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8.28 제10차 천일결사 제10차 백일기도 입재식, 화엄반수련, 일요명상
“괴로움이 점점 줄어드는 수행의 원리”

안녕하세요. 오늘은 정토회 만일결사, 제10차 천일결사 중 제10차 백일기도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30년 결사의 마지막 백일입니다.

새벽 4시 반, 서울 서초 법당에 도량석이 울려 퍼집니다. 예불, 기도를 드리고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공양을 마치고 스님은 어제 전법활동가대회에서 나온 이야기 중에 ‘수행자의 자세’에 대해 돌이켜볼 지점을 짚어주었습니다.

“어제 전법행자대회에서 공동체 대중들이 발언하는 내용 중에 물가가 올라서 감자탕 하나에 9천 원이나 하니 출장비가 부족하다는 건의가 있었습니다. 한 개인의 건의로만 보면, 우리 사회의 물가가 올랐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내용이에요. 그러나 수행자의 관점에서는 그렇게 바라보는 건 맞지 않습니다. 예전에 어떤 음식을 6천 원에 사 먹었는데 가격이 올라서 8천 원이 되었다면, 6천 원짜리 다른 음식을 찾아서 먹으면 되잖아요. 수행자가 지켜야 할 계율에는 음식에 집착하지 말라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물가가 더 오르면 도시락을 싸서 출장 다니며 먹으면 됩니다.

그런데도 물가가 올랐다고 왈가왈부한다는 것 자체는 결국 부처님의 삶을 모델로 삼고 살아간다는 수행자의 원칙과 멀어졌다는 반증입니다. 부처님은 걸식을 해서 먹음으로 해서 먹는 것으로부터 집착을 떠나고, 시체를 덮는 분소의를 주워 입음으로 해서 입는 것으로부터 집착을 떠나고, 나무 밑에 잠자는 것으로 인해 잠자는 곳에 대한 집착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일 아침 경전을 읽으면서도 관점을 그렇게 가지는 건 맞지가 않습니다.

왜 우리가 수행공동체를 만들어서 살고 있을까요?

저는 여러분에게 문제를 제기할 때 그 일이 큰 사건인지 작은 사건인지를 바라보지 않고 우리가 지향하는 수행적인 원칙에서 어긋나느냐의 여부를 갖고 바라봅니다.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욕구, 성질, 시비, 여기로부터 사로잡히지 않을 때 우리는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이 원칙을 자꾸 어겨버리면 수행자라고 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현실을 감안해서 주어진 현실에 맞게끔 사업을 하는 것과 우리가 현실에 물 드는 것은 아주 예리하게 관찰해야 구분이 됩니다. 현실에 물 드는 것을 막는다는 것만 고집하면 현실을 무시하고 고지식하게 될 수 있고, 현실을 잘 반영한다는 이유로 세상에 물드는 쪽으로 간다면 수행공동체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물론 여러분 중에는 ‘우리가 세상에 좋은 일을 많이 하는데 고작 먹거리, 잠자리 갖고 너무 빡빡하게 굴 필요가 있느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세속적인 시민운동을 하고 있는 겁니다. 반대로 검소하게 생활하는 것만 중요시하고 사회적 정의에 대한 시각이 없다면 기존 불교의 한계에 갇히게 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건 보디사트바입니다. 사회적인 비판 의식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수행자로의 관점은 별개 같지만 사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환경 문제나 사회적인 갈등도 다 욕망으로부터 빚어지는 문제이기 때문에 수행적 관점을 기본적으로 견지해야 사회적 정의도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회 운동만 하려면 시민단체에 가면 됩니다. 다른 건 안 하고 수행만 하겠다면 선방에 가면 됩니다. 정토회 수행공동체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하는 삶을 지향하는 보디사트바의 길로 나아간다는 것을 정체성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정체성을 자꾸 훼손해 버리면 어떡합니까? 그러면 결국 우리가 이렇게 사는 모습은 궁한 모습에 불과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사는 건 궁한 모습이 아니고 청정한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관점을 여러분들이 견지하셨으면 좋겠어요.

