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5.2 전법활동가 법회, 결사행자회의
"나쁜 상황이 여러 개 겹치면 견디기가 힘듭니다,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오전과 저녁에 두 번에 걸쳐서 전법활동가 법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5월 들어 첫 번째 법회가 되겠습니다. 5월은 장미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울타리를 휘감은 장미 넝쿨에서 꽃봉오리가 막 피어나고 있습니다. 철쭉도 활짝 피어서 화단을 예쁘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스님은 오전 10시 정각에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전법활동가들이 화상회의 방에 모두 입장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5월에는 기념일이 많습니다. 세계적으로 5월 1일은 노동자의 날입니다. 한국에서는 5월 5일은 어린이날이고, 5월 8일은 어버이날입니다. 올해는 부처님오신날도 5월 8일이에요. 이밖에 스승의 날과 성년의 날도 있습니다. 5월이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신록의 계절이다 보니 행사도 그만큼 많은 것 같습니다.

전법활동가들에게 5월은 전법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긴 겨울을 지나 따뜻한 봄이 오듯이, 힘든 사람들이 괴로움의 겨울을 지나 해탈과 열반의 봄을 맞이할 수 있도록 전법을 널리 할 수 있는 좋은 계절입니다.” (웃음)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즉석에서 자유롭게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진행할 때 또는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어려운 점이나 의문이 생긴 점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일을 할 때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 할지, 능력을 성장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중도를 실천할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vs 성장하기 위한 도전, 중도는 무엇일까요?

“스님께서 수행자는 늘 자기를 편안하게 안정시키며 일을 하는 사람이고, 인연에 따라 나투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할 수 없는 일을 하려는 것은 욕심이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는 관점으로 일을 하면 일을 가려서 하게 되고,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궁금합니다. 또 내가 일을 적게 하니 다른 사람도 힘들어 보여서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래서 중생에게 수순하자는 마음으로 일을 다 받으면 제 마음이 무거워지고 일을 그만두고 싶어집니다. 중도의 관점을 잡기가 어려운 것 같아 스님께 질문드립니다.”

“계획을 세울 때는 어떤 계획을 세워도 괜찮습니다. 우리의 능력은 기준에 따라 제한적이기도 하고 무한하다고 볼 수도 있어요. 목표를 너무 높게 잡으면 도달하기 어렵지만, 어느 정도는 노력해서 이룰 수도 있습니다. 자기 계발의 차원에서 볼 때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높은 목표에 도전하면 더 노력을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전에 실패했을 때 문제가 생겨요. 실패했을 때 나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욕심을 냈기 때문입니다. 노력해서 결과를 얻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공짜로 얻으려는 욕심 때문에 실망과 좌절이 따르는 거예요. 어떤 일에 도전해서 실패했을 때 좌절했다면 욕심을 냈다는 뜻입니다. 안 되면 연구해서 다시 하면 됩니다. 이런 태도를 가졌다면 원(願)을 가졌다고 합니다. 원을 가진 사람은 좌절이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좌절했다면 ‘아, 욕심이구나!’ 하고 관점을 바로 잡아야 해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라는 것은 할 수 있는 만큼 계획을 세우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주어진 조건에서 원을 가지고 도전해보되,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괴로워하거나 안타까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 밭에 모종을 다 심겠다는 계획 자체는 욕심이 아닙니다. 해 질 녘까지 최선을 다해 심었는데 3분의 2밖에 심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능력을 한탄하거나 자학하면 안 돼요. 그러나 현재 내 능력이 여기까지라는 것을 깨닫고 다음 계획을 세울 때는 그에 맞는 계획을 세워야 해요. 일의 숙련도를 높이거나 기계를 도입해서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보는 거예요. 현실을 구체적으로 평가해서 목표나 방법을 수정해 보는 겁니다.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만큼밖에 못 합니다. 계획은 마음대로 세울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게 돼요.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하겠다고 욕심을 내기 때문에 괴로움이 따릅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만큼 하라는 것이지 계획 자체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으로 세우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이것은 법문을 정확하게 듣지 못해서 생긴 오해입니다. 법문의 앞뒤 맥락을 잘 살펴서 어떤 의미인가를 파악해야 합니다.

