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11.12. 김장 1일째, 금요 즉문즉설
“성격 차이로 이혼을 요구했는데, 남편은...”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부터 3일 동안 두북 수련원에서는 김장을 합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 발우공양을 마친 후 곧바로 김장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날이 추워져서 아침 기온이 영상 2도까지 떨어졌습니다.

화로에 불을 피우고 다 함께 파이팅을 외쳤습니다.

“수행이 별 것 있나. 김장이 도(道)다!”

먼저 산 아랫 밭으로 올라가서 배추를 수확했습니다.

각자 식칼 하나씩을 들고 배추를 기울인 후 밑둥을 쓱싹 잘랐습니다. 한 사람이 배추 뿌리를 말끔히 자르고 지나가면, 뒤이어 한 사람이 누워 있는 배추를 콘티 박스에 담아서 트럭까지 옮겼습니다.


산 아랫 밭 배추 수확을 마치고 산 앞 밭으로 내려왔습니다. 앞 밭에는 아주 넓은 면적에 배추가 빼곡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배추의 밑둥을 칼로 자르고 지나가면, 뒤따라서 행자님들이 누워 있는 배추를 콘티 박스에 담아서 트럭까지 옮겼습니다.




한 줄로 쓰러져 있는 배추들은 가을 햇살을 흠뻑 머금었습니다.


자원봉사자들도 속속 도착하고, 서울에 내려온 공동체 성원들도 모두 도착하여 일손이 갑자기 늘었습니다. 배추 뽑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습니다.


자원봉사자들과 행자님들이 배추 뽑기를 하는 동안 스님은 무를 수확했습니다.


칼로 무청을 잘라내고 무청만 다듬어서 콘티 박스에 모았습니다. 무는 무끼리 모은 후 크고 모양이 좋은 것만 선물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따로 챙겼습니다.

“올해 무 농사는 잘 됐네요.”


배추와 무를 트럭에 가득 실은 후 다 함께 밭 정리 작업을 했습니다. 고랑마다 펼쳐놓은 잡초 매트를 걷어내고, 뽑아낸 철심도 내년에 사용할 수 있게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수고했어요. 이제 김장하러 갑시다.”


가을 하늘은 높고 푸르렀습니다. 그 위에 하얀 구름이 바람을 타고 쉴 새 없이 움직였습니다.

밭에서 뽑은 배추를 모두 두북 수련원 운동장에 내렸습니다. 마침 점심시간이 되어 배추만 내려놓고 곧바로 식사를 했습니다.

오후 1시부터 다시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배추 다듬기를 했습니다. 배추 뿌리 쪽을 잘라낸 다음 억센 겉잎만 떼어냈습니다. 배추의 뿌리 쪽에 10cm 정도 칼집을 넣어 손으로 반을 갈랐습니다.

공동체에서는 한 번에 1200포기를 김장해야 하기 때문에 시설 담당자가 문짝을 재활용하여 넓은 풀장을 하나 새로 만들었습니다.

쪼갠 배추를 소금물에 적신 다음 넓은 풀장에 하나씩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행자님들이 배추를 소금물에 절이는 일을 하는 동안 스님은 비닐하우스로 가서 김장용 갓을 수확했습니다.

그리고 산 밑 밭에 올라가서 무와 무청을 수확했습니다. 무청은 처마 밑에 주렁주렁 걸어 두어서 잘 마르도록 했습니다.




해가 지고 나서도 김장은 계속되었습니다. 낮에 배추가 소금물에 푹 잠기도록 한 후 4시간이 경과했습니다. 이어서 배추 뒤집기를 했습니다. 윗 단에 있어서 푹 담기지 못한 배추를 아랫단으로 내리고, 아랫단에서 푹 절여진 배추는 윗 단으로 올렸습니다.

배추의 두꺼운 줄기 부분에 소금을 뿌린 후 배추가 푹 잠기도록 했습니다.


