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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도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농사일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모내기를 마무리하고 나서 한 달이 지났습니다. 모가 사람하는 사이, 피도 모 사이사이에 제 자리를 잡았습니다. 오늘부터 스님과 두북 공동체는 논에 피를 뽑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친환경으로 벼농사를 짓다 보니 제초제를 치지 않고 사람의 손으로 풀을 뽑아야 합니다. 모 사이로 논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피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벼농사가 아니라 피 농사를 지었네요. (웃음) 피는 어릴 때 뽑으면 부드럽게 잘 뽑히는데, 늦게 뽑으면 걷잡을 수 없이 억세져요.”
스님의 설명을 들어도 모처럼 생긴 피를 구분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모와 피가 구분이 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진흙에 빠진 논 장화를 한 발 한 발 옮기는 게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스님은 허리가 아프신지 의자를 가져와서 앉아서 피를 뽑았습니다.
“어떻게 뽑아야 잘 뽑을 수 있을까?”
스님은 행자 한 명과 2인 1조로 피를 뽑아보았습니다. 행자가 먼저 밭에서 풀을 매는 도구로 땅을 한번 긁고 가면 스님이 뒤이어서 남은 풀들을 싹 뽑았습니다.
스님이 지나간 자리에는 벼들만 나란히 줄을 서 있었습니다. 깔끔하게 바뀐 이 모습을 보는 재미에 피를 뽑나 봅니다.
열심히 피를 뽑고 뽑아도 넓은 논에 여전히 가득한 피를 보며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피나 뽑을까요? 점심은 논둑에서 간단히 먹고요.”
땀이 비 오듯이 흐를 정도로 무척 더웠습니다. 하늘은 비를 쏟아붓다, 해를 비치다를 반복하며 변덕스러웠지만 스님과 행자들은 계속 피를 뽑았습니다.
“여기까지 합시다. 주말에 봉사자들이 와서 도와주면 어느 정도 해결이 될 것 같아요.”
오늘은 어떻게 피를 뽑으면 좋을지 몇 가지 도구들을 갖고 실험도 해보았습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 주말에 봉사자들과 함께 대규모로 피를 뽑기로 하고 아침 울력을 마쳤습니다.
무더위를 피해 낮에는 각종 업무를 처리하고 원고 교정을 보았습니다. 해가 질 무렵 오후 4시에 다시 농사일을 하기 위해 산아랫 밭으로 올라갔습니다.
비가 쏟아지다가 멈추다가 약간 햇살이 비추다가를 반복했습니다. 어제 아침에 들깨 모종을 어느 정도 심었는데 아직 빈 구멍이 많았습니다.
스님이 들깨 모종을 멀칭 된 비닐 위에 하나씩 올려놓고 지나가면, 뒤이어 묘덕 법사님과 행자님이 빈 구멍마다 모종을 심었습니다.
모종을 비닐 위에 다 올려놓은 후 스님도 모종을 심었습니다.
모종을 다 심고 나서 잡초를 뽑았습니다. 얼마 전에 잡초를 뽑았는데 그 사이 또 잡초가 고랑마다 무성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잡초를 다 뽑고 나서 해가 질 무렵에 오후 울력을 마쳤습니다.
냇가에서 장화와 장갑을 씻고 나서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8시부터는 정토불교대학 생방송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불교와 사회’를 주제로 하는 특강 중 얼마 전 ‘불교와 환경’을 주제로 강의를 했는데, 오늘은 ‘불교와 복지’를 주제로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는 ‘복지’가 어떤 의미로 담겨 있는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생존권과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스님의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복지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개인은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가 있고, 국가와 정부는 국민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 줄 책임이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보장되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권리가 있습니다.
첫째, 최소한의 생존권 보장입니다. 강제로 죽임을 당하지 않아야 하고, 굶지 않고 음식을 먹을 수 있어야 하고, 병이 들었을 때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해요. 이것은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의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물들도 대부분 다 생존하니까요.
그러나 동물과 달리 사람은 정신적인 작용이 있는 존재입니다. 바로 그 정신적인 작용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둘째, 모든 사람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행복추구권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생존권과 행복추구권이 모두 갖추어졌을 때 사람답게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고, 복지가 잘 갖추어진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불교에서는 복지에 대해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요? 불교에서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면 큰 공덕이 있다고 하잖아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가 가까워지자, 아난다 존자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걱정을 아난다 존자가 나름대로 부처님께 질문을 하자 부처님께서 거기에 대해서 하나하나 대답을 해주셨어요. 이것을 모아놓은 것이 ‘최후의 유훈’입니다. ‘최후의 유훈’ 가운데 복지와 관계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아난다 존자가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고 해요.