욕구를 충족시키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 거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자기 삶에 대해 긍정성을 갖느냐의 문제입니다. 수행공동체 안에서 살면서 자기 긍정성을 훼손해 버리면 결국 내 삶이 불쌍해지고 초라해지는 겁니다. 그건 곧 자기 정체성을 훼손하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관점을 바로잡고 생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과 비교하면 수행공동체에서 사는 것만 해도 대단한 거예요. 자기 방을 하나 가지고 있고, 주말에는 놀고, 월급 받아서 이것저것 소비하고 사는 세상 사람들과 비교한다면 정토회에 들어와서 사는 것만 해도 엄청나게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 때문에 수행공동체 정토회를 만들었느냐는 관점에서 볼 때 그렇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스님의 가르침은 매서웠지만 행자들을 바라보는 눈빛은 따뜻했습니다. 행자들은 한 마디, 한 마디 밥을 먹듯 스님의 가르침을 꼭꼭 씹어 삼켰습니다.

9900일째 기도

발우공양을 마친 후 오전 9시 30분부터 서초법당 1층에 제10차 천일결사 제9차 백일기도 회향식을 시작했습니다. 국내외에서 9천5백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입재식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지난 백일 간 정토회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영상으로 만나 보았습니다.

영상 시청 후 지난 백일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수행해 온 분의 수행담을 들어보았습니다.

수행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입니다

“...당시 딸은 고3이었습니다. 그날, 딸아이는 친구와의 갈등을 제게 하소연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저도 괴로웠던 상태라 ‘내일 이야기하자’라고 말한 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날 밤, 딸아이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딸아이가 떠나고 3년 후, 남편은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남편 병간호를 하며 받은 스트레스와 죽음에 대한 공포로 저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동네 아주머니의 권유로 즉문즉설을 처음 들으며 정토회를 만났습니다.

기도하면서 저를 잘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아주 강했고, 남의 시선에 온 신경이 가 있었습니다. 결혼생활에서도, 이전의 종교활동에서도, 가족에게도, 오로지 인정받고 싶어 했습니다. 또 남에 대한 분별이 많았습니다. 늘 남의 틀린 부분이 눈에 잘 들어왔습니다. 그러니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남의 말을 안 듣고 내가 옳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 옳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습니다. 그러니 사는 것이 참 고달팠습니다.

딸아이를 먼저 보내고, 남편이 암에 걸린 것을 내 탓으로 여기며 ‘네까짓 게’라고 스스로 경멸했습니다. 그렇게 숨 쉬고 사는 것이 지옥이던 제가 부처님 법을 만났습니다. 7-1차 천일결사 입재 후, 매일 수행 정진합니다. 수행은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입니다.

2차 만일은 수행, 보시, 봉사를 더 꾸준히 하여 내가 더 자유롭고 행복하며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이 길을 도반들과 함께 나아가겠습니다.”

긴 세월 동안 수행을 통해 어려운 고비를 넘어온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금방 눈시울이 촉촉해졌습니다. 이어서 지난 백일을 돌아보며 천일결사자의 열 가지 약속을 잘 지켰는지 돌아보는 포살을 했습니다.

“첫째, 매일 새벽 5시에 정진한다. 어떤 행자라도 이 계본을 어기면 허물이 됩니다. 이제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이 계본에 대해서 청정합니까?”

포살을 통해 자신을 돌아본 후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스님에게 제10차 천일결사 제9차 백일기도 회향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스님은 괴로움이 점점 줄어드는 수행의 원리와 이번 만일결사 마지막 백일기도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지난 100일 동안 무더운 날씨에도 여러분들은 아침 5시에 일어나서 꾸준히 정진해 왔습니다. 낮의 길이가 길어지면 아무리 춥더라도 언젠가는 봄이 오는 것처럼, 낮의 길이가 짧아지면 아무리 덥더라도 언젠가 가을이 오는 것처럼, 우리가 매일 쉬지 않고 꾸준히 정진해 가면 아무리 큰 괴로움이 있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괴로움이 점점 줄어들고, 그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속박이 단단하더라도 언젠가는 그 속박의 끈이 끊어지고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수행의 원리입니다.

