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5.3 정토불교대학 실천적 불교사상 9강
“이 다섯 가지만 지키면 세상은 평화로워집니다”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중국에서 그리고 인도에서 손님들이 연이어 두북 수련원을 찾아와 스님과 대화를 나누고 돌아갔습니다. 스님은 손님들에게 두북 수련원 곳곳을 둘러보며 직접 소개를 해주었습니다.

먼저 비닐하우스로 지은 ‘살리고센터’로 들어갔습니다.

“여기는 재활용 물품들을 보관하고 유통하는 센터예요. 미싱도 가져다 놓고 헌 옷도 수선해 줍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헌 옷을 그냥 버리는데, 이곳에서는 헌 옷도 기워서 입습니다. 저도 맨날 옷을 기워서 입어요.” (웃음)

다음은 운동장 옆 밭으로 가 보았습니다. 각종 채소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여기는 옛날에 이곳이 초등학교였을 때 교장 선생님이 머무는 사택이었어요. 지금은 저희가 쌈채소를 수확해서 먹는 밭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반대편에 JTS 창고로 안내했습니다.


“여기는 북한 인도적 지원을 하기 위해 구호물품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했는데, 보수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남북관계가 단절되면서 그 후로 물품을 전혀 못 보내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재활용 물건들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기 보세요. 멀쩡한 의자인데도 필요 없다고 저희한테 가져다주고 그럽니다.” (웃음)

수련원 전체를 둘러본 후 손님들과 점심식사를 하고 다음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오후에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인도 부다가야에 한국 사찰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몰라상가 대표 붓다팔라 스님이 찾아와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붓다팔라 스님에게도 두북 수련원을 안내한 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8시부터는 정토불교대학 생방송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이 화상회의 방에 모두 입장하자 스님도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지난 수업 시간에는 불교의 다섯 가지 계율인 오계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계율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나머지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계율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나의 쾌락을 위해 남을 괴롭힐 권리는 없다

“불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규범인 오계 중에서 세 번째 계율은 불사음(不邪淫)입니다. 사람을 때리거나 물건을 훔쳐서 피해를 주는 행위 말고도 타인을 매우 큰 괴로움에 빠뜨리는 행위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적인 괴롭힘입니다. 내가 좋다고 해서 상대를 강제로 추행하는 것은 상대를 성적으로 괴롭히는 행위입니다. 이것은 상대를 때린 것도 아니고, 상대에게 경제적 손실을 끼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성적인 괴롭힘으로 인한 수치심은 한 대 맞거나 물건을 빼앗기는 괴로움보다 더 큰 정신적 고통을 야기합니다.

이런 성적인 괴롭힘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상대가 싫다는데도 불구하고 내 즐거움을 위해 상대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상대를 괴롭히는 행위입니다. 이럴 때 가해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너를 때린 것도 아니고, 너에게 손해를 끼친 것도 아니잖아. 그저 너를 좋아하는 내 마음을 표현하는 건데, 무엇이 잘못인가?’

때린 사람과 맞은 사람, 재물을 훔친 사람과 잃어버린 사람, 이런 관계에서는 견해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미미한 정도에 그치는 것에 비해 세 번째 계율인 불사음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견해 차이가 크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서로의 의견 충돌 또한 아주 큽니다. 피해자가 당하는 고통이 100이라고 가정하면 가해자는 별로 죄의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수행자라면 자기 즐거움이나 자기 좋음에 빠져서 상대의 고통을 알지 못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한쪽의 일방적인 강제성 없이 둘이 서로 좋아하지만, 이것 역시 남을 괴롭히는 행위가 될 때가 있습니다.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요. 하나는 관계를 맺는 상대가 미성년자인 경우입니다. 미성년자는 상황 판단력이 성년에 비해 불안정하므로 반드시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보호자의 동의를 얻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른 하나는 유부남 유부녀가 자기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불륜 행위를 하는 경우입니다. 당사자들은 서로 좋아서 하는 행위지만 그들의 행위가 배우자에게는 큰 괴로움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사자 간에 동의했다 하더라도 미성년자와 관계를 맺었거나, 결혼한 남편이나 결혼한 아내와 관계를 맺었다면, 모두 삿된 음행에 들어갑니다.

