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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가을 하늘 아래에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새벽 4시 30분부터 천일결사 기도를 생방송으로 진행했습니다.
예불,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 독송을 차례대로 한 후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아침 기도 잘하셨습니까? 7차 백일기도를 입재하고 2주가 지났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정진을 하다 보면 어느덧 백일이 됩니다. ‘백일을 어떻게 기도를 하나?’ 하고 생각하면 까마득해집니다. 그냥 ‘하루에 한 번만 기도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하루에 두 번, 세 번도 아니고 그냥 안 죽고 살아있는 기념으로 아침에 눈 뜨자마자 기도를 한다고 생각하면, 살아있는 한 매일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정토행자란 세 가지를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첫째, 수행을 통해서 우선 자기가 행복해져야 합니다. 둘째, 이 좋은 법을 널리 전해서 다른 사람도 행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셋째,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보다 아름다운 정토로 만들어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고통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정토행자가 실천해야 할 과제입니다. 한마디로 수행, 전법, 사회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일결사란 이런 원(願)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매일 정진을 하는 것입니다. 아침마다 기도를 하면서 이런 내용을 다시 한번 환기하는 거예요. 정토행자가 평소에 해야 하는 일은 이런 내용을 지역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토행자는 늘 자신도 행복하게 하는 길,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하는 길을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 비록 몸은 조금 고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혀에 단 것이 나중에 건강을 해치듯 기분 좋은 일만 하는 것은 나중에 괴로움으로 바뀌게 됩니다. 나를 괴롭히는 데에 에너지를 쓰지 않고, 그 에너지를 주변 사람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데에 쓰자는 것이 정토행자의 서원이자 천일결사의 목표입니다.”
이어서 오늘 읽은 경전의 내용에 대해서 해설을 한 후 6시에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곧이어 6시 10분부터 2차 만일결사 준비위원회(이하 만준위)와 온라인 간담회 시간을 가졌습니다. 만준위에서는 그동안 토론하고 준비했던 내용 중에서 스님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하는 쟁점을 하나씩 이야기했습니다.
여러 가지 쟁점 중에 2차 만일결사에는 모임의 구성을 어떤 기준으로 나눌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온라인 정토회에서는 국가의 구분이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습니다. 오프라인으로 모여서 전법을 하면 미국에서 전법을 할 것인지, 독일에서 할 것인지, 구분이 필요해요. 하지만 온라인으로 전법을 할 때는 언어의 구분만 중요하지 지역의 구분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국 안에서 지역별로 조직을 만드는 이유는 사회적 실천 때문이지, 국내에서도 온라인 전법을 위해서는 지역 구분이 크게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연령대별, 시간대별로 모둠 구성을 할 필요가 있지, 지역별로 구성할 필요성은 거의 없습니다. 전법의 공간이 온라인으로 바뀌게 되면, 오전에 할 것인지, 오후에 할 것인지, 등 시간대가 중요하지 장소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2차 만일결사를 설계할 때도 지역적 구분이 꼭 필요한지 다시 한번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히려 전 세계를 시간대와 언어별로 모임을 구성하는 방향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우선 첫 번째 방법은 시간대별로 모임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하루가 24시간이니까 24개의 시간대별 모임을 만들 수가 있겠죠. 가령 한국 시간으로 새벽 2시가 편한 사람은 유럽이든 미국이든 구분 없이 그 시간을 기준으로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이렇게 시간별로 전체 모임을 재편하는 방향이 가장 온라인 현실에 맞는 방안이 아닐까 싶어요. 마치 예전에 동네별로 수행 도량을 만드는 것이 오프라인 정토회에서 가장 적합했던 것처럼 온라인에서는 시간대별로 법회를 만들고, 시간대별로 모둠을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방법은 언어별로 모임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현재는 한국어와 영어만 지원이 가능한 상황이죠. 하지만 현재 구글 번역기가 70% 정도의 번역을 해내고 있는 걸 감안하면 앞으로 40개 정도의 언어로 모임을 구성하는 방안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여기서도 언어가 기준이 될 뿐 딱히 거주 국가가 기준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구글 번역기로 40개의 언어가 동시통역이 가능해지면, 법문을 40개의 언어로 내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어디에 사는지와 관계없이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는 영어입니다. 두 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는 스페인어입니다. 그다음으로는 프랑스어, 중국어, 힌디어 등이 있습니다. 우선 이런 주요 언어로 콘텐츠를 내보낼 수만 있게 되어도 세계 상당수의 인구를 대상으로 전법을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5년 정도만 지나면 한국어로 만든 콘텐츠를 영어로만 번역해 놓아도 영어에서 각기 다른 나라의 언어로 번역하는 건 특별히 사람의 손을 요구하지는 않게 될 거예요. 구글 번역기로 완전히 대체가 가능하거나, 영어에서 다양한 언어로 번역하는 건 그 나라 사람들이 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앞으로 인터넷 세상이 되면 국가의 의미가 없어지게 되는 걸까요?”
