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5.31 정토불교대학 인간 붓다 제1강
“붓다의 삶과 사상을 공부하고자 하는 이유”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도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농사일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올해는 평년만큼 비가 내리지 않아 전국적으로 가뭄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메말라가는 땅만큼 농부들의 마음도 타들어갑니다. 스님은 먼저 밑밭으로 가서 작물에 물을 주었습니다. 행자님이 큰 물통에 호스를 연결하는 동안 스님은 물조리개에 물을 길어와 주었습니다. 마른땅에 물이 곧장 스며들었습니다.



호스 끝에 작대기를 묶어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쥐기도 좋고, 작대기 끝으로 땅에 살짝 구멍을 내서 물을 주면 바깥으로 흐르지 않고 땅속으로 잘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호스로 아홉 두둑에 물을 다 주었습니다. 햇살이 점점 뜨거워졌습니다.




물을 다 주고 이번에는 산아랫밭으로 갔습니다.

산아랫밭도 무척 메말라있었습니다. 그런데 작물은 잘 자라지 못하는데 가뭄 속에서도 풀은 무성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풀을 뽑자 길고 긴 뿌리가 딸려 나왔습니다. 뽑은 풀은 거름으로 쓸 수 있도록 이랑에 그대로 널어두었습니다.




풀을 뽑고 텃밭으로 갔습니다.

상추가 어느새 소복이 자라 밭을 빽빽이 메우고 있었습니다.


“상추를 솎아줘야 꽃이 안 피고 또 자라요.”

작은 텃밭에서 상추가 세 바구니 나왔습니다.


울력을 마치고 발우공양이 끝난 후 10시부터 정토불교대학 수업 리허설을 진행했습니다. 오늘부터 강의 주제가 ‘인간 붓다’로 바뀌게 되는데 그에 따라 강의 중에 자료화면을 보여주어야 해서 미리 리허설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리허설을 마친 후 오후에는 개정판 반야심경 원고와 신간 ‘깨달음의 글’ 원고를 검토하고 정토불교대학 강의를 준비했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8시에 정토불교대학 생방송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시간까지는 ‘실천적 불교사상’이란 제목으로 불교사상의 요체가 무엇인지 공부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제 정토불교대학의 전반기 수업을 마무리하고, 오늘부터는 후반기 수업을 새로 시작합니다. 후반기 수업에서는 ‘인간 붓다’란 주제로 괴로움이 없는 삶으로 나아가는 진리의 길을 제시한 부처님의 삶과 사상을 공부하게 됩니다.

오늘은 인간 붓다 제1강으로 왜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하고자 하는지, 부처님 탄생 당시 인도의 환경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강의를 했습니다

“부처님은 지금부터 2600년여 전에 인도 대륙 북쪽에서 태어나 인도 대륙 전역에서 활동하신 분입니다. 현대도 아니고 2600년여 전에, 우리나라도 아니고 인도 대륙에서 생활하셨던 부처님의 삶을 공부한다고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아요. 그러나 저는 만약 여러분이 부처님의 삶과 사상을 공부한다면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이런 수업을 개설한 거예요.