괴로움이 점점 줄어드는 수행의 원리

방금 전 감동적인 수행 사례를 잘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인생을 살아보면 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되지 않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억울해하고 분해합니다.

‘다른 사람은 다 원하는 대로 되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유별나게 원하는 대로 안 될까? 하나님이 왜 나만 미워할까? 전생에 죄가 많아서 그럴까? 사주팔자가 나빠서 그럴까?’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과거에 내가 알든 모르든 오늘의 결과를 빚는 인연을 지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인연을 알면 원망하고 미워할 일이 없습니다. 더 이상 괴롭게 살지 않으려면, 과거에 지은 과보는 기꺼이 받지만 미래에는 되풀이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미 지어버린 것은 기꺼이 받고, 앞으로 새로운 인연을 짓지 않는다면, 세월이 흘러가면서 괴로움은 줄고 자유와 행복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수행을 하지 않으면 내가 괴로워지고 남을 탓하게 됩니다. 남을 탓하는 건 내가 괴롭다는 거예요.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칭찬을 받아서 듣기는 좋을지 몰라도 그것이 진정으로 나의 재산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 사람이 칭찬하는 것은 그들의 관점에서 칭찬하는 것이지, 나의 관점에서는 칭찬받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해야 내 인생이 당당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조건에서 이 선택이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이 선택을 한 겁니다. 남에게 베풀든, 남을 돕든, 다 나의 선택입니다.

우리는 지난 100일 동안 수행정진을 부지런히 했습니다. 그런 수행정진을 할 수 있는 수련프로그램으로 깨달음의장, 나눔의장과 같은 여러 가지 수련이 진행됐습니다. 그걸 바탕으로 전법도 했습니다. 또 전법을 넘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위로하는 일을 해냈습니다.

저는 내일 인도로 갑니다. 인도에 가면 여러분들이 보시한 돈, 또 여러분들이 염원한 것들을 제가 대신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올 예정입니다. 그중에서 로힝야 난민들에게 가스버너 10만 개를 지원하는 것은 정말 큰 지원입니다. 민간단체로서 하기 어려운 일인데 JTS가 UN과 협조해서 공동으로 진행할 수 있는 것도 다 여러분들이 매일 보시해준 덕분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북한에 식량난이 아주 심각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죽어가고 있다는 비공식적인 소식이 저에게 들려옵니다. 가슴이 아프지만 현재로서는 북미 관계나, 남북 관계가 단절되어 있어서 도울 길이 없습니다. 문호가 열리고 우리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여러분들이 낸 보시금들이 생명을 살리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이 될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봉사활동뿐만 아니라 그동안 꾸준히 보시해준 여러분들께도 이 자리를 빌어서 진심으로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10-9차 백일기도는 오늘로써 종결하고, 마지막 10-10차 백일기도를 시작하게 됩니다. 30년 전 제가 시작했던 1차 만일결사는 앞으로 100일이 지나면 끝이 됩니다. 그리고 내년 봄에는 한 명이 아니라 수천 명이 주인이 돼서 2차 만일결사를 출발합니다.

여러분은 만일결사 회향이 아닌 이유

여러분들 중에서 ‘1차 만일결사 끝났으니까 나는 이제 회항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물어봤어요. ‘만일결사를 1-1차 천일결사부터 했나요?’ 그러니까 1-1차부터 안 했대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1-1차 천일결사부터 안 했는데 어떻게 만일결사 회향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만일결사 회향은 저한테 해당이 되는 거지, 당신에게 해당되는 게 아니에요.’

만일결사 중 천 일도 안 해놓고 만일결사를 회향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만일결사는 만일을 다 기도해야 만일결사이지 몇 천일 또는 몇 백일 해놓고 만일결사 회향이라고 말하는 건 맞지가 않습니다. 그러니 만일결사 회향이란 정토회에서 1-1차 천일결사를 시작한 사람들의 만일결사가 이제 30년이 지나서 마무리가 된다는 뜻입니다. 만일결사 회향은 여러분들에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에요. (웃음)

‘이번 100일은 1-1차부터 시작한 법륜 스님과 일부 법사님들이 만일결사를 잘 마무리할 수 있게 해주자. 마무리를 잘 시켜놓고 우리는 2차 만일결사를 계속 이어나가자.’

