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4.20 도문 큰스님 생신, 수행법회
“태어나서 부모가 세 번 바뀌었어요, 저도 행복할 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스님의 은사 스님이신 불심 도문 큰스님의 88번째 생신입니다. 새벽예불과 천일결사기도를 마치고 5시 30분에 중생사로 출발했습니다. 어두운 하늘에 달이 아직 밝았습니다.

차가 중생사로 향하는 동안 날이 밝았습니다. 6시 40분에 중생사에 도착해 스님은 먼저 도문 큰스님께 삼배를 드렸습니다.

“큰스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스님이 수확한 엄나무순과 두릅, 야채를 반찬으로 올렸습니다.


공양을 마치고 스님은 큰스님께 천룡사에서 문체부와 문화재청, 경북도와 경주시 관계 실무자들과 모여 복원 회의를 한 내용을 보고 드렸습니다.

“수고 많이 하셨어요. 법륜스님은 굉장한 사람이에요. 고등학생 때도 내가 냄새에 민감하다는 걸 알아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를 만날 때마다 한 겨울에도 발을 씻고 양말을 갈아 신고 왔습니다. 내가 그저 가다 오다 한 말들도 주워 담았다가 딱 가리고 엮어서 용성조사님 유훈을 하나하나 실현하고 있어요. 모든 일에는 먼저 할 일이 있고 나중 할 일이 있어요. 먼저 할 일을 알고 나중 할 일을 알면 그 사람이 도인입니다.”

이어서 도문 큰스님은 조선 숙종 때부터 순종에 이르기까지 지안, 용성, 동헌 조사님과의 인연과 큰스님의 부모님께서 하신 독립운동에 대해 들려주었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니 2시간이 흘렀습니다.

“내가 또 잔소리가 많았습니다.”

“잔소리가 아닙니다. 다 법문이었습니다. 스님, 법회도 하셔야 하니 잠시 쉬십시오.”

도문 큰스님을 쉬시도록 한 후 스님은 상을 치우고 방을 닦았습니다.

“책에도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던데...”

스님은 손이 잘 닿지 않는 곳까지 구석구석 닦았습니다.

오늘은 불심 도문 큰스님의 생신이기도 하지만 또한 큰스님의 아버님, 어머님의 기일이기도 합니다. 큰스님의 부모님은 용성조사님과 함께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에 전 생애를 바친 독립운동가입니다. 해방이 되었지만 남과 북으로 분단이 되면서 이념 대립 속에 독립운동의 흔적을 모두 숨겨야 했습니다. 돌아가실 때 아들의 생일에 맞춰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큰스님의 생신과 부모님의 기일은 같은 날입니다.

영가단에 큰스님의 아버님, 어머님 위패를 모시고 천도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용성조사님의 유훈이기도 한 대한민국 800년 대운을 확정 짓고 통일 대한민국이 새롭게 출발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발원했습니다. 기도를 하는 사이 도문 큰스님의 제자 스님들이 도착했습니다.

천도 기도를 드린 후 한 시간 동안 불심 도문 큰스님의 특별법문이 이어졌습니다. BTN 불교 TV에서도 촬영을 왔습니다. 법상에 오른 큰스님은 달마-혜철-지안-용성-동헌-도문스님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소상히 일러주시며 용성조사님의 유훈 실현에 힘쓸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특별법회를 마치고 조계종 호계원장 보광스님이 인사말을 하고 법륜스님이 환영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원로스님이신 원두 스님께 마이크를 양보했습니다.

“한 말씀해주십시오.”

“도문 큰스님은 제가 아무것도 못하는데 저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펴주었습니다. 요즘 스님들은 스승의 기제사를 가도 잿밥 먹고 헤어지기 바쁘고 스승이 무엇을 가르쳤는지 말 한마디 없습니다. 오늘 큰스님께서 제자 스님들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을 다 남겨주셨습니다. 제가 법회를 듣다가 너무 중요한 말씀을 해주셔서 녹음을 했습니다. 오늘 저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주시고 갈 길을 일러주셨습니다. 도문 큰스님께 고맙고 죄송합니다. 하라고 해서 한마디 했습니다.”