날이 어두워져서 배추에 소금이 묻었는지 안 묻었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어두운데 뭐가 보여요? 다들 눈에서 불을 켜고 일하나 봐요. 가로등을 하나 설치하면 안 될까요?”

스님의 제안에 급히 이동식 간이 형광등을 설치하고 작업을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행자님들이 배추 절이기를 하는 동안 스님은 양해를 구하고 저녁 법회를 하러 방송실로 향했습니다.

“저는 저녁에 법회가 있어서 여기까지만 일하고 갈게요.”

저녁 7시 30분부터는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시도별 밴드를 통해 1300여 명의 시청자들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환한 웃음과 함께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오늘부터 시작된 김장 소식을 전했습니다.

“제가 있는 이곳 두북 수련원에서는 오늘부터 3일간 김장을 합니다. 저희 공동체는 보통 하루에 한나절만 농사일을 하는데, 오늘은 배추를 뽑아서 소금에 절인다고 하루 종일 일했습니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잠깐 보여드리겠습니다.

올해는 배추가 무름병에 걸려서 절반 정도를 버려야 했습니다. 저희 공동체에는 함께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일 년에 1200포기 정도를 담가야 하기 때문에 연간 행사 중 아주 큰일 중 하나입니다. 저도 방금 전까지 김장을 하다가 강연을 하러 들어왔고, 밖에서는 지금도 행자님들이 김장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배추를 뽑고, 다듬고, 소금에 절이는 일을 했고, 내일은 오전에 소금물을 빼고 배추를 씻어서 오후부터는 양념에 버무리는 일을 하게 되고, 모레까지 김장을 계속할 예정입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세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편과의 성격 차이로 이혼을 고민하고 있다며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성격 차이로 이혼을 요구했는데, 남편은...

“저는 결혼 22년 차이고 나이가 10살 차이 나는 맞벌이 부부입니다. 19살과 21살 되는 건강하게 잘 커주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저는 남편하고 말을 안 하고 지낸 지 10여 년이 됩니다. 결혼 초부터 정서적 교류가 없었고, 무심하고 차갑게 대해서 ‘내가 뭐 잘못했나?’ 하는 생각에 원망을 많이 했습니다. 대화 없이 서로 투명인간 보듯이 지낸 십여 년을 잘 들여다보니 서로 성격 차이인걸 알고 이혼 요구를 했습니다.

남편은 이혼 조건으로,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제가 살림살이에 계속 도움을 달라는 것과 제 명의로 된 집에 대한 재산권을 주장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두 가지를 내걸고 있습니다. 남에게는 젠틀하고 호감을 주는 사람이 왜 저에게는 계산적이고 냉정하게 하는지 답답합니다. 이제 그런 성격을 인정하고 헤어지려 하는데, 22년 고생하고 몸만 나와 새로 시작하려니 억울한 마음이 듭니다.”

“남편은 이혼을 해주는 조건으로 재산권을 주장하지 말고 맨몸으로 나가라고 얘기하고 있네요. 그런데 재산 형성은 같이 한 거예요, 남편이 한 거예요?”

“신혼 초기에는 집 없이 사무실에서 살다가 20년이 지나서 대출을 받고 집을 장만했습니다.”

“같이 번 거예요? 질문자가 번 거예요? 남편이 번 거예요?”

“맞벌이를 해서 저는 가정살림을 꾸리고 아이들을 케어하는 일을 했고, 남편은 아이들의 교육비 정도를 내고 있습니다.”

“남편이 재산에 욕심이 있어서 재산을 두고 맨몸으로 나가라고 말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 생활이 너무 의미가 없어서 재산을 포기하고 나갈 마음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남편의 나이가 80이 넘은 노인도 아니고, 법적으로 부부가 공동으로 마련한 재산은 이혼을 하게 되면 공동 분배를 하게 되어 있는 것을 알 텐데, 그렇게 억지를 써서 말하는 건 무슨 뜻일까요?”

“이혼을 안 해 주겠다는 뜻인가요?”

“네, 남편은 이혼하기 싫다는 의사를 그렇게 표현하는 겁니다.”

