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1.1 새해맞이 공동체 안거
“새해에는 세 가지 삶의 지표를 갖고 살아봅시다”

안녕하세요. 2022년 임인년 새해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4시 30분,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이 시작되자 스님은 평소처럼 예불,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 독송을 차례대로 했습니다. 정토행자들도 각자의 방에서 온라인 생방송을 틀어 놓고 새해 첫날 천일결사 기도를 스님과 함께 했습니다.


사홍서원으로 기도를 마친 후 스님의 새해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아침 정진 잘 하셨습니까? 202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일상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동시에 코로나와 함께 사는 삶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아직 코로나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가운데 2022년이 찾아왔습니다.

정토회에게 2022년은 지난 30년 동안 이어온 제1차 만일결사의 마지막 해이기도 합니다. 새해에는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더라도 여러분 모두 잘 극복하시길 바랍니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어떠한 장애가 있더라도 그것에 구애받지 않고,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그것으로 인해 넘어지지 않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토회에서는 올해 제1차 만일결사를 회향하면서 1만 인 전법을 통해 국민들께 보답하고자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제1차 만일결사의 마지막 해를 전법의 해로 생각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가르침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전법에 최선을 다해주시길 바랍니다.

세 가지 삶의 지표

어떤 일을 하든지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수행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는 각자가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너무 완벽해지는 쪽으로 치우치면 자학 증세가 일어나기가 쉽고, 반대로 자신을 방치하게 되면 세상에 누를 끼치는 방향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그러니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항상 자신을 살피고,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자기 자신을 살피는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각의 바탕 위에 욕망에 지나치게 끌려가거나, 자기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성질에 끌려가거나,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서 옳고 그름을 가리는 분별에 끌려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욕망에 끌려가거나, 성질을 못 이기고 끌려가거나, 자기 분별에 끌려가게 되면 인생이 괴로워집니다. 그러니 항상 자기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조율할 줄 아는 ‘자제력’이 필요합니다. 이런 수행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매 순간 자신이 선택하고 그 과보를 마땅히 받는 주인 된 자세가 필요합니다. 즉, 다른 사람에 의해, 타의에 의해 살아가지 않고 ‘자율적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자각, 자제, 자율’이 중요합니다. 올 한 해도 세 가지를 삶의 지표로 삼아서 자신의 삶을 맑고 밝게 유지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정토회 공동체 대중은 내일까지 수련을 이어나가고 1월 3일 월요일부터 공식적인 업무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전법활동가들은 월요일 법회 때 만나기로 하고, 정토회 전체 회원들과는 수요일 법회에서 만나고 한 해의 사업 방향을 잡는 시무식도 함께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2022년 한 해도 개인은 행복하고, 우리 사회는 평화롭고,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는 아름답게 잘 보존하는 정토행자의 원(願)을 함께 성취해가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에도 평안이 오고, 우리 사회 곳곳에도 안전과 안정이 찾아올 수 있도록 다 같이 노력해가면 좋겠습니다.

이것으로 오늘 새해 인사 말씀을 드리고, 다음 주에 여러분들과 다시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자각, 자제, 자율을 새해 명심문으로 새기며 활기차게 새해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생방송을 마치자마자 문경 수련원을 출발하여 봉화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봉화 수련원에서는 새해맞이 공동체 안거를 하고 있는 50여 명의 공동체 대중들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차로 두 시간을 달려 봉화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공동체 대중들은 스님에게 삼배로 새해 인사를 올렸습니다.

“문경에서 오다가 소식을 들었어요. 회향하기로 한 사람들이 안거를 마치고 다시 회향을 철회했다고 하네요. 그 이야기는 오후에 듣기로 하고, 우선 오전에는 낙동강 상류를 산책하겠습니다. 다 같이 지금 양원역으로 갑시다.”

공동체를 회향하기로 결정했던 행자님들이 스님을 찾아가 삼배를 올렸습니다.

