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6.2 농사, 정토불교대학 인간붓다 2강
“싯다르타는 왜 출가를 했을까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도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농사일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작업복을 입고 산 밑밭으로 올라갔습니다.

그저께 지주대 설치를 끝낸 이후에는 계속 물 주기를 하고 있습니다. 벌써 고추 모종이 많이 자라서 오늘은 고추 줄 치기를 해주기로 했습니다. 바람이 많이 불면 줄기가 꺾여서 성장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지지대 사이에 작물을 3개 정도 포함하게 한 후 끈으로 지지대 사이를 두 겹으로 엮어서 줄을 쳤습니다. 고추 위쪽에 두 갈래로 갈라지는 가지가 있는데 방아다리라고 합니다. 방아다리의 바로 아랫부분을 기준으로 줄을 쳤습니다.



두 겹으로 엮어서 줄을 친 후에는 끈으로 고추의 양 옆을 고정해 주었습니다. 고추를 동서남북으로 잡아 주니 쓰러질래야 쓰러질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끈을 고정해 주면서 스님은 곁순도 틈틈이 제거했습니다. 그래야 성장이 빠르게 때문입니다.

고추의 키가 커질 수록 1단에서 2단으로 높여 가며 줄 치기를 해주어야 하는데, 오늘은 1단에 줄 치기를 마쳤습니다. 짱짱하게 잘 쳐진 줄을 보며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 정도면 줄을 아주 튼튼하게 잘 쳤어요. 튼튼해서 양 옆에 묶어주는 건 안 해도 될 뻔했어요.”

고추 줄 치기를 마치고 산 아랫밭으로 가보았습니다. 가뭄이 심해서 땅이 더욱더 바짝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바가지로 물을 퍼서 몇 차례 흩뿌려 보다가 한숨을 쉬었습니다.

“큰일이네요. 가뭄이 너무 심해요. 낮에 햇볕이 뜨겁기는 하지만 물통에 물을 가득 싣고 와서 밭에 물을 좀 줍시다.”

바짝 말라가는 밭을 뒤로하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텃밭에는 복숭아나무에 잎마다 진딧물이 잔뜩 붙어 있었습니다.

“아이고, 날이 가물어서 진딧물이 더 많이 번지는 것 같아요.”

진딧물이 많이 붙어 있는 잎은 일일이 손으로 뜯어 버린 후 유기농 약을 물에 타서 잎마다 뿌려 주었습니다. 줄기와 잎에 붙은 진딧물은 쉽게 떨어지는데 새순의 뒷부분은 아주 세게 뿜어야 겨우 떨어졌습니다.


소나무에는 솔순이 쑥쑥 자라고 있었습니다. 동그랗게 다듬으면서 잘라낸 솔순을 모아서 송차를 만들었습니다. 가위로 솔잎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낸 후 물에 깨끗이 씻어서 말렸습니다.



씻은 솔잎을 햇빛에 물기를 말리고 끓인 물을 식혀서 솔잎, 설탕, 물을 섞어 담아두면 발효되어 송차가 됩니다. 햇살이 점점 뜨거워질 무렵 아침 울력을 마쳤습니다.

“밥 먹고 나서 산 아랫밭에 물을 주러 갑시다. 혹시 물 주는 일을 같이 도와줄 사람이 있어요?”

“없는 것 같아요. 다들 바빠서요.”

“요즘은 제가 제일 한가하네요. 물을 줄 사람이 저 밖에 없으니까요.” (웃음)

오전 공양을 마치자마자 트럭에 실린 물통에 물을 가득 담아서 다시 산 아랫밭으로 올라갔습니다.

가뭄에 땅이 쩍쩍 갈라지고 작물은 성장을 멈춘 것 같아 보였습니다. 트럭을 산 위에 세워놓고 호스를 연결하여 밭까지 내렸습니다.




“물을 틀어 주세요.”

스님은 호스를 잡고 이 고랑 저 고랑을 옮겨 다니며 뿌리마다 물을 흠뻑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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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계속 주었으면 작물이 더 잘 자랐을 텐데... 쯧쯧”

물통에 물이 다 떨어질 때까지 최대한 골고루 물을 주었습니다.


“스님, 물통에 물이 다 떨어졌어요.”

“그래요? 여기까지만 물을 줍시다. 해질녘에 물을 한 번 더 주고, 오늘은 여기까지 해요.”