붓다의 일생을 공부하고자 하는 이유

부처님은 2600년여 전에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라는 작은 나라의 왕자로 태어나 다음에 왕이 될 태자로 지목된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장 과정에서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었지만 정작 본인은 굉장히 고민이 많았습니다. 누구나 생활이 어려워지면, 먹는 것이 가장 걱정이고, 다음으로 입는 것과 자는 것을 걱정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도 경제적으로 살기 어려울 때 기와집에 살면서 비단옷을 입고 매일 흰쌀밥을 먹을 수 있다면 걱정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얘기를 많이 했잖아요. 부처님은 그 당시에 이미 오늘날 부자의 조건에 부합하는 삶을 사셨지만, 고뇌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만약에 부처님이 먹고 입고 자는 게 고민이었다면, 남한테 가서 먹을 음식을 구하든지, 입을 옷을 구하든지, 잠잘 집을 구하든지 했을 겁니다. 아니면 신에게 도와 달라고 비는 걸로 해결 방법을 찾으려 했을 거예요. 그런데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괴로움이 생기니까 누구한테 부탁해서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연적으로 왜 괴로운지를 탐구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번뇌가 왜 생기는지, 화가 왜 나는지, 깊이 탐구를 하게 되었고, 결국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삶의 경지로 나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태자로 있으면서 온갖 기름진 음식들과 화려한 옷을 입고 천하를 호령하면서도 번뇌가 사라지지 않았는데, 오히려 출가해서 남의 집에서 버린 음식을 얻어먹고 버린 옷을 주워 입고 동굴이나 나무 밑에서 자고 지내는 데도 아무런 괴로움과 두려움이 없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사시면서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괴로워할 때 그 고뇌에서 자유로워지는 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괴로움의 원인을 바깥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자신의 욕망, 성질, 어리석음을 알아차려서 거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괴로움의 원인이 돈의 부족이라면 돈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겠죠. 그러나 이 길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자신의 어리석음만 깨치면 도달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 누구나 다 도달할 수 있는 길이었어요.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평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계급의 차이, 성별의 차이, 빈부의 차이와 관계없이 누구나 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겁니다.

‘어떻게 하면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이것이 우리가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하는 목적입니다. 그분의 삶을 연구해봄으로써 우리도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삶으로 나아가 보자는 거예요.

미래로 향한 옛길

그럼 오늘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특별히 부자가 아니라도 우리가 생활하는 모습을 만약 100년 전에 우리의 선조 할아버지가 보셨다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옛날 사람들의 기준에서 보면 그 시대에 왕처럼 살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우리의 삶은 풍요로운 편입니다. 흰쌀밥을 먹는 수준을 넘어섰고, 비단옷 입는 수준을 넘어섰고, 기와집에 사는 수준을 이미 넘어섰어요. 주택은 이미 안온한 잠자리를 제공해 주는 곳을 넘어서서 인간이 살기에 가장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 주는 곳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생활을 도와주는 여러 가지 도구들과 가전제품이 집안일을 손쉽게 해 줍니다. 먼 길을 이동할 때도 옛날 황금마차보다 더 빠르고 안락한 자동차로 이동을 합니다.

옛날 사람이 지금 우리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호화로운 삶을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스트레스를 받고 삽니다. 두려워하고 외로워하고 슬퍼하며 살고 있어요. 지금 우리들의 삶은 마치 붓다의 젊은 시절이었던 고타마 싯다르타의 삶과 조건이 비슷합니다. 시대는 비록 26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지역은 다르지만, 고뇌하고 있는 조건은 거의 비슷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일생은 단순히 과거의 얘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다는 거예요. 이것이 제가 여러분에게 부처님이 걸어가셨던 길을 소개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부처님이 가신 길은 옛날에 발견되었지만 이 길은 과거로 가는 길이 아니라 미래로 가는 길입니다. 지금 우리의 처지와 조건이 고타마 싯다르타와 비슷하기 때문에 고타마 싯다르타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해보고 ‘이분이 이렇게 괴로움 없이 살았다면 나도 괴로움 없이 살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과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 우리가 인간 붓다 그 위대한 삶과 사상을 공부해 보는 겁니다.

부처님 당시의 인도 상황

사람의 인격은 그가 자란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제가 한국말을 하는 것도 한국 사회의 영향입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고 이런 성격을 갖게 된 것도 가족 또는 지역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환경은 첫째, 자연환경입니다. 열대지역에 사는 사람, 에스키모와 같이 한대지역에 사는 사람, 서안해양성 기후에 사는 유럽 사람, 우리와 같이 온대 몬순 기후 지역에 사는 사람 등 기후 환경이 인간의 심성 형성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먼저 인도의 자연환경을 살펴볼 겁니다. 두 번째로 부처님이 태어나서 자랐던 역사적 배경인 인도의 역사를 살펴볼 겁니다. 세 번째로 부처님이 태어나고 성장할 때의 사회적 환경을 살펴볼 겁니다. 이렇게 주변 환경을 파악해 보는 것은 부처님의 인격 형성에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부처님이 어떤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는지를 아는 데에 큰 도움이 됩니다.