“이렇게 대화 없이 무의미하게 보내는 게 힘이 듭니다.”

“그건 질문자의 사정이고, 남편은 이렇든 저렇든 가정을 이루어서 살고 싶다는 거예요. 이혼하려면 네가 나가라고 말하는 겁니다. 한마디로 이혼하기 싫다는 거예요.”

“그냥 재산권을 포기하고 나갈까요?”

“글쎄요. 그건 본인의 생각일 뿐이고, 재산권을 포기하고 나가겠다고 해도 남편은 이혼도장을 안 찍어 줄 겁니다. 재산이 핵심이 아니고 이혼하기 싫다는 게 핵심이에요. 이혼 못해준다고 얘기를 했는데도 자꾸 이혼하자고 요구를 하니까 ‘그럼 재산권을 포기하고 나가라’ 이렇게 말하면 이혼 요구를 접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조건을 내건 겁니다. 남편은 질문자가 좋아서 같이 살고 싶다는데 왜 그래요?”

“저희는 서로 말을 안 해요.”

“그러면 질문자라도 말을 하면 되잖아요.”

“성격이 저랑 너무 안 맞아요.”

“성격이 안 맞는데 어떻게 애를 둘이나 낳아서 키웠어요?”

“남편이 말이 없는 사람이고 점잖은 사람이어서 처음에는 제가 맞춰주고 유쾌하게 해주려 했는데,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아무 반응이 없으니 저도 위축이 되더라고요.”

“남편이 말을 하든 안 하든 자기 혼자 생글생글 웃고 말하면 되잖아요. 산에서 혼자 사는 스님들은 새하고도 얘기하고 다람쥐 하고도 얘기하고 잘 삽니다. 질문자는 재잘재잘 얘기도 나누고 의논하고 싶은 성격이지만, 남편은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사람인 걸 어떡해요? 경상도 남자들은 하루에 말을 세 마디밖에 안 한다는 얘기도 있잖아요.”

“남편은 경상도 사람도 아니에요. 남편에게 좋은 감정이 없으니까 저도 별로 말을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결혼했어요?”

“남편에게 잘해주고 싶어서 결혼했는데, 지금 마음은 예전 같지가 않아요.”

“잘해주고 싶어 결혼했는데 대가가 안 돌아왔다, 이 얘기 아니에요? 그런데 남편이 바람을 피웠거나, 재산상 손실을 끼쳤거나, 자기한테 폭행을 했거나, 이런 건 없잖아요.”

“네. 그렇습니다. 성격 차이가 큽니다. 성격 차이로는 이혼이 안 될까요?”

“그 정도로는 이혼 사유가 안 돼요. 결혼생활에 아무 잘못이 없는데 말 좀 안 했다는 한 가지 이유로 이혼하자는 것은 조금 심하지 않아요? 그럼 말을 못 하는 장애인들은 어떻게 결혼생활을 해요?”

“수화로 대화하고 눈빛으로 대화합니다.”

“질문자도 눈빛으로 대화하면 되잖아요.”

“저한테 너무 냉대해서 좋은 감정이 없어요.”

“그렇지 않아요. 질문자한테 좋은 감정이 없으면 왜 이혼을 안 하려고 하겠어요? 제가 볼 때 남편은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자의 다정다감함에 못 맞춰 주는 것 같아요.”

“남편은 되게 이기주의이고 가부장적이에요.”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세요. 어떻게 이기적입니까?”

