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6.1 배추 수확, 모심기, 수행법회
“어떻게 무의식에 쌓인 불만을 없앨 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도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작업복을 입고 농사일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텃밭에서 얼갈이배추를 수확했습니다. 지난 4월에 심은 배추가 어느새 밭이 꽉 차도록 자랐습니다.

배추를 다 뽑고 그 자리에서 바로 손질을 했습니다.



배추 중에서 크기가 큰 것은 바로 씻고 소금에 절여 김치를 담그고, 작은 것은 나물로 먹을 수 있도록 따로 두었습니다.



배추를 심었던 밭은 다른 작물을 키울 수 있도록 거름을 넣고 뒤집어 두었습니다.

고수를 수확하고 다듬어 반찬 하나를 뚝딱 만들었습니다.


퇴비장에서 저절로 자란 호박 모종 두 개는 화분에서 땅으로 옮겼습니다. 텃밭에는 더 이상 땅이 없어 국화꽃밭 옆에 하나, 감나무 아래 하나 심었습니다. 돌 뿐인 땅에 흙과 거름, 물을 충분히 준 후 심었습니다.




물을 흠뻑 주며 스님이 말했습니다.

“좁은 화분에서 답답했지? 이제 네 멋대로 자라라.”

꺾꽂이해 두었던 국화는 계속되는 가뭄으로 마르고 있었습니다. 국화에도, 꽃들에게도 물을 흠뻑 주었습니다.



시계는 어느덧 8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텃밭에서 일을 마치고 논으로 서둘러 나갔습니다. 봉사자들이 논에 모를 심으러 왔기 때문입니다. 전체 논 6600평 중에서 지난 일요일에 두북 공동체 대중이 4200평의 논에 모심기를 마쳤고, 오늘은 마지막으로 가장 넓은 2400평 논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2400평 논 앞에 수성, 포항, 경주 지회에서 봉사자 13분이 오셨습니다. 논 장화를 신고 봉사자들에게 오늘 할 일을 안내해주었습니다.

“오늘 할 일은 모를 심는 겁니다. 올해 논농사를 처음 하다 보니 논이 울퉁불퉁해요. 모서리는 깊어서 모가 물에 잠겨서 죽고, 저쪽에는 너무 높아서 말라 죽고, 시행착오를 하는 중입니다. 그래서 중간에 빈자리마다 사람 손으로 직접 모를 심어야 해요. 물이 많아서 모가 땅에 심기지 않고 뜬 것도 있습니다. 그런 곳에 모를 심으면 돼요.”

스님은 모를 한 움큼 가져와 직접 시연해 보였습니다.

“모를 대강 5개씩 떼서 심으면 되는데 뿌리가 떨어지면 안 됩니다. 뿌리가 떨어지면 버려야 해요. 아깝다고 생각하지 마시고요. 그리고 심을 때는 뿌리 부분을 쥐고 심으면 되는데, 모가 접히면 안 되고 직선으로 딱 심겨야 합니다.

3-4명씩 한 팀이 되어서 각각 모서리로 가서 출발합시다. 모서리에서 출발해서 가운데에서 만나는 걸로 하면 될 것 같아요. 이해하셨죠?”

“네.”

안내가 끝나고 곧바로 모서리마다 봉사자들이 모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거사님들과 가장 난이도가 높은 모서리를 맡았습니다. 이쪽 모서리는 땅을 평평하게 하는 작업부터 다시 해야 했습니다.




오늘은 발우공양을 빠지고 봉사자들과 함께 계속 울력을 했습니다. 2400평 논을 마치고 아랫논으로 올라가서 미진한 부분을 조금 더 보충하고 11시가 다 되어 울력을 마쳤습니다.

드디어 6400평에 해당하는 논에 모심기를 모두 마쳤습니다. 무릎까지 진흙이 묻은 장화를 깨끗이 씻고 농막으로 모였습니다.

스님이 직접 수박을 썰어서 봉사자 분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이렇게 봉사하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각자 일하고 난 소감을 나눠보겠습니다.”

한 명씩 돌아가며 가볍게 느낀 점을 표현했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모심기를 처음 해보았습니다. 농약을 안 치고 어떻게 벼농사를 지으실까 궁금해서 왔고요. 옆에서 스님과 함께 모를 심으니까 너무 영광이었습니다.”

“모를 심으면서 어렸을 때 아버지가 아침마다 논에 피를 뽑으러 가셨던 생각이 났어요. 저는 그 생각이 날 때마다 밥을 못 남기고 박박 긁어먹습니다. 오늘 아버지 생각이 또 나서 울컥했습니다.”