셋째, 합법적으로 결혼한 부부라 하더라도 상대의 의견에 반해서 강제로 관계를 맺는 것은 성폭행에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자기 부인이나 자기 남편이라 하더라도 성적인 문제는 어떤 경우에도 강제성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넷째, 이렇게 직접적인 괴롭힘을 주는 것뿐 아니라 간접적으로 성매매 업소를 운영해서 성매매를 알선하거나 성 착취물 및 동영상을 제작 유포하는 직업을 가지는 것도 이 계율을 어기는 행위입니다. 또한 음란물을 시청하는 행위도 불사음 계율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이미 2600년 전에 불사음에 대한 문제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남성만이 인간으로서 권리가 있고, 여성은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마저 가질 수 없는 시대였어요. 여성에 대한 성적인 추행이나 폭행이 동물 학대하듯이 그냥 일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사회였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이미 부처님은 상대를 성적으로 괴롭히는 것은 큰 범죄가 되므로 수행자는 절대 그런 행위를 하지 않도록 계율로 정한 겁니다.

삿된 음행을 해서 상대를 괴롭히지 말라는 불사음 계율은 꼭 성적인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에요. 장애인의 신체를 비하해서 괴롭힌다든지, 뚱뚱하다고 괴롭힌다든지, 키가 작다고 괴롭힌다든지, 피부 빛깔이 검다고 괴롭힌다든지, 이렇게 외형적으로 차별해서 사람을 괴롭히지 말라는 인권 존중의 가치가 세 번째 계율인 불사음 계율의 기본 취지입니다. 물론 성차별이 가장 핵심이지만, 인종 차별, 신체적인 차별, 계급 차별 등 모든 차별이 인간을 괴롭히는 핵심 요소임을 불사음 계율은 내포하고 있습니다.

말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네 번째 계율은 말로 남을 괴롭히지 말라는 불망어(不妄語)입니다.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 이 세 가지 계율이 직접적인 행동으로 남을 괴롭히지 말라는 것이라면, 네 번째 계율은 말로도 남을 괴롭히지도 말라는 거예요. 말은 상호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내 뜻을 타인에게 전달해서 서로 교류하는 것이 본래 말의 기본 정신이에요. 그래서 말을 할 때는 서로 믿을 만한 말을 해야 합니다. 거짓말이 아닌 진실을 말해야 하고, 욕설을 하지 말고 부드럽게 말해야 해요. 험담하기보다는 칭찬하고, 잡담은 금하고 필요한 말을 해야 합니다. 명령조가 아닌 알림의 기능을 하도록 말을 해야 합니다.

개인과 개인 사이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의사가 정확히 전달되도록 말을 통한 알림이 정확해야 해요. 사회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유는 언론이 정직한 언어를 사용할 것이라는 믿음과 신뢰가 담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말은 알림이기 때문에 정확한 의사전달을 해줘야 해요. 언론은 사실을 알려야 하고, 국민을 화합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언론은 항상 험담하고 국민을 분열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것은 언론 기관이나 언론 종사자들이 불망어(不妄語) 계율을 어기고 있는 것에 해당합니다.

또한 불망어(不妄語) 계율은 직업적인 양심하고도 관계가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사실을 가르쳐야지 주관적인 견해를 객관적 사실인 것처럼 호도해서 학생들에게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종교지도자가 신자들한테 허황한 얘기를 하는 것도 바른말을 하지 않는 행위에 들어갑니다. 특히 종교지도자가 믿음을 가진 신자들에게 허황한 얘기를 해서 어리석게 만드는 행위는 굉장히 큰 피해를 일으키는 범죄 행위에 해당합니다. 판사, 검사, 변호사와 같이 소위 우리 사회에서 말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항상 진실에 근거해서 말을 해야 하고, 극단적인 언어 사용을 피해야 합니다. 항상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관점에 서 있어야 합니다.