“남편은 교육비를 책임지고, 저는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있는데, 남편은 정말 학원비만 지원해주고 다른 것에 대해서는 절대 지원해 주지 않습니다. 지인에게 김치를 주문하고 돈이 없어서 남편에게 입금 문자 부탁을 보냈는데 몇 달 후에 재 주문하려고 하니 남편이 입금도 안 하고 저에게 이렇다 저렇다 말도 안 했던 겁니다. 또 쌀이 떨어지면 집에 있는 잡곡들만 섞어서 검은 밥을 지었어요. 객사해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계셨는데 90살 때 시어머니를 상의 없이 모셔와 놓고는 퇴근 후에 시어머니 간식만 사 왔습니다. 시어머니 맛난 거 해 드리라고 돈을 주지도 않았어요.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 남편에게 용돈 달라고 손 편지 써서 딱 오만 원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추석 명절에 남편은 간이 안 좋아서 휴식이 필요하다며 독실을 얻어 입원을 해버렸고, 길 막히는 연휴 내내 제가 음식 나르면서 아이 데리고 명절을 보냈습니다. 남편과의 추억은 너무 씁쓸하기만 합니다. 저에게는 말도 안 붙이는 남편이 TV 예능을 보면서 울고 웃고 하는 모습을 보면 같이 사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혼 요청을 했습니다.”

“방금 말한 내용이 이혼 사유가 되는지 쭉 적어서 변호사한테 가서 물어봐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같이 이겨나가자고 혼인 서약을 했기 때문에 그런 정도의 이유로는 결혼을 파기할만한 조건이 되기 어렵습니다. 19살 아이가 성인이 되려면 아직 일 년 남았잖아요. 일 년간 한번 노력을 해보면 좋겠다 싶습니다.

서로 관계가 안 좋으면 과거에 안 좋았던 것만 다 기억이 나거든요. 상대가 죽고 나면 또 옛날에 좋았던 것만 다 기억이 나요. 같이 살 때는 원수가 돼서 살다가, 죽고 나면 그리워서 병나고 이러거든요. 살 때는 재밌게 살다가, 죽고 나면 잊어버려야 하는데, 거꾸로 하는 겁니다.

이혼을 하고 싶다면 만약 남편이 교통사고 나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먼저 생각해 보세요. 아무렇지 않고 '돌아가셨다니까 그냥 장례식이나 치러주자' 이런 마음이 들지, '내가 조금 더 노력해서 같이 살걸 그랬다' 이런 마음이 들지 생각해 보고, 후회가 될 것 같으면 지금 노력을 더 해야 됩니다. 지금의 어려움 때문에 이혼하는 결정을 내리면 다음에 또 그것이 원인이 돼서 더 큰 괴로움을 겪게 돼요.

결혼할 때도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결혼을 했는데, 해놓고 보니 판단을 잘못했다고 생각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지금은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이혼을 하지만, 해놓고 보면 판단을 잘못했다는 후회가 또 생길 수 있어요. 결혼할 때 한 번 경솔했으면 됐지, 똑같은 일을 두 번 반복하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남편이 아이들이 성년이 되면 다시 의논해보자 했으니 일 년 밖에 안 남았잖아요. 일 년 동안 시간만 때우고 그냥 기다리면 상황이 똑같아집니다. '일 년 동안 최선을 다해보자' 이런 마음으로 지내야 나중에 그만두더라도 후회가 없어요.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후회가 안 되는 내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을 해보라는 겁니다.

또 아이들이 보기에도 아빠가 어떤 불행에 처했을 때 '엄마가 냉정했다' 이렇게 기억되면, 남편하고 멀어졌는데 아이들마저 관계가 멀어질 위험이 있어요. 아이들이 '엄마는 최선을 다했다' 이렇게 딱 인식이 되어야 남편과 이혼을 하더라도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는 틈이 안 생깁니다. 그러니 미래의 자기 손실을 막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일 년 동안은 노력할 필요가 있어요.

남편은 무뚝뚝하고 말이 없지만 질문자와 이혼하기를 원치 않고 함께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나이도 많고, 성격 차이도 있고, 대화도 안 되고 있기 때문에 질문자가 조금 더 노력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제가 할 수 있는 역량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혼자가 된다고 해도 경솔했다는 후회가 없을 것 같습니다.”

“결혼을 할 때도 후회 안 할 거라고 생각했었잖아요. 그런데 지금 후회하잖아요. 그것처럼 이혼을 할 때도 절대 후회 안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혼하고 나서 무슨 일이 생기면 또 후회를 하게 된다니까요.”