이런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도 여러분들이 주변에 만일결사의 마지막 백일기도를 같이 하자고 독려를 열심히 해주신 덕분에 정토회 역사상 가장 많은 거의 1만 명에 가까운 분들이 이번 백일기도에 입재한 것 같아요.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회향식을 마치고 20분간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천일결사자들은 다시 화면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만일결사의 마지막 입재식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새로 천일결사에 입재한 분들을 위해 예비 천일결사자 결의식을 진행했습니다. 결의식을 마친 후 스님은 온라인으로 한꺼번에 염주를 신규 입재자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제가 ‘염주를 걸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잘 받았습니다’ 하고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온라인 랜선을 통해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겠습니다. 예비천일결사자 여러분의 정진을 위해서 염주를 걸어드리겠습니다.”

“잘 받았습니다.”

기존 천일결사자들은 예비 천일결사자들을 힘찬 박수로 환영했습니다. 스님은 예비 천일결사자들을 위해 축원을 해준 후 꾸준히 정진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마음이란 늘 이랬다 저랬다 하기 때문에 믿을 게 못 됩니다. 일어나기 싫을 때 싫은 마음에 끌려가면 안 돼요. 순간순간 일어나는 마음에 끄달리지 말고 그냥 해봅니다. 꾸준히 기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천일결사자들은 스님에게 삼배로 10차 백일기도 입재 법문을 청했습니다.

“만일결사의 마지막 백일을 어떤 마음으로 임하면 좋을까요? 사람은 늘 계획을 세우지만, 그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마무리할 때는 후회를 합니다. 그러면 계획을 다시 안 세워야 하는데, 다음에 또 계획을 세우고 제대로 안 하고 후회해요. 그러면 안 하는 게 낫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안 하는 것보다는 계획을 세워서 조금이라도 하는 게 나아요. 1시간 운동하기로 해놓고 10분 운동하고 말았다 하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아요. 백일기도를 하기로 해놓고 3일만 기도하고 그만뒀다고 해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래도 3일은 기도를 했기 때문입니다.

떳떳하고 당당한 사람이 되는 길

마찬가지로 아예 기도를 안 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 입재식이나 회향식에만 참석해도 굉장한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목표를 세운 것에 비해서는 부족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늘 목표를 세우지만 중간에 포기하고 끝까지 해본 적이 많지 않아요. 이렇게 목표를 세우고 제대로 못 하면, 타인에게는 신뢰를 잃게 되고, 스스로에게는 실망을 하게 됩니다. 자기가 자기한테 실망하면 당당하지 못하고 약간 위축됩니다. 자기가 자기를 믿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백일기도를 하느냐의 여부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에요. 백일기도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 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계획을 세우고 100일을 지켜내면 자기 스스로를 믿을 수 있게 됩니다. 자기가 자기를 믿을 수 있게 되면 마음이 떳떳해져요. 이것은 굉장한 심리 치료 효과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못 믿는 이유는 계획을 너무 과다하게 세우고 대부분 그 계획을 달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당당하지 못한 거예요. 그러니 1차 만일결사의 마지막 백일기도는 빠지지 않고 한번 해 보면 좋겠습니다. 끝날 때 또 못 지켰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때 가서 살펴볼 문제이고, 출발할 때는 ‘이번에는 한번 해 보자!’ 이렇게 마음을 먹어 봅니다.

백일기도를 매일 놓치지 않고 하는 방법

어떻게 하면 백일 동안 매일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첫째, 그냥 하면 됩니다. 5시에 일어나기로 했으니까 5시에 일어나고, 하기로 했으니까 가볍게 그냥 해봅니다. 둘째, 절하고 경전 읽는 것만 수행이 아니에요. 이것은 수행의 한 수단일 뿐입니다.

수행은 내가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거예요. 또 이루어진다고 반드시 좋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우리는 내 성질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데, 성질대로 이루어진다고 반드시 좋다는 법도 없고, 인생살이가 모두 내 성질대로 될 수도 없어요. 또 옳으니 그르니 자기 판단을 많이 하는데 이 판단이 반드시 옳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욕구가 있다 하더라도 욕구를 다 채울 수가 없습니다. 밥을 먹고 싶을 때 밥을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한 끼 굶는다고 괴로울 이유는 없다는 거예요.

