하늘에 구름이 끼면 어떻게 돼요?”

“비가 옵니다.”

“다들 자기 이름은 쓸 줄 알아요?”

“예스!”

스님은 교실 전체 아이들에게 어느 마을에 사는지 일일이 확인했습니다.

“두르가푸르에 사는 사람? 자그디스푸르에 사는 사람? 방갈비가에 사는 사람? 만코시힐에 사는 사람? 아자드비가에 사는 사람?...”

스님의 질문에 따라 아이들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세요.”

스님이 교실을 나가자 아이들은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힌디어를 큰 목소리로 따라 했습니다. 다음은 2학년 교실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스님은 아이들이 사용하는 연필을 들고 직접 공책에 필기를 해보았습니다.


“선생님, 연필이 제대로 안 나와요. 인도 연필은 원래 이래요? 글씨를 써도 색깔이 너무 연해요. 연필을 좀 더 좋은 것을 사서 나눠 주세요.”

3학년 교실에도 들어가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합장하고 스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나마스떼, 스님지!”

“지금 뭐하는 시간이에요?”

“사회 시간입니다. 인도의 지형에 대해 공부하고 있어요.”

스님은 칠판에 인도 지도를 그린 후 아이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인도 북쪽에 있는 이 산맥의 이름이 뭐예요? 인도의 한가운데에 있는 이 고원의 이름이 뭐예요?”

“...”

“아니, 인도에 살면서 히말라야 산맥과 데칸 고원도 몰라요? 최소한 자기 나라의 지형에 대해서는 알아야 해요. 다음에 스님이 왔을 때도 모르고 있으면 안 돼요. 알았죠?”

“예스!”

이어서 4학년, 5학년, 6학년 교실을 차례대로 방문했습니다. 수학 수업을 하고 있는 교실에서는 스님이 직접 수학 문제를 내어서 아이들에게 직접 풀어보게 했습니다.




날씨가 얼마나 무더운지 교실 방문을 다 마칠 무렵 스님은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습니다.

곧바로 운동장을 가로질러 지바카 병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진료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환자들에게 약을 잘 제공하고 있는지 점검한 후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중학생들도 격려해 주었습니다.


11시 30분부터는 학생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스님도 발우 하나를 들고 학생들 사이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저는 양을 조금만 주세요.”

달과 사부지를 배식받고 학생들 사이에 순서대로 앉았습니다. 모든 학생이 배식을 다 받은 후 함께 공양 게송을 하고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했습니다.




“반찬에 뭐가 더 들어가면 좋겠어요?”

“꾸츠 네히.” (없어요)

공양을 마치고 스님은 아이들이 하는 대로 3단 설거지를 하고 그릇을 헹구었습니다.




12시 30분부터는 중학생 교실 방문을 시작했습니다. 7학년과 8학년 교실을 둘러보았습니다.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요리사는 있지만, 학생수가 워낙 많아서 중학생들이 부엌에서도 돕는이를 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부엌에서 봉사를 한 학생들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점심 식사를 잘 준비해 주셔서 저도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웃음)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디선가 덜컥덜컥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지도를 고정시켜놓지 않으니 선풍기 바람에 날려서 소리가 많이 나네요. 공부하는데 방해되지 않도록 고정시켜놓아 주세요”

7학년은 오전에 쉬람단이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병원, 공양간 등 곳곳에서 봉사활동을 한 후 오후에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8학년은 마을 유치원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고 와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혹시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어려운 점은 없어요?”

“네, 없습니다. 저희가 잘하고 있어요.”

늘 요청할 게 많았던 중학생들이었는데, 오늘은 아무런 요청할 게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오후 2시가 넘어서 교실 방문을 모두 마쳤습니다.