“국가는 여전히 의미가 있죠. 다만 전법을 온라인에서 진행을 하게 되면, 누가 어느 나라에 사는지 국가의 구분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불교 신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불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진짜 불교라는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불교 경전을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지만, 굳이 내용만 따지면 꼭 경전을 통해서 배우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불교 신자라는 정체성을 갖고자 한다면 전통적인 불교 경전을 통해 제대로 공부를 해야 하지만, 불교 신자가 아닌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하는 프로그램을 열 때는 그에 맞게 교과 과정이 바뀌어야 합니다. 굳이 불교 경전이라는 텍스트를 어렵게 가르칠 필요가 없고, 마음공부를 하도록 한 다음 바로 사회적 실천으로 넘어가도 됩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쟁점에 대해 스님의 생각을 이야기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스님은 작업복을 입고 운동장으로 나갔습니다. 운동장에서는 새벽부터 공동체 대중들이 김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도 고무장갑을 끼고 김장을 함께 했습니다. 스님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한 가지 역할을 맡았습니다.
“저는 무슨 일을 할까요?”
“절임물을 뺀 배추를 차곡차곡 쌓는 일을 좀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먼저 밤새 풀장에 담가 두어서 소금물에 흠뻑 절여진 배추를 밖으로 꺼냈습니다. 미끄럼틀을 설치해서 배추를 놓으면 미끄러져서 1단계 물통에 빠지게 했습니다.
“이건 제가 이사할 때 생각해낸 방법인데 왜 사전 허락도 안 받고 도용해요?” (웃음)
1단계 물통에 빠진 배추를 건져서 2단계 물통에 헹구고, 다시 3단계 물통에 헹구고 소쿠리에 올려 물기를 뺐습니다. 뿌리 쪽이 두툼한 것은 V자 모양으로 잘랐습니다. 배추를 여러 번 헹구는 도중에 나온 우거지도 함께 씻어서 건졌습니다.
행자님들이 배추를 헹구어서 소쿠리에 올려놓으면, 스님이 헹군 배추에서 물이 빠지도록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배추를 절이는 동안 최말순 보살님과 묘덕 법사님은 양념거리를 다듬고 무를 손질해 소를 준비했습니다.
무는 채 썰고, 파, 미나리, 갓, 청각 등의 부재료는 적당한 길이로 썰어 준비했습니다. 생강도 곱게 다지고, 고춧가루는 따뜻한 물에 불린 후 갖가지 양념 재료를 더 넣어 불게 두었습니다. 맛 내기 재료를 버무린 후 고루 섞일 정도로 뒤적여 주었습니다.
이제 김치를 담을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오후에는 양념에 배추를 이리저리 문질러서 배추 전체에 색이 들게 하면 됩니다.
“저는 10시부터 법회가 있어서 또 들어가 볼게요. 미안해요.”
스님은 행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방송실로 들어왔습니다.