이어서 법륜스님이 참석한 대중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큰스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참석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코로나로 인해 간소하게 준비했지만 맛있게 드시고 함께 시간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어서 KBS 국악대상 판소리상을 수상한 국립국악단원 방수미 님이 도문 큰스님의 생신 법회를 맞이해 사철가와 흥부가 중 박타령을 불러주었습니다.

사홍서원으로 법회를 마치고 도문 큰스님에게 제자 스님들이 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은 조용히 방석을 정리했습니다.

한편 안쪽 방에는 정토회 법사단이 오전 내내 정성스레 준비한 점심 공양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도문 큰스님과 제자 스님들은 함께 공양을 했습니다.


“큰스님, 건강하십시오.”

스님도 공양을 하고 손님들을 배웅한 뒤 큰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2시에 중생사를 나왔습니다. 바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가지 않고 사천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향했습니다. 어제 오전 인도 JTS에서 활동하고 있는 보광 법사님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인도에 있는 보광 법사님은 온라인으로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유족들에게 위로의 인사를 건넨 후 영가를 위해 천도 법문과 기도를 해드렸습니다.

“너무 섭섭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예. 고맙습니다. 스님.”

다시 차에 올라타 두북 수련원에 도착하자 해가 저물고 있었습니다. 운동장에는 철쭉이 지는 햇살을 받아 분홍빛을 발했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도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간단히 인사말을 한 후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특별한 교리를 외우거나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게 아닙니다. 일상에서 마음이 부정적으로 일어날 때 그 마음을 긍정적으로 바꿔서 편안하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수행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좀 더 행복해지는 데 이러한 수행이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먼저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두 명과 대화를 나눈 후 즉석에서도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중 한 명은 태어난 후 부모님이 세 번이나 바뀐 사연을 이야기하며 고통으로 점철된 자신의 인생을 털어놓았습니다.

태어나서 부모가 세 번 바뀌었어요, 저도 행복할 수 있나요?

“저는 태어났을 때 저를 낳아주신 부모님께서 저를 병원에 두고 가셨다고 합니다. 병원에 있던 저를 두 번째 어머니께서 입양하여 홀로 키우셨습니다. 어머니는 식당 운영으로 늘 바쁘셔서 유치원에 다닐 때 저를 유모에게 맡겼습니다. 그러다 어머니께서는 제가 9살 때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외삼촌 댁에서 투병하다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 저는 외삼촌 댁에서 살게 되었는데, 어느 날 외숙모께서 ‘너를 키워주실 새 부모님을 만나러 가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가기 싫었지만 무작정 따라가 세 번째 부모님께 입양되었습니다. 세 번째 부모님 집에는 몸져누워 계신 할아버지와 치매 할머니가 계셨고 언니만 네 명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와 어머니는 재혼 가정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성격이 급하셔서,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밥을 먹다가도 밥상을 엎고 어머니를 늘 무시하셨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가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어머니께서 저를 불러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말을 듣지 않아 다시 외삼촌 집에 보내려고 한다. 네 외삼촌이 못 키우겠다고 하면 고아원을 보내든지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면서 제가 태어난 후 지금의 양부모님께 입양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다 얘기해 주셨습니다. 그때까지 두 번째 어머니가 친어머니인 줄 알고 있었는데 이 모든 사실을 알고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죽고 싶은 생각만 들었고, 누구에게도 말할 곳이 없어 같은 반 짝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그 친구들 무리에게 학교 폭력을 당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학교 가는 시간이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그렇게 중학교까지 졸업하고 난 뒤에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산업체 고등학교를 지원해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 스무 살 무렵 어머니께서 폐병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제가 간병하는 중에 돌아가셨고, 아버지께서도 그 이후에 합병증과 치매까지 앓으셔서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제가 간병을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힘들게 살아온 것이 저를 낳아주신 부모님 때문이라고 원망하며 살았습니다. 자라는 동안에도 힘들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이 생기면서 더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으며 많은 감동을 받아서 불교대학을 다니며 마음공부도 하고, ‘깨달음의 장’에도 다녀오고, 그 뒤에 수행도 하며 경전대학도 졸업했지만, 이 마음속의 응어리가 자꾸 무의식적으로 올라옵니다. 제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지 스님의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려운 과정을 겪고 살았네요. 전통적으로 얘기하면 질문자는 ‘부모 복이 없다’ 이런 데에 해당이 됩니다. 한 부모도 아니고 두 부모도 아니고 세 부모가 다 어려웠으니 세상 사람들이 ‘부모복이 지지리도 없다’ 이렇게 말할 거예요. 결혼 생활이 안 좋으면 ‘남편복이 없다’ 이렇게 말하고, 자식들이 다 일찍 죽거나 부모가 늙을 때까지 애를 먹이면 ‘자식복이 없다’ 이렇게 말합니다. 또 이런 걸 두고 옛날에는 ‘사주팔자가 안 좋다’라고도 말해요.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이 생에 고통을 겪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은 다 현실을 합리화하기 위한 말이에요. 조금이라도 위안을 주기 위해서 하는 말이고요. 또한 내 책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현재의 내 죄가 아니고 전생에 지은 죄이거나 사주팔자를 잘못 타고난 것이라는 근거를 만들어서 그 책임을 남이나 과거에 전가하는 거예요.