낮 기온이 33도를 찍었습니다. 해질녘에 물을 한 번 더 줄 수 있게 호스를 밭에 그대로 연결해 놓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오후에는 뙤약볕을 피해 실내에서 신간 준비 원고를 검토하고 교정을 보았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8시에는 정토불교대학 생방송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수업에서 인간붓다 제1강이 진행되었고, 왜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하고자 하는지, 부처님이 태어난 당시의 환경에 대해 자세히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인간붓다 제2강입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전 청년 시절에 어떤 고뇌를 하면서 성장했는지에 대한 스님의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부처님은 어떤 역사적 사회적 배경 속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왜 구도의 길을 떠났고, 그 결과 어떤 깨달음을 얻었으며, 그 이후 평생을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배우고 있는데요. 우리가 부처님의 삶을 살펴보면서 항상 중요한 것은 ‘나는 어떤가’ 하는 이 관점을 잊지 않고 공부해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삶을 공부하는 이유가 내가 괴로움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싯다르타는 왜 출가를 했을까요

부처님은 한 나라의 왕자로 태어났고, 왕이 될 수 있는 태자의 지위에 있었습니다. 그런 분이 왜 왕위를 버리고 출가해서 구도의 길을 떠났을까요? 요즘 말로 하면 사춘기라고 할 수 있는 나이인 중학생 정도 되는 나이 때에 세상의 모순을 보고 큰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것이 출가의 계기가 됐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어린 시절에 두 분의 스승이 계셨습니다. 한 분은 주로 철학이나 인문학, 예술을 가르쳤고, 한 분은 주로 무술이나 군사를 가르쳤습니다. 왕으로서 갖춰야 할 공부를 한 거죠. 이렇게 어린 시절에는 궁 안에서 공부만 하다가 어느 날 아버지를 따라서 농경제에 처음으로 참여했습니다. 이때가 부처님이 15살이었다고 말하는데, 어떤 경전에는 12살이라고도 합니다. 인도 당시에는 이때가 학생 시기를 마치고 성인의 대우를 받고 가업을 이어가는 시기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당시 사회는 농업을 기초로 하는 사회니까, 농사가 시작되는 봄에 농경제라는 축제를 했습니다. 왕이 금으로 만든 쟁기를 몰고 나와서 시범을 보이면, 옆에서 대신들이 은으로 만든 쟁기로 시범을 보이고, 농부들이 철로 만든 쟁기로 땅을 갈았습니다. 이것이 한 해 농사의 시작이었습니다. 싯다르타 태자는 그 농경제에 아버지를 따라서 참석을 했는데, 쟁기가 땅을 갈면서 흙을 뒤집으니까 벌레가 나오고, 새들이 그것을 쪼아 먹는 모습을 보면서 큰 의문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 눈에 띈 것은 농민들의 고통스러운 얼굴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궁 안에서 본 사람들은 하인이라도 다 깨끗한 옷을 입고 말쑥했는데, 궁 밖에 농사짓는 농민들은 피부가 새까맣게 그을러 있고 흙투성이고 옷도 남루하고 몸은 바짝 말랐고 얼굴은 고통스러웠습니다. 보기만 해도 너무나 불쌍해 보여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이렇게 가난하고 고통스럽습니까?’

‘관리들이 세금을 너무 많이 걷어가서 그렇습니다.’

태자는 그 얘기를 듣고 자신이 왕궁에서 풍요롭게 생활한 것이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고 이들의 고통과 굶주림 위에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불쌍한 농부가 쟁기질을 하면서 채찍으로 소의 엉덩이를 때리니까 피가 나고 입에 거품을 물고 헉헉 거렸습니다. 이때 두 번째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하나가 편리하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가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워야 할까?’

그때 쟁기가 흙을 파 뒤집자 땅 속에 있던 벌레가 나오고, 새들이 뒤따라가면서 벌레를 쪼아 먹었습니다. 그때 또 다른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하나가 살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는 죽어야 할까?’

태자는 화려한 농경제에 참석하러 갔다가 농경제에는 관심이 없고 결국 자기 생각에 빠진 겁니다.

‘왜 하나가 살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가 죽어야 할까? 왜 하나가 편리하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가 불편해야 할까? 왜 하나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가 불행해야 할까? 함께 사는 길, 함께 행복해지는 길은 없을까?’

이런 큰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스승에게 ‘함께 사는 길은 어떤 길입니까?’ 이렇게 물었지만 스승은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세상의 온갖 것을 다 아는 스승도 이 질문에는 대답을 못했습니다. 상대를 죽이고 내가 사는 길, 상대를 패배시키고 내가 승리하는 길, 내가 성공하는 길, 이런 것에 대해서는 온갖 것을 다 아는데, 같이 행복해지는 길은 스승도 모르고 부모님도 몰랐어요. 태자는 그렇게 존경받던 스승도 부모도 자신의 의문을 풀어주지 못하니까 결국 혼자서 사색을 하게 됐습니다.