백 가지 손해만 있고 한 가지 이익도 없는 것

다섯 번째 계율은 술 먹고 취해서 남을 괴롭히지 말라는 불음주(不飮酒)입니다. 근본정신에서 살펴보면 문화에 해당하는 계율입니다. 나는 노래를 좋아한다, 나는 그림을 좋아한다, 나는 차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나는 춤추기를 좋아한다, 이렇게 문화란 우리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취미나 취향을 의미합니다. 동물은 취미와 취향이 없지만, 인간은 동물과 달리 취향과 취미에 따라 각자의 문화생활을 영위하며 살아갑니다. 문화생활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각각의 취미와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나와 다른 취미와 취향을 가진 상대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취미와 취향이 타인을 괴롭히고 타인에게 해를 끼친다면 그것은 자제되어야 합니다.

특히 술 먹고 취하는 것은 타인에게 큰 위협을 주는 행위입니다. 요즘 음주운전은 타인의 생명을 위협해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큰 원인이 되고 있잖아요. 마약과 같은 중독성 물질을 섭취하는 것도 그것이 하나의 개인의 취향과 취미라 하더라도 그 행위로 인해 자신의 건강을 해치고 가족과 세상에 큰 해를 끼치기 때문에 자제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인간의 정신을 흐리게 만들고 세뇌시키는 취미와 취향을 통틀어 부처님께서는 ‘어리석다’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당시의 원래 정신으로 돌아가면 ‘어리석지 마라’ 하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일시적 쾌락을 즐기는 것에 빠져서 자신과 타인에게 큰 해를 가져오는 삿된 소견을 갖게 되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근본 계율에는 ‘삿된 소견을 갖지 마라’라고 되어 있어요. 삿된 소견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술을 취하도록 먹고 행패를 피우는 겁니다. 이것을 더 구체적으로 표현해서 ‘술을 먹지 마라’ 또는 ‘술을 먹고 취하지 마라’ 이렇게 정한 거예요.

다섯 번째 계율은 건전한 문화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취향과 취미를 가질 때 건전한 문화생활을 즐겨야지 그것이 사회적인 해악을 끼치는 문화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불음주(不飮酒)의 취지입니다. 중독성 물질이나 문화는 백 가지 손해만 있고 한 가지 이익도 없습니다.

세상을 평화롭고 안정되게 하는 다섯 가지 가치관

첫째,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마라
둘째, 남을 손해 끼치지 마라
셋째, 성적으로 남을 괴롭히지 마라
넷째, 말로 남을 괴롭히지 마라
다섯째, 술 먹고 취해서 남을 괴롭히지 마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다섯 가지만 지킨다면, 이 세상은 평화스럽고 안정된 사회가 될 것이 매우 자명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수많은 법률이 있지만 사실 이 다섯 가지 계율이 기본적 가치관으로 자리 잡아 제대로 지켜진다면 그렇게 많은 법률이 필요치 않아요. 그런 관점에서 수행자는 최소한 다섯 가지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여기까지 강의를 한 후 이번 주 수행 연습 과제를 이야기하고 나서 생방송 수업을 마쳤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은 모둠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농사일을 한 후 오후에는 초파일을 앞두고 경주 지역 인근 사찰들을 방문하여 보시를 하고, 저녁에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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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금숙

법문 내용 생활 속에서 실천하겠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2022-10-11 21:50:07

김태림

평화스럽고 안정된 사회가 되도록
다섯가지 계율에 깨어나 있겠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2022-09-26 07:43:23

김유진

스님 감사합니다 꼭 지키겠습니다🙏🙏🙏

2022-05-11 19:2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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