그런데 ‘복’이란 과연 어떤 것이 복일까요? 질문자가 부유한 집에 태어나서 부모의 사랑을 받다가 7살 때 죽었다고 해봅시다. 이 경우는 부모의 복은 타고났다고 할 수 있겠죠? 이때 그 부모의 복을 받고 일찍 죽는 게 나을까요? 그런 복 없이 지금껏 살아 있는 게 나을까요?

“지금껏 살아 있는 게 낫죠.”

“또 결혼을 해서 남편하고 아주 사이가 좋아서 남편 복이 있다고 소문이 났는데, 정작 질문자가 결혼하고 3년 만에 죽었다고 합시다. 이게 나을까요? 남편복 없이 지금껏 살아 있는 게 나을까요?”

“지금껏 살아 있는 게 낫죠.”

“자식을 낳았는데 자식이 인물도 좋고 공부도 잘해요. 그래서 자식 잘 두었다고 주변의 부러움을 샀는데 질문자가 마흔 살도 되기 전에 어린 자식을 두고 죽게 됐어요. 이게 나을까요? 자식복 없이 지금껏 살아 있는 게 나을까요?”

“지금껏 살아 있는 게 낫죠.”

“부모복, 남편복, 자식복을 타고 난 대신 단명하는 게 나을까요? 안 그러면 부모복이 없든, 남편복이 없든, 자식복이 없든, 그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그래도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게 나을까요? 질문자는 어느 쪽을 선택하고 싶어요?”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게 낫습니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처럼 한반도에 전쟁이 났다고 해봅시다. 한 사람은 아주 부유한 집에 태어나서 좋은 고등학교 나오고 좋은 대학 다니다가 폭격을 맞아서 죽었어요. 다른 한 사람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우여곡절을 겪다가 폭탄이 떨어졌을 때 팔이 하나 날아가고, 그래도 안 죽고 어찌어찌 살아남았어요. 두 사람 중 어느 쪽의 처지가 더 나을까요?

“그래도 안 죽고 살아남은 사람이 낫죠.”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걸 다 겪고도 지금 이렇게 살아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있는 게 낳을까요? 부모복 잘 타고났다가 일곱 살에 죽거나, 남편복 잘 받았지만 결혼 3년 만에 죽거나, 자식복을 타고났지만 자식이 10살 때 본인이 죽는 게 나을까요? 질문자는 어느 쪽을 선택할래요?”