“그럴까요?”

“자꾸 남을 문제 삼지 말고, 자기 삶을 돌아보고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특히 남편은 아이들의 아빠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냥 길가는 사람을 사귀었다가 헤어지는 것과는 다릅니다. 아이들도 아빠를 아주 싫어해요?”

“아이들은 아빠와 관계가 좋습니다.”

“아이들이 아빠를 좋아한다면 남편은 좋은 사람인 거예요.”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단지 저랑 안 맞을 뿐입니다.”

“아이들이 아빠를 좋아한다는 것은 아빠와 소통이 어느 정도 된다는 얘기잖아요. 질문자가 너무 지나치게 다정다감함을 요구했기 때문에 남편이 더 움츠려 들었는지 몰라요. 상대에게 요구만 하지 말고 질문자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한 번 해봐요. ‘여보, 사랑해’라고 했을 때 남편이 ‘나도 사랑해’라고 말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그냥 ‘사랑해’ 하고 표현해 보고, ‘다녀왔어요’, ‘식사하세요’ 하고 표현해 보는 겁니다. 대신 남편은 대답을 할 수 없는 장애인이라고 생각해봐요. 밀랍인형을 놓아두고 그 앞에서 재롱을 떨 듯이 그렇게 일 년 동안 지내보면 변화가 일어날 거예요. 제가 보기에는 결코 남편이 질문자에 대해서 사랑이 없는 게 아니에요. 서로 관계를 푸는데 장애가 생겼을 뿐입니다. 오늘 남편이 질문을 했다면 제가 남편한테 먼저 노력을 해보라고 얘기를 해주겠지만, 본인이 질문했으니 본인이 먼저 노력해서 관계를 풀어 나가 보면 좋겠어요.

계속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보면,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몸은 아플 때가 있잖아요. 조금만 치료해도 금방 나을 병인데, 드러나지 않는 어느 한 부분이 막혀서 아픈 경우가 있거든요. 그것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관계가 안 풀릴 때는 뭔가 서로 코드가 안 맞아서 그럴 수 있기 때문에 그걸 찾아서 약간의 노력을 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혼자서 먼저 노력해보면 어떨까요?

질문자는 재잘재잘하고 재롱떨고 다정다감한 것을 좋아하니까 혼자서 한번 그렇게 해보라는 겁니다. 거기에 대한 남편의 반응을 기대하지 말고, 그냥 나 혼자 좋아서 해보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즉문즉설을 좋아하는 이유도 스님에게 어떤 반응을 기대하고 좋아하는 게 아니잖아요.

부처님을 믿는 불자들은 불상 앞에 과일을 올리고 기도를 하는데, 그 과일을 부처님이 먹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 적 있어요? 불상 앞에 과일을 올리고 기도하면 부처님이 좋을까요? 내가 좋을까요?”

“내가 좋습니다.”

“꽃을 보고 ‘참 예쁘다’ 하면 내가 좋습니다. ‘바다 참 좋다’ 하면 바다가 좋은 게 아니고 내가 좋은 거예요. 그런 것처럼 질문자가 일 년 동안 남편을 좋아하는 마음을 내면 남편이 좋아지는 게 아니라 질문자가 좋아지는 거예요. 산과 바다, 부처님한테는 대가를 안 바라면서 왜 남편에 대해서는 ‘내가 십 원 내면 너도 십 원 내라’ 이렇게 대가를 바라나요?

지금 질문자는 두 번, 세 번 해보고 대가가 안 돌아오니까 ‘밑지는 장사네. 너하고는 장사 안 한다’ 이런 식으로 관계를 맺어 온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 개선이 안 되는 거예요.