현실은 할 수 있는 만큼밖에 못 하는데 내 능력 이상으로 욕심을 내면, 할 수 있는 만큼 했지만 결국 자기가 부족하다고 느껴요. 욕심내지 않는다면 내가 할 만큼 한 것에 대해 만족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네. 머리로 이해가 되는데 상황에 부딪히면 잘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잘 되지 않으면 연습을 하면 되죠. 계획을 세웠는데 약간 힘에 부친다면 내가 계획을 과하게 세웠는지 살펴보세요. 아니면 ‘이만하면 됐지!’하고 자기 합리화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점검을 해서 연습을 해보는 겁니다. 여러 번 연습해보면 알게 돼요.

‘이번에는 내가 내 한계를 너무 높이 두고 접근해서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구나!’
‘이번에는 목표를 너무 높이 설정했구나!’

이렇게 시행착오를 거듭해 나가면서 중도의 길을 찾아가는 겁니다.”

“제가 성격이 급해서 빨리 중도의 길을 찾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스님 말씀 들으니 끊임없이 나를 살펴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시행착오를 해보면서 계속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즉문즉설을 끝내고 스님은 이번 주 주말에 진행되는 부처님오신날 점등식과 기념법회에 많은 분들이 참석해 줄 것을 당부하며 법문을 마쳤습니다.

법문이 끝나고 이번에 새로 결사행자가 된 분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짧게 가졌습니다. 모두 큰 박수로 축하를 해주었습니다.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 1시 30분부터는 결사행자회의에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결사행자들은 먼저 스님에게 여는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신규 결사행자들을 환영한 후 맡은 바 소임에 성실히 임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새로 결사행자가 되신 분들을 환영합니다. 결사행자는 정토회 대표, 법사단장, 통일특별위원장 등 바깥으로 드러나는 소임을 맡은 몇 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회의를 해서 정토회의 미래 방향을 주로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새로 결사행자가 되신 분들도 각각 역할을 맡아서 잘 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안건 심의와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실천활동가 모집과 운영 방안, 신규 결사행자 소임 배정안, 2차 만일결사 사업 방향 등 여러 가지 안건들을 발표한 후 활발한 토론과 의견 수렴 시간을 가진 후 오후 3시 30분에 회의를 마쳤습니다.

방송실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작업복을 입고 산밑밭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어제 다 심지 못한 모종을 더 심기로 했습니다. 가지 모종, 고추 모종을 다 심은 후 목화도 여섯 그루 심었습니다. 연일 모종 심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처럼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에 옮겨 심으면 모종이 잘 살아요. 뙤약볕에 모종을 옮겨 심으면 수분이 많이 증발하여 금방 시들어 버리거든요.”

모종 심기를 마치자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모종을 심고 나서 비가 오니 더욱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스님은 산을 내려와 다시 가사와 장삼을 수하고 저녁 7시 30분에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저녁에는 저녁반 전법활동가들이 화상회의 방에 모두 입장한 가운데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오전처럼 즉석에서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하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전법활동가들은 활동하면서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대해 편안하게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나쁜 상황이 연이어 발생할 때마다 견디기가 힘들다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안 좋은 일이 겹치면 견디기가 힘들어요, 어떡하죠?

“하루에 나쁜 상황이 여러 개 발생하면 견디기가 힘듭니다. 올라오는 화를 가라앉히고 답답한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염불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지 스님께 여쭙니다.”

“살다 보면 안 좋은 일이 겹칠 때가 있습니다. 날씨를 봐도 4월인데도 30도를 웃도는 한여름 같은 날이 있을 때가 있고, 눈발 날리는 겨울 같은 날도 있습니다. 항상 그런 것이 아니라 어쩌다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거죠. 살다 보면 내가 다리를 다쳤을 때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아들은 시험에서 떨어지는 등 나쁜 일이 연달아 겹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걸 수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아무 일도 아닙니다.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통계학적으로 계산해보면 확률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에 불과해요.