잠시 휴식을 한 후 오후 4시부터는 한국에 있는 정토회 회원들을 위해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역사상 처음으로 인도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수행법회를 생방송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상황이 좋지 않아 고화질 송출은 도저히 불가능해서 핸드폰으로 라이브 스트리밍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 학교 옥상에서 학교 전경을 소개하는 것도 검토해 보았지만,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어서 전정각산이 보이는 지바카 병원 앞 보리수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인도JTS 활동가들도 돗자리를 깔고 앉아 생방송 법회를 함께 들었습니다. 법회를 시작하니 쨍쨍하던 햇볕이 가시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땀으로 옷이 젖어 있던 활동가들의 옷이 점점 마르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이곳 수자타아카데미에 대해 소개를 해주었습니다.

“제가 있는 이곳은 인도 비하르주 보드가야입니다. 수자타아카데미(SUJATA ACADEMY)라고 들어보셨죠.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지금 여러분과 만나고 있습니다. 제 뒤로 보이는 저 산이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기 전에 6년간 고행하셨던 전정각산(前正覺山)입니다. 전정각산에서 부처님이 오랫동안 수행을 하셨기 때문에 부처님의 그림자가 남아있다고 전해지는 유영굴(留影窟)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앉아 있는 이곳 역시 부처님께서 주로 수행 정진하셨던 곳입니다. 옛날에는 이곳이 시체를 버리는 숲인 시타림이었어요. 부처님은 이곳에서 시신을 덮었던 옷을 입고 산을 내려가 네이란자라 강으로 가서 목욕을 하셨죠. 시신을 버렸다는 그곳에 지금 수자타아카데미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은 인도에서 ‘불가촉천민’이라고들 부르는 최하층민들이 집단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튼 세상이 좋아졌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여러분과 화상으로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웃음)

아이들이 왜 학교에 안 가고 구걸을 하고 있습니까

제가 30년 전에 성지 순례를 왔다가 이곳과 인연을 맺었어요. 부처님이 6년 고행을 하셨다는 유영굴을 참배하러 왔다가 이곳에서 구걸을 하는 많은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이 왜 학교에 안 가고 구걸을 하고 있습니까?’
‘학교가 없어요.’
‘이렇게 아이들이 많은데 학교가 없다니 말이 돼요?’
‘정말 없어요.’

이렇게 해서 마을 사람들과 의논을 거쳐 이곳에 학교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모아 보니까 150명 정도 됐어요. 그래서 교실 네 칸 정도면 한국식으로 한 반에 50명씩 세 반을 편성하고, 나머지 한 칸은 선생님들이 교무실로 쓸 수 있겠다 해서 그렇게 짓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학교가 완성되기도 전에 학생 수가 250명이 넘었어요. 그래서 다시 건물 설계를 2층으로 변경해서 2년 만에 준공을 했습니다. 준공할 때는 학생 수가 거의 300명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런데 학교를 열어 수업을 하다 보니 자꾸 쓰러지는 아이들이 생겼어요. 의사 선생님이 와서 진찰을 해보더니 영양실조라서 먹을 걸 좀 줘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급식을 시작했더니 이 동네 저 동네 아이들이 다 몰려와서 학생 수가 갑자기 500명 가까이로 늘어났어요. (웃음)

처음에는 문맹 퇴치를 위해서 조그마하게 학교를 운영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해서 급격히 규모가 커졌습니다. 결국 이 산 주위의 불가촉천민 15개 마을마다 유치원을 지어서 운영하게 되었고, 유치원생만 1천 명이 넘습니다. 그 아이들이 전부 수자타아카데미에 다녔는데, 지금은 정부가 지은 학교가 그곳에 생기면서 많이 분산시켰어요. 동네마다 조그마한 두 칸짜리 정부 학교가 있거든요. 그래서 가능하면 먼 데 있는 아이들은 정부 학교에 보내고, 가까이 있는 아이들만 이 학교에 오게 해서 현재는 초등학생이 500명,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150명 정도 됩니다. JTS에서는 중학교까지만 운영하고 있는데, 고등학생은 정부 학교에 다니면서 수자타아카데미에 와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주로 유치원 선생님이나 스태프 역할을 하고 있어요.