욕망에 완전히 사로잡혀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집착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기는 겁니다. 욕망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끌려가지는 않아야 합니다. 날이 더운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지는 않고, 날이 추운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불평불만하거나 괴로워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더우면 옷 하나 벗고, 추우면 옷 하나 더 입고, 더우면 그늘로 가고, 추우면 양지바른 데로 가고, 이렇게 거기에 대응하면 되지 그걸 갖고 괴로워할 필요는 없어요. 이런 관점을 갖고 수행 연습을 해봐야 합니다.

‘그 순간은 못 참을 것 같았는데 지나고 보니 잘했다’
‘그 순간은 좋았는데 지나고 보니 후회가 된다’

이런 경험을 자꾸 쌓아 나가야 순간에 매몰되는 것에서 자유롭게 될 수 있어요. 그것이 식욕이든 수면욕이든 성욕이든 명예욕이든 어떤 순간에 욕망을 한 템포 늦춰보면 사실은 별일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 순간의 욕망에 사로잡혀서 큰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나를 괴롭히고 남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공부는 책을 보는 게 아니고, 내 마음이 일어남과 거기에 대한 사로잡힘, 그 결과에 대한 과보, 이런 것을 살펴보는 겁니다. 자기가 자기를 살펴서 ‘어! 이러니까 내 손해다!’, ‘조금 참았더니 괜찮다!’ 이렇게 자각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알아차림’이라고 하는데, 알아차림이 유지되면 카르마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어요. 그렇게 되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 참회의 절도 하고, 모든 것을 멈추는 명상도 하고, 경전의 글귀도 읽고 하는 겁니다.

아침마다 한 시간씩 기도를 하며 자기를 살피게 되면, 이 공덕으로 인해 일상에서 사로잡힘이 좀 적어지게 됩니다. 수행 정진을 몇십 년 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 이런 수행이 누적되어 있다면 어느 순간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되려면 약간 집중을 해야 됩니다. 산만하면 혁명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볼록렌즈처럼 빛을 한 곳에 모아줘야 불꽃이 일어나지 분산되면 불꽃이 일어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마지막 100일 기도는 자기 살핌에 집중을 해야 해요. 집중해서 딱 알아차리고 나면 자기가 한심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아니, 이렇게 쉬운데 내가 10년 동안 이걸 몰랐다니!’ 이런 생각이 들게 돼요. 조금만 자기를 살피면 됩니다. 그러나 꾸준히 정진해야 그런 계기가 마련되지 놀면 그런 계기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첫째, 수행 정진에 집중할 것을 당부드립니다. 만일결사의 마지막 백일이라고 하지만 수행 차원에서는 여타의 백일과 같습니다. 둘째, 만일결사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십사 하는 것을 당부드립니다. 우리의 활동 차원에서 이번 백일은 제가 시작해놓은 마무리를 여러분들이 같이 해주시는 기간이 될 것입니다. 1차 만일결사는 저 혼자 시작해서 30년 동안 만 명으로 확대가 되었다면, 2차 만일결사는 만 명이 시작하기 때문에 30년 뒤에 1억 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2차 만일결사에는 이 자리에 모이신 만 명이 다 같이 출발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해서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향해 전법을 해나갑시다. 이번 백일 동안 정진하고 활동하면서 그런 힘을 키우시기 바랍니다.

자, 오늘부터 1차 만일결사 마지막 100일 기도의 시작을 선포합니다.”

100일 동안 다양하게 펼쳐질 실천 활동이 기대가 되었습니다. 다음 100일 동안 함께 집중할 ‘백일의 약속’을 함께 살펴본 후 사홍서원으로 입재식을 마쳤습니다.

이제 백일이 지나면 만일결사 회향식입니다. 12월 4일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습니다.

입재식을 마치자마자 스님은 법당 2층에서 개관식 준비팀과 회의를 했습니다. 인도로 출국하기 전에 점검할 사항들을 확인했습니다.