요즘은 인류 문화사라고 해서 예전에는 신화나 전설로만 여겼던 이야기들을 사실적으로 밝혀내고 있습니다. 신비주의적으로만 접근하지 않고, 왜 그런 신화와 전설이 생겼는지,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등에 대해 연구하는 것처럼 우리도 부처님을 인류 문화사적 관점에서 이해해보자고 합니다.”

이어서 스님은 인도의 자연조건, 역사와 문화, 정치, 경제, 사회를 한눈에 알 수 있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준비한 TV 화면에는 인도의 지도가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환경 속에서 당시 민중들이 가졌던 간절한 바람이 무엇이었는지, 그것이 오늘날과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부처님이 살았던 당시 인도의 상황은 마치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비슷했습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 복속되어 가면서 서로 통합되거나 패권을 형성하여 16 대국이 되었고, 그중 2대 강국, 지금으로 말하면 G2가 마가다국과 코살라국이었습니다. 마가다국은 전통이 있고 문화가 발달한 나라였고, 코살라국은 군사 경제적으로 부강한 신흥국이었습니다. 이렇게 급격하게 사회가 변해가는 혼란의 시대에 부처님이 출현하셨습니다.

민중의 간절한 바람과 붓다의 탄생

그 시대에 가장 어려운 계층은 노예 계급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아주 비참했습니다.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겨 왕이 되기 위해서는 심지어 형제를 백 명씩 죽였습니다. 그래서 왕이 된 후에 부처님을 만나 형제를 많이 죽인 죄를 어떻게 참회해야 하는지를 묻는 내용이 경전에도 나옵니다. 형제를 죽이고 왕이 되고, 아버지를 죽이고 쿠데타를 일으켜서 왕이 되고, 이런 일이 빈번한 시대였습니다. 당대 최강국인 마가다국에서도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됐고, 코살라국에서도 아들이 아버지를 쫓아내고 왕이 된 시대였습니다. 윤리나 도덕보다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시대였고, 그러다 보니 사치와 향락이 만연했고,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다수의 사람은 내팽개쳐지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통적인 브라만교의 권위는 사라지고, 기존의 가치, 윤리, 도덕이 점점 허물어져가는 시대였습니다. 지금까지 믿고 따랐던 브라만교의 철학으로는 세상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신이 세상을 질서 있게 유지하고 관리한다는 믿음이 깨지고, 세상을 설명하는 새로운 사상이 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는 아주 극단적인 사상도 있습니다. 복도 없고 죄고 없다는 무인무연론(無因無緣論)이 그것입니다. 사람을 죽여 놓고 ‘칼날이 그 사람 몸을 지나갔을 뿐이지 죄라는 건 없다’ 하는 극단적인 주장도 등장하였습니다.

인도에서 계급은 출생으로 정해졌기 때문에 사제 계급인 브라만은 태어나면서부터 브라만이었습니다. 브라만이 사상과 종교를 지배했던 전통에 반대하여 일어난 사람들은 자신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집을 버리고 사상계로 나왔습니다. 이들은 브라만 출신이 아니라서 어떤 계급적 권위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나옴으로써 새로운 권위를 가지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아무 욕심이 없다. 저들의 말은 믿어도 된다’라는 신뢰를 얻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을 가리켜 출가 사문이라고 합니다. 당시 인도의 사상계는 크게 둘로 나뉩니다. 전통 주류인 브라만과 신흥사상가인 비주류 사문(沙門)입니다. 사문은 인도말로 사마나(samana)라고 합니다. 경전에 보면 ‘어떤 브라만이라도’, ‘어떤 사문이라도’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이 당시 사상계의 두 가지 큰 흐름이었습니다.