다시 가사와 장삼을 수하고 오전 10시 정각에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을 위한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2300여 명의 학생들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정토불교대학 학생 여러분, 이제 입학한 지 두 달 정도가 지나고 있는데 배울만 합니까? (웃음)
이제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지금 두북 수련원에서는 김장을 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배추와 무를 뽑고, 다듬고, 절이는 일을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절인 배추에 물을 빼는 작업을 했고, 오후에는 양념을 해서 버무리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저도 계속 일하다가 강의 시간이 돼서 들어왔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일하다가 중간에 쉬게 되었어요. 일하는 대중이 볼 때는 일하다가 떠나는 밉상일 텐데, 이런 핑계로 잠시 일을 멈추고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웃음)
여러분도 조별 모임을 할 때 꼭 이곳 두북 수련원이 아니더라도 실천 장소에 가서 봉사활동을 꼭 하시길 바랍니다.”
이어서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다섯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욕망을 끌려가지도 않고 억누르지도 않고 다만 지켜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욕망에 끌려가지도 않고, 욕망을 거부하지도 않고, 다만 지켜볼 뿐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욕망이 올라올 때 욕망이 올라오는 것을 알아차리고 지켜본 다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올라오는 욕망을 지켜볼 때 ‘이런 욕망은 가져봐야 오히려 나한테 손해야’ 하는 생각을 하며 욕망을 없애려고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끌려가지도 않고, 거부하거나 없애려 하지도 않고, 그저 지켜보라고 하셨는데, 지켜본 후에는 어떤 마음으로 정진해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지금 질문자는 욕망을 그저 지켜보는 게 아니라, 욕망을 따라가거나 욕망을 억누르는 것, 이 둘 중 하나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질문하는 겁니다. 욕망을 알아차리면 욕망이 사라지기 때문에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게 없습니다.
예를 들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가 담배를 피우고 싶을 때 담배를 피우는 건 욕망을 따라가는 것이고, 억지로 이를 악다물고 담배를 안 피우는 건 욕망을 억제하는 겁니다. 이때 욕망을 따라가면 과보를 받고, 욕망을 억제하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여러분은 처음에는 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참습니다. 그렇게 참고 참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터뜨리죠. 일단 터뜨리고 나면 속은 시원한데 주변으로부터 욕을 얻어먹는 과보를 받게 됩니다. 이렇게 과보를 받아서 손해가 나니까 다음에는 또 참습니다. 또 참고 참다가 스트레스가 너무 쌓이면 그걸 또 터뜨립니다. 이런 과정을 늘 반복하는데, 우리의 인생은 주로 이렇게 욕망을 따라가거나 욕망을 억제하는 극단에 치우치게 됩니다.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방법은 다만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구나’ 하고 알아차릴 뿐이에요. 내가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는 걸 다만 알 뿐이지 이를 악다물고 안 피우겠다고 다짐하는 것도 아니고, 참지 못해서 피우는 것도 아니에요. 피우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욕망은 가만히 놔둬도 저절로 사라집니다. 그러다가 또 일어나고 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욕망이 일어날 때 그 욕망을 따라가서 충족시키면 그 욕망이 빨리 사라집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습관이 생겨난다는 게 문제입니다. 욕망을 가만히 두면 그 욕망이 영원히 가는 게 아닙니다. 충족시키는 것보다 조금 천천히 사라질 뿐입니다. 이건 감기와도 비슷합니다. 감기에 걸려서 약을 먹으면 하루 이틀 빨리 낫고, 가만히 놔둬도 일주일 정도면 낫습니다. 그래서 욕망도 그냥 내버려 두라는 거예요.
그런데 욕망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게 현실에서는 잘 안 됩니다. 우리는 주로 참거나 욕망을 따라가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명상을 하다가 다리가 아플 때도 이를 악다물고 참거나, 다리를 펴거나, 둘 중 하나를 주로 합니다. 이때 알아차린다는 건 다리가 아픈 걸 알고 그냥 내 할 일을 하는 겁니다. 다리가 아픈 걸 알고 있지만 내 할 일인 호흡을 알아차리는 거예요. 따로 할 일이 없어요. 아주 쉽습니다. 욕망에 끌려가지도 않고, 그걸 가지고 시비하지도 않고, 다만 내 할 일을 하는 겁니다.