“스님, 심려를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일단 산책부터 합시다.” (웃음)

8시 40분에 모두가 차에 올라타고 양원역으로 향했습니다.

“아이고, 벌써 해가 떠버렸네요. 뒷산에만 올라가도 일출을 볼 수 있었는데...”

회향을 하려고 했던 행자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새벽에 마음의 해가 이미 떠서 일출은 안 봐도 괜찮습니다.”

9시 20분에 양원역에 도착해 산책을 시작했습니다. 명상과 안거 수련을 마친 뒤여서 모두가 환하게 밝아진 얼굴이었습니다.

‘하늘도 세 평이요, 땅도 세 평’이라고 불릴 정도로 협곡을 따라 걷는 길입니다. 길을 걷기 시작하자 스님의 입에서도 감탄사가 제일 먼저 나왔습니다.

“우와, 경치 한번 보세요. 정말 멋있죠?”


산자락을 돌며 평탄한 길을 30분 남짓 걷자 넓은 공터가 나왔습니다. 날이 너무 추워서 양지바른 곳에서 간식도 먹고 몸도 녹일 겸 앉아서 쉬기로 했습니다. 간식을 다 먹고 나서 스님은 대중들에게 노래 한 곡씩을 시켰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가장 수고가 많았던 부서가 어디일까요?”

“영상팀이요.”

“영상팀 나와서 노래 한번 불러 보세요.”

수고한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다 보니 각 팀이 빠짐없이 앞에 나와 노래를 한 곡씩 부르게 되었습니다. 역할이 달랐을 뿐 모두가 모두에게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다시 길을 걸었습니다. 영하 11도의 추위 속에 강이 꽁꽁 얼었습니다.


“얼음 위로 걸읍시다.”

깨진 얼음 조각을 발로 한번 차보기 위해 얼음 위를 질주하며 동심으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누군가가 꽈당하고 넘어지면 웃음이 터졌습니다.


철교를 이용해 강을 건너고, 다시 물길을 따라 걸으며 산과 강, 바위를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자, 다 왔어요. 여기가 분천역입니다.”

새해 아침, 스승님이 걷는 길을 따라 걸으며 도반들과 평소에 나누지 못한 깊은 속내를 나누었습니다.

봉화 수련원에 도착한 후 오후 2시 30분부터 스님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명상수련을 마치고 공동체 대중들은 지난 이틀 동안 다섯 그룹으로 나뉘어서 도반들끼리 서로를 탁마 하는 ‘정일사(정토를 일구는 사람들)’ 수련을 진행했습니다. 먼저 정일사 진행을 맡았던 법사님들이 수련 때 깊이 이야기된 주제가 무엇이었는지 간단히 공유해 주었습니다.

“저희 그룹은 각 단위를 책임지고 있는 출가한 지 오래된 실무자들이었습니다.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무시받는다고 느낄 때, 충분한 소통이 안 된다고 느낄 때,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심지어 내가 정토회에 쓰임새가 없는 것 아니냐는 한 생각에 사로잡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나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정토회에서는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는 어떻게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희 그룹에서는 상대방이 한 말을 듣고 삐지는 문제를 이야기하는 분도 있었고, 내 문제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막상 상대를 보면 상대 탓을 하게 되고, 다시 내 문제라고 자각하려고 하면 오히려 자책이 되고, 갈팡질팡하는 자신의 과제를 이야기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특히 자책하는 마음이 들 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성찰해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어요. 그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 알아차리기’라는 과제를 주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저희 그룹은 중간 책임자들이 많았습니다. 일이 많아지고 바빠질 때 점점 생활을 소홀하게 되는데, 생활 중심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중간 책임자가 되어 대중과 함께 일할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중점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저희 그룹에서는 20대가 세 명이 참여했는데 아무래도 욕구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또 대부분 부서원들이기 때문에 부서 책임자와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어서 각 그룹별로 두 명 정도씩 직접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먼저 이번 안거를 끝으로 공동체를 회향하려고 했던 행자님이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2022년 1월 1일, 저는 오늘부로 새로 태어났습니다. 공동체에 처음 입재했을 때는 가짜 출가를 했던 것 같아요. 오늘에서야 비로소 진짜 출가를 한 것 같습니다. 제가 업식이 두터워서 계속 출가를 못하고 있었는데, 도반들의 애정과 열정, 집요함, 끈기 덕분에 드디어 출가를 했습니다.