“사는 쪽을 선택하겠습니다.”

“그러니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앞으로 대부분의 아이가 인공자궁에서 태어나는 미래가 올 거예요. 어쩌면 아이도 물건을 주문 생산하는 것처럼 만들어질 수도 있어요. 그렇게 태어난 아이를 전문 보육사가 키우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가 전쟁 중에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프랑스 등 유럽으로 입양되어 간 사람들이 많아요. 그들 중에는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있지만 거기서 잘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또 지금 어르신 세대 중에는 부모가 형편이 어려워서 어릴 때부터 생활력이 강해야 했던 경우가 많아요. 초등학교도 못 다니거나, 초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산업 일선에 나가 장사를 시작해서 지금 사장이 된 사람도 있습니다.

질문자의 마음에 상처가 있다는 건 이해합니다. 어릴 때 야단맞고 학교 폭력을 당해서 상처가 있다는 건 인정을 해요. 그런데 몸에 상처가 있으면 치료하면 되듯이 마음의 상처도 치유를 하면 됩니다. 물론 치료가 안 되는 상처도 간혹 있어요. 그러면 치료가 안 되니까 그냥 죽는 게 나을까요? 그 정도의 상처를 가지고도 사는 게 나을까요?

우리 주변에는 치료가 안 되는 병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매일 당뇨병 약을 먹고사는 사람, 심장병 약을 먹고사는 사람, 고혈압 약을 먹고사는 사람,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 온갖 사람들이 있잖아요.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입니다. 치유해서 낫는 사람도 있고, 치유가 안 되면 어느 정도 병을 안은 채 그냥 사는 거예요.

질문자에게 있는 마음의 상처는 본래 타고난 게 아니라 삶의 경험 속에서 상처를 입은 거예요. 사주팔자도 아니고, 전생도 아니고, 하느님의 벌도 아닙니다. 본인이 자라난 환경에서 이런저런 불운이 겹쳐서 상처를 입게 된 겁니다. 그래서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요행히 다 극복했잖아요. 이 집에서 저 집 가고, 저 집에서 이 집 가면서도 결혼까지 하고 애까지 낳아 잘 살고 있잖아요. 과거에 좀 우여곡절을 겪었다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를 한번 보세요. 젊을 때 우여곡절 안 겪은 사람이 누가 있어요? 저도 겉으로는 이렇게 멀쩡해 보이지만 질문자처럼 한번 얘기해보라고 하면 사연이 많아요. 저도 막 감정을 넣어서 얘기하면 듣는 사람들이 불쌍해 죽겠다고 할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자기를 불쌍하게 만들어서 동정을 받아본들 뭐하겠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어려운 과정을 겪고도 안 죽고 살았다는 거예요. 그래도 부모가 몇 번 바뀌어가면서도 안 팔려갔잖아요. 부모 없는 아이들이 인신매매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지금도 그런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질문자는 술집이나 범죄 조직에 팔려가지는 않았잖아요. 그래도 요행히 고비를 다 넘겨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에 복 중의 복이 명을 이어가는 복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다른 복이 많아도 일찍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게 제일 낫다는 거예요. 100살까지 살아야 명복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살아있는 게 최대의 복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남에게 베풀어주고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와야 할 텐데, 좋은 일을 하고도 나쁜 결과가 나타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사람들이 이런 말로 위로합니다.

‘좋은 일을 하고 욕을 얻어먹으면 오래 산다.’

그래도 질문자는 명복이 있잖아요. 부모복도 없고, 남편복도 없고, 자식복도 없고, 재물복도 없고, 이렇게 다른 복은 다 없다 해도 명복 하나는 있는 겁니다.