전정각산 주위에 위치한 15개 마을의 총인구는 1만 2천 명 정도 됩니다. 그래서 이번 성지순례 때 1만 명에게 공양을 올리자고 해서 음식도 대접하고 식량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현재 마련 중입니다. 올해 연말에 만일결사를 회향하니까 회향 기념으로 만인 공양을 하자는 취지예요. 그래서 오늘 학교를 둘러보니까 만인 공양을 위해 준비할 게 많았습니다.

‘학교 안에 1만 명이 들어올 수 있을까? 어떤 식으로 앉아서 밥을 먹도록 해야 할까? 지원 물품을 1만 명에게 혼란 없이 원활하게 나눠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재미있는 공연은 어디서 할까?'

지금부터 많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250명이나 성지 순례를 와서 이번 만인 공양을 함께 하려고 해요. 그래서 이렇게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경제도 어렵다는데, 왜 스님은 1250명이나 데리고 인도에 가느냐? 아무리 옛날부터 계획했던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 많은 대중을 데리고 굳이 무리해서 갈 필요가 있느냐?’

저도 그런 문제 제기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30년 전에 이곳 인도를 여행하면서 절실히 느낀 것이 있었어요. 하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감동이고, 또 하나는 인도의 그런 열악한 조건을 보면서 책임을 통감한 것입니다.

‘아, 이건 내 책임이다. 우리의 책임이다.’

왕궁에서만 지내던 부처님은 왕궁 밖을 나가 사문유관(四門遊觀)을 경험하고 나서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출가의 원을 세웠습니다. 그것처럼 제가 한국에 살다가 이곳 인도의 열악한 상황을 경험한 것은 마치 부처님이 왕궁 밖을 나온 경험과 같았어요. 그래서 절대 빈곤 퇴치를 위해서 30년의 원을 세우고 지난 30년간 활동을 해온 겁니다.

1250명이 이곳에서 미래 30년의 서원을 세운다면

그런데 이번에 정토행자 1250명이 와서 부처님이 수행하셨던 이곳에서 다시 수행의 과제를 돌아보고,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셨던 곳에서 깨달음의 내용을 함께 새기고, 부처님이 처음 설법하신 곳에서 세계 전법에 나설 것을 발원한다면, 이것은 돈이 들고 좀 복잡하더라도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30년 전에는 한 명의 수행자가 발원을 했습니다. 이번에 1천 명의 수행자가 발원을 한다면, 그리고 내년부터 미래 30년의 원을 새로 세운다면, 30년 후에는 인류 사회에 뭔가 큰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원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곳에 직접 와서 원을 세우고자 하는 이유는 2600년 전에 부처님이 원을 세웠던 그곳에서 그 발자취를 따라서 원을 세우자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우리가 늘 ‘힘들다’, ‘힘들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열악한 모습을 보면 괴로움의 원인이 물질적인 게 아니고 정신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물질적으로는 더없이 힘들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아, 괴로움은 물질적인 문제가 아니고 정신적인 문제이구나’ 이렇게 자각이 되어야 내가 현재 살고 있는 현실에 감사할 줄 알게 돼요.

인생을 살다 보면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먹고 입고 자는 문제를 갖고 힘들다고 하는 것은 수행자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아요. 왕궁에 살던 부처님은 출가한 후 음식을 얻어먹고, 옷을 주워 입고, 나무 밑에서 자는 방식으로 의식주 고민을 혁명적으로 극복해버렸어요. 우리는 그렇게까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현재 우리가 먹고 입고 자는 것에 불만을 갖고 그것 때문에 괴로워한다면 수행자라고 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번 성지순례도 부처님처럼은 못 지내더라도 성지순례를 하는 동안 만큼은 호텔 같은 곳에서 자지 말고 순례자 숙소에서 자고 밥도 간단하게 해 먹으면서 순례를 해보려고 해요. 그렇게 순례하면서도 우리에게 기쁨이 있고 희망이 있다면, 한국에 돌아왔을 때 삶이 훨씬 더 행복하고 자유로워집니다. 내가 한국에서 먹고 있는 음식이 인도에서 먹던 음식보다 낫고, 입는 옷이며 주변 생활환경도 훨씬 낫다고 느낀다면, 한국에서 사는 것을 갖고 무슨 불평불만을 하겠어요? 이처럼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근심 걱정, 불평불만이 없어져야 진짜 원이 생깁니다. 내가 세상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활동을 그만두게 되는 이유