아직 무슨 말인지 안 와닿을 겁니다. 계속 연습을 해보세요. 지금은 참았다가 터뜨렸다가를 반복하는데, 이런 관점을 가지고 꾸준히 해보면 차츰 나아집니다. 지금은 욕망을 참기도 했다가, 욕망을 따라가기도 했다가 반복하게 되는데, 결국에는 욕망을 참는 것도 아니고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알아차린다’ 하는 게 가장 정확한 표현이에요. 이를 지켜본다고 표현할 수도 있는데, 지켜본다는 건 사실 알아차림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때 지켜본다는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또는 ‘욕망을 내버려 둔다’ 하고 표현해도 됩니다. ‘먹고 싶어 하구나’ 하고 알지만 안 먹는 겁니다. 이때 ‘먹어야지’ 하는 것도 아니고, ‘안 먹어야지’ 하는 것도 아닙니다. 명상할 때 다리가 많이 아파도 그냥 가만히 놔두듯이 ‘내가 먹고 싶어 하는구나’ 하고 그냥 놔두는 거예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요. 그래서 쉽습니다.”
“네, 스님 말씀대로 자꾸 연습을 해보겠습니다. 어제도 남편이 ‘너는 진심으로 나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참는 것 같다’라고 말했거든요. 나부터 잘하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남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말고 ‘당신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하는 관점에서 살펴보세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는 그게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내가 볼 때는 틀렸을지 몰라도 그 사람 입장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그게 옳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는 엉터리라도 그 사람 입장에서 보면 다 부처님 말씀입니다.”
이 외에도 질문과 답변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또 다른 질문자는 스님의 답변 중에 신라에서 민중 불교가 부흥한 이유가 초기에 오히려 불교를 억압했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무척 흥미로웠다고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스님은 걸림돌이나 제약이 오히려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불교를 믿어서 사회적으로 이득이 되면 너도 나도 다 불교를 믿으려고 할 거예요. 반면 불교를 믿어서 지위가 높은 사람은 지위를 잃게 되고, 돈이 많은 사람은 돈을 잃게 되면, 누가 불교를 믿으려고 하겠어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는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이 주로 불교를 믿게 됩니다. 잃을 게 많은 사람들이 그걸 믿으려면 대단한 결심을 해야 하잖아요.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이어야 불교를 믿는다고 해서 크게 잃는 게 없으니까 그냥 믿을 수 있는 거죠.
조선시대에도 불교를 탄압했잖아요. 당시에 잃을 게 없었던 사람들이 평민과 여성들이었습니다. 양반들은 모두 잃을 게 많으니까 거의 불교를 안 믿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여성 불자가 많은 이유는 조선시대에 여성이 출세를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불교를 믿는다고 해도 잃을 게 없었던 거예요.
이처럼 조건이 좋지 않은 것이 바른 법을 전해나가는 데 반드시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하는 게 아닙니다. 비슷한 예로 로마시대에는 기독교를 믿으면 사형에 처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믿으려면 굉장한 확신과 믿음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천주교가 뿌리를 내리는 과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는 탄압을 받았기 때문에 믿음이 진실한 사람들만 신앙을 이어갔고 나머지는 겁을 내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천주교가 초기에는 상당한 고통을 겪었지만 그 과정에서 단단한 중심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한국 사회에서 정예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토회도 법륜 스님이 조계종 교단으로부터 배척을 받았기 때문에 초기에 스님의 법문을 들으러 온 사람들이 주로 청년들이었습니다. 일반 승려들은 보기 힘들었어요. 정토회는 처음부터 큰 절을 가지고 있거나 탄탄한 기득권 세력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 청년들과 재가 수행자들, 나중에는 일부 비구니 승려들의 지지로 시작했기 때문에 비교적 중심이 탄탄해진 겁니다.