그동안 1만 명 전법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저처럼 업식이 두터운 사람도 이렇게 금이 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저처럼 구제 불능인 사람도 전법이 가능했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누구라도 전법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겁니다. 저의 업식에 금을 낸 여러분들은 1만 인 전법에 이미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새해 출발을 가볍게 할 수 있었습니다. 서로를 탁마하는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해탈이다’ 하는 것을 공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도반들의 정진 소감을 듣다 보니 해가 저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공동체 대중들은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진정한 기적이 무엇인지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마음의 문이 열리는 게 곧 기적입니다

“여러분들 이야기 모두 잘 들었습니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여기 계신 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 들어보면 좋을 텐데, 인생은 이렇듯 늘 제한된 조건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 주어진 조건 속에서 우리는 선택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각 모둠에서 두 명 또는 세 명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기적을 경험하곤 하는데, 가뭄에 비가 오고, 홍수가 갑자기 멈추는 게 기적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의 문이 열리는 게 곧 기적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행은 학교 공부처럼 하는 만큼 결과가 나온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수행에 집중된 강도가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고, 자신의 막힘이 어느 정도인가, 또 그 과제에 집중하는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느냐에 따라 어느 순간 깨달음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옛 선사들의 이야기를 봐도 삶에서 풀리지 않던 의문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어느 날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지는 순간 깨달음을 얻은 경우도 있고, 다른 사람을 위한 법문을 옆에서 듣다가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혼자서 경전을 읽다가 깨달음이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단순히 경전을 읽는다고 깨달음이 오는 게 아니에요. 자기에 대한 집중, 자기 문제에 대한 집중으로 인해 시선을 바깥이 아니라 안으로 돌리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자신의 막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기도를 하다가 자각하게 되기도 하고, 어떤 경험을 통해 자각을 하기도 합니다.

일상적인 삶에서 가졌던 여러 가지 문제가 명상이나 정일사, 자자를 통해 어느 순간 자각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10년, 20년 동안 해결되지 않다가 어느 순간 자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또 자각을 했다고 하지만 지나 놓고 보면 더 두꺼운 벽이 안에 남아있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업(業)의 벽에 금이 가는 데 도반들의 날카로운 조언이 소중하게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마음을 가볍게 표현하기

아무리 함께 사는 부부라고 하더라도 말을 하지 않으면 서로의 마음을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말을 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 표현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함께 살다 보면 ‘상대방이 당연히 알겠지’하고 생각을 하기가 쉽습니다. 공동체 생활을 할 때도 자연스레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일상입니다. 그러나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표현을 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게 사람의 마음입니다. 우리도 마음 나누기를 하다 보면 ‘저 사람은 저걸 어떻게 저렇게 생각했을까’ 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반면 내가 지금 화난 상태라든지, 분별심이 나 있는 상태라든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든지, 이런 건 내가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옆에 있는 사람들이 귀신같이 압니다. 이런 걸 보면 내가 당연히 알겠지 하는 건 옆 사람이 전혀 모르고, 내가 숨기려고 하는 건 며칠만 같이 지내보면 귀신같이 알게 됩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 감정이 있거나, 싫어하는 감정이 있을 때 같이 지내다 보면 그 마음이 금방 눈에 띄게 됩니다. 즉, 내 마음이 어느 방향으로 휘어져 있을 때는 주변 사람들이 그걸 금방 눈치챕니다. 그러니 그런 마음을 굳이 숨기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대로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하는 건 내가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정말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내 의사 표현과 전달을 정확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알았으면 하는 부분과 몰랐으면 하는 부분, 이 두 가지를 모두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의 의사를 정확히 표현하고 전달하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어차피 숨기려고 해 봐야 다 알게 되는 감정은 굳이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동시에 내 마음이나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리 가까이 살아도 알기가 어려운 게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에 그걸 가볍게 드러내고 표현하는 게 필요합니다.