주사위를 던져 각 숫자가 나올 확률은 6분의 1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섯 번 던졌을 때 각각 한 번씩 나타나지는 않죠. 확률이 매우 낮지만 여섯 번 던졌을 때 모두 1이 나올 수도 있고, 어떤 숫자가 여러 번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좋지 않은 일이 겹쳐서 일어나는 것은 신의 저주나 전생의 업보, 또는 사주팔자 때문이 아니에요.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연이 도래해서 연달아 일어날 때도 있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면 됩니다. 5월에 갑자기 우박이 떨어져서 농사를 망쳤다면, 농사지은 사람이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그런 것일까요? 물론 옛날에는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나라의 왕이 왕후를 두고 후궁에게 빠져 하늘이 노했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모두가 기후는 늘 변화한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나라에는 태풍이 연평균 서너 개 오는데, 어떤 해에는 열 개까지 온 적도 있었고, 어떤 해는 하나도 오지 않은 적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일은 정해져 있지 않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일어납니다. 좋은 일이 겹쳐 일어난다고 횡재한 것도 아니고, 나쁜 일이 겹쳐 일어난다고 재앙이 도래한 것도 아닙니다. 옛날에 삼재가 들었다느니 전생 탓이라느니 운운했던 것은 원인을 잘 몰라서 그랬던 것입니다.

옛날에는 말술을 마셔도 거뜬한 사람을 대장부라고 하고, 한 잔을 마셔도 취하는 사람을 졸장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장부나 졸장부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말술을 마셔도 멀쩡한 사람은 간에 알코올 분해효소가 많은 사람이고, 한 잔을 마셔도 취하는 사람은 간에 알코올 분해효소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모든 일의 원인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원인을 모르면 우연이라고 하거나 기적이라고 합니다. 원인이 밝혀지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일이 됩니다. 필연이 따로 있고, 우연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원인을 알면 필연이라고 하고, 원인을 모르면 우연이라고 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안 좋은 일이 겹쳐도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종교적으로는 마음을 여일하게 갖기 위해 염불이나 주력을 할 수도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도와준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종교적인 믿음입니다. 그러나 수행적 관점에서는 모두 인연의 이치로 도래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염불을 하는 거예요.

옛날부터 전해 오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어느 고을에 큰스님과 독실한 신자인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부잣집 딸이 종과 눈이 맞아 아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 일이 들통이 나면 종은 맞아 죽게 되는데 임신한 배를 잘 감춰서 비밀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산달이 가까워져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되자, 딸은 부모에게 큰스님의 아이라고 거짓말을 고했습니다. 큰스님을 믿고 존경했던 부모는 기가 막혔습니다. 부자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안고 절에 가서 큰스님에게 ‘아기 여기 있소!’ 하고 아기를 드렸어요. 그랬더니 큰스님이 아기를 받아 안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하고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아기는 동네 아낙들의 동냥젖을 먹으며 컸고, 부잣집 사람들은 절에 발길을 끊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던 딸이 부모에게 사실대로 고백을 했어요. 부자는 스님께 너무 죄송하여 절에 찾아가서 아기를 데려가겠다고 하니 큰스님은 이번에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하고 아무 말씀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한결같은 마음을 염불이라고 하는 거예요. 염불을 외우면 재앙이 없어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절에 가서 주력을 할 때는 보통 ‘옴마니밧메훔’을 하고, 염불을 할 때는 보통 ‘관세음보살’을 부릅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방식이에요. 이렇게 주력이나 염불로 해결해도 되긴 합니다. 그러나 법의 관점에서는 별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빅데이터를 갖고 분석하면 별일이 아닙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한 가지 일어날 일이 하루에 세 가지가 일어났다면 좋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오늘은 좀 힘들지만, 내일이나 모레는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별일 아니다’, ‘그냥 겹쳤을 뿐이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계속 이어지는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하다 보니 벌써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번 주 주말에 부처님오신날 기념 법회 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법회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두북 수련원에 손님들이 연이어 찾아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눈 후 저녁에는 정토불교대학 실천적 불교사상 제 9강을 생방송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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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검

스님,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것과 우연/필연의 차이점의 설명 감사합니다. 저도 지금껏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상당히 중요한 내용인데 잘 활용해서 살아가겠습니다.

2022-06-09 13:03:47

강원상

감사합니다 별일아니였습나다 ^^

2022-05-13 14:30:38

인연

스님 법문 감사합니다.

2022-05-13 08: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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