성인이 된 태자는 왕궁 밖에 나가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세상에 나와서 본 세상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이 경전에는 세 가지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해서 하루는 동쪽 문으로 나가서 늙은이를 보고 하루는 남쪽 문으로 나가서 병든 이를 보고, 하루는 서쪽 문으로 나가서 죽은 시신을 본 것으로 정형화되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네 개의 문을 나가서 본모습’이라고 해서 사문유관(四門遊觀)이라고 합니다. 몇 년에 걸쳐서 세상에 나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았고, 그 과정을 통해 본인의 고뇌를 조금씩 정리해나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 행복해지는 길은 없을까?

제가 한국에 살다가 인도에 처음 갔을 때 캘커타 빈민촌을 보고 ‘이것이 곧 사문유관이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한국이 왕궁 같다면 캘커타 빈민촌은 바로 늙고 병든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캘커타에 가면 오베로이 호텔이라고 대리석으로 치장이 되어 있고, 그릇들은 다 황금으로 되어 있는 아주 고급 호텔이 있습니다. 그 호텔 안에 들어갔다가 문만 열고 밖에 나오면, 바로 구걸하는 거지들, 병든 사람들, 나병 환자 등을 볼 수 있었어요.

저는 그 호텔 문을 나오면서 ‘싯다르타 태자가 경험한 것이 이런 모습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처님은 그때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두 가지 선택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고통받는 사람을 무시하고 나는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내 생존과 승리를 위해서 남의 고통을 짓밟던지, 아니면 그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뇌를 하든지요.

그런데 저처럼 인도에 처음 간 사람은 길거리에서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프고 어쩔 줄 몰라 하지만, 정작 거기에서 태어나고 자란 인도 사람들은 그 모습이 익숙하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다. 오베로이 호텔에 가서 비싼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고 나오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봐도 아무렇지도 않고, 구걸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저 동전 하나 던져주고 지나갑니다. 빈부격차가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싯다르타 태자는 처음으로 궁에서 밖으로 나오면서 이런 모습을 보고 나서 많은 고뇌를 하게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후대에 불교가 지배 질서를 합리화하는 쪽으로 종교화되면서 부처님이 가졌던 이런 사회적 문제의식은 ‘인간은 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다’ 하는 정도로 단순화시켜 버렸습니다. 그러나 경전에 묘사된 것은 그냥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아닙니다. 늙었는데도 보호받지 못해 버려지고, 병이 들었는 데도 보호받지 못하고 버려지고, 죽은 시신마저도 거둬들이지 못하고 버려지는 비참한 모습을 보고 싯다르타 태자가 깊이 고뇌한 것입니다.

타인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지 마라

부처님 일생에서 사문유관을 대강 16살 내지 17살이라고 본다면, 결혼을 했을 때가 19살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29살에 출가를 했으니까 사문유관 이후에 10년 내지 13년 정도 고뇌를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출가는 그냥 마음이 확 난다고 뛰쳐나간 가출이 아니에요. 나름대로 탐구하고 부모님에게 간청을 했지만, 어머니가 울고불고해서 또 그만두고, 또 아버지에게 말씀드리거나 다른 대안을 내고 문제를 풀고자 시도해 보았지만 문제가 또 안 풀리고, 이런 기간이 오랫동안 있었던 겁니다. 싯다르타는 십몇 년을 이미 이렇게 고뇌했기 때문에 출가한 뒤에 다른 사람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른 시간에 스승의 경지에 이르게 된 거예요. 그냥 남을 따라 출가한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깊은 문제의식을 이미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출가 전에 오랜 기간 사색과 탐구를 했고, 그 결과 더 이상 욕망을 따라가는 이 방식으로는 자기가 느낀 모순을 도저히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그랬기 때문에 출가 후에도 세속적인 욕망에 대해 아무런 미련이 없었습니다. ‘이 길은 아니다’ 하는 것이 확실해져 버렸기 때문이에요.