“모 심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논에서 발을 빼서 옮기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평지를 걸어 다니는 게 참 감사한 일이구나 느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모내기를 해보고 나서 오늘 36년 만에 처음으로 모내기를 해봤습니다. 그때는 너무 하기 싫어했는데, 오늘은 너무 재미있게 했어요. 요즘 인생이 얼마나 힘들면 모내기가 재미있게 느껴질까 돌아봤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논에서 하나라도 모를 더 심으려고 하던 모습이 생각났어요. 자식들에게 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그랬겠구나 싶고, 오늘 집에 가면 아버지에게 전화 한 통이라도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아버지가 새벽에 논일 나가면서 저한테는 ‘소죽 끓여라’ 하고 아버지는 삽을 메고 논으로 나가셨던 기억이 났어요. 부모님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논 장화를 벗으니까 발걸음이 날아갈 것 같았어요. 농사일이 참 쉬운 게 아니구나 느꼈고, 시댁에서 농사를 짓는데 바쁠 때 도와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죽고 싶을 정도로 인생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 법륜 스님을 만나 지금은 봉사도 하면서 살게 되었는데,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매주 봉사를 나옵니다. 오늘도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모를 심으면서 아버지가 생각났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떠올리며 가슴이 훈훈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저희들이 논농사를 처음 하다 보니까 이렇게 수고로운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함께 해줘서 고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니까 금방 하네요. 몇 명이서 했으면 하세월이 될 뻔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여름에 피를 뽑을 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옆에 논 장화를 말려놓고 활짝 웃으며 외쳤습니다.

“모내기!”

봉사자들은 돌아가고, 스님은 후원을 해주시는 지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원고 교정 업무를 비롯해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했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이 되어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오늘은 수행법회 생방송을 하는 날입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시작됐습니다. 제가 사는 시골은 가뭄이 아주 심해서 마치 인도의 건기 같아요. 날씨가 건조한 가운데 기온이 낮에는 30도를 웃돌고, 새벽에는 12도까지 떨어져서, 일교차가 아주 심합니다. 얼마나 건조하면 산불이 나서 며칠째 꺼지지 않는 일이 일어나겠어요? 평년과 달리 날씨가 좀 특이한 것 같아요. 제가 아침에 모종을 심으려고 땅을 파보니까 20cm 정도까지 파도 땅이 메말라 있었습니다. 보통은 10cm 정도만 파도 습기가 있거든요. 올해는 땅속에도 습기가 없고, 따로 물을 주지 않는 화단이나 곡식은 점점 말라 가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비 예보는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날씨가 많이 건조하면 병충해도 심해지고, 특히 진딧물이 아주 많이 번집니다. 저수지가 잘 만들어져 있어서 모내기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지만, 밭농사가 좀 어렵습니다. 물주는 게 어려우니까요. 특히 북한처럼 관개 시설이 제대로 안 갖추어져 있는 곳에서는 봄 가뭄이 들면 파종과 모내기를 놓치게 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가을에 추수할 것이 줄어들어서 흉년을 맞게 되죠. 이런 무더운 날씨에 여러분 건강은 어떠신지요?”

지난 주말에 각 실천 장소에서도 여러 실천 활동들이 있었습니다. 실천 장소에서 대중들이 봉사 활동한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이어서 스님과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지난주까지 세 번에 걸쳐서 정토회와 정토회 회원의 삶에 대한 법문이 있었습니다. 첫 시간에는 정토회가 창립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와 정토회가 하는 일에 대한 강의가 있었고요. 두 번째 시간에는 ‘정토행자는 어떤 관점으로 수행을 하는가?’, 세 번째 시간에는 ‘정토행자는 어떠한 관점으로 봉사와 보시를 하는가?’ 하는 주제로 강의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강의를 들으면서 의문이 들었거나 추가로 더 알고 싶은 내용이 있는 것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여러 명이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 명은 개인 고민에 대한 질문도 있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불만을 갖게 되는데, 어떻게 하면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어떻게 무의식에 쌓인 불만을 없앨 수 있나요?

“저는 어려운 일 없이 무난하게 인생을 살아왔지만 무의식 속에 불만이 많은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감사 인사도 잘하고 감사하다는 마음도 잘 내지만 밑 마음에는 계속 불만이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자면 아침에 출근할 때도 ‘출근할 곳이 있어서 감사하다’, ‘월급을 받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가는데, 막상 일을 하다 보면 ‘일하는 게 힘들다’, ‘왜 사장님은 이러저러한 대우를 안 해줄까’ 등 다양한 불만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해야 무의식에서부터 감사한 마음을 좀 더 낼 수 있을까요? 아침 정진하면서 감사 기도를 하고는 있는데, 꾸준히 그냥 하면 될지 아니면 다른 기도문으로 수행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질문드립니다.”