‘지금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림으로서 큰 공덕을 지었습니다. 이제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면 그런 큰 공덕을 지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야, 걱정하지 마라. 나는 비록 이 세상을 떠나지만 진리의 가르침은 남아 있을 것이다. 또한 네 가지 인연이 있어서 그대들에게 복을 얻게 할 것이니라. 무엇이 그 네 가지 인연인가. 첫째, 배고픈 자에게 음식을 공양해 목숨을 잇게 하고, 둘째, 병들어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보살펴서 편안하게 해 줄 것이며, 셋째, 가난하고 고독한 자가 있으면 그들과 함께하고, 넷째, 청정하게 수행하는 이가 있으면 그를 외호해 주어야 할 것이니라. 이 네 가지를 행하면 여래에게 공양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여래가 이 세상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느니라.’
이렇게 여래가 열반에 든 후에도 여래에게 올리는 공양의 공덕과 똑같은 공덕이 네 가지가 있다고 답변했어요. 오늘날 대부분의 불교 신자들이 불상에 많은 음식을 갖다 올려서 복을 빕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그보다는 가난한 자를 돕고, 배고픈 자에게 음식을 주고, 병든 자를 치료하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는 것이 불상 앞에 수많은 재물을 보시하는 것보다 공덕이 더 크다는 것을 ‘최후의 유훈’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을 하셨어요. 그러니 어려운 사람을 외면한 채 돈을 모아서 불상 앞에 불공을 올려야 복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어긋난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것은 기독교도 마찬가지예요. 기독교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록자에 따라서 네 개의 복음서에 기록해놓았습니다. 그중에 마태복음을 보면, 25장 31절부터 46절까지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최후의 심판 날 왕께서 오셔서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때에 왕께서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그랬습니까’ 하리니, 왕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그랬습니까’ 하리니, 이에 왕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의 공덕과 같은 것이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이고, 병든 자를 치료하는 것이고, 가난한 자를 돕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는 것이라는 부처님의 말씀과 천국에 가는 기준이 주린 자를 먹이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고, 헐벗은 자를 입히고, 병든 자를 치료하고, 난민을 보살피고, 억울하게 감옥살이하는 사람을 돌보는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내용적으로 매우 유사합니다. 그런데도 정작 많은 신자들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고 교회 가서 헌금하면 은총을 받는다고 생각하잖아요.
이미 2600년 전 부처님과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인간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공덕이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태어남에 의해서 성스러움이 정해지는 게 아니다. 제사장이 기도해준다고 천국에 가는 게 아니다. 그가 어떤 행위를 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하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가 불교를 믿는지 기독교를 믿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어떤 종교를 믿든 스승의 가르침에 충실한지가 더욱 중요합니다. 불교를 제대로 알면 기독교를 제대로 아는 데에 도움이 되고, 성경을 제대로 알면 불법을 제대로 아는 데도 도움이 되는 거예요.
불교와 복지가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 궁금해하실 수가 있는데, 부처님께서 어리석은 자를 깨우치고, 어려운 사람에게 희망의 길을 열어준 것도 엄밀히 말하면 복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니까 물질적으로 베푼 것은 아니지만, 부처님을 믿고 따르던 수닷타 장자와 같은 재가 수행자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늘 어려운 사람을 도왔어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전 마지막 유훈에도 정말 불자라면 배고픈 자를 배부르게 하고 병든 자를 치료하고 가난한 자를 돕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라고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정토회는 산하에 ‘JTS’라는 구호단체를 설립했습니다. 단체 이름이 ‘Join Together Society’인데 약자로 JTS라고 합니다. 인도적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만나(JOIN), 각자가 가진 것을 내어놓아 인종, 종교, 민족, 성별, 사상, 이념에 관계없이 작은 힘이나마 함께 모아(TOGETHER), 일해 가고자 하는 모임(SOCIETY)입니다. 이런 취지를 담은 JTS의 설립 이념이 세 가지입니다.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는 기아 질병 문맹퇴치 기구로 유엔에 등록되어 있으며 국제적인 활동을 합니다. JTS가 첫 번째 사업을 시작한 곳은 인도입니다. 1991년도에 제가 인도 캘커타에 갔을 때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의 너무나 비참한 모습을 목격했어요.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절대빈곤에 처한 아이들을 지원하는 일을 늦추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인도는 아직도 계급 차별이 심합니다. 부처님께서 6년 고행하신 전정각산 아래에는 불가촉 천민이 모여 사는 마을이 15개가 있어요. 그곳에 학교가 없어서 1993년에 학교를 지었고, 내년 1월이면 개교 30주년이 됩니다. 학교를 설립할 당시에는 마을에 결핵환자가 300여 명이었는데, 지금은 약을 지원하고 관리를 해서 1년에 결핵환자가 4명 정도만 발생할 정도로 결핵 퇴치가 거의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출산을 하다가 아기가 죽는 경우가 빈번했고 산모가 죽는 일도 있었는데 지금은 유아 사망률을 거의 제로에 가깝게 낮추었어요. 마을 개발 사업의 하나로 주택개량사업과 식수 공급을 위한 핸드펌프 설치를 계속해 나가고 있습니다. JTS에서 지은 학교는 100% 무료 교육입니다. 그래서 마을에 학교가 설립되기 전에는 100% 문맹이었는데 지금은 몇몇 노인들이 문맹이지만 15세 이하는 문맹률이 0%입니다. 인도에는 아직도 문맹률이 높은 편이라 문맹률이 낮은 마을로 선정돼서 표창을 받기도 했어요.