태자는 시종 하나만 데리고 몰래 성문을 빠져나왔습니다. 성문을 몰래 빠져나왔으면 뒷문으로 나온 샘인데, 경전의 표현에는 ‘성을 뛰어넘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유성출가(逾城出家)’라고 합니다. 성을 뛰어넘었다는 것은 모든 것을 던지고 뛰어넘어서 출가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결혼 생활에 불만이 있거나, 왕이 못 돼서, 고시 공부에 떨어져서, 연애하다 실패해서 출가를 한 것이 아니에요. 왕이 될 수 있고 결혼 생활도 원만하고 자식도 있고 부족함도 없는데, 인간의 참자유와 참 행복을 위해서 출가를 한 겁니다. 그래서 태자는 궁문을 나가면서 성벽을 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천 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을지언정, 독약을 먹고 죽을지언정, 모든 중생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구하기 전까지는 결코 이 성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여러분들은 ‘출가’라고 하면 무슨 슬픈 사연이 있어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죠? 저에 대해서도 학생 시절에 출가를 한 사연이 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주로 말하는 사연이 뭐예요? 시험에 떨어졌다, 연애하다 실패했다, 사업하다 실패했다, 누가 죽었다, 이래서 출가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 출가는 진정한 출가가 아니에요. 연애하다가 실패해서 출가를 하면, 전 애인보다 더 예쁜 사람을 보면 마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고시 공부하다가 떨어져서 출가했다면 그보다 더 높은 자리가 있으면 유혹을 느끼게 됩니다. 사업에 실패해서 출가했으면 그 보다 더 큰돈을 벌 수 있으면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와 행복은 세상에 그 어떤 물질적인 것으로도 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출가를 하신 거예요. 또 부처님께서 출가할 때 결심한 내용을 보면,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어 신음하는 고통받는 중생들이 다시는 고통 없이 사는 길을 내가 하루속히 찾아야 되겠다는 원이 강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아 출가를 하신 거예요.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출가를 했기 때문에 왕위를 주겠다거나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는 등 많은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으셨고,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 왕들의 많은 질문에도 아주 늠름하게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 당시 절대왕국에서 사람의 목숨은 다 왕의 소유였어요.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를 왕이 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대였으니까요. 당시 두 번째로 큰 제국인 코살라국 쁘라세나짓 왕이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훌륭한 왕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이 물음에 대한 일반적인 답은 군대나 재정을 얼마나 갖고, 궁성은 얼마나 크면 된다 하는 거예요.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왕이시여, 백성 사랑하기를 외아들 사랑하듯이 하십시오. 가난한 자를 돕고 병든 자를 위로하십시오. 타인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지 마십시오.’

이렇게 한다면 특별히 무슨 고행이나 단식을 하거나 밤샘 기도를 하지 않아도 훌륭한 왕이 된다는 거예요. 굉장한 얘기죠. 이게 바로 부처님이 12살 때 세상의 모순을 보고 의문을 가졌던 것에 대한 대답입니다. 우리가 지금 원하는 건 다 남의 희생 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는 거잖아요. 며칠 전 선거에서도 내가 당선됐다고 좋아하면 이 행복은 누가 떨어졌다는 아픔을 딛고 있죠. 내가 시험에 합격했다면 누군가 떨어져야 되잖아요. 우리가 추구하는 행운이라는 것은 다 이렇게 타인의 불행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과연 그런 행복이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오늘날 우리는 그걸 추구하고 있잖아요. 부처님은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타인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아서는 안 됩니다. 만약에 그렇게 하면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는커녕, 나중에 자기 목숨 하나도 제대로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왕은 이런 부처님 말씀을 제대로 못 알아들었죠. 쁘라세나짓 왕은 나중에 아들한테 왕위를 빼앗기고 비참하게 죽습니다. 이게 우리 인생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런 길 대신에 함께 살고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발견하고 우리에게 제시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연기법이 중요한 거예요. 부처님은 연기법을 깨닫고 이 세상이 개별 존재의 집합이 아니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아니라, 서로 연관된 하나의 존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모순을 다 풀어낼 수 있었던 거예요.

깨달음을 얻고 반드시 돌아와서 은혜를 갚으리라

부처님은 어릴 때 세상의 모순을 보고 가졌던 자신의 의문을 깊이 탐구했고, 마침내 출가해서 6년 고행 후에 그 답을 찾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출가란 여러분들이 지금 알고 있는 것처럼 세상을 등져가는 것이 아니에요. 부처님이 출가하고 나서 부모한테 시종을 통해서 말을 전할 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절대 누구의 꼬임에 빠지거나, 나만이 행복하려고 출가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 좋은 법을 얻어서 반드시 돌아와서 부왕의 은혜를 갚겠습니다.’

부처님은 실제로 깨달음을 얻고 나서 고향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아버지, 일가친척이 진리의 눈을 뜨도록 교화를 하셨습니다.”

스님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이 부처님의 고뇌와 행적을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은 청년 싯다르타의 고뇌가 무엇이었는지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주 수행 연습 과제가 무엇인지 이야기한 후 생방송 수업을 마쳤습니다. 학생들은 교실별로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여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스님이 방송실을 나오니 밤 9시가 훌쩍 넘어 있었습니다.

내일은 농사일을 한 후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1

0/200

최영미

고맙습니다
재미있습니다^^

2023-08-23 12:59:16

평심

감사합니다

2022-06-08 12:00:34

김학연

감사합니다

2022-06-07 08: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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