“어린아이들에게 물이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 수도꼭지에서 나온다고 대답해요. 밥이 어디서 났냐고 물으면 밥통에서 나온다고 하고, 반찬은 어디에서 났냐고 물으면 냉장고에서 나온다고 해요. 옷은 옷장에서 나온다고 하고요. 이렇게 대답하는 건 본인이 그렇게 밖에 못 봤기 때문이에요. 항상 옷장을 열면 깨끗한 옷이 있고, 밥통을 열면 밥이 있고, 냉장고를 열면 먹을 것이 있고,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을 마실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옷을 입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이런 말을 하라고 해도 겉으로는 따라 할지언정 감사함이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지는 않습니다. 아이의 시각에서는 감사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아이가 자라서 엄마가 되어 자기 아이를 키워보면 고마움을 알게 돼요. ‘옷장 문을 열면 으레 옷이 있는 줄 알았는데, 누군가가 빨래를 해서 하나하나 개켜 넣어놨기에 옷이 있었구나. 밥통만 열면 밥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누군가 쌀을 씻고 안쳐서 밥을 해준 덕분이구나. 냉장고만 열면 음식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모두 엄마가 하나하나 준비해서 넣어둔 것이었구나.’ 이런 걸 알게 되면 엄마한테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느껴집니다.

그런데 엄마까지는 겨우 이렇게 고마움을 느끼지만, 그런 역할에 아빠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으로 보이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 대다수가 엄마한테는 고마움을 느껴도 아빠한테는 고마움을 덜 느끼는 거예요. 엄마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는 데도 시간이 걸리는 데다 아빠는 또 그런 엄마 뒤에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조금 달라졌습니다만, 지금까지는 아빠가 가장인 경우가 많았잖아요. 쌀을 사고 밥통을 살 수 있도록 돈을 준 사람도, 옷을 살 수 있도록 돈을 준 사람도 아빠입니다. 그렇게 가족이 쓸 돈을 벌기 위해서 아빠는 직장에 나가 하루 종일 일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더 커서 본인이 직장에 다녀보거나 직접 농사를 지어보면 ‘아, 아빠가 참 감사한 분이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돼요.

오늘 두북 공동체에서 모내기를 한 뒤 나누기를 했더니 아버지에게 감사하다는 말이 많이 나왔어요. (웃음) 옛날에는 모내기하는 게 모두 남자 일이었잖아요.

‘그때 아빠가 하는 일을 좀 도와줄 걸.’
‘모내기할 때 심부름시키는 게 싫었는데 열심히 할걸.’
‘아침마다 삽을 메고 논에 나가는 아빠를 보면서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오늘 생각해 보니 아빠가 이렇게 힘들게 농사를 지어서 나를 대학까지 보내줬구나. 정말 감사하다.’

이렇게 이제 아빠가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눈에는 기껏해야 이 정도밖에 안 보입니다. 예를 들어 밥하고 빨래하고 농사짓는 물이 있으려면 누군가 댐도 짓고 수도관도 설치해야 해요. 물이 우리 집까지 오는 과정을 다 알게 되면 물 한 방울을 쓸 때마다 ‘이 물이 그냥 생긴 게 아니구나. 정말 고맙다’라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어요. 밥 한 그릇 먹을 때마다 농사짓는 사람, 밥통을 만든 사람, 전기를 생산해준 사람 등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길이 거쳤는지 알면 저절로 감사하게 됩니다. 옷 한 벌도 옷감 생산부터 우리에게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길을 거쳤겠어요? 이처럼 이 세상에 실제 있었던 일을 알게 되면 마음속에서 저절로 ‘아이고, 감사합니다. 아껴 쓰겠습니다’ 이런 마음이 든단 말이에요.

이걸 모르면 감사한 마음이 잘 우러나지 않습니다. 감사하라고 하고 아껴 쓰라고 하니까 말은 그래도 ‘감사합니다. 아껴 쓰겠습니다’라고 하지만, 남이 안 보면 함부로 하기 쉬워요.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옆에서 누가 감사하라거나 아껴 쓰라고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자기 마음에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아껴 쓰겠습니다’라는 말이 나오게 돼요.