내 짐이 무겁다면 이런 원을 세우고 행동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커피를 마실까’, ‘어떤 옷을 사 입을까’, ‘어떤 밥을 먹을까’ 아직도 이런 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데, 무슨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행동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한 구호 활동을 하고, 평화를 위한 행동을 하겠어요? 그냥 생각일 뿐이지 몸은 잘 안 움직이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이런 운동에 참여해 놓고 쉽게 그만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생각은 좋아 보여서 참여는 했지만 막상 시작하면 힘들고 귀찮아지는 거예요.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그만두고 하는 이유는 자신의 인생 문제가 안 풀렸다는 뜻이에요. 자기가 먹고 입고 자는 것 걱정, 또 자기를 넘어서면 제 가족 걱정을 못 버리잖아요. ‘우리 부모한테 뭐 해줘야 하고, 우리 형제한테 뭐 해줘야 하고’ 이런 생각을 못 버리기 때문에 우리가 지구를 생각하고 민족을 생각하고 이웃을 생각하는 게 어려운 거예요. (웃음)

여러분도 법문을 듣고 이런 생각에 동참해서 행동한다고 하면서도 결국은 자기 것을 챙기거나 자기 가족 것을 챙기면서 살잖아요.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다만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이 이렇게 시끄럽다는 겁니다. 어느 나라든 어느 당이든 어느 집단이든, 모두 자기 개인의 이익을 취하거나 자기 집단의 이익을 취하거나 자기 나라의 이익을 취하니까 전쟁이 일어나고, 정파 싸움을 하고, 남북이 대치하고, 종교 간에 갈등이 일어나는 겁니다. 형제간에 유산 싸움하고, 부부간에 이혼 소송하고, 부모 자식 간에 갈등을 일어나는 것도 모두 근본적으로 보면 자기 문제가 안 풀렸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에요.

불평불만이 없는 수자타아카데미 아이들

오늘 수자타아카데미 학교 교실에 들어가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옛날과는 반응이 많이 달랐습니다. 옛날에는 중학생 교실에 들어가서 ‘너희들 공부하는 데 뭐가 문제니?’ 이렇게 물어보면 항상 ‘음식이 문제다’, ‘옷이 문제다’ 하며 이런저런 문제를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수업에 들어가 보니 반응이 조금 달랐습니다. 아직 대학생이나 스태프가 아닌 중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어봤어요.

‘수업하는데 뭐가 문제니? 뭘 더 해줄까?’

그런데 문제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부하는데 이런 것이 어렵다’ 하면서 다들 자기 생활의 어려움을 얘기합니다. 그런 생각을 떠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원을 세우고 세상을 위한 일을 도모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결국 자기 인생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인생에 고민거리가 없어야 해요. 뭘 먹으면 어때요? 입는 것도 이만하면 됐고, 자는 것도 이 정도면 됐잖아요.

그렇다고 옷을 사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지금 입고 있는 옷에 불만이 없지만 돈이 있으면 옷을 새로 살 수도 있죠.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어떤 특정한 옷을 사고, 어떤 특정한 음식을 먹는 게 문제라는 게 아니에요. 현재 먹고 있는 것에 대해 불평불만이 생긴다면 수행자로서는 조금 곤란하지 않겠냐는 겁니다.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 생활을 어떻게 하면 좀 더 개선하고 좀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이렇게 연구하는 자세라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배려해서 ‘이러이러한 건 좀 개선했으면 좋겠다’ 하고 말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해요. 걸식의 원칙은 자기 문제로 인해 무언가를 부탁하거나 요구할 수 없다는 겁니다. 주는 대로 받아야 합니다. 주는 대로 받는다는 것은 주어진 환경대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타인을 위한 부탁은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병이 난 도반이 있다면 ‘이분이 병이 났으니까 약을 좀 주십시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내가 병이 났을 때는 ‘내가 아프니까 약 좀 주세요’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약 같은 건 요구할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하겠지만, 부처님 당시 수행자들은 당장 숨이 넘어가더라도 본인을 위한 요구는 하지 않았어요.