이런 복 이야기는 다 현재를 합리화하는 이야기입니다. 전생에 복을 많이 짓지 못해서 이번 생에 여자가 됐다는 말은 여자를 차별하는 걸 합리화하는 데서 나온 말이에요. 하느님이 남자 갈비뼈를 빼서 여자를 만들었다는 것도 여자를 차별하는 이야기입니다.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장애인이 되었다는 것도 장애인을 차별하는 얘기입니다. 장애인이 된 게 전생의 죄나 하느님의 벌하고 무슨 관계가 있고,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전생에 지은 죄와 무슨 관계가 있겠어요?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이번 생에 왕이 됐다’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이번 생에 종이 됐다’

이런 건 다 이 세상에서 종과 왕의 차별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나온 논리예요. 불교의 가르침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걸 불교라고 생각해서 믿는 사람들이 지금 많아요. 이런 건 남성 중심 사회, 권력 중심 사회, 돈 많이 가진 사람 중심 사회를 합리화하고 세뇌시키는 잘못된 철학, 믿음, 종교예요. 부처님은 이런 걸 확 해체시켜버린 분입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브라만이라고 성스러운 게 아니고, 천민이라고 부정한 것도 아니다. 남자라고 신성한 것도 아니고, 여자라고 부정한 것도 아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자는 정신만 차리면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그런데 과거에 그렇게 세뇌된 내용에 자꾸 본인이 사로잡히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첫째 부모에게 버림받고, 둘째 부모는 죽었고, 셋째 부모도 이러저러했다며 신세 한탄만 늘어놓게 됩니다. 즉문즉설을 하다 보면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첫 번째 남편이 죽고, 두 번째 남편과는 이혼하고, 세 번째 남편하고 결혼했어요. 제가 참 남편복이 없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니에요, 당신은 남편복이 있습니다. 얼마나 남편복이 있으면 결혼을 세 번이나 하겠어요? 저 같은 사람은 한 번도 못 해봤잖아요.’ (웃음)

세 번 결혼한 것에 대해 왜 열등의식을 가져요? ‘너는 결혼 한 번밖에 못 해봤지? 난 세 번이나 해봤다’ 이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하면 안 되나요? 질문자도 마찬가지예요.

‘너희는 평생 한 부모만 모시고 살았지? 나는 세 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이렇게 자랑스러워하면 안 되나요? 재물이며 다른 것은 많으면 좋다고 하면서 왜 부모는 많으면 안 좋아요? 이 모두가 잘못된 생각입니다. 많은 게 좋은 것도 아니고, 적은 게 좋은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있으면 있어서 문제라고 하고, 없으면 없어서 문제라고 하고, 많으면 많아서 문제라고 하고, 적으면 적어서 문제라고 해요. 그걸 지금 탓해서 뭘 어쩌겠어요? 이미 다 지나간 일이잖아요.

그러나 그런 경험에 대한 흔적, 즉 상처가 남아 있기 때문에 질문자의 경우처럼 나도 모르게 울컥울컥 올라와서 나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그렇게 괴로워할 정도면 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걸 다른 말로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지금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과거에 겪었던 경험의 흔적이 남아서 지금 내 삶에 장애가 되는 것을 트라우마라고 해요. 그러니 우선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으면서 트라우마를 치료해야 합니다.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살아 있다는 거예요. 질문자가 우여곡절을 겪었다는 건 이해하고 인정합니다. 고생 많이 하셨어요. 그러나 지금 살아 있잖아요. 첫째, ‘살았다!’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둘째, 살아 있는 동안 앞으로는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도 당분간 살아갈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까지 기껏 고생 고생해서 여기까지 살아와 놓고 과거 때문에 앞으로 남은 삶도 계속 이렇게 울고불고하며 산다면 죽는 게 낫지, 살아서 뭐하겠어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안 죽고 살아남았다. 안 죽고 어렵사리 살아남은 내 인생을 위해서, 앞으로는 과거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겠다.’