질문자가 지금 겉으로 감사를 하지만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지 않는 것 역시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훗날 본인이 직접 회사를 운영해 보면 생각이 많이 바뀔 거예요. 운영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거나,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거나, 여러 가지 사회 변화로 어려움을 겪으면 이런 생각이 들 겁니다.

‘아, 직원을 거느리고 일을 하는 게 정말이지 간단한 일이 아니구나. 직원들 월급 주는 것만 해도 사회에 큰 기여를 하는 것이구나.’

밥을 해보고 농사를 지어봐야 부모님의 고마움을 알 듯이, 이런 건 직접 해봐야 알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걸 모르면 어떻게 될까요? 밥통 열어보고 밥 없다고 불평하고, 수도꼭지 틀어보고 물 안 나오면 불평하고, 냉장고 열어보고 반찬 없으면 불평하고, 옷장 열어보고 옷 없으면 불평하게 됩니다. 모르는 사람은 자기 뜻대로 안 된다고 불평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걸 다 알게 되면 불평할 일이 없어집니다.

질문자가 감사한 마음이 우러나지 않는 이유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해결하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저절로 감사하며 살 수 있으려면 사실을 사실대로 확연히 알아야 해요. 둘째, 사실을 모를 때는 몰라도 자꾸 ‘감사합니다’라고 우선 반복해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아, 정말 감사하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질문이 더 있으면 해 보세요.”

“사실 제가 아빠와 사이가 좀 안 좋았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아빠에 대한 감사함은 많이 생겼지만, 그동안은 아빠가 너무 미워서 그걸 곧이곧대로 보기가 싫었어요. 제게는 아직 사실을 사실대로 보기 싫어하는 마음이 좀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기 싫어하는 게 아니라 지금 사실을 사실대로 몰라서 그래요. 보기 싫어서 안 보는 게 아니라 아직 진실을 발견하지 못한 거예요. 그러니 아버지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되어서 감사하다고 생각하다가도 어릴 때, 즉 모를 때 미워했던 습관이 남아 있기 때문에 순간 무지(無智)가 끼어듭니다. 그래서 감정이 먼저 올라왔다가 정신을 차리면 ‘감사합니다’ 이렇게 되기를 반복하는 거예요.

무의식 세계에서 저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려면 실상을 확연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정말 힘들게 살다가 스님 법문을 듣고 그 어려움에서 벗어나면 저절로 마음에서 우러나서 감사 인사를 하고 보시하고 봉사하잖아요. 그런데 본인이 아직 그런 경험을 못 했다면 ‘왜 자꾸 전법하라고 해? 왜 이런 걸 시켜?’ 이렇게 불만이 생겨납니다. 그러면 정토회 활동을 자꾸 의무감으로 하게 되고 무거운 짐으로 느끼는 거예요.

요즘같이 가물 때 직접 농작물에 물을 줘보면 하늘에서 비가 온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비가 돈으로도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돼요. 물조리개로 물을 한참 준 뒤에 땅을 파보면 조금 아래에 뽀얗게 마른땅이 나와요. 이런 가뭄을 직접 겪어봐야 비가 듬뿍 올 때 ‘이게 정말 천금보다 귀하구나’를 알 수 있습니다. 소나기만 한 줄기 내려도 사람이 물조리개로 주는 물보다 훨씬 더 많잖아요. 제가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면서 민둥산만 보다가 한국에 돌아와서 푸른 산을 보니까 이 산 하나만 해도 보물단지처럼 느껴졌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나무에 물을 줘서 우리나라처럼 산 하나를 산을 푸르게 만들려면 수백억 원을 들여도 쉽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이런 자연의 은혜 속에 살고 있지만, 태어날 때부터 주어져 있다 보니 그 고마움을 몰라요. 어릴 때 부모의 보살핌을 당연하게 받다 보니 그 고마움을 모릅니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세요. 부모에게 감사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돼요? 내가 원하는 대로 안 해줬다며 불만인 사람이 대부분이죠. 이 세상에 감사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돼요? 모두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안 됐다고 불만이죠. 또 자연에 감사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겠어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상황을 직접 겪어보면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올라옵니다. 공기가 오염되거나, 물이 오염되거나, 먹을 게 없어서 굶주려 보면 배곯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래서 옛날에 배곯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밥만 먹을 수 있어도 만족할 줄 알고, 다른 사람이 배고프다고 하면 ‘아이고, 딴 건 몰라도 배고픔은 없어야지’ 이렇게 연민의 마음을 가져요. 그런데 이런 경험이 없는 젊은 사람들은 ‘밥 없으면 라면 먹고 빵 먹으면 되잖아’ 이런 식으로 사고가 흘러가게 돼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풍요롭게 살다 보니 북한 동포들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관심을 가지거나 도우려는 마음이 없는 거예요. ‘미사일 쏘는 놈들!’ 이렇게 나쁜 측면만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죠. 2500만 주민들이 어렵게 살아가는 현실은 잘 못 느낍니다. 그래도 나이 많은 세대는 6.25 전쟁의 상흔이 있으니까 욕도 하지만, 직접 배곯아 본 경험도 있기에 북한 주민들의 현실에 아픔도 느껴요. 그런데 젊은 세대는 욕도 별로 안 하지만, 아픔도 못 느껴요. 북한 주민을 위한 모금 운동을 해보면 노인들은 그런 나쁜 놈들에게 주긴 뭘 주냐고 욕을 하면서도 1000원짜리 한 장을 넣고 가고, 젊은 사람들은 욕도 안 하지만 후원도 안 합니다.