부처님은 원래 말이 없잖아요. 그것처럼 남편을 부처님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남편이 미쳤다고 해도 상관하지 말고 자기 혼자서 재롱도 떨고 얘기도 나누고 중얼중얼하면 돼요. 그러면 남편이 ‘이게 미쳤나?’ 이 말이라도 할 겁니다. 그럼 질문자도 이렇게 얘기하세요. ‘이야, 기적이다. 당신이 드디어 말했다.’ (웃음)

불상 앞에서 막 욕을 했더니 부처님이 ‘너 나쁜 놈!’ 하고 말하면 부처님이 말을 했다면서 기적이라고 여길 거잖아요. 그런 관점에서 한번 접근해봐요. 그렇게 일 년 동안 내가 좋은 대로 살고,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그때 이혼을 결정해도 됩니다.

이런 노력들을 쌓아 놓아야 재판할 때 '나는 이렇게까지 해 봤다' 하고 말할 수 있어요. 그래야 이혼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소풍 갈 때 돈을 달라 했는데 겨우 오만 원 밖에 안 줬다는 건 이혼 사유가 안 돼요. 적어도 이 정도로 일 년 동안 정성을 쏟아야 부처님이 가피를 주든지 하나님이 은총을 주든지 할 것 아닙니까.

저는 어지간하면 이혼하고 끝내라 말하지 이렇게 설득을 잘 안 해요. 성격 좀 안 맞다고 해서 못 살겠다고 말하는 수준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부부관계를 맺지 말았어야죠. 조금 더 노력해봐요. 20년 동안 노력해 온 고충을 충분히 압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질문자는 조금 해보고 안 되면 관두는 방식이었던 거예요. 지금부터는 일 년 동안 남편을 불상이라고 생각하고 꾸준히 해봐요.

남편의 대답이나 반응을 기대하지 말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 번 해보면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남편이 변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남편이 이혼을 수용하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어요. 남편이 질문자의 노력에 감동을 해서 이혼도장을 찍어줄 수도 있습니다.

남편에게 ‘너 미쳤구나’ 이 말이 한 번 나오게 해 봐요. 남편이 그렇게 말하면 ‘내가 왜 미쳐?’ 이러지 말고 ‘야호, 드디어 말했다. 당신 말할 줄 아네!’ 이렇게 생각해야 해요. 불상을 놓고 좋아하듯이 남편의 어떤 반응에 대해서도 반가워해야 합니다. 알량한 자존심 갖고 성질내거나 말대꾸하지 말고, 이렇게 하면 두 가지 길이 생깁니다. 첫째, 막힌 게 뚫려서 관계가 소통이 되든지, 둘째, 이혼이라도 순순히 해주든지, 둘 중에 하나는 반드시 일어날 거예요.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하려고 일 년 동안 고통을 겪을 필요는 없잖아요. 오늘부터 일 년 동안 재미있게 살아야 됩니다. 상대야 말하든 말든 나는 재잘대고 재밌게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네, 너무 감사드립니다. 스님 말씀대로 남편을 부처님이라고 생각하고 일 년 동안 지내보겠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시어머니를 케어해주는 요양보호사가 제대로 일을 안 하는 것 같아 문제 제기를 한 것 때문에 시어머니께 야단을 맞았습니다. 저는 시어머님께 찍혀서 뭘 해도 욕을 먹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남편의 술주정 때문에 이혼을 고민 중입니다. 남편은 술을 마시고 청소기와 가구를 부순 적이 있습니다. 술주정만 아니면 같이 살겠는데, 제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스님은 내일 김장 일정에 대해 행자님들과 의논한 후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김장 2일째입니다. 오전에 천일결사 기도를 마치자마자 배추 씻기 작업을 시작해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을 위해 즉문즉설을 한 후, 오후에는 배추 속 넣고 통에 담는 작업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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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지

스님처럼 지혜롭고 싶네요. .. 많이 배우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2021-11-21 05:29:16

유혜정

스님 정말 좋은말씀 감사드려요 ^^♡

함 스님 말씀대로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

좋은말씀 감사드려요 ~^^♡

근데 그동안 제가 넘 힘들어서 침대에서 마니 울었어요ㅠㅠ

2021-11-18 02:49:17

임태종

스님
감사합니다🙏🙏🙏

2021-11-17 22:5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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