이렇게 관점이 뚜렷하게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데 과거로 인한 트라우마는 병이기 때문에 우선은 상담을 해서 치료를 좀 하세요. 흥분될 때 좀 가라앉힐 수 있는 약도 좀 먹고요.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제법이 공한 도리를 깨달아야 해요. 이게 다 마음에 있는 응어리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지금 살아 있다!’ 이런 관점을 분명히 가져버리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부모가 5명이든 10명이든 20명이든 그건 하등 중요한 게 아니에요. 한 부모만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고정관념에 불과합니다.

내가 이 남자 저 남자를 오가며 결혼을 여러 번 한 것은 욕망에 끄달린 것이니까 문제가 될 수 있어요. 그러나 결혼했는데 남자가 죽고, 그런 뒤에 결혼한 남자가 또 죽고, 세 번째로 결혼한 남자도 또 죽었다고 하면 그건 상대의 명대로 살다 죽은 것이기 때문에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럴 때 ‘다른 사람은 평생 한 남자 하고만 살아보는데 나는 그래도 복을 많이 지었는지 여러 명과 살아보네’ 이렇게 관점을 확 바꿔버리면 안 되나요? 내가 싫거나 좋다고 이리저리 상대를 바꾸면 그건 욕망이지만, 상대가 죽어버리면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미망인(未亡人)’이란 말이 있죠? 한자 뜻을 보면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이에요. 남자가 죽으면 마땅히 따라 죽어야 하는데 못 죽은 인간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거예요. 이런 건 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이루어진 세뇌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이런 고정관념을 탁 털고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지금 안 죽고 살았다. 많은 경험을 하고 나는 여기까지 왔다.’

이렇게 보면 얘깃거리가 얼마나 많아요? 스님도 온갖 우여곡절을 겪고 살았기 때문에 지금 여러분과 이렇게 대화할 때 얘깃거리가 많은 거예요. 학교를 다녀서 많이 아는 게 아니라 온갖 걸 겪었기 때문에 많이 아는 거예요. 왕따를 겪어보는 것도 경험의 측면에서는 좋아요. 저도 왕따를 겪어봤습니다. 그렇게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 살아 있으니까 다 괜찮아요. 요즘 코로나 시대에 여러분은 힘들다고 아우성이지만 저는 아무 불평이 없어요. 농사도 지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안 죽고 살았는데 무슨 불평 거리가 있겠어요? 벌써 죽었어야 할 사람이 안 죽고 산 것만 해도 행복이죠.

아침에 눈 떠 보고 안 죽었으면 ‘감사합니다, 부처님’ 이러고 살아보세요. 그러면 문제 될 게 하나도 없어요.

‘아침에 학교 갔다가 교통사고로 죽어서 돌아오는 애들도 있는데 우리 애는 안 죽고 살아 있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옛날 우리 아버지보다는 우리 남편이 좀 낫네. 내가 그래도 우리 어머니보다는 나은 편이구나.’

이렇게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해도 도저히 관계가 개선되지 않고 못 살겠으면 결혼 생활을 그만두면 되잖아요. 요즘 시대에 그게 뭐가 문제예요?

자기를 자꾸 불쌍하게 만들지 마세요. 부처가 될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왜 이 천하에서 당당하게 살아가지 못하고 자꾸 자기를 불쌍하게 만들어요? 시험관에서 태어났으면 어떻고, 엄마가 혼자서 낳은 아이면 어때요? 그게 뭐가 문제예요? 여자가 혼자서 애를 낳은 경우 중에 예수님 같이 훌륭한 사람도 있고, 고주몽 같이 나라 하나를 세운 사람도 있는데요. 어머니가 병원에서 나를 낳은 뒤 버린 게 뭐 어때요? 그게 뭐가 문제예요? 오히려 낳아준 어머니한테 감사해야죠. 안 낳아줬으면 세상 구경을 못 했을 거잖아요.