이게 다 경험의 차이예요. 인간이란 원래 자기가 경험한 만큼밖에 몰라요. 여러분이 이렇게 같은 법문을 들어도 직접 경험을 해 본 사람은 법문이 들리는 반면 경험이 없는 사람은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게 돼요. 제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법문을 해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과거에 내가 그런 문제의식을 안 가졌을 때는 그냥 소리로만 귀에 들리고 지나간 거예요. 내가 경험하고 나서 들으면 엄청난 메시지로 다가옵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만 다 제 그릇만큼 얻어간다’ 이런 말이 있어요. 똑같은 법문이라도 다 자기가 열린 마음만큼만 얻어가지, 똑같이 얻어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늘 감사하라고 법문 하는 거예요. 아침에 눈 떴을 때 ‘살았구나!’ 이렇게 기뻐하라고 하잖아요. 살아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큰 사고가 나서 다 죽었는데 자기 혼자 살았다면 팔이나 다리가 하나 부러져도 엄청나게 기쁠 거예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매일, 매 순간 일어나는 기적입니다. 그런데 그걸 모르고 불평불만만 하니까 늘 화를 자초하는 거예요. 이걸 깨달으려면 고통을 겪어 봐야 해요. 고통을 겪는다는 건 곧 화를 자초하는 거예요. 그걸 미리 알 수 있다면 우리는 나날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조금이라도 어려운 사람에게 기여할 수 있고 세상에 조금이라도 쓰임새가 있는 사람으로 사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고 얼마나 큰 보람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잘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무리 법문을 해도 한마디로 소귀에 경읽기인 거예요. 다들 자기 생각만 하니까요. 그렇다고 이걸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존재가 원래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야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남에게도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어요. 정토회는 사람들이 자유롭고 행복하고 남에게 도움 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창립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법을 하는 거예요. 돈을 벌거나 세력을 얻거나 인기를 끌기 위해 하는 활동이 아닙니다.

우선 질문자는 본인을 살펴보고 감사 기도를 꾸준히 해보세요. 자기가 경험 안 해보고 못 깨달은 걸 어쩌겠어요? 그건 죄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에요. 그러니 일단 법문을 듣고라도 ‘아, 그럴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면 아침에 눈 떠서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해 보세요. 이렇게 억지로라도 하면 어느 순간에 마음에서부터 감사함이 우러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정토회와 수행, 보시, 봉사하는 삶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산 밑밭에 올라가서 고추 모종에 줄을 치는 작업을 하고, 산 아랫밭에 물 주기를 한 후, 저녁에는 정토불교대학 인간붓다 제2강 수업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6

0/200

춘식이

집 창 밖에 거미가 집을 짓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거미가 알집 돌보는 걸 보니 작은 벌레 한 마리가 태어나기 위해서도 어미의 큰 희생과 정성, 다른 벌레들의 죽음이 필요하더군요. 그걸 보니 제가 함부로 죽인 벌레가 생각났어요. 김치에 좀 앉았다고 바로 죽였는데 다른 생명을 그리 대하고도 멀쩡히 살아있는 것만으로 제가 어떤 특권을 받았는지 알겠어요.

2023-08-21 03:10:53

푸름이

정토회는
사람들이 자유롭고 행복하고
남에게 도움 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창립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06-13 10:23:32

김애자

똑같은 법문이라도 다 자기가 열린 마음만큼만 얻어가지, 똑같이 얻어가지는 않습니다.

정토회는 사람들이 자유롭고 행복하고 남에게 도움 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창립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법을 하는 거예요. 돈을 벌거나 세력을 얻거나 인기를 끌기 위해 하는 활동이 아닙니다.

2022-06-13 09:59:52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