부부를 상담해보면 대부분의 문제는 상대방이 잘 모르는데도 ‘당연히 알겠지’하는 것 때문에 온갖 오해가 생기고, 결국 헤어지고, 또 그걸 후회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일상생활을 하면서 마음을 가볍게 내놓으시길 바랍니다. 공동체 생활이 오래되다 보면 마음도 솔직하게 내놓는 게 아니라 감정을 포장해서 미화하거나 형식적으로 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 나누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겉 돌게 됩니다. 이번 수련에서도 서로가 작심하고 제대로 터놓자고 이야기를 꺼내니까 솔직한 대화가 이뤄졌습니다. 만약 피하거나 숨기면 10년을 같이 살아도 서로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행적 관점에서 몇 가지 떠오르는 내용도 있었고, 또 유수 스님과 보수 법사님도 수행적 관점의 법문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이야기 자체가 커다란 법문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다른 내용을 덧붙인다는 건 사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고 여러분의 이야기를 통해 법문을 들은 것으로 갈음했으면 합니다.”

스님의 법문이 짧았기 때문에 곧바로 사회활동에 대한 논의로 넘어갔습니다. 환경 문제, 평화 문제, 빈곤 퇴치 문제 등 정토회가 지난 30년 동안 해 온 사회 활동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미래 30년은 어떤 전망을 가져야 할지 여러 가지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 재활용 유통사업의 전망이 궁금합니다.
  • 정토회 운영방식이 전체 대중의 의사를 수렴하는 방향으로 변하면서 장점도 있지만 사회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더욱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대응하기 위해 먼저 선제적으로 실험해보는 단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 요즘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MZ 세대와는 또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자라나는 세대들을 위한 행복을 위해서도 연구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 전 세계적으로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전법만큼 환경 운동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차 만일결사에서 환경 운동의 방향이 궁금합니다.

대화를 다 나누고 나서 마지막으로 스님이 공동체 대중들은 수행자로서 어떤 삶을 살면 좋을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인간의 욕망을 금기시 하는 건 고행 주의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반면 욕망을 따라가는 길은 이 세상 모든 고통의 원인이 됩니다. 따라서 인간의 욕망을 부정하지 않고 하나의 사실로 보되, 인간의 고통이 욕망으로부터 일어난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 욕망으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를 탐구하게 됩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서 우리 공동체는 어떠한 길을 나아갈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이 없어도 정토회는 유지되지만, 수행적 관점을 놓치면 정토회가 존재하는 의미가 별로 없습니다.

중도(中道)는 욕망을 금기시 해서 거부하지도 않지만, 욕망을 합리화 해서 따라가지도 않습니다. 욕망을 합리화 하고 따라가면 금방 수행의 원칙이 사라지고, 종교 집단이 되고 맙니다. 종교 집단을 보면 일반적인 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개 신도가 많고, 시주가 많이 들어오고, 시설을 크게 갖춘 모습이지만 정작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보다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정토회를 시작할 때의 마음을 돌이켜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돌아오자 함이었습니다. 설령 부처님처럼 살지는 못하더라도, 부처님 당시 부처님의 삶을 보고 이 시대에 그런 정신으로 살 수 있는 삶의 모습이 어떠한가에 대해 깊이 고민했습니다. 즉, 부처님의 삶의 모습을 이 시대에 재현하려면 우리들의 생활수준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극빈까지는 아니더라도 세계적인 기준으로 평균 이하의 생활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나라 기준에서는 최하의 생활수준으로 살자는 결론이었어요.