화엄반 수련

오후 2시부터는 법사교육을 받고 있는 4기 화엄반 행자님들과 온라인으로 수련을 했습니다. 행자님들은 작년 겨울에 법사 교육을 시작해 삼백 여일이 지났습니다. 이제 교육이 오십 여일 남았습니다.

오늘은 지난 행자 생활을 돌아보며 수행하면서 들었던 의문점이나 고민을 자유롭게 질문했습니다. 한 행자님은 오십여 일이 남은 시점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교육을 마쳐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법사 교육이 50일도 안 남아서 조급한 마음이 들어요

“저는 법사 교육 행자생활이 이제 50일도 안 남았어요. 어제 수련하면서 50일 정도밖에 안 남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앞으로 남은 50일을 어디에 집중해야 행자 생활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요?”

“법사가 되려는 사람은 50일 남았든지, 30일 남았든지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해야 돼요. 법사에게 중요한 것은 아집과 아상을 내려놓는 거예요. 환경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아는 게 법사가 아니에요. 원인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사람은 학자입니다. 법사는 자기의 아집과 아상을 탁 내려놓는 사람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법사 교육에 참가한 사람은 ‘당신은 이것을 잘못했습니다’ 하고 지적하면 ‘알았습니다’ 하고 개선하면 됩니다. 시간이 30일 남았든, 50일 남았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질문자는 지금 애를 쓰고 있어요. ‘혹시 법사가 안 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건 아집을 움켜쥐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지금은 주어진 대로 충실히 교육을 받으시고, 법사 수계에 대해 심사를 할 때 법사를 하라고 하면 ‘감사합니다’ 하고 하면 법사를 하면 됩니다. 법사 자격이 안 된다고 하면 ‘뭐가 부족하죠?’ 하고 물어보면 됩니다. 어떤 부분이 아직은 좀 부족하다고 알려주면 다음에 법사 교육을 할 때 ‘저 좀 넣어줘서 재수하게 해 주세요. 지난번 법사교육 때 얘기해주신 부분들을 보완했습니다’ 하고 요청하면 됩니다. 법사 수계 심사에서 떨어진 것으로 인해 기분이 나빠서 다음에는 법사 교육에 신청하지 않겠다고 하면 애초에 법사 자격이 없는 사람이에요. 법사 자격이라는 게 무슨 능력을 평가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사 교육이 50일이 남았든, 30일이 남았든, 내일이 마지막 날이든, 반대로 1년을 더 하자든, 하등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요. 그때 가서 ‘6개월 더 해야 됩니다’ 하면 ‘알겠습니다’ 하고 6개월을 더 하면 되죠. 이 공부는 학교 공부처럼 단기간에 끝나는 공부가 아니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나를 탁 내려놓고 날짜에 구애 없이 법사 교육을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시간 3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사홍서원으로 수련을 마쳤습니다.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드디어 스님에게도 시간이 생겼습니다. 내일부터 3주간 인도, 방글라데시, 필리핀을 다녀올 짐을 쌌습니다.

일요명상

짐을 싼 후 저녁 8시 30분부터는 일요명상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두 타임 연속으로 명상을 하는 날입니다. 질문을 받지 않고 곧바로 명상을 하겠습니다.”

탁, 탁, 탁!

죽비 소리와 함께 30분 간 명상을 했습니다. 10분 간 포행을 하고, 다시 30분 간 명상을 했습니다.

명상수련을 마치고 나니 10시가 다 되었습니다.

내일은 8시에 외국인 천일결사입재자를 위해 입재식을 하고, 10시에 전법활동가 법회를 한 후 공항으로 출발합니다. 오후 2시 20분 비행기를 타고 9시간을 비행해 인도 델리에 도착해 기차를 타고 가야로 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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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부처님 법 만난것 감사합니다

2022-09-16 13:30:39

서순영

당당하게 주인된 삶을 살수 있도록 5시 정진 꾸준히 해보겠습니다.

2022-09-04 13:01:48

보각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니.. 평소에 법문을 잘 안듣고있다는걸 알게되었네요. 그래도 다시 볼수있어 좋았습니다.

2022-09-02 10:4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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