저도 머리를 기른 채 전법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아무것도 없이 머리를 기르고 있는 젊은 청년에게 귀의를 했다는 건 굉장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법륜스님이 유명해진 다음에 정토회에 들어온 여러분들은 오래 못 갑니다. 지금 들어온 여러분들은 법륜스님이 조금만 잘못해도 낙엽처럼 다 떨어질 사람들이에요. (웃음)
이처럼 난관이 오히려 멀리 나아갈 수 있는 좋은 토대가 되기도 합니다. 양적 확대를 할 때는 봄이 좋고, 질적인 심화를 할 때는 겨울이 좋습니다. 자연 생태계를 봐도 그렇습니다. 겨울의 언 땅 속에서 나무는 뿌리를 깊이 내리게 됩니다.”
즉문즉설을 마치고 나서 스님이 마무리 인사말을 해주었습니다.
“반드시 실천 과제를 하시고, 늘 마음 나누기를 하셔야 합니다. 수업도 반드시 들어야 하지만, 수업을 듣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마음 나누기를 하는 거예요. ‘똑같은 수업을 듣고도 이렇게 소감이 다르구나’ 하고 서로 다름을 알아가는 공부가 마음 나누기입니다. 부처님이 사람은 다 다르다고 말씀하신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실제로 다르네’ 하고 아는 게 중요한 거예요.
첫째, 법문 듣기.
둘째, 마음 나누기.
셋째, 직접 해보기.
넷째, 해본 다음 또 마음 나누기.
이 네 가지를 반드시 해봐야 합니다. 수업을 듣기만 하면 지식만 늘 뿐 내 것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꼭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실천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나니 12시가 되었습니다. 오전 울력을 마친 행자님들과 함께 방금 만든 김장 김치로 점심 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오후 내내 스님도 김장에 전적으로 붙었습니다. 창고 안에 김칫소를 치댈 수 있는 테이블을 설치하고, 김치 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양념에 배추를 이리저리 문질러서 배추 전체에 색이 들게 한 다음 배춧잎 사이사이로 양념을 채워 넣었습니다. 마지막에는 배추에서 양념이 떨어져 나오지 않도록 겉잎으로 감싸 주었습니다.
김치를 먹을 줄만 알았지 태어나서 처음 김장을 해본다는 행자님은 처음에는 서툴렀는데, 점점 요령이 생겼습니다. 겉잎을 제대로 감싸지 못해서 삐뚤빼뚤한 모양의 배추가 점점 예쁜 모양으로 변해갔습니다.
스님은 양념을 버무린 김치를 통에 담는 일을 맡았습니다. 배추를 한 층 쌓이면 그 위에 무를 한 층 쌓고, 다시 배추를 한 층 쌓았습니다. 배추의 뿌리 쪽이 서로 엇갈리게 하여 자른 단면이 위를 보게끔 담았습니다. 그래야 양념이 빠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 가져다주세요!”
스님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무를 담당하는 행자님의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네, 여기 무 있습니다.”
무 조각을 납작하게 썰어 김치 사이사이에 박아 넣고, 김치를 담은 후에는 우거지로 덮어 마무리를 했습니다.
김치를 통에 담을 때는 김치가 빨리 시어지지 않도록 외부 공기를 차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선 김치를 비닐봉지에 담은 후 단단히 묶어서 박스에 밀봉을 했습니다. 금방 김치통이 하나씩 완성되어 나갔습니다.
“김치 공장이 잘 돌아가네요.” (웃음)
해가 지기 전에 마무리하기 위해 저녁이 다가올수록 손놀림이 빨라졌습니다.
“자, 이제 마지막 김치통입니다.”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오늘 목표로 한 양을 끝냈습니다.
“나머지는 내일 합시다.”
저녁 식사를 한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잠시 휴식을 했습니다. 저녁 예불을 한 후 행자님들은 포살 법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스님은 여러 가지 업무들을 처리하고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영어 통역으로 외국인을 위한 즉문즉설을 하고, 전국 법사단 수련에 참석해 입재 법문을 하고, 오후에는 김장을 함께한 행자님들과 함께 나누기를 하고, 법사단 수련 회향 법문을 한 후, 저녁에는 일요 명상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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