이를 기준으로 현재 우리가 원칙을 잘 지켜나가고 있는지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두북은 학교 건물을 사용하고 있으니까 차치하고, 서울 정토회관이나 문경수련원에서 우리나라 중하위 생활수준의 사람들이 방문하면 자기 집보다 낫다고 생각할지, 못하다고 생각할지에 기준을 두어야 합니다. 이곳의 온도가 자기 집보다 따뜻한지, 여기서 먹는 게 자기 집보다 나은지, 덮고 자는 이불은 자기 집보다 나은지, 생활 시설은 자기 집보다 나은지, 그들의 눈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문경수련원에는 이런 어려운 생활 조건 때문에 와서 수행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토회에서 듣는 법문은 좋은데, 문경수련원에서 수련을 해야 하니까 회원 가입하기는 꺼려지는 거예요. 이처럼 수련원의 생활수준 때문에 못 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이러한 정토회의 삶의 정신 때문에 없는 돈도 보시하고, 없는 시간을 내서 봉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중 어떤 가치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를 겪으면서 정토회에 온라인 체제가 자리를 잡았는데, 저는 온라인 시스템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지 않을까 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중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인 소비주의를 끊어내기 힘들지만, 우리는 출가수행 생활을 중심으로 살면서 그런 대중들과 온라인으로 연결해 나가는 방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공동체 공간에 들어올 때는 우리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 조건이 추가되는 겁니다. 과거에는 반드시 여기에 와서 수련을 해야만 회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오지 않고도 회원이 될 수 있으니까 공동체는 공동체대로 원칙을 지켜나가고, 대중은 세상의 흐름을 어느 정도 따라가도록 두되, 대중과 연결해서 세상의 흐름을 조금은 늦춰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대중들의 요구는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게 정당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대중들의 요구와 수행공동체의 원칙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점을 잘 찾을 것인가 하는 과제가 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 논의를 하고 같이 길을 찾아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저 공동체 생활을 하면 휴일이 없고,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는 제약이 많다는 생활의 불편함을 개선하는 차원이 아니에요. 무엇이 바람직한 삶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루를 살더라도 내가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길인가, 어떤 삶이 내가 살고 싶은 삶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연애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연애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서로에게 요구를 하고,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줘야 합니다. 연애는 두 사람이 관계를 맺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좋은 대로만 하고 그만둘 수 있는 관계가 아닙니다. 결혼 관계는 이보다 더하죠. 그러니 연애는 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이 따르는 문제입니다. 연애나 성(性)에 대한 이러한 욕망이 우리의 삶에 억압인지, 속박인지, 즐거움인지 깊이 탐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떠한 것도 ‘이래야 된다’고 미리 전제되어야 하는 건 없습니다.

우리가 왜 지금처럼 사는가 하면, 이 정도 선에서 욕망의 불충족에 의해 생기는 고뇌와 욕망의 충족에 의한 손실에서 나름 적절한 균형점에 있는 위치를 찾은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가 사는 위치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 나름대로 균형점을 찾아서 살고 있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욕망도 아쉽고 욕망을 따르지 않는 것도 아쉬운 겁니다. 이건 살면서 교통정리를 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자동적으로 교통정리가 되기도 하고, 직접 해본 다음 교통정리가 되기도 하고, 안 해보고 교통정리가 되기도 합니다. 같이 살아 보면 직접 해봐서 미련이 남는 사람도 있고, 안 해봐서 미련이 남는 사람도 있습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며 고뇌가 생길 때는 이런 점을 잘 살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서는 미리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어떤 삶을 살아도 좋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이 부분에 대해 딱 다섯 가지만 말씀을 하셨습니다.

남을 해치면서 살지는 말라.
남에게 손해 끼치면서 살지는 말라.
남을 괴롭히면서 살지는 말라.
말로도 남을 괴롭히지 말라.
술에 취해 남을 괴롭히지 말라.