‘첫 번째 어머니,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번째 어머니, 바쁘신 가운데에도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세 번째 어머니, 어려운 환경에서도 저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를 해야 할 일이에요. 그렇게 해서 자기를 존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미 일어난 일을 좋은 경험으로 생각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인생을 살아가야 해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수없는 일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질문자도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해 보세요.”

“어떤 마음으로 수행을 하면 좋을까요?”

“살아있어서 감사합니다, 이 사실만 명심하고 살면 돼요. 앞으로 어떤 일을 당하고 어떤 일이 생겨도 ‘아이고, 그래도 살았잖아!’ 이렇게 생각하고 당당하게 살아가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울먹이던 질문자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그 모습을 본 스님도 환한 웃음을 보였습니다.

다른 질문자들과도 대화를 다 나눈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부모가 세 번이나 바뀌었다며 울먹였던 질문자에게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질문자는 가벼운 목소리로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하고 나니까 마음이 후련합니다. 정신만 차리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셨는데, 정신을 차리고 치료도 좀 받으러 다니겠습니다. 그동안 수행을 제대로 안 한 것도 있거든요. 아침마다 수행하면서 치료를 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이 질문자를 위해 한 마디 더 해주었습니다.

“정신만 차리면 되는 건 맞는데, 정신이 잘 안 차려져요. (웃음) 상처가 많으면 더욱 그렇습니다. 운동하면 다리 아픈 게 낫는다고 하지만, 걷지도 못할 정도로 아프면 어떻게 운동을 하겠어요? 그럴 때는 먼저 치료를 받고, 어느 정도 나아지면 운동을 살살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니 너무 ‘정신만 차리면 된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안 돼요. 먼저 트라우마 치료를 좀 받으세요. 그런 다음에 마음공부도 같이 해야 합니다. 이게 다 마음의 상처예요. 몸 어딘가에 실제 흔적이 있는 게 아닙니다. 악몽은 그냥 꿈에 불과하지만, 꿈을 깨고 나서도 현실에서 생생하게 놀란 감정이 오래가는 것과 똑같습니다. 지나간 일은 다 꿈에 불과해요. 지금 질문자의 상태는 어제저녁에 꾼 악몽을 아직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아요. 이런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아, 이건 꿈이야’ 이렇게 보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까지 고생하고 살았잖아요. 앞으로도 계속 마음고생하고 살면 인생 낭비가 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고생하고 살았으니까 앞으로는 더더욱 웃으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앞으로 겪을 고생이야 과거 고생에 비하면 별 거 아닙니다. 과거에 그런 경험을 하고도 살았는데, 앞으로 뭐가 걱정이에요? 남편이 죽는다 한들, 애들이 집을 떠난들, 옛날에 내가 어릴 때 겪은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제 질문자는 세상에 겁날 게 없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지금 수행을 잘하는 척해도 앞으로 남편이 죽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다 나가떨어지는데, 질문자는 끄떡도 없을 겁니다. ‘나는 그런 일을 5살에 겪었다’, ‘그 정도는 12살에 이미 다 겪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질문자에게는 유리한 점이 있잖아요. 자신의 유리한 점을 살려 나가야 합니다. 자꾸 불리한 점만 생각하지 말고요.

‘어릴 때 내가 그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이제는 겁날 게 없다.’

이렇게 당당하게 얼굴을 들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 30분이 훌쩍 넘었습니다. 사홍서원으로 수행법회를 모두 마친 후 각자 화상회의 방으로 들어가서 마음나누기를 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농사일을 한 후 오후에는 정토불교대학 강의 준비를 하고, 저녁에는 정토불교대학 생방송 수업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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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스님이 말씀하신것의 많이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2022-05-28 18:08:37

정토회

감사합니다

2022-05-01 04:29:16

하심

도문큰스님 생신축하드리옵니다_()_

2022-04-28 23: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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