부처님은 어린 시절 브라만교의 전통 속에서 자라고 교육받았습니다. 그런데 마주하는 현실이 가르침과 모순이 생기면서 고뇌하게 되었고, 그러던 중 출가 사문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모순이 해결될 것 같은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출가를 원하셨지만 부모의 반대로 십여 년간 망설였습니다. 결국 기존의 사상으로는 인간이 고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최종 결론에 이르게 되었고, 본인도 출가 사문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사문을 만나서 출가를 결심한 때가 16살 또는 19살이고, 결단을 하고 출가를 한 때가 29살이기 때문에 적어도 10년, 많게는 13년 정도 고뇌의 기간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출가 사문류에는 수십 개의 지파가 있었습니다. 좁게는 ‘육사외도’라고 해서 6개의 지파가 있었고, 더 넓게는 62가지 견해가 있었고, 좀 더 많게는 360가지 견해가 있었습니다. 마치 중국의 제자백가 시대와 비슷했습니다. 세속사회는 권력투쟁을 위해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났고, 사상계는 모두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시대였습니다. 한쪽에서 진리라고 말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아니라고 말하고, 저쪽에서 진리라고 말하면 이쪽에서 아니라고 말하고, 무엇이 진리이고 인생을 바르게 살아가는 길인지 알 수 없는 혼란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민중들에게는 두 가지 염원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법과 진리로 세상을 통일하는 위대한 왕, 성군이 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인도에서는 이런 왕을 전륜성왕(轉輪聖王)이라고 합니다. 법의 수레바퀴와 정의로 세상을 통일하여 계급 차별과 굶주림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를 가져다줄 그런 왕이 등장하기를 소망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사상계의 주장이 각각 다르니까 누군가가 일체를 깨달아(일체지자一切智者), 즉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인 붓다가 출현해서 사상계의 혼란을 정리해 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부처님이 태어났을 때 아시타(阿私陀, Sita) 선인이 부처님의 관상을 보고 ‘이분이 세속에 있으면 전륜성왕이 될 것이고, 출가해서 수행하면 붓다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는 설화는 그러한 시대적 요구를 정립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600년 전 민중들의 고민과 현대인들의 고민

이런 중생의 희원(希願)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유교, 불교, 기독교 등 각기 주장이 달라서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습니다. 사회는 치열하게 경쟁하고 빈부격차도 급속도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결혼하면 평생 같이 살아야 한다는 전통적 가치도 다 허물어졌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남녀가 서로 내외를 한다든지, 자식은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것과 같은 가치는 다 허물어졌습니다. 전통적인 가치관은 허물어지고 새로운 가치관은 아직 정립되지 않은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살기 때문에 먹고 입고 자는 것은 옛날보다 나아졌지만 더 고뇌가 많아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가 인생의 바른길을 제시하고, 빈부격차도 없고 남녀 차별도 없고 전쟁도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열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2600년 전에 이미 붓다가 출현해서 끝없는 탐구를 한 결과 마침내 진리의 길을 찾았고 그 길을 우리에게 제시했습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부처님이 어떻게 현실을 인식하고 진리의 길을 찾아나갔는지 그분의 일생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여기까지 강의를 한 후 인간 붓다 제1강을 마쳤습니다. 이어서 이번 주에 실천해야 하는 수행 연습 과제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학생들은 교실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생방송 수업을 마치고 방송실을 나오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농사일을 하고, 오후에는 손님과 미팅을 하고, 저녁에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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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념행

미래로 향한 옛길 이라는 말씀이 너무나 마음깊이 다가옵니다.
우리가 모든것을 가졌으나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그 원인을 알게 되니 앞으로 연습만 꾸준히 하면 되겠습니다.
법륜스님 감사합니다.

2023-11-20 06:17:31

오시윤

감사합니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2023-06-08 14:59:51

임효신

감사합니다.

2022-06-24 19: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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