이 다섯 가지만 유의하면 어떻게 사는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이 우리 공동체를 어떤 삶의 방식으로 이끌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 봐야 합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만든 규칙이 아니라 선배들이 정해놓은 규칙 속에 들어와서 살고 있기 때문에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우리도 처음에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많은 논의를 했습니다. 월급을 주는 방식도 해보고,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을 시도해 본 다음 지금의 방식으로 의견이 모아진 겁니다. 여러분은 규칙이 정해진 다음 들어왔으니까 답답함을 느낄 수 있는데, 여러분도 깊이 의논을 해서 어떻게 살면 좋겠는지를 정해야 합니다.

지금보다 덜 원칙적으로 살면 당장 1, 2년은 좋을지 모르지만 10년 지나 놓고 보면 과연 덜 원칙적인 공동체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불만이 없을까요? 덜 원칙적으로 운영하는 공동체라고 하더라도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불만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면 또다시 보완을 해야 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보완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어떤 시스템을 마련한다고 해도 늘 보완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보완을 할 때 어떠한 삶의 자세를 유지할 것인가에 깨어있지 않고 여러 번 보완을 하고 나면 이곳 공동체 생활이 내가 떠나온 집에서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런 경우를 빗대어 표현한 이야기가 있죠. 어떤 사람이 설악산에 등산을 갔는데, 산에 올라가다가 보니 중간에 꽃이 너무 예쁜 거예요. 잠시 꽃을 꺾으려고 멈췄는데, 꽃을 꺾다 보니 그 옆에 있는 개울이 너무 시원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잠깐 발을 담그고 있었는데, 바위틈에 있는 가재가 눈에 들어와서 가재를 잡게 됩니다. 이 가재를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 민박집이 보여요. 그 민박집에 가서 가재 요리에 필요한 것만 잠깐 빌리려고 했는데, 막상 요리를 해서 먹다 보니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마침 같은 동네에서 온 사람들이에요. 그렇게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덧 날이 저물어서 그 사람들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은 매 순간 나름 잘한다고 꽃을 꺾고, 개울가에 발을 담그고, 가재를 잡고, 끼니도 해결했는데, 정작 자신의 목표였던 산에 오르는 것을 망각해서 그 목표는 이루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 거죠. (웃음)

이런 모습을 염두에 두면서 어떻게 공동체 생활을 운영하는 게 좋을지 그 방안을 모색하면 좋겠습니다. 생활을 하다 보면 늘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업무도 개선해야 하고, 규율도 개선해야 하고, 여러 가지 개선해야 하는 부분들이 계속 나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의 문제를 임시방편으로 때우기만 하면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고친 부분을 또 고치고 또 고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연구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욕망의 충족과 억제 사이에서 중도의 길을 찾아나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관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새해 첫날, 스님의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제자들은 도반이 수행의 전부라는 말을 온몸으로 체감했고, 하루 종일 제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한 스승은 기쁜 마음으로 잠들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새해맞이 공동체 안거를 마무리하는 회향식을 한 후 서울로 이동해 오후에는 대중부 활동가들과 회의를 하고, 저녁에는 온라인 일요 명상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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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어제 '기적'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봉화에서 양원역을 짓게 되는 이야기였는데, 스님의 하루에서 이렇게 다시 만나니 반갑습니다.
자각, 자제, 자율 3가지를 내 삶의 지표로 삼아 2022년도에도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오늘은 조인성과 스님의 행복한 대화가 있는 날이어서 금요 즉문즉설이 더욱 기대가 됩니다. ^^

2022-01-07 17:11:28

써니야

감사합니다

매일 이른 아침
보내주시는 스님의 하루가
제 수행에 큰 길잡이가 됩니다.

2022-01-07 10:32:04

고경희

이야기

2022-01-06 1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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