그것처럼 오늘날 우리가 세상을 위해서 도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는 어떤 개선을 얘기할 수 있지만, 자기를 위해서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수행자로서 맞지 않습니다. 다만 도움을 주는 것은 감사히 받아야겠죠.

우리에게는 작은 돈이지만 아이들에게는 큰 기쁨

우리가 이런 관점을 가질 수 있다면 큰일을 할 수 있어요. 오늘날 한국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기준으로 한다면, 우리가 얻는 수입 중에 조금만 절약하면 전 세계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울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작은 돈이지만 그곳에서는 큰돈이거든요.

오늘도 저는 수자타 아카데미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맛있게 했어요. 우리 기준으로 보면 밥에 멀건 카레 한 국자 얹었을 뿐이고 반찬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국 하나에 밥 한 그릇 말아먹는 정도가 여기 주민들이 보통 먹는 음식 수준인데, 그런 급식만으로도 아이들이 먹으면서 만족했어요. 지난번 코로나 이후에 다시 개교했을 때 하루에 계란을 하나 더 주었을 뿐인데 엄청 기뻐했어요. 여기서 계란 한 개는 한국 돈 기준으로 100원, 200원밖에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작은 돈이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큰 기쁨이 돼요.

그런데 이런 것을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는 느끼기가 힘듭니다. 이렇게 오지 여행을 하거나, 어려운 곳에 가서 같이 살아봐야 느낄 수 있어요. 그래야 내가 사실은 얼마나 풍요롭게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어요. 또 이런 작은 것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수행이 돼요. 수행이라는 게 꼭 명상하고 절해야 하는 게 아니에요. 집착하지 않고 지혜가 생겨야 마음공부가 저절로 됩니다.

인도 현지에서, 그것도 부처님이 6년 고행하신 이 전정각산을 배경으로 해서 여러분께 이런 이야기를 직접 전할 수 있어서 정말 감개가 무량합니다.”

감개무량한 마음을 전하면서 실시간 채팅창에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채팅창에 질문을 올려 주었습니다.

스님은 질문을 읽고 곧바로 대답을 해주는 방식으로 법문을 이어나갔습니다. 한국에서 법회를 할 때보다 더 길게 한 시간 반 동안 생방송 법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자리를 정리해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곧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하마터면 생방송 중에 비를 홀딱 맞을 뻔했습니다. 보광법사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가뭄 때문에 농사지을 물이 부족해서 걱정했었는데요. 스님이 오면 비가 올 거라고 하더니, 정말 비가 왔네요.”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저녁 식사를 조촐하게 차려 먹었습니다. 학교에는 선생님들과 기술자들이 남아 내일 학교 행사를 위해 꽃장식을 하고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수자타아카데미 학교 축제를 하고, 전교생에게 특식을 제공한 후, 오후에는 둥게스와리 마을 리더들과 미팅, 중등학생들과 미팅, 선생님들과 미팅, 인도인 스태프들과 미팅, 건축 노동자들과 미팅을 연달아 가질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90

0/200

김대덕

아이들과 같이 앉아 공양하시는 사진 저장했습니다.
저도 그런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2022-09-14 16:53:33

청정화

감사합니다. 1250인 발원 꼭 성취되기를 발원합니다.

2022-09-07 17:28:22

청원

스님의 일천강에 비친 보살행에 감동이 됩니다

2022-09-07 11:5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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