필리핀 민다나오에도 JTS에서 설립한 학교가 있는데요. 2002년도에 제가 막사이사이상을 타면서 그 지역 가톨릭 주교님과 인연이 되었어요. 그 주교님께 도움을 얻어서 민다나오 원주민과 무슬림 지역에 학교를 지어주는 일을 한 지 올해로 20년이 되었습니다. 20년 동안 자그마한 학교를 50여 군데 지었어요. 그리고 장애인을 위한 학교도 네 개 지었습니다. 원주민 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피스홀을 짓기도 했고, 무슬림 반군 본부에 가서 사령관을 만나 그 지역에서 가장 열악한 곳에 학교를 짓기도 했습니다.
농업기술센터도 지어서 개발원조를 하려고 하는데 아직 농업기술을 가르치고 훈련시킬 정도의 인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JTS는 사람을 고용해서 사업을 하지 않고 100% 자원봉사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도 월급 받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문분야는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 보니 운영을 하기가 좀 어려워요. 학교도 아이들을 가르칠 교사를 구하기는 그나마 쉬운데 병원은 의사를 자원봉사자로 구하기가 무척 어려워요. 월급 안 받고 일하겠다는 의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100% 자원봉사로 운영한다는 원칙을 지켜나가다 보니 여러 어려움이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이런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분들은 은퇴할 나이가 되면 계속 돈만 벌려고 하지 말고 10여 년 정도는 자신의 재능을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외에 아프가니스탄에서도 4년간 난민 지원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어느 교회 선교사들이 탈레반에 피랍되면서 한국인들의 안전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전부 강제 철수당했습니다. 파키스탄에 지진이 났을 때도 지원을 했고, 미얀마에 홍수가 났을 때도 지속적인 지원을 했어요. 인도네시아에 쓰나미와 지진 피해가 생겼을 때도 지원활동에 나섰고, 스리랑카에 쓰나미가 났을 때도 지원을 했고, 캄보디아와 라오스에도 학교를 지었고, 몽골에 한파가 왔을 때도 지원을 했습니다. 특히 필리핀에 태풍 하이옌으로 인해 큰 피해가 났을 때는 마라붓에 교실 80칸을 긴급하게 보수해주었어요. 이렇게 동남아시아에 주로 지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이티에 지진이 났을 때는 중남미까지 간 적이 있지만, 인력 부족으로 주로 동남아에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JTS가 가장 많은 지원을 하는 곳은 북한입니다. 1996년부터 3년 동안 고난의 강행군 시절에 북한 주민들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을 때 정치적인 이념을 떠나서 지원을 시작했고, 2018년과 2019년에도 대단위 식량 지원을 해서 기아 상황을 막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최근에 들려오는 소식은 코로나 방역과 유엔의 경제제재로 인해서 북한에서 많은 사람들이 식량부족으로 굶어 죽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북한의 국경이 지금 폐쇄된 상태이고, 한국 정부도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있지 않아서, 가슴이 아프지만 아무런 대책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어요. 하지만 JTS에서는 모든 정치체제를 떠나서 굶어 죽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에서 인도적 지원이 가능한 방법이 있는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찾아보고 있습니다.
이런 취지를 담아서 정토회에서는 하루 1000원 기부하기 운동을 하고 있어요. 이 수업을 듣는 많은 분들이 함께 참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 수행 연습은 자선단체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어느 곳이든 작은 돈이라도 기부해 보는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강의가 끝나자 학생들은 교실별로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여 마음 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논에 피를 뽑는 일을 한 후, 하루 종일 평화재단 기획위원들과 회의를